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같다는 말에 글쎄요.. 라고 중얼거립니다. 스바루의 집안 같은 유서깊은 곳에서는 실제로 쓰일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원하고 소유하는 것은 그림의 숙명이자 모든 예술의 어쩔 수 없는 매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바르는 그렇게 생각했었죠.
"스스로를 믿어도 되겠지요." 그리고 너무 깊지 않는다는 말에 그렇다면 레이나 양도 스스로를 믿고 있기를 바라요. 라고 부드럽게 말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백색의 곳에. 붓을 들어봅니다. 물로 그어보는군요. 물인 만큼 마르면 아무것도 없겠지만 희미한 물의 흔적은 붓을 이끌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하셔도 좋고.. 아무거나 그리셔도 좋지요?" 다른 붓을 들어서 슥슥 물로 그려낸 것은 레이나의 얼굴 캐리커처입니다. 물로만 그려져서 금방 사라졌음에도 잔상처럼 남은 물그림지요.
물론 물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물감도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 사실을 가르쳐주진 않은 채 그저 웃고 있습니다. 레이나가 그리는 것들을 머리속에서 색을 입힌 채 상상해보는 스바루는 레이나가 어린애 수준이라는 말에 어떤 분은 어린애 수준을 따라하려고 얼마나 노력하셨는걸요. 라고 답하고는
"인상과 입체는 의외로 어린 손에서 크게 나타나곤 하니까요." 잘 그리는 것이랑 어린 손에서 그리는데 잘 그려진 그런 건 어렵다고요? 라는 답을 말하고는 이거 말고 다른 것도 해보실래요? 라고 가볍게 묻습니다. 옷감을 물들이는 체험이네요. 밀랍같은 것으로 손수건에 그림을 그리고 물들이면 밀랍 부분만 물들지 않은 채로의 추억이 됩니다.
"레이나 양을 그려본 거죠. 곧 수분기가 사라지고 투명하게 말라버리겠지만요." "어린이처럼 그리면서도 잘 그린다는 건 어떤 걸까요.." 어린 아이들의 순수성과 잘 그린다는 걸 공존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래서 평생을 노력한 거라고 생각해요. 라고 말하는 스바루입니다. 하긴.. 그런 방면은 그가 처음이나 마찬가지였을까.
"고민되긴 하지만 가벼운 그림도 좋아요." 물들인 뒤에는 녹일 테니까요. 라고 말하면서 스바루는 섬세한 그림을 그려내네요. 그러다가 레이나가 그린 것을 봅니다.
"이번에는 절 그려주신 건가요?" 와아. 라면서 기뻐합니다. 한번 물들여볼래요? 라면서 가리킨 색소들을 가리킵니다. 섬세한 그림이 그려진 손수건을 붉은색으로 물들이면 밀랍 사이사이에 물들이지만 밀랍이 있는 곳은 하얗게 남아서 그림이 남습니다.
"고맙긴요. 여기에 있는 모든 작품은 하나뿐이 되는 거니까요." 아참.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했다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가져갈 수는 있지만 사진을 찍고 가져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응원의 말에 부드럽게 미소짓습니다.
"이따 봐요." 라고 말하다가 일정을 마친 후 뒷풀이라는 이야기에 오늘은 있지만요. 라고 말합니다. 혹시 제게 데이트 신청을 하실 생각이었나요? 라는 능글맞은 말을 하고는 오늘은 뒷풀이로 간단하게 식사를 할 생각이에요. 라고 답하는 스바루입니다. 술을 마시는 그런 회식은 마지막 날 마무리를 잘 한 다음에 할 생각이라는 말을 하네요.
"이따 본다는 건 휴식 시간일까요. 아니면 사람들과 섞여서 본 뒤에 나오면서 일까요. 아니면 며칠 뒤일까요?"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 말을 남기고는 리허설 장소로 들어갑니다.
"데이트 신청하는 것은 좋은걸요." 조금 오랫동안 못 만났고요. 라고 속삭이듯 말하며 조심스럽게 삐져나온 ㅁ머리카락을 정리해주려 시도할 것 같습니다. 어깨를 으쓱이는 것을 보다가 저도 아쉽지만요. 라고 말합니다. 뮤즈님의 명을 듣고는 싶지만. 아직 저는 현실에 한 발짝 걸쳐 있더라고요. 라는 너스레를 떱니다.
"그런가요.. 맞네요" 슬쩍 미소지었습니다.
"그럴까요? 그럼 -에서 만날래요? -시에 갈 것 같은데요..." 부드럽게 웃으며 들어갑니다. 그리고 리허설 때 사고가 생기지...않았습니다. 스바루가 당신 대체 뭐 하길래 그래! 라고 말할 인선이지만 아무튼 안 생겼으니 다 된 거 아닐까요. 전시회는 엄청나게 성황리에 마무리되었고. 뒷풀이 전 시간에 -에서 기다린다면 스바루가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오는 걸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어머! 그녀는 스바루가 자신의 머리를 정리해주려 하자 놀란 얼굴로 살짝 뒷걸음질 쳤다. 아, 아니, 그게... 미안해요. 당신이 싫다는 듯은 아니고... 손을 흔들며 무어라 중얼거리는 모습이 당황스러워 보였지만 기분이 상한건 아니였는지 얼굴이 살짝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가 갑자기 손을 뻗어 머리를 정리해주려 한것이 어지간히 놀라웠던걸까.
"그럼 그때 봐요."
그가 약속 장소와 시간을 알려주자 엄지와 검지를 붙여 둥글게 만들고는(오케이 사인이다) 장난스럽게 씨익 웃었다. 그리고 그녀 역시 전시회를 둘러보며 즐기다 그가 알려준 장소에 시간을 맞춰 도착했을까. 레이나는 마스크와 모자를 쓴 그의 모습에 살짝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어, 스바루 씨...? 그 모습은..."
원래대로라면 전시회 잘 봤어요. 란 인삿말을 건넬 생각이었으나 그의 옷차림을 보니(물론 굳이 말을 안해도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궁금증이 생겼는지 질문부터 던졌다.
살짝 뒷걸음질 치며 당황스러워하는 것에 조금 놀라셨나 보네요. 라고 능숙하게 무마하려 하네요. 살짝 놀란 듯한 얼굴을 보며 안도합니다. 싫다는 게 아니라서 말이지요. 라고 말하며 오케이 사인을 받고는 들어갔습니다. 아마 리허설 이후의 진짜 소개에서 잘 하는 스바루를 레이나도 볼 수 있었겠지. 그리고는 약속장소로 온 스바루는 후우. 하는 숨을 내뱉었습니다.
"아무래도 여러 사람들이 알아보고 쫓아오지 뭐에요." 길을 돌아가고 건물을 통과하고 그러는 동안 하마터면 늦을 뻔했네요. 라고 말하면서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펴보지만 다행히도 여기는 외진 곳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인적도 드물었습니다. 그러자 스바루도 안심한 것처럼 마스크를 벗었습니다. 고운 얼굴에 피로감은 묻어났지만 그 이상으로 기쁨이 있었을까요?
"그렇네요... 많이 당황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는 거지요. 라고 담담하게 말합니다. 스바루는 천천히 손을 뻗어 저기 보이는 듯한 미술관을 잡을 것처럼 그려봅니다. 푹 쉬어야겠냐는 말에 그럴까요. 내일은 제가 없어도 잘 돌아가길 바라야겠네요. 라고 말합니다만... 아마 전시회가 벌어지는 동안은 계속 있을 겁니다. 깔끔하게 단장하는 건 고용인의 의무지 본인이 해야 하는 건 덜한 것.
"열망과 많은 것..." 그런 것을 보았다면 저는 성공했네요. 라고 답하는 스바루네요. 많은 것이 있고 많은 창의력.. 이라 중엋거리다가 레이나를 보며 뮤즈님은 만족하셨나요? 라고 다시 물어봅니다.
"글쎄요.. 뒷풀이 근처로 가며 이야기라도 나누실래요?" 아니면 오늘 가장 재미있었던 것이라던가요? 라고 말해봅니다. 뒷풀이 자리에 데려가기엔.. 연인이라고 보일 여지가 있잖아요? 라고 웃어봅니다.
그러고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낮이고 밤이고 일을 하니 눈밑의 검은 기미가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그녀는 걱정스런 말투로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전 만족했어요."
뮤즈라고 부르는 스바루에게 어딘가 간지럽다는듯 쑥쓰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뮤즈라는 말, 언제 들으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또 언제 들으면 무지 쑥쓰럽네요. 그렇지만 싫다는 건 아니에요. 내가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라는 건 늘 신기한 일이니까요. 웃으며 말하는 모습에서 행복이 느껴지는 듯 했다.
"연인이라... 그럴수도 있겠네요."
사람들은 또래로 보이는 남녀가 같이 있는걸 보면 연인 관계일거라 생각하잖아요. 사실은 친구일 수 있는데도... 물론 스바루와 레이나는 손도 잡고 데이트도 몇 번 했으니 연인으로 보일 여지가 충분하지요. 굳이 말하면 썸이라고 해야할까...
"과로로 쓰러지지는 말아야죠." 사실 그림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이는 만큼 이 전시회에 걸린 그림들이 제 그림의 거의 전부니까요. 라고 말합니다. 하긴. 전시회치고는 그림이 많은 것이긴 했죠. 그렇지만 한 사람이 평생 그렸다기엔 적은 느낌? 그리고 기미라는 말에 어떤 분들은 이 기미를 가지고 퇴폐니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라는 농담을 건넵니다. 정말 퇴폐스러워 보일 수도 있으려나.
"만족했다니 가장 큰 기쁜 감동이 몰려오네요." 쑥스러운 말을 하는 레이나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짓습니다. 영감을 주는 존재. 가끔 드는 마음. 그런 것을 슬쩍 가려두고는 연인으로 보일 슈있다는 말에 동의한 레이나를 봅니다.
"그건.. 그렇죠." 친구라기에는 조금 가깝지만. 연인이라기엔 조금 먼. 그런 관계를 지금은 약간.. 애매하기 때문에 그저 웃으며 걸어가면서 전시에 대해서도, 앞으로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눌까요? 많은 사람들이 손수건을 물들이고 사진을 찍어 남겼다라던가요.
퇴폐로 여긴다는 말에 외관이 퇴페하다는 말이었지만 못마땅함을 말하는 것에 눈가를 손가락으로 살짝 매만집니다. 고운 스바루의 얼굴이 만져지는 건.. 조금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이려나. 그래도 행복했던 것에 가까웠기에 괜찮았을지도. 약을 꾸준히 먹고 예후를 보는 타입이니까.
"행복하네요." 꿈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잖아요. 라고 말하는 스바루는 같이 걸으며 이야기를 합니다. 전시회장에서 하는 것이나. 물감으로 그린 이들이나... 그러다가 밀랍으로 그리고 물들이는 것은
"아이들이나 연인들이 좋아하긴 했지만, 직접 그리는 것보다는 판에 넣고 꾹 눌러 찍는 게 인기였네요" 확실히 직접 그리는 인원보다 많았어요. 라고 말하면서 오늘 전시를 마치고 나서 사진이 전시될 곳을 찍은 걸 보여주려 합니다. 이런저런 기 모이면 예쁘게 전시되겠지요. 라고 말합니다.
행복하시다니, 다행이라구요. 그녀가 살짝 뒷짐을 지고 말했다. 저도 많이 행복해요. 확실히 활동이 늘어나니 잡생각이 사라져서 부정적인 생각도 안하게 되더라고요. 역시 사람은 일을 해야하나봐요. 레이나의 말엔 진심이 담겨있었다.
"손수건 물들이기는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해야하기 때문에 번거로웠던 걸까요?"
꽃을 그리던 별을 그리던, 색을 고르고 그리는건 오로지 자기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거기다 한번 그리려면 완벽하게 그려야한다는 생각도 들테니 사람에 따라 부담스럽단 생각도 들지도...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다가, 잠시 스바루의 눈치를 보더니 혼자만 떠들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멋지다~ 전부 스바루 씨가 찍은거예요?"
그가 보여주는 사진을 보며 감탄했다. 대단해요. 역시 화가라 그런지 구도를 잡는 능력이 좋은 것 같아요.
어머나, 저를 보고 극복했다고요? 참 영광이네요! 그녀 또한 너스레를 떨며 웃어보였다. 그리고 크로키와 낭비라는 말에 다시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잊어버리려 했다는건 슬럼프를 극복하려고 했다는 뜻이잖아요. 그런 의지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예요. 위로하듯 전하는 말이었지만 진심이라는 듯 눈동자를 빛냈다.
"저요? 전..."
스바루의 물음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막연히 배우의 꿈을 안고 집에서 막 나왔을때, 세상엔 못할건 없다는 생각으로 살았어요. 그땐 아주 생기 넘쳤고, 또 열정도 넘쳤죠."
여러 오디션도 보고, 무작정 기획사에 찾아가기도 했어요. 하지만 오디션에서 떨어질때마다, 자신감이 깎여나갔어요. 당연한 일이었죠. 그땐 아무 준비도 안 되어 있었거든요. 사실 가장 슬펐던건, 오디션에서 떨어지는게 아니라 기회는 반드시 올거야, 다음번엔 붙을거야라며 나 자신을 다독일때였어요. 어째 다독이면 다독일수록 자신감이 떨어지더라고요.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슬픔이 느껴졌다.
"어느 날 갑자기인 걸까요" 그런 때가 있기도 하지요. 라고 생각하면서 일화들을 듣다가 자신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에 어쩐지.. 기쁠까요?
"그렇게 말해주시니... 기쁘네요." 그렇다면 저희는 서로를 끌어올린 셈이 되는 거네요. 라고 말하면서 도닥임을 조심스럽게 하고는 들어갑니다. 얼굴이 살짝 발그레해진 탓에 완전히 들어가 만나기 전에 마음을 가라앉히자.가라앉히자. 라고 몇 번 외웠겠지만요.
뒷풀이 후에 스바루의 전시회는 성황리에 마치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레이나는 중간에 한 번 더 전시회를 보기도 했을 겁니다. 처음의 깨끗했던 것이 관객들의 참여로 바뀌어 가는 것을 봤다거나. 손수건을 찍은 사진으로 가득하거나.. 오늘은 전시회가 모두 끝나는 날. 아무도 없는 전시관 안쪽으로 들어올 수 있는 건 스바루 덕이겠네요.
슬럼프가 오면 일을 하고싶단 생각이 들때까지 딴짓을 하는 방법도 있다더라고요. 갑자기라는 말에 어디서 들은 이야기라는듯 넌지시 말했다. 일을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아 무기력해지는 것이 슬럼프인데, 억지로 일을 하면 더 안좋아진다는 뜻일까.
"별 말씀을요."
저희는 서로를 끌어올린 셈이라, 그녀는 그의 말 중에 이것이 가장 인상 깊었는지 그가 들어나고 나서도 이 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뒤에도 전시회를 감상하러 온 레이나는 관객들이 참여한 작품이나 손수건 사진을 보며 스바루가 이걸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전시회가 끝나는 날에도 전시관에 발을 들인 그녀는, 자신을 맞이하는 스바루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다가갔다.
일을 하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말에 맞아요. 가끔 뭐든 미루고 생각을 가볍게 하는 것도 좋지요.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붓이나 그런 걸 잡기는 해야 하지만요. 라고 답합니다. 별 말씀을요라는 말에 별 거 아닌 게 아니니까 그렇게 말한 게 아닐까요...
"정말로 기쁜 일이에요." 고개를 끄덕입니다.
"끝나는 날에 집에 가서 샤워하고 말린 다음에 푹 자서 여기 오기 1시간 전에 깼다면 믿으시겠나요?" 그러고보니 꽤 피곤해보였던 것에서 좀 벗어난 것 같은 스바루의 얼굴이 보일지도요? 정리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겨진 것을 보여주며 마지막을 장식할까요? 라고 말하며 손을 내밉니다. 처음의 새하얗던 것에서 사람들의 손길이 닿아 완성된 그림들이나. 손수건들을 만들고, 사진을 찍은 것을 전시한 것...
평소보다 상쾌해보여요! 아, 그렇다고 평소에 상쾌하지 않았다는건 아니고요... 스바루의 얼굴을 보던 레이나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평소엔 눈 밑의 검은 기미도 그렇고, 털을 빗지 않은 새끼고양이같은 인상이라고 생각해서 그런걸까.
"마지막이요?"
스바루가 내민 손에 자신의 손을 겹치며 물었다. 그리고 그림과 손수건, 사진을 전시한 것을 보며 감회가 새롭다는 듯 감탄했다. 정말 멋져요. 사람들이 참여해서 만든 작품이라 화가 입장에서도 만족스러웠을 것 같아요. 사진 하나하나를 감상하다가 스바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스바루 씨는 어때요? 기분이라던가, 감상이라던가... 이번 전시회로 느낀 점이라던가..."
"전시회 준비하느라 좀 많이 바빴으니까.. 아무래도 안색이 조금.. 그런 면은 있었죠." 얼굴을 손가락으로 콕 찌르면서 지금은 확실히 더 낫지요. 라면서 마지막이라는 물음에 결국 마지막으로 나간 사람은 최후에 남은 자기 자신의 것을 못 보니까요. 마지막은 저와 레이나 양이 최초로 보는 거지요? 라는 말을 하고는 보여줍니다. 마지막 사진이 붙음으로써 완성되는 것과. 마지막으로 붓칠한 사람의 흔적이 마르면서 정착된 모습은 처음 보는 것입니다.
"느낀 점이라... 사람들이 보고 감상을 느끼는 그런 게 인상이 깊었어요." 예전부터의 꿈 중 하나를 이룬 것 같은 기분도 든다는 말을 해봅니다. 그 외에 많은 것들을 느낀 것을 하나하나 이야기해보는걸까요?
"크로키 모델을 그만둔다고 해도 개인적인 교분이 있다는 게 가장 좋아요." 제가 크로키 모델을 뽑지 않았다면. 을 생각할 수가 없어지네요. 라고 답하는 스바루는 꽤 후련해보였습니다. 사실 할 말은 많이 남았겠지만.. 그리고는 레이나의 말을 듣자 그 후련함이 싹 사라져버리네요.
"...조...조금.. 좋은 방향으로.. 네.. 그러고 싶어요.." 얼굴이 살짝 발그레해지면서 왼손 약지를 매만지는 걸 뚫어져라 봅니다. 그..그런 쪽도 없지는 않지만요. 커플링이라던가 하는 게 유행하는 만큼 알고 있습니다. 사실은 못 알아차린다면 반지를 주면서 고백..을 할 생각이었겠지만요.
"....그.. 저랑 같이할 수 있을까요..?" 물어봅니다. 주머니에서 지금이라도 심플한 반지라던가. 를 꺼낼까를 고민하고 있으려나요.
그녀는 생각했다. 지금 이게 무슨 일일까? 살짝 붉어진 뺨을 가리기 위해 손을 뺨에 가져다대며 슬쩍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확실히 친한 친구라기엔 애매한 부분이 많긴 했다. 자연스레 손을 잡는 것도 그렇고, 데이트란 말을 서슴없이 하는것도 그렇고, 친구도 연인도 아닌 애매한 관계가 그녀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 모양이었다.
"아, 미안해요... 조금 놀라서..."
겉으론 평온함을 유지하려 했으나 속마음은 복잡했다. 놀람이라던지, 당황스러움이라던지 온갖 감정이 섞여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었다. 그의 친절함은 나를 향한 연심에서 비롯된 것이였던 것인가? 그녀는 스바루의 물음에 심호흡을 깊이 하고 답했다.
"저... 지금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3일만 시간을 주세요."
생각을 정리하고, 3일 뒤에서 4일로 넘어가는 자정 전까지 꼭 답을 말씀드릴게요. 그녀는 당장 답을 해줄 수 없는 것을 너무나 미안해했다. 그러나 당장 답을 줄 수 없을만큼 심장이 쿵쿵 뛰어 잠시 진정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는 처음 1일은 스바루와 자신의 관계를 되짚어보고, 그 다음날은 자신이 스바루에게 가진 감정을 정리하고, 마지막 날엔 그가 언제부터 자신에게 그러한 감정을 가졌을지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확실히 예술가와 뮤즈가 서로 사랑에 빠지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손등에 키스하는 시늉을 하며 장난을 치고, 그게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늘 호의를 보여온 그의 감정을 우정으로 생각한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다 눈을 감고 생각했다.
그의 마음을 알았을땐 어떤 기분이었는가? (당황스럽지만 싫지 않았다.) 그를 좋아하는가? (좋아한다. 예술가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이성으로서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어떨 것 같은가? (슬플 것 같다. 그것도 엄청.) 그렇다면 그를 사랑하는가? (...)
그녀는 마지막 질문에 침대에서 일어나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가 그에게 전화했다. 스바루 씨? 저예요. 아무래도 직접 만나서 말해야겠어요! 그런 뒤 택시를 잡아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었고, 전화로 말해도 되는 이야기였지만 직접 그를 만나 이야기 하고싶다는 생각이 몸을 지배한듯 급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의 집앞에 도착하자, 문을 두드리며 스바루를 불렀다.
사흘동안 첫 날은 그림을 그렸고. 그 다음날은 하루종일 불안감정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리고 다음 날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푹 쉬었습니다. 안 된다면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니까요. 끈덕지게 붙잡는 것도 잘 하지만 진정으로 괜찮으려면 놓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때에 전화가 울리고 직접 만나서라는 말에
"에..네?" 라는 멍한 말을 하고는 어디 나가서 엇갈리지 않게 집에서 기다렸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어서와요 레이나 양..." 이라고 조금 소심하게 말을 걸며 문을 열어주려 합니다. 저번에 왔을 때보다는 살짝 지저분하긴 했지만 뭔가 실의에 빠지거나 자신을 돌보지 않는 형태는 아니었어요.
택시에서 내린뒤 스바루의 집까지 급하게 달려온 것인지 그녀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가 문을 열자 안으로 들어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스바루와 눈을 맞추곤 뜸들이는 것 없이 물었다.
"스바루 씨,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죠?"
저를 정말 사랑하시나요? 정말 저와 연인 사이가 되고 싶은거예요? 그리고는 스바루의 양손을 잡고 물었다. 급하게 달려왔지만 눈빛과 목소리는 사뭇 진지해보였다. 질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저와 미래를 함께할 각오나 바램은 되어있는거겠죠? 그녀는 확인받고 싶다는듯 단호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도 많이 생각했어요. 나는 스바루 씨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당신에게 가진 감정은 무엇일까. 그래서 당신과 함께한 시간을 되짚어 보았어요. 되짚어보니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 동안 저는 정말 즐거웠고 행복했어요. 제가 당신과 이야기하는걸 좋아한다는 것도 깨달았고요. 스바루 씨가 보여주는 신기한 것들을 보는 것도 좋았어요."
그러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함께 있어 행복한 사람이야말로 좋은거라고, 스바루 씨라면 날 즐겁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거라고요. 그러니까... 저는...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요. 수줍게 말하며 그와 눈을 맞추었다.
뜸을 들일 시간도 없이 훅 들어오는 것에 의외인 듯 당연한 면이면서도 좋다는 것에 중증인가. 라고 생각할까요?
"레이나 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많은 생각이 들어서 입이 잘 열리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크로키 모델을 하러 온 사람으로 보았고. 그 면접에서 뮤즈와도 같음을 느꼈지요. 연인으로써의 두근거림도 그런 것을 얻고 싶은 욕망이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것들을 원했지요. 단호한 목소리에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습니다. 그레요 어떤 그림을 그릴 때에도 이렇게 진지한 적 없었을지도.
"저는... 저는... 레이나 양과 함께 같이 할 수 있어서 기뻐요.." 느릿하게 말하면서 스바루는 손을 잡고 마주한 눈을 뚫어져라 보며 방긋 웃었습니다. 기쁨의 미소는 많이 봤어도 지금처럼 행복한 것 같은 스바루의 표정은 레이나도 처음 보았을 겁니다.
"충동적으로 나왔는데도 괜찮다니 밤이 아직은 괜찮은가 보네요" "헤어롤이나 팩보단 낫지만요." 사실 그래도 진지한 표정이 멋졌겠지만. 이라는 생각을 하며 농담을 합니다.
"정장에 드레스 둘 다 흰색이면 어울리기 힘든데 말이지요. 보통 드레스가 화려하니까요" 먹혀버린다고요? 라고 하기엔 스바루의 미모가 장난 아니어서 어울릴지도 모르지만요? 그렇지만 드레스를 입으면 예쁠 것 같은 건 맞습니다. 언젠가 아카데미에 가게 된다면 예쁜 드레스 입히고 싶네요. 예쁘잖아요? 라고 웃습니다.
"천천히..." 그러면 적당한 블라우스와 바지면 되겠네요. 라면서 문자로 주문을 넣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