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눈밭에 누워있다. 자박자박 걸어다니다 대뜸 누워버렸기 때문이다. 눈밭은 아주 시원했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금지된 숲 근처에서 날아온 새가 네 머리 위에 앉는다. 뱀이 기어와 네 팔을 휘감고, 니플러가 나타나 삑삑 울었다. 오늘도 동물과 함께한다. 너는 뭐가 좋은지 방글방글 웃는다.
"안녕. 좋은 밤."
유감스럽게도 아침이다. 그렇지만 너는 아랑곳 않는다. 그럴 사람이기 때문이다. 너는 부리에 입맞추는 새와 혀로 볼을 찌르는 뱀을 손으로 간지럽히고, 몸 주변을 뽈뽈 도는 니플러를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 장난치기를 좋아했다. 교수님은 이런 귀여운 아이를 잡아달라 하셨다. 신비한 동물은 신비한 만큼 말썽도 잘 부린다. 너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그 말썽도 품어주면 어련히 돌아오는 것도 아주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교수님이 주신 이 금화가 이해가 안 갔다. 그냥 이걸로 지렁이 젤리를 사먹으면 안 되는 걸까? 이 돈으로 지렁이 젤리를 먹는다면 아주 맛있을 것이다. 너는 지렁이 젤리를 아주 좋아하기 때문이다. 금화를 들어올린다. 니플러가 손바닥 위로 다가와 금화를 쑥 집어가고, 손을 훑자 깔깔 웃었다.
그리고 니플러가 잽싸게 도망가자 벌떡 일어났다. 새는 놀라 푸드덕대며 날아가고, 뱀은 빠르게 네 팔을 휘감기를 풀고 땅으로 내려간다.
반짝반짝한 파스텔빛 실반지를 저것이 훔쳐갔다. 방관만 할 수 있는 노릇이 아니었다. 넌 니플러를 믿었는데 피해를 입었다! 너는 눈을 털어내지 않고 니플러를 쫓았다. 니플러가 삑삑 울며 도망치자 너는 깔깔 웃었다. 니플러가 너와 노는 줄 아는 듯이.
잡았다. 너는 니플러를 주머니에 넣는다. "이따가 이노리랑 놀자." 하며 다른 니플러를 향해 눈을 돌린다. 니플러가 술래잡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분명하다. 너는 신비한 동물과 잘 놀던 사람이니까. 폴짝폴짝 뛰어가는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힌다. 눈발이 하얗다. 마치 머리카락이 물드는 것 같다. 활짝 웃자 뾰족한 송곳니가 보인다. 너는 손을 쭉 뻗는다.
"놀자, 놀자!! 같이 놀아요! 이노리랑 노는 거야!"
눈밭을 구르며 니플러를 낚아챈다. 주머니에 쏙쏙 집어넣는다. 점점 주머니도, 네 소맷단도 불룩해진다.
한마리가 삑삑 운다. 네 목에서 일순 노인의 목소리가 나온다. 근엄하고 세월의 노련함이 담긴 남성의 목소리로 묻는다.
"아가, 울지 말거라. 무엇이 서러워 우느냐."
달래주듯 몇번 도닥여준 너는 다시 소녀의 목소리로 소리높여 웃는다. 저 멀리 도망치는 니플러를 향해 달려가며 손을 또 뻗는다. 너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니플러가 멈칫하고 네게 다가온다. 너는 손을 뻗어 니플러를 순식간에 낚아챈다. 그리고 배를 마구 간지럽힌다. 니플러의 배에서 각종 식기가 우수수 쏟아진다. 눈밭에 고개를 파묻고도 재밌는지 꺄르르 웃는다.
"나 걱정한 거야? 괜찮아. 나랑 놀자. 너도 놀자! 인카서러스! 놀아주고 다시 바이바이 하는 거야. 이노리랑 놀아요, 놀아!"
혜양 교수님의 요청으로 가는 것이지만, 발이 잘 안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숲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으니까.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멀리서도 보이는 무성한 숲을 본다. 사람을 미치게 하는 울창한 숲의 공포란, 떠오르는 기억 속의 일들로 하여금 나쁜 기분에 잠식 되게 하는 것이었다. 아직 가까이도 다가가지 않았는데, 공포감이 밀려와 스베타는 몸을 떨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라면, 문카프들이 제법 외각 밖에 가까운 위치까지 나온다는 것일까. 스베타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서 바닥에 붙어버린 발을 억지로 떼어냈다. 그리고 문카프들을 관찰하기 좋은 자리를 찾아 잡았다.
무슨 이유에서 문카프들이 밭깥 근처까지 모습을 보이기 시작 한 건지. 숲의 무언가에 제 서식지가 밀리기라도 한 걸까. 생각하던 도중 그 귀여운 것들이 모습을 보여서, 준비해온 양피지를 펼치고서 깃펜과 잉크 병을 꺼내 들고서 관찰하기 시작했다.
사소한 것이라도 빼먹지 않고 적었는데. 너무 필요 없는 것까지 적은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스베타는 제 글씨가 빼곡하니 적힌 양피지들을 보고선 작게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래도 이 사소한 것이 중요할 수도 있으니까. 괜찮겠지. 그리 생각하며 양피지들을 정리해 모으고선 혜양 교수님에게 향했다.
사소한 것이라도 빼먹지 않고 적었는데. 너무 필요 없는 것까지 적은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스베타는 제 글씨가 빼곡하니 적힌 양피지들을 보고선 작게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래도 이 사소한 것이 중요할 수도 있으니까. 괜찮겠지. 그리 생각하며 양피지들을 정리해 모으고선 혜양 교수님에게 향했다.
"쓰읍.. 역시 안되는건가~? 다른 기숙사에서 스카웃하는 건 역시 쉽지 않은 일이네~ 하긴. 우리 여보야의 말도 일리가 있어! 맨날 보는것보다 이렇게 잠깐잠깐이나마 보는 게 더 여운이 남으니까~"
당신의 말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거린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5년씩이나 몸 담고 있던 기숙사를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애초에 기린궁 같은 특이사항이 있는 기숙사가 아니라면 다른 기숙사로 중간에 바꿔가는 경우는 듣도보도 못했으니까. 불가능한 스카웃이라는 것을 알아도 계속 제안하고 권유하는 이유는 별거 없었다. 못 먹을 감은 찔러나 본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괜히 한번씩 톡톡 건드려보고 다니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도 몇번 스카웃 제의를 한 적이 있었다. 저택에서 같은 방을 썼던 백궁 후배에게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타당한 이유를 들어 거절했으니, 그것을 듣는 재미로 찔러보는것도 있기는 했다. 자신만의 이유를 들려주는 건. 그리고 그것을 듣는 건 재미있는 일이니까.
"오호라, 진짜 그러실 것 같은데? 역시 인간은 귀엽다면서 말이지~ 그리고 그런 상큼한 말씀과 함께.. 기숙사 점수를 왕창 깎으시거나, 학생대표 자리를 빼앗으시거나 하는 거야. 무해한 척 하는 유해함이신 거지! 으으, 소름..!"
옷에 가려져 제대로 만져지지도 않을 제 팔을 연신 문지르면서 웃었다. 물론 정말 그러실 리는 없기에, 장난 비슷하게 말하는 것이기는 했다. 기숙사 점수가 깎이는 건 당연한 일이겠으나, 설마 다른 기숙사에 한번 들어간걸로 학생대표 자리를 빼앗기야 하겠냐는 것이 주양의 생각이었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양의 오해일 가능성도 크다. 말 그대로 이번이 진짜 처음으로 무단출입한 것이고, 평소에 다른 학생들이 무단출입하면 기숙사 점수 깎는걸로만 넘어가봤지 그 이상으로 가는 일은 없었기에. 경험의 무지에서 오는 일이었으나 그걸 경험하기는 조금 꺼려졌다.
"어떤 느낌인지 조금 알것같기도 하고~ ... 우리 가문? 차라리 내가 당하기만을 빌고 있을거야. 파렴치한 범죄자들. 그리고 역겨운 위선자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각각 범죄자는 직계. 위선자는 방계를 뜻하는 말이었다. 후자의 해석은, 주양 자신의 심히 뒤틀리고 어긋난 해석에서 오는 커다란 오해였다. 허나. 그 오해를 진짜라고 믿고 있는 게 커다란 계산 미스였다. 당연하게도 거기까지는 생각해두지 않은 채, 코웃음을 치며 어깨를 으쓱여보이는 것이었다.
아집. 격하든 엄격하든 좋으니 아집이라도 떨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덧 없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허나 그것마저도 한 때의 변덕일 뿐이다. 그렇게 될 수 없고, 이미 자신이 나아갈 방향은 정해졌다는 것을 아니까. 좋든 싫든 앞으로 전진해야만 한다. 어떻게든 가문을 휘어잡아서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하고 그 끝에 군림해야만 깊고 커진 감정의 골이 완전히 덮어질것만 같았다. 그래서, 가문의 뒤를 이을 사람이라는 말이 조금 반갑게 다가왔다. 이해하지 못할 사이에서. 유일하게 이해하게 될지도 모를 것이 생기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방법은 다를지라도, 결국 당신이나 자신이나 정점에 서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 같았기에. 이윽고, 주양은 걸음을 잠깐 멈추었다. 역시 질질 끄는 건 취향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대답을 이끌어보려던 변덕은, 딱 여기서 끝을 내겠다고 생각했다.
"음흠~ 너무 그렇게 물어보면~ 내가 조금 무서운걸~? 뭐. 별 거 아닌 시시콜콜한 질문거리가 떠올랐을 뿐이야~ 우리 여보는 탈을 도발할 생각으로 그랬던건지. 아니면 진짜로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몰라서 물어본건지 궁금했을 뿐이니까?"
당신과 탈의 거리가 좁혀졌을 때는 무슨 말이 오갔는지 알아차리기 어려웠으나, 탈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릴 때. 황홀하다는 말에 답하듯, 역시 모르겠다고 한 그 모습만큼은 똑똑히 기억한다. 그저 주양 자신의 되도 않는 궁예질일 가능성이 큰 판단이었기에 분위기를 잡거나 하는 일 없이 평소대로의 경박함을 목소리에 담았다.
"뭐~ 그래도 역시 우리 여보같은 사람이 그런 당연한 걸 모를 리는 없겠다. 그치? 우리 여보를 아주 잘~ 알고 이해하고 있는 내가 장담할 수 있어~"
괜한 기우였나보다 하고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은근슬쩍 넘기려 하며, 또 다른 한켠으로는 이런 식으로든 숨겨진 무언가를 알아보겠다는 마음으로 주양은 입꼬리를 슥 올렸다.
또 다시. MA의 장난이 계속되었다. 학원 사람들을 특별대우해주고 잇는 건 이전에 나눈 대화로 이미 짐작하고는 있으나, 과연 이런 거대하고 어마무시한 것을 장난으로 보내는 일을 특별대우로 받아들이고 좋게 봐야 할까, 아니면 한숨을 내쉬어야 할까.
원래 같았더라면 그냥 놔뒀을 것이다. MA님이 하고 싶다는데 방해할수는 없지 하는 마인드로 방관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역시 그냥 넘어가기엔 조금 애매했다. 대의를 위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이왕 던져준 장난감인데 그걸 가지고 놀지 않는다면 던져준 것의 입장이 뭐가 되겠는가. 그래. 지금은 그저 그것의 장난에 어울려 놀아주면 되는 일이다. 괜히 애매하게 굴었다가 또 심기 불편하게 만드는것보단 나으니까. 그땐 당과점이 무너질 뻔 했지만 그 다음엔 무너질 뻔 하는걸로 그치지 않을지도 모르고. 그 대상이 어디가 될지 모른다.
"와아~ 너가 그 애구나? 덩치만 무식하게 크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의 그 집채만했던 게를 닮은 무언가보다 덜 단단해보이며 그나마 게보다는 조금 작았을지도 모를 것이라는 점이다. 자. 그때 그것의 기에 눌려 빛을 발하지 못한 자신감을. 그리고 탈에게 제대로 된 유효타를 먹이지 못한 억울함을. 여기서 한껏 풀어낼 시간이다. 엑스펄소. 봄바르다 막시마. 콘프링고. 세 주문이 연달아 날아가 트롤을 향했다.
지금이 벌써 몇 번째 실패인지 모르겠다……. 불시에 양아치들에게 돈이라도 뜯긴 것만 같은 표정으로 그가 숲속을 하염없이 어슬렁거렸다. 동전으로 니플러를 유인하는 과정까지는 대체로 순조로웠다. 하지만 포획-회수의 과정이 이렇게 어려운 것일줄은 누가 알았겠나. 실수로 인기척을 내서 니플러가 도망가버리고, 실수로 정신이 팔려 돈만 뺏긴다거나, 또 한 번은 제대로 붙잡았건만 주머니를 털려는 순간 니플러가 너무 불쌍한 눈으로 울어대기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놓아줘버렸다. 따지고 보면 가들도 다 남의 거 훔친 건데!…라는 사실은 이미 풀어준 뒤에야 상기한 사실이었다.
그렇게 해서 택영은 거듭된 실패와 자괴의 끝에, 지금까지 시도해본 적 없는 방법을 사용해보기로 했다. 바로 패밀리어 찬스다. 페럿도 원래는 사냥용으로 가축화된 족제비라 하고, 니플러는 두더지 비슷하게 생긴 생물이니까 잘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설미를 내려주었는데 그게 실책이 될줄은 몰랐지. 자칫 잘못했다면 '비극의 서막'같은 흉흉한 서술이 붙었을지도 모르는 일이 벌어질 뻔했다.
"으아아악 설미!!!!!! 죽이지 말자!!!! 니가 함만 참자!!!!!!!"
설미는 바람대로 니플러를 잘 잡아주긴 했다. 문제가 있었다면 설미가 붙잡은 사냥감의 숨통을 확 끊어버리려고까지 했다는 점이다. 뾰족한 송곳니가 니플러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전, 택영은 황급히 둘 사이에 끼어들어 니플러를 휙 낚아채어 들어올렸다. 놀이를 방해받아 화가 난 설미가 아래에서 씩씩거리며 난동을 부렸다. 족제비가 폴짝 뛰어서 니플러를 마저 조져버리려 이리저리 찔러대고, 그 등쌀을 피하느라 그도 참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중간에 끼인 니플러는 거의 휘둘러지다시피하며 어느샌가 주머니의 먼지까지 깔끔하게 털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