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으.. 한국말을 하란 말야, 한국말을! 으르릉거리기만 하면 내. 내가 어떻게 알아듣냐고..."
처음에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듣고 되도 않는 협상을 하던 주양의 기세는, 이윽고 들리는 조금 더 커진 울음소리에 살짝 위축되었다. 판단 잘 해야한다. 여기서 만약 어긋난 답을 내놓는다면, 꼬맹이의 복수를 대신 해주지도 못하고 맛난 한끼 식사로 전락하고 말거야. 그렇게 당신의 정체를 아직 눈치채지 못한 채 웅얼거리던 주양은, 당신이 다시 땅바닥에 적은 글씨를 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안도의 뜻이 한가득 담긴 모양새였다. 개밥이라는 두 글자가, 이토록 반갑게 느껴진 것은 또 처음이었다.
"아... 하. 꼬맹이 너 맞구나..? 깜짝 놀랐잖아 새밥아! 갑자기 그렇게, 어?! 내가 모르는 모습으로 나타나면 내가 놀라, 안 놀라! 하여튼. 확 그냥 쎄게 쥐어박아버릴라!"
차마 쥐어박지는 못하겠고. 그렇다고 쎄게 등짝 스매싱을 날리려니 뭔가 지금의 상태에서는 홱 피해버릴 것만 같았고. 한참 입술을 깨물며 울분을 삭히다가 다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물론 얼마 안 지나서 굉장히 어색하고 이상한 기분이었는지 헛기침을 크게 내뱉기는 했지만. 아무리 당신이라는 것을 알았어도, 일단 자세를 낮추고 다가오는 것은 묘한 공포감을.. 주기는 무슨. 뭔가 더더욱 위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이 들어 주양은 역으로 한껏 기세등등해진 모습이 되었다. 그 자세가 사냥감을 사냥할 때의 자세라는 것을 안다면, 마냥 이렇게 기세등등하지도 못했겠지.
"흐음~ 이 모습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평소보다 더 내려다보는 기분이기도 하니까, 이제서야 좀 갑이랑 을이 확실하게 나뉘는 것 같다. 그치?"
그렇게 말하며 머리에 손을 얹고 슬슬 쓰다듬어보는 것이었다. 딱 지금 이 자리가 어딘가의 아지트이고, 모피로 된 코트를 걸친 채 고급 소가죽 소파에 앉아있다면 머글 세계에서 흔히 말하던 최종보스 분위기가 물씬 날 것만 같았다. 물론 그게 어떤 느낌인지 주양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벌써부터 자신이 굉장히 높은 위치에 서게 된 것만 같은 우월감이 꽤 기분 좋게 다가왔다.
이윽고, 애니마구스가 되었다는 글씨를 보며, 다시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쳐갔다. 누구는 결국 목표 중 하나를 이루는 데 성공했으나 자신은 아직 아니다. 게다가 그 누군가가 자신의 숙적이었으니. 원하는 목표를 확실히 잡고 나아간 당신이 그럴싸한 목표도 없이 그저 파멸만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을 훨씬 앞질러 이겼다는 것은 변하지 않을 현실이었다. 앞으로의 내기에서 이긴다고 한들. 미래를 향한 플랜에서 뒤쳐졌다는 건. 장기전으로 본다면 결국 지는 기분이 들기 마련이었다. 한참 말 없이 생각에 잠겨있던 주양은, 곧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리고 머리를 두어번 더 토닥여주며 부드럽게 눈웃음지었다.
".. 흥. 그동안 꽤 열심히 연습했나봐? 예전부터 되고 싶었던게 되었으니 참~ 기쁘시겠어. 응? 내가 분해하고, 질투하는 반응을 보고 싶어서 얼마나 안달이 났었을까~ ... 뭐, 축하해. 우리 꼬맹이."
늘 신랄하게 투덜거려도. 마무리는 악의 없이 순수한 축하만을 전했다. 아무래도 영 적응 안 되는 칭찬이었기에, 머쓱한듯 제 머리를 벅벅거리긴 했지만.
>>744 헉 최고다 후후 발찌는 노리를 구속 아아아아니 구속을 풀어주겠다는 이야기지 그렇고말고~~! 그러니까 잠깐... 이리 와봐... 더 가까이.... ㅎㅎ.... (음흉한 웃음)() 아니 그리고 문에 부딪히는거 너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진짜 이 세상 귀여움이 아니다.. 또 다른 구몬 아주 잘 먹엇다구~! :D
앗 그리고 쭈아압에 쓰러졌는가... 허허.. 나 쭈주는 할 일이 떠올라서 이만 돌아가겠어...! (도망)(?????) 맞아맞아 여름 필수조합이지~! 내일 중복이니까 가족들하고 같이 즐겁게 잘 즐기고 왔어 :D 히히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쭈꾸미야.. (행복)(통실통실)
>>768 맞아 내일은 중복이지~! 더위 안 먹게 조심조심하고, 수분 보충도 잘 해주기야! :)
>>769 앗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으음.. 새장에 가둘수는 없지만.. 그래도 혼자서 감상하고 싶기도 하고.. 후후후후.. () 히히 우리 누리 이리와~~! 인데 서 설마 탈모마법 쏘러 오는 건 아니지....? :D.. (급 불안) 크흡 놀주 미안해.. 하지만 쭈압의 렝주만큼은 나도 어떻게 이길수가 없어야..! 더 강해져서 돌아오겠다...! (그렇게 쭈주는 돌아오지 못하고) 으앟 귀엽다니 부끄러운걸~! (편안하게 누워서 토닥임받기)(세상 행복)
혜향 교수님의 반응에 기다렸다는 듯, 아이~ 하고 어울리지도 않는 애교아닌 애교를 부리며 단태는 혜향 교수님의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갔다가 표정이 미묘해져있는 혜향 교수님의 표정을 말끄러미 응시했다. 왜 저런 표정을 짓고 계신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그 생각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교수님, 제가 청궁의 학생도 아닌데 건 선생님한테 장난을 배웠을리가요. 배웠다고 해도 건 선생님의 장난은 제가 감히 따라하기 힘들기도 하고 말이죠."
설마 제가요? 라는 표정을 짓고 느물느물한 목소리로 뻔뻔한 능청스러움으로 대답한 단태는 앞장서는 혜향 교수님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학생에게 술을 사주면 교장 선생님에게 혼난다는 그 말에는 그저 헤죽헤죽 웃을 뿐이었다. 아무리 호기심이 있다고 한들 교수님까지 곤란하게 만들 일은 없을테지만 왠지 혜향 교수님은 에반스 교수님이랑 비슷한 느낌이란 말이야. 새로운 무알콜 맥주라는 말에 교수님의 뒤를 따라서 걷다가 단태가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에이~ 한잔 정도는 괜찮을 것 같지만, 그래도 교수님이 곤란해지시면 안되니까 사달라고 조르지는 않을게요."
앞서서 나눴던 이야기들에 대한 대답을 단태는 굳이 하지 않았다.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능청스럽고 능글맞게 낄낄거리면서 맞장구를 치는 정도의 행동들을 해보일 뿐이었다. 영양가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야기들을 주고 받기에는 먼저 꺼내진 이야기가 있었고, 그 이야기에 대한 대답을 해야했고, 주제는 그쪽으로 쏠렸기 때문이었다. 주단태는 말을 돌리거나, 주제를 바꾸기 위해서 능청스럽고 능글맞게 다른 말을 재잘재잘거리며 입을 열어 주제를 돌리기 일쑤였고, 그 시도는 거의 대부분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단태가 이번에 그러지 않은 것은 역시나 몇번이나 반복된 사건의 연속이 원인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야했다.
걸음을 멈춘 주양을 향해 단태는 흘끗 붉은 암적색 눈동자로 응시하며 자신의 손을 들어서 뺨을 몇번 툭툭 두드리고는 팔짱을 꼈다. 어차피 졸업때까지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틀려먹었으니 어쩔도리가 없었다. 졸업 이후에는 만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했다. 게다가 상대가 저렇게 망설이지 않고 부딪혀오는데 그걸 무시하고 싶지 않기도 했고. 사실은 무시해도 됐었지만 지금은 그걸 무시하고 다른 말로 바꿀만큼 자신의 인내심이 풍부한 편이 아니었다.
"자기던가, 달링이라는 호칭이 싫다면 이야기를 하지 그랬어? 그래도 나는 그 호칭을 썼을테지만 말이야. 어긋났다고 해도 의외로 잘 돌아갔잖아?"
안그래? 하고 단태는 건조하게 메마른 시선으로 응시하면서 재잘거리다가 입가를 끌어올려 히죽, 웃음을 지어보였다.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여주는 주양의 모습에 단태의 암적색 눈동자가 하늘을 한번, 주변을 한번 번갈아가며 바라보고는 눈을 몇번 깜빡인다.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에, 단태는 뒤로 물러나거나 하는 사소한 제스처도 없이 그 자리에 서서 고개만 살그머니 기울였을 뿐, 주양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사실이 맞다고 한다면- 이라고 하면 말장난 밖에 안될테니." 단태는 시선을 다시 다른 곳으로 굴리며 단태가 뱀마냥 웃고는 주양에게 손을 뻗어서 그 뺨을 툭 건드리려했다.
"평소라면 네가 말한대로 넘겼을텐데 내가 지금에 와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구는 것도 이상하니까."
대답을 하던 단태는 잠시 자신의 대답을 곱씹어 보다가 눈썹 한쪽을 가볍게 치켜올렸다. 사소한 그 표정변화에 웃음기는 없었다. "뭘 해명해?"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말투였다.
"내가 이제까지 보여준 모습이 진짜인지 해명하라는 말일까? 아니면 감정에 대한 걸 선비탈에게 물어본 걸 해명하라는 말일까? 응?"
>>777 >>779 일상..! 멀티 넘어 트리플까지 가면 내 캐입력이 버티지 못할 것 같기에.. 일단 난 패스! 게임! 아까 투표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다시 하자면 나는 마피아게임에 한 표~! :D 헉 그리고 내가 방금 전까지 모기쫓는 걸 알았던건가..? 자꾸 귀찮게 달려들어서 모기향 피웠으니까 돈워리 암오케이~! :)
>>778 확인했어~ 커피 맛있게 마시고 여유롭게 이어줘~! :)
>>780 아니 왜 벽을 타고 올라가는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첼주 내려와 그 위는 위험해..! (밑에서 받아낼 준비)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꽤 큰 제약이 따르는구나- 하는 걸 다시금 느꼈다. 퍼부어주고싶은 말도있고 반박하고싶은 말도 있었지만 이런 모양새론 말을 할 수도 없었고 바닥에 글을 쓰는 것도 꽤나 제약이 많았다. 정말 많이 놀랐나보다- 하는 것은 온 몸으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레오는 속으로 킥킥대고 웃었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최근에 알게된 것이라면, 이렇게 동물로 변하고 나면 누군가가 머리를 쓰다듬어주거나 턱을 긁어준거나 아니면 등을 쓸어준다거나 배를 긁어주는 것이 꽤나 기분이 좋다는 것이었다. 눈을 감고 머리를 부비적대던 레오는 갑이랑 을이 나뉜것 같다는 말에 눈을 뜨고 조금 큰 소리로 울었다. 해석이 가능했다면 쳐죽여버린다-는 말이 나왔겠지.
축하한다는 말과, 우리 꼬맹이라는 말. 레오는 조금 당황한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런 말도 할 줄 알았던가. 레오는 이러나저러나 상관없나, 하고 생각하며 다시 습관처럼 머리를 부비적거렸다. 자신을 쓰다듬는 주양의 손을 두 어번 정도 핥았다가 레오는 뒤를 돌아 다시 나무 뒤로 향했다. 네 발로 슬렁슬렁 걸어가는 동안에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 했던 말처럼 절대로 이 쪽으로 와서 보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유라고 한다면 의외로 별 거 없을지도 모르지만 동물로 변하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몸 뿐이다. 변신할때 옷을 입고 변신한다면 전부 찢어져버리기 때문에 얌전히 벗어서 정리해두고 변신해야했고 원래대로 돌아온다면 당연히 자신은 아무것도 입고있지 않은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런 연유에서였다.
레오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자신이 돌아가고 싶은 모습과 지금 현재의 모습. 변하고 싶은 모습을 생각하고 집중한다. 머리 끝과 발 끝에서부터 다시 변화가 시작됐고 레오는 감았던 눈을 떴다. 정상적으로 돌아온 원래대로의 모습. 팔 다리가 잘 달려있고 피부도 원래대로. 레오는 '좋아!' 하고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곤 부네가 주었던 가방안에 잘 정리해서 넣어놓은 옷을 입고 앞으로 나왔다.
" 핫-하! 어때! 어때!! 대단하지! 멋있지! "
레오는 뭔가 불편한듯 옷을 만지작 거렸다. 목이 조금 졸리는 느낌. 조금은 애석하게도, 레오는 들뜬 마음에 급하게 옷을 입느라 거꾸로 입어버렸다. 자신은 그것을 알지 못했지만. 레오는 허리에 손을 탁 올리곤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 애니마구스인 교수님한테 도움요청했지. 그래서 빡세게 연습해서, 이렇게 됐다~ 이 말이야! 어때! 어때! "
"어머나. 나는 싫다는 말은 안 했다? 그래. 너의 말마따나~ 아주 기특하게도 어긋난 채 잘 돌아가고 있었지. 서로서로 잘 맞춰주면서 말이야~ 그거에 대해서는 뭐라고 해야 하려나. 어긋난 편이 나한테는 더 재밌게 느껴져서 그랬다고 하면, 너도 적당히 알아들을 수 있겠지?"
오히려 어긋난 그 관계를 서로가 재밌게 즐겼기에, 여기까지 별 탈 없이 잘 나아갈수 있지 않았을까. 당신은 어떻게 느꼈을지 이제 와서는 확신이 없었으나 적어도 자신은 꽤 재밌게 잘 즐겼던 느낌을 받았다. 이런저런 일에 시달려 감정이 한껏 예민해진 지금조차도 그 어긋남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은 아니었다. 단지. 지금은 그 어긋남을 더 이어갈 수 없을 만큼 자신의 의문점이 극에 달했다는 사실이 발목을 잡아챌 뿐이었다.
"역시 판단이 빠르다니까~ 전부터 한번 이런 진실된 자리를 가져보고 싶었달까? 가면 뒤의 모습을 서로에게 내비치는 자리를. 나의 친애하는 여보- 주 단태와 함께.. 단 둘이서 말이야."
호칭을 여보라고 굳이 또 붙인 것은, 아무 의미 없는 공허한 울림이었는가, 아니면 곧 막을 내려버릴 이 어긋남에 대한 미련의 연장선이었는가. 어느 쪽도 확실히 드러내지 않은 채, 주양은 그저 웃었다. 당신의 손이 제 뺨을 건드릴 때 즈음에는, 그 어떤 거부도 보여주지 않은 채 뒤이어질 당신의 반응은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당신의 손목을 잡아채고 거리를 좁히며 눈을 감았다. 이윽고 그 손에 뺨을 부비면서 눈을 뜨고 비틀린 미소를 내비치는 것이었다. 뺨을 맞더라도. 그 어떤 행동이 되돌아오더라도 상관 없다는 듯한 모양새로.
"우리 단태. 웃어야지? 이 즐겁고 감정 기복 넘치는 순간에, 그런 재미없는 표정 짓고 있으면 삶이 쳐져버린다~? 글쎄다. 역시 내가 좀 불친절하게 시작하기는 했으니, 지금이나마 조금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게 낫겠지."
그러고는 잠시 말을 골랐다. 처음에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것은, 그저 감정에 대해 물어본 이유를 듣고 싶었다. 이렇게까지 심오해질 것 없이 가볍게 흘러가도 될 이야기를. 굳이굳이 자신이 촉진시켜 이렇게 험악하게 만든 것은 그저 그 동안 신경이 많이 날카로워졌을 뿐인 것이다. 여태껏 느낀 것보다야 덜하다고는 하지만, 탈들을 넘어설 수 없었다는 분함. 말을 듣지 않는 지팡이에 대한 억울함. 그리고 넘어설 수 없는 상대와의 만남으로 인한 좌절까지. 모든 것이 어우러져, 지금의 이 상황을 자아내게 된 것이다. 넘어설 수 없는 상대와의 만남이 당신에게도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 외의 사항은 공통선상에 서 있으니.
여튼 그래서. 이왕 이렇게 감정의 골이 깊어진 김에.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듣는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남의 배려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자신이, 그동안 역극에 어울리기 위해 그 본성을 숨겼으니. 지금에서는 숨은 무언가를 잔뜩 알아내고, 알고 싶었다. 흥미. 호기심. 그리고 그로 인해 또 어떤 사이로 돌아설지 모르게 될 쾌감. 오직 그것 뿐만이 남아있는 모습으로, 주양은 다시 경박하게 웃었다.
"처음에는 그저, 탈에게 굳이 그런 걸 물어볼거 있었나. 그리고 이왕이면 나한테 말하지 그랬나 하고 좋게 좋게 물어볼 참이었지만~ 애석하게도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버렸으니. 너한텐 미안하지만 이기적으로 갈게. 양해 부탁해?"
"그래서. 이왕이면 전자 후자 전부 들려준다면 고맙겠어~ 그치만 전자는 해명하지 않아도 괜찮아! 우린. 서로 이해자가 될 수 없는 사이임에도 서로 이해하는 '척' 하면서 여기까지 나아갔잖아?"
그것 때문에, 너의 모습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이미 감이 오니까. 그것까지 해명할 필요 없어. 그렇게 단정지어 말하며 주양은 미소를 더더욱 짙게 머금은 채로 손목을 잡았던 손에 힘을 풀었다.
아닌 건 아닌 거. 그 말에 잠시 보았던 윤의 본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의 그녀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모습. 그 앞에서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어린지를 실감했다. 이미 열살이나 많은 첫째나 아버지를 앞에 두고도 그런 기분은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그녀도 그렇게 느끼는데, 주변에서 볼 때는 오죽할까. 동시에 드는 이런 저런 생각들에 그녀는 잠시 쓴 웃음을 지었다.
이름을 묻자 그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표정일까. 태평하게 이름을 물으니 그럴 만도 하긴 하다. 그래도 언제까지고 어른을 버르장머리 없게 대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다행히 그가 이름을 알려줬기에 그녀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사라진 가문이라고 들었을 때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지만, 그것 뿐이었다.
"그러면, 샤오 씨라고 부를게요. 이게 발음이 제일 마음에 드니까."
어딘가 화려한 그의 외모와도 어울리는 느낌이고 말이다. 이름을 들은 뒤 음식이 나와 그녀는 맥주를 보며 눈을 반짝였으나, 스테이크만 제 앞으로 밀어져서 작게 쳇, 하고 불만을 표했다. 이럴 줄 알고 있긴 했지만. 스테이크를 앞으로 끌어와 한입 크기로 썰면서 그의 말을 듣는다. 영 시원찮은 답변에 그것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그거는 굳이 안 알려줘도 알거든요. 이유 좀 알려준다고 뭐가 덧나나요. 어디 팔아먹을 것도 아닌데."
못 됐어. 전혀 감정 없는 투덜거림을 늘어놓고 스테이크를 찍어 입으로 가져간다. 덜 식어서 혀에 닿을 때 흠칫 했지만 그대로 느릿느릿 씹어서 삼킨다. 얼얼함이 남은 혀를 두고 다음 조각을 입에 넣으려다가, 말을 하기 위해 잠시 손을 멈췄다.
"뭘 물어볼건지 궁금한데 그건 가르쳐줄 수 있어요?"
그녀가 아니라 윤에게 물어볼거라 하니 왠지 물음을 빙자한 꾸짖음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좀전에도 가차없이 양심이 없다느니 했으니까. 잠깐이지만 윤의 모습으로 성난 소리를 들을 걸 상상해보니 어쩐이 웃음이 난다. 잠시 키득거린 후에 그의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수업에 재미란게 있을 리가요. 몇몇 과목은 흥미가 있긴 하지만, 재미는 아니에요. 굳이 재미있는 걸 찾자면 수업 중에 선배랑 딴짓하는게 재밌죠."
그녀에게 학교 수업은 전문가에게 배운다는 점 외에는 별 의미가 없는 과정이었다. 그냥 그녀가 학교를 다니는 중이고, 수업이 있으니까 듣는 것이라. 특히 최근 약초학 수업은 진심으로 재미 없었다고 덧붙이곤 포크를 들었다. 이제 적당히 식어 뜨겁지 않은 스테이크 조각을 먹으며 그의 맥주잔을 힐끔거린다. 약간의 아쉬움을 담아서.
"그거 저도 시켜주면 안 되요?"
보는 걸로는 성이 안 찼는지 결국 저도 시켜달라 말이나 해본다. 얘기 중이긴 하지만 자꾸 신경쓰여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제법 간절한 눈빛을 그에게 보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