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튬셈프라를 피하고 탈을 복구시킨 모습에 단태는 웃음기 없는 표정과 달리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여전히 일들은 계속 벌어지고 있었고 단태는 그가 했던 말을 곱씹어보고 있었다. 이해는 하되, 공감이 되지 않는다. 그건 주단태와 관계없는 일이여서 그런것일수도 있다. 아니면 주단태에게는 이해만 가능한 감정들일수도 있고. "아까부터 느낀 건데 너." 지팡이를 돌려서 집어넣은 뒤에 단태는 현성, 선비탈의 옷을 붙잡아 당기며 그대로 바닥으로 메다꽂으려했다.
"타인의 감정에 관심이 많네? 너는 어때? 다른 사람들이 슬퍼하고 화내고, 괴로워하고 울고 싶은 감정을 느낄 때, 어떤 기분이 들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나?"
타인의 절망이 그에게는 환희인가. 이해를 하려는 듯 고개를 살그머니 기울이던 단태가 헤죽, 미소를 지어보였다.
말하자면 자신의 불찰이긴했다. 애니마구스에 용서받을 수 없는 저주의 연습에 열을 올렸더니 일반적인 마법의 연습을 게을리 한 탓이었다. 레오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넘겼다. 지팡이를 꼭 쥐곤 가만히 서서 선비를 노려보던 레오는 머리를 빠르게 굴리기 시작했다. 보는 눈이 많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없는 저주의 사용은 힘들다. 애니마구스로 변하자니 여기서 바로 변신을 하기도 조금 애매한 노릇이고. 그렇다면 가까이 붙어서 다시 시도해보는 수밖에.
레오는 멈칫멈칫하며 선비와 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결단을 내려야하는 순간이다. 공격할지 말지. 공격한다면 어떻게 할지. 레오는 다시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쓸어넘기고 바닥에 퉤, 하고 침을 뱉었다. 직접 죽음의 문턱에 다녀와본 레오였다. 크루시오를 맞았고 섹튬셈프라를 맞았으며 이상한 동물에게 온 몸이 채여 갈기갈기 찢기기도 했다.
" .... 사람은 쉽게 안죽어. 네가 이해해라. "
어쩔 수 없잖아. 레오는 뿌득, 하고 이빨을 갈곤 지팡이를 집었다. 선비를 겨누곤 주문을 외웠다.
그는 말마따나 성격이 좋은 편이 아니다. 친절하긴 하지만 상냥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 상처를 받더라도 그 사람 몫이거니 넘겼고, 자신의 상처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인격자는 절대 못 되는 편인 것이다.
"많은 걸 시켰지. 널 위한 과자를 사왔으니 먹거라, 체하지 않게 꼭꼭 씹어라, 편하게 쉬고 있어라, 아프지 말거라, 좋은 꿈 꾸거라. 내 몫까지 살아라. 자네는 죽어서도 절대 받지 못할 것들 있지 않나. 온정이라고들 하지. 더 이야기 해줄까?"
비명소리가 하나 더 들린다. 윤의 것이다.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왜 탈을 공격하면 윤도 죽는 건지 상식적인 선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방금 전 둘에게 뭔가 얘기하던 상황도 그렇고, 갑자기 비명을 지르는 것도 그렇고. 만약 특수한 마법이라면 당신과 대화한 자신도 고통스러운 것이 정상일 것이다.
알마나 제 배를 내리찍었을까. 슬슬 작열통이 가실 때 쯤이 되어서야 주양은 다시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날 수 있었다. 고통은 고통으로 이긴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이를 얼마나 세게 악물었는지 입 안에서 비릿한 맛 마저 감돌고 있었다. 피 섞인 침을 입 밖으로 뱉어내는 대신 도로 목 너머로 삼켜버리는 짓거리를 하며 주양은 씩 웃었다. 어찌 되었든 제 몸을 돌고 있던 거니까 다시 삼켜버린다 한들 문제 없겠지. 속이 살짝 좋지 않아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주인이니 뭐니 하는 작자보다 훨~씬 높은 뭔가에게 사주할 생각인데. 내 분노를 오롯이 감당하겠다고~? 탈 따위가~?? 아하하하하핫!! "
앞뒤 맥락 다 떼어놓고 말한 애매모호한 이야기였지만 주양은 자신있는 표정을 지으며 경박하게 웃었다. 재앙 그 자체보다 격이 높은 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적어도 그때. 자신이 그렇게 위축될만한 분위기를 풍기던 것이 재앙이자 MA였으니. 그리고 정말 간사하게도. 지금 주양은 건 사감에게 내기를 걸 때의 천진난만하며 밝은 모습과는 반대로, 자신이 알지도 못하고 친하지도 않은 30명 쯤이야. 얼마든 바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물론, 그것은 분노 같은 감정이 뒤섞인 탓이기는 했지만.
"..... 아아. 진짜 열뻗치네. 졸업 때려칠까나.."
심하게 공격하면 백궁 학생대표가 죽는다. 그렇다고 공격을 하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당하고 있을 뿐이다. 도대체 왜 선비탈을 공격하면 윤이 죽는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지금 그런 건 뒷전이었다. 여기서 더 화를 냈다간 정말 졸업이고 뭐고 MA부터 물러서 지구 상의 무작위 사람 30명을 제물로 바치겠다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기린궁 사람은 아니었으나, 한 번 보고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자신도 그 힘을 써먹을 권리가 있다는 주양의 극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이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파고들었으면 그 줄을 낚아 챌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찰나였지만 그녀의 얼굴에 절망에 가까운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길게 이어지지 못한 건 선비탈의 말 때문이었다. 그것 보라는 듯 얄미운 말에 두 눈이 분노로 물들어 서늘하게 노려본다. 절로 튀어나오는 상소리가 잇새로 흐른다.
"XX..."
이 팔이 멀쩡했다면 성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책이 들다가도 뒤에서 들리는 비명소리에 다급히 뒤를 돌아본다. 웅크려 고통스러워하는 윤을 보자 이성이 끊어질 것만 같았으나, 주먹을 세게 움켜쥐어 그 고통으로 이성을 붙든다. 당장 달려가 안아주고 싶은 걸 참으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학생들을 향해 내뱉었다.
"제가 당신들을 막을 권리는 없으니 이거 하나는 말해두죠. 오늘 송장 셋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온갖 감정으로 어지럽게 물든 눈이 뒤를 한번 훑고 매몰차게 돌아선다. 저들이 어쩌기 전에 로켓을 빼앗으면 된다. 당장이라도 충동적으로 나가버릴 것만 같은 몸을 한가닥 남은 이성으로 억누르며 다시 선비탈에게 손을 뻗는다.
"내놔. 그건 내 거야!"
으르릉. 짐승의 소리와도 같은 중얼거림과 함께 그녀의 양 손이 선비탈의 목을 노리고 뻗친다. 단순히 로켓을 뺏는 것을 넘어 그 이상... 해하려는 듯이.
선비탈의 도발에 주양은 한바탕 폭소를 터트렸다. 오. 맙소사. 이렇게 정신 아찔하게 도발해주는 사람은 또 처음인데? 이렇게 된다면 자신이 전의를 불태워야 할 것은 양반탈 따위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머나~ 이거 참 재밌어라. 마음 같아선 교수님들이 보든 말든 싸버리고 하지! 누구는 저주 마법이나 펑펑 쏴대는데, 누구들은 그 선을 넘지 않기 위해서 애써 완급조절 하고 있는 상황이 참~ 억울하거든? 나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못 쓰는게 아니라 안 쓰는건데도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전혀 억울하지 않은 표정으로 킥킥 웃었다. 당연한 일이다. 학생으로써. 옳은 마법사로써 그 길을 걷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자신이 이미 재앙에 휘둘리고 있을 때부터 자신이 정말 옳은 마법사인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는 했으나, 애초에 양심 따지는 건 주양이 아니었기에 금방 떨쳐낼 수 있었다.
"근데~ 내가 너네처럼 허접하고 수준 낮은 저주마법을 읊어서 너를 고통스럽게 만들 거라고 생각했니? 천-만에!"
어디까지나 눈에 뵈는 게 없는 주양의 주관적인 생각이었다. 전혀 허접하지도, 수준 낮지도 않은 저주라는 걸 확실히 하겠다. 뻔뻔하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이고 슬쩍 주위를 둘러보던 주양은, 마침 가까이 와서 잘 되었다며 선비탈에게 더 고개를 가까이했다.
"... 가까이 온 김에 너한테만 속삭여줄게. 내가 산제물 서른 명만 모으면, 그땐 탈이고 주인님이고 뭐고 다 끝나는거야. 알겠어? 지금껏 너희가 상상도 못했을 그런 절망과 공포를~ 있는 그대로 오롯이 안겨줄게?"
목소리를 작게 줄이고 낮게 깐 채 다시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 없이 웃었다. 정말 그렇게 만들 날은 자신이 졸업하고 난 후. 그러니까 아득히 먼 미래가 될 터였으나, 상관 없었다. 그때까지 몸 성하게 탈 쓰고 다니는 자가 하나라도 있으면 그 계획은 무르지 않을 것이다. 이윽고 탈이 뒤를 돌아봤다. 그 어떤 저주 마법보다도 더 확실한 두 글자. MA를 부르려는 목소리가 목구멍 밖까지 튀어나오려다 간신히 억눌러졌다. 조절. 잘 해야 하니까.
"쓸 곳이 없는 자네..오..미안하네. 쓸 수도 없는 것보단 훨씬 쓸만한 것인지라..미안하지만 개소리는 걸러 듣는 재주를 다시 써야겠군. 들리지 않았네. 아가, 이 치가 뭐라 했는지 들었니?"
그는 백정을 한번 바라보고는 지팡이를 아무데나 휙 내던졌다. 귀한 재료만 엄선해서 만든 이번 지팡이도 결국 들개에게 던져주는 막대기 취급이 됐다. 그는 상황을 다시금 지켜본다. 이번엔 붉은 머리의 학생을 향해 도발하는 건가? 그는 이것 만큼은 쓰고싶지 않았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 했다. 이렇게 말 많은 사람과 엮이면 하루가 피곤하기 때문이다. 와중에 들렸던 경고에 그가 잠시 당신을 쳐다본다.
적어도 다섯은 볼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적다.
그는 고개를 돌린다. 등 뒤로 손을 모으고 한 손가락을 남몰래 까딱인다. 철제 의자가 손에 날아 붙었다. 이건 그의 어머니가 선물한 것이다. 언젠가 마음에 들지 않는 학우가 생기면 뒷일은 걱정 말고 머리를 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휘두르는 법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는 방학 중 어머니께 동화책으로 여러번 맞아봤고, 때리는 법도 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는 겉보기에 빌빌대는 약골이었지만 이미 지팡이를 한번 부러트린 전적이 있다. 무엇보다 장의사는 힘쓰는 직업이기도 하다. 그는 스투페파이를 맞은 탈에게 슬금슬금 다가갔다.
" 못 믿은적 없는데? 적어도 반응이 와으니까 진짜긴 하겠구나- 하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 "
제대로 한 방이 들어가고 레오는 씨익 하고 미소지었다. 둘 다 아파보이네- 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선비탈은 엄연한 적이다. 공격하는데 있어서 지체가 없으며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윤은? 같은 학교 학생이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따로 만난 적도, 접점이 있는 것도 아닌 완벽한 '타인' 이었다. 아마 저 사람하고 친분이 있다거나 했으면 얘기가 달랐겠지. 오며가며 얼굴을 본 적은 있지만 인간대 인간으로 무언가를 교류한 적은 없었으니까.
" 사람 쉽게 안죽어. 내가... 내가 당해봐서 알아. ....이 개새끼들. 안되겠다 너. "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크루시오,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보는 눈이 너무 많은 지금 그랬다간 아즈카반에 끌려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때, 그 날, 그 시간 이후로 혼자 있는게 무서워졌다. 지금이 현실인지 꿈인지 계속해서 확인하게 되었다.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게 되었고 자다가 허공에 마법을 난사하며 깨어나는 일도 있었다. 전부, 전부 네 놈들 때문에.
화, 분노, 증오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 레오는 이히히... 하고 웃으면서 지팡이를 꾹 쥐었다. 무슨 감정인지 알고있다. 어떤 감정이고 이 부정적인 에너지가 어떤 힘을 발현할 수 있는지는 선배님한테 배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