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초밥과 과일 도시락을 넣은 백팩을 매고, 선크림까지 꼼꼼히 바른 우리가 집을 나섰다. 부모님께는 공부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나온 탓에 조금 죄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막상 나와서 몇 걸음 걷다보니 금방 잊혀질 만큼 날씨가 좋았다. 나들이 가기엔 딱 좋은 날씨였다. …물론 단순한 나들이는 아니라고 해도. 역에 도착해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우리는 오래 지나지 않아 단랑을 발견했다. 반가움에 웃음 지은 우리의 걸음이 빨라졌다.
아무래도 가족들이랑 함께 먹는 거랑은 조금 다르게 느껴지나봐요. 일정이 잘 맞아서 그때는 본가에 가실 수 있음 좋겠네요. 장마 끝, 폭염 시작이라더니 날씨가 하루하루 살벌하게 더워지고 있어요 ㅋㅋㅋ큐ㅠㅠㅠㅠ 가만히 있으면 안 덥다는 말이 들어맞지 않는 요즘입니다.. 날도 더운데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이래저래 상황이 도와주진 않지만 ㅇ<-<... 내일 즐거운 금요일 보내셨음 해요~! 일단 오늘 푹 주무시구요!
잠이 쏟아져서 자려고 누웠다가 마지막으로 한 번 확인하던 차에 갱신된 것을 발견했네요... 우리주도 오늘 하루 고생많으셨어요. 날씨가 정말로 40도를 찍어버리는 걸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88 그래도 에어컨 나오는 실내에서 가만히 옹송그릴 수 있으면 괜찮은 날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주도... 좋은 밤 보내시길 빌어요. 답레는 내일 드리기로 하고,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그래도 주말에 만나서 하기로 한 일 중에는 숙제를 같이 하는 것도 있으니까, 너무 거짓말이라고 불편해하지 않아도 좋을 듯하다. 그렇게 되면 거짓말이라고 할 수는 없는 셈이니까. 그래도 참 정말이지 공부만 하고 있기에는 아까운 날씨이기도 했다. 한 번 정도는 특별한 주말이 있어도 되지 않을까?
"나도 온 지 얼마 안 된 참이야."
밝게 건넨 인사에, 단랑도 곱게 웃어보인다. 그가 웃을 때에는 뙤약볕이 따갑던 개찰구에 한 줄기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어 당신과 단랑의 이마를 쓸고 지나간다.
"그러게. 여행가기엔 좋은 날씨네."
그러고는, 단랑은 조금 이상한 질문을 꺼냈다.
"오는 길에 딱히 뭐 이상한 것이 눈을 마주쳐오거나, 말을 걸어오거나 하진 않았지?"
* 그러고 보면 운정지하도에서 그 유충이라는 것을 잡은 이후로, 당신은 원래 일상에서 보이지 않던 이상한 것들을 종종 눈치채는 순간이 한두 번 정도는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벤치 밑이나 가로등 뒤편 같은 으슥한 곳에서 어슬렁거리는 조그맣고 말라빠진 아귀들이라던가, 노숙자를 둘러싸고 키득거리는 아이들이라던가, 건물 틈새에서 스멀스멀 움직이는 이상할 정도로 키가 큰 사람이라던가.
그러나 그런 것들은 당신과 눈이 마주치면, 당신이 그것과 눈이 마주쳤을 때만큼이나 화들짝 놀라서는 황급히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곤 하는 것이었다. 그 이상한 것들은 당신을 두려워하는 낌새였다. 흔히 보이는 인터넷 괴담 썰처럼 "너 나 보여?" 하고 다가와서는 "너 나 보이잖아아아아아" 하고 땡깡을 부리는 케이스는 단 한 건도 없었다. *
그러니 물어보나마나 한 질문이다. 단랑이 보기에 오늘은 당신에게 뭔가 엉뚱한 게 달라붙은 기색이 없었으니까. ...자기 꼬리였던 것을 빼면 말이다. 그는 아직도 당신의 머리에 여우 귀인지 너구리 귀인지 분간 안 가는 귀가 아직도 깜찍하게 달려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 별표 사이에 써진 내용은 우리주의 취향에 따라 없는 것으로 할 수도 있고 그런 일이 있었던 것으로 할 수도 있으니 원하시는 대로 해주세요.
기다렸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고된 기다림은 아니었을 것이다. 벤치에 앉아 있었고, 이용객을 위해 승강장에 쳐놓은 차양의 그늘이 벤치에 드리워져 있었으니까. 당신이 기대감을 가득 담아 던진 말에, 단랑은 대답을 바로 하지는 못했다. 걔들이 아무래도 널 우리들 중의 하나로 보는 것 같아. 라는 말을 당신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가 없으니까.
그렇지만 그것은 본가에 도착해서 할아버지께 여쭈어보아 해결할 문제고, 지금은 여행길에 따라붙는 칩칩스러운 잡귀가 없다는 점을 잘 된 일이라고 인정해주어야겠지.
"그렇네. 걔네들이- 그래, 걔들은 널 무서워하는 게 맞을 거야. 잘됐네."
단랑이 내어놓은 대답은 당신이 설마 하는 그 대답이었다. 그때 열차가 들어오는 것을 알리는 신호음 소리가 역 안에 울려퍼졌다. 이윽고 안내방송이 그 뒤를 따라서 흘러나왔다.
-5번 승강장으로 예성, 예성행 1059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탑승구에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게요... 저도 답레만 써야지- 했다가 무심코 잠들어서, 이제야 깨서 늦은 저녁 간단하게 먹었어요. 확실히 더운 여름에는 움직임을 줄이는 게 현명한 일이지만...... 전 너무 지나치게 자버렸나 봐요. 88 우리주도 좋은 저녁 보내고 계시길 바라면서, 천천히 답레 써서 드릴게요.
동그랗게 눈을 뜨고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에 단랑은 곤란한 듯이 웃어보였다. 사실 단랑도 간략하게나마 당신에게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설명해줄 수 있지만, 흔히들 말하는 사람의 기라느니, 음양이라느니 팔자라느니 하는 수상하게 들리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찜찜했던 탓이다. 그는 그 대신에, 열차가 역으로 들어오는 동안 당신의 어깨를 살며시 붙잡았다.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내는 소음이 역을 울렸다. 이내 열차는 정차구역에서 멈춰섰고, 문이 덜컥 열린다.
단랑은 당신의 어깨를 놓아주고는, 다소곳하게 당신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객차로 올라설 때는 바깥의 후덥지근한 여름 공기와 대비되는 에어컨 바람이 얼굴에 훅 끼쳐온다.
"여행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당신의 바로 옆자리에, 단랑은 여우가 자리에 올라앉듯이 살며시 앉았다. "숙제는 금방 끝내버리지, 뭐." 하고 당신을 돌아보며 웃으려던 단랑은, 어라- 하는 표정이 됐다. 그게 옆자리라는 게 이 정도 거리감인 줄은 몰랐어서. 단랑은 이 시점에서 엉뚱하게도 백미러를 떠올렸다. 백미러에 종종 이런 문구가 적혀있지 않은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음>
단랑은 크로스백을 뒤적여선, 괜히 시선을 피하며 공책 한 권을 꺼내서 부채질을 했다. 공책이 펄럭이는 바람이 당신 얼굴에도 시원하게 닿는다.
기다리고 있던 것도 사실이지만, 어차피 피치 못할 사정으로 늦게 자야 되는 일이 있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오히려 두통이 있으시다니 걱정되네요... 답레는 나중에 시간나실 때 천천히 생각해주시고, 타이레놀이라도 드시고 충분히 휴식을 취해주세요. 푹 주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백팩을 무릎 위에 올려둔 우리가 작게 웃었다. 여행이라 생각하지 않았을 때에도 들떴는데, 여행이라 생각하니 더 설레는 느낌이었다. 일상을 지루하다 생각하는 편은 아니지만, 듬성듬성 끼어드는 약간의 변수들이 즐거움을 주는 건 사실이니까. 숙제에 대한 말에 고개를 끄덕인 우리는 단랑의 얼굴을 보고 덩달아 어리둥절한 표정을 했다. 뭔가 불편한 게 있나, 이상한 걸 발견했나. 괜히 창밖을 한 번 살핀 우리가 어느새 부채질을 하고 있는 단랑을 보면서 물었다.
"많이 더워? 이 자리가 에어컨 더 잘 오는 것 같은데, 자리 바꿔줄까?"
날이 꽤 덥지, 덧붙인 우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단랑을 쳐다봤다. 시원한 걸 찾아 가방을 뒤적이다 얻어 걸린 초콜릿을 보고 입술을 비죽인다.
당신이 건넨 제안에 단랑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표정을 원래대로- 평소의 그 잔잔한 웃음으로 되돌렸다. 아니 평소보다 조금 더 고운 웃음이다.
"이 자리가 좋아."
고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열차는 11시 34분에 예성역에 도착하는 고속열차입니다. 고객님께서 편안히 여행하실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하는 안내방송이 끝나고 차창 너머의 풍경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여행이 시작됐다. 단랑도 그걸 아는 듯, 나와있지도 않은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 같다. 이 뜻밖의 여행이 설레이는 것은 그 역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아, 고마워..."
당신이 초콜릿을 쓱 꺼내주자 단랑은 손을 내밀어서 받았다. 꼬리가 다시 한 번 살랑... 이번에는 진짜로 허리춤에서 하얗고 북슬북슬한 꼬리가 튀어나와 있다. 단랑도 그걸 알아챘는지, 머쓱한 표정이 되어서는 허리를 의자에 딱 다가붙인다. 꼬리는 다시 허리춤으로 쏙 들어가버렸고. 그걸 얼버무리려는지 단랑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돌렸다.
그래도 어제보단 오늘이 훨씬 나아서 바로 쓰러질 정도는 아니에요! 누워서 조금 밍기적대다가 자려고 합니다 ㅎ-ㅎ 요즘은 습도도 좀 높은 것 같아요.. 아가미가 필요한 여름이네요...! 네네 답레는 느긋하게 주세요~ 날도 덥고 덥다고 현생이 봐주는 건 아니구 ㅠ 여러모로 지치기 쉬운 날이니까 체력 잘 살펴주시구요~!
단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단랑도 달리는 차나 기차 밖으로 창밖을 구경하는 걸 퍽 좋아한다. 그렇지만 그 정도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니 당신에게 별 주저 없이 선뜻 창가 자리를 내어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복도 자리에서 앉아 좀더 작은 창문을 바라볼 때, 창문 밖의 프레임에 자신과 친한-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잔잔히 설레는 여행길의 얼굴을 하고 있는 모습이 끼어들어 있는 것이, 무미건조하고 건강하고 예절바른 삶을 살아온 단랑에게는 꽤 색다른 경험이어서.
그러니, 이제는 창가에 앉아도 그만, 복도에 앉아도 그만인 게 아니라,
"나는 창가에 앉아도 복도에 앉아도 다 좋으니까."
라는 말을 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서, 단랑은 조금 쑥스럽게 웃으며 꼬리를 손으로 꾹꾹 밀어넣었다. 당신이 화들짝 놀라 눈치를 보다 소곤소곤 말을 건네오자, 단랑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돼..." 당신이 약간 주눅든 것처럼 보이자, 그는 부러 다시 장난스럽게 눈가를 샐쭉 구부려 웃었다. "또 만져볼래?"
당신이 창밖으로 시선을 두다 던진 질문에, 단랑은 당신을 따라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며 질문했다. 논밭 풍경이며, 철책선이며, 시골 가옥이며, 외따로 떨어진 공장 같은 풍경들이 그림처럼 스쳐지나간다.
"바다... 풍경은 나도 정말 좋아해."
그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지만, 그 대답에 풍경이라는 단서를 붙여서 선을 그었다.
그때쯤엔 앉고 싶은 자리가 생겼을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생각하며 단랑을 봤다. 자리가 크게 중요한 건 아닌 듯 했지만, 처음으로 함께 멀리 놀러가는 건데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쪽을 고르게 해주고 싶었다. 친구가 된 계기는 다소 엉뚱하고 갑작스러운 일이었대도 그 뒤는 즐거운 기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얼빠진 얼굴로 단랑을 보며 눈을 깜빡이던 우리가 장난임을 깨닫곤 웃음을 터뜨렸다. 눈을 가늘게 뜨며 가볍게 흘긴 우리가 자그맣게 외치는 척 했다.
“장난쳤지!”
그리곤 살래살래 손을 내저었다. 꼬리야 이미 만져본 데다, 이렇게 사방이 트인 장소에서 비밀스러운 꼬리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무슨 말이냐 묻는다면 저도 몰라 민망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겠지만.
“풍경은 좋아해도 물에 들어가는 건 별로 안 좋아하는구나.”
우리가 단랑을 보며 물었다. 보고 있으면 시원해서 좋고, 더운 날 발을 담그는 것도 좋지만 물을 아예 뒤집어 쓰는 것과는 얘기가 다르니까. 발 담그는 것도차 싫어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걸 떠올린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단랑도 그렇다면 조금 고양이 같다고 생각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여우와 고양이라니, 어쩐지 거리가 멀지만.
나 이걸 왜 이제 봤지...88888888? 우리주도 좋은 주말 보내고 계셨나요. 저는.. 저는... 일곱 시부터 동접일 수 있었는데 8888 스레가 갱신된 걸 미처 못 보고 놓쳤어요... 잠깐만요. 일단 답레를 급히 쓰긴 했어요. 지금이라도 올려둘게요. 좋은 밤 보내시고 계셨으면 해요.
당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단랑은, 당신이 눈을 흘기며 꺼낸 말에 장난스레 웃어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교실에서는 볼 수 없던 표정들이 당신의 앞에 서툰 민들레꽃처럼 한 송이 두 송이씩 피어나는 것 같다. 문득 장난이 아니면 어떻게 할 거야? 하고 또다른 장난을 쳐보고 싶었지만, 실없는 장난을 계속하기도 쑥스러워서 단랑은 당신이 꺼낸 화제를 기꺼이 따라갔다.
"아니, 물에 들어가는 것도 싫어하지는 않는걸." 그가 수영복 차림을 하고 바닷가나 수영장에 있는 것을 연상해보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그렇지만- 으음, 이런 말 해서 분위기 깨긴 싫은데." 단랑은 이런 말을 해도 되나, 하고 주저하는 듯이 턱을 감싸고 잠깐 뜸을 들이다가 괴담이라도 이야기해 주듯 목소리를 으스스하게 깔았다.
"아무래도 밤이 되면 바다에서 나쁜 것들이 많이 흘러들어오니까 말야. 물론 환경문제도 심각하지만, 이건 우리들의 관점에서 하는 이야기야."
우리들의 관점이라면, 아마 비일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관점에서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도 그렇겠지. 바다에서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는 것만큼이나 얼마나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는가.
"바닷가에 사시는 어른들 말씀을 들어보면 항상 밤에는 바닷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잖아? 해수욕장도 해 떨어지기 전에 영업을 종료하고."
괴담 톤으로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꾸며낸 이야기는 아니었다.
"본가에서 하는 일들 중에는 예성시의 바닷가에 몰려오는 그런 것들을 막거나, 잡아다가 정화하는 일들도 있어."
단랑의 말에 우리가 어리둥절한 기색을 표했다. 물에 들어가는 게 싫지 않으면 굳이 풍경이라 콕 찝어 이야기 할 필요가 있나? 설명이 덧붙을 거라 생각한 우리의 시선이 단랑을 응시했다. 목소리가 낮아지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게 됐다. 조금은 심각한 얼굴로 단랑의 말을 듣는 우리가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였다. 작게 입술을 벌리고 놀라기도 했다.
"그런 이유 때문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평범한 시선에서 밤의 바다가 위험한 건 어둡기 때문이다. 빛이 없는 곳에선 작은 위험도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데다 다들 잠에 들 시간이니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도움 받기도 어려웠다. 근데 단순히 그런 이유가 아니라니. 지하상가에서의 일을 떠올린 우리가 작게 찌푸렸다. 확실히,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무서웠다.
"본가가 예성시에 있는 이유가 있었구나. 음..., 그럼 단랑이 너도 졸업하고 나면 같은 일을 하게 돼?"
아직은 졸업까지 멀긴 했지만 생각은 자연스럽게 그리 기울었다. 만일 정말 그렇게 된다고 해도 서로 오가며 교류할 수 있으니 큰 문제는 없겠지만... 막상 그런 일이 닥치면 아쉬울 것 같았다. 부담 주기 싫어 말하진 않을 테지만.
"예성시의 바닷가는 그래서 밤에도 안전한 편이지만 만일이라는 건 있으니까... 만일이라는 말이 제일 무섭지." 하고 단랑은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당신이 운정지하상가에서 마주친 그 유충도 만일 유충이 그 많고 많은 터널들 중 지하상가에 숨어들었다면, 이라는 말이 현실로 이루어진 게 아니던가.
"아아니."
당신의 질문에 단랑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그건 외가 삼촌이 알아서 하고 계시기도 하고, 나름대로 고향에 정착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 경쟁이 세다구... 반쯤은 농담이지만." 농담이지만, 하고 덧붙이면서 단랑은 옅게 웃었다. 그러다 단랑은 갑자기 조금 먼 산을 보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졸업하고 나면─..."
조금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 되어서 고민하던 단랑은 당신과 눈을 마주쳐왔다. 석류같은 눈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여서는.
제가 너무 늦어서 죄송해요 ㅠ-ㅠ... 다른 게 아니라 답레를 계속 쓰고는 있는데 이상하게 우리가 손에 붙지를 않아서 늦어지고 있어요. 제가 많이 놓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무래도 편지 이후의 상황을 명확히 생각해두지 않은 캐릭터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그 정도 편지를 썼으면 말랑하고 다정한 성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했는데 그 이상으로는 따로 생각해둔 게 없었거든요. 설정에 있어서 상당 부분 단랑주에게 의존하고 있는 것도 그때문이구요. 단랑주 덕분에 우리와 단랑이의 세계가 조금씩 구체화된 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설정을 잘 짜는 편이 아니라 많이 막히는데 늘 단랑주가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답레 완성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어쩌면 단순히 답레 쓰는 것 이상의 고민을 좀 해봐야 할 것 같기도 해요. 웬만하면 답레랑 같이 오려다가 시간을 많이 지체했네요 ㅠ-ㅠ 소식이 늦어 죄송합니다...!
죄송해하실 것 없어요. 어서 오세요 우리주. 집에 들어오면서 폰 들여다보다가 후다닥 서둘러 왔네요..
애초에 세계관이라거나, 두 사람의 이야기라거나 같은 것들을 모두 우리주와 이야기해보면서 차근차근 맞추어나가려고 했는걸요. 오히려 제가 우리주께 단서를 너무 못 드려서 답레 쓰시는 데 고생시켜드린 게 아닌가 걱정이네요. 어떤 고민을 하실지는 우리주의 자유이지만, 그 과정에서 혹시 제가 도와드리거나, 대답해드릴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질문을 남겨주세요. 우리와 단랑이가 사는 세계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나 어떤 설정을 잡고 있는가, 라던지요... 확인하는 대로 제가 최대한 도와드릴게요.
여우에 씌이고 난 후 우리의 종족(?) 정체성은 어떻게 되는가, 수명의 차이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이야기들에 대해서도 모두 해답이 준비되어 있으니 궁금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물어보세요.
그러니 충분히 생각을 가지시되, 고민에 너무 신경을 쏟지 않으셔도 돼요. 맞지 않는 부분은 서로 이야기해서 맞춰나가면 되는 거고, 저는 우리주께서 행복할 수 있는 결론에 도달하시면 좋겠어요. 기다리는 것은 잘하는 편이니까, 시간이 늦어진다고 부담 느끼시거나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우리가 웃었다. 만일의 일이 중요하다는 말엔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리 확률이 낮아도 본인에게 닥치면 겪어야 하는 일이니까. 우리가 우연히 여우가 된 단랑을 마주치게 된 것도, 지하상가에서 유충을 만나게 된 것도 다 그렇게 벌어진 일이 아니겠는가.
“하긴, 아무래도 나고 자란 곳이 익숙하고 좋겠지.”
새삼 단랑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혼자-물론 하숙집에서 지낸다고 했으니 누군가와 함께 지내긴 하겠지만- 자리를 잡고 지내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닐 거라 생각됐다. 우리와 단랑 모두 고작 열일곱일 뿐이니까. 처음 해보는 일들이 낯설고 가끔은 두렵게까지 느껴지는 건 똑같으리라. 단랑이 고민하는 기색을 표하자 우리가 눈썹 사이를 좁히며 덩달아 고민했다. 단랑의 말에 집중하다보니 자연히 따라 생각을 하게 됐다.
“역시 아직 결정하기엔 이르지?”
조금 더 고민하던 우리가 이내 눈가를 접어 웃었다. 고작 열일곱이다. 아주 긴 시간은 아니라도 졸업하려면 아직도 멀었으니 아직 생각할 시간이 남아있었다.
"근데 넌 어떤 일을 해도 잘할 거야."
단랑은 성적도 최상위권에, 미술부 소속이 아니던가. 그의 그림을 본 적은 없지만... 꽤나 멋진 그림을 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지만말이다.
설정은 진행하면서 찬찬히 풀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단랑주가 단서를 안 주신 것보다는 제가 우리를 '다정한 말랑이'라는 것까지만 생각하고 시작해서 캐릭터가 납작해진 것 같아요 ㅠ-ㅠ... 우리랑 다시 가까워지려고 맘 편하게 먹고 레스 쓰고 있어요. 단랑주가 해주신 말 덕분이네요. 앞으로 궁금한 게 있으면 여쭤보고 레스 쓰고 설정 잡는 데 참고하도록 할게요. 1:1이 혼자 꾸려가는 얘기가 아닌데 혼자 너무 고민한 것 같아요. 기다려주셔서 감사하고 또 단랑주도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해주신다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당신의 미소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리며 단랑이 꺼낸 말이었다. 그는 다시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당신에게로 시선을 되돌렸다. 철컹철컹, 하고, 기차가 당신과 그의 여름을 달리는 나지막한 박자가 자장가 같다.
"잘하는 일을 하면 그건 행복한 걸까?"
단랑은 눈을 반쯤 감았다. 열일곱의 청춘- 진심으로 인생에 대한 생각을 시작하기 좋은, 잔잔한 대격변이 시작되는 나이다. 열여섯까지 예성시에서 온실 안의 화초처럼 자라오던 단랑에게는 변화의 너울이 더 높게 치밀었으리라, 당신을 포함하여 열일곱의 모든 아이들이 그러하듯, 단랑 역시도 방황을... 잔잔하고 고요하며 얌전하게, 그 나름대로의 방황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착각이 아니라면 적어도 그는 지금 혼자서 표류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몰랐다. 문득 딱히 미소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는데, 무의식적으로 단랑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337 그런 고민까지 하신다는 점에서 우리주는 정말 좋은 방향으로 세심한 분이세요. 그래도 캐릭터는 혼자서도 살을 붙여나갈 수 있지만 다른 캐릭터와 어울리며 이야기를 써나가면서도 서로 살을 붙여줄 수 있으니까요. 우리주께서 단랑이와 어울려주실 준비가 되셨다고 한다면 언제든지 단랑이와 어울려주세요. 저 역시도 우리주와, 우리와 어울리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니까요, 오늘도 함께 있어주셔서 고마워요. 우리주도 오늘 저녁이 행복한 저녁이 되기를 바라요. 복날인데, 저녁에는 뭔가 맛있는 것을 드시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봐주신다는 점에서 단랑주도 따뜻하게 세심하신 분이라고 생각한답니다. 감사해요! ㅎ-ㅎ 기다리는 게 익숙하다곤 하셨지만 종종 와서 진행소식 정도는 말씀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우리가 손에 붙었다가 안 붙었다가 하는 중이라 당분간은 답레가 조금 늦어질 것 같아요... ㅠ-ㅠ 단랑이 질문이 귀여워서 빨리 답 드리고 싶은데 손이 마음 같지 않네요... 제가 우리랑 많이 가까워지면 또 말씀 드릴게요! 언제나 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 행복한 저녁 되시고 주말도 잘 보내시길 바랄게요~
이 스레를 진행하는 데에 부담같은 것을 갖거나 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가끔 오셔서 말씀 남겨주시는 게 기뻐요. 충분히 생각해보시고 우리와 충분히 친해지는 시간을 가지신 다음에 즐겁게 돌릴 준비가 됐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단랑이를 만나러 와주세요. 우리주도 행복한 주말 보내시고, 회사가 대체공휴일을 우리주께 챙겨주었기를 바라요..(파들)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 보내셨나요? 오늘은 죄송한 말씀을 드리게 됐어요. 답레를 쓰면서 계속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제가 이쯤에서 우리를 놓아주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온건하고 다정한 캐릭터를 어려워하는 걸 간과하고 캐릭터 짠 제 잘못이 가장 크네요. 굴리다보면 손에 붙을 거라 생각했는데 점점 멀어지는 느낌만 들더라구요. 늘 기다려주시고 배려해주셨는데 이런 말씀 드리게 돼서 죄송해요. 답장이 올 거라고 기대 안 한 편지에 답장 보내주신 것부터 초반부 이야기 이끌어주신 것까지 모두 감사드려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름의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오래 기다려주셨는데 결국 이런 말씀 드리게 돼서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ㅠ-ㅠ...
우선 우리주께서 남기신 말씀에 대답부터 드리자면, 저는 우리주의 선택을 존중해드리고 싶네요. 우리주께서 우리를 굴리기 어렵다고 하시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힘겹게 짠 캐릭터가 막상 돌려보니 손에 잘 안 맞는다던가... 자꾸 제 손을 벗어난다던가 하는 문제가 있어서 우리주가 어떤 기분으로 그런 이야기를 꺼내셨는지 조금은 알아요.
사실, 우리주와 우리와 같이 보냈던 시간들이 꽤 행복한 시간이었기에, 우리주께서 우리가 손에 맞지 않는다시면 다른 캐릭터를 짜오셔서 단랑이와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시작해도 괜찮다고 저는 생각하지만... 단순히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고, 우리주께선 그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일로도 꽤 바쁘셨죠. 그러니 저는 우리주의 선택을 전적으로 존중해드릴게요.
그 동안 우리를 만날 수 있게 해주셔서...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일들도,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우리주께도 우리주가 제게 주셨던 행복만큼의 행복이 찾아가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