>>408 대충 선렛거리로 생각했던 건 1.벚나무 아래에서 낮잠 자던 비랑 2.쓰레기 줍는 비랑 3.복도에서 빨간사탕줄까 파란사탕줄까 하는 비랑 4.화단 앞에 앉아서 구경하는 비랑이었지만... 이제 보니 진짜 같은 반이네? 아닛. 적당히 Half에 있는 낭낭이를 데려오겠어.
그러고 보니 정주행하다가 소꿉친구 선관 같은거 본 것 같은데 이건 또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더라. 하늘이가 아마 (느껴졌을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일상에서 조금은 보이는) 벽을 어지간하면 거의 다 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상대가 될 것 같기도 해서 민폐가 될 것 같아서 차마 구할 순 없을 것 같지만.
지금은 점심시간. 종소리 울려라 종소리 울려~ 하는 다소 계절에 맞지 않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복도를 뛰는(따라하지 말아요!) 한 학생. 누구나 알듯 오늘도 활기가 넘치는 비랑입니다. 평소에 비하면 조금 기운이 없지만요. 무슨 일일까요? 혹시 아주 슬픈 일이 생겨서 밥이 넘어가지도 않을 지경인 걸까요?
"급식이 맛없으며헌~ 밥이 안 넘어가요호~"
이럴 수가. 그냥 맛없어 보인다고 안 먹은 모양입니다. 그래도 받아서 버리는 것보단 낫다고 해야 할지, 겉만 보고 포기하지 말고 맛이라도 봐 달라고 항의해야 할지. 음식에 입이 없는 게 다행이에요. 아무렇지 않게 이상한 노래를 부르며 교실 문을 열어젖힌 비랑은 누가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듯 멈추고 맙니다. 교실에 사람이 있는 게 아니겠어요? 이럴 수가. 이 수치심 누가 해결해 준답니까. 한창 점심시간인 이 시간, 밥을 안 먹는 학생들도 다 매점에 가 있을 거라 계산했겠지요. 하지만 인생이란 원래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이랍니다. 그래서 인생이 재밌는 거 아니겠어요? 비랑의 눈동자가 교실 안에 있던 누군가를 빠아안히 쳐다보며 반응을 살피려고 할지도 모르겠네요.
작게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하늘의 귀를 잘 보면 푸른색 이어폰이 끼워져있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그가 듣는 곡은 더 홀 뉴 월드를 피아노로 커버한 곡이었다. 점심은 가볍게 해결했고 남은 시간은 특별한 일 없이 그냥 음악을 들으면서 보낼 생각인지 그는 한창 음악에 심취되어있었다.
아마 말을 거는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었을 것이고, 가볍게 흔들거나 바로 앞에서 손을 흔들거나 하면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그대로 보는 것도 할 수 있는 선택 중 하나였다. 일단 특정 곡의 멜로디를 가볍게 흥얼거리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하늘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의 시선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그의 안 좋은 버릇이라면 안 좋은 버릇이었으나, 결국 푹 빠져말고 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집에 가서 연주해볼까. 이거."
그저 그런 혼잣말을 작게 중얼거리던 하늘은 이내 다시 멜로디를 흥얼거리면서 음악에 더욱 깊게 심취했다.
>>451 전 스레인가 전전 스레인가 아주 살짝 말한 적이 있는데 하늘이는 클래식보다는 오히려 현대 피아노 곡을 좀 더 좋아하는 편이야. 그러니까 음. 커버곡을 정말로 좋아해. 물론 그렇다고 클래식이나 다른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그런 것을 고르는 정도?
같은 반 애인 건 확실하지만 누구였는지 잘 기억이 안 나는 아이, 하늘이를 비랑의 까만 눈이 빠안히 쳐다봅니다. 빠안히 쳐다보고, 빠안히 쳐다보다가, 스르륵 위로 올라갔다가, 뾸뾸뾸 내려왔다가. 그제서야 들리기 시작하는 작은 흥얼거림. 길 잃은 시선이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드디어 귀에 꽂혀 있는 이어폰을 발견하네요. 그래요, 드디어 눈치챘을 거에요! 놀랍게도 상대는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 이 행운을...!
'이어폰을 핑계로 못 들은 척 하고 있구나!'
비랑은 제멋대로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이 녀석, 들어 놓고 모르는 척 하는 게 확실해. 아예 못 들었다는 듯 혼잣말까지 하는 걸 보면 분명 모른척 해줄 테니까 이대로 가란 무언의 의사표현! 이라며 끝도 없이 상황을 왜곡하기 시작하네요. 그러다가 마침내 이런 쪽팔린 짓을 한 나한테 이런 호의를 베풀다니 자존심 상해서 용서할 수 없다! 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살금살금 하늘이에게 다가가기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장난을 치고 싶었을지도 몰라요.
"왁!"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하늘이를 놀래키려고 나쁜 비랑이는 순식간에 뒤에 다가와 어깨를 붙잡고 흔들흔들거리다 놓아줍니다. 놀란 하늘이가 멜로디를 흥얼거리던 것을 멈추면 태연하게 그 다음에 나와야 할 가사 한 소절을 불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