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주의 타이밍 감각에 박수를 보내요. 네, 주말 동안 이리저리 예정에 없던 외출에 끌려다니긴 했지만(그 덕분에 답레손실이 엄청 뼈아프게 났지만 8-8) 그럭저럭 잘 보냈어요. 일단 지금은 저녁을 건너뛴 제 호적메이트랑 밤참을 차려먹기로 한지라.. 다음 답레가 또 늦어질지도 몰라요. 8.8 답레는 모쪼록 느긋하게 써 주세요.
본가는 다른 곳에 있었구나.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과 함께 지냈던 우리에게 홀로 사는 일은 조금은 동경할 만한 것이었고, 또 조금은 신기한 일이었고, 약간은 쓸쓸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멋대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실례니까. 설레설레 고개를 저은 우리가 조금 고민하는 얼굴을 했다.
“내 시간 빼는 거야 어렵지 않은데, 부모님께 뭐라고 말씀 드릴지가 고민이네. ...역시 친구랑 같이 공부한다고 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일까.”
어딘가 결연함마저 느껴지는 얼굴로 말했다. 이 시기 학생에게 공부나 숙제 같은 단어는 거의 프리패스권이었다. 우리라고 예외일 리 없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예성시까지 가는 시간을 가늠해보던 우리는 무의식 중에 단랑에게로 시선을 옮겼다가, 아주 옅게 구겨지는 그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방금 떠올린 방법이 딱히 좋은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에 기차를 타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섰다.
“아냐, 괜찮아.”
사실 좋은 일로 가는 거라 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이 예정된 여정에 조금 떨리는 걸 느꼈다. 어쨌거나 익숙한 공간을 떠나는 일이 아닌가. 시간이 남는다면 바다 구경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구나. 물어보길 잘 했다. 나 하마터면 과일바구니나 주스 같은 거 들고 갈 뻔 했어.”
유부초밥 네 글자를 머리에 꼭꼭 눌러 쓴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알았다는 표시였다. 직접 만드는 게 나을까,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는 곳에서 사 가는 게 나을까. 소소한 고민에 침묵을 지키던 우리가 시야를 간질이던 꼬리가 조금씩 줄어드는 모양에 단랑을 쳐다봤다. 아차, 실례가 됐을지도. 잠깐 다른 쪽으로 눈을 굴린 우리가 단랑의 물음에 다시 그를 바라봤다.
“어..., 아니. 그런 적은 없는 걸로 알아.”
우리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보통을 벗어나 본 적 없는. 비록 지금은 평균 키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긴 했지만, 평균 밖인 건 그게 고작이었다.
시간내어 답레 이어주셔서 감사해요. 우리... 뭐라고 해야 될까 똘망똘망하고 호기심많고 예절바른 게 골든두들 같아서 귀여워요.. 네, 답레는.. 지금 바로 잇고 싶지만, 아무리 봐도 지금 답레를 이을 만한 기력이 없으므로 내일 이어오겠습니다.. 우리주도 평안한 밤 되시고, 좋은 한 주가 되기를 바라요. 안녕히 주무세요.
제가 재밌어서 잇는 답레인걸요! 골든두들 검색해보고 왔다가 귀여워서 심호흡 해야 했네요... 우리를 귀엽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단랑이는 잘생긴 여우예요. 같아요를 쓰지 않은 건 이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ㅎ-ㅎ 오늘도 자기 전에 뵐 수 있어서 좋았어요. 푹 주무세요, 단랑주~
엄밀히 말해 혼자 사는 건 아니었고, 개성 강한 하숙집 메이트들이 있지만... 음, 그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당신이 알아도 좋을 만한 사실은, 그도 당신만큼이나 하숙집 말고 아예 원룸 얻어서 혼자서 자취를 해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일까. 당신의 고민에 단랑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덧붙인다.
"음... 그렇게 말하고도 부모님이 납득 못하시면, 내 번호 줄 테니 내가 부모님과 통화하게 해줘."
그는 자기 옆에 놓여있던 연습장의 종이 한귀퉁이를 쪽 찢더니 정갈한 필체로 연락처를 삭삭 써내려서는 당신에게 건네어준다. 당신의 부모님을 설득할 좋은 수단이 있는 걸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기도 하다. 단랑의 성적은 전교 최상위권이었으므로, '저번 중간고사 때 우리 학교에서 몇 등 한 애랑 친해져서 같이 공부하기로 했다' 고 말하면 "그것 참 좋은 친구구나" 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굳이 타박하거나 비평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당연하게도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하니까.
"과일-" 당신의 말을 단랑이 가만히 되뇌어보다가, 딴데 팔려있던 정신을 다잡는 듯이 눈을 깜빡인다. 그러다 당신이 꼬리에 시선을 두는 것을 보았는지 소년은 옅게 웃었다. 그의 허리춤에서 줄어들던 새하얗고 복슬복슬한 꼬리가 다시 여섯 갈래로 피어나 폭신하게 살랑인다. "왜. 만져볼래?" 하고, 조금 장난스러운 질문이 건네어져온다.
공부에 영 취미가 없는 우리라 아마 부모님은 공부라는 단어를 꺼냈다는 것으로도 기뻐하며 등 떠밀어주실 테지만, 또 혹시나라는 게 있으니까. 아마 단랑의 등수까지 얘기한다면 그 혹시나도 사라질 것 같긴 하다. 오히려 공부하고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면서 용돈을 쥐여주실지도. ...그걸로 유부초밥을 사서 갈까? 우리가 잠깐 생각했다.
“아, 응. 고마워.”
쪽지를 받자마자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 우리가 적힌 번호를 저장했다. “잠깐만....” 중얼거린 우리는 계속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저장만 하는 거라면 아직까지 휴대폰을 붙들고 있을 리 없는데, 우리의 손가락이 이상하게 오래 꼬물댔다. 조금 지나면 단랑의 휴대폰이 울렸을 것이다. 확인해 보면 도착해 있는 메시지. <안녕, 나 우리!> 느낌표 뒤에는 웃는 얼굴을 한 이모티콘이 하나 붙어있다.
단랑이 웃는 얼굴을 조금 신기하게 쳐다 본 우리가 다시 늘어나는 꼬리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들린 말엔 도리어 제가 난감한 얼굴을 했다.
“...그래도 돼?”
미간을 좁힌 채 고민하던 우리가 물었다. 우리에겐 꽤 심각한 고민 끝에 나온 질문이었는지, 입술까지 동그랗게 모은 채였다.
당신이 핸드폰을 잠깐 붙들고 있자, 부모님한테 연락드리는 건가 하고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단랑은 뜬금없이 자기 핸드폰의 알림음이 울리자 조금 놀랐다. 눈에 띄게 움찔하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에 눈을 조금 휘둥그레 뜨는 정도로. 그는 자기 핸드폰을 꺼내며, 멋적게 머리를 긁적였다.
"네 번호를 달라고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하고 그는 웃는다. 곤란해하는 듯한? 아니, 저건 쑥쓰러워하는 듯한-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뜻밖에, 가족과 선생님들의 전화번호만이 저장되어 있던 삭막한 전화번호부에 처음으로 반 친구의 전화번호가 남았다. 그것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몰라 단랑은 말을 아꼈다. 절대로 나쁜 기분은 아닌데, 티내기에는 왠지 쑥쓰러운 그런 기분이었기에.
"...그래도 알려줘서 고마워." 단랑은 핸드폰을 톡톡톡 건드렸다. 곧 당신의 핸드폰에 알림이 간다. 채팅창에 들여다보면, 참 짓궂게도 뭐라 말은 없이 🦊 이모지 하나가 대답으로 톡 띄워져 있다.
당신은 힘겨운 고민 끝에 내놓은 대답임에도 그는 여전히 너그럽다고 해야 되나, 느긋하다고 해야 되나 옅은 웃음을 얼굴에 건 채로 꼬리들을 살랑 흔들었다.
"어디까지나 네가 그러고 싶다면."
꼬리를 만지는 게 (어쩌면, 허락하에 꼬리를 만지는 게) 딱히 크게 실례되거나 하는 일은 아닌 모양이다.
끝에 가선 조금 자신감이 줄어든 목소리였다. 그야 괴이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것도 단랑이었고, 성적도 단랑이 월등히 좋은 데다 학교 생활도 무난하게 잘 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내 도움이 필요할까? 고민에 빠진 우리의 얼굴이 또 다시 심각해졌지만 곧 좋은 대답을 생각해낸 듯 환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 그래도 친구니까.”
어떤 조건을 만족해야 단랑의 친구가 될 수 있는지는 몰라도, 일단 단랑은 제 친구였다. 친구라면 휴대폰 번호 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우리의 지론이다. 고맙다는 말에 웃은 우리가 다시 울리는 제 휴대폰을 봤다. 여우 이모티콘을 하나 보낸 게 참 잘 어울리기도 하고, 의외이기도 하고.
흔들리는 꼬리에 시선을 뺏겼던 우리가 단랑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실례합니다.”
조심조심 손을 뻗어 살짝 건드리곤 눈치보듯 단랑을 쳐다봤다. 어정쩡하게 꼬리에 손을 올린 채로. 손에 닿은 하얀 털은 보이는 것만큼이나 부드러웠다. ...근데 손을 언제쯤 떼야 하지?
조금씩 줄어들던 목소리가 갑자기 피는 게, 왠지 나팔꽃 같아 단랑은 하려던 말도 잊고 당신을 바라보았다. "친구..." 단랑은 문득 다시 핸드폰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고우리, 라고 적힌 이름이 전화번호부에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친구. 친구. 낯선 울림이다. 당신의 손끝이 폭, 하고 하얀 털 사이에 파묻힐 때 단랑은 당신에게 시선을 둔 채로 당신의 이름을 나직이 불렀다.
"우리야. 고우리. 맞지?" 하고는, 조금은 어색하게 웃는다. "제대로 입으로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그러고 보면, 서로 누가 누군지도 알고, 편지도 자주 주고받았고, 서로 이름도 알고 있었을 텐데 서로를 제대로 불러본 적은 없다. 그래서, 당신과 이 소년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알고 있는 정도에 비해 조금 뒤늦게서야- 그러니까 이제서야 시작했다.
"나 어쩌면, 너한테 도움을 엄청 많이 받아야 할지도 몰라." 살랑, 하고 흔들리는 하얀 꼬리가 푹신해서, 털이 길고 숱이 많은 어떤 동물의 등을 쓰다듬기라도 하는 느낌이다. 그것은 꽤 따뜻했다. "어머니는 나더러 항상 교우관계를 넓게 가지는 게 좋다고 말씀하시는데... 사실, 나 사람 대하는 걸 잘 모르고... 조금 무서워서, 여태껏 누구와도 전혀 가까워지지 못했거든."
당신도 알고 있었겠지만, 단랑은 반에서 자기 혼자 조금 둥실 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에 대해 험담을 하는 사람은 없었고, 좋은 인상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많았지만, 정작 또 그와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모범생의 신비한 거리두기로 보였던 그것은, 그의 정체를 알고 나서는 영물이라는 정체를 들키지 않도록 거리를 두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 동급생은... 그저 인간관계에 대한 경험이 없는데다 겁이 많아서 그랬던 것인 모양이다.
그야, 우리처럼 햇살같은 아이가 친구가 되어주겠다는데... 무자각 아싸인 단랑이에겐 너무 과분한 찬스니까요 u.u... 네, 답레는 모쪼록 원하시는 만큼 천천히 써주세요. 귀엽게 보이는 부분은 그저 단랑이가 미숙한 부분일 뿐이에요... 잘하는 것이 있는 만큼 부족한 면도 많은 아이지만, 우리 단랑이를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u.u 모처럼의 휴일인데 답레를 너무 늦게 가져왔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 밤에도 푹 주무시고, 좋은 꿈 꾸시기를 바라요.
무자각 아싸 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 우리랑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단랑이에게도 다른 친구들이 조금씩 생겨가면 좋겠네요...! 우리도 여러모로 부족한 부분이 많은걸요. 우리도 잘 부탁드려요 ㅎ-ㅎ 아니에요, 이렇게 잠깐 뵙는 것도 반갑고 좋은걸요! 답레 잘 생각해서 써올게요. 단랑주 평안한 밤 되세요~
제 이름을 부르자 우리가 단랑과 눈을 맞췄다. 눈치를 살피듯 조심스럽게 바라보던 직전과는 다른 시선이다. 아주 또렷하게 단랑을 마주보고선 웃는다.
“응, 너는 단랑이지? 백단랑.”
단랑이 한 말을 비슷하게 반복했다. 같이 이상한 일을 겪고 대화도 나누어 봤는데, 이렇게 이름을 부르는 건 처음이다. 어딘가 간지러운 느낌이 드는 것도 같다. ...아니, 부드러운 느낌인가? 무의식 중에 손에 닿는 따뜻하고 보들보들한 털을 조금 더 쓰다듬다가 손을 떼어냈다. “그러네.” 대답한 우리가 조금 멋쩍게 웃었다. 곧 그 얼굴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게 되었지만.
조곤조곤 이어지는 단랑의 말을 들은 우리는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였다.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거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거라 예상했는데, 단랑도 그저 타인에게 쉽게 마음주는 일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건 꽤나 의외였다. 아무리 조금 다르다고 해도 똑같은 또래의 아이인데. 우리가 혼자 조용히 반성했다. 자신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알 수 없는데 더더욱 알 수 없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자신을 내보이는 일은 쉽지 않다. 어떤 상처를 받을지 모르고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까. 하지만 마음을 열고 난 뒤에만 보이는 타인의 세계도 있기 마련이다. 거긴 아름다운 꽃밭이기도, 울창한 숲이기도 했는데 제각각 아름답다는 점만큼은 같았다.
보통 친구라는 게 계약 맺듯이 상징적인 의식을 통해서 정해지는 건 아니지만, 친근함이며 친밀감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거운 것도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게 얇고 가벼운 친밀감은 차근차근 쌓아가는 데에 익숙하지 못한 이 모범생에게는 물꼬를 터주는 일이 필요했다. 당신이 내민 손은 그 첫삽이었다.
그러니 당신이 괜히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본의가 아니었다고 하지만, 어찌되었건 이 신비로운 동급생에게 닿은 인연을 붙들기로 한 것은 당신의 선택이고, 그것은 명백히 그에게 좋은 일을 해주는 것이니까. 이번 여름은 아무래도, 이래저래 기묘한 여우들린 여름이 될 것 같다. 영광이야, 하는 말에 단랑은 다짐해 주듯이 대답했다.
"고마워."
이 소년은 평온한 무표정 뒤에 무엇을 숨기고 있을까? 그는 당신의 손을 쥐고 짧게 흔들며 웃어보일 뿐이다. 다만 악수를 해서 그런 걸까, 당신이 다른 이들보다 이 소년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걸까, 그도 아니면 그냥 햇볕 탓일까... 교실에서 보았더라면 평소의 그 신비롭게 평온한 미소로 보였을 그 웃음은, 조금 붕 떠있고 순진한 웃음으로 보인다.
"아무튼... 그럼, 집에 가서 부모님께 한번 말씀드려 볼래? 나는 집에 가서 기차표를 찾아볼게."
... (기차표를 예매했는데 자연스레 연속으로 붙어있는 옆자리로 예매한 단랑이를 떠올린 사람의 표정) (조금씩조금씩 흔들리는 좌석과, 나직하게 덜컹덜컹거리는 기차 달리는 소리에 고개가 꾸닥 꺾이더니 우리의 어깨에 기대고 졸기 시작한 단랑이를 떠올린 사람의 표정) (...이런 망상을 해도 되는지에 대한 죄책감)
저도 단랑주와 단랑이와 이번 여름 함께하게 돼서 기뻐요! 넵 같이 예쁘게 잘 채워봐요 ㅎ-ㅎ 이번 주 정말 바쁘네요.. 일주일에 두 번은 운동까지 끼어있으니까 집에 오면 그냥 물미역이 되어버리는 ㅇ<-<.... 지금부터 답레 쓰기 시작해서 잠들면 내일쯤 올라가지 않을까 해요 ㅎ-ㅠ.. 편안하게 쉬시면서 기다려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그래도 너무 조용히 쓰는 것보단 다녀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발도장 남깁니다. 콩!
운동을 안 하면 저질체력이 되고, 하고 나면 물미역이 되니 그것 참 딜레마죠... 그렇지만 기초체력을 관리해두면 확실히 수면의 품질이라던가 기력이라던가 달라지니, 좋은 선택이에요. 그 외에도 일정이 많이 바쁘신 것 같은데... 저도 하루하루 그날그날 쳐내면서 쉴 때는 확실히 쉬고 있으니 너무 기다릴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목-금요일에 오시겠다고 사전에 말씀해주시기도 했구요. 우리주도 답레에 너무 서두르거나 무리하지 마시고, 느긋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써주셨으면 해요.
그렇지만.. 이렇게 가끔이라도 갱신해주셔서 이야기 남겨주시는 건, 기뻐요. 오늘 밤도 느긋이 휴식 취할 수 있는 좋은 밤 되길 바라요.
단랑의 고맙다는 말에 우리는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오늘부터 친구!'라는 선언과 함께 관계를 정의하는 건 아주 오랜만이었던 탓에 조금은 낯간지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기분 나쁜 간질거림은 아니었다. 오히려 웃음이 나게 하는 쪽이라면 모를까. 단랑이 웃는 장면은 귀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우리는 제가 희소한 무언가를 얻은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잠깐이지만 가볍게 흔들렸다가 떨어진 손은 퍽 다정했다. 어쩐지 이상한 표현인 것도 같지만,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늘 어른스럽게, 혹은 조금 멀게만 느껴지던 단랑이 이제야 제 또래처럼 느껴졌다고 하면 좀 우스울까. 머릿속으로 홀로 이런 저런 생각을 굴리던 우리가 단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허락 받으면 문자할게."
아마 공부라는 말을 꺼낸다면 더 묻지도 않고 허락해 주실 분들이니 말씀 드리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닥 걱정되는 일이 없었다. 너무 속 편한 생각일까?
"그럼 오늘 비밀모임은 여기서 해산이지?"
우리가 조금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짧은 시간이었는데, 이름 붙이니 뭔가 중요한 일이라도 된 것 같았다.
"비밀모임?" 생소한 단어 선정에 단랑은 눈을 깜빡였다. 왠지 조금 낯선 느낌이 들었다. 부모님의 설계대로 반듯하게 설계되어 오던 자신의 나날에 예기치 못하게 돌멩이가 하나 굴러들어온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낯선 느낌이 결코 싫지가 않았다. 굴러들어왔기에 무심코 집어든 그 돌멩이가 예쁜 하얀색으로 반짝이고 있어서, 단랑은 문득 가지런히 앞으로만 두고 있던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네..." 라는 말로 당신이 굴려준 그 조약돌을 되짚어보며, 단랑은 자기도 모르게 배싯 웃었다. 비밀 모임이 이번이 끝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왜인지 그 조약돌이 굴러온 샛길로 가면, 거기 놓여있는 것들을 따라가면 재밌고 기쁜 것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지. 오늘은 여기서 해산하자. 너도 집으로 바로 갈 거야?"
단랑은 가방을 집어들며, 당신에게 가볍게 질문했다. 해산을 한다고 해도 미술실에서 떠나는 것뿐으로, 어차피 지하도까지는 당신과 귀갓길이 겹치니까 그 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갈 수 있을 것이다.
# 3.3 다음 답레를 쓰실 때 우리주께서 귀갓길에 오르는 장면을 서술하면서 짧게 끝맺은 뒤에, 톡을 주고받는 느낌으로 잠깐 이었다가 바로 기차역에서 만나는 장면으로 넘어가면 자연스러울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