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및 카페테리아에서 하절기 메뉴를 개시합니다. 추가 메뉴의 가격은 기존 메뉴와 차이가 없으며 카페테리아의 경우 일일 판매량이 정해져 있음을 미리 알립니다. 빙수 및 파르페의 토핑이 별도 추가 가능하도록 메뉴가 개선되었습니다.
부활동 상반기 실적 제출 기간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활동 중인 모든 부는 기한 내에 부활동 보고서를 제출하기 바랍니다. 기한을 넘길 경우 패널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최근 소모성 비품의 소모량이 비정상적으로 많습니다. 각 부는 자체적인 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주세요.
상담부에서 교내외 환경미화를 도와줄 사람을 구합니다. 자세한 건 각 교실에 배부된 안내문을 참고해주세요. (지난 이벤트 후속편. 자세한 내용은 이쪽 >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96248900/627) (후속편 현황은 캡틴에게 문의)
록산나는 느긋함을 즐기며 느릿하게 펜을 움직였다. 날카로운 펜촉과 싸구려 종이가 맞닿으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또다른 방문자를 알아차리지 못 했는지, 부르던 노래는 끊임없이 이어지다 목소리가 직접 닿을 때에서야 사그라들었다. 록산나는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고개를 움직이는대로 얇은 머리카락이 사르락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록산나는 평소와 같은 서글서글한 미소를 짓고는 잇새로 노래하듯 통통 튀는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그냥~ 이것저것? 그림도 그리고, 생각나는 것도 적어두고~"
말그대로 '이것저것'이었나 보다. 아마 저 알아보기도 힘든 검은 것들은 새로운 멜로디와 가사의 재료일 테다. 사람이 앞에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몇가지를 더 휘갈긴 록산나는 그제서야 펜촉을 멈추었다. 수첩 사이에 펜을 껴놓고 고개를 돌렸다.
"안녕, 귀여운 후배님~!"
그리곤 뒤늦게 인사에 답했다. 록산나는 당신을 바라보며 눈매를 느른하게 휘며 웃었다. 하이얀 빛을 띈 눈동자가 팔랑이는 눈썹 뒤로 숨었다. 그러며 제 옆에 앉으라는 것처럼 옆자리를 손으로 팡팡 두들기는 것이었다.
필시, 안개 속 노랫소리가 현실로 들린다는 착각에 화가는 미쳐버린 것이 아닐까. 정신이 아득해질 것만 같은 노랫소리에 귀를 막고 눈까지 감았기 때문인지 다홍은 눈앞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시계의 분침과 초침처럼 보이는 것들을 들고 달려드는 안개 너머의 존재들을 못봤다는 소리였다. 다음순간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다홍은 화들짝 놀랐을 뿐이다. 비명. 비명소리. 뭔가가 잘못됐어. 현율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다홍은 감았던 눈을 뜨고 귀를 막았던 손을 내려서 현율을 바라봤다. 녹색으로 물들어있는 그 모습에 다홍은 귀를 막았던 손으로 현율의 팔을 잡으려했다.
“내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없어서..” 방해라던가, 거슬렸다던가하는 소리보다 현율의 모습이 신경쓰였다. 우스꽝스럽다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였지만 다홍은 지나치게 그 모습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잘 보면 온화하고 온순한 눈매를 늘어트린 채로 웃음기 하나 없는 낯이 조금 어두워져 있다. 무슨 기억을 떠올린 건지, 그건 다홍만이 알 일이었다.
다홍은 그 모습이 마치 피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계곡 건너편으로 건너가자 그곳은 더 녹음이 짙었다. 이번에도 나비인가. 나비를 따라가면 그게 우리의 끝이 된다. 그저, 마지막까지 더 큰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다홍은 그 벚꽃색 눈동자를 조금 깜빡이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어딘지 초췌해보였기만 다홍은 나비를 찾아 훨훨 날아갔다.
현율을 잡으려고 뻗었던 손은 그를 못 본 듯 돌아서버리는 현율 탓에 닿지 못했을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그대로 잡지 못 하고 멀리, 멀리, 사라져버릴 것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정말로 사라지진 않았지만.
무사하다면 무사히 계곡을 건너온 뒤로도 다홍의 안색이 그리 좋지 못 하다는 걸 현율이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괜찮냐던가 잠시 쉬라던가 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전과 같이 찾을 것을 알려주고 찾는 걸 일임한 뒤 자신은 더욱 유유히 나아갈 뿐이다. 아까는 그래도 주변을 둘러보기라도 했는데, 여기선 그런 기색도 없다. 산보라도 하듯이 날개짓을 너울너울 하고 있다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힐끔 돌려 다홍을 본다.
"지금 물어도 대답해줄 수 있는데? 나간 뒤에 한꺼번에 물어봐도 되긴 하지만."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냐는 듯 답해주는 현율의 목소리가 가볍다. 초췌해진 다홍의 낯빛을 보면서 말이다. 군데군데 녹색으로 물든 날개를 크게 펄럭여 제자리에 선 현율은 반쯤 몸을 돌려 다홍을 향한 뒤 말을 잇는다.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다홍에게 칼을 겨눈 상대를, 다홍이 과연 물리칠 수 있었을까?"
상대를 죽이거나 자신이 죽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다홍은 망설이지 않고 자신만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
키득키득. 의미심장한 말들을 내놓고 현율이 웃으며 돌아선다. 녹색으로 물든 두 팔로 가지 다발을 안고, 녹색으로 물든 드레스 자락을 늘어뜨린 채, 녹색이 스며든 날개를 펄력여 멈추었던 길을 느긋히 나아간다. 길도 없는 숲 속을 헤매여도 좋다는 듯이.
선문답 같은 대화가 오가던 중, 다홍의 시야 한켠에 나비가 한마리 포착된다. 역시나 금빛인 나비는 이전 나비들과 달리 제법 크고 빛도 선명하다. 날개짓을 할 때마다 금빛 인분이 주변에 뿌려지는게 보일 정도다. 그 나비는 허공에 두어번 원을 그리며 날고 있다가 다홍이 발견하면 움직이지 시작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기류라도 타듯이 천천히 날개짓을 해 어디론가로 가고 있었다.
잡아야할 때를 놓치면 영영 잡지 못하는 게 아닌가. 손은 닿지 않았지만 다홍은 그것마저 알고 있었다는 듯이 미련없이 뻗었던 손을 거둬들였다.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태도였다. 아니면 학습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제 낯이 얼마나 초췌한지 알고 있기라도 한 듯, 계곡을 건넌 뒤에 제 낯을 쓰다듬은 뒤 호흡을 내쉬며 가다듬었다. 역시나 다홍은 녹음이 짙은 숲을 바라보며 아득히 먼 이상향을 보는 시선을 던졌다. 조금 쉬어도 좋다던가, 괜찮냐는 제안을 하지 않는 현율의 태도가 차라리 편했다.
이런 상태에서 조금 쉬었다 가던가, 괜찮냐는 물음을 받으면 뭐라고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의미가 불분명한 눈웃음만 지어보였을테니까. “대답을 바라고 물어본 질문은 아니였는데 말이야.” 다홍은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면서 중얼거렸다. 초췌해진 제 낯을 바라보는 현율의 시선에 제 손으로 낯을 가리면서 다홍은 시선을 외면했다. 처음으로.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칼을 겨눈 상대인가. 죽이거나 죽어야하는 상황의 선택지에서 망설임없이 스스로만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굴어야하는 상황.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는데 너는, 내 성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방금 전에 한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 뉘앙스였고.”
녹색으로 물든 드레스 자락과 녹색이 스며든 검은 날개를 바라보면서 나긋한 로우톤으로 친절하고 상냥하게 중얼거렸다. 선문답같았지만 의미가 깊지 않은 선문답이다. 다홍의 벚꽃색 눈동자가 선명한 금빛 나비를 발견했다. 이질적으로 큰 나비였다.
이쪽- 이라고 알려주듯 제 시선이 닿았을 때 그 커다란 날개를 팔랑이며 앞장서서 날아가는 나비를 손으로 가리킨 뒤 다홍은 그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시선을 외면하는 다홍에게 현율은 역시나 아무런 말도 채근하지 않는다. 의문형으로 말했으면서 애초에 대답을 바라지 않았던 것처럼. 그런 행동들마저 다홍에게는 마치 다홍의 내심을 전부 꿰뚫어본다는 감상을 주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다홍이 그리 말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머, 기분 탓이야. 라고 말하면, 믿을래?"
다홍의 중얼거림에 현율이 그런 답을 돌려주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겠지. 이번에도 역시, 대답은 기대하지 않는 눈빛을 하고 있으면서.
끝을 알려줄거란 나비가 나타나고 다홍이 뒤를 쫓기 시작하자 숲의 전경이 미묘하게 바뀐다. 지금까지 무질서하게 나무가 자라 있었다면 나비가 향하는 길은 누군가 반듯하게 심은 듯 나무들이 질서정연하게 자라있다. 그리고 또다른 점은 그 전까지의 나무와 다르게 녹색이 점점 줄고 있다는 것이다. 녹색이 침범하지 않는 무언가가 나무들 너머에 있는 것처럼. 하지만 아직 녹색이 물들지 않은 나무들은 바깥의 나무에 비해 덜 자라보인다는 점을 생각하면-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도.
[...ㄷ와ㅈ...]
나비를 따라 나아가던 중 희미한 목소리가 다홍의 귀를 간지럽힌다. 아주 희미한 소리지만 어째서인지 들렸을 그 목소리는 앞으로 갈수록 들리는 빈도가 잦아진다. 젊은 남성으로 추정되는 목소리는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도와줘...살려줘...] [날 여기서 꺼내줘...]
너무나 절절한 외침이었기에 저절로 그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걸음을, 아니, 날개짓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았어도 나비가 소리의 근원지로 보이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을테니 갈 수 밖에 없었겠지.
좋든 싫든 나아간 끝에 나타난 것은 아주 오랜 세월을 자란 듯한 거목이다. 지면으로 두터운 뿌리가 듬성듬성 보이고 하늘을 덮어버릴 듯이 가지를 뻗어 수많은 잎사귀를 살랑이는 거목. 그 거목은 놀랍게도 온통 황금색이었다. 지금까지 본 나무들과 달리- 지금까지 꺾어온 금빛 가지들과 같은 금빛이다. 화려함을 뛰어넘어 웅장해보이기까지 하는 나무.
그러나 단 하나. 그 나무에서 눈에 띄는게 있었다. 나무 기둥의 중간쯤에서 튀어나온 그것은 마치 나무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 같은 형상이다. 자세히 보면 사람 같은게 아닌 진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무와 동화된 듯 전신이 나무결 무늬라는 것만 빼면 20대 로 보이는 남성이다. 남성은 아주 느릿느릿 움직이며 입이 벌어질 때마다 계속 들려오던 외침을 내었다. 이제는 가까이에서 들리는 외침의 간절함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나무에 붙잡혀 어쩌면 먹히는 중일지도 모르는 그 남성을 보고, 다홍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기분 탓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믿을거냐고 되물음을 던져오는 건 무슨 심보인지. 다홍은 흘겨보듯 벚꽃색 눈동자를 가늘게 뜨고 현율을 곁눈질했다. 이미 지금까지 한 행동만 보더라도 자신을 꿰뚫어보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을. 거기다가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눈빛까지. “-네가 그렇다면 기분 탓일테지.” 다홍은 나비의 움직임을, 흘기듯이 바라보던 시선을 옮겨서 바라보며 단호하게 대꾸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미가 강하게 담긴 어투와 행동이었다.
나비의 뒤를 쫒자,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서 무성하게 우거져 있던 녹음들 사이로 서서히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길이 생기는 기분이였다. 반듯하게 길의 좌우로 늘어져 있는 나무들. 이상하리만치 점점 줄어들고 있는 녹색. 정확하게는 녹색에 물들지 않은 덜 성장한 나무들이 시선에 잡혔다. 현율의 말을 빌자면 미쳐버린 화가의 최후의 정신 같은 걸까. 다홍은 그 덜 성장한 나무들을 보며 생각했다. 정신의 가장 안쪽. 또는 심층부같은-. 생각을 거듭하던 다홍은 이 여정 속에서 두번째로 멈췄다.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들려오는 젊은 남자의 목소리. 도움을 청하는 그 목소리. 절절하게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에 다홍은 뒷걸음을 칠 생각도 하지 않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비를 따라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누군가 본다면 지나치게 필사적인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어차피 나아갈수 밖에 없는 길목이였다. 나비는 분명하게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이끌고 있었다. 저 목소리를 도와달라는 것처럼.
황금색의 거목의 등장에 다홍의 시선이 그 거목을 천천히 바라봤다. 웅장한 그 모습에도 들려오는 목소리의 위치를 찾는 게 먼저였다. 다홍의 시선에 거목의 중간에 튀어나온 사람의 형상, 아니 사람이 잡힌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느릿느릿하게 입을 움직이며 도움을 청하는 그 젊은 남성의 형상을 보며 다홍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런 것인 줄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들어오지 않았을텐데. 거짓말. 알았어도 들어왔을 것이다. 간절한 그 외침에, 다홍은 아득히 먼 곳에서 무언가를 겹쳐서 듣기라도 한것처럼 거목에 잡아먹히고 있는 남성을 지긋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온순하고 온화한 낯이 흐릿해졌다.
끝이 보이는 결말이라도.
“내가.. -어떻게 해야 내가 널 도울 수 있을까.”
붉은색의 장옷이 푸른색 나비 날개처럼 흔들렸고 다홍은 젊은 남자의 형상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붉은색과 푸른색의 소원팔찌가 걸려 있는 다홍의 손이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 형상에게 향하고 절절한 도움에 답하듯, 혹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끝이 보이는 것이라 해도, 그럴 수 밖에 없음을 다홍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대충 다홍주는 다홍의 행동이 트롤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ㅋㅎ!!!🤦♀️
처음부터 그랬고 여태 그러했듯이. 현율은 그저 지켜볼 뿐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그 순간에서, 무엇을 선택하는지. 무슨 행동을 하는지. 모든 것은 당사자에게 맡겨놓고 다만 그 대가만을 대신 치러준다. 어떠한 대가라도 웃으며 받아들여주었지만-
당사자가 감당해야 할 감정의 무게만큼은 현율조차 대신해줄 수 없는 것이었으니.
거목에 붙잡힌 남성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다홍을 보며 구원 받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남성에겐 다홍의 모습이 필히 선녀와도 같이 보였겠지. 상냥한 손이 뻗어오는 것을 보며 느릿하게나마 나무결 새겨진 손을 움직여 그 손을 잡고자 했을 터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응당 마땅해보이는 행동이라 할 지라도, 그것은 분명 다홍의 일이 아니었다.
[..손...대지...마....!]
촤악-
다홍의 손이 남성에게 닿기 직전, 거목에서 소름끼치는 음성과 함께 순식간에 덩쿨 같은 줄기가 자라나며 다홍에게 뻗쳐온다. 명백히 적의를 띈 줄기는 끝부분이 뾰족해 스치기만으로도 큰 부상을 입을 것만 같다. 그런 것이 다수, 동시에, 재빠르게 뻗쳐오니 피할 길이 없어보였겠지만. 정말 짧은 찰나의 순간 누군가 다홍의 장옷 뒷덜미를 잡아 뒤로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신한다. 줄기보다도 빠르게 움직인 형상은 이제는 녹색이 더 많은 검은 옷의 사람- 현율이었다.
"룰 지킬 자신은 없지만 노력은 해본다더니. 그럴 생각도 없어보이던데. 응?"
방금 전까지 다홍이 있던 자리에 선 현율이 다홍을 보며 말했다. 말하기가 힘든지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있었지만 예의 그린 듯한 미소는 여전하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몸 곳곳이 다홍을 향해오던 줄기에 꽂혀 박제당한 나비마냥 붙잡혀 있으면서. 검은색과 녹색이던 드레스에 기어코 붉은색을 더하고 있었으면서. 팔에도, 다리도, 가슴팍에서도.
"일단은 일부터 끝내볼까."
줄기에 꿰뚫려 날개짓을 할 필요조차 없어진 현율이 태연히 그렇게 말하고 작게 기침을 하자 입가에 붉은 한줄기가 흘러내린다. 보통 사람이라면 생사가 위중한 순간일텐데 현율은 아무렇지 않게 일부터, 라 말하며 들고 있던 금빛 가지 다발을 살짝 들어올린다. 다홍이 꺾고 현율이 들고 온 가지들은 감싸고 있던 천에서 벗어나 거목의 옹이 구멍으로 꽂힌다. 들고온 가지가 모두 꽂혀 구멍이 메워지자 가지들이 새로운 큰 가지를 만들어낸다. 동시에 잠깐 거목이 반짝인다 싶더니 현율의 몸에 꽂았던 줄기들을 하나 둘 거두어간다. 그리고 거목에서 도망치려던 남성을 휘감아 도로 거목으로 끌어들였다.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여자의 형상이 줄기들에 의해 붙잡혀오는 남성을 두 팔로 끌어안고 있었다.
[보내주지 않아...절대로...] [안 돼...안 돼..!]
다정한 여성의 목소리와 그에 상반되는 남성의 절규가 울리며 두 형상은 거목의 안으로 사라져간다. 잠시 뒤에는 그저 거대한 나무의 기둥만이 현율과 다홍의 앞에 있을 뿐이었다.
내밀어진 남자의 손을 잡기도 전에 다홍은 들려오는 적의를 담은 목소리에 뻗은 손을 거두거나, 뒤로 물러날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덩쿨의 줄기가 뻗어져 나와 자신을 공격하려는 것을 알면서도 물러나지 못한 것은-, 무슨 이유였나. 정말로 물러나지 못한건가. 물러나지 않은건가.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외면하고 있었던 것. 이미 구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임을 다홍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다홍에게 있어서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냈다.
“ㅇ... 현율아!”
시야를 가리는 녹색에 물든 검은색 드레스, 현율의 모습에 다홍의 낯이 창백해졌다. 턱까지 차오른 아가, 라는 호칭을 삼켜내고 이름을 부른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나는 대체 무슨 짓을. 대상이 불분명한 감정이 다홍의 속에서 차올랐다가 거품처럼 터져나갔다. 차오르는 숨을 다잡으며 다홍은 현율의 모습을 자신의 벚꽃색 눈동자가 고스란히 담았다. 룰을 어긴 댓가는 네가 치르는 것이였니. 붉은색과 푸른색의 소원팔찌가 걸려있는 손이 현율에게 뻗어졌다가 거둬졌다.
이곳은 내가 알던 것과 달라. 일부터 마무리 지어보자며 현율은 금색 가지 다발을 들어올렸고 가지들이 옹이에 자리를 잡고 새로운 가지가 만들어지며 남자를 거목으로 끌어들이는 모습을 바라보던 다홍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몰랐다. 여자가 남자를 감싸서 거목 안으로 끌어들이는 모습을 바라보던 다홍은 양손을 모아 꽉 움켜쥐었다. 떨림을 감추려는 기색이 짙었다. 이내 그 모아쥔 손을 떨어트리고 다홍은 현율이 거부한다고 해도 그 팔을 잡았을 것이다. 온화한 낯이 단호하게 굳어서는.
“잡으렴. 아니면 기대던가. 룰을 어기는 대가를 네가 치르는 것이였다면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게야. 이번에는 거부하더라도 내가 거부할 것이야. 그리고-”
줄기에서 벗어난 현율의 몸은 점점 붉은색이 번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현율은 아픈 소리, 앓는 소리 한번 없다. 다홍이 다가와 억지로 팔을 잡아도 보통 사람이라면 해야 할 반응조차 없다. 그저 가만히 잡힌 팔을 보다가 웃는 얼굴로 말할 뿐이었다.
"그걸 정말 몰라서 그런거야? 아니잖아, 안 그래?"
처음부터 다홍이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을 꿰어 보고 있었다는 듯이- 현율의 시선은 날카롭다. 분명 웃고 있을 것인데. 그 말만 하고 현율은 자신의 팔을 잡은 다홍의 손을 가볍게 두드린다. 매섭게 후려치지 않고 한없이 가볍게, 톡톡 하고 건드리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작용해 다홍의 손에서 현율의 팔을 떼어낸다. 그 뒤 가볍게 뒤로 한걸음 물러난 현율은 태연히 말했다.
"가자고 안 해도 나가야 할 시간이야. 역할은 끝났으니까."
그 말과 동시에 시야의 가장 바깥쪽에서부터 풍경이 조각조각 흩어져내린다. 자세히 보면 한조각 한조각이 나비가 되어 날아가버리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각양각색의 나비들이 떨어져나간 자리는 하얀 빛으로 채워진다. 이윽고 거목마저 한무리의 나비가 되어 사라지고 모든 풍경이 빛으로 바뀐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처럼 한순간 강렬한 빛에 감싸인다.
빛 속에서 다홍은 익숙한 신발의 감촉과 함께 발이 단단한 바닥에 닿는 것을 느낄 것이고, 빛이 가신 후 눈을 뜨면 그곳은 다홍이 찾아왔던 상담부 부실이 되어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몇걸음 떨어진 앞에는 처음과 같이 멀쩡한- 오른팔에 붕대를 한 현율이 있고 그 뒤엔 이제 그림으로 채워진 캔버스가 있었겠지.
"수고했어. 다홍아. 이대로 보상 받고 갈래? 아니면 질문할래?"
조금 전까지 꽤나 험한 몰골이었다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끔한 현율이 웃으며 물어오고 있었다. 궁금한게 있다면 물어도 좋아, 라고.
날카로운 시선을 맞이하며 다홍또한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것이 사실로 드러났을 뿐이다.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대신 치르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단지, 아니길 바랬던 것 뿐이다. 그 짐작이 진실이라면 자신만 괴로워질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 현율의 팔에서 떨어지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던 다홍은 꽤 오랫만에 쓴웃음을 지었다. 이것은 거부일테지. 아니면 거절이거나. 뒤로 물러나는 걸음만큼의 거리를 가늠해보던 다홍은 태연한 현율의 반응에 벚꽃색 눈을 깜빡이며 다른 손을 소원팔찌 위에 덮었다.
풍경이 조각조각, 한마리 한마리의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것을 바라보던 다홍은 손으로 덮은 소원팔찌를 낀 손을 꽉 쥐어봤다. 나비들이 떨어져서 날아가고 마지막의 마지막에 거목마저 한무리의 나비로 산화하기 직전, 다홍의 시선은 그 거목이 있던 자리에 머물렀다. 도와달라는, 살려달라는 남성의 외침이 아직도 귀에 맴도는 기분이였다. 역할이 끝났으면 이 이야기또한 끝난 것일테니까.
“질문.. 아니 설명이라고 해도 좋겠구나.”
익숙한 강렬한 하얀빛이 가시고 눈을 뜬 다홍은 처음 이 곳에 왔을 때처럼 멀쩡한-아니면 멀쩡하게 보여지는 것인지도 모를- 현율을 바라보다가 그림으로 채워진 캔버스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온화하지만 온순하지 않은 시선이였다.
“이야기의 진실은 어떤 건지 말이야. 남자는 정말로 미쳐 있던 건지.”
너는 괜찮아? 라는 물음은 던지지 않았다. 선, 다홍은 자신의 선만큼이나 현율의 주변에 있는 프라이빗 에리어를 존중하기로 했다. 미치광이 화가가 그렸다고는 했지만 마지막으로 봤던 그는 분명히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내가 거기에서 그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더라면 그는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