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 天問, 하늘에게 질문을 던진다였다. 교수의 말에 벌써부터 이해가 된다는 것일까, 그는 점성술과 천문학이 전혀 다른 학문이라는 말에 고개를 조용히 끄덕여보였다. '가장 쉬울수도 있지만, 가장 어려울수도 있는 학문'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별의 움직임에 따라, 또 하늘의 흐름에 따라 가구라의 무용과 기세도 달라지는 법, 항상 하늘의 흐름을 파악하고 읽어내야만이 정식 계승자가 될수 있다는 말이 떠오른 것인지 그가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아카리가 있으면 도움이 됐을텐데."
자신의 동생은 자신보다 그런 것에 대해 더욱 천부적이었다. 몸치만 아니었다면 자신을 대신해 정식계승자 자리를 챙겨 갔을 수도 있으리라, 시답잖은 생각이었지만 이런 천문학 수업이라면 자신의 동생 아카리가 조금더 뛰어난 두각을 보였을거라 생각하며 그는 조용히 책을 펴들었다
처음부터 자신을 향해 블러저가 날아들었다. 아이고, 맙소사. 잠 하나는 확실히 깰것 같았다. 짧은 순간. 주양은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피하느냐, 아니면 받아치느냐. 피하는 선택지는 썩 내키지 않았다. 허나 비행술이라는 과목 이름에는 제일 잘 어울릴 것이다. 현란하게 잘 피해낸다면 블러저의 어그로를 다른 곳으로 돌릴수 있을지도 모른다. 받아치는 쪽이 주양에게는 제일 마음에 들었다. 확실히 다른 곳으로 쳐낸다면 어그로가 빨리 돌아갈 것이며, 그만큼 담력이 쎄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과목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 지도 모르지.
선택은 빠르게. 행동은 순식간에. 쳐낸다는 것 대신 피하기를 택하며 좌우로 빗자루를 꺾어가며 블러저와의 아슬아슬한 술래잡기를 이어가던 주양은, 순간 고도를 확 높여 급상승했다.
진정물약에, 왼손의 반지, 거기다 흐트러진 안경. 그는 당신의 모습에 그러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 앉는다. 당신이 기혼자인지, 아니면 누군가와 연애를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수업에 지장이 있을 정도만 아니면 되는 것 아닌가. 만일 그가 조금 더 따뜻하고, 누군가에게 관심이 많았더라면 그 반지 예쁘네요! 좋은 일 있으셨나 봐요. 하면서 능글맞게 웃었겠지만 그런 사람이 아니니 말이다.
"금지 된 저주?"
그는 크루시오의 고통을 떠올린다. 아팠지. 온 몸과 내장이 뒤틀리는 느낌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몸의 내구성이 생각보다 훨씬 약한 건 둘째치고, 그 고통을 두 배로 받는게 어렵다 해야할지. 왜 크루시오로 죽은 시체가 들어오면 죄다 몸이 말려있는지 알 것 같았고 말이다.
두통이 스민다. 음. 머리가 아프다. 관자놀이를 괜히 꾹꾹 누르며 그는 고개를 든다. 필기할 준비가 된 자세로, 어쩐지 삐딱하지만 나름 바른 자세로.
담당인 에반스 교수는 여전히 약을 달고 사나보다. 그의 손에 들린 약병을 보다가 문득 반짝이는 반지를 본다. 저거 작년에도 있었나? 고개를 갸웃하며 자리에 앉자, 짧은 서론을 들을 수 있었다.
"네에."
어차피 자신은 수업을 듣는 입장이니까 교수가 하라는 대로 해야지 다른 수가 있겠는가. 건성이나마 대답을 하고 들고온 교과서를 책상에 올려놓는다. 반듯하게 등을 펴고 앉은 모습만으로 모범생 같지만 마냥 그렇지만도 않은게 현실일 것이다. 머릿속 한켠에선 반지에 대한 것도 은근히 생각을 굴리고 있었으니까.
잠이 덜 깬 상태로 용케도 움직였다. 정말. 손으로 수업 리스트를 쭉 훑던 주단태는 한팔로는 기지개를 쭉 펴고, 다른 손으로 꺼낸 지팡이를 꺼내 선택을 위해 까딱까딱 흔들었다. 어~느~것~을~고~를~까~요~ 단태의 요상한 행동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어차피 이미 마음은 먹었으면서 쓸때없는 시간 끌기였다. 잠이 덜 깼기 때문이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지팡이가 그것을 가리키고 단태는 헤죽- 하고 웃었다. 역시 지팡이도 내 마음을 아는 게 분명해. 추종자들과의 만남이 단태에게 나쁜 의미로 굉장히 인상 깊었다. 물론 다른 수업들도 구미가 당기기는 했지만- 다음 기회를 노려야지. 암적색 눈동자를 깜빡이며 단태는 지팡이를 다시 집어넣고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 수업을 받기 위해 움직였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픽! 딱 기다려 에반스 교수님!
22리안 - 와 여기서까지 필사야!! 문서작업이야!! 오게에에에엑!!
(9O4EOM8XJ.)
2021-06-25 (불탄다..!) 14:50:29
>>0 >>17
시간이 안맞다는 말에 그는 아쉬움을 표했다. 확실히 천문학은 별을 보고 이해하며, 또 그 흐름에 맞춰서 어떠한 갈래로 나누어지는가를 봐야하는 법이었다. 실제로 다이사쿠 가문의 문헌에도 각종 천문에 대한 기록이 있었고, 그에 따른 선조들의 춤들도 모두 기록이 되어 있었으니까, 자신은 그 반절밖에 이해하지 못했으나, 할머니는 그 모든것을 전부 몸에 익혔다고 하였다.
'참.... 가사 외우려고 필사도 많이 했....'
그 순간 그의 귓가로 의심을 방불케 하는 말이 흘러 들어왔다.
"에? 필사??"
..... 그의 입가로 침묵이 잠깐 흐른다. 갑자기 PTSD가 온 것일까, 어머니에게 회초리를 맞아가며 노래가사를 적어 내려가고, 박자의 음색 부터 어떤 춤을 출 것인지 서술하는 내용을 모두 필사하던 기억이 나는 리안이었다. 필사라면 이가 갈리지만.....
"..... 빨리 하자."
몸은 정직하다는 것인지,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빠른 속도로 필사를 해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주 말끔하고 기운찬 일필(一筆)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몰라도 그는 천천히 손을 들고 입을 열었다.
"굳이 말하자면, 전쟁이 심수-별자리의 심장, 즉 전갈자리의 심장부분-에 머물렀으니 흉조가 든다는 뜻으로 답변을 남기겠습니다."
아주 간단하고도 차분한 말투였다. 그는 천천히 옷 매무새를 정돈한 뒤, 교수의 시선을 바라보았다. 정답이 아닐수도 있으나 자신이 알고 있는한의 정답이라면 그는 자신있게 흉조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어차피 정답에 의미를 두고 보는 문제도 아니고, 오히려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라면 이를 고칠 기회기도 했으니까.
분명 성공적인 급상승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어그로가 붙은 걸 보아. 그리고 기존에 따라오던 블러저는 계속 자신의 뒤를 쫓아오는걸 보아, 쓸데없이 블러저의 주목만 끌어버린 모양이었다. 이래서 과도하게 크고 화려한 동작은 앵간해서는 사용하면 안된다. 잘 쓰면 물론 멋있지만, 주양처럼 사용한다면 역으로 적의 이목만 한껏 받고 궁지에 몰릴테니.
당장 블러저를 떼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남들보다 높은 고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폭탄을 넘겨받을 희생양을 고르던 찰나에 블러저들의 충돌으로 파편까지 튀기 시작했다. 누구 한명 잡아놓고 넘기기에도 이래저래 애매한 상황이었다.
"음. 이거.. 엄청 위험한 상황에 내가 빠져버린 거 같은데.."
그렇다면. 피할수 없으면 즐겨야지. 저 쇠공이 자신의 몸에 정통으로 맞는 광경을 생각하니 저절로 아찔해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드레날린을 한껏 끌어올려 빠르게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내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내기만큼 염통이 쫄깃해지는 경험이었다. 기쁜듯한 미소가 주양의 입가에 걸렸다. 가끔은 이런 추격전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내기는 적어도 자신의 뼈를 내주지는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아익, 비켜라 비켜~! 파편 나가신다!"
그래도 지금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자신이 피하지 못할 상황에 직면할테니, 어떻게든 블러저를 떼어내기 위해, 다시 고도를 쏜살같이 낮추며 학생 사이를 종횡무진하기 시작했다. 일단 자신의 위기만 피할 수 있다면 이정도 민폐쯤이야 아무렇지도 않았다.
저주의 분류와 놀라는 당신까지. 여기까지는 아는 내용이다. 고통을 주는 저주의 풀네임은 크루시아투스..그는 속기하듯 깃펜으로 양피지를 채웠다. 시험에 나오거나, 모르는 내용은 아니지만 6년간 다져진 오랜 습관이다. 뭐라도 써둬야 마음이 놓인다. 그는 눈을 들고 당신을 흘끗 바라본다. 말할까? 글쎄. 그는 대답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세 개의 저주와 그로 인한 영향을 알지만, 저 심약한 모습에 혹시라도 기절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로 한다.
대신 그는 입을 열지 않고 필기로 써두기로 했다. 깃펜의 사각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크루시오라 짧게 요약되는 저주를 맞은 사람은 고통스러워 한다. 구체적으로는 온 몸을 쥐어짜는, 혹은 찌르는듯한 고통에 시달려 바닥을 기는 도중 손톱이 전부 부러지거나 머리카락을 쥐어뜯어 부분부분 빠진 흔적이 있기도 하며, 심한 경우엔 자해흔까지 남아있기도 했다. 그것 때문에 간혹 주저흔*이 발견되어 자살로 오인되기도 하나 그들의 최후는 전부 똑같다. 지속된 고문 저주는 사람을 미치게 하고, 결국 태아처럼 몸을 웅크려 죽는다. 마지막 고통을 품에 안듯이.
에반스 교수가 놀란 표정을 짓는 것과 반대로 그녀의 얼굴엔 의문이 피어난다.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엄청 숙련된 어둠의 마법사라면 가능하다. 그녀는 그 날 보았던 정장남을 떠올렸다. 울면서 웃으며 미안하다고 하던 기묘한 남자. 어딘가 나사가 빠져보이지만 실력 하나는 우수했다는 걸까. 저도 모르게 갸웃하던 고개를 원위치로 돌려놓고 질문을 잇는다.
"숙련되었다고 하려면 얼만큼의 경험이나 시간이 필요한가요? 예를 들면, 몇년 정도 수련하면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던가요."
자세히 본 건 아니지만 그는 그렇게 나이가 많아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외모를 바꾼 걸지도 모르지만. 보이는 그게 사실이라면 그의 역량을 대충 눈대중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아, 교수님은 가능하신가요?"
저 심약한 교수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실력적인 면으로는 맞다 아니다를 답이 가능할 수도 있으니 일단 한번 던져나 본다.
파편 몇 개가 주양에게로 휙, 날아옵니다. 간신히 주양은 피했지만 다른 학생들은 미처 피하지 못한 듯 합니다. 파편들은 휙휙, 주양과 다른 학생들 사이를 날아다닙니다. 그 중 몇 개는 곤 에게로 날아갔네요. 와.... 프로테고 주문으로 피하는 저 선생님의 여유로운 모습!
' 난이도를 더 올려볼까. '
곤 선생님은 블러저 하나를 더 풀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주양에게로 휙, 쳐냈습니다.
' 자! 쳐내보거라! 주양 학생!! '
선생님이 무서워요!
>>44 발렌타인 >>45 주단태
' 크루시오 저주는.... 고문, 용으로 많이 쓰이기도 하고 시전자가 상대를 죽이겠다는 생각으로 쓸 수록 위력이 강해집니다... '
에반스 교수는 겁에 질린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할 수 있어요, 에반스. 할 수 있어요.
' 그리고.. 그 저주의 무서운 점 중 하나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
오! 이건 처음 아는 사실이다. 고문용도의 저주다 보니 살의가 담길수록 위력이 강해지는군. 그는 위력이 강해진다는 부분에 밑줄을 쳐둔다. 아주 중요한 단락이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피할 방법도 없고..새로운 지식을 적어내리던 무언가를 좍좍 거칠게 그어내는 소리와 함께 깃펜이 우뚝 멈춘다.
"방어 마법도 사용할 수 없는 저주입니까?"
그렇다면 꽤 불리한 저주다. 그의 눈이 조용히 내리깔려 양피지를 향햔다
[피할 방법 전무? > 파훼도 없다면 그들의 주된 사용 방법일 것. 대책 마련이 필요함. 아니면 잡혀갈 각오로 이쪽도 같이 사용하거나.(이 부분은 지운듯 하다.)]
맞췄다! 라는 만족감도 잠시, 지금부터 자유시간이라는 말에 그가 얼굴을 웃는 표정 그대로 굳어버린다. 지금부터 자유시간이라면 하교때까지 여기 꼼짝도 말고 묶여 있으라는 뜻 아닌가, 그는 잠시간 머리가 띵해져 옴을 느끼며 책을 펴들었다. 할것도 없는데 오랫만의 휴식시간.... 그는 천천히 주변 학생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귀를 기울였다.
"그러고 보니 진짜 쉬는건 오랫만이네."
그간 방송을 하느라 심적으로 좀 쫒기는 감이 없잖아 있었던 것도 있지만, 그는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눈으로는 책의 내용을, 귀는 주변 상황을 담기 시작하였다. 입가로 아주 미세한 음이 흘러나오는건 덤.
휴.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양은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요란법석을 떨던 자신과는 다르게 깔끔하게 절제된 동작으로 여유롭게 피하는 것을 보니,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그리고 더욱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화려하고 큰 동작이 절대 최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교수님 멋져요! 야호!"
지금만큼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파편을 피하는 것에서 잠깐 집중을 떼고, 말 타는 자세에서 비스듬히 몸을 옆으로 돌린 자세로 바꾼 채 교수님의 멋진 모습을 응원하기로 했다. 허나 그것도 주양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니. 블러저 하나 피하기도 장난 아니게 빡셌는데. 네? 난이도를 올리시겠다고요..?
"엗."
잘못 들은게 아니었다. 블러저는 풀어졌으며 교수님은 그 블러저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에게로 쳐낸 것이었다. 아니. 아침부터 이 무슨 지옥훈련인가! 곤 교수님의 훈련(?)방식에 경외감이 들다 못해 이젠 공포감마저 들기 시작했다. 이젠 더 이상 이래야 주작 기숙사지! 하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남들이 당하는 걸 보며 풉키풉키 하는 건 주양의 전문이었으나, 당하는 대상이 자신이 되었을 때의 주양의 모습은 꽤 볼만한 것이었다.
"조, 좋아요! 제가 이걸 쳐낼수 있다는 데에 청이를 걸죠!!"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번 블러저는 피하라고 쳐준 게 아니라 쳐내보라며 쳐준 것이었으니, 있는 힘껏 맞서볼수밖에. 본격적인 수업 시작 전에 받았던 블러저를 쳐내는 용도의 막대기를 휘둘렀다. 좋아. 당황하지 말자. 지금은 퀴디치 경기다. 경기 상황이다. 는 무슨. 뒤에서 파편이 미친 듯 날아다니는데 이게 무슨 경기인가! 그래도 그 자기암시가 어느정도 먹혔는지, 이젠 안 하면 섭섭한 그 말을 입에 담으며 신중하고 날렵한 몸동작으로 블러저를 향해 막대기를 휘둘렀다.
없다. 그는 팔을 책상에 괸 상태로 이마를 짚는다. 졸지에 긴 머리가 앞으로 우수수 넘어온다. 추종자는 금지된 마법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이 저주와 절단 저주를 같이 쓸 것이고. 한가지 다행인 점은 후자는 학생들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자가 문제겠지만.
임페리오는 강한 정신력으로...글러먹었다. 강한 정신력이 나오겠는가? 퍽이나 나오겠군. 그가 쯧, 하고 입속의 혀를 찬다. 이어지는 질문과 대답에 당신을 흘끔 쳐다본 그는 이내 다시 눈을 내리감는다. 연애든 결혼이든 알 바가 아니다. 사람의 감정에 개입하고 흥미를 가지고 싶은 생각도 없다.
비효율적인 행위를 통해 애정을 확인하는 것도,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하거나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는 것도, 서로의 버팀목이 된다는 것도. 모조리 그가 생각하기엔 비효율적이고, 썩 타인에게 추천하는 행위도 아니며, 앞으로 시도조차 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내 앞날에 방해가 되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당신의 선택이 어리석다는 것은 아니다. 그와 당신은 다를 뿐. 그는 단지 애정보다 일에 대한 효율성을 더 깊게 따지는 사람인 것이다.
갑자기 리안의 눈이 흡 떠진다. 저번과 같은 상황이다. 절대로 웃어 넘길수 만은 없는 가십거리에 그의 날카로운 감이 꿈틀거린다. 조용히, 아주 조용히 물 흐르듯이 그들에게 다가가는 그의 모습은 말그대로 모 게임의 암흑 기사를 보는 듯 했고, 그들이 놀라지 않게 조용히 검지손가락을 세운뒤 입을 열었다.
"네~ MC 대작입니다아~."
그는 조용히 자기를 MC 대작이라고 소개했다. 물론 비밀 엄수-는 개뿔, 이미 다 들켰지만-는 해야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그 대상이란걸 알면 이야기 하기 쉬워지겠지, 그는 조용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맞아본 적이 있으셨구나. 에반스 교수님. 단태는 에반스 교수님의 말을 머리 한구석에 넣어두다가 그의 반응에 응? 하고 한쪽 눈썹을 끌어올렸다. 어라. 반응이-
"오-..."
주단태는 자신이 쏘아올린 질문에 대한 여파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애인인 줄 알았더니 애인이 아니라 남편이었다. 게다가 교수님 중 한분이다. 자신의 말에 분위기를 타버린 학생들의 질문에 단태가 깃펜 끝을 입에 물고 양손을 어깨 높이로 올려 으쓱해보인다. 난 그냥 질문을 던졌을 뿐이다 라는 뻔뻔한 태도였다. 아니 네가 만든 분위기잖아. 헤죽헤죽거리며 양피지 위에 에반스 교수님 반응이 새신부 같은 걸 보니 결혼한지 얼마 안된 모양이다-라는 건 적지 말고.
돌아온 답변에 표정이 금방 심드렁해진다. 뭐 새로운 거라도 있나 싶었는데 그런거였어. 애초에 쓰는 사람은 명백히 타인을 아프게 할 의도를 가지고 쓰는거니 상대의 고통 같은 건 생각도 안 할텐데. 별거 없는 내용으로 인해 자연히 수그러든 의문에 조금은 아쉬움을 느낀다. 이러면 이후는 재미없어질 뿐이니.
"네에."
그녀는 아까와 같은 대답을 하곤 힐끔 옆을 돌아보았다. 제일 처음 반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 학생을 한번 보고 다시 앞을 향한다.
막대기가 빗나갔다. 아. 이렇게 된다면. 자신이 블러저에 맞는 건 둘째치고 청이. 어서 그럴싸한 잔꾀를 떠올리지 않는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지다 끊겼다. 아픈 느낌은 들지 않았다. 뭐지 하는 생각에 슬쩍 앞을 보았고, 곤 교수님이 멋지게 그 블러저를 쳐낸 뒤였다. 거기에 이어지는 말은 완벽했다. 만약 친구 사이였다면, 청이 대신 내기에 걸어볼만 하지 않나, 이 정도면?
".. 네. 교수님 덕분에 멀쩡해요! 감사합니다."
주양은 다시 자세를 고쳤다. 머리끈을 풀렀다가 다시 단단하게 꽉 동여맸다. 아무래도 자신의 태도가 너무 가벼웠던 것이 원인인듯 싶었다. 아까의 염통 쫄깃한 추격전으로 잠도 싹 달아나고 정신도 꽤 맑아졌으니, 지금부터는 서주양 타임이다.
"좋아요. 맡겨주시죠!"
눈빛이 사뭇 남달랐다. 아까는 빗나가게 만들었지만, 이번만큼은 꼭 쳐내야 한다. 쓸데없는 실수는 한번이면 족하다. 이 이상은 퀴디치 선수이자 주궁의 학생대표로써 용납하지 못한다. 공이 날아오는 각도를 잘 보고 블러저와 자신의 거리가 꽤 좁혀졌다 싶었을 때에 주양은 피하지 않고 다시 막대기를 휘둘렀다.
TMI지만 결혼한 지는 제법 되었어요.... 5년차래요... 속닥속닥.... 큼큼, 괴전파의 말 따위는 듣지 맙시다.
' 임페리오 저주는..... 상대방을 조종하는 저주입니다.. 맞은 당사자는, 굉장히 행복한 황홀감에 잠기게 되는데..... '
에반스 교수는 거기까지 말하고 큼큼, 헛기침을 했습니다. 학생들이 아직 그의 남편이 누구인지 추측 중인 모양입니다.
' 집중... 해주세요.....! '
학생들에게 말하곤 그는 다시 설명을 이어가기 위해서 말을 시작했습니다.
' 그게.... 응..... 그 때 동안에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굉장히 바라게 됩니다.... 그리고.. 임페리오 저주를 쓴 당사자는, 한 번에 명령을 하나씩 쓸 수 있게 됩니다.. 그러, 니까.... 만약에, 제가 임페리우스 저주로 학생 한 명에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춤을 추라고 하면...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임페리오를 한 번.... 춤을 추게 하기 위해서 또 한 번 쓰게 돼요... '
여기까지 이해 하셨나요..? 하고 그는 조심스럽게 당신들에게 묻습니다.
>>103 주양- 비행술
주양이 막대기를 휘두르자, 블러져는 그대로 튕겨졌습니다. 학생들이 다치기도 하고 지치기도 한 것을 확인한 곤 선생님은 휴식 이후에 더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신 모양입니다. 수업 시간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빗자루를 타고 다니도록. '
블러져의 파편과 날아다니는 블러져를 잡아야합니다. 그녀는 블러져들을 잡기 위해 빗자루에 올라탔습니다.
주양이 빗자루를 타고 이리저리, 블러져를 피하면서 공을 날리고 있을 때, 학교 바깥에서 실루엣이 하나 보였습니다. 갓을 쓴, 어떤 마법사입니다. 그 마법사는 주양을 발견했는지 고개를 들어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군요. 태양빛에 반사 되었지만, 큰 안경을 쓰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옷은 또 왜 저렇게 검은지 모르겠습니다.
주단태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에반스 교수님의 남편을 추측하는 대화(?)들을 듣고 있다가 자신을 흘끗 바라보고 시선을 돌려는 학생에게 윙크를 해보였다. 수업 분위기가 너무 진지해서 던져봤는데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지. "교수님." 단태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 손을 들었다. 임페리우스 저주 한번에, 명령한번. 효율적이지 않은 저주였다.
"혹시 임페리우스 저주로 내릴 수 있는 명령은 모든지 가능한가요? 사람을 해치라고 하던가. 공격하라고 하던가?"
큰 고통을 받으면 임페리우스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만, 임페리우스 저주에 걸렸을 때의 기억은 없다. 금지된 저주만 아니라면 쓰는 곳에 따라서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필기를 하던 단태가 움찔, 손을 멈췄다. 금지된 저주가 괜찮다고 생각하다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핀이 꽂혀 있는 앞머리를 향해 입바람을 불고는 생각의 흐름에 따라 적었던 것을 깃펜으로 줄을 쳐버린다.
사실 3대 저주가 나왔을 때 비설을 잠시 보려고 에버노트를 켰는데...제가 보냈던 비설이...제가 확인하는 비설이 아니더라고요..다시 보니까 충돌 오류가 떠서 추가가 덜 된걸 캡틴께 보내드리고 저는 사본을 사용하고 있었어요...😱 본의 아니게 혼란을 드려서 죄송해요..😂😂😂
깃펜이 부러지는 소리에 휙 돌아보자 아는 사람이 보인다. 안다고 해도 이름을 주고받았을 뿐인 사이지만. 잠시 발렌타인을 응시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돌린다. 지금은 수업 중이니까.
거봐. 역시 설명할 필요도 없네. 아바다케다브라, 즉발필사의 저주. 에반스 교수는 세 저주 중 가장 용서받지 못 할 저주라고 했지만 그녀는 좀 다르다. 오히려 가장 인도적이라고 생각한다. 고통도 괴로움도 없이 바로 숨이 끊어지니까. 이 생각이 용납받지 못할 것을 알기에 그녀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다. 대신 손을 들고 다른 걸 질문한다.
"만약에, 상대를 해할 의도가 전혀 없이 용서받지 못할 저주를 시전하면 어떻게 되나요?"
셋 모두 상대를 향한 악의를 전제로 하는 저주인데 그 악의가 없이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일단 악의 없이 저주를 쓴다는거 자체가 말이 안되보이지만 만약이라는 가정도 있으니까.
황보 민: 335 미래로 갈 수 있다면 언제 쯤으로 가고싶은지? 딱히 미래로 가야할까요? 저는 지금에 충실하고, 충분히 잘 해내고 있는데 굳이 미래로 가야할 필요가 없어보여요.
235 글과 그림 중 더 재능있는 쪽은? 어... 어느쪽도 재능이 없을텐데 그래도 글 아닐까요? (눈치) 시인처럼 잘 표현하진 못해겠지만... 그래도 그림보다는 글을 더 많이 접했으니까요.
001 가족, 친인척 중 가장 증오하는 인물이 음식을 건낸다면? 딱히 증오하는 사람은 없지만... (턱 만지작) 그래도 준다면 얌전히 먹어야죠. 상황 가리지 않고 싫은 걸 싫다고 말하는 시기는 지나버려서요.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646172
>>247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그럼, 충분히 띄워질 자격이 있으니까? :) 앗.. 그래도 폭발은 안돼. 폭발 멈춰! (?) 형식적으로 딱 필요한 부분만 쓰고 나머지는 버리는 그런 느낌인걸까! 밍이 이미지랑 잘 맞는것 같아. 역시 이런 설정 하나하나 듣는 재미가 쏠쏠하네! :D
오늘은 마법약을 들을까 싶었지만, 사람이 몰리지 않는 과목들을 생각하면 마법의 역사와 머글연구 쪽을 듣는게 맞을 것 같았다. 과연 마법의 역사와 머글 연구 중 어느 쪽이 더 인기가 없을까 굉장히 고민되는 논제였다. 민은 학생이 적어 서운해하는 교수님들을 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역사와 머글 연구 둘 다 민이 좋아하는 과목이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전혀 없었다.
어렴풋이 입학식날의 야유(아마도 감 교수님이 극성 머글 덕후였기 때문 아닐까)를 기억해낸 민은 머글 연구를 듣기로 했다. 몸이 굼뜬 민은 남들보다 빨리 출발하지 않으면 지각하기 십상이었다. 민은 남들보다 빠르게 출발하였고, 그보다 조금 덜 빠르게 도착했다. 아직 한산한 교실을 둘러보고는 앞에서 두번째 자리에 앉았다.
책과 필기구를 책상에 올려놓고 정자세를 취하고 있는게 얼추 모범생의 반열에 들 수 있을 것 같다.
외국인이_영어로_길을_물을때_자캐는 유창하게 답할 수 있슴당 :D!! 한국어, 영어, 독일어(모국어), 일본어, 러시아어가 가능합니다- 라는 때아닌 TMI 투하~!!
자캐가_배신당했을_때의_대사는 어느정도 친분이 있는 사람한테 배신을 당했다 " 이 개새끼야 쳐죽여버리기전에 왜 그랬는지 말해. 아니, 아니야. 왜 그랬는지도 필요없어 그냥 죽어. 내가 직접 쳐죽여줄테니까, 그냥 죽어. "
진짜진짜 믿는 사람한테 배신을 당했다 " 아니야~ 다 오해야. 내가 설명할 수 있어. 그럴리가 없잖아~ 다 오해야 오해. 내가 다 알아듣게 설명할 수 있으니까 그냥 거기 앉아있어. 넌 그냥 '오해야'라고 한 마디만해. 그럼 내가 다 설명할게. 내가 다 할 수 있어! .. 쳐죽여버리기전에 오해라고 말해.. "
자캐를_물건에_비유해보자 복싱 글러브 :D! 가 아니고 뭐랄까.. 음..어... 정말 모르겠네요 이거는 :ㅇ... 탄산음료? 가만히 내비두면 괜찮지만 조금만 흔들어주면 마구 터져버리는 그런..!
#shindanmaker #오늘의_자캐해시
레오파르트: 201 캐릭터가 좋아하는 단어나 문장 " 쳐죽여버린다! "
295 슬픔을 참는 방법 고개 빳빳이 들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합니다. 입술 꽉 깨물고 눈물이 주륵주륵 흘러도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 빳빳이 들고 아무렇지 않은 척~!
113 남들에게는 별 거 아닌데 본인은 무서워하는 것은? 딱히..? 크루시오는 다들 다같이 무서워하니까 딱히 없는것 같슴당 :D
민은 이 엄청난 텐션을 조금 부담스러워하는 얼굴이었다. ...내가 잘못들어왔나? 민은 재빨리 시간표를 봅니다. 머글 찬양이 아니라 머글 연구인 건 확실한데... 그렇지만 머글 문화 자체에 흥미가 있었던 건 사실이었기 때문에 대충 넘어가기로 합니다.
"어... 스노우볼이요? 흔들면 눈 같은게 둥실둥실 뜨는 거 맞죠?"
먼저 대답하는 학생이 있을까봐 약간 기다리다가, 민이 조심스레 답했다. 확신 없는 목소리였지만 틀릴까봐 걱정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일전에 몰래 만난 머글들-당연하겠지만, 마법 사회에 대해서는 함구했습니다.-에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물체를 띄우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 흥미로워 기억해두었었다.
>>255 주관적 해석이라도 최고야..! 오너가 그렇다면 그런거지! :D 본가에서의 땃태 모습이 너무 멋져서 더위따위 이겨내버렸어 땃태 만세 땃주 만만세~!
>>260 배신당했을때의 대사가 너무 맛있는 거 아니야..? 나중에 배신해보고 싶을 만큼 최고다! (???) 탄산음료 ㅋㅋㅋㅋㅋㅋㅋ 뭔가 잘 어울리는 느낌인걸!
>>261 이것저것 참고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창의력도 뿜뿜 생겨날테니까, 밍이도 창의력 1짱 할수 있다! :) 앗. 썰 주워먹기만 하려 했는데 들켰나! 이렇게 된 이상 도망을 가진 못하겠고.. 주양이는 글이나 그림이나 둘 다 자신 없을테지만 하나만 고르라면 그림을 택할것 같아. 낙서도 그림이니까.. (????)
' 아, 인간은 어찌 이리도 상상력이 풍부할까요? 너무 귀여워요!!!! 귀엽다구요! 어떻게 이런 볼에 물체를 만들어서 갖고 있을 생각을 했을까요? 이걸 만드는 걸 상상만해도 너무 귀엽지 않나요? 아차차... 옛날, 마법사들은 이 스노우볼을 보고 머글들이 날씨를 점친다고 믿었습니다. '
수업은 진행해야 합니다. 감 선생님. 그녀는 자꾸만 인간 찬양으로 넘어가려는 정신을 붙잡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 여기에서 눈이 내리면 현실에도 눈이 내린다는 것 처럼요! 아, 마법사여도 머글이어도 역시 인간은 상상력이 풍부하네요!! '
야호- 민은 티나지 않게 쾌재했다. 기숙사 점수 10점이라, 질문에 답한 보답치고는 매우 만족스러운 성과였다. 민은 감 선생님의 윙크에 잠시나마 허리를 뻣뻣하게 세웠다. 이런 것에는 항상 면역이 없었다.
열심히 필기를 해나가던 민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디까지 필기해야하는지 도통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민은 일단 전부... 쓰려고 노력했지만 손이 잘 따라주지 않았다. 때문에 반쯤 필기를 포기한 상태로 감 선생님을 보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오늘 수업이 끝나겠다는 생각에 민이 다급하게 손을 올려든다.
"질문있어요. 저기 버튼*은 뭔가요?"
민은 땀을 삐질 흘렸다. 이 수업... 쉽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전자제품이라고 표시되어 있어서 버튼이 있을거라고 생각했어...! 아니라면 다른 걸로 수정할게
>>293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맞아 다비켜~ 오늘부터 이 구역 창의력 일짱은 밍이다~! (선동)(?) 못간다는 두 글자가 이렇게 단호하게 보일 줄은 몰랐는데..! 에이 아냐아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그냥 어린애들이 대충 휘갈겨버린 낙서 수준? 뭔가 그리거나 쓴다기보단 몸으로 떼우는 게 대부분이니까! :)
샤워를 마쳤다. 샤워라기보단 목욕에 가까웠을지도 모르지만. 레오는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그고 거품까지 잔뜩 띄워놓고 오랜만에 피로를 풀었다. 오늘은 어떤 하루였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정말 특별할게 없는 그냥그런 하루였다. 하늘은 적당히 높아서 숨쉬기가 나쁘지 않았고 공기는 적당히 촉촉해서 기분이 좋았으며 바람이 적당히 불어 조금 상쾌했다. 시비를 걸어오는 녀석들도 없었고 오랜만에 연습한 마법도 나쁘지 않았다. 퀴디치의 연습도 적당한 선에서 마쳐졌으니 다시 생각해보면 특별할게 없다지만 꽤나 완벽한 하루였다. 목욕을 마친 레오는 가운을 걸치고 화장대 앞에 앉았다.
머리를 말리고 이런저런 피부관리용품을 펴발랐다. 얼굴부터 온 몸을 제대로 관리해주고 나서야 모든게 끝난 느낌. 거울앞에 앉아있으면 한 쪽 눈에 상처가 길게 나있는 검은 머리의 아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레오는 손을 뻗어 거울 속의 그 아이의 눈에 난 흉터를 손가락을 세워 죽- 따라서 그어보였다.
" ...인상이 그리 좋지는 않구나, 너도. "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적당한 하루에는 적당한 마무리가 필요한 법이지. 레오는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섰다. 산책이라도 할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지난번에도 이러다가 탈을 만나 큰일이 생길뻔 했으니 지팡이는 꼭 챙기는 것도 있지 않았다. 검은색의, 표범이 멋드러지게 각인되어있는 나만의 지팡이. 허리춤에 있는 홀스터에 끼워두곤 가벼운 걸음으로 밖을 나섰다. 아직까진 꽤나 괜찮은 하루였으니 더 시비가 걸리거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레오는 눈을 감았다. 생각할게 있다기 보단 그저 고요한 느낌이 좋아서. 그렇게 몇 걸음을 나아가지 못하고 누군가와 퍽 하고 부딪혀버렸다.
귀여운 동물을 잔뜩 만났으면 좋겠다. 쓰다듬어주고, 안아도보고, 말을 잘 듣는 녀석이라면 패밀리어로 삼아버리고 싶을지도 몰라. 레오는 부푼 가슴을 끌어안았다. 솔직히 말하면 기대되었다. 오랜만에 레오는 얼굴에 홍조를 띄고 잔뜩 기대되는 얼굴로 수업장소로 향했다. 야외수업이라. 적당히 바람이 불고 하늘이 꽤나 높아서 숨쉬기가 편했다. 귀여운걸 봤으면 좋겠네. 평소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다보니 맨 앞자리에 서게 된 레오는 여전히 홍조를 조금 띄고 기대되는 얼굴로 서있었다.
백혜향 교수님. 지난번에 교사진을 소개할 때 얼굴을 익혀두었다. 신비한 동물 돌보기는 그다지 연관이 없는 과목일지도 모르지만 애니마구스가 되고싶은 레오는 배워두면 어떻게든 써먹을 데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들 중 하나로 변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굉장히 사납게 생겼구나. 레오는 책에서만 보고 처음본다는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고슴도치와 똑같이 생겼지만 뭔가가 다르다는 것 같은데. 갑작스레 질문이 날아오자 레오는 주변을 슥슥 둘러보았다. 선뜻 답을 내놓는 사람이 없자 레오는 손을 들었다.
" 먹이로 확인할 수 있어요. 고슴도치는 그냥 먹고, 날은 뭐더라.. 뭐라고 생각해서 난폭하게 군다고 알고있습니다. "
우쭐한 미소 하나 적립.
레오는 손을 내렸다. 더 확실한 방법이라면 때려봤을때 도망치면 고슴도치고 오히려 덤벼들면 날이라는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런 생각은 머릿속에만 간직해두었다. 이런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냈다간 정말 투견의 이미지가 씌워질지도 모르고 굳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서 이목을 끌거나 할 필요는 없으니까. 레오는 가만히 신비한 동물을 바라보았다. 사나워보이는데다가 고슴도치랑 닮았다. 귀엽지 않잖아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0 청궁 친구의 상세한 설명에 민 역시 성심성의껏 리액션을 해주었다. 평소 칙칙하던 얼굴에 혈기가 돌기 시작했다. 상기된 양 볼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어? 정말? 그거 심각한 거 아니야?"
그러나 민의 얼굴은 다시끔 창백해질 수 밖에 없었다. 민은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조심해, 머글 사회에서 저러는데 여기라고 못할 건 아닌 것 같아. 민이 입꼬리를 끌어내리자 몹시 불행한 사람처럼 보였다. 테러와 범죄, 아즈카반... 민이 사랑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었다. 이야기가 끝났을때, 민은 가까스로 다시 입꼬리를 올렸다. 그건 습관에 가까웠다.
"아무튼 알려줘서 고마워, 당분간 조심조심 다녀야겠다."
보고서를 슬쩍 봅니다. 네가 수고해줬으니까 뒷정리는 내가 할게. 민이 호의 가득한 손길로 상대의 어깨를 쓸어내렸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곧장 기숙사로 돌아온 그녀는 식사도 거른 채 침대에 엎어졌다. 누운 채로 걸리적거리는 교복을 휙휙 벗어던지니 바닥을 뒹굴던 리치가 놀아주는 줄 알고 옷을 잡으려 폴짝댄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교복으로 만든 둥지에 자리잡았으니 만족했을까. 리치의 우다다도 없으니 방 안은 조용하기 그지없다. 푹신한 이불은 구름처럼 부드럽게 살갗에 닿아 전신을 포근히 감싸온다. 그대로 잠들기에 딱 좋을만큼.
그렇게 눈을 감은게 조금 전 같은데 눈을 뜨니 몇시간이 흘러있었다. 어쩐지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앉는데만 한세월 걸린거같다. 고개를 돌려보자 본가의 자기 방...이 아닌 학교의 기숙사다. 꿈 속에서 너무 생생한 집을 봐서 그런걸까. 오늘 아침에만 해도 이 기숙사가 제 집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어쩐지 한없이 낯설다. 침대에서 내려가 리치를 끌어안아봐도 기분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갓 깨어난 리치에게 볼부빔을 해주고 다시 옷을 덮어 토닥토닥 재워준다. 리치를 재운 뒤에는 비틀대며 일어나- 일단 샤워를 하러 갔다.
늦은 저녁, 아니 밤인가. 밖으로 나오니 어둡다. 고개를 들자 젖은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고개를 흔들어 머리에서 물을 한번 털어내고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짧게 개량한 유카타의 소매 자락이 걸을 때마다 사락 사락 흔들린다. 오비에 꽂은 지팡이 끝에 은장식도 같이 흔들리다가, 잘그락, 하고 울렸다.
"아."
부딪히는 순간 나온 작은 소리는 그저 놀람의 반응일 뿐이다. 몸이 휘청이지도 넘어지지도 않았으니 큰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예의상의 말은 해야겠지.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던 고개를 반듯하게 돌리고 시선을 조금 내려 부딪힌 상대를 본다. 밤하늘처럼 검은 머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었다.
"아뇨. 저도 딴생각 중이었어서요. 죄송합니다."
다소 형식적인 말투로 말을 하고 고개를 꾸벅 숙인다. 숙일 땐 쉽더니 올라가는 건 한없이 느리다. 거북이가 된 것마냥 느릿하게 고개를 들고 한마디 덧붙인다.
자세히 관찰해보자는 말에 순간 학생들이 움직였고 키가 작은 편에 속하는 레오는 앞으로 밀려 넘어질 뻔했다. 금새 고개를 돌려 자기보다 키가 큰 상대의 멱살을 잡곤 쳐죽여버린다는 날이 잔뜩 선 말을 내놓자 상대는 레오의 흉터를 보곤 누군지 알겠다는듯 꼬리를 말아 금새 일단락되었다.
" 한 번만 더 밀어봐. 시비거는걸로 간주하고 쳐죽여버릴테니까 "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레오는 고개를 돌려 날을 가까이서 바라보았다. 정말 고슴도치와 똑같이 생겼다. 조금 사나워보이지만 그게 전부일 뿐. 끼익대는 울음소리를 듣고 레오는 몸을 숙여 크날과 눈을 맞추었다.
" ...안녕? "
만져봐도 되려나. 한 참을 눈을 마주보고 레오는 한 번더 안녕..? 하고 듣지못할 인사를 건넸고 홀린듯이 천천히 그리고 슬며시 손을 뻗어보았다.
휘영이 뻔뻔스럽게 눈을 꿈뻑이곤 말한다. 아무리 살펴도 얼굴엔 부끄러움의 비늘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는데, 어투는 너무도 진실을 말하는 사람의 그것이다. 눈 감고 말만 들으면 거짓말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제값주고 사 온 건 난데 내 맘이지!”
휘영이 당당하게 고개를 처들고 말했다. 휘영에겐 사온 것보다 더 비싸게 팔든(남을 등쳐먹고 살 생각은 없기 때문에 실행하진 않을 행동이다.), 더 싸게 팔든, 남에게 주든 제 맘이라는 생각이 뿌리깊게 자리잡아 있었다. 아마도 그 생각이 바뀔 리는 없을 것이다. 휘두를 수 있는 건 마음껏 휘두르고 다니는 게 휘영의 낙이었기 때문이다. 휘둘리지 않는 건? 됐다, 뭐!
“언니 소리 들을 생각에 벌써 키 커진 것 같아. 나 지금 너보다 높이 있지 않아?”
휘영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갑작스레 키가 크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휘영이 주양을 내려다 볼 일은 당연히 없다는 말이다. 키 큰 사람이 연장자라는 법도 없고. 실없는 소리를 하고 뭐가 좋은지 연신 웃는 얼굴을 한 휘영은 주양이 한 제안에 눈을 빛냈다. 꽤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눈치다.
“좋아, 대신에 걸리면 곤란해지니까 요 앞까지만 하자고.”
괜히 오해 받아 일이 꼬이는 건 사절이었다. 대충 길이 끝나는 지점을 가리킨 휘영이 물었다.
약간 광택이 돌아 은은한 빛을 발하는 은발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과 완벽한 대척점에 있는 것일까. 키도 컸고, 머리색도 정반대였다. 눈의 색깔은 똑같네. 레오는 신경쓰지 말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한 쪽눈에 진 흉터때문에 인상이 사나워보였고 실제로 하는 행동도 유순하진 않았지만 대부분은 먼저 걸려오는 시비덕택에 생긴 일이다. 상대가 적의를 보이지 않고 시비를 걸지 않는다면 레오도 굳이 이빨을 보이고 으르렁대며 멱살을 잡진 않을 것이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 괜찮아. 신경쓰지마. "
조금 어두워서 그랬으려나. 레오는 지팡이를 꺼내 '루모스' 하고 짧게 주문을 외웠다. 지팡이 끝이 빛을 발하고 그제야 레오는 상대방의 얼굴을 환히 볼 수 있었다. '녹스' 하고 또 짧게 주문을 외우자 빛이 힘을 잃고 꺼졌다. 사납고, 싸움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한 레오였다. 상대방이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는 알 수 없으나 레오는 일단은 확실히 해두기로 마음먹었다.
" 쌍방인데다가 내 실수도 있으니까 싸우자고는 하지 않을거니까 안심해. 나도 아무나 붙잡고 싸우는 그런 사람은 아니야. "
다른 기숙사의 학생인가보네. 레오는 그렇게 덧붙였다. 자기소개라도 해야할 타이밍인걸까. 그러고보니 이전에도 이런식으로 다른 기숙사의 사람을 만나서 친해졌었는데 혹시 이번에도?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레오는 음.. 하고 머리를 긁적이다가 대뜸 한 마디를 꺼냈다.
민은 우쭐해하는 백궁 친구의 장단을 맞춰주었다. 딱히 아부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진실로 그렇게 생각했던 것도 있었고, 백궁 친구가 기뻐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어느정도 있었다. 민은 둘의 잡담에 어느정도 거리감을 유지하며 경청하고 있었다. 이미 친한 사이에 끼어들었으니 불만은 없었다.
"어,"
감 선생님이 다가오자 민은 조금 난처한 얼굴을 했다. 이미 답을 알고 들은 것을 좋게 말해도 연구라 말하긴 힘들었다. 그렇지만 감 선생님의 기대를 무너뜨리고픈 마음은 없었다. 민은 슬쩍 청궁 친구를 보면서 운을 뗐다.
1학년이 시작 될 무렵의 봄날은 따뜻했다. 활기차게 학생들이 복도를 뛰어다니는 소리가 봄바람을 타고 크게 울렸다. 그는 경쾌하게 종종 뛰어 사감 선생님이 있을 연구실을 찾는다. 작은 손이 똑똑, 문을 두드린다. 오늘은 감 선생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리기로 한 날이다. 이정도는 괜찮다고 도련님이 허락해 주셨기 때문이다. 문이 열리자 감 선생님이 보인다. 선생님의 흑요석을 닮은 눈동자 밑으로 뺨이 분홍빛으로 물든다. 이제 막 학교에 왔지만, 이 선생님도, 건 선생님도, 교장 선생님도, 교수님도 너무 좋았다. 그는 활짝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이번에 청궁에 들어가게 된 타니아 리즐 블랙번이라고 해요."
그가 허리를 세운다. 참 근사한 사람이다. 예쁘게 땋아내린 동화 속 호수처럼 새파란 물의 색을 닮은 머리카락도, 숲의 청명함을 닮은 눈동자도. 발그레한 뺨은 꽃을 닮았고, 미소는 봄날의 바람과도 같았다. 어두운 겨울 나무를 닮은 도련님과 달리 그는 봄을 온전히 가진 사람이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본론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그는 수줍게 몸을 꼬다가, 당당하게 허리를 편다. 이건 모두 도련님을 위한 일이다.
"저는 이번에 같이 입학하게 된 현궁의 발렌타인 샬럿 언더테이커 도련님의 수행원이에요. 도련님의 건강이 그렇게 편치 않으신지라 제가 주기적으로 확인을 하고 본가에 전해드려야 해요. 부디,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일주일에 한 번은, 현궁의 얼음호수에 들어가도록 허락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 일이 벌써 6년 전이다. 1학년 초를 포함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여름이 다가오는 후덥지근한 바람에 파란 노리개의 고운 실이 바람결을 타고 흩날린다. 벌써부터 머리카락은 땀에 젖은 이마에 쩍쩍 달라붙는다. 아마 치마를 입었다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허벅지가 미끌거렸을 것이다. 다행히 그만큼 짧은 치마를 즐겨 입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지금 그는 현궁의 얼음호수를 찾아가는 중이다. 남의 기숙사에 이렇게 자주 들어가도 괜찮은가 싶지만, 이건 사감 선생님께 엄밀히 허락을 받은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마지막일 테니, 모두 봐줄 것이라 믿었다.
오늘은 우리가 마지막인 날이다. 지금 이 순간부로 나는 당신을 지옥에 밀어넣을 것이다. 당신은 내가 떠민다는 걸 알면 절망할까? 절망해도, 절망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그 모습을 보며 울지 않으리라 다짐했으니까. 기껏 산 투명 망토를 가위로 찢어버린 다짐이 무색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현궁의 얼음호수는 아주 차갑다. 주변에 서리가 내려앉고 호수가 얼어붙은 것을 보자면 영원한 겨울이 내려앉은 것 같다. 당신은 그렇게 시간이 멈춘 장소에서, 마른 나무의 기둥에 등을 기대 앉는 것을 좋아한다. 사실 좋아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까다로운 당신이 자주 찾는 모습을 보면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여름 바람이 얼음을 스쳐 차가운 바람이 되는 순간에는 눈을 감고 그 냉기를 느껴보았고, 주변의 서리가 내려앉은 잔디를 손가락으로 건드리다 똑 떨어트려 보기도 한다. 한참동안 휴식을 즐기면 쥐를 잡아온 달링과 함께 기숙사로 향한다. 오늘도 당신은 그 자리 그대로 앉아있다. 차갑게 변하는 여름 바람을 즐기다 앞에 선 그를 마주한다.
"왔니."
당신의 말은 언제나 달콤하다. 사람들은 현궁의 사신이라 불리는 만큼 목소리도 아주 무시무시하다 했지만, 모두 헛소리다. 모두 당신을 몰라서 그렇다. 숨이 섞인 목소리는 당신이 힘겹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는 이유도 지금 당장은 목을 쓸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 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당신을 사신이라 한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밉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모두 다를 뿐이고, 사람들은 평생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자리에서 일어선다. 몸을 일으키자 그와 비슷한 키다. 물론 그가 한뼘 더 작긴 하지만, 당신은 아직 허리를 펴지 않았다. 당신은 이런 나의 시선을 맞춰주는 아주 다정한 사람이다.
그는 주먹을 말아 쥔다. 더이상 놓칠 수 없는 이야기다. 우리는 아주 긴 연을 가졌지만, 이제 가위로 잘라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건 아주 오래 전부터 있던 마음이니까. 폐쇄적인 우리는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사상을 접했다. 당신은 늘 홀로 다녔지만 그는 아니었다. 청궁의 학생들과 장난을 치고, 대화를 하고, 결국 그가 먼저 규율을 어기고 사상을 지지했다. 그는 4학년 때 입을 귀까지 찢는 벌을 받았다. 집안의 어른들은 형을 집행한 이후 앞으로는 큰일 날 소리 하지 말라며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아주 오래 전, 언더테이커 가문에게 큰 은혜를 입고 섬기기로 모신 우리가 감히 규율을 깨서는 안 된다며 혼을 냈다. 추종자에게 메구가 있다면 우리에겐 죽음을 숭배하는 그 가문이 있다며 상처를 더 크게 입혔다. 그렇지만, 정작 이 규율을 누구보다 엄격하게 지켜야 할 당신은 약을 세심하게 발라주고 치유 마법을 써줬다. 아마 그날 이후로 그는 이 마음을 부정할 수 없겠구나 싶었다.
그렇지만, 근 2년동안 당신의 분홍색 눈동자를 마주치니 입이 도무지 떨어지지 않았다. 오늘도 당신은 긴 시간을 우두커니 서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려준다. 알고 있지만 묵인하는 당신을 보던 그는 결국 한참 뒤에서야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도련님." "그래." "도련님은 저를 좋아하시나요?" "…" "저는 도련님을 좋아해요. 정말이에요. 예전엔 제가 매일 약혼자라고 할 정도였잖아요." "…" "하지만, 저는 햇살도 좋아해요." " …" "따뜻한 자리에 앉아 꽃을 보는 것도 좋아하고요, 사시사철 봄날인 제 기숙사에서 노는 것도 좋아요..."
당신의 분홍색 눈을 마주하자 심장이 방망이질 쳤다. 당신이 똑바로 쳐다보는 건 처음이었다. 늘 낮게 깔렸던 눈을 제대로 마주하니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몸이 뒤로 넘어갈 것만 같다. 이토록 당신이 그를 오래 쳐다본 적이 있었나? 여름 바람이 겨울로 바뀌기를 세 번이 지나고 나서야 당신은 천천히 손을 든다. 영정을 들듯 손을 모은다. 그는 이 무의식적인 행동이 무엇인지 안다.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당신이 어두운 지하실에 갇힌 뒤 생긴 버릇이라 했다.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하지만 안타까운 행동이다. 당신의 표정이 누그러든다. 입부터 시작한 누그러짐이 점점 얼굴에 퍼진다. 메마른 입술이 벌어진다.
"바깥 세상에 가고 싶나?"
당신은 친절하게 내게 묻는다. 대답하고 싶은데 또 눈물이 차오른다. 하지만 숨을 들이마시니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이 모습을 쭉 유지하고, 주먹을 더 세게 쥐었다.
"…네." "타니아, 난 네가 정말 좋단다."
결국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당신이 그에게 사무적이지 않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당신은 가문원 모두에게 친절하지 않다. 사무적인 말, 사무적인 행동, 그리고 약간의 농담만 줄 뿐이다. 그런데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가 당신의 충신임을 시인한 것이다.
"하지만 난 네가 사랑하는 사람과 네가 같이 햇살을 마주하는게 좋구나." "도련님." "혼자 있지 않고 네가 따뜻한 자리에서 서로 꽃을 바라보며 얘기하길 바란다."
이어지는 당신의 말에 심장이 곤두박질 친다. 방망이질을 멈추고 시간이 멈춘다. 눈물만 뚝뚝 떨어진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타니아, 나의 아이야. 나의 신도야. 네가 행복하면 그걸로 됐지 내 무얼 더 바라겠느냐?"
결국 그는 소리를 내어 울었다. 다짐이 무색하게도 우리의 끝은 늘 그렇듯 그의 눈물로 얼룩진다. 언성이 높아지지 않아도 눈물이 터져 나와 흐지부지 되던 일이다. 하지만 오늘은 끝이 나버렸다. 결국 서로간의 감정을 시인하고 끝나버린 날이 될 것이다. 그의 인생에서 최악인 날이 될 것이 뻔했다.
"차라리 저를 죽여주세요. 제가 바깥에 물들어버려서, 제가 심한 말을 해서, 이렇게 곁을 떠나겠다 말해서…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감히 오랜 약속을 끊고 결국 죄를 지었어요."
당신이 그의 손을 잡아준다. 차가운 손이다. 하지만 그 안의 온기를 알고 있다. 당신을 올려다본 그는 죄책감에 몸부림 친다. 당신의 괴로운 표정을 처음 본다. 아무도 본 적 없는 그 민낯을 그가 기어이 보고 말았다. 세상이 잔인하다.
"죽은 자는 적어도 말이 없지. 하지만 살아있는 자의 목소리를 듣게 된 이상, 나는 더이상 돌이킬 수가 없지 않나." "도련님." "타니아, 왜 내게 기대를 하게 했지? 왜 나를… 어째서. 그래, 네가 떠난다면 내가 대신 어둠속에서 암약하여 너의 짐을 덜도록 하마. 부디 그 햇빛속에서 너는, 응? 내가 너를 아낀 만큼, 너는 행복해지길 바라."
결국 그는 감정을 이기지 못한다. 손을 뿌리치고 한참동안 상처 입은 동물처럼 몸을 떨다 당신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듯 뛰어간다. 그는 아마 시간이 지나면, 자유를 허가한다는 그 뜻을 받아들이겠지만 지금은 혼란스러워 경중이 없었다. 당신은 이해한다. 뒤로 돌아 늘 그렇듯 차가운 기숙사 안으로 돌아가버린다.
잔뜩 끽끽대는 소리에 레오는 한 발자국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쩝, 하고 아쉬운듯한 제스처를 취했고 뒤이어 뭔가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고 자신 쪽으로 몸을 기울이자 레오는 저도 모르게 크날을 안아들었다. 위험할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일단은 본능이 시키는대로. 레오가 하는 일이란 대개 그런것들이었다.
" 야!!! 너 뭐야!!! 쳐죽여버린다!!! "
수업중이라서, 교수님이 보고있어서, 보는 눈이 많아서 따위의 것들은 레오가 하는 행동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위험했잖아. 레오는 매를 바라보았다. 여기에 매도 있었나? 뒤이어 레오는 교수를 바라보았다.
" 아. 그. 죄송합니다. 제가 좀 그.. "
성격이 이래요. 라는 말은 굳이 보태지 않고 그저 자신의 조금 과했던 행동에 대해 사과할 수 밖에 없었다. 일을 저지르고 난 뒤에야 주변 상황이 보이는 법이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레오는 잠시동안 매를 노려보았다. 길게 베인 흉터가 있는 눈으로 노려보는 레오는 두 눈으로 '한 번만 더 설치면 쳐죽여버릴거야' 하고 이야기하는 듯 했다. 알아들을지 말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한참이나 노려보던 레오는 건네주는 초콜릿을 받았다. 맛있는 걸 주는 사람은 대개 좋은사람이니까, 교수님도 호감포인트 1점.
" 예? "
레오는 친해진것 같다는 말을 들은 후에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순간 본능적으로 그렇게 해버린것인데 의외로 잘 안겨있는구나. 이렇게 보니까 제법 귀여울지도..? 레오는 잠시동안 크날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뻗어 쓰다듬으려 해보았다. 다들 이래서 패밀리어를 키우는걸까 싶기도 하네.
애석하게도 그녀는 상대가 누구인지를 몰랐다. 잠깐 켜진 빛으로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을 때 떠올린 건 버니의 습격 당시 그녀와 같이 육탄전을 시도했던 사람이란 것 뿐이었다. 크루시오를 맞은 후엔 거의 리타이어였던 걸로 기억한다. 작게 웅크리고 비명을 지르던 모습이 시야 한켠에 들었었지.
"다행이네요."
일단 그녀도 그렇고 상대도 그렇고 다치거나 해를 입은게 없으니 다행이었다. 어둠에 눈이 익자 검은 머리칼 다음으로 그녀와 비슷한 금빛 눈동자가 보인다. 싸우자고는 안 할거라는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다는 건 평소엔 아무나 붙잡고 싸우자고 하는 사람인 걸까. 그렇게 되면 곤란하겠지만 그러지 않겠다니 그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버니 같은 상대가 아니라면 일방적으로 맞거나, 도망치기 밖에 못 하니까.
서로 오해도 없겠다 이대로 가면 되는걸까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닌가보다. 갑작스런 통성명이라니. 음. 요즘 이런 경우가 많네. 벌써 세번째인가. 신입생 때도 안 하던 자기소개를 새 학기 들어서 벌써 세번째다. 미묘한 기분을 느끼며 그녀도 이름을 댔다.
"펠리체, 스피델리에요. 백궁 4학년이구요."
청궁과 현궁 다음은 주궁인가. 와. 어쩌다보니 각 기숙사마다 아는 얼굴이 생길 판이다. 이미 그렇게 되고 있지만. 올해는 정말 보통이 아니겠구나 생각하며 늘 하던 말을 덧붙였다.
"같은 일을 겪기도 했고 이것도 인연이니, 잘 부탁해요."
말만 그렇게 할 뿐 악수나 다른 제스쳐는 없다. 굳이 말하자면 고개를 다시금 살짝 까딱인게 다였다.
레오는 짧고 담백하게 인사를 마쳤다. 잘 부탁한다는 말. 가만 생각해보니 이미 현궁에 친구가 생긴 마당에 백궁에도 친구하나 만들어두면 좋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통성명을 한 것이었다. 각 기숙사에 아는 얼굴 하나씩 만들어두면 제 얘기를 해줄지도 모르고 그러면 괜히 시비를 거는 사람이 줄어들지도 모르니까. 모든것은 그것에서 출발했다.
" 뭐.. 편하게 레오라고 불러. 레오파르트는 너무 기니까. "
그렇게 말하며 레오는 손을 뻗었다. 악수라도 하자는 의미였다. 솔직히 지난 번의 그 녀석이 거리감이 너무 이상했던 것이고 이 정도 거리감이 맞는 것이겠지. 같은 일을 겪었다- 라는 것은 지난 번의 그 저주였겠지. 레오는 크루시오,라는 것을 떠올리자마자 몸이 조금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본 고통. 그것이 있기 전까지 중 제일 아팠던 것이라고 해봐야 퀴디치 경기 도중 떨어져 팔이 부러진 정도였을까.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
" 같은 일을 겪었다는건 그거지? 그 저주. "
생각하기도 싫은 그것. 레오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잠깐 눈을 감은 사이에 지난 일이 영화처럼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그 탈을 쓴 자들 중 하나, 버니와 만나서 하루를 같이 보냈다는 것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지. 계속 서있는 것도 뭐하니 레오는 '잠깐 걸을래?' 하고 먼저 제안했다. 자기전 잠깐 산책하는 정도라면 더 깊은 숙면을 취하는데 도움이 될테니.
" 크날은.. 먹을걸로.. 고슴도치랑.. 구분할 수 있다.. 끽끽거리는 울음소리를 내고.. 위협을 느끼면 몸을 숨긴다.. "
레오는 중얼중얼 하면서 자신이 알아낸 점을 양피지에 적어내려갔다. 애니마구스나 마법부에 관한 내용도 적을까 했지만 그것은 크날에 대해 알아낸 점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적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단순히 손이 아팠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한 장을 꽉 채우진 못했지만 반 정도 채우고 나서 레오는 우측 상단에 기숙사와 자신의 이름 그리고 학년을 적어 제출했다.
"호오.. 자세히 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이구. 그렇게 부끄러웠으면 말을 하지 동생!"
당신을 한참동안 빤히 바라보던 주양이 곧 웃으며 이야기를 되받아쳤다. 역시 대화의 핑퐁이라는 것은 꽤 재미있는 일이었다. 청을 걸고 하는 내기만큼은 아니었지만, 대화 역시 즐길 가치가 있었다. 사람은 대화 없이는 살아가지 못할거라는 생각이 커졌다. 지금 당장이라도 말문이 막혀버린다면 답답해서 죽어버릴 것이었다.
이내 주양은 실없이 웃었다. 옳은 이야기다. 물건 의견이야 어쨌든 제 값을 치르고 사온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었다. 물론 납득하고 넘어가는 것보다는, 이렇다 할 태클이 떠오르지 않아 넘어가는 것에 가까웠다. 지금만큼은 자신의 상상력이 조금 얄미웠다. 조금 더 깊었더라면 분명 되도 않는 이유를 떠올려내고 태클을 걸 수 있었을텐데. 신기하게 자신은 시비를 걸 때에만 그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어럽쇼. 진짜? 진짜야? 내가 제대로 못 봐서 그러는데 말이야. 어디한번 다시 봐볼까나~!"
자신보다 높이. 잠깐만. 높이? 그 단어를 한번 더 곱씹어 말하던 주양의 입가에는 장난스러운 미소가 번져나갔다. 조금 무례할지도 모를 행동이었지만 그것을 걱정하고 행동을 가렸다면 주양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무례하다면 당신이 언제든지 이야기해주길 바라면서, 주양은 살짝 자세를 낮추는 듯 하다가 당신의 허리를 양 팔로 감싸고서 번쩍 안아올렸다.
"그러게! 확실히 나보다 크네! 언니야, 내 목소리는 제대로 잘 들려요~? 윗공기는 어때. 좀 상쾌하신가!"
안아든 상태로 당신을 올려다보며 주양이 사악하게 웃었다. 어째 동생같은 말투가 아니라 특유의 호탕함을 감추지 못할 말투였으나 개의치 않았다. 이것까지는 예상 못 했겠지 싶어서, 괜히 바로 내려주지 않고 조금 더 그러고 있다가 다시 내려주었다. 오래 그러고 있는다면 분명 불편할 것이다. 기숙사까지 걸어서 가야하는것도 있으니. 당신을 내려주면서, 가끔은 이런 장난도 쳐 줘야 삶이 조금 더 윤택해지며 친구간의 사이도 조금 더 돈독해지는게 아닐까 싶었다. 자신은 어딘가 어긋난 사람이었다. 허나 그것을 스스로 깨닫기에는 조금 무심했다. 윗동네 구경은 좀 어땠어? 하고 물어보는 모습은 더더욱 그래보였다.
"좋아! 역시 너라면 받아줄 줄 알았다니까~ 근데 괜찮겠어? 나 그렇게 가볍지는 않아서 금방 힘들어질지도 몰라?"
아무리 길의 끝까지 가는 것일 뿐이라고 해도, 당신에게는 조금 버거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도 자신이 조금 더 크고 무겁기도 할 테니까. 주양은 잠시 고민하다가 팔짱을 풀고 당신과 어깨동무를 했다.
"아무리 그래도 업히는건 내 양심이 많이 아야하니까, 그냥 적당히 만취해버린 못돼먹은 친구의 술주정에 어울려주는 역할이면 될 것 같아! 어때. 이 정도면 너도 괜찮지 않아?"
타인과의 접촉을 꺼리는 편은 아니라서 레오가 손을 내밀었을 때 그녀는 그다지 주저하지 않고 그 손을 잡았다. 먼저 내밀어주는데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기도 하고. 그녀의 손이 레오의 손을 잡고서 작게 두어번 흔든 다음 놓는다. 지극히 평범하고 평범한 악수였을 것이다.
"알았어요. 레오."
레오파르트, 레오. 야성적인 이름만큼이나 성격도 그래보인다. 좀전에 한 말로 유추하자면, 성격이 나오는 건 상대가 무례하게 굴었을 때 한정인가보다. 오해나 착각으로라도 그렇게 마주하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녀 역시 싸움은 좋아하지 않으니까.
"저주도 포함해서, 겠네요. 레오의 얼굴을 보고 그 때 달려들었던 사람이라는 걸 기억해냈거든요."
요컨데 같은 상황을 겪었다는 의미 되시겠다. 공격도 저주도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레오에게는 저주가 유독 기억에 남았던 모양이라고 생각만 했다. 뻔히 보이는 걸 캐묻는 건 못된 일일 뿐이고 그러는 건 그녀 답지도 않았다.
"그래요."
먼저 손을 내밀어줬던 것처럼, 레오가 잠깐 걸을 것을 권해오기에 그녀는 짧은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답했다. 어차피 걸으러 나온거 일행이 생긴다고 해서 큰 문제는 없다. 모처럼의 기회라는 생각까지 든다. 그녀가 살짝 자리를 옮겨 레오의 옆에 섰다. 그리고 걸음을 맞춰 걷기 시작하자, 머리에서 드문드문 떨어지는 물방울이 걸어온 길 위에 떨어져 자국을 남긴다. 그녀가 지나갔음을 표시하는 것처럼.
무기 교수님의 케이크를 사러가는 김에 몽고메리 부인의 초콜릿도 챙겨오기로 했다. 도움 요청을 따로 받진 못했지만 지난번에 받은 책갈피와, 아직 당과점에 수북히 쌓인 초콜릿을 생각하니 차마 무시하기 힘들었다. 민은 당과점 주인에게 케이크와 몽고메리 부인의 초콜릿을 요청했다.
머글 세계에서 유행하던 노래처럼 한 손에는 케이크를, 또 한 손에는 초콜릿을 들고 학원으로 돌아가는 민의 뒷모습이 흐느적거린다. 몽고메리 부인이든 무기 선생님이든 둘 다 좋아하셨으면 좋겠네, 따위의 속편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레오는 그 때 상황을 잠시 떠올렸다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고통받기 시작한 이후의 상황은 기억나지 않는다. 정말 너무 아파서, 죽을만큼 아파서 그 이후의 상황은 기억나지 않는다. '크루시오'라는 네 글자의 단어가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였으니까. 일전에 버니를 만났을 때도 충분히 덤벼들 수 있었지만 '크루시오'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레오는 꼬리를 말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 어쩔 수 없는 일.
" 내 친구 하나가 바닥에 그렇게 엎어지는 꼴을 보니까 가만히는 못 있겠더라고. "
서주양. 같은 기숙사의 톰과 제리와 같은 원수지간의 사이. 없으면 보고싶고 있으면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사이. 괴롭히는것도, 고통을 주는 것도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다고 레오는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녀석을 남이 그렇게 하고있는 꼴을 보고있자니 레오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달려들었고, 그래서 고통받았다. 앞뒤 상황 가리지 않고 뛰어든 것은 분명 잘못이다. 성격을 죽이거나, 더 침착해지는 법을 배우는 수 밖에.
" 보이는 게 다는 아니고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되겠지만 나는 어느정도 맞아떨어지거든~ "
무시당하는 것, 시비가 걸리는 건 절대 참지 않는다. 아니, 참지 못한다. 레오는 손을 들어 자기 왼쪽 눈에 길게 그어져 있는 흉터를 손가락을 세워 따라서 죽 그었다. 어렸을 때 나무에서 떨어져 생긴 상처. 이제는 레오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남아있는 이 녀석은 레오파르트 로아나 라는 사람을 인식시키기에는 충분한 장치였다.
"소원 한 가지를 빌 수 있다면? 뭐든 좋아." 황보 민: 글쎄요? 터무니 없는 것도 좋아요? 그러면 유토피아라도 만들어 달라 빌어볼게요. (...) 그건 너무 재미없나?
"자신을 살려 달라 애원하는 악인에게?" 황보 민: 죽음을 선고하는 건 제 몫이 아니잖아요. 살려줘야겠죠. 그게 용서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네게 너무 질투가 나." 황보 민: (...) 그 사실을 알려줘서 고마워요. 놀리는게 아니라, 진짜요. 질투나, 혐오나 그런 건 마음대로 안되는 감정이잖아요. 적어도 제게 말했다면 제가 돕길 바라신 거 아니에요? ...제게 바라시는게 있으니까 그런 말을 하신 거 아닌가요?
"천사를 만난다면?" 주단태: 자기야. 천사가 날 찾아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왜냐면 나는 천사를 만날 젓도로 착한 짓을 하지 않았거든~ 그래도 천사를 만나게 된다면...그러네~ 그 아이는 천국으로 갔는지 물어보고 싶어.
"네 성격 중 가장 특이한 점은?" 주단태: 달링! 내 입으로 내 성격 중 특이한 점을 말하라고 하면 어떡해~ 아이 참 부끄럽게! 감 선생님만큼의 인간찬가는 아니지만 나도 상대의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좋아. 물론 이상하리만치 거리감이 없다는 점도 내 장점이지! ...응? 장점이 아니라 특이한 점이 질문이였다구? 어느쪽이든 괜찮잖아 자기야~
"네 일기 한 장을 찢었어. 거기에 뭐라고 적혀 있을까?" 주단태:내 일기장을 왜 찢어? ....으응- 나 일기 안쓰는데. 그래서 굳이 뭐라고 적혀 있는지 모르겠는걸~
>>553 그럼그럼!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밍주가 만족했으니까 나도 만족~! 치즈덕 알게 된건 진짜 다행이야 그 무해함을 즐기면서 밍주한테도 써줄 수 있으니까! :D 고객님 오늘도 저희 쭈꿈항공을 이용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 에이. 내가 하는 말 정도는 다른 사람들이 해주는 이야기에 비하면 평범하지! :)
ㅋㅋㅋㅋㅋㅋㅋ 생각해보니까 그렇네..? 하지만 주양이는 내가 내기라면 내기인거야! 하고 넘길 애니까.. (??)
>>555 땃태 구몬도 잘 봤다구!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구몬 하나하나 전부 땃태 느낌이라 흐뭇한데, 첫번째거 엄청 심오해. 분명 희는 천국에서 예쁘게 잘 지낼테니까 우리 땃태 안심하기! (정작 쭈주는 지옥에 있다)(???) 땃태 일기장.. 훔쳐보고 싶다..! (?)
동일한 상황 아래, 타인이 기억하는 자신과 스스로가 기억하는 자신은 늘 괴리감 혹은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상황 속 강렬한 기억을 중심으로 재구성되는 경우가 허다하기에, 같은 상황을 얘기한다 해도 서로의 말에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녀는 그걸 알기 때문에 대화가 조금 엇나가도 그냥 둔다. 이어지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레오는 좋은 사람이네요."
친구가 당해서 앙갚음을 위해 달려들었다는 레오의 말을 듣고 그녀가 짧은 감상을 내놓았다. 그 날 그녀와 레오는 같은 행동을 했지만 그 목적이 달랐다. 그녀에겐 그런 깊은 뜻이나 칭찬 받을 만한 이념 따위 없었다. 그저, 그 상황이.
"아까 서로 얼굴을 보았을 때, 저도 레오가 성격이 거칠어보인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그렇지만 그건 보이는 사실일 뿐이지 단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선을 바닥으로 내린 채 담담한 목소리로 역시나 담담하게 말을 이어간다. 그 말투에 레오를 조롱하거나 비꼬는 의도는 일절 없었으며, 그저 있는 생각 그대로를 말할 뿐이었다. 늘 그렇듯이 말이다.
"레오가 말한대로 보이는게 다가 아니니까요. 아까 레오의 말을 듣지 않았어도, 전 이후에 레오가 누군가와 싸우는 걸 봤을 때 절대 레오가 먼저 시비를 틀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거에요."
이쯤에서 그녀의 고개가 살짝 옆을 향했다. 레오와 닮았지만 닮지 않은 금안이 레오를 올곧게 바라보며 말한다.
하늘이 적당히 높고 공기가 적당히 촉촉하고 바람이 적당히 가벼운 날이다. 그 바람결을 타고 대답하듯 레오는 흘러가는 듯이 답했다. 그런가? 하고 조금은 애매모호한 답변. 사람들은 깊게 관여를 하지 않으려 한다. 단편적인 것을 보기 좋아하고 깊게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레오가 많이 보이는 모습이라면 역시 싸우는 모습이니 그걸 본 사람들은 레오를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 싸움을 찾아다니고 쫓아다니는 사람, 주궁의 투견 정도로 생각한다.
" 무시당하는거, 시비걸리는거. 이 두 개는 절대 못 참으니까. 나도 아무나 붙잡고 싸우는 사람은 아니다? 싸움을 좋아하지도 않고. 그냥 피하지 않는것 뿐이지. "
별 소릴 다하네. 레오는 그렇게 덧붙이며 피식 웃었다. 레오는 앞을 걸어가며 뒷짐을 졌다. 담담한 목소리. 살짝 가라앉은 진정된 분위기를 주는 목소리라고 레오는 생각했다. 이 사람도 초면에 꽤나 살가운 편이라고 느꼈다. 엄청나게 살가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사람 나름대로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것이라고 느꼈다. 레오는 또 한 번 피식 하고 웃었다.
" 친절한지 어떤지는 모르겠어. 그게, 그렇잖아? 누구던 시비가 걸리거나 무시를 당하면 화가 나는것 뿐이고 나는 그것에 솔직할 뿐이고.. "
어쩌면 주궁이라 그런것일지도 모른다. 호전적인 학생들이 모이는 주궁이니 자연스레 그 분위기에 동화되어 이렇게 되어버린것일지도. 하여튼 적어도 이 학원에서 레오파르트에게 시비를 걸고 곱게 넘어간 사람은 없었다. 어찌되었든 달려들어 때리고보는 레오였으니까. 한 대를 때리려다가 두 대를 맞을 상황이 되더라도 레오는 달려들었다. 강하다고 싸움을 잘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이 끝나고, 주단태는 현궁의 기숙사로 향했다. 수업도 끝났겠다, 편하게 옷을 갈아입고 기숙사 주변이라도 어슬렁거릴 생각이였다. 본가에 있다면 자신의 조카랑 열심히 쎄쎄쎄라도 하면서-아니면 무등을 태우던가- 놀았을텐데.
쩝!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노리개를 달고 주단태는 현궁 주변을 걷기 시작했다. 여름의 더위는 단태에게큰 의미를 주지 못했다. 늘 언제나 낮은 체온은 도리어 여름을 견디기 쉽게 해준다. 그리고 여름이라도 추위를 안타는 것도 아니지만.
단태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며 샐쭉 눈을 가늘게 뜨고 손가락을 꼽아봤다. 보자... 며칠이나 남았지. 슬슬 나주에 편지를 보내야할 때가 됐나. 편지를 먼저 보내기 전에 알아서 보내줘야할 물품을 보내줬으면 좋겠는데. 서두에 뭐라고 써야할지 고민하는 것도 일이란 말이지. 주변에 산책하는 학생이 없어보여서, 단태는 루모스- 하고 평소 느물느물거리는 목소리가 아닌 조금 다른 억양으로 지팡이에 불을 밝혔다.
"다음에 몽고메리 부인 부탁 들어드리면서 우리 예쁜이 줄 간식이라도 좀 살까-"
샐쭉하니 가늘게 뜬 눈을 하늘에서 떼어내며 단태는 지팡이 끝을 밝힌 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낮이든 밤이든 가리지 않고 갑갑해보이는 테크웨어를 껴입은 채 간만에 즐기는 밤 산책. 낮과는 또 다른 느낌이라 좋았다. 앞이 어둑어둑해서 마법으로 앞을 밝히고 가야한다는 점은 아무래도 손 하나로 지팡이를 들고 있어야 해서 불편하기는 했지만. 어두운 밤길을 청과 함께 걸어간다면 좋았겠으나 아쉽게도 청은 이 시간이면 항상 새장 안에서 꾸벅꾸벅 졸기 마련이었다. 야행성이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조금 다른 쪽으로 생각을 돌려볼까. 수업 마지막에 봤던 사람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검은 옷에 커다란 안경을 쓴 그 사람. 자신에게 손을 흔들고 홀연히 사라졌던 그 모습. 대체 누구였을까. 주양 자신이 아는 모습은 아니었다. 학교 관계자라던가, 그 빌어먹을 직계의 놈이었다면 자신이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을텐데. 이래저래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현궁 옆에 내려앉은 은하수도 그렇고. 조금 이상한 일 투성이다.
"어라."
걷다 보니 어느새 다른 기숙사 근처였다. 이윽고, 저 너머에서 다른 지팡이 빛이 보였다. 자신 말고 다른 밤손님이 있을 줄이야. 어차피 학교 안이었으니까 사람이 없는 게 이상하다고는 하지만, 조금은 인적이 드문 시간에 다른 사람을 마주할줄은 몰랐다. 더군다나. 그 지팡이의 주인이 자신이 아는 사람일줄은 더더욱. 평범하게 인사를 건내려던 주양은 동작을 멈췄다. 아니다. 평범하게 등장해도 좋겠지만, 이왕이면 조금 세련된 등장을 선보이는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지팡이에 걸어둔 마법을 풀며, 슬쩍 모습을 감추고 크게 빙 돌아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당신의 뒤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러면서 주양은 잠깐 고민했다. 이대로 놀래킬까? 아니면. 눈만 살짝 가려볼까. 반응을 보기엔 전자만큼 맛깔난 게 없을테지만, 아뮤리 단짝이라고 한들 밤에 갑자기 그랬다가는 귀신으로 오해받을지도 모른다. 아니. 생각해보니 유령은 많으니까 익숙하지 않을까? 정정하겠다. 지금은 썩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얍. 누구게~?"
결국 주양이 선택한 것은 눈을 가리는 쪽이었다. 거리가 적당히 좁혀졌다 싶을 때, 얼른 다가가 두 손으로 당신의 눈을 슬쩍 가려버렸다. 돌아올 반응이 무엇일지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어느 쪽의 반응이 돌아오든 되받아칠 멘트도 미리 떠올리면서, 주양은 미리 자신을 보지 못하도록 손과 눈의 거리를 살짝 좁혔다. 너무 착 가져다댔다가 눈을 찔릴지도 모를 일이니. 단짝에 대한 사소한 배려였다.
"한번 알아맞춰봐~ 내가 누군지 모른다는 데에.. 아니다. 여기까지!"
실수. 하마터면 또 청을 걸뻔했다. 그랬다간 눈을 가린 의미가 없어져버린다. 목소리도 바꾸지 않고 이런 장난을 치는 시점에서 그 의미가 애시당초에 퇴색되어버린 건 신경쓰지 않는 듯 보였다.
잘 준비를 하고 왔어요. 이래놓고 또 새벽반이 되겠지만요..😊 지금은 기력이 없어서 독백은 쓰지 못하고..(아까 던진 4천자 원기옥에 쓰러졌어요) 한줄 떡밥이나 질문 정도를 받아볼까..하고 있어요. 이번엔 떡밥도 괜찮지롱, 같은 느낌으로요. 또 스불재를 자초하는 거죠..🙄
공포로 신념을 꺾는 것은 어렵지만 굽히는 것은 쉽다. 여기서 문제는 꺾은 것과 굽힌 것을 영영 구분 할 수 없게 된다는 점에 있다. 그게 공포의 패착이었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지만 돌아간 신념은 필연적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네, 아버지 말이 맞아요."
민은 더이상 반론하지 않았다. 질문하지도 않았다. 매를 맞는 일은 점차 줄어들었다. 외면과 회피가 이다지도 달콤한 것이었다. 한 번 거짓을 고하니 그 다음은 그보다 쉽게 거짓을 입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뚜렷하게 보이는 기분이었다. 민은 어딘가 결여된 사람처럼 굴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가족을 대하는 태도가 지독히도 건조했다. 업화같은 여름이 지나자 아집은 불타 사라지고 바싹마른 겨울 나무만큼이나 덧 없는 친절만이 남았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아버지는 지금 충분히 잘하고 계시잖아요."
민은 아버지에게 연민을 속삭였다. 과거의 일이야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굴었다. 그렇게 민의 아버지는 용서를 구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민은 아버지를 끝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민의 방식이었다.
새벽 갬성에 간단하게 독백~~ 딱히.... 뭐는 없구,,,, 민이 저런 성격이라는 느낌만 알아주면 좋겠당~!
>>588 4천자는 확실히 엄청났지..... 길이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고! 벨주 아주 대단해,,, 질문이랑 떡밥은.... 음음 너무 거대한 빙산을 보는 기분이라 뭐부터 물어봐야할지 애매하네
역시 타니아?가 먼저 떠오르네. 둘이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 힌트라두...? 나의 신도야, 이런식으로 말하는 걸 봐서는 타니아쪽에서 발렌타인을? 모시는 느낌인가 생각도 들더라고 카나리아를 보내줬다는 것도 그렇고...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준 기분이잖아 :3 만약... .전에 독백에서 풀었던 내용이라면 미안 ^.T
가족이랑 틀어진게 지금까지...현궁 아가들은 왜 가족이랑 조금씩 틀어져 있을까요..사람은 죽을 때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데 현궁 아가들..(잠시 모든 캐릭터를 봐요) ...저희 동화 아가들이 모두 그런 일을 겪는 것 같아서 행복하고 예쁘고 반짝반짝한 앞날을 응원하게 돼요.
음..돌려 말하라네요.
>>598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우리의 이 빌어먹을 굴레가 끊기기를 바라고 있다'..고 하셨답니다. 자세한 건 비밀이에요.😊
>>602 저야말로 사전 떡밥을 너무 적게 뿌려서 어려우시면 어쩌지..하고 걱정하곤 한답니다..😂 이영도 선생님께서도 묵직하게 날려주셨잖아요. 내가 읽기 편하고 이해가 잘 되면 잘 쓴게 아니라 내 머리의 참고서나 주석이 있기 때문은 아닌가 의심하라고..그래서 매일 주의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번에도 무궁화를 심었더니 대마가 자라버렸어요...🙄 앞으로는 더 세세한 떡밥을..!(?)
민이 질문! 만일 민이가 딱 한 번 누를 수 있는 버튼이 있어요. 이 버튼을 누르면 내 과거중 하나가 긍정적으로 변하게 되지만, 그게 어떤 과거가 될 지는 알 수 없답니다. 그렇다면 민이는 버튼을 누를까요?
오호.. 벨이랑 타니아 관계 나도 확실하게 이해했어! :) 나도 이런 큼직큼직한 떡밥에 대한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하는데. 아직 갈길이 멀고.. 규율에서 풀려났으니 결과적으로는 다행인 듯 하면서도 독백에서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보면 조금 슬픈걸. 타냐 앞으로는 꽃길만 걷자!
>>601 뿌듯하구먼 이거..! 고마워! 같이 재밌게 열심히 즐겨보자구~ :D 다갓이 돌려말하는 쪽을 지목했구나! 상상력을 총동원해볼까! :)
>>602 야호 100점 만점이다~! 기쁘다니 다행이야~ :D 비설이 없다시피 한건 주양이도 비슷비슷하니까! :) 밍주도 질문 받는구나. 이번에도 사소하한 질문 하나! 만약 아버지가 회초리 들었을 때 조금 유하게 타일렀다면 밍이는 아버지를 용서했을까?
저 은하수는 도통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네. 단태는 내려앉은 은하수를 주의깊게 보다가 저게 계속 안사라지면 직접 찾아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밤산책은 여러가지 생각들이 겹쳐서 떠오르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금지된 저주에 대한 생각이나, 그때 만났던 추종자들에 대한 것. 자신에 대한 것들 등등. 그렇게 돌고 돌던 생각은 현궁 근처의 은하수의 존재에서 끝맺어졌다. 루모스로 밝혀진 지팡이로 발 아래를 비추면서 걷던 주단태가 걸음을 멈췄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갑자기 가려진 시야때문에 걸음을 멈춘 것이였다. 아무리 소리에 민감하다고 하더라도 생각에 잠겨 있는 상황이다보니 갑자기 일어난 일에 반응하는 건 반박자, 아니 한박자 늦은 건 당연했다. 그 결과가 지금처럼 걸음을 멈춘 것으로 이어졌다. 참말로 놀랐네. 들려오는 목소리가 익숙하지 않았더라면 단태는 자신의 눈이 가려지는 순간 접근한 상대의 손을 낚아채서 바닥에 쓰러트리고 지팡이를 겨눴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팡이를 겨누지 않더라도 분명 방어를 위한 어떤 행동을 했을지도 모르고. 일단은-.
단태는 히죽- 입꼬리를 올리며 특유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지금 내 눈을 가린 깜찍하고 귀여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맞추라는 말이야? 자기야? 그러게~ 누구인지 도무지 모르겠는걸? 아! 잠시만 기다려봐. 지금 막 누구인지 알 것 같아!"
눈을 가린 손에 손을 얹으며 단태는 느물느물거리는 목소리로 재잘거릴 준비를 마쳤는지 히죽거리는 웃음이 조금 더 짙어졌다. 단태에게 이런 장난을 칠만한 사람은 몇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두와 친하고 모두에게 치대며 예쁘다, 귀엽다를 연발하는 주단태라고 하더라도 단짝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이 적은 편이라고 해야겠다.
"우리 자기, 오늘은 밤산책 나온거야? 주궁 학생대표가 밤에 나온 이유는 뭘까? 응? 혹시 날 만나려고?"
단태는 자신의 눈을 가린 손 위에 얹었던 자신의 손을 붙잡아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옆으로 걸어오도록 이끌려고 하며 등 뒤에 있는 반가운 얼굴을 향해 헤죽 웃어보였다.
>>606 그렇지만 이렇게 풀이해주는 시간도 있으니까 응응 :3 그래도 독백 올리면 될 수 있는 한 전부 읽고 있어! 모두의 독백 포함이얌 근데 어장 특성상 잡담 사이에 있으면 독백만 찾아보기 힘들고 그러니까 ;ㅁ; 이렇게 질문 받는 시간 너무 좋다는 말씀~~~ 아무튼 방금 설명으로 얼추 윤곽이 잡힌 느낌~ ^~^ 다음에 궁금한 점 있으면 물어볼게~!
민이는... 굳이 안 누르지 않을까. 민 본인이 자기 집안이 썩 행복한 집안은 아니라는 자각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라... 딱 일상적인 불행 느낌이 강하거든 ㅎㅎ 그리고 민은 자기 과거만의 문제가 아니라 순혈주의 사상이나 그 시대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607 디용??? 이거 이거..... 완전 엄청난 떡밥인데 ㅠㅠㅠ 흑흑 그럼 질문권은 여기다 쓰겠어.... 첼이 앞날이... 안 괜찮은 이유 아주 대략적인 느낌만 힌트 줄 생각 있어...??? 넘 부담스럽다! 스포다! 이럼 넘겨도 좋앙
굳이 누르지는 않는구나..민이의 생각이 참 깊은 것 같아요. 순혈주의는 몰라도 시대의 문제 < 이 부분도 그렇고, 독백이나 질문 진단에서 나오는 답을 보면 생각이 아주 깊어서 너른 바다를 보는 것 같아요. 우리 밍밍이 깊은 생각만큼이나 깊고 넓게 행복했음 좋겠어요..😊😘😘😍
>>609 물론이지! 사실 민은 아빠가 굳이 타이르지 않았어도 사과하면 용서해줄 거야 근데 계속 싸우기에는 지치고 실망이 커서 일부로 아무것도 아닌 척 넘어가버린거야... 여력만 있으면 계속 원망하고 부정했을 걸? 근데 너무 지쳐버려서 그냥 포기해버린 느낌... 아직도 왜 그렇게 까지 했어야했지?라는 생각을 많이 해
>>614 사실 순혈주의 좀 꺼려하는 것도 강요하는 쪽이 주로 순혈주의 집단이었으니까.... ㅋㅋㅋ 폭력을 먼저 휘두른 쪽도 그쪽이고 웅... 흑흑 아무튼 그렇게 말해주니까 넘 기쁜걸~~!! 민이는... 아마도 엔딩이 오면 행복할 것... ㅎㅎ >.0 성장하는 캐릭터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 아무튼 흑흑 깊고 넓게 행복하길 바라는 건 동화 학원 친구들 모두 포함된다구... 다들 행복해야해... 벨이두...
>>619 끄앙 단태주 힘내~ 충전해~ (뽀다다다담) 질문이 힘들면 난 tmi 뿌려주는 것도 대만족 한다... ㅎㅎ (은근한 눈빛)
위키에... 독백이랑 설정 정리해주면 아주 기뻐할 거야.... 왜냐하면 나 위키 구경하는 거 좋아해서 수정되면 틈틈히 살펴보거든... ㅎㅎ
>>626 ((이 버전인가)) 머글인 단태의 행적을 보여주면 일단 웃는다. 웃다가 눈물까지 고여서 낄낄낄거리다가 정색하고 하나씩 팩트로 후드릴걸 ((주의. 땃쥐는 펜하를 안본다))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단태:.oO(귤?) (((새벽에 귤 찾으러 나가는 사람들이 나주에서 발견되었다))) 못찾는다면 마법사 세계 말고 머글이 살고 있는 곳에 가서라도 사오라고 으름장 놓는다. 이래도 못찾으면 귤맛 사탕이나 귤맛 젤리라도 사오라고 한다......
차가운 손이 자신의 손 위에 얹어진다. 깜찍하고 귀여운. 역시 정체같은 건 일찌감치 들통나고야 말았구나.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나오는 수식어를 들으며 주양은 한바탕 경박하게 웃어대고야 말았다. 자신에게 그런 수식어들을 붙여가며 불러줄 사람은 전 세계를 통틀어봐도 당신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아무리 봐도 깜찍하고 귀여운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대신 끔찍하고 귓방망이를 쎄게 때려주고 싶은 쪽에 가깝지 싶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꽤 많을 것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짓궂음을 놓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아이, 아쉬워라. 다음에는 목소리를 조금 바꾸고 다시 도전해볼까 싶은걸?"
주궁 학생대표라는 말에 더더욱 숨길것도 없다 싶었다. 팔에 힘을 풀고 손에 이끌리게 하며 당신의 옆에 서서는 발랄하게 손을 살랑 흔들었다. 이런 사소한 장난으로 보는 반응도 꽤 재미있었다. 어느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기는 하지만, 이야기가 생각대로 착착 흘러가는 건 시원시원해서 좋았으니까. 한 줄기로 흘러내리는 폭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라. 그거까지는 말 안 했는데 벌써 눈치챈거야? 역시 우리 여보야는 눈치가 엄청 빠르다니까? 맞아. 심심하기도 하고, 여보야 얼굴도 좀 볼겸 나왔지! 겸사겸사 그때 일은 고마웠기도 하니까~"
그때 일이라면 역시 크루시오 이후의 이야기였다. 당신 역시도 손에 큰 상처를 입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병동까지 옮겨주었으니까. 그것도 한 사람도 아니고 둘씩이나. 조금은 후회되는 일이었는지, 살짝 웃음기가 가셨다. 학생 대표니까, 자신이 그래줬어야만 했는데. 정작 순간의 분노를 못 이겨내고 이성을 놓아버려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한 것은 추종자가 아니라 주양 자신이었다.
그래도 안 좋은 기억은 여기까지. 지금은 지금을 즐길 시간이다. 주양 자신이 스스럼 없이 여보라는 호칭으로 부를 만큼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의 시간인데, 마냥 혼자 꿍해있을순 없으니.
"여보야도 밤산책 즐기고 있었어? 보통 이런 시간에 바람쐬러 나오는 건 뭔가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거나, 고민거리가 있다거나 해서일것 같은데. 내가 그 시간을 방해한 건 아니지?"
그게 그제서야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기본적으로 탑재된 마인드도 마인드였고, 주양 특유의 흥이 주체되지 못하여 걱정한다거나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을 테지만. 자신도 루모스 마법을 지팡이에 걸어 한층 더 앞길을 밝히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현궁 근처는, 그 집채만한 게딱지가 숨어있는 은하수가 내려앉아있는 곳이기도 했으니까. 산책을 즐기다가 행여 길을 잘못들어 그 곳으로 간다면 지금의 이 휴식이 게딱지 대신 산산조각이 나버릴 것이다. 그 상황만큼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자, 자. 일단 걸으면서 이야기해볼까? 적당히 바람을 맞으려면 마냥 불어오길 기다리는 것보단 이렇게 걸어다니면서 스쳐가는 바람을 느끼는것도 좋으니까!"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소다는 어쩐지 머글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향이다 보니 마법사 사회에선 향신료처럼 매니아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저희도 타 나라의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을 못 먹는 사람이 있듯이 마법사들도 그런 인공감미료? 향?에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요?
>>645 뭔가 진짜 그럴것같은 느낌인걸? 그런 인공적인 향이 입에 맞는 마법사들도 있을거고 그 반대인 케이스도 있을 테니까. 뭔가 약간 민트초코 호불호 같은 느낌으로 말이지! :p 탄산음료는 확실히 이질적으로 확 다가올것 같아. 오너가 머글이라서 쉽사리 상상은 안 가지만 찬반 보니까 어떤 느낌인지 감이 잡혔어!
앗 그거 완전 공감.. 체리맛이라고 적힌거 먹어보면 이게 왜 체리맛인걸까 싶은게 꽤 있으니까. 치열한 찬반토론이 있을 것 같아! :)
체리맛..예전엔 납작하고 투명한 원형의 막대사탕으로 자주 먹어본 기억이 나요. 응애응애 벨주일 때 병원 가서 주사 맞으면 의사 선생님이 참 잘했어요 하고 주셨던..빨아먹다보면 막대가 종이라러 너덜너덜해지고 같이 먹게 되는 그 사탕이요. 정작 진짜 체리를 먹어본 이후로는 이 체리가 그 체리맛은 아니었던지라 유달리 진짜 체리만 접해봤을 것 같은 마법사에겐 호불호 끝판왕일 느낌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고...🙄
좀 생각해봤는데 단태가 이쁜이한테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게 애라서 뭘 알겠어? 라는 마인드라 그런거잖아? 이 이쁜이가 먼저 가버린 그 애나 혹은 그 애를 보내버린 쪽이랑 이어져있어서 미워하거나 멀리할만한데 아직 애가 뭘 알겠어 애가 뭔 죄라고..라는 마인드로 잘해주는게 아닐까 싶었다...!
>>649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보았듯이 쭈꾸미의 체력은 꼴랑 10밖에 되지 않지. 장렬하게 전사하는건 나란 말씀! 특공 앞에 녹아내린다아악! (쭈꾸미 처치)(+100)
>>650 그럼그럼! :) 정말 그럴것같다는 생각이 드는걸. 정작 오너가 머글이라 그런쪽에 대해서 너무 평범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을 뿐이고.. 앗 뭔지 알것같아. 이름은 뭔지 모르겠는데, 도넛같은 느낌으로 가운데 동그랗게 홈 패여있는 부분만 조금 얇았던 그거! ㅋㅋㅋㅋㅋㅋㅋ 맞아맞아. 확실히 호불호가 크게 갈릴것같은 느낌이 들어!
들리는 웃음소리에 단태는 마주 능청스럽게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소리는 자신의 추측이 맞아떨어졌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지만 확신범에 가까웠다. 자신에게 이런 장난을 칠만한 사람은 손에 꼽힐정도로 적었으니까. 누누히 말하지만 내 친구가 네 친구고, 네 친구도 내 친구라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었으니.
"우리 자기가 목소리를 바꾼다고 하더라도 내가 못 알아볼거라고 생각하는거야? 내 사랑이 그정도로 가벼워보이는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거면 내가 너무너무 슬픈데. 달링!"
옆으로 이끌려와서 손을 흔드는 모습에 단태는 헤죽 헤픈 웃음을 지으며, 재잘재잘 능청스럽게 말을 이어나가면서도 잡고 있는 손을 놓지 않고 만지작거리는 게 놓을 생각따위 없어보였다. 주양의 이어지는 말은 단태로 하여금 샐쭉- 눈을 가늘게 뜨고 지그시 응시하다가 느물느물한 목소리로 대답을 이어나갔다. 능글맞고 뻔뻔스러운 태도였다.
"역시 자기랑 나는 운명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붉은실로 이어져 있는 게 분명해~ 나도 우리 자기가 엄청 보고 싶었거든~"
운명이라는 둥, 붉은실이라는 둥 하는 소리가 자연스럽게도 입밖으로 나온다. 아주 뻔뻔하게도. 주단태는 주양이 말한 그때 일이라는 단어에 눈썹 한쪽을 치켜올리며 달링~ 하고 다시금 낯간지러운 호칭을 입밖에 내고 놓지 않고 잡고 있던 주양의 손을 놓으면서 능청스럽게 주양의 허리에 팔을 둘러서 감싸 안으려했다. 추종자를 만났던 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주양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지자 우리 허니버니! 이번에는 낯간지러운 호칭이 하나 더 추가됐다. "자기를 위해서라면 그정도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짐짓 진지한 말이였지만 능청스러운 태도와 느물한 목소리가 그 진지함따위 저 멀리 날려버렸다.
"내가 말 안했던가? 내가 오늘 밤산책의 목표는 혹시나 우리 자기와 마주칠까 싶어서라고? 저런... 내가 말을 안했구나? 내 표현이 이렇게 부족했다니!"
능청스러운 헤죽- 하는 웃음이 뒤를 이었다. 걸음을 옮기는 주양의 모습에 단태는 자연스럽게 주양을 감싸안았던 팔을 풀어내고 자신의 지팡이의 불빛의 밝기를 조금 줄이며 주양의 옆에 바짝 다가붙었다. 루모스 마법이 두개가 되면 밤산책도 밤산책이지만 다른 학생 대표들의 시선을 끌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발맞춰서 걷는 발소리가 꽤 경쾌했다.
>>672 첼주가 새벽마다 땃태를 터는 게 짜릿해서 그래ㅋㅋㅋㅋㅋㅋㅋㅋ 막 내가 이 독백 써야지 우히히! 했는데 다른쪽을 먼저 털어내게 만드는 게 아주 짜릿해 더 캐내줘(???) 앗 아냐 지금 당장 돌아와 자기.....지금 돌아오지 않으면 땃태의 미래는없다!!!!(단태:!?)
어... 지난번에 말했던 것처럼 사복은 어디에서나 단정하고 무난하게 입기 좋은 조합이 주인데, 약간 더 풀자면 캐주얼보다는 포멀에 더 가까워. 지금은 그래도 이것저것 바꿔 입으려는 정성이 있는데 아마 나중되면 옷 차려입기 귀찮아서 아예 정장만 입고 돌아다니는 거 아닐까 싶고🤔(엘롶: 그렇지만 옷 고르기 어려운걸요~ ^^)
"오호라, 역시 우리 여보는 대단하다니까! 설마 내가 여보야의 사랑이 그렇게 가벼울거라고 생각했겠어? 깜짝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했던 것 뿐이니까~ 마음 풀기~?"
잡혀져있는 손에 전달되는 차가운 느낌이 싫지 않았다. 이젠 너무나 익숙해진 탓도 없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 느낌에 흠칫흠칫 놀라곤 했으나 역시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빠르게 이런저런 것들에 적응하고 익숙해져서 지금 이 단계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런 쪽에 있어서는 전혀 무감각했던 자신이 단 6개월만에 이 모든것을 적응하게 될 줄은 몰랐건만. 새삼 당신이 대단해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그렇지? 텔레파시도 통한 것 같고! 아아. 내가 조금 더 빨리 내 새끼손가락에 묶인 붉은 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했는데, 인생 절반정도 손해봤다니까 진짜! 그치만 여보야랑 이렇게 있을 수 있으니까, 이젠 안심이야~"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나오는 그 말들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주워담은 뒤 한데 뭉쳐서 다시 되받아쳤다. 덕분에 주양은 하고싶은 말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쭉 늘어놓고 나서. 자신의 허리에 당신의 팔이 둘러지자 어머.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피하는 것 대신 당신과의 거리를 조금 더 좁히면서, 다시 그때 느꼈던 안도감을 느꼈다.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이 상황에서 단 하나 익숙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주양이 난생 처음 들어보는 허니버니라는 호칭이었다. 세상에. 이런건 대체 어디서 알아내고 떠올리는 건지. 그런 것도 당신이 발휘하는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그저 웃었다.
".. 응. 고마워. 다음에는 내가 여보를 위해서 그 이상의 일을 해내야겠는걸? 좋아. 한번 힘내보실까나!"
약간은 과장된 제스쳐를 취하며 옷 소매를 팔꿈치까지 간단히 걷어 올리고는 객쩍게 웃으면서 다시 내렸다. 역시 계속 가라앉아 잇는 건 어색해서, 분위기도 풀어버릴 겸 조금은 열혈적인 주부가 힘내는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영 아니지 싶었다. 그래도 그런 모습마저 잘 받아쳐줄 사람과 함께라는 사실이 다행이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은 주양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허영에서 나오는 웃음이 아닌 진실된 그 웃음을 한참동안 유지하다가 겨우 가라앉혔다. 역시, 살면서 친한 사람 여럿 만들어두면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자신의 수많은 신념 중 하나는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조금 더 분발해달라고 하기에는, 이미 우리 여보야는 나한테 과분할 만큼 충분한 사람이니까 패스할게! 지금이라도 이야기했으면 그걸로 된거지 뭐. 안 그래요, 여보?"
만약 패스하지 않고 그대로 밀어붙였다면 다음에는 제아무리 지금의 이 느낌에 익숙해진 주양조차도 당해내기 힘들 무언가가 돌아올 것만 같았다. 아니. 애시당초 그런 이야기를 꺼낸게 실책이었나?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미 말은 자신의 입을 떠난 뒤였다. 허니버니에서도 조금 많이 위험했는데. 더 낯간지러운 말이 돌아온다면 포커페이스고 뭐고간에 버티지 못하고 다시 예전처럼 쑥쓰러워하는 반응을 보이고 말 것이다.
"좋아. 우연히 마주친것도 인연이겠다~ 같이 이 밤거리를 누비면서 사랑을 속삭여보자구. 여.보.야?"
그러니까, 간단하게 풀자면 그냥 밤산책을 즐기며 열심히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뉘앙스의 말이었다. 따로 해설이 필요할 만큼 당신의 페이스에 지지 않으려 드는 게 보이는 이야기를 하고 나서. 걍쾌한 발소리에 맞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참. 여보야도 저기 은하수 가봤어? 있지. 저기 딥따 크고 딴딴한 게님이 산다? 내가 전에 마법으로 몇번 긁어봤는데, 꿈쩍도 안 하더라구. 여보야나 다른 현궁 사람들이나, 게한테 다치거나 당한 건 없지?"
그렇게 다시 잡담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현궁 옆에 내려앉았으니만큼, 이래저래 걱정되는 건 어쩔수 없었다. 가까운 위치라면 역시 그쪽 기숙사의 사람들과 더 충돌할 일이 많을테니까.
응응! 아무래도 엄청 늦은 새벽이니까 충분히 그럴수 있지. 편하게, 그리고 느긋하게, 괜찮은 시간대에 주면 된다~! :D 악 수면침.. 하지만 버텨냈다! 나를 잠들게 하려면 수면침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야!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아. 아까전에 그 드르륵 탁처럼 적재적소에 잘 써먹어야겠어! ()
아니아니 지금이라도 잠들지 않으면 내일 늦게 일어날거야 쭈주???:0 늦은 새벽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새벽이여서 뇌가 지금 파업을 선언한건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답레를 쓰면 아무말 대잔치가 될 것 같다는 것쯤은 알거같아 o<-< 어째서 수면침이 통하질 않는거지? 땃태로 뽀담쓰담이라도 해줘야하나((아무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괜찮아! 내일 일정은 조금 늦게 잡혀있으니까. 아무리 늦게 자도 수면시간이 오후 3시를 넘지 않기도 하고.. 그래도 슬슬 잘 시간이기는 하네! (아직 안 자겠다는 이야기다)() 아무말 대잔치! 확실히 나도 답레를 잇는다면 아무말 잔뜩 하게 될것같네 ㅋㅋㅋㅋㅋㅋ.. 그것은 나는 내가 자러간다고 한 시간에 퇴근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지! 헉 근데 땃태의 뽀담쓰담이라면.. 잠들 수 있어.. (???)
땃주 있는곳도 비가 내리는구나. 여기도 늦은 비가 내리고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 아까 전에나 내리지 진짜.. (미간짚) 사실 새벽이라 내 기억이 왜곡되어있을 가능성이 있어. 분명 3시 넘어서 잘 잤다고 하면서 갱신한 적이 있었을거야 아마도..? 좋아좋아. 땃태의 뽀담쓰담.. 잠들기 딱 좋아.. 오늘은 어제처럼 말없이 기절잠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야. 첼주도 땃주도 얼른얼른 푹 자라구. 다들 이따 봐! :)
자기는 서프라이즈를 해주지 않아도 매일매일 서프라이즈니까 괜찮아- 하고 단태는 주양의 손을 잡은 채로 느물느물한 목소리를 흐트러짐 없이 유지하고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역시나 뻔뻔스럽다. 느물하게 재잘재잘 떠드는 자신의 말에 하나하나 대답해주는 주양의 말에 히죽- 웃는다. 어딘지 만족스러워보이기도 하고, 즐거워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아마 후자의 느낌에 더 가까울 것이다.
"달링~ 자기야~ 여보~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구? 우리가 인생의 절반을 손해봤지만 지금부터라도 행복해질 수 있을테니까. 지금 달링이 한 말처럼! 나는 지금이라도 달링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너무 기쁜걸. 자기를 만난건 내게 있어서 최고의 축복이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대화의 향연을 누군가가 들었다면 대체 쟤들 무슨 사이인거야 하는 의문이 들 법도 하지만 주단태에게는 주양과 만날 때마다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의 일부분이였다. 즉, 늘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단태는 가까워진 주양에게 두른 팔에 힘을 주고 히죽 웃어보였다. 나름대로의 위로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어느쪽이든. 그저 웃는 모습에 단태또한 능청맞게 웃으면서 주양을 포옹하기에 이르렀다. "허니버니~" 지극히 자연스러운 포옹은 이렇게 해도 되는 정도의 사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자기는 아무것도 안하고 내옆에 딱 붙어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걸? 자기가 날 위해 힘내줘야하는 건 애정을 표현해주는 거면 돼~"
옷소매를 걷어올리며 하는 주양의 태도에 단태는 능글맞게 키득키득 웃음을 터트리고는 예의 특유의 느물한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그날의 일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라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지독한 일이었다. 하다못해 같은 기숙사의 후배조차, 자신을 걱정해서 기다렸을 정도였으니까. 고양이상 눈매가 샐쭉 가늘어졌다. 주양의 웃음이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단태는 그 웃음에 맞춰 헤죽- 웃어보였다. "오- 자기야. 나는 자기에게 부족한 사람이야. 우리 주양이야말로 나에게 과분한 사람이지." 그러니까 앞으로도 더 분발할게? 하고 단태는 이야기하며 찡끗 윙크를 했다. 주양의 걱정이 실제가 되어버렸다. 평소의 낯간지러운 호칭이 아닌 이름을 부른 것이다.
"밤에 속삭이는 사랑 이야기는 로맨틱하지~ 달링이 원한다면-."
능청맞게 가슴 위에 지팡이를 든 손을 올리고 다른 손은 주양에게 내민다. 마치 서양에서 여자에게 춤을 신청하는 남자의 자세와 흡사했다. 게다가 슬쩍 고개까지 숙였다가 눈만 치켜들어서 샐쭉- 웃어보이는 게 아주 뻔뻔하기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손을 잡지 않더라도 단태는 걸음을 걸으면서 고개를 비스듬히 움직여서 현궁 근처에 있는 은하수를 바라봤다. 저기에 게가 있다고? 보통 은하수에 게가 사나? 별자리의 실체화? 곧, 단태는 주양의 말에 느물하게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난 그말 처음 듣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저 게에게 당한 건 없어. 그~런데~ 설마 내 앞에서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거야? 허니버니?"
조용히 눈을 감고 부실에 앉아 있으면, 굳이 어딜 가지 않더라고 머릿속으로 많은게 그려진다. 살짝 몸을 뒤로 기울이면 허공의 몸을 눕힌 느낌이 들고, 앞으로 기울이면 세상을 굽어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이 그저 상상일 뿐이지만 의외로 기분 좋은 것이라, 오직 혼자 있을때만 느낄수 있는 그 감각에 그는 그저 조용히 미소를 지어보일 뿐이었다.
"모든 가능성은 내 안에 있나니...."
그가 조용히 미소를 지어보이며 손을 살짝 펴보인다. 마치 모든 것을 관망하는 듯한 그 태도는 어떻게 보면 오만하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왜소해보일 정도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절대로 남들을 낮게 보지 않고 오히려 많은 것들을 더 보려는 듯한 모습은 모든것으로부터 벗어난 듯한 느낌이었다.
"믿고 있는 길을 나아가라."
그가 천천히 손을 쥐고 다시 숨을 내쉰다. 들이쉬고 내쉬고, 받아내고 비워내고, 그것을 순환시키면서 안정을 찾고 수평을 갖춘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안이지만 조화를 이뤄내고 다시 무너트린다. 그렇게 세계는, 자신은 순환해간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진실, 세계는 그대로 나아가고 존재한다.
"앗."
잠시간이지만 무엇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마음속 평형이 무너져 내렸고, 짧은 외침과 동시에 그가 뒤로 고꾸라져 버린다. 우스꽝스럽게 넘어가버렸지만, 그는 나동그라진 상태 그대로 입을 열었다.
방송까지는 아주 약간의 시간이 있었다. 멍때리고 있는것보다는 어제 얻은 여러가지 자료를 얻을 겸 돌아다니는게 낫겠다고 생각한 것인지 그는 얘의 그 회색 슈트에 와인색 셔츠를 입고 천천히 라온으로 향하였다. 확실히 지금 상황에서 무언가를 얻기는 상황이 애매했다. 육하원칙중에서 중요한 한 요소중 하나인 언제, 즉 시간이 빠져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언제 일어났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심지어 시점이 꽤 되었다면 이미 원흉은 벌써 어디론가 이동했을 가능성도 높을것이다. 그야말로, 지금 리안이 하는 행동은 도쿄에서 야마다 상 찾기나 다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뭐 소득은 있겠지."
그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그러한 소문이 도는데도 라온 길거리는 활발하다 못해 활력이 넘쳐 흘러 보는 자신 조차도 웃음이 지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그 활력을 바라보며 아주 조용히, 그리고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이러면 그림자가 더 숨기 쉬운 법이거든."
많은 정황들은 이미 지나간 이야기들이라고 속삭인다. 하지만 그의 직감만이, 아직 진행중인 이야기라고 외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직감에 따라 퍼즐조각을 짜맞추는 것이 바로 자신의 역할이 아닐까.
입에 물고 있던 초코과자를 오독오독 삼키면서 천천히 윤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어제 있었던 학생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윤이 마법부 쪽에 연줄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절대로 그를 끼어들게 하고 싶진 않았다. 물론 자신의 직감은 그가 이번 사건의 가장 중요한 키 피스 중 하나라고 경호성을 외치고 있지만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있고, 최소한의 선은 지키고 싶은게 그의 마음이었으니까. 그는 예의 밝은 미소로 윤에 대한 미안함을 덮어버린뒤 히죽 웃어보였다.
"뭐 겸사겸사, 개인적인 호기심이라도 채우러 온거죠. 저번에 이렇고 저렇고 한 일이 있었잖아요."
그러고서 땀을 흘리는 그를 위해 주변 노점상에서 차가운 음료수를 한캔 사와 건네는걸 잊지 않는다. 동시에 백설에게 미안하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숙여보인뒤 장난스레 '미안하지만 네 주인 내가 좀 데려갈께?'라 덧붙인뒤 육포 한줄기를 건네는 능청까지 보인다.
"원래 밝은 곳이 더 숨기 쉬운 법이죠. 이렇게 밝으면 눈에 띄기 쉬우니까 숨지 않을거라고, 그런 맹점을 이용하지 않을까 해서요."
잠시간, 아주 잠시간, 찰나지간이지만..... 그의 눈이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물론 그 시선은 윤을 향한게 아닌, 퍼즐의 피스를 찾기위한 열정감 비슷한 것이리라.
오히려 그걸 말하는게 아니라는 듯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대답했다. 그러고서 음료수를 건네받는 그 모습에 살짝 웃음을 터트리고야 만다. 그래, 이제서야 오히려 자연스러워요. 윤 선배는 좀 평온하고 부드러운 모습이 어울려요.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표정을 풀고는 마저 입을 열었다.
"당연하죠, 저번에 그들이 이야기한걸 유추하자면 아마 숨어서 무언가를 노리는거겠죠, 학원의 무언가를. 그럼 당연히 몸을 숨기고 동향을 파악하기 쉬우며 사람이 모이는 곳, 그럼 라온이겠죠."
그렇게 대답하며 자신도 우유를 한 병 사다 입에 물고는 병나발을 불었다. 깔끔한 느낌에 목이 풀리는듯 그는 살짝 입맛을 다셨고, 이내 이어지는 이야기에 그는 살짝 침묵을 지켰다. 유혹이었다. 키 피스가 스스로 자처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 상처가 될 만한 이야기다. 그것을 스스로 말하기 전에, 아니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가기 전에 자신은 이를 건드리면 안된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쪽은 제 전문이니까요. 저번과 같은 일을 벌어지게 할 수는 없죠. 무슨일이 생긴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제 행방만 증언해주시면 됩니다."
"윤 형님의 지금 간판은 그거군요, 잘 어울려요. 응, 지금의 윤 형님은 빛나고 계시는군요."
믿는 사람의 미소였다. 그래, 지금이라면 말해줘도 될꺼야. 이 사람의 의지가 느껴진 시점부터, 어느정도는 말해줘도 이 사람이 스스로 대책을 마련해주겠지, 수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대국을 두는 기사의 심정 마냥 마음속으로부터 심호흡을 한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단순히 가십거리로 끝났으면 합니다만, 지금 저번에 이어서 아즈카반의 탈주자가 한명 더 있다더군요. 숨어든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다름아닌.... 이 곳, 라온."
그의 시선으로 라온이 들어온다. 수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가운데 일상속으로 스며든 그들의 모습은 아마 분명 일반인들과도 같은 모습이겠지, 하지만 진즉에 평온함은 무너졌고, 그것은 이미 눈치 채지 못한사이 우리 손에서 빼앗기기 일보직전이었다. 되찾으려면 지금뿐이겠지.
"소문의 진상이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뒤 쫒아봐야겠죠. 무모한건 맞지만, 역으로 말씀드리자면 유리할때 싸움을 거는건 비겁한 짓이거든요. 진짜 싸움이란....."
"부끄러워 하실 필요 없습니다. 남자라면, 어느순간부터 그러한 일이 오니까요. 형님은 지금, 그 간판에 걸맞는 행동을 하신겁니다. 허리를 피시지요."
그는 이전에 약속해주었다. 윤이 어떤 선택을 하던간에 받아들여주기로. 그가 흑을 행동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백이라 주장한다면, 그것은 백이 되는 것이라고, 리안은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하늘을 보았다. 윤이 말한대로였다. 아무리 사고뭉치들이 가득 모인 청궁이라지만 넘어서는 안될 선이 있는 법, 거기에 곧 방송까지 해야한다면 지금 돌아가는 게 맞으리라.
동화학원 중앙격되는 복도에 웬 기린궁 학생이 서있었다. 엄청난 거구의 위압적인 분위기때문인지 유독 눈에 띄었다. 그러고보니, 이곳에서 기린궁 학생들을 만났었지. 민은 소소한 헤프닝을 떠올리며 갈길 가려던 차였다. 갑자기 그 학생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민은 제가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봤나 뒤늦게 후회했다.
"거기, 너. 잿빛 머리에 불타는 눈을 하고 있군." "네?"
기린궁 학생은 가까이 보았을 때 더더욱 위압적이었다. 무기 선생님을 연상케하는 덩치에 앙 다문 입은 그보다 무서웠다. 민이 주춤 뒤로 물러서며 되물었다.
"저번에 기린궁 학생들을 도왔다고 들었다. 네가 아주 친절하다더군." "네?" "나를 도와라." "...녜?"
실수로 혀를 씹어버렸다. 민은 이 상황이 몹시 당황스럽고 무서워지던 차였다. 기린궁 학생은 그런 민을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흘겨보고는 제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통보에 가까운 말이었다.
"무기 선생님의 생일로 마법약을 만들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나는 지팡이가 없다. 네가 나를 위해 지팡이를 써주었으면 좋겠군."
아하, 무기 선생님의 생일 선물을 준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선생님을 위한다는데 거절할 수 있을리가. 민은 기꺼이 이 무뚝뚝하고 사교성 없는 친구를 돕기로 했다. 냄비를 가져오는 과정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친구는 상당히 엉뚱한 구석이 있었다. 처음에는 펠릭스 펠리시스(*만드는데 6개월이나 걸린다.)를 만들겠다는 말에 다른 마법약을 추천하느라 진땀을 뺐다. 성능이 별로인 건 싫다고 투덜거리긴 했지만 학생은 비교적 얌전히 민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결국 간단한 상처치료약인 머트랩 용액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이 학생이 정말로 마법약에 재능이 없다는 데에 있었다. 물론 배우지 않았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머트랩 용액을 만드는 대부분의 과정을 손봐준 민은 마법약을 완성하고 지팡이를 휘두를때즈음 아주 지쳐있었다. 흐물거리는 손으로 지팡이를 휘둘러준 민은 마법약을 곱게 포장해서 학생에게 건네주었다.
"다음에는... 선물을 사서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직접 만들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래..."
루인의 괴성이 방송부 부실 전체에 울려퍼진다. 저 귀여운 여자의 탈을 쓴 곰탱이를 보는 남자들의 반응은 심란함 그 자체, 분명히 생긴건 멀쩡하다 못해 이쁘기까지 한 그녀의 모습이지만 하는 행동은 완전이 반대의 모습이었다. 물론 외모보다는 그녀의 능력을 보고 뽑은거긴 하지만....
"진짜 부장의 사람 뽑는건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니들도 따지고 보면, 제 정상은 아니다." "전 정상입니다만." "차라리 건 사감님이 오리너구리보다 얌전하다 캐라. 그말을 누가 믿냐." "애시당초 여기 정상이 있냐."
그 말에 괴성을 지르던 루인마저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그랬다, 누구나 알고 있는 자명한 사실이지만, 이 방송부에는 멀쩡한 사람이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나마 정상인을 따지자면 리안과 케인이겠지만 이미 다른 사람들을 채용한 시점부터 그들도 제정상은 아니리라.
"그럼 이제 시작할까요." "그러자, 시작하면 쟤도 정상으로 돌아올껄." "생각해보니 쟤도 부장과 같은 과였죠." "오게에에엑..... 부장보단 제가 정상이죠!"
최소한 지금만큼은 아니야, 라는 무언의 시선들이 루인을 향한다. 지금 만큼은 투정도 안부리고 당당하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부장이, 저기서 오게에엑 거리는 여자아이보다는 훨씬 더 정상적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물론 정신병자들의 우두머리인 만큼 그도 정상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제일 나은건 사실이리라. 그렇게 잠시간의 소동이 끝나고, 순식간에 착석한 그들은 어느때와 마찬가지로 라이브 온 신호에 맞춰 방송을 시작하였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하루를 마무리하는 방송, 동화 옥음의 MC대작입니다! 은 오늘은 저희가 점심을 다 먹고 느지막한 시간에 찾아뵙게 되네요!!"
순식간에 멘트를 진행하는 와중, 오게에에엑 거리던 루인이 스스로의 행색을 바로하고 천천히 옷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누가 그러던가, 여자는 전부 여우들이라고, 어느새 생글생글 웃으면서 방송준비를 끝마친 루인을 보며, 남자들은 혀를 차며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어제의 K군의 감동적인 사연에 이어서 다음 타자는 저희 방송부의 홍일점이자, 코디 담당인 R양입니다!!! 재색겸비의 여인이자, 저희 무대 뒷부분의 일등공신!!!! 입학식때도 그녀가 힘을 쓰지 않았다면 훌륭한 무대가 안나왔을겁니다!! 자 그럼! 우리 R양!!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현재 청궁 재학 2학년생인 R입니다!!! 다들 반가워요!" "R양, 원래 무대 울렁증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많은 분들의 도움덕분에 많이 나아졌어요! 지금은 저번 방송부 무대에 서서도 당당히 있었잖아요?"
그 누구가 누구인지는 말 안해도 알것이다.
"크으 자신의 약점을 극복한 여인!! 멋집니다! 자 그럼, 오늘 고른 선물은?!" "에.... 제가 고른 물건은..... 장미꽃 머리핀이네요! 잘 어울리나요?"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그 순간, 콰직-소리와 함께 케인이 게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평소 그녀가 신고다니는 하이힐의 힐 부분이 그대로 케인의 발등에 직격해버린 것이리라. 서둘러 응급조치를 하는 잭을 보며 한숨을 내뱉은 리안은 서둘러 수습을 하기 시작했다.
"네.... 정말 잘 어울리네요!"
아니, 정정한다. 살기위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
"정말로요? 대작님의 말이니 믿을께요!"
말은 그리했지만 루인은 굳이 따지자면 미녀였다. 2학년이 아니라 그보다 더 나이가 들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성숙미와 더불어 아직 피지않은 꽃봉오리같은 풋풋함이 올라오는 외모는 묘한 밸런스를 자아내고 있고, 더불어서 외모는 확실히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내부가 남자보다 더한 짐승이라 문제지.
"그럼 자 R양?코멘트 읽어주시고 답변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보자....
'안녕하세요! R언니! 전 지금 백궁 2학년에 재학중인 여학생입니다! 어 음..... 아무래도 친구들에게 놀림 받을거 같아서, 이름은 노코멘트!!' "
남자-남자에 이어 이번엔 여자-여자라는 의외의 조합이라는 것일까, 그들은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짜증을 팍팍내는 그녀를 팝콘 한사바리 가져다 두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 ' 사실 R양을 무대에서 처음 본 건, 저번 1학년들 입학식때 그 무대 위였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여자도 저렇게 멋있을 수 있구나 라고 생각했답니다. 사실 제가 지금 R 언니라고 부르는 이유도, 저랑 같은 학년이란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멋짐에 반해서라고 해야 할까요?'
어머나.... 사연의 주인공 분도 어디까지나 가능한 이야기인걸요?
'집안에서 항상 억눌리고 하다보니까 솔직하게 무언가를 할줄 몰랐던 저에게 있어서, R 언니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어요! 그걸 보고 저 또한 저만의 길을 가야할 거 같다고, 이번 학년 끝나고 집에 돌아갈 일이 있다면 당당하게 부모님에게 말씀드릴 생각입니다. 저에게 그러한 계기를 주고 용기를 준 R 언니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정열의 장미꽃이 새겨진 머리핀을 선물합니다!' " "오!! 동급생의 편지입니다!! R양은 과연 어떤 반응을?!"
다들 실망의 눈초리다. 왜 죄다 가챠 박스가 대 성공인거지? 이왕이면 '우호옷!! 루인쟝 다이스키!!' 이런 내용이 나와야 재미있을텐데라고....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루인은 숨을 몰아쉰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음, 솔직히 당황스러워요. 이런 편지를 받는거 자체가 상당히 처음이라서요. 사실 저희 집안이 워낙 자유분방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음..... 네, 죄송해요. 뭔가 조언을 해드리는건 어렵네요. 하지만 말이에요. 지금 이미 결심을 하시고 발을 땅에 딛으셨잖아요? 지금의 신청자 분께서는 이미 많은 것을 움켜쥐신 거에요!! 꿀릴거 없어요!! 자신이 믿는 길이라면 그 길을 따라 올라가세요!! 결말이 어떻든 간에 손에 쥐고 날아오르는건..... 신청자 분이시니까요!! 선물 감사합니다!!" "네!! 여성 답지 않게 박력 넘치는 R양의 답변, 정말 잘 들었습니다!! 이걸로 저희 선물 소개 방송 2일차는 끝!! 오늘 저녘은 저, MC 대작의 선물 소개가 있을 예정입니다!! 어제 못한 방송까지 모두 Heart!! Burning!!그럼!! 대바이!!"
그렇게 방송이 끝나고, 그들이 각자의 휴식을 갖기위해 물러나는 순간, 리안이 등받이에 등을 파묻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마 어제 수업때 있었던 일을 복기하고 있는 것이리라.
"붉은 별이 겹쳐지는 흉성의 기, 그리고.... 어째서 칼 교수님은 그 말을 듣고 그냥 조용히 넘어간것일까...."
그의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바둑판이 그려진다. 자신이라면 다음 수는 어떻게 둘것인가, 하지만 그는 천재가 아닌 노력하는 범재였다. 고민만이 깊어져가는 가운데 저녘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답하며 윤의 말에 답한다. 실제로도 그리했다. 언제까지 달고 있을수 있는 간판도 아닌데 거기에 집착하고, 또 그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해 파멸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렇게 보면, 최소한 윤은 자신의 간판에 어울리게 행동할 줄 아는 남자였다. 그러면서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윤의 푸념에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가 천천히 멈춰서서 그의 말에 답변했다.
"그런건 걱정할 필요 없어요. 형님은 형님, 형님 어머니는 형님 어머니니까요. 어디에서 누구에게 태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어요. 지금 형님이나 저나 땅에 발을 딛고 잘 살아가고 있잖아요."
그렇게 답하면서 천천히 걸음을 재차 옮기고는 천천히 입에 지퍼를 잠그고, 자물쇠를 채우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는 천천히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 형님은 그런 사람이야. 오히려 형님은....
"뭐 그래도.... 차라리 형님이 에스카마리 가문에서 태어나셨으면...."
훨씬 더 좋은 모습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그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어쩌면 자신과도 같은 천방지축이 되지 않았을까, 전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런 실없는 상상을 하며, 그는 가볍게 입을 열어 보였다.
"아, 이번에 천문학 수업을 들었습니다, 만은 거기서 들은 정보는 아닙니다. 말씀드렸잖아요? 제 귀는 현궁이랑 기린궁 빼고 다 달려 있어요."
그러고 보니 그의 부원들은 각각 청궁, 주궁, 백궁에 포진되어 있었다. 그는 일부러 9할의 진실에 1할의 거짓말을 흘림으로서 윤에게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했다.
흥건했다. 눅눅하게 습기를 머금고 있는 옷이 무거워서 절로 한숨이 토해내졌다. 처음 맡아보는 철의 냄새가 후각을 찌르다못해 베어내는 것처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피냄새에 후각이 마비될 것 같다. 습기를 머금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지팡이 하나는 부러져 있었다. 바닥이 축축해서 발바닥에 붙어서 떨어지는 소리가 쩌억-, 쩍-, 울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신발이라도 신고 올걸. 주문으로는 당신들을 이길 여력이 없었다. 단신으로는 더욱 이길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몇달을 준비하고 준비하다가 저질렀다. 당신들을 죽일 준비를.
"왜, 그러니까 왜 그렇게 반대하셨어요."
내가 결혼하고 싶다고 데려온 사람을 왜 반대하셨어요. 그가 순혈이 아니여서 반대하셨나요. 아니면 당신이 말했던 고루한 순혈가문의 아집이 반대하게 만들었나요. 당신들이 반대만 안했다면 이러지 않았을텐데요. 안다. 이건 그냥 핑계일 뿐이다. 나는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당신들을 죽였을 것이다. 방 한쪽 구석에서 헛구역질을 하고 있는 이의 뒤로 걸어가서 웅크리고 있는 그 등을 붙잡아채서 뒤로 밀었다. 피라는 습기가 메워진 공기에 눈이 매웠다. 나가떨어진 이의 숨죽인 울음소리가 울리자 골이 울렸다. 네가 지금 눈에 뵈는 게 없나보구나. 피가 잔뜩 묻어 있는 팬던트가 달린 목걸이를 꽈악- 움켜쥐고 그에게 낮게 씹어뱉었다. 날이 밝기 전에 치울 생각이나 해. 쏘아보는 눈빛에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가는 뒷모습에서 혀를 차며 시선을 돌렸을 때, 빠끔 열려있는 문틈에서 한쌍의 눈과 마주치고 말았다. 빠싹 마른 앙상한 손에 입이 막힌 채, 이쪽을 바라보는 한쌍의 눈동자에 식은땀조차 식어버리는 기분을 느꼈다. 그 한쌍의 눈동자가 데굴 굴러서 방의 한쪽 구석에 놓여있는 피에 젖은 하늘색 머리카락에 닿았을 때 돌아가버렸던 정신이 다시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우리네 가문에 전해지는 역사서 속, 부정적인 기록이 떠올랐다. 아, 어머니. 당신이 틀렸어요. 눈물도 맺히지 않은 건조한 눈동자가 다시 데굴 움직여서 내게 닿았다. 아버지, 당신도 틀렸어요. 당신들이 생각한 건 틀렸어요. 그 기록은 전설이 아니였어요.
네가 10살이 되는 해였다. 그리고 부모님의 장례와 채 피어나지 못한 아이의 장례가 같이 치뤄진 날이였다.
부모를 잡아먹은 것. 동생을 잡아먹은 것. 너는 지옥 불구덩이에 떨어져 고통받을 것이야. 다급하게 대청마루를 가로 질러 걸으며 단율은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마법사들의 움직이는 초상화는 이래서 싫어. 이건 무슨 지독한 악취미인지! 아니면 유난히 우리 가문 초상화들만 저렇게 악담을 퍼붓는건가? 이리 머리를 세공한 팬던트가 목에 걸려서 흔들리고 있었다. "가주?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십니까?" 급하게 걷는 발을 붙잡는 소리에 귀를 틀어막았던 손을 내리며 단율은 말을 건 식솔의 잘 다려진 한복을 움켜쥐고 물음을 던졌다. "채인이 어디있나." 단율의 질문에 말을 하려던 식솔의 손이 뒤를 가리켰다.
"저기 계시네요. 소가주께서 데리고 계셨나봅니다." "엄-마!"
네가 그곳에 있었다. 조카를 사랑해 마지 않는 나이 어린 이모의 얼굴을 하고 품에 안겨서 꺄르륵 웃으며 손을 흔드는 딸을 내려주는 네가 그곳에 있었다. 그 날과 똑같은 한쌍의 눈동자가 다정함을 담고, 네가 그곳에 있었다. 내게 안겨오는 아이를 보호라도 하듯 꽉 끌어안고 나는 너를 바라봤다. 네 조카를 보던 눈동자가 그날처럼 건조했다. 샐쭉- 가늘게 뜬 그 웃음기 없는 건조한 붉은색 눈동자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족놀이라고.
아이를 안으며 나는 고개를 떨어트렸다. 결국 한명은 나가떨어져야만 끝나는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가족놀이. 내가 먼저 끊어버린 가족이라는 이름. 나는 연정을 위해 가족을 끊어내버렸다
" 친절함이라.. 신기하네. 살면서 내가 그렇다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거든. 뭔가 신기한 기분이야. "
당연한 일이다. 대신 싸워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친절하구나- 라는 말은 자주 듣지 못했다. 레오는 자신이 한 모든 행동은 성격에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잘 참지 못하는 그런 성격. 감정을 숨기는 것에 익숙치 않았기에 있는 그대로를 전부 표출했고 그러다보니 자신에게는 이런 이미지가 씌워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이미지에 불만을 가져본 적도 없다. 어찌되었든 레오는 '나'라는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좋아할 만큼 자기애가 높은 사람이었으니까.
" 응. "
다르다. 라는 말에 레오는 짧게 대답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한 반응을 이끌어내려고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니었으니까. 완벽한 대척점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보폭이 조금 길어졌다. 잠시 침묵이 앉았고 레오는 걷는동안 속으로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다가 툭 하고 지나가는 말처럼 한 마디를 뱉었다.
" 좋은 녀석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너는 나쁜 사람은 아닌것 같네. "
레오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조금 위를 바라보았다. 펠리체의 얼굴이 보이고 레오는 이히히, 하고 웃으며 눈꼬리를 곱게 휘어접었다. 친구로 삼아도 괜찮을 사람일지 아닐지에 대한 판단이 어느정도 끝나가고 있었다. 확실히, 좋은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좀 컸지, 그치?” 역시나 눈높이는 변하지 않았는데 참으로 뻔뻔스러운 대응이다. 주양이 장단을 맞춰주니 표정까지 어딘가 거만해진다. 대체 뭘 믿고 이러는지 모를 노릇이다. 주양이 자세를 낮춰준다. 이게 휘영의 믿는 구석인가? 아니면 주양이 휘영을 들어올린 것? …깜짝 놀란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그런 건 아닌 듯하다. 저도 모르게 주양의 어깨를 잡고 눈을 깜빡이던 휘영이 곧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기분 좋게 떠들어댄다.
“와아, 윗공기 엄청 맑네!”
이런 걸 혼자만 누리고 있었다니 치사하다는 소리 같은 걸 중얼거린 휘영의 발이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아주 어릴 때 이후로는 누가 자길 들어 안아준 적이 없는데. 오랜만에 공중에 뜬 느낌은… 상쾌하다? 고작 그만큼 올라갔다고 공기의 질이 바뀔 리 없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느껴졌다. 어릴 적 좋은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눈을 가늘게 뜨고 곰곰이 생각하던 휘영이 흥미로운 제안에 금세 시선을 옮겼다. 무언가 생각하려 한 적 없다는 듯 장난기만 덕지덕지 묻은 눈이다. “아주 양심적이야.” 만족스럽게 말한 휘영이 가볍게 박수쳤다.
“좋아, 부축하는 친구 역할이란 말이지….”
제 어깨에 걸쳐진 주양의 팔을 단단히 잡고 정말로 부축하는 것처럼 천천히, 조금 절뚝대며 걸었다.
“어쩐지 과음 하더니만. 무슨 일 있는 거야? 혼자 걸을 수 있어?”
물어본 게 의미 없게 부축은 이어진다. 심지어 엄청 열심이다. 장난스러운 웃음이 걸린 표정만 아니라면 정말 친구를 걱정하는 것처럼 보일 법한 상황이었다. 물론 여기에 진짜로 취한 사람은 없으니 가짜 걱정이었지만 말이다.
엘로프 아델횔드가 꼽기로, 수업이 없는 날에도 일상을 얼마든지 분주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은 학원생활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학원 부지는 눈 닿는(관용적인 의미에서) 모든 곳이 혈기에 미친 십대 학생들로 가득한 장소다. 그러니 거창하게 노력할 것도 없이, 주변에 귀를 기울이기만 해도 어디에서나 소소한 사건사고나 떠돌아 한가로울 틈이 없다. 시간이 영영 흐르지 않을 것만 같은 울적한 침묵, 몇 달을 내리 이어지는 지겨운 밤, 상대할 사람 하나 없는 따분한 시간…… 따위와 비교하자면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차라리 건설적이니. 방 안에서 창문만 열어두어도 한만스레 시간을 죽이기에는 적격이었다. 때마침 멀지 않은 근처로부터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눈덩이가 단단한 무언가에 부딪쳐 바스러지는 소리. 어디선가 학생 여럿이 눈싸움이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서로 눈밭에서 엎치락뒤치락하다 이윽고 비명에 가까운 웃음을 크게 내질렀다. …아, 이건 좀 시끄러운데. 그렇다 해서 그들을 쫓아내고 싶지는 않았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아직 어린 학생들인 것 같기도 했고. 환기도 충분히 했으니 슬슬 창을 닫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아이들의 방소 아닌 다른 소리가 섞여들었다.
한순간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멈칫하자 곧바로 라쉬가 소리를 길게 빼며 기묘한 높이로 끊어 울었다. 그 짐작 가는 의미 전달에 그가 허공 한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부엉이?"
그러자 답하듯 새가 곁에서 낮게 울었다. 아, 그랬지. 이즈음이면 슬슬 편지 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손을 내밀자 가벼운 무게의 상자가 올려졌다. 안에 든 물건들은 짧은 편지와, 무엇인지 모를 덥수룩한 것. 손을 대보니 손 안에 감도는 형태가 어딘가 익숙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은은한 향기, 싱그러운 식물의 감촉은…… 틀림없이 가장 찬란한 계절의 선물이다. 미드솜마르의 화환. 그러고보니 올해 하지 축제가 어제부터 오늘까지라 했던가. 맥락은 이해하겠으나 편지에 동봉되기엔 뜬금없는 물건이라, 그는 우선 상자에 함께 담긴 편지를 개봉했다.
[부고가 없으니까 잘 지내고 있는 거겠지. 낮에 비가 좀 오긴 했지만 햇살이 참 좋더라. 축제를 기념하며, 타지에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네게 만개한 여름의 축복을 보낸다. 꽃은 따로 빼두고 잘 말려서 보관해둬. ─6/25.
추신. 챙겨주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생일도 잊고 지내지는 마. 이번에도 딸기 케이크 보내주려다 지겨울까봐 취소했다. 부엉이가 시간을 얼마나 잘 맞출지는 모르겠지만…… 이르게 도착한다면 못 읽은 척 편지 덮었다가 당일에 다시 읽고, 늦게 도착한다면 용서해줘. 생일 축하해. 선물은… 미안, 돈 없어서 화환으로 때운 거 맞음. 그래도 그거 내가 만든 수제다?]
어쩐지 본문보다 추신이 더 길다. 시작은 짧게 쓰려 했겠지만 점점 말이 덧붙어서 길어졌겠지. 황당하지만 우스운 심정에 그가 픽 웃음을 흘렸다. 편지를 쓴 말투부터 내용,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건성인 듯하지만 그것이 불쾌하지는 않았다. 마디 두터운 손가락이 비어 있는 편지의 아래쪽 면을 훑었다. 자신을 밝히는 말이 쓰여 있어야 했을 자리. 그는 무명으로 감춰둔 발신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로비사.
"…내가 이래서 너를 좋아한다니까."
언제나 그렇지 않은 척 굴어도 로비사는 그에게 다정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그 노력에서 간절함이 읽힐 정도로. 저 먼 북반구 끝자락에서부터 이곳까지 날아오려면 비행이 꽤 험난할 터인데도 생화로 엮은 장식물은 절화 당시의 생기를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형태가 온전한 꽃잎과 시들지 않은 향이 그것을 여실히 증명했다. 필시 마법적인 보존을 거친 것이리라. 화환은 익숙지 않은 누군가의 손에 만들어진 듯 얼기설기 엉킨 엉성한 모양을 하고 있고, 크기를 잘못 재었는지 사람의 머리에 쓰기에는 둘레가 다소 작았지만 그 서투름이 오히려 진실되어 기꺼웠다. 그는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꽃향기에 제 곁에서 남몰래 코를 킁킁거리던 라쉬의 머리를 긁어주었다.
"누나가 준 선물이야, 향기 좋지?"
호기심 가득한 라쉬의 길쭉한 주둥이 앞에 꽃다발이 내밀어진다. 처음에는 냄새를 맡게 해주는 것처럼 기다리다가, 그가 곧이어 자연스럽게 개의 목에 화환을 걸어주었다. 그만은 비록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알록달록 다채로운 장식과 개의 흰 털은 제법 깔끔하게 잘 어우러졌다. 졸지에 눈 뜬 채 코를 베인 개는 한순간 어안이 벙벙했으나 별달리 기분이 나쁜 눈치는 아니었다. 라쉬가 고개를 갸웃하며 꼬리를 살살 흔들었다. 귀 주변을 간질이는 잎이 간지러운지 몇 번쯤 머리를 털었지만 라쉬 역시 아는 이름이 나오니 반가운 듯했다.
편지는 결국 발신자가 걱정한대로 이르게 도착해버리고 말았다. 배달원이 예상한 것 이상으로 성실했던 탓이다. 빠르게 날아오느라 수고가 많았을 부엉이에게 먹을 것이라도 내놓아야 인지상정이겠지만 안타깝게도 건실한 새는 물건을 전해주자마자 쉴 틈도 없이 날아가버린지 오래였다. 그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다 읽어버린 편지를 책상 위에 엎어두었다. 부탁한대로 아직은 생일이 아니니 못 읽은 척 해주자.
한눈이 팔렸던 사이 바깥에서 뛰놀던 학생들은 사라졌다. 사위는 다시 잔잔한 고요에 잠겼다. 잠잠하지만 적막하지만은 않은, 촌설의 아늑한 침묵이다. 다시금 방 안에 평온이 감돌 무렵, 별안간 그가 기습적으로 라쉬의 이마에 머리를 부볐다. 고개를 들고 검은 머리칼에 하얀 털 몇 가닥이 숭숭 붙은 채로 짓는 웃음이 마냥 밝았다.
레오의 행동을 친절함이라 표현하는 것은 올바른 표현이 아닐거다. 제3자가 듣는다면 분명, 그건 아니라고 반박할 것이다. 사실은 그렇겠지만 그녀에게는 그것도 친절함의 일종으로 보였다. 다른 이득이나 손해를 따지지 않고 그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반응해 타인을 돕는 것. 그 날 그 자리에서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했던 그녀와 비교해보자면 너무나 친절하게 보였다. 친절하고 상냥해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해버리고 싶을 만큼.
"지금 들었으니 앞으로 들을 일이 더 생길 수도 있을거에요.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라니까요."
그 말 역시 이럴 때 쓰는게 아닌 거 같지만 담담한 말투가 농담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한다. 그도 그럴게 그녀는 여태 빈말, 거짓말은 하지 않았으니까. 입을 다문 적은 있어도 하는 말에 거짓된 감정은 없었다. 거짓이 아닐 뿐, 일지도 모르지만.
얼마간은 서로 아무 말 없이 조용했던 듯 하다. 두 사람의 발소리만 미미하게 번갈아 울렸다. 늦은 저녁, 곧 밤이 되는 시간. 바깥에 사람은 거의 없다. 그만큼 조용하고 적막했기에 툭 하고 내뱉는 말도 잘 들릴 수 밖에 없었다.
"......"
나쁜 사람은 아닌거 같다. 저를 보며 그렇게 말한 레오를 보는 눈에 금빛이 유난히 선명하다. 눈을 곱게 휘어 웃는 레오의 얼굴을 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심이라는 유리판에 덮인 은판은 곧 그녀의 얼굴이다. 그 얼굴에 조용히,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위선을 행한 적은 있지만, 나쁜 짓을 한 적은 없는걸요. 레오의 순수함에 비하면 저는 글러먹은 인간이에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에 그녀는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한점 부끄럼 없이 그저 솔직하게.
사람으로 북적이는 라온 거리, 굼뜨지만 경쾌한 걸음으로 거리를 가로지르는 여성이 있었다. 행선지가 이미 정해져 있는지 머뭇거림은 없어보였다. 분주하던 걸음이 멈춘 것은 월식 주막 앞에서였다. 민은 과장된 몸짓으로 주막의 문을 열고 밤색 두루마기 코트 -퓨전 한복으로 추정된다.-벗으려던 차였다.
"이런."
탄식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끔 코트를 추스려야만했다. 월식 주막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듯 해서 이미 남은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민은 난처한 표정으로 기다리겠노라 전했다. 투덜거리며 거리에 다시 나온다. 운이 좋지 않아 자신이 처음 순번인듯 싶었다. 민은 팔짱을 끼고, 주막 앞에 자리잡았다. 웃기에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팔짱을 끼고 우뚝 서있는 민은 오래된 고목처럼 생기 없고 불길해보였다.
민이 뼈가 툭 불거진 손으로 제 팔을 툭툭 치고있었다. 할 일이 없으니 거리의 사람들을 관찰하게 되었다. 민의 얼굴에 노골적인 권태감이 떠올랐다. 지금이라도 다른 집을 가야하나 고민하는 눈치였다. 하다못해 기다리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생겼으면 말이라도 걸었을텐데, 따위의 속 편한 생각을 하고 있다.
#일단 상대가 누군지 모르겠어서 더 길게 못쓰겠어... ㅠㅠ 짧게 선레쓴 만큼 편하게 써서 줘!
레오는 한 걸음 먼저 나아가서 펠리체의 앞을 막아섰다. 왜 그런것인지 보여주겠다는 듯 한 손을 들어 주먹을 말아쥐곤 툭, 하고 펠리체의 어깨에 주먹을 가져다댔다. 미소를 지었고 다시 손을 거뒀다. 아까부터 계속하던 이야기. 자신은 싸움을 피하지않고 의외로 소질이 있는것 같다보니 주변에서 그런 이미지가 씌워졌다. 주궁의 투견이라던가, 건드려서 좋을 것을 못 본다던가, 눈이 상처가 난 표범을 조심하라던가 따위의 이야기들. 레오는 다시 뒷짐을 지고 걷기 시작했다.
" 위선이라.. 뭐, 깊게 묻지는 않을게. "
누구나 다 자기만의 비밀이 있는 법이다. 깊게 캐지는 않을 생각이다. 아직 그런 사이도 아니고 친구하자고 말도 꺼내지 않았으니까. 일단 지난번의 거리감이 이상했던 그 녀석 만큼은 아니지만 같은 기숙사의 항상 마주치면 싸우는 그 녀석 만큼 시비를 거는 사람도 아니니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기분을 받고 있었다. 한 걸음 또 앞서나가서 빙글, 하고 뒤를 돈 레오는 이히히, 하고 웃었다.
"백궁이 뭡니까, 하고 싶은걸 다 하는거죠. 에스카마리 가문의 절대 1원칙, 모든 것은 자유다. 본인의 책임일 뿐."
그래서 어떻게 보면 마법학교인 동화 학원에 입학한 것도 자신의 책임을 진다고 가정하고 이곳에 들어선거나 마찬가지이다. 본인이 책임만 질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아마 그런 가풍에 다이사쿠 가문 특유의 문화적 성향이 들어가 만들어진게 바로 리안이 아닐까. 윤의 불길한 눈빛을 본 것 같지만 그는 일부러 못본척 해줬다. 분명 맹세하지 않았던가.
'윤 형님의 끝은 내가 끝까지 지켜볼거다.'
그렇게 맹세하고 지금까지 달려온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씨익 웃어보였다.
"형님, 다이사쿠 가문의 정통 계승자를 얕보지 마십쇼. 회초리 맞아가며 가문의 각종 서적들을 필사해내려 가고 온갖 교양 서적들에게 파묻혀 지내온 일상들을...."
그 순간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퀭해진다. 자기가 원한 길이었지만 댓가는 참담했다는 것일까, 분명히 상냥했던 어머니인데 어느순간 보면 한냐가 따로 없이 그를 괴롭혔던게 떠올랐다.
"..... 차라리 여기가 낫죠.....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제가 원했던 길이니."
그러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귀곡탑, 그래, 왜 거길 떠올리지 못했지? 마법사계의 슬럼가나 다름 없는 저 공간을 그가 왜 기억하지 못했던거지? 그는 잠시간 고개를 돌렸다. 한번 들어가볼까, 목숨 한번 버리는 셈 치고? 라는 상념이 지나쳐갈 무렵, 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금은 타이밍이 아니라는 것일까, 그는 자신을 이끄는 윤의 목소리에 그를 뒤따라 가기 시작했다.
다행이라고 말하면서 계속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물론 당신이 고작 이 정도로 상처받지 않을 것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 흐름을 유지하고 싶었다. 평소 느끼던것과는 또 다른 재미에 맛이 들려버린 이상은 지금의 이 느낌을 놓는다는 것은 주양이 아니었다.
"역시 우리 여보는 긍정적이라서 좋다니까! 나도 열심히 본받아서 좋은 생각만 하도록 노력해야지. 아이 참, 축복이라니 그렇게 말해버리면 내가 많이많이 부끄러워진다고?"
역시 그런 좋은 말들은 자신과 크게 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싫지 않았다. 남들이 해주지 않을 말을 자신에게 스스럼없이 해주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기에. 주양은 살짝 부끄러워하는 듯 하면서도 당신에게 고마움을 조금이나마 더 표현하기 위해서 평소와 같이 계속 치근거리는 모습으로 당신을 대하기로 했다.
간혹 그 한결같은 모습 때문에 주변 인물들에게 오해를 받는 일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주양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과거에는 해명하기 급급했으나 지금은 해명보다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즐겼다. 이유야 간단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이 그만큼 재미있으니까. 조금 더 당신에게 착 붙으며, 또 다시 들려오는 낯간지러운 호칭에 예전 기억에서 온 불쾌함은 싹 날려버린듯 다시 에헤헤 하고 웃고 말았다. 허니버니. 자신에게 쓰기엔 뭔가 귀여운 어감이었다.
"흐음. 정말 그 정도면 괜찮겠어? 뭐, 여보가 그렇다면 그런 거니까 반박은 안 할테지만! 그치만 이래뵈도 주궁 학생대표니까 필요하면 언제든 이야기해줘. 여보의 앞을 막는 장애물은 내가 싹 다 날려버릴게?"
이 말만큼은 지금 당장이라도 실천할 수 있다는 듯 기세가 한없이 드높아졌다. 방해되는 걸 저 멀리 치워버리는 건 쉬운 일이다. 이미 그렇게, 졸업 후 방해될만한 사람을 정리하기도 했고. 숨은 붙어있을테지만 앞으로는 자신의 붉은 머리카락만 봐도 겁에 질려 설설 기어다닐테니 만족했다. 그리고 그 기세가 한풀 꺾이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주양. 자신의 이름이지만 매일 달링이나, 자기 같은 호칭으로 부르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이름으로 불러준다는 것의 영향력은 강했다. 숨을 급하게 들이쉬었다. 서 주양, K.O 같은 느낌이었다.
"크, 흡.. 흠. 좋아. 여보와 함께, 밤이라는 이 무대에 한껏 피어나보겠어. 각오하는게 조, 좋을거야!"
훅 치고 들어온 말이 남긴 여운이 가시지 않은 것인가. 그도 아니라면 당신의 이야기에 맞춰주려는 것인가. 어느 쪽이든 주양답지 않게 꽤 여성스러운 몸짓으로 당신의 손을 마주잡았다. 약간은 뻣뻣한 느낌인 게 아무래도 전자에 가까워보이는 모습이었다. 각오하라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까지 하는걸 봐선 더더욱 그랬다. 잠깐동안 그러고 있다가 다시 평소처럼 느글거리며 풀어지기는 했다만.
"에이. 그럴 리가 있을까! 다른 사람들 걱정은 그냥 서브라고? 메인은 어디까지나 우리 여보야, 여보! 그 사실을 잊으면 무지 섭섭해질것 같은데~"
볼이 콕 찔리자 찔린 쪽 볼을 슬쩍 부풀렸다. 그러고는 마냥 웃었다. 아직 다른 기숙사 사람들에게 영향이 가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돌아가고 나서 몇 명이나 다녀갔을진 모르겠지만, 조만간 다시 들러서 살펴보고 아직 게가 남아있다면 확실하게 끝장을 내버릴 생각이었다. 먹기 좋은 크기로 담가버리는게 좋겠지, 역시.
"아무튼 당한 건 없다니까 다행이야. 조금 많이 걱정해버렸는데. 이젠 걱정 안 해도 되는 건 무슨! 앞으로도 계속 걱정할거니까, 조심하라구?"
갑작스럽게 말꼬리를 홱 돌리며 마냥 웃었다. 머글들은 이런걸 보고 태세전환이라 하던가. 아니면 기출변형? 어느 쪽이든간에 생각보다 꽤 재밌는 이야기 방법이었다.
민은 무기의 인상착의를 기억하고 있었다. 민은 평소처럼 한껏 웃으며 인사를 하려 했다. 팔짱을 풀고 고개를 올리자 보이는 그 음습한 기운에 말문이 막혔다.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설프게 올라간 입꼬리가 삐걱거리는 기분에 손가락으로 입꼬리를 만지작거렸다. 뒷걸음치고픈 본능을 꾹 누르고 애써 좋은 얼굴을 한다.
"네, 무기 교수님도 주막 음식을, 즐기나봐요."
민의 시선이 잠시 술잔에 머물렀다. 괜히 질문하는 만용은 부리지 않기로 했다. 이질감 드는 목소리는 말단부분을 꽉 쥐고 흔드는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사바세계의 너절한 것들을 보는 심경으로, 질긴 덩쿨을 꾹 삼키는 기분으로, 고해성사를 하는 신자의 기분으로. 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짓을 고한다면 쉬웠겠지만 어째서인지 그래서 안된다는 기분이 들었다. 감당하지 못할 무언가를 마주할것만 같은 초조함에 휩싸이고 만다.
"딱히 없습니다."
민이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자연스럽게 올라간 흉부가 민의 자세를 보다 떳떳하게 한다. 거짓이 힘들다면, 질문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고보니, 선물은 잘 받으셨는지요? 왜요. 그 학생 한 명이 마법약을 선물 줬었는데, 그게 뭐였더라... 분명 기억하실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