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만족을 넘어서 황홀해보이는 주양의 표정에 단태는 건조하게 메말라서 섬찟하게까지 느껴질지 모르는 붉은 암적색 눈을 샐쭉- 가늘게 뜨고 바라보다가 다시금 주변을 살피는 것처럼 흘끗 움직였을 것이다. 잘못한 것은 없지만 알려지면 여러가지가 귀찮아질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기 때문에 해보인 행동이었다. 주변을 살피던 그 눈동자는 주양의 다음 행동에 다시 그쪽으로 향했다. 웃음이 주단태의 눈에 일렁이며 맺힌다. 사랑스러운 것을 보는, 금방이라도 애정을 쏟아낼 것 같은 눈빛을 보지 못한 게 아니었다.
이럴 때에 대꾸를 하지 않는 것은 단태의 좋지 않은 습관이기도 했다.
"나는 그냥 이렇게 태어났을 뿐이니까 말이야. 당연히 잘못한 건 없지 않겠나."
던지듯, 주단태는 대답했다. 태어나기를 이렇게 태어났을 뿐이다. 본성이 그렇기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것에 대해 이해를 하되, 감정적인 호소에는 이해하지 못할 뿐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담담하고 메마른 태도로 중얼거린 단태가 어깨를 가벼이 으쓱여보였다.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기라도 한걸까. 왜 마음에 든 건지는 잘모르겠다고 생각할 뿐 그것에 대해 입밖에 내지는 않는다. 건조하고 메마른 암적색 눈동자에 평소의 뻔뻔스러울 정도로 능청스럽고 능글맞은 웃음이 바뀌어 머물렀다. 이어지는 주양의 말에 단태는 낄낄거리며 능청스럽게 웃는다.
"상관없어.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테니까. 그리고 그런 표정을 보여줘놓고 온순하다고 하면 내가 그걸 순순히 받아들일거라고 생각해? 주양아."
그다지 기쁘게 해줄 생각은 없었는데, 뭐가 기쁜건지 모르겠군. 하고 단태는 느물거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다가 속삭이듯 말을 걸어오며 가까이 거리를 좁히는 주양의 모습에 살그머니 방향을 틀어서 머리를 기울였다가 가까이 거리를 좁힌 주양을 날름 자신의 품안으로 당겨 안으려고 했다.
한쪽은 황홀경을 주체하지 못하며, 다른 한쪽은 한 없이 건조해 섬찟함마저 느껴진다. 의도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모습으로 상황이 돌아가면, 항상 이성은 간당간당하게 남아 최소한의 판단만 가능하게끔 만드는 법이었다. 이성을 부여잡고 있으라고 한다면 어떻게든 가능하기야 하겠지만, 그러지 않은 상황에서는 굳이 그렇게까지 하며 재미를 포기하긴 싫었다. 그 생각은, 광기를 마주하면서조차 변하지 않았다. 당신이 이렇게까지 눈에 확실히 보이는 반응을 주면 줄수록, 그것이 더욱 큰 희열으로 다가오기 마련이었다.
"으응~ 그럼그럼. 내가 오늘은 조금 얄밉게 굴긴 했지만, 인정할건 인정해야겠지? 너한테는 잘못이 없어~ 오히려, 잘못이라고 한다면? 그건 나한테 있는 것일테니."
자신이 느끼기에도 자신은 뒤틀려 있었고, 기본적인 마인드 자체가 선인의 것은 아니었기에. 그저 늘 하던 것처럼 자신을 몰아넣을 뿐이었다.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내쉬며, 미칠듯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억누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미소를 거둘 생각은 전혀 없는 듯 보였다.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나, 어긋남을 정상이라는 이름 아래 커버하며 살아가는 사람. 후천적인 어긋남으로 성질이 한껏 뒤틀려, 결국 그것을 고칠 생각도 하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 그 두 사람의 모습. 바로 지금이, 그저 한 순간의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도 여운이 남을 만큼 인상깊었기에.
"흐음~? 적어도 사나운 표정은 아니었는걸. .. 글쎄. 뭐가 기쁘냐고 한다면~ 나는 그에 대한 답은 내놓지 않을게. 나 역시, 너처럼 이해자 없는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이왕 이해를 못 할거라면 쌍방으로 이해를 못 하는 편이 더더욱 낫다는 이야기였다. 과연 서로가 서로를 진짜 이해할 수 있게 되기야 하겠냐만은, 설령 그런 날이 온다면 상대가 먼저 질려버리거나, 자신이 먼저 지치거나 하는 두 가지 결과밖에 오지 않을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적어도 지금의 이 거짓된 모습만큼은, 서로가 서로를 동등하게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해하는 척 하려고 했기에 이어올 수 있었던 관계라는 것이 주양이 느끼고 해석했던 것이니까.
이윽고, 늘 하던 평소대로의 모습이 이어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꽤 살벌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고는 해도, 그 과정 중에서 먼저 다른 사람을 뿌리치고 적대하는 일은 없었다. 당신의 손목을 기습적으로 잡았던 제 손을 당신이 쳐내지 않았던 것처럼. 그리고 멋대로 손에 볼을 부비던 자신의 뺨을 갈겨버리지 않은 것처럼, 지금 주양 역시 아무런 저항 없이 끌려가면 끌려가는대로 당신에게 몸을 맡길 뿐이었다. 오히려, 한껏 더 끌어안아오기도 하면서. 당신의 서늘한 체온. 마치 뱀에게 감긴것만 같은 그 느낌을 마냥 즐기며, 주양은 뻔뻔하게 미소지었다.
"너도 알잖아? 난 이기적이면서도~ 그렇게 좋은 년이 아니라는 거. 그래서 그런건 생각 안 해두고 있었는걸~? 그냥 오롯이, 나한테만 뭔가가 돌아오길 바랐을 뿐이야."
남을 생각하지 않는 것. 오로지 자신의 이득만을 쫓으며 그 과정 중에서 실이 조금이라도 생기는 것을 용납할수 없는 사람. 제 성질이 그렇게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런 것은 먼저 생각해두지 않는 편이다. 혹은, 상대의 제안이 오고 나서도 쉬이 상대가 원하는. 서로 주고받는 값을 내놓지 않는 것이다. 허나 딱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분위기에 한껏 젖어버린 상태의 주양은 한없이 자비로워진다는 것 정도였다.
"그러니까~ 뭘 원하는지는. 단태가 생각해볼래, 응? 내가 너한테 어떤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하는지. 한번 들어보고 싶은걸~"
날씨가 지옥같다. 진짜 말 그대로 헬이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 최근 일은 아니었지만 왜 주작이 더위를 먹었는지도 굉장히 이해가 간다. 지금만큼은 현궁 사람들이 조금 부러웠을지도 모른다. 주작도 더위를 먹는데, 고작 주궁 5년차밖에 안 되는 자신이 이 더위를 버틸 수 있을 리가. 그럼에도 짧은 옷을 입지 않은 건, 오늘 역시 현궁의 설녀에게 지렁이젤리를 한아름 안겨주려는 것 때문이었다. 이렇게 더운 날은, 그냥 현궁에서 지렁이젤리를 먹게 하는 게 더 나을것 같았다. 그렇다고 설녀가 기숙사 밖으로 나오느냐면 또 그건 아닌 것 같았지만.
"주인장! 지렁이젤리 20봉지 주쇼!"
하여튼, 그건 그거고. 이젠 제법 당당하게 당과점 문을 열고 지렁이젤리 20봉지를 요청하는 것이다. 처음에야 안 당당했냐만은. 혼자서 이렇게 짧은 시간동안 지렁이젤리를 총합 40봉이나 사가는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주양은 씩 웃었다.
혜향 교수가 중얼거리듯 말했습니다. 곧이어 그는 주점에 들어서자 마자, 두 잔의 무알콜 칵테일을 주문했습니다. 요즘, 음료가 제법 늘어난 느낌입니다.
' 교직에서 내려갈 수밖에 없을 수도 있으니까 그것만은 참아다오. '
제법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보면, 정말 곤란한 모양입니다.
' 그리고 환상은, MA의 단순한 장난일수도 있어. 왜 탈에 대한 걸 너에게 보여줬는지는 모르겠지만. ' 자신에대한것도 혜향 교수는 먼저 나온 자신의 칵테일을 한 모금 마셨습니다. 나올까봐두려웠잖아 ' 마시고 잊어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야. 하나, 스포일러를 하자면... 곧 수업에 퍼프스캔을 데려 올 계획이란다. ' 이미나왔지만 퍼프스캔, 귀엽고 복실복실한 그 생명체에 대해서 생각하던 그는 어깨를 으쓱였습니다.
' 많이는 못 사주니, 그것을 다 마시면 나가자꾸나. 나도 퍼프스캔을 빌려야 하고 내가 돌보는 아이들도 준비시켜야 하니까. '
잘 몰랐는데, 챠오는 욕이구나. 실수로라도 그렇게 부르지 않게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머릿속 한켠에 잘 새겨넣는다. 그녀 기준으로는 어떻게 해야 샤오가 챠오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만약이란 건 항상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뭐어, 그러시다면야."
솔직이 이야기의 재미 여부는 듣는 사람이 판단하는게 아닌가 싶지만 이 이상 파고들면 혼날 거 같으니 더 묻진 않기로 했다. 그녀에겐 재밌는 이야기에 불과해도 당사자들은 아닐테니까. 배려 받은 만큼 무를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랬다. 그래도 궁금한 건 도저히 어쩔 수가 없지만. 참아야지.
윤에게 양심이 있는지 물어보려 한다며 웃는 얼굴로 해준 대답엔 그런게 있겠냐며 키득키득 웃었다. 웃다가 잠시, 일전에 그녀가 질문을 했을 때의 윤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멎었다. 그리고 잠시 애꿎은 스테이크를 콕콕 찌르다가, 그녀답지 않게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이렇게 된 데는 제가 생각 없이 들이댄게 지분이 크니까, 그 사람한테 뭐라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때의 장난일지도 모르잖아요. 그 사람에게는."
그렇게 말하다가도 그가 무알콜 맥주를 주문해주자 금새 표정이 팍 토라진다. 칫! 하고 혀를 차는 건 당연하고. 분을 삼키듯 스테이크를 쿡 찍어 입에 넣고, 꾹꾹 씹어 삼키고선 입술을 비죽 내민 채 중얼거린다.
"무알콜로는 성에 안 차는데. 치사해. 약올리는 것도 아니구."
몇마디쯤 궁시렁대며 스테이크를 먹고 그러다 기분이 풀렸는지 표정이 처음처럼 돌아온다. 처음보다는 평소일까. 멍한 듯 별 생각 없어보이는, 혹은 무언가 생각하는 듯 평온한 표정. 그런 얼굴로 입안에 든 걸 삼킨 뒤 눈을 두어번 깜빡이고서야 말했다.
"그게 말이죠. 처음에 했던 질문이 막혀서 그 다음은 못 하게 됐어요. 샤오 씨에게는 불순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정말 단순히, 그냥 궁금하니까, 샤오 씨나 다른 사람들에 대한 걸 듣고싶었어요. 어줍잖게 이해를 할 생각도 없고, 해주는 말들을 덥석덥석 믿지도 않을거지만. 그냥,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알고 싶었어요. 순혈 혼혈 그런 걸 떠나서, 같은 사람으로써."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는 거리에서 그를 마주쳤을 때 인사만 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가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던 것처럼, 그녀도 애초부터 그들을 적대하지 않았으니까. 그들과 적으로 마주쳐 싸울 때조차도.
"그러니까 듣는 대가로 제가 아는 거나 저에 대한 것 정도는 거짓없이 풀려고 했는데 샤오 씨는 영 관심 없어보이시니 말이에요. 이래서야 거래라고 할 것도 안 되겠는걸요."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다가 아, 하고 좋은게 생각났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본다. 그러고보니 있었지. 그들에게 물어볼만한게.
"혹시 그 사람에 대한 건 알려줄 수 있어요? 좀전처럼 숨길 건 숨기고 해도 되니까, 뭐든지요. 샤오 씨가 생각하는 그 사람에 대한 거라던가."
무릇 사람을 판단할 때는 그 주변 사람들의 말도 들어봐야 한다고 했다. 윤과 같이한 시간이 그녀보다 긴 그라면 뭔가 재밌는 걸 얘기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아까처럼 가차없이 까는 것도 재밌을 거 같고.
"자, 우리 고객님! 오늘도 신속하고 정확한 주궁 서비스를 이용해주샤 감사합니다~ 요청하신 지렁이젤리 20봉지예요!"
20봉지까지는 요청하지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예전에 잠깐이나마 따라해보던 그 쌩뚱맞고 엉성한 모습을 또 따라하며 주양은 한쪽 눈가를 찡긋였다. 다음에 올 때도 온전히 20봉지를 사다주고 초합 60봉을 선사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그러기에는 돈이 조금 모자랐다. 다른 심부름을 좀 해서 용돈을 더 모으고, 다시 또 들러야겠다. 돌아가서 또 뭔가 심부름이 걸려있는지 확인해볼까.
배주머니를 털린 니플러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못 이겨 몰래 동전을 채워준 게 몇 시간 전의 일.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지만 그 탓에 용돈에 때아닌 적자가 생겨버렸다.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그는 발품을 팔아 이런저런 일들을 해결하기로 했다. 가장 빠르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주르륵 떠있는 게시판 목록에서 그렇게 하나를 추려내어 지금의 상황이다.
화분에 곱게 심긴 맨드레이크는 잠잠하다. 뿌리째로 뽑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택영은 그 앞에 쪼그려 앉아서는 좀스럽게 그것을 노려보고 있었다. 잘못 없는 식물을 째려보기보다는 저 혼자 무엇을 고민하는지 심각한 얼굴이었다. 평상시엔 다른 사람이 들을까 쑥스러워서 흥얼거리는 것 외에는 노래 부르는 일이 거의 없는 그가 어쩐 일로 노래를 부르나 했더니, 용기를 냈다 한들 바라는대로 순탄치만은 않게 돌아가는 것이 세상 일인 법이다. 첫 소절을 떼는 데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혹시나 하여 러빗 교수에게도 잠시 자리를 피해달라 부탁하고, 주변에 지나는 사람이 없는지 살피고, 그나마 관객이 맨드레이크 뿐이라는 사실에 힘을 입은 덕에 이 상태였다. 막상 시도해보면 별것 아니게 될 거란 사실은 그도 알고 있지만 피하고픈 일을 시작하는 데는 언제나 힘이 드는 걸 어쩌겠나. 마음 같아선 도움이고 뭐고 모르는 척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교수님이 난처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자신이 행한 일에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게 올바른 사회인의 태도니까…… 그만 좀 쫄고. 그는 가슴에 손을 올려 심호흡을 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 마음의 준비까지 마칠 수 있었다.
큼큼, 목을 가다듬는 동안에도 택영은 조마조마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아무도 없는 거 맞겠지? 맨드레이크의 앞에 바짝 앉아 거의 속삭이듯한 폼으로 입을 연다.
―동녘 저편에 먼통이 트면 철새처럼 떠나리라 세상 어딘가 마음 줄 곳을 집시 되어 찾으리라 생은 무엇인가요 삶은 무엇인가요 부질없는 욕심으로 살아야만 하나
……간신히 1절은 끝냈다. 그는 잔부끄럼을 이기고자 손 안에 얼굴을 파묻고 박박 문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