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쪽지를 교환해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고 몰래 약속한 곳에서 만나는 일. 어쩐지 거창한 단어 같기는 해도, ‘비밀모임’ 말고 달리 다르게 칭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쉽게 수긍해주는 단랑을 보고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고. 마주 웃은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려둔 가방을 다시 멨다.
“응, 너도 집에 가지? 지하상가 있는 데까지 같이 갈래?”
물은 우리가 제가 있던 자리를 꼼꼼하게 정리하고 미술실 문을 열었다. 누군가 있는지 두리번거리며 살핀 우리는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자 아직 미술실 안쪽에 있는 단랑을 향해 손짓했다. 지난 번엔 마냥 즐겁다고만 할 수 없는 귀갓길이었지만, 오늘은 어쩐지 기분 좋게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한 입 깨문다면 단 맛이 날 예감이었다.
일단 집에 가는 느낌으로 짧게 적어봤어요. 이 뒤로 집에 돌아가서 단랑이가 적당히 쉬고 있으면 우리가 먼저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고 단랑이가 먼저 메시지를 보내도 좋구요! 가볍게 주고 받다가 단랑주가 말하신대로 역에서 보면 될 것 같아요 ㅎ-ㅎ 단랑이 또래 아이들 모습 나오는 것 같아서 귀여워요~~ ㅠ-ㅠ 배싯 웃는 단랑이에서 저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 쪽은 샤워꼭지라도 틀어놓은 것처럼 잔뜩 쏟아지고 있어요. 귀가하고 난 이후부터 쏟아지기 시작해서 비를 맞거나 하진 않았고, 방에 가만히 앉아서 듣는 빗소리는 정말 좋아하니 나쁜 일은 아니지만요. 오히려 이 정도로 비가 내리고 나면 내일 아침은 조금 선선하지 않을까 기대해보게 되네요. (내일 아침까지도 이 기세로 내리고 있으면 안 되는데^p^) 오히려 낮에 정말 공기가 무겁고 후텁지근해서 고역이었네요. 우리주도 좋은 밤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레스 남겨두시고 주무시러 가시는 거면, 좋은 꿈을 꾸시기를 빌어요.
오늘 비 많이 안 왔어야 할 텐데요 ㅜ-ㅠ! 여긴 다행히 비는 안 오고 후덥지근한 날씨네요. 흐린 걸 보아하니 내일부터는 다시 오는 것 같지만요... 모기.. 맞아요 벌써 모기들이 슬금슬금 나오죠... 여름 다 괜찮은데 모기는 정말 ㅋㅋ큐ㅠㅠㅠㅠ 오늘은 부디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본격적으로 쏟아지는 장대비에 찐만두 그 비슷한 무언가가 되어버린 단랑주다.) 그래도, 차라리 이렇게 한번씩 시원하게 쏟아져버려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미스트처럼 찹찹 흩뿌리듯이 찔끔 와서 습도만 올려놓고 가는 가랑비보다야... 그렇지만 모기는 용서가 안 되네요. 비가 침울하게 쏟아져서, 좋은 하루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주 가시는 곳에 선선한 바람이 불기를 빌어요. 답레와 함께 갱신해두고 갈게요.
저는 "Red Moon" 스레에서 루이스 캄파넬라 "적영 고등학교" 스레에서 채별비 "HELPERS" 스레에서 폴라리스라는 캐릭터를 굴렸었고, 현재는 1:1 스레인 "초여름, 구닥다리 옛날 이야기였으면 했던" 스레에서 단랑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레스를 남기게 된 이유는, Red Moon/적영 고등학교/HELPERS의 3개 스레에서 무통보 잠수를 하게 되었고, 분쟁 조정 스레에서 HELPERS 스레의 캡틴과 조정을 거친 결과 여태껏 무통보잠수를 해온 3개 스레와 현재 활동중인 1개 스레에 어째서 말없이 잠수를 하게 되었는지/잠수를 하고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서술한 레스를 남기기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첫째, "Red Moon" 에서 작년 말에서 올해 2월까지 활동했으나 점점 접속이 뜸해지다가, 3월경에 들어서는 개강 및 답레 작성의 한계점에 부딪혀 접속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플러팅 스레임을 감안하고라도 감정교류보다는 선정적인 흐름을 타버린 점과, 서로의 심경만을 서술하다가 서술 교착 상태에 빠져 응답을 작성하는 것이 힘들어 텀이 늘어졌으며, 일과성 허혈 발작을 일으켜 입원 및 통원 생활을 하게 되어 기입이 끊기기도 했습니다. 돌아간다고 해도 어디서부터 합의점을 찾아야 할지 긴 공백기를 어떻게 메워야 할지도 난감했기에 되돌아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적영 고등학교" 스레에서 4월 말경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나, 실용음악에 대한 전공지식이 모자랐던 결과 캐릭터의 서술의 난해함/매너리즘에 빠져 캐릭터를 플레이하는 것이 힘들었으며, 중간고사 기간을 넘기고 5월을 넘어 기말고사 기간이 다가오면서 2학기로 연계되는 졸업작품 프로젝트에 지대한 차질+신체적 이상이 생겨 해당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간상의 문제로 접속을 줄이다가, 결국 접속을 거의 하지 않기에 이르렀습니다.
셋째, "HELPERS" 스레에서 5월 초에 활동하기 시작하였으나 얼마 가지 않아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는데, 진행상의 불일치점(진행은 쉰다는 안내에 다른 일을 하러 갔는데, 그 사이 다른 두 플레이어와 진행을 했던 점)으로 인해 스레에서의 소속감에 의문을 느꼈고, 또한 상술한 현실 생활에서의 차질 및 신체적 이상으로 인해 통보 없이 접속을 하지 않기에 이르렀으며, 6월을 거쳐 7월인 현재까지 접속하지 않았습니다.
앗 아뇨! 사과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는 어느 방향으로 진행되어도 괜찮아서 단랑주가 몸과 마음이 편하신 쪽으로 결정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재개하는 것도 좋구요. 여유 있게 시간 두고 잘 생각하신 다음에 답 주셨음 해요. 날이 많이 덥네요 ㅠ-ㅠ... 오늘도 고생 많으셨고 좋은 저녁 보내세요~
용서해주시고, 상냥한 말씀까지 해주신 점 감사합니다. 우리주께서 단랑이와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으신 의사가 있는지에 따라 결정하려고 했습니다만... 말씀하신 대로 사나흘 정도 휴식기를 가지는 것도 좋은 생각이겠네요. 이런 일도 있었던데다, 저도 현생 스케줄이 퍽 고달픈 편이고 우리주도 바쁘신 듯하니까요. 우리주도 느긋하게 휴식하시고, 이야기를 다시 이어나갈 마음이 드셨을 때 다시 답레를 남겨주세요. 우리주께서 답레를 남겨주실 때 돌아오겠습니다.
비가 쏟아지고 나니 밤바람이 차네요. 주무실 때 여름감기 걸리시지 않도록 보온에 신경써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어요.
주말 잘 쉬셨나요? 시간 정말 빠르네요... 벌써 월요일이야.... 아니 이제 곧 화요일이죠.. 단랑주가 괜찮으시다면 내일이나 모레 중으로 이어두려고 해요. 혹시 휴식이 조금 더 필요하시거나 지속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드신다면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그럼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푹 쉬세요~ ㅎ-ㅎ
먼저 갱신할 염치가 없어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주께서 원하신다면 저는 계속 이 이야기를 유지시키고 싶기에. 모쪼록 편하실 때 계속 이어주세요. 우리주께서는 잘 지내고 계셨나 모르겠네요. 요 며칠간 워낙에 더웠어야죠. 거기다가 이게 시작이라니... 우리주도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 우리가 타기로 한 열차는 5번 승강장이래 ] <[ 승강장에서 만나자 ] <[ 선크림 꼭 챙겨! ]
* * * * *
운정기차역은 운정시의 크기에 비해서도 꽤 큰 편이었는데, 그것은 운정역이 커다란 2개의 철도선의 환승역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넓은 운정역은 한산한 아침이라도 사람들이 꽤 많은 편이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소년을 찾는 것은 퍽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놀이공원 수준으로 붐비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승강장으로 내려오는 개찰구 저만치에서부터 승강장의 밴치에 크로스백을 맨 채로 단정하게 앉아있는 그의 모습이 잘 보였기 때문이다. 하늘색의 품이 넉넉한 셔츠에, 짙은 데님 바지를 입고 있는 하얀 머리의 소년은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철로 너머를 막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유부초밥과 과일 도시락을 넣은 백팩을 매고, 선크림까지 꼼꼼히 바른 우리가 집을 나섰다. 부모님께는 공부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나온 탓에 조금 죄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막상 나와서 몇 걸음 걷다보니 금방 잊혀질 만큼 날씨가 좋았다. 나들이 가기엔 딱 좋은 날씨였다. …물론 단순한 나들이는 아니라고 해도. 역에 도착해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우리는 오래 지나지 않아 단랑을 발견했다. 반가움에 웃음 지은 우리의 걸음이 빨라졌다.
아무래도 가족들이랑 함께 먹는 거랑은 조금 다르게 느껴지나봐요. 일정이 잘 맞아서 그때는 본가에 가실 수 있음 좋겠네요. 장마 끝, 폭염 시작이라더니 날씨가 하루하루 살벌하게 더워지고 있어요 ㅋㅋㅋ큐ㅠㅠㅠㅠ 가만히 있으면 안 덥다는 말이 들어맞지 않는 요즘입니다.. 날도 더운데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이래저래 상황이 도와주진 않지만 ㅇ<-<... 내일 즐거운 금요일 보내셨음 해요~! 일단 오늘 푹 주무시구요!
잠이 쏟아져서 자려고 누웠다가 마지막으로 한 번 확인하던 차에 갱신된 것을 발견했네요... 우리주도 오늘 하루 고생많으셨어요. 날씨가 정말로 40도를 찍어버리는 걸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88 그래도 에어컨 나오는 실내에서 가만히 옹송그릴 수 있으면 괜찮은 날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주도... 좋은 밤 보내시길 빌어요. 답레는 내일 드리기로 하고,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그래도 주말에 만나서 하기로 한 일 중에는 숙제를 같이 하는 것도 있으니까, 너무 거짓말이라고 불편해하지 않아도 좋을 듯하다. 그렇게 되면 거짓말이라고 할 수는 없는 셈이니까. 그래도 참 정말이지 공부만 하고 있기에는 아까운 날씨이기도 했다. 한 번 정도는 특별한 주말이 있어도 되지 않을까?
"나도 온 지 얼마 안 된 참이야."
밝게 건넨 인사에, 단랑도 곱게 웃어보인다. 그가 웃을 때에는 뙤약볕이 따갑던 개찰구에 한 줄기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어 당신과 단랑의 이마를 쓸고 지나간다.
"그러게. 여행가기엔 좋은 날씨네."
그러고는, 단랑은 조금 이상한 질문을 꺼냈다.
"오는 길에 딱히 뭐 이상한 것이 눈을 마주쳐오거나, 말을 걸어오거나 하진 않았지?"
* 그러고 보면 운정지하도에서 그 유충이라는 것을 잡은 이후로, 당신은 원래 일상에서 보이지 않던 이상한 것들을 종종 눈치채는 순간이 한두 번 정도는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벤치 밑이나 가로등 뒤편 같은 으슥한 곳에서 어슬렁거리는 조그맣고 말라빠진 아귀들이라던가, 노숙자를 둘러싸고 키득거리는 아이들이라던가, 건물 틈새에서 스멀스멀 움직이는 이상할 정도로 키가 큰 사람이라던가.
그러나 그런 것들은 당신과 눈이 마주치면, 당신이 그것과 눈이 마주쳤을 때만큼이나 화들짝 놀라서는 황급히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곤 하는 것이었다. 그 이상한 것들은 당신을 두려워하는 낌새였다. 흔히 보이는 인터넷 괴담 썰처럼 "너 나 보여?" 하고 다가와서는 "너 나 보이잖아아아아아" 하고 땡깡을 부리는 케이스는 단 한 건도 없었다. *
그러니 물어보나마나 한 질문이다. 단랑이 보기에 오늘은 당신에게 뭔가 엉뚱한 게 달라붙은 기색이 없었으니까. ...자기 꼬리였던 것을 빼면 말이다. 그는 아직도 당신의 머리에 여우 귀인지 너구리 귀인지 분간 안 가는 귀가 아직도 깜찍하게 달려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 별표 사이에 써진 내용은 우리주의 취향에 따라 없는 것으로 할 수도 있고 그런 일이 있었던 것으로 할 수도 있으니 원하시는 대로 해주세요.
기다렸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고된 기다림은 아니었을 것이다. 벤치에 앉아 있었고, 이용객을 위해 승강장에 쳐놓은 차양의 그늘이 벤치에 드리워져 있었으니까. 당신이 기대감을 가득 담아 던진 말에, 단랑은 대답을 바로 하지는 못했다. 걔들이 아무래도 널 우리들 중의 하나로 보는 것 같아. 라는 말을 당신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가 없으니까.
그렇지만 그것은 본가에 도착해서 할아버지께 여쭈어보아 해결할 문제고, 지금은 여행길에 따라붙는 칩칩스러운 잡귀가 없다는 점을 잘 된 일이라고 인정해주어야겠지.
"그렇네. 걔네들이- 그래, 걔들은 널 무서워하는 게 맞을 거야. 잘됐네."
단랑이 내어놓은 대답은 당신이 설마 하는 그 대답이었다. 그때 열차가 들어오는 것을 알리는 신호음 소리가 역 안에 울려퍼졌다. 이윽고 안내방송이 그 뒤를 따라서 흘러나왔다.
-5번 승강장으로 예성, 예성행 1059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탑승구에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게요... 저도 답레만 써야지- 했다가 무심코 잠들어서, 이제야 깨서 늦은 저녁 간단하게 먹었어요. 확실히 더운 여름에는 움직임을 줄이는 게 현명한 일이지만...... 전 너무 지나치게 자버렸나 봐요. 88 우리주도 좋은 저녁 보내고 계시길 바라면서, 천천히 답레 써서 드릴게요.
동그랗게 눈을 뜨고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에 단랑은 곤란한 듯이 웃어보였다. 사실 단랑도 간략하게나마 당신에게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설명해줄 수 있지만, 흔히들 말하는 사람의 기라느니, 음양이라느니 팔자라느니 하는 수상하게 들리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찜찜했던 탓이다. 그는 그 대신에, 열차가 역으로 들어오는 동안 당신의 어깨를 살며시 붙잡았다.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내는 소음이 역을 울렸다. 이내 열차는 정차구역에서 멈춰섰고, 문이 덜컥 열린다.
단랑은 당신의 어깨를 놓아주고는, 다소곳하게 당신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객차로 올라설 때는 바깥의 후덥지근한 여름 공기와 대비되는 에어컨 바람이 얼굴에 훅 끼쳐온다.
"여행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당신의 바로 옆자리에, 단랑은 여우가 자리에 올라앉듯이 살며시 앉았다. "숙제는 금방 끝내버리지, 뭐." 하고 당신을 돌아보며 웃으려던 단랑은, 어라- 하는 표정이 됐다. 그게 옆자리라는 게 이 정도 거리감인 줄은 몰랐어서. 단랑은 이 시점에서 엉뚱하게도 백미러를 떠올렸다. 백미러에 종종 이런 문구가 적혀있지 않은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음>
단랑은 크로스백을 뒤적여선, 괜히 시선을 피하며 공책 한 권을 꺼내서 부채질을 했다. 공책이 펄럭이는 바람이 당신 얼굴에도 시원하게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