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빼앗지 못 한다면, 그러면 어떻게 될까. 사방에선 계속 공격이 날아들고 봄바르다의 불길이 선비탈을 감싸자 뒤에서 다시 비명이 들려온다. 분노, 원망, 자책, 절망... 온갖 시커먼 감정들이 목끝까지 차올라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입을 벌리면 욕지기든 상소리든 튀어나올까봐 입술을 뜯어버릴 듯 물고 목표에만 집중했다.
"읏....!"
불길도 비명도 잠깐은 잊고서 손에 닿는 걸 움켜쥐자 선명히 느껴지는 촉감이 있었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로켓의 감촉. 그녀는 누가 보기 전에 서둘러 손을 거두고 성한 소매 안쪽으로 로켓을 갈무리한다. 그리고 그대로 뒤로 돌아 윤의 곁으로 돌아갔다. 선비탈이 누구에게로 무슨 말을 하던, 누구에게 뭘 맞던 일절 신경쓰지 않은 채 윤에게로 돌아가 웅크린 그를 감싸안는다.
"미안해요. 이제 괜찮을테니까."
거친 움직임에 피가 멎을 줄 모르는 팔로 그를 와락 감싸안고서 싸늘한 시선으로 선비탈과 그 외 학생들의 행동을 본다. 형언키 어려운 감정을 두 눈에 담고서.
황홀한 기분이라. 단태는 고개를 반대편으로 기울이면서 시선을 살그머니 굴렸다. "역시 모르겠어." 이해는 하지만.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저건 죽여야겠다. 하고 단태는 생각했다. 누군가가 죽어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데, 왜 신경을 쓰고 있지? 어차피 졸업때까지 잠자코 있는 것도 틀려먹은 것 같은데.
갑자기 아는 체를 하며 너구나? 하는 말에 레오는 또 다시 멈칫했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는 자신도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부네의 단 하나의 패라는 것까지 알 수는 없었지만 레오는 대충 부네와 어울리고 있는 학원의 학생이 자신이다- 라는 것을 선비가 알아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접점이라면 그것 뿐이었으니까.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레오는 혹여 남들이 눈치챌까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 리덕토! 리덕토! 리덕토!!! "
잔뜩 당황한 탓에 주문을 연속으로 세 번이나 날려버렸다. 다음에 부네를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 알고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건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며 세 번이나 날린 주문 중 하나만이라도 명중하길 기대하고 있었다.
"오호라~ 너도 나한테 명령질이나 하는 거야? 내가 네 말을 들을 이유는 없는데. 그렇게 원한다면 너가 내 상관이라도 되어보시던가~ 아니면~ 내가 그때 그것을 보고 느꼈던 것 이상의 위압적인 아우라라도 뿜어내 보시던가."
근데 넌 그렇게 못 하잖아? 하고 주양은 씨익 웃었다. 애초에 이 곳에 모인 사람들을 산제물으로 던질 생각은 없었다. 아는 사람이 섞여 있었으니까. 라는 단순하고도 명료한 이유였다. 이윽고 입가에 담아두었던 미소는 경박스러운 웃음으로 터져 나오게 되었다. 시원시원한 체어샷에 주양은 엄지를 척 치켜올리고야 말았다. 얼마나 지팡이가 말을 안 들었으면 그 짧고 묵직한 타격 하나에 그리 기쁘게 웃을 수 있는지.
"선배~ 선배도 주궁 안 올래? 응? 체어샷 날리는 거 보니까 딱 주궁 체질인 것 같은데!"
주양의 몹쓸 스카웃은 오늘도 계속되었다. 체어샷을 날린 현궁 학생대표를 보며 그렇게 이야기하고는 슬슬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제 통증도 완화되었겠다. 늦었지만 다시 투쟁심에 불을 붙일 차례다. 이윽고 시선이 잠깐 제 기숙사 후배에게 돌아갔다가 다시 선비탈을 향하며. 주양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방금. 저주 마법이 나오려다 말았던 것 같은데. 저 빌어먹을 탈을 상대로 시간을 더 끌어봐야 좋을 것 하나 없게 될 것만 같았다.
"슬슬 너도 힘에 부치지 않니, 응? 블루벨 플레임!"
다시 지팡이를 탈에게 겨누고 마법 주문을 읊었다. 만약 이번 주문도 맞지 않는다면. 불태워져 재가 되는 건 탈이 아니라 너가 될 것이다, 짜증나고 염병할 지팡이야.
그녀는 지쳐 쓰러질 듯한 그를 받아 안고 등을 쓸어주었다. 이제 정말 괜찮을거다. 저기서 누가 죽던지 살던지 잡혀가던지 그녀가 알 바 아니었다. 지금 눈 앞에 있는 이 사람만 성하면 되었다. 그만 있으면 돼. 이대로 있다가 걸을 만 해지면 그를 데리고 돌아가자. 그 앞을 누가 막는다면 전부 치워버릴 생각까지 했다. 누구의 목숨이 스러지든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졌으니까.
"쉬, 백설, 이리와. 괜찮아. 선배 품에 들어가 있ㅇ... 크...흑...!"
주변을 멤돌며 시끄럽게 구는 백설을 불러와 그녀와 그 사이에 안고 있으려고 했다. 받아주기 위해 한 손을 내리려는데 저멀리 누군가의 주문이 들리고 그녀의 몸에 뭔가 맞았다. 그리고 찾아온 극심한 고통. 극심한, 극심한 고통이어야 했지만 어쩐지...
"....XX.....!"
그녀는 고통에 몸을 떨면서도 그를 놓치거나 하지 않고 되려 더 단단히 끌어안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로켓을 그녀가 가진 지금 이 고통이 그에게도 가해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거의 확신했다. 그로 인해 모종의 무언가를 저들이 눈치채면 안 될거라 생각해 그녀는 그가 괴로워하는 모습이 남들에게 비춰지지 않게 하는 걸 더 신경썼다. 고통으로 인해 눈앞이 흐릿해지고, 꽉 깨문 입술에게 피라 흐르는 것도 개의치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