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및 카페테리아에서 하절기 메뉴를 개시합니다. 추가 메뉴의 가격은 기존 메뉴와 차이가 없으며 카페테리아의 경우 일일 판매량이 정해져 있음을 미리 알립니다. 빙수 및 파르페의 토핑이 별도 추가 가능하도록 메뉴가 개선되었습니다.
부활동 상반기 실적 제출 기간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활동 중인 모든 부는 기한 내에 부활동 보고서를 제출하기 바랍니다. 기한을 넘길 경우 패널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최근 소모성 비품의 소모량이 비정상적으로 많습니다. 각 부는 자체적인 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주세요.
상담부에서 교내외 환경미화를 도와줄 사람을 구합니다. 자세한 건 각 교실에 배부된 안내문을 참고해주세요. (지난 이벤트 후속편. 자세한 내용은 이쪽 >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96248900/627) (후속편 현황은 캡틴에게 문의)
오만한 기색이 엿보이는 말투와 다르게 스쳐지나가는 쓴웃음을, 발견 못할 리가 없었지만 뭐라고 이야기하려던 다홍은 입을 다물었다. 대신, 이어지는 현율의 말에 다홍은 예의 온순하게 느껴지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무래도 좋다는 듯.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마워.”
화려하지 않은 그저 붉은색 장옷일 뿐인데 다홍의 그 벚꽃색 눈동자는 자신이 입고 있는 장옷을 향해 내려가며 오묘한 기색을 드러냈다. 말로 형언하기 힘든 감정이 섞인 오묘함이었다. 그것도 잠시, 다홍은 다시 시선을 들어 현율을 바라보며 나긋한 로우톤으로 “너도 잘 어울린단다. 곱다.” 하는 진심에서 우러나는 칭찬을 내보였다. 검은색의 꼬리깃이 긴 나비와 닮은 모습이라서 현율과 어울렸으니까.
“그래. 이제 해야할 일에 설명을 들어야하지.”
휙, 하는 손짓과 함께 제 얼굴에 걸리는 베일을 손으로 매만지던 다홍은 언제 즐거워했냐는 양 쿡쿡거리는 웃음을 거두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현율에게 신경을 돌린다. 셸레-압생트의 숲이라는 현율의 말과 손짓을 따라 시선을 들어 다홍은 앞을 바라봤다. 유화로 그린 것 같은 풍경화. 그것도 아니면 입체적으로 그려낸 전시물. 맨발에 밟히는 흙은 현실의 것과 똑같고 은은하게 퍼지는 냄새또한 현실의 것과 똑같은데. 신기할 따름이다. 정말로 꿈을 꾸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간간히 날아다니며 시선을 사로잡는 금빛 나비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이곳 전체가 마치 꿈 속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여서 그럴 수도 있고.
“가지는 찾았을 때 챙겨놔야하니. 아니면 그냥 그 자리에 내버려두면 되는거니.”
몇개나 있을지 불분명하다. 몇개를 찾아야하는지도 불분명하다. 처음부터 목표가 불분명한 일. 다홍은 숨을 한차례 크게 들이마셨다. 그래도 도움을 주기 위해 왔으니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하니까. 소리없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모양이 꼭 나비가 날개짓을 하는 것과 닮았다. 아니면 옛날 전설이나 옛이야기에서나 나올 법한 정령처럼 익숙하게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현율의 모습에 다홍은 제 등뒤에 있는 날개로 날개짓을 한 뒤에 그 뒤를 따라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현실이 아니라면 이제껏 살아오며 한번도 땅에서 다리를 떼어본 적이 없어도 나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테니까.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겠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표명하니 놀란 얼굴을 하고 따라오는 현율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놀라는 모습은 거의 처음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고작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겠다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놀랄 줄은 몰랐다. 여기에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었던걸까. 어쩌면 사실 이 아이스크림 가게 자체가 하나의 함정으로 이 장소까지 오게 한 것은 그 함정에 빠트리기 위한ㅡ
"그럴리가."
옛날 만화에서도 나오지 못 할 개연성이었다. 그럼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하는데 그녀의 말을 듣고 답을 알게 되었다. 맛은 상관없지만 그 음식의 온도가 낮다면 먹거나 마실 수 있다는걸까. 그러고보니 케이크를 먹을때도 얼음을 띄운 커피는 마셨었지. 이것을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언젠가 건낼 음식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이건 조금은 기대해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혼자 사먹던가."
자신의 실수로 더운 날씨에 차가운 음식을 못 먹는건 좀 그렇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말을 번복하기도 이상해서 무정한 한 마디를 내뱉고 그 또한 그녀 옆에서 도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번도 날아본 적 없고 날개를 써본 적이 없어도, 다홍이 조금만 신경을 기울이는 것으로 날개는 신체의 일부와 마찬가지로 움직였을 것이다. 그 크기가 어떻고 무게가 어떤지를 떠나 그저 몸의 일부처럼. 물건을 잡기 위해 손을 뻗거나 걷기 위해 발을 내딛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여 공중으로 떠오르게 한다.
"챙겨야 해. 가지라고 해도 가느다란 잔가지 수준일 테니까 꺾어서 나한테 줘."
다홍이 본 것처럼 현율은 익숙하고 안정적으로 날개짓을 이어가며 다홍의 말에 대답했다. 커다란 검은 날개는 크게 펄럭일 때마다 주변에 검은 인분을 희미하게 흩뿌린다. 인분이 닿거나 내린 곳은 역시나 희미하게 반짝여 아름답지만, 룰을 생각하면 그다지 손대지 않는게 좋을 듯 하다. 현실에서도 인분은 굳이 손댈 필요는 없으니까.
잠시간은 천천히 나아가며 다홍이 나는 것에 적응할 시간을 준다. 다홍의 옷도 움직이는 것이 그리 편하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현율은 날개짓의 시범을 보이듯 가까이 있는 나무를 한바퀴 돌거나 큰 날개짓으로 높게 솟아오르고 천천히 돌아오는 등 한다. 어느 정도 다홍도 익숙해졌을 쯤 현율이 숲을 본다. 그리고 다홍을 돌아보며 말한다.
"가지 근처에는 저 금빛 나비들이 있을테니 그걸 지표로 삼으면 될거야. 그럼 들어가자."
지표라 부를만한게 있으니 무작정 둘러보고 다닐 수고는 덜었다고 해도 좋을까. 들어가자고 말한 현율은 처음보다는 속도를 내어 너울너울 날아서 숲 안으로 들어간다.
나무들 사이를 헤치며 지나가다보니 얼마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울창한 숲이 나타난다. 절대 시들지 않을 것만 같은 잎사귀와 지면을 그득히 채운 화초들.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원시림, 이라 불러야 할 법한 녹음이 짙은 숲 속을 현율은 정말 한마리 나비가 된 것 마냥 매끄럽게 나아간다. 긴 옷자락이 가지에 걸릴 법도 한데 단 한차례도 걸리지 않고, 혹여 걸릴 듯 해도 스르륵 빠져나가는게 천에 자아라도 있나 싶다. 그럴 리는 없지만.
"가지를 발견하거나 있어보이는 곳을 찾으면 혼자 가지말고 얘기해줘."
찾는 건 온전히 다홍의 몫인 듯, 현율은 전혀 주변을 둘러보거나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찾거든 말해달라고만 하고 느긋하게 날개짓을 해 나아가기만 한다.
현율이 수분보충 안 하냐고 물으니 아이스크림으로는 안 된단다. 그럼 먹고 내려가서 음료수든 물이든 또 마시면 되는거 아닌가. 참 까탈스럽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그렇게 믿은 건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현 상황으로는 안 먹을 거 같으니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만 본다. 그러다 옆에서 중얼거리는 말에 힐끔 보는데, 현율에게 한 말은 아닌가보다. 혼잣말 같다. 뭔가 여러가지 생각을 한 듯한 중얼거림.
생각이라...
잠시 앞을 보고있다가 툭 튀어나온 한마디에 슬며시 웃는다. 투덜대고 흥이니 뭐니 했어도 진심으로 토라진 건 아니었으니까. 어떻게 할까 하다가 슬며시 고개를 기울여 희수의 얼굴을 본다. 무정하게 도시 풍경만 바라보는 얼굴을 보곤 웃음을 참는 듯이 말한다.
"너- 아까 내가 말한거 엄청 신경쓰고 있었구나? 아닌 거 처럼 굴어놓고. 귀엽긴-"
얄미워서 딱밤 한대 놓아주고 싶을 만큼 히죽히죽 웃으면서 귀엽네 귀여워를 연발한다. 손을 들어 희수의 볼을 찔러보려고도 했는데 그걸 그냥 맞고 있었을지 피했을지는 모르겠다. 그런 장난을 치면서 잠시간 그러다가 몸을 돌려 도시 쪽을 향한다. 때마침 불어오는 미지근한 바람에 살짝 눈을 감았다 뜨곤, 한 손을 들어올린다. 이제 노을의 끝자락이 드리운 도시를 보며 손을 뻗은 채로 말했다.
"이거 보고 아이스크림 사서 먹으면서 가자. 이번엔 싫다 그래도 들이밀거야. 도망치면- 알지?"
반드시 뒤끝을 남겨둘 것만 같은 말을 하고 웃으며 희수를 본다. 잘 봐, 라고 말하고 손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ㅡ 마치 슬라이드 밀듯이 움직인다. 그러자 손짓에 반응하듯이 도시의 불빛이 일제히 환하게 켜진다. 파도치듯 한쪽에서 다른 한 쪽으로 불빛이 켜지는 장면은 두고 두고 보고 싶을 만한 또다른 장관이다. 키득키득. 그런 짓을 한 장본인-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싶은 현율이 늦게나마 그 말을 했다.
"이걸 보여주고 싶었어. 라고 하면, 믿을래?"
그 말에 고개를 돌리면 손을 거둔 현율이 노을빛으로 물든 얼굴로 희수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글쎄. 정말 그런건지 아닌지는 네가 더 잘 알텐데? 적어도 난 없을만한 소리는 안 하는 주의라서."
볼을 찔리면서 빠르게 반박해오는 희수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생글생글 웃는 현율이다. 한번 찌르는데 피하지 않으니 곧장 멈추지 않고 두번을 더 찔러대고서야 손을 거뒀을 것이다. 일부러인지 현율이 아닌 도시를 보고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는게 어째 그냥 두기 아까워서 말이다. 반쯤은 장난이었던 말에 저렇게 자신만만해 할 줄은 몰랐지만.
"궁금하면 한번 해봐? 물론 결과는 장담 못 하고 책임도 못 져."
이 때 현율의 표정은 희수의 자신만만함을 어림도 없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내려다보고 있다. 얼마 되지 않는 키차이지만 지금 현율이 고개를 살짝 들면 무리도 아니다. 확실히 얄밉게 보이도록 웃는 것도 잊지 않는다. 시선을 도시로 돌릴 쯤엔 원래대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 장면은 과연 그랬을 것이다. 이제는 한물 간 로맨스 영화 속 한장면처럼- 그렇다기엔 규모가 어마어마했겠지만. 아무튼 그런 장면이 현율의 손짓을 따라 일어나는 걸 보고 희수가 아닌 누구라도 놀랐을 것이다. 굳이 물을 것도 없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희수를 보며 현율이 웃는다. 후후-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작게 흐른다.
"이런 건 순순히 믿네. 하긴 표정이 그래서 숨기기도 어렵겠다. 진짜 귀엽네."
그렇게만 말하고 이번엔 감상이 어떻니 그런 건 묻지 않는다. 그저 희수가 믿는다고 해준 걸로 만족한 듯, 그런 듯한 표정을 하고서 이번엔 자연스럽게 희수의 손을 잡는다.
"구경 충분히 했고, 보여주고 싶은 것도 보여줬으니까. 가자 이제."
올 때처럼 먼저 몸을 움직여 돌아선다. 이번엔 장난기 없이 부드럽게 잡은 손을 당겨 희수의 걸음을 재촉했겠지. 좀전에 못 먹은 아이스크림을 사고, 먹으면서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서.
자신의 말에 확신을 가지는 현율의 모습을 보고 얼굴을 찔리면서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 볼을 찌르는 걸 그냥 내버려둔 건 실수였다고 생각하며 그녀의 위협하는 모습을 위로 올려다보았다. 키 차이도 얼마 안 나면서 벋대기는. 상관없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승자는 내가 될 테니까.
"나 같은걸 납치해봐야 네가 얻을 건 없어. 그리고 넌 그런 쓸데없는 일을 할 사람은 아니고."
얄밉게 웃는 그 얼굴을 노려봐 그런 협박에는 굴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확히 표현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구매했고 그 차가운 것을 마음껏 누렸다. 더운 날씨에는 아이스크림 만한 소망은 거의 없었으니 그게 녹거나 사라지기 전 까지는 행복을 누릴 수 있겠지.
"사람을 대뜸 귀엽다고 하지 말아줄래? 정말 독선적이야."
손을 잡는 희수를 보고 '지금은 오르막길이 아니니 손을 잡을 필요는 없지 않아?' 라는 이성적인 말을 하려던 그는 장난기 없는 행동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짜증이 난다는듯 작게 혀를 차고 얌전히, 마치 오라에 묶인 죄수마냥 그녀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우라에 묶인 그의 귀양지는 남자 기숙사였으며 역시나 귀양지는 그냥 가기에는 멀고도 먼 거리였다.
지금 처한 상황에 놀라는 것조차 사치같다고 생각한다. 태어난 이래 단한번도 땅에서 발을 떼어본 적이 없는데 어렵지 않게, 약간 신경을 쓰는 것만으로도 떠오르게 하는 날개짓에 다홍은 혀를 내두르는 걸로 대신했다.
“금색을 띄는 잔가지, 란 말이지.”
현율의 대답을 곧이 곧대로 따라하며 다홍의 벚꽃색 눈동자가 커다란 검은색 날개가 우아하게 펄럭일 때마다 공기 중을 수놓는 희미한 검은색 인분을 따라 움직였다.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이기 마련이다. 그 검은색 인분이 시선을 잡았지만 다행히 다홍은 룰을 기억하고 있었고 실제 나비의 날개에서 떨어지는 인분이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도 알고 있었다. 붉은색 장옷과 긴복식, 그리고 푸른색의 날개를 움직이며 현율을 따라 날개짓에 차츰 익숙해졌다. 나비의 날개짓이란 새와 다르게 소리가 없다.
“그래도 무작정 이 숲을 헤맬 필요는 없어서 다행이야.”
무작정 하나씩 둘러봐야했으면 얼마나 걸렸을지. 너울너울 날아가는 검은색 날개를 지표삼아 다홍의 푸른색 날개도 그 뒤를 따라 나무를 헤치며 숲 안으로 나아갔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시들 것 같지 않는 잎사귀, 지면을 빼곡히 채운 화초들. 고대의 원시림을 연상시키는 풍경에 현율의 뒤를 따라 날던 다홍은 제 눈을 가늘게 떴다. 이렇게 녹음이 짙은 숲이라니. 그 원시림에서 무언가를 연상시키기라도 한것처럼 바라보던 시선이 움직였다. 들리지 않은 작고 짧은 한숨을 토하며 다홍은 날개짓을 크게 해서 현율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고도를 높혔다. 조금 높은 곳에서 찾는 게 빠를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거야 원. 연장자만 고생하는 것 아니니. 이거.”
가벼운 웃음과 함께 상냥한 타박을 중얼거리고 다홍은 주변을 빠짐없이 탐색하며 나아갔다. 금색 나비가 있거나 찾아야하는 가지를 찾기 위해서.
대부분의 숲의 풍경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으나. 이 숲은 어딘가 이질감이 든다. 유달리 짙은 녹음이 싱그럽다 못해 서늘한 기운마저 낸다. 지면을 걷는게 아닌 가지들이 즐비한 상공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해도 이 숲은 녹색이 너무 많다.
수많은 나무의 기둥조차 표면의 상당 부분이 두터운 이끼로 뒤덮여, 본디 있어야 할 나무껍질의 색 대신 진한 녹색이 주를 이룬다. 지면은 들어올 적의 흙바닥을 넘은 뒤로 그런 길은 커녕 빈 곳 한뼘조차 보이지 않으니. 이쯤 되면 이 숲의 녹음은 범상치 않음이 은근히 느껴져 올 것이다. 그것들에 손을 대고 싶은지 어떤지는- 다홍의 마음에 달렸지만.
"이미 헤매고 있는거라곤 생각하지 않아? 우리가 들어온 길도 이제 안 보여."
현율의 말처럼 뒤를 돌아보아도 처음 서 있던 곳은 이미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나무들만 빼곡하다. 나무, 나무, 나무들 뿐. 조금만 정신을 놓아도 숲 속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 할 것 같다. 스스로의 색채를 모두 잃고, 저 녹색의 일부가 되어버릴 것만 같다.
"글쎄- 힘들다 생각하면 고생이고, 나름대로 즐기면 유희가 될 텐데. 다홍은 고생으로 생각하고 싶은가봐?"
타박 같지 않은 타박에 현율이 고개를 살짝 돌려 다홍을 본다. 곁눈으로 다홍을 보는 눈 역시 웃고 있다. 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는 것처럼. 고도를 높인 다홍과 달리 현율은 높이를 유지하며 천천히 나아간다. 살짝 낮아질 듯 하면, 가까이 있는 나뭇가지를 최소한으로만 밟아 그 반동으로 떠오른다. 다홍이 보고 있었다면 현율이 가지를 스치는 순간 약간의 녹색 입자가 검은 드레스에 묻는 것이 보였을 것이다. 마치 물들이듯이.
"거기, 나비 보이지 않아? 따라가 봐."
헤엄을 치는 것과는 또다른 유유함으로 나아가다가 문득 현율이 말한다. 그 말이 가리키는 곳은 다홍의 높이에서 보이는 어느 나무의 가지들 근처다. 금빛 나비 두엇이 일정하게 배회하고 있는 걸로 보아 아마 그 근방이지 않을까. 현율도 비슷하게 고도를 높이고 다홍을 향해 눈짓한다. 가서 찾아보라는 의미를 뚜렷히 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