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사납게 생겼구나. 레오는 책에서만 보고 처음본다는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고슴도치와 똑같이 생겼지만 뭔가가 다르다는 것 같은데. 갑작스레 질문이 날아오자 레오는 주변을 슥슥 둘러보았다. 선뜻 답을 내놓는 사람이 없자 레오는 손을 들었다.
" 먹이로 확인할 수 있어요. 고슴도치는 그냥 먹고, 날은 뭐더라.. 뭐라고 생각해서 난폭하게 군다고 알고있습니다. "
우쭐한 미소 하나 적립.
레오는 손을 내렸다. 더 확실한 방법이라면 때려봤을때 도망치면 고슴도치고 오히려 덤벼들면 날이라는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런 생각은 머릿속에만 간직해두었다. 이런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냈다간 정말 투견의 이미지가 씌워질지도 모르고 굳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서 이목을 끌거나 할 필요는 없으니까. 레오는 가만히 신비한 동물을 바라보았다. 사나워보이는데다가 고슴도치랑 닮았다. 귀엽지 않잖아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0 청궁 친구의 상세한 설명에 민 역시 성심성의껏 리액션을 해주었다. 평소 칙칙하던 얼굴에 혈기가 돌기 시작했다. 상기된 양 볼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어? 정말? 그거 심각한 거 아니야?"
그러나 민의 얼굴은 다시끔 창백해질 수 밖에 없었다. 민은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조심해, 머글 사회에서 저러는데 여기라고 못할 건 아닌 것 같아. 민이 입꼬리를 끌어내리자 몹시 불행한 사람처럼 보였다. 테러와 범죄, 아즈카반... 민이 사랑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었다. 이야기가 끝났을때, 민은 가까스로 다시 입꼬리를 올렸다. 그건 습관에 가까웠다.
"아무튼 알려줘서 고마워, 당분간 조심조심 다녀야겠다."
보고서를 슬쩍 봅니다. 네가 수고해줬으니까 뒷정리는 내가 할게. 민이 호의 가득한 손길로 상대의 어깨를 쓸어내렸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곧장 기숙사로 돌아온 그녀는 식사도 거른 채 침대에 엎어졌다. 누운 채로 걸리적거리는 교복을 휙휙 벗어던지니 바닥을 뒹굴던 리치가 놀아주는 줄 알고 옷을 잡으려 폴짝댄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교복으로 만든 둥지에 자리잡았으니 만족했을까. 리치의 우다다도 없으니 방 안은 조용하기 그지없다. 푹신한 이불은 구름처럼 부드럽게 살갗에 닿아 전신을 포근히 감싸온다. 그대로 잠들기에 딱 좋을만큼.
그렇게 눈을 감은게 조금 전 같은데 눈을 뜨니 몇시간이 흘러있었다. 어쩐지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앉는데만 한세월 걸린거같다. 고개를 돌려보자 본가의 자기 방...이 아닌 학교의 기숙사다. 꿈 속에서 너무 생생한 집을 봐서 그런걸까. 오늘 아침에만 해도 이 기숙사가 제 집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어쩐지 한없이 낯설다. 침대에서 내려가 리치를 끌어안아봐도 기분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갓 깨어난 리치에게 볼부빔을 해주고 다시 옷을 덮어 토닥토닥 재워준다. 리치를 재운 뒤에는 비틀대며 일어나- 일단 샤워를 하러 갔다.
늦은 저녁, 아니 밤인가. 밖으로 나오니 어둡다. 고개를 들자 젖은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고개를 흔들어 머리에서 물을 한번 털어내고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짧게 개량한 유카타의 소매 자락이 걸을 때마다 사락 사락 흔들린다. 오비에 꽂은 지팡이 끝에 은장식도 같이 흔들리다가, 잘그락, 하고 울렸다.
"아."
부딪히는 순간 나온 작은 소리는 그저 놀람의 반응일 뿐이다. 몸이 휘청이지도 넘어지지도 않았으니 큰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예의상의 말은 해야겠지.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던 고개를 반듯하게 돌리고 시선을 조금 내려 부딪힌 상대를 본다. 밤하늘처럼 검은 머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었다.
"아뇨. 저도 딴생각 중이었어서요. 죄송합니다."
다소 형식적인 말투로 말을 하고 고개를 꾸벅 숙인다. 숙일 땐 쉽더니 올라가는 건 한없이 느리다. 거북이가 된 것마냥 느릿하게 고개를 들고 한마디 덧붙인다.
자세히 관찰해보자는 말에 순간 학생들이 움직였고 키가 작은 편에 속하는 레오는 앞으로 밀려 넘어질 뻔했다. 금새 고개를 돌려 자기보다 키가 큰 상대의 멱살을 잡곤 쳐죽여버린다는 날이 잔뜩 선 말을 내놓자 상대는 레오의 흉터를 보곤 누군지 알겠다는듯 꼬리를 말아 금새 일단락되었다.
" 한 번만 더 밀어봐. 시비거는걸로 간주하고 쳐죽여버릴테니까 "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레오는 고개를 돌려 날을 가까이서 바라보았다. 정말 고슴도치와 똑같이 생겼다. 조금 사나워보이지만 그게 전부일 뿐. 끼익대는 울음소리를 듣고 레오는 몸을 숙여 크날과 눈을 맞추었다.
" ...안녕? "
만져봐도 되려나. 한 참을 눈을 마주보고 레오는 한 번더 안녕..? 하고 듣지못할 인사를 건넸고 홀린듯이 천천히 그리고 슬며시 손을 뻗어보았다.
휘영이 뻔뻔스럽게 눈을 꿈뻑이곤 말한다. 아무리 살펴도 얼굴엔 부끄러움의 비늘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는데, 어투는 너무도 진실을 말하는 사람의 그것이다. 눈 감고 말만 들으면 거짓말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제값주고 사 온 건 난데 내 맘이지!”
휘영이 당당하게 고개를 처들고 말했다. 휘영에겐 사온 것보다 더 비싸게 팔든(남을 등쳐먹고 살 생각은 없기 때문에 실행하진 않을 행동이다.), 더 싸게 팔든, 남에게 주든 제 맘이라는 생각이 뿌리깊게 자리잡아 있었다. 아마도 그 생각이 바뀔 리는 없을 것이다. 휘두를 수 있는 건 마음껏 휘두르고 다니는 게 휘영의 낙이었기 때문이다. 휘둘리지 않는 건? 됐다, 뭐!
“언니 소리 들을 생각에 벌써 키 커진 것 같아. 나 지금 너보다 높이 있지 않아?”
휘영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갑작스레 키가 크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휘영이 주양을 내려다 볼 일은 당연히 없다는 말이다. 키 큰 사람이 연장자라는 법도 없고. 실없는 소리를 하고 뭐가 좋은지 연신 웃는 얼굴을 한 휘영은 주양이 한 제안에 눈을 빛냈다. 꽤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눈치다.
“좋아, 대신에 걸리면 곤란해지니까 요 앞까지만 하자고.”
괜히 오해 받아 일이 꼬이는 건 사절이었다. 대충 길이 끝나는 지점을 가리킨 휘영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