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친구라는 게 계약 맺듯이 상징적인 의식을 통해서 정해지는 건 아니지만, 친근함이며 친밀감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거운 것도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게 얇고 가벼운 친밀감은 차근차근 쌓아가는 데에 익숙하지 못한 이 모범생에게는 물꼬를 터주는 일이 필요했다. 당신이 내민 손은 그 첫삽이었다.
그러니 당신이 괜히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본의가 아니었다고 하지만, 어찌되었건 이 신비로운 동급생에게 닿은 인연을 붙들기로 한 것은 당신의 선택이고, 그것은 명백히 그에게 좋은 일을 해주는 것이니까. 이번 여름은 아무래도, 이래저래 기묘한 여우들린 여름이 될 것 같다. 영광이야, 하는 말에 단랑은 다짐해 주듯이 대답했다.
"고마워."
이 소년은 평온한 무표정 뒤에 무엇을 숨기고 있을까? 그는 당신의 손을 쥐고 짧게 흔들며 웃어보일 뿐이다. 다만 악수를 해서 그런 걸까, 당신이 다른 이들보다 이 소년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걸까, 그도 아니면 그냥 햇볕 탓일까... 교실에서 보았더라면 평소의 그 신비롭게 평온한 미소로 보였을 그 웃음은, 조금 붕 떠있고 순진한 웃음으로 보인다.
"아무튼... 그럼, 집에 가서 부모님께 한번 말씀드려 볼래? 나는 집에 가서 기차표를 찾아볼게."
... (기차표를 예매했는데 자연스레 연속으로 붙어있는 옆자리로 예매한 단랑이를 떠올린 사람의 표정) (조금씩조금씩 흔들리는 좌석과, 나직하게 덜컹덜컹거리는 기차 달리는 소리에 고개가 꾸닥 꺾이더니 우리의 어깨에 기대고 졸기 시작한 단랑이를 떠올린 사람의 표정) (...이런 망상을 해도 되는지에 대한 죄책감)
저도 단랑주와 단랑이와 이번 여름 함께하게 돼서 기뻐요! 넵 같이 예쁘게 잘 채워봐요 ㅎ-ㅎ 이번 주 정말 바쁘네요.. 일주일에 두 번은 운동까지 끼어있으니까 집에 오면 그냥 물미역이 되어버리는 ㅇ<-<.... 지금부터 답레 쓰기 시작해서 잠들면 내일쯤 올라가지 않을까 해요 ㅎ-ㅠ.. 편안하게 쉬시면서 기다려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그래도 너무 조용히 쓰는 것보단 다녀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발도장 남깁니다. 콩!
운동을 안 하면 저질체력이 되고, 하고 나면 물미역이 되니 그것 참 딜레마죠... 그렇지만 기초체력을 관리해두면 확실히 수면의 품질이라던가 기력이라던가 달라지니, 좋은 선택이에요. 그 외에도 일정이 많이 바쁘신 것 같은데... 저도 하루하루 그날그날 쳐내면서 쉴 때는 확실히 쉬고 있으니 너무 기다릴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목-금요일에 오시겠다고 사전에 말씀해주시기도 했구요. 우리주도 답레에 너무 서두르거나 무리하지 마시고, 느긋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써주셨으면 해요.
그렇지만.. 이렇게 가끔이라도 갱신해주셔서 이야기 남겨주시는 건, 기뻐요. 오늘 밤도 느긋이 휴식 취할 수 있는 좋은 밤 되길 바라요.
단랑의 고맙다는 말에 우리는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오늘부터 친구!'라는 선언과 함께 관계를 정의하는 건 아주 오랜만이었던 탓에 조금은 낯간지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기분 나쁜 간질거림은 아니었다. 오히려 웃음이 나게 하는 쪽이라면 모를까. 단랑이 웃는 장면은 귀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우리는 제가 희소한 무언가를 얻은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잠깐이지만 가볍게 흔들렸다가 떨어진 손은 퍽 다정했다. 어쩐지 이상한 표현인 것도 같지만,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늘 어른스럽게, 혹은 조금 멀게만 느껴지던 단랑이 이제야 제 또래처럼 느껴졌다고 하면 좀 우스울까. 머릿속으로 홀로 이런 저런 생각을 굴리던 우리가 단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허락 받으면 문자할게."
아마 공부라는 말을 꺼낸다면 더 묻지도 않고 허락해 주실 분들이니 말씀 드리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닥 걱정되는 일이 없었다. 너무 속 편한 생각일까?
"그럼 오늘 비밀모임은 여기서 해산이지?"
우리가 조금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짧은 시간이었는데, 이름 붙이니 뭔가 중요한 일이라도 된 것 같았다.
"비밀모임?" 생소한 단어 선정에 단랑은 눈을 깜빡였다. 왠지 조금 낯선 느낌이 들었다. 부모님의 설계대로 반듯하게 설계되어 오던 자신의 나날에 예기치 못하게 돌멩이가 하나 굴러들어온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낯선 느낌이 결코 싫지가 않았다. 굴러들어왔기에 무심코 집어든 그 돌멩이가 예쁜 하얀색으로 반짝이고 있어서, 단랑은 문득 가지런히 앞으로만 두고 있던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네..." 라는 말로 당신이 굴려준 그 조약돌을 되짚어보며, 단랑은 자기도 모르게 배싯 웃었다. 비밀 모임이 이번이 끝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왜인지 그 조약돌이 굴러온 샛길로 가면, 거기 놓여있는 것들을 따라가면 재밌고 기쁜 것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지. 오늘은 여기서 해산하자. 너도 집으로 바로 갈 거야?"
단랑은 가방을 집어들며, 당신에게 가볍게 질문했다. 해산을 한다고 해도 미술실에서 떠나는 것뿐으로, 어차피 지하도까지는 당신과 귀갓길이 겹치니까 그 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갈 수 있을 것이다.
# 3.3 다음 답레를 쓰실 때 우리주께서 귀갓길에 오르는 장면을 서술하면서 짧게 끝맺은 뒤에, 톡을 주고받는 느낌으로 잠깐 이었다가 바로 기차역에서 만나는 장면으로 넘어가면 자연스러울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어떨까요..?
몰래 쪽지를 교환해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고 몰래 약속한 곳에서 만나는 일. 어쩐지 거창한 단어 같기는 해도, ‘비밀모임’ 말고 달리 다르게 칭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쉽게 수긍해주는 단랑을 보고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고. 마주 웃은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려둔 가방을 다시 멨다.
“응, 너도 집에 가지? 지하상가 있는 데까지 같이 갈래?”
물은 우리가 제가 있던 자리를 꼼꼼하게 정리하고 미술실 문을 열었다. 누군가 있는지 두리번거리며 살핀 우리는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자 아직 미술실 안쪽에 있는 단랑을 향해 손짓했다. 지난 번엔 마냥 즐겁다고만 할 수 없는 귀갓길이었지만, 오늘은 어쩐지 기분 좋게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한 입 깨문다면 단 맛이 날 예감이었다.
일단 집에 가는 느낌으로 짧게 적어봤어요. 이 뒤로 집에 돌아가서 단랑이가 적당히 쉬고 있으면 우리가 먼저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고 단랑이가 먼저 메시지를 보내도 좋구요! 가볍게 주고 받다가 단랑주가 말하신대로 역에서 보면 될 것 같아요 ㅎ-ㅎ 단랑이 또래 아이들 모습 나오는 것 같아서 귀여워요~~ ㅠ-ㅠ 배싯 웃는 단랑이에서 저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 쪽은 샤워꼭지라도 틀어놓은 것처럼 잔뜩 쏟아지고 있어요. 귀가하고 난 이후부터 쏟아지기 시작해서 비를 맞거나 하진 않았고, 방에 가만히 앉아서 듣는 빗소리는 정말 좋아하니 나쁜 일은 아니지만요. 오히려 이 정도로 비가 내리고 나면 내일 아침은 조금 선선하지 않을까 기대해보게 되네요. (내일 아침까지도 이 기세로 내리고 있으면 안 되는데^p^) 오히려 낮에 정말 공기가 무겁고 후텁지근해서 고역이었네요. 우리주도 좋은 밤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레스 남겨두시고 주무시러 가시는 거면, 좋은 꿈을 꾸시기를 빌어요.
오늘 비 많이 안 왔어야 할 텐데요 ㅜ-ㅠ! 여긴 다행히 비는 안 오고 후덥지근한 날씨네요. 흐린 걸 보아하니 내일부터는 다시 오는 것 같지만요... 모기.. 맞아요 벌써 모기들이 슬금슬금 나오죠... 여름 다 괜찮은데 모기는 정말 ㅋㅋ큐ㅠㅠㅠㅠ 오늘은 부디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본격적으로 쏟아지는 장대비에 찐만두 그 비슷한 무언가가 되어버린 단랑주다.) 그래도, 차라리 이렇게 한번씩 시원하게 쏟아져버려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미스트처럼 찹찹 흩뿌리듯이 찔끔 와서 습도만 올려놓고 가는 가랑비보다야... 그렇지만 모기는 용서가 안 되네요. 비가 침울하게 쏟아져서, 좋은 하루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주 가시는 곳에 선선한 바람이 불기를 빌어요. 답레와 함께 갱신해두고 갈게요.
저는 "Red Moon" 스레에서 루이스 캄파넬라 "적영 고등학교" 스레에서 채별비 "HELPERS" 스레에서 폴라리스라는 캐릭터를 굴렸었고, 현재는 1:1 스레인 "초여름, 구닥다리 옛날 이야기였으면 했던" 스레에서 단랑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레스를 남기게 된 이유는, Red Moon/적영 고등학교/HELPERS의 3개 스레에서 무통보 잠수를 하게 되었고, 분쟁 조정 스레에서 HELPERS 스레의 캡틴과 조정을 거친 결과 여태껏 무통보잠수를 해온 3개 스레와 현재 활동중인 1개 스레에 어째서 말없이 잠수를 하게 되었는지/잠수를 하고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서술한 레스를 남기기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첫째, "Red Moon" 에서 작년 말에서 올해 2월까지 활동했으나 점점 접속이 뜸해지다가, 3월경에 들어서는 개강 및 답레 작성의 한계점에 부딪혀 접속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플러팅 스레임을 감안하고라도 감정교류보다는 선정적인 흐름을 타버린 점과, 서로의 심경만을 서술하다가 서술 교착 상태에 빠져 응답을 작성하는 것이 힘들어 텀이 늘어졌으며, 일과성 허혈 발작을 일으켜 입원 및 통원 생활을 하게 되어 기입이 끊기기도 했습니다. 돌아간다고 해도 어디서부터 합의점을 찾아야 할지 긴 공백기를 어떻게 메워야 할지도 난감했기에 되돌아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적영 고등학교" 스레에서 4월 말경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나, 실용음악에 대한 전공지식이 모자랐던 결과 캐릭터의 서술의 난해함/매너리즘에 빠져 캐릭터를 플레이하는 것이 힘들었으며, 중간고사 기간을 넘기고 5월을 넘어 기말고사 기간이 다가오면서 2학기로 연계되는 졸업작품 프로젝트에 지대한 차질+신체적 이상이 생겨 해당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간상의 문제로 접속을 줄이다가, 결국 접속을 거의 하지 않기에 이르렀습니다.
셋째, "HELPERS" 스레에서 5월 초에 활동하기 시작하였으나 얼마 가지 않아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는데, 진행상의 불일치점(진행은 쉰다는 안내에 다른 일을 하러 갔는데, 그 사이 다른 두 플레이어와 진행을 했던 점)으로 인해 스레에서의 소속감에 의문을 느꼈고, 또한 상술한 현실 생활에서의 차질 및 신체적 이상으로 인해 통보 없이 접속을 하지 않기에 이르렀으며, 6월을 거쳐 7월인 현재까지 접속하지 않았습니다.
앗 아뇨! 사과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는 어느 방향으로 진행되어도 괜찮아서 단랑주가 몸과 마음이 편하신 쪽으로 결정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재개하는 것도 좋구요. 여유 있게 시간 두고 잘 생각하신 다음에 답 주셨음 해요. 날이 많이 덥네요 ㅠ-ㅠ... 오늘도 고생 많으셨고 좋은 저녁 보내세요~
용서해주시고, 상냥한 말씀까지 해주신 점 감사합니다. 우리주께서 단랑이와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으신 의사가 있는지에 따라 결정하려고 했습니다만... 말씀하신 대로 사나흘 정도 휴식기를 가지는 것도 좋은 생각이겠네요. 이런 일도 있었던데다, 저도 현생 스케줄이 퍽 고달픈 편이고 우리주도 바쁘신 듯하니까요. 우리주도 느긋하게 휴식하시고, 이야기를 다시 이어나갈 마음이 드셨을 때 다시 답레를 남겨주세요. 우리주께서 답레를 남겨주실 때 돌아오겠습니다.
비가 쏟아지고 나니 밤바람이 차네요. 주무실 때 여름감기 걸리시지 않도록 보온에 신경써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어요.
주말 잘 쉬셨나요? 시간 정말 빠르네요... 벌써 월요일이야.... 아니 이제 곧 화요일이죠.. 단랑주가 괜찮으시다면 내일이나 모레 중으로 이어두려고 해요. 혹시 휴식이 조금 더 필요하시거나 지속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드신다면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그럼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푹 쉬세요~ ㅎ-ㅎ
먼저 갱신할 염치가 없어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주께서 원하신다면 저는 계속 이 이야기를 유지시키고 싶기에. 모쪼록 편하실 때 계속 이어주세요. 우리주께서는 잘 지내고 계셨나 모르겠네요. 요 며칠간 워낙에 더웠어야죠. 거기다가 이게 시작이라니... 우리주도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 우리가 타기로 한 열차는 5번 승강장이래 ] <[ 승강장에서 만나자 ] <[ 선크림 꼭 챙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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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정기차역은 운정시의 크기에 비해서도 꽤 큰 편이었는데, 그것은 운정역이 커다란 2개의 철도선의 환승역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넓은 운정역은 한산한 아침이라도 사람들이 꽤 많은 편이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소년을 찾는 것은 퍽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놀이공원 수준으로 붐비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승강장으로 내려오는 개찰구 저만치에서부터 승강장의 밴치에 크로스백을 맨 채로 단정하게 앉아있는 그의 모습이 잘 보였기 때문이다. 하늘색의 품이 넉넉한 셔츠에, 짙은 데님 바지를 입고 있는 하얀 머리의 소년은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철로 너머를 막연히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