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모 : 누구라도, 참 곱다, 고 생각하겠지. 그 소년은 그렇게 생겼다. 머리가 하얗고 피부는 뽀얗고 눈동자는 빨개서 색상 배열만 보면 토끼인데, 단랑의 얼굴에는 참 여우처럼 야살스러운 느낌이 있었다. 새치름한 눈매의 왼쪽 아래에 콕 찍혀있는 눈물점 하나가 그를 더욱 그렇게 보이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눈웃음이라도 치면 참 곱고도 얄미워보일 그런 얼굴로, 얼굴에 걸려있는 것은 단정한 무표정이다. 머리만 조금 길면 여자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눈길이 가는 얼굴이다 보니 182센티미터의 긴 키는 조금 후에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어깨너비도 충분하고, 팔다리도 길쭉길쭉해 옷맵시가 좋다. 스스로 말하길 백색증이 있다고 한다. 본디는 눈썹과 속눈썹도 희게 나지만, 이상해보여서 염색을 하고 있다고 한다. 햇살이 강한 날에는 종종 선글라스를 쓰곤 한다. 사실, 진짜 백색증은 아니고, 그러니 빛에 약하지도 않지만... 선글라스 같은 것을 쓰는 편이 조금 더 개연성있으니까. 햇살을 과하게 받으면 피부가 까맣게 타는 게 아니라 빨갛게 익기 때문에, 햇살 강한 날에는 선크림이 필수. 옷차림은 대부분 교복 차림이며, 사복도 셔츠를 기조로 한 정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청바지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면바지도 종종 입고는 한다. 단정해보이는 옷차림을 선호해서, 하복을 입더라도 단추를 목까지 다 잠그고 리본도 빼놓지 않고 매곤 한다. "왜 남자까지 넥타이가 아니라 리본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는 모양이지만.
◇ 성격 : '단랑이 어떤 아이냐' 하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냥 그럭저럭 착한 아이야' 정도의 대답만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얼굴이 아깝게도, 차분하고 단정한 모범생이다. 저 정도로 생겼으면 얼굴값을 하다가 십대들의 어설픈 향락 같은 것에 빠져들 수도 있는데, 그는 단정하고 고아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그 흔들림없는 얼굴표정만큼이나 다른 아이들과의 사이에 어떤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다. 그를 대놓고 미워하거나 하는 사람은 딱히 없지만, 그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도 없는, 이상할 정도로 밋밋한 인간관계. 그렇기에 단랑이 정말로 어떤 아이인지 똑바로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어떤 계기로 인해 그와 가까이 지낼 빌미를 마련하게 된다면... 그가 생각보다 다채로운 감정을 그 단정한 표정 뒤에 감춰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지도. 어디까지나 이 소년은 여우다.
◇ 기타 : 오랜 세월을 살아 득도하여 영물이 된 여우 일족의 후예. 단정한 얼굴을 하고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던 것은 자신의 정체를 감추기 위함으로, 평범한 사람들처럼 의무교육과정을 밟는 것은 세상에 대한 경험과 이해 및 일반적인 가치관의 함양, 그리고 활발히 살아있는 인간들이 발산하는 양기를 햇살 쬐듯이 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꼬리 일곱 달린 칠미호... 였다가, 불미스런 사고로 인해 꼬리 하나를 뜯겼다. 아무리 요호들의 꼬리의 성장과정이 대단히 단축된 요즘이라지만, 일곱 번째 꼬리는 20대 초중반에 다는 것이 보통인데도 불구하고, 어떤 기연으로 힘을 빨리 쌓았는가 대단히 이른 나이인 열일곱 살에 일곱째 꼬리를 달았었다. ...호사다마라고, 단 지 얼마 안 돼서 떨어져버렸지만. 사람 모습도 단랑의 본모습이지만, 여우 모습도 단랑의 본모습이다. 영물인 단랑은 사람 모습과 여우 모습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다. 여우 모습은 보통 평범한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정상이지만, 특별한 체질이나 내력, 사정으로 인해 괴이의 세계와 가까워져 있는 사람에게는 보일 수도 있다. 차분하고 단정한 모범생 코스프레에 걸맞게, 성적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미술을 전공으로 희망하여 미술학과 인문학을 병행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욱 놀라운 성과이며, 선생님들에게 은연중의 편애를 받기도 한다. 미술에도 충분한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 미술학원에서도 단연 눈에 띈다. 미적 센스는 정말로 본인이 타고난 것인 듯. 사용하는 물건들- 특히 옷이 묘하게 고급스럽다. 집이 꽤 유복한 듯하다.
◇ 외모 : 159.7cm의 아담한 체구. 눈썹 위로 올라오는 일자 앞머리에 단발, 혹은 눈가와 입가에 각각 하나씩 있는 점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갈색 머리카락과 눈동자, 순하게 쳐진 눈꼬리 덕에 무해하고 귀여운 느낌이 강하다. 거기에 대개 웃는 얼굴을 하고 있으니 진입장벽이 낮을 수밖에. 더 자랄 것을 기대하고 맞춘 교복은 조금 품이 남아 넉넉하다. 기본적으로 교복은 단정하게 입지만 쌀쌀하다 느끼거나 날이 추워지면 그 위로 외투를 걸치기도 한다. 학교에서 신는 실내화는 분홍색 슬리퍼.
◇ 성격 : 걱정이 많다. 제 걱정도 많지만 친구들 걱정을 들으며 울상이 되는 경우도 잦다. 다른 말로 하자면, 다정다감하다. 정이 많아 가장 친한 친구를 적으라는 칸을 보며 끙끙대기 일쑤. 어떤 면을 보면 아주 섬세한 사람 같은데 또 어떤 면에서는 신기할 정도로 둔하다.
◇ 기타 : 대한민국의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미술실 옆 복도를 지나치다 갑자기 흰 여우로 변하는 동급생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 뒤로 갑자기 (도깨비로 추정되는)잘생긴 사람이 저를 보며 웃어주더니, 길가에서 제 옆을 스쳐가는 사람에게 달린 백호 꼬리를 발견하게 됐다. 본의 아니게 단랑의 꼬리를 가져오게 됐다. 아무리 살펴도 안 보이지만 일단 제게 있다고 하니 마음으로 소중히 여기는 중. 어쩌다 보니 이세계와 엮이게 된 것 같은데 아직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는 듯하다. 어느 날 갑자기 귀신이 나타나 괴롭히지만 않는다면야. 교우관계 원활! 성적은... 행복 순이 아니잖아요.
첫일상은.. 사실 편지 마무리쯤때부터 생각난 거긴 한데, 우리가 단랑이가 준 부적으로도 막을 수 없는 괴이에 맞닥뜨렸다가, 우리가 엉겁결에 신비한 힘을 발휘해서 괴이를 물리치지만 완전히 물리치는 건 무리라서 곤란한 상황이 됐는데 단랑이가 도우러 와서 괴이를 쫓아내는 정도를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자기에게서 떨어져나간 힘이 우리와 완전히 일체화된 걸 보고 마른세수 하는 단랑이..
라는 첫일상을 상상하고 있었다는 말씀만 드려두고, 이제 주무시러 가시나요? 아니 이미 주무시고 계시려나..
첫 일상 소재 좋네요! 어떻게 이렇게 좋은 소재를 떠올리셨는지... 떠먹여주시는 거 받아먹으려니 감사하네요... 그나저나 단랑이 꼬리는 우째 ^-T 아마 요 레스까지 쓰고 자러 갈 것 같아요! 저는 동접일 때 얘기하다가 자러 가면 미리 말씀 드리려고 하는 편이라서요. 이제 잠 자러 가볼게요~! 단랑주 편안한 밤 되세요..! u.u
아니셨구나 x.x! 좋은 소재라고 해주시니 감사해요.. 떠먹여주다뇨. 처음 편지를 써주신건 우리주이신걸요. 꼬리야 뭐 하나 뜯겼다고 영영 구미호 못되고 팔미호로 살아야 되는 거 아니고, 단랑이는 꼬리가 수상할 정도로 일찍 난 케이스니 괜찮을 거에요 uu 그런데 이제 우리한테 꼬리가 날지도.. 네, 여기까지 함께해주셔서 고마워요. 내일.. 아니 오늘이구나.. 오늘 저녁에도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주도 좋은 꿈 꾸세요..!
뭐가 달리는지(?)는 우리주께 맡기려구요 uu 아무것도 달리지 않을 수도 있구요. 괴이의 종류는.. 흔히들 생각하는 귀신이나 이매망량, 요괴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악의가 없는 것들도 있지만 악의가 있는 것들도 있고.. 악의가 없는데 본의아니게 주변에 피해를 주는 것들도 있고요. <이누야샤>의 전국시대보다 좀 덜 혼란스러운 정도라고 말씀드렸다시피, <나츠메 우인장>에 나올 법한 말랑하고 친근한 괴이들도 있지만, 정말로 <학교괴담>이나 이누야샤의 에피소드에 나와도 손색없을 만한 악귀들도 있답니다.
tmi) 우리와 편지를 주고받은 이후 단랑이는 오래간만에 본가에 돌아가서 본가 서재를 한참 뒤적였다.
저한테 맡겨주시는군요! 음 고민해볼게요 ㅋㅋㅋㅋㅋ 단랑이가 준 부적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괴이라면 악령 쪽에 가까워야 할 것 같네요. 말랑한 괴이들은 그냥 지나갈 것 같으니까... 장소가 학교면 조금 더 그럴 듯해질 것 같고요. 귀신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장소니까(...) 밤 열시쯤 아무도 없는 캄캄한 음악실에 가면 아무도 없는데 건반이 눌리면서 연주 소리가 난다거나, 역시 아무도 없는 강당인데 갑자기 핀조명이 하나 켜지더니 그쪽 방향에서 웃음소리가 난다거나... 괜히 소문듣고 가봤던 아이들은 전부 기절해서 기억 못하고... 하는 얘기가 생각나네요.
아, 첫 번째 일상에서 등장할 괴이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거군요..! 사실 말랑한 괴이들도 좀 짓궂은 장난꾸러기들은 장난이랍시고 장난을 걸어오곤 하는데 평범한 사람 입장에선 그게 생명의 위협이 될 수도 있는 경우가 있긴 해요.. 다만 첫 번째 일상에서 등장할 괴이는 제가 정해둔 게 있는데, 다만 배경은 학교가 아니게 될 텐데 괜찮으신가요? 구체적으로는 지하상가나 지하철역이 돼요. 우리의 귀갓길 코스에 지하상가가 있다거나, 어디 갈 곳이 있어 지하철역으로 들어왔다거나.
앗 그렇답니다 ㅎ.ㅎ...! 첫 번째는 정해놓으신 게 있었나요? 부지런하셔라! 네네, 저는 오히려 그렇게 정해주시면 감사하죠 ㅋㅋㅋㅋㅋ 괴이... 좋아하는데 아는 건 많이 부족해서 늘 슬퍼하거든요... 횡단보도가 없어서 지하상가 통해 길을 건너야 한다거나, 귀갓길+살 게 있어서 지하상가를 통하면 될 것 같네요. 음 만약에 이런 현상 관련해서 조언을 구할 곳이 있다면 거기 찾아가는 것도 지하철역으로 가는 방법이 될 수 있구요. 자잘한 괴이 다 봉인 시켜준 단랑이... 착한 여우네요... ㅠ-ㅠ! 착한 여우한테 꼬리 더 주는 법을 제정하라 제정하라...! >>13도 잘 봤습니다. 여러모로 열어두고 진행할 수 있겠네요. 아, 그리고 실례가 안 된다면 >>10에서 단랑이가 서재를 뒤적인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아까 여쭤보려고 했는데 까먹어버렸어요()
이런 것과 비슷한 일에 대한 기록이 있나 뒤져보고, 힘이 옮겨간 사람에게 혹시 힘이 옮겨감으로 인해 나쁜 일이 벌어지거나 동티를 탄 적은 없었는지, 옮겨간 힘은 어떻게 되는지, 그런 일에 대한 방비책이나 대책 같은 게 있는지 찾아보았다고 합니다. 단랑이는 걱정을 좀 사서 하는 성격이기에.. 그리고 지금은 옮겨간 힘이 어떤 계기로 사용되면 그 사람이 영물화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고민이 늘어난..
운정지하상가. 신도시의 중심가와 동쪽 구획을 잇는, 우리 나라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지하상가다. 동해로 통하는 휴양지와 중심가를 연결해주는 혈관 역할을 하는 곳이다 보니, 유동인구도 엄청나게 많으며 취급하는 품목도 다양하다. 가장 많이 취급하는 것은 의류잡화이지만, 화장품점이나 휴대폰 판매점, 편의점, 식당 등을 비롯해 거의 모든 업종이 입점해 있다. 대형 백화점의 지하매장과 연결된 구획도 있으며, 각기 다른 2개의 지하철역과 연결되어 있기까지 할 정도다.
그렇지만 가장 좋은 것은, 역시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에도 뙤약볕이 닿지 않는 지하로 내려와서 청량한 에어컨 냉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고우리- 당신이 오늘의 귀갓길 경로로 운정지하상가를 택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상술했던 대로, 초여름의 뙤약볕을 정직하게 맞아가면서 인도를 가로지르기 싫었을 수도 있고, 횡단보도의 신호가 코앞에서 끊겼거나, 지하상가에 무언가 살 것이 있거나 아니면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로 가야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당신은 오늘 운정지하상가를 통해 가기로 결정했다.
조금 이상한 점이라면, 상술했듯 운정지하상가는 신도시 시내 중심가와 동쪽의 휴양지- 양대 핫플레이스를 직통으로 연결하는 구간이다 보니 유동인구가 엄청나게 많을 텐데, 오늘은 웬일로 지하상가가 아주 한산하다는 점이다. 사람이 없는데도 에어컨은 잘 돌아가고 있어, 공기는 시원하다 못해 서늘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지하상가의 문이 등뒤로 닫힐 때는 지상으로부터 벌써 들려오던 매미가 맴맴 우는 소리가 똑 끊겼다.
이런 것을 써보는 게 처음이라+병행하고 있는 것이 있어서 1시간이나 걸렸네요.. 이제는 조금 빨리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배경을 서술해드리느라 제 레스가 길어질지도 모르는데, 답레는 짧게짧게 주셔도 좋아요! 한 줄이라도 어떤 행동을 했는지만 정확히 묘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햇볕을 쬐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손으로 차양을 만들어 이마에 대고 있던 때였다. 종례가 치자마자 서둘러 나와 이른 귀가를 할 수 있어서 좋았고, 갈림길 전까지 친구와 떠들며 걸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혼자인 데다 덥기까지 한 지금은 그렇게 좋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나쁘지도 않았지만. 지하상가 쪽으로 걸음을 틀었던 건 그런 사소한 이유였다. 같이 떠들어 줄 사람이 없어서 심심한 와중에 덥기까지 한 건 싫으니까. 초여름인데 벌써 크게 들리는 매미울음 소리에 “여름인가 봐.” 혼자 중얼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문을 열자마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반기는 것에 작게 웃는 것도 잊지 않고.
늘 사람이 북적이는 곳이라 원래는 횡단보도 만큼만 지하로 가로지를 생각이었는데, 오늘은 이상할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평일이라? 시간이 애매해서? 적당한 이유를 떠올려보지만 역시 보통 날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우리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잘못된 거라면 거기서 끝이었다는 걸까. 바람은 시원하고 길도 뻥 뚫려 있는데 굳이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바깥으로 갈 필요없었고, 이게 우리가 지하상가의 더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게 된 계기였다.
※운정지하상가 이용수칙※ (전략) 8. 운정지하상가로 통하는 모든 고객용 출입구는 투명한 유리문입니다. 운정지하상가에 입장하실 시, 유리문을 통해 운정지하상가 안의 동태를 잠깐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행인은 물론이요 매장 직원까지 한 명의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면 다른 쪽 출구를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후략)
그렇지만 광경이 이상하게 부자연스럽다. 여기가 아무리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라고 해도, 당신이 우연히 행인이 단 한 명도 없는 순간에 여길 들어왔을 수는 있겠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모든 점포의 셔터가 내려가 있다. 문을 열고 있는 점포는 한 군데도 없이. 지하상가에 즐비한 옷가게도, 당신이 몇 번인가 본 적 있는 화장품 가게도, 저만치 있는 분식점도... 어떤 가게도 예외없이.
물론 지하상가에도 모든 점포가 휴업하는 휴무일이 주마다 한 번씩은 있긴 한데, 당신의 기억이 맞다면 그건 화요일이었고, 오늘은 화요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휴무일이면 지하상가 여기저기에 매주 화요일은 휴무일임을 알리는 표지판이나 공지문 등이 세워지거나 붙여지곤 했는데 그런 것이라곤 전혀 없었고, 무엇보다 휴무일의 지하상가에는 음악을 방송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지하상가에서, 팝송만이 공허하게 울리고 있지 않은가. 양옆에 줄줄이 내려간 셔터만이 끝없이 늘어선 서늘한 복도를 걷고 있자니, 신나고 흥겨운 보이그룹의 음악조차도 을씨년스럽다.
왜인지, 한발짝 한발짝, 걸어들어갈 때마다, 조명이 조금씩 침침해지는 것 같다.
딩동댕동.
방송이 울린다.
운정지하상가 안내센터에서 안내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미아를 찾고 있습니다. 미아를 찾고 있습니다. 나이 8세, 줄무늬 티셔츠에 데님 오버롤을 입은 ○○○ 어린이를 찾고 있습니다. 다시 안내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셔터가 내려진 가게. 처음에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꼭 지정된 휴무일이 아니더라도 갑작스러운 사정 탓에 하루이틀 문을 닫는 가게들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전부 다라면 좀 많이 이상하지 않은가? 생각이 스치자 우리는 일순간 멈춰 선다. 십(十)자 모양으로 갈라진 길의 가운데였다.
지하상가는 왠지 평소보다 어두침침하게 느껴지고, 분위기에 맞지 않게 신나는 노래는 어딘가 기이한 느낌마저 들게 만들었다. 멈춰 서 있던 우리는 방송 안내음이 들리자 스피커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따금 작게 지직대는 사이로 들리는 목소리. 평범한 내용이다.
하지만 가끔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모든 사고가 정지된 상태에서 지금이 상황만은 벗어나야 한다는 예감이 드는 때가. 우리에겐 지금이 그랬다. 우리는 왔던 방향을 향해 몸을 돌려 달려가기 시작했다. 어딘가에 더 가까운 길이 있었던 것 같은데, 몸은 자연히 익숙한 길을 택했다.
아무도 없고 가게도 다 닫았고 침침한데 갑자기 뭔지도 모르는 방송이 나온다? 이 상황에서 위기감을 못 느낀다면... 어쩌면 그 사람이 가장 위험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맞아요, 역시 여름 하면 무서운 얘기도 좀 나와줘야죠! 그나저나 제가 다음 답레까지는 못 드리고 잠들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려요..! ㅠ-ㅠ
물론 모든 지하상가가 그렇듯이 지하상가의 출구는 여러 군데였다. 운정지하상가는 특히 출입구가 더 많았다. 고객용 출입구만 백 개가 넘고, 지하철 출입구까지 더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난다. 근처의 가까운 출구를 찾아 나가려 한다면 어디에서건 금방 출구를 찾을 수 있는 곳이 운정지하상가였다.
그런데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몸을 돌이켜 봐도 뒤로 펼쳐지는 풍경은 양옆으로 셔터가 내려간 점포가 끝도 없이 늘어선 침침한 복도뿐이다. 기분 탓일까. 전등은 깜빡거리고, 바닥의 타일은 하나둘씩 깨지고 떨어져나와 있고, 기둥에는 녹이 슬어 있는 것 같다. 딩동댕동. 생활에 품격을. 운정지하상가는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지하 쇼핑몰으로, 이용객 분들의 쾌적한 이용 및 쇼핑을 위해 항상 청결하고 완벽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생활에 품격을. 운정 지하상가. 딩동댕동. 방송 소리에도 지직거리는 잡음이 낀다. 공기가... 서늘하다 못해, 차갑다.
그리고, 반대 방향으로 달리던 당신은... 열십자로 갈라선 교차로를 맞닥뜨렸다.
지지직 지지직. 딩동댕동. 운정지하상가 안내센터에서 안내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미아를 찾고 있습니다. 미아를 찾고 있습니다. 나이 17세. 홍림고 하복을 입은 고우리 학생을 찾고 있습니다. 다시 안내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문득 주머니가 따뜻하다. ...당신과 편지로 이야기했던, 어떤 학생이 어느 날 신발장에 넣어준 선물을 넣어두었던 그 주머니다.
숨이 차다고 느꼈을 때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걸어왔던 길보다 훨씬 길지 않나? 아무리 뛰어도 똑같은 풍경이었다. 이미 들어온 입구가 보였어야 했는데. 다시 교차로에 선 우리가 숨을 고른다. 누구에게 도움이라도 청하고 싶은데 지나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불까지 깜빡이고, 기분 탓인지 뭔지 알고 있던 상가의 모습보다 훨씬 낡은 것 같다. 꼭 공포영화에라도 나오는 장소처럼. 그때서야 우리는 ‘괴이’를 떠올렸다. 지금까지 마주친 괴이라곤 조금 놀라고 말 것들이라 이런 식의 상황에 빠질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이젠 춥기까지 했다. 더위를 피해서 들어왔더니 추위라니! 우리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보다는 무서운 게 앞섰다. 영원히 갇히면 어떻게 하지? 진짜 귀신이라도 나오면? 발을 동동 구르던 우리의 움직임을 멎게 한 건 다시 울리는 방송음 때문이었다. 방송에서 말하고 있는 건 자신이다. 일순간 몸이 얼었다. 주머니에서 무언가 열을 내고 있다는 걸 몰랐다면 계속 그렇게 있었을지도. 급하게 주머니를 손에 쥔 우리가 몸을 반대로 돌려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제발 어떻게든 도와주라. 제발, 제발!
손 안에 거머쥔 것은 따뜻한데 공기는 이제 너무 차가웠다. 설상가상으로, 뒤를 돌아보았을 때에는 당신을 내달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줄무늬티셔츠에 데님으로 된 오버롤을 입은, 남자아이가. 키는 당신보다 머리 두 개쯤 작아보이는.
남자아이라고 묘사한 것도 그저 그 아이의 머리카락이 짧아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그 아이는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피부가 온통 누렇게 떠서는 자글자글 주름이 진 것이 마치 미라를 보는 듯한, 원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흉측하고 괴상한 몰골이었다. 남자아이가 입을 열었다.
"......"
입을 열어도 뭔가 소리가 바로 흘러나오지 않았다. 말라빠진 공기 새는 소리가 흐릿하게 들리다가, 말소리가 띄엄띄엄, 말라빠진 입 속에서 흐릿하게 흘러나온다. 그렇지만 그 흐릿한 웅얼거림은 좀처럼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 말소리를 알아들어보려면 가까이 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손 안에 거머쥔 것은, 따뜻하다뿐이지 별 온도변화가 없었다. 어떤 현상인지 모르는 이것에 가까이 다가가볼 수도 있고, 도망칠 수도 있다.
다가가도, 불쌍한 몰골을 한 아이는 무언가 움직이거나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저 아이가 웅얼거리는 소리만이 조금 더 선명하게 들릴 뿐이다. 말라빠진 혀와 말라빠진 입술로, 말하는 소리라기보다 성대 삐걱이는 소리라고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은 소리로 미약하게.
"ㄴ나, 우ㄹ.. ㅇ, 어...마... 보... 셔서요...?"
그러나, 미라처럼 말라빠진 몰골을 했음에도 알아볼 수 있다. 그 아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열심히, 말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당신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한다는 걸 알아채기라도 한 듯이. 그렇지만 그나마도 말이 불분명해서, 알아듣기가 힘들다.
이 아이는 이 곳에서 미아가 되어버렸던 모양이다. 미아가 되어버린 아이가 가장 먼저 찾는 건 당연히도...
평범한 주말이었습니다. 이제는 즐거울 것 같아요.. uu 아이에게서 도망쳤더라면 보스를 직면했을 텐데, 우리는 역시 마음이 곱네요. 이번 괴이는 노골적으로 악 성향인 위험한 괴이인지라, 희생자의 몰골이 흉칙한 점을 이용해서 자신에게 희생당한 사람을 몰이꾼처럼 쓰고 있거든요.
앗 지금부터 즐거운 이유가 혹시..? u////u ㅋㅋㅋㅋ 우리의 우리.. 오지랖이 넓은 덕에 일단은 보스몹(?)을 피했네요. 역시 착하게 사는 게 정답이다...! 노골적으로 악 성향인 괴이라니.. 피해자도 있다니..... 뭔가 해결해도 이미 벌어진 일들이 있으니까 슬플 것 같고 ㅠ-ㅠ 피해 본 사람 중에 아이도 있다는 게.. 흑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서 당신의 손을 잡는다. 역시, 차갑다... 그리고 목석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어서, 도무지 살아있는 사람의 손을 잡는다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기분 탓일까, 당신의 손이 닿자 아이의 손이 온도를 되찾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응."
하고, 희미한 목소리를 한 채로 아이는 힘겹게 대답했다. 다른 손에 쥐여있는 주머니는, 당신 외에도 데워줘야 할 것이 늘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조금 더 따뜻하게 온기를 내기 시작했다.
"ㄸ뜻... 해..."
하고 아이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찰나, 또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렸다.
딩동댕동. 운정지하상가 안내센터에서 안내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미아를 찾고 있습니다. 미아를 찾고 있습니다. 나이 8세, 줄무늬 티셔츠에 데님 오버롤을 입은 ○○○ 어린이를 찾고 있습니다. 다시 안내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미아를 찾고 있습니다. 미아를 찾고 있습니다. 나이 8세, 줄무늬 티셔츠에 데님 오버롤을 입은 ○○○ 어린이를 찾고 있습니다. 해당 미아를 발견하신 분께는, 지체없이 신속히, 다른 어떤 곳으로도 향하지 말고 지하상가 안내센터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딩동댕동.
아이의 손은 차갑고 뻣뻣했다. ...이 애 역시 사람이 아니었구나. 잠시 아이를 내려다 본 우리가 다시 들리는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도 둘이라고 아까처럼 무섭기만 하지는 않았다. 방송이 가리키고 있는 건 이 아이 같았다. 아니, 이 아이였다. 어쩌면 착한 방송일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가 아이에게 말했다.
“아래에 엄마 계신대. 같이 가보자.”
그리고선 아이에게 맞춰 한 걸음씩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까처럼 또 길이 반복된다면 어쩌지. 그럼 길 잃어버릴 것 같은데. 심각한 생각도 잠깐, 일단은 알고 있는 길로 향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데,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한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자박자박. 아이는 솔이 터진 신발로 당신을 따라 말없이 발걸음을 느릿느릿 떼어놓기 시작했다.
...십자로를 건넌다. 이상할 정도로 통행인이 한 명도 없는 것과, 모든 가게의 셔터가 내려가있는 것은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쭉 뻗은 길은... 당신의 눈에 조금씩 익숙한 지리를 되찾는다. 비록 낡아있지만 익숙한 간판도 보이고, 광장이나 꺾어진 곳 등 일직선으로 쭉 뻗어있던 아까의 이상한 모습과는 다르게 원래 모양으로 돌아와있는 것 같다.
그것과 별개로, 기분 탓일까... 안내센터 쪽으로 나아갈수록 손 안에 거머쥔 노리개 주머니의 온도가 조금씩 올라가는 것 같다. 아이는 문득 주머니를 거머쥐고 있는 당신의 손을 힐끔 건너다보았다.
한 걸음씩 나아갈 수록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자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혼자가 아니라 의지가 됐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걱정이 되기도 했다. 혼자 길을 잃은 채 헤매는 것과 함께, 더군다나 제가 먼저 이끌어 따라오게 된 아이와 함께 헤매는 건 마음에 얹히는 무게 자체가 달랐다. 그나저나 안내 센터에 가까워질 수록 손에 쥔 것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 같았다. 이전의 예시라도 있었다면 파악하기 쉬웠을 텐데. 처음 겪어보는 일인 탓에 이게 옳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판단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일단 아무것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길을 안내해준 건 방송뿐이니까.
“어, 그게, 아까 방송에서는 그렇다고 했는데......”
아이가 묻자 조금 자신감이 떨어진 목소리로 우리가 답했다. 우리와 아이는 손을 꼭 잡은 채로 안내센터 앞에 서 있다.
모든 건물이 다 셔터가 내려가 있는데, 이상하게도 안내센터만큼은 셔터가 내려가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상하다. 안내센터의 안이 전혀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보통 투명해서 안이 다 들여다보일 안내센터인데, 마치 유리창 뒷면에 새하얀 종이를 빈틈없이 붙여놓은 것마냥 안내센터의 문이며, 유리창이 새하얗게 보일 뿐이다. 공기가 마치 차가운 족쇄처럼, 당신의 피부에 차갑게 처덕처덕 달라붙어 얼어붙고 있는 것 같다.
아이는 느릿느릿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당신의 손을 잡아끌고 있다. 아까 방송에서는 그렇다고 했는데... 하는 당신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문득 새하얀 유리창 위로 -_____- 같인 모양의 자국이 아래에서부터 슬라이드되듯 스멀스멀 올라온다. ...눈과, 입?
그리고 그 세 갈래 금 중에서, 가운데 아래쪽에 나 있는 길다란 금이 슬몃 벌어진다. 새까만 진흙 같은 그 입안에서, 스피커같은 게 슬쩍 고개를 내밀고 삐져나왔다.
지지직 지지직.
하얀 잡음이 그 괴물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딩동댕동. 운정지하상가 안내센터에서 안내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미아를 찾고 있습니다. 미아를 찾고 있습니다. 나이 17세. 홍림고 하복을 입은 고우리 학생을 찾고 있습니다. 다시 안내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빠지직, 하고 안내센터의 유리창이 금이 가는가 싶더니,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와르르르 무너진다. 그것의 눈이 떠진다. 새하얀 눈알에, 점 같은 동공이 섬뜩한 악의를 품고 당신과 소년을 쳐다보고 있다.
그 새하얀 것은 그것의 몸뚱아리였던 모양이다. 눈과 입만 달린 새하얗고 거대한 애벌레같은 몸뚱아리가 안내센터 정문을 부수고 스멀스멀 기어나오고 있다. 이제 손 안에 쥐어져 있는 부적은 뜨거울 정도다...
부적이 따뜻해지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니었구나. 끔찍한 입이 벌어지는 걸 보고 한 번, 거기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한 번 생각했다.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던 우리가 유리창에 금이 가기 시작하자 아이를 덥석 안아들었다.
“미안!”
그리고 정문이 부서졌을 땐 냅다 뛰기 시작했다.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뛰었는데... ...나 짱 느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서러웠다. 왜 내 다리는 이 정도에서 성장을 멈춰서, 왜 내 달리기는 50m를 간신히 9초 대에 뛰는 게 다라서....... 그래도 전부 포기하는 것보다는 뛰는 게 나았기에, 목이 따끔하고 팔이 후들거렸음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달렸다.
더욱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당신의 다리도 느린데... 이 아이는 아예 뛰지도 못했던 것이다. 굳어버린 무릎을 최대한 움직이려고 해보지만, 달리지를 못해서 그만 당신의 손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진 아이는 당신에게로 손을 뻗다가, 손을 툭 떨어뜨린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다.
아이의 등 뒤로, 눈을 치켜뜬 괴물이 입을 쩍 벌린다. 징그러운 이빨이 드러나는가... 싶더니... 더 징그러운 게 입안에서 드러났다. 입이 끝도 없이 찢어지면서 윗입술이 머리 위로까지 휙 들려올라가면서, 얼굴 가죽이 통째로 들려올라가서는 새빨간 근육으로 뒤덮인 해골 같은 그 괴물의 본모습이 입술 아래에서 드러난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도망갈 수는 없다. 아이를 이대로 두면 아이는 잡아먹힌다.
...도망가야만 할까. 그렇지만 도망가지 않는다고 해도 저 괴물을 상대로 맞설 수 있는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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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셋 중에서 우리가 지금 이 순간, 괴물을 물리치는 상상을 하며 떠올릴 만한 것이 있나요?
역시 아이를 들고 뛰는 건 무리수였던 모양이다. 후들거리는 손으로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같이 뛰려는데, 잡고 있던 손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이상하다 싶어 뒤를 돌았더니 아이와 그 뒤에 입을 벌린 괴물이 보였다. 입을 벌렸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것 같은데, 아무튼. 우리는 징그러운 것을 보았을 때 자연히 찌푸려지는 얼굴을 했다가 곤란한 얼굴을 했다가 결국엔 울상이 됐다. 다가가기엔 괴물이 너무 가깝고, 이대로 도망가면 저 괴물이 아이를 다치게 할 것이다. 찰나의 순간 뜨거울 정도로 온도가 높아진 손이 눈에 띄었다. 화염구까지도. –어차피 그만한 힘도 없지만–일반적인 힘으로는 괴이를 물리칠 수 없을 테니까, 답은 지금 보이는 이 불꽃이었다. 우리가 괴이가 있는 방향을 향해 손을 뻗더니 그대로 탈탈 털었다. 조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아직 제대로 쓰는 방법을 모르는 우리에겐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손을 탈탈 털어제끼자, 손 안에 맺혀있던 화염구가 이지러지며 불똥이 돼서 새빨간 해골 얼굴에게로 후드득 쏟아져내려갔다. 예상치 못한 반격에 괴물은 화들짝 놀라 몸을 비틀며 주춤주춤 물러섰다. 쩍 솟구쳐올라갔던 허연 가죽을 다시 얼굴로 덮어내리며, 몸을 뒤틀며 뒤로 물러서는 것이 분명 어떤 효과가 있는 듯했다. 그러나 잠깐 물러서게만 할 뿐으로, 괴물은 다시금 허연 가죽을 제치고 벌겋고 흉물스런 얼굴을 드러내며 도롱뇽같은 팔로 땅을 짚고는 다시 다가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물러난 괴물을 보고 환호를 질렀다가 다시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일단 좀 많이 물러나게 해서 아이만 구한 다음에... 다음에...? 우리가 고개를 저었다. 생각을 길게 할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손을 더 크게 휘적였다. 방금 전보다 더 큰 불길이 일어나 괴물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며.
푸드득푸드득. 손을 힘차게 흩뿌리듯이 턴 보람이 있는지 이번에는 불똥이 아니라 불 붙은 휘발유라도 내다뿌린 마냥 불꽃의 조그만 파도가 일어 괴물의 얼굴을 덮쳤다. 당신은 왜인지 몇 시간 연달아 공부한 것처럼 머리가 찌뿌둥해지는 것을 느꼈다. 괴물은 괴성을 지르며 비틀비틀 물러섰다. 불꽃이 얼굴에 달라붙어 괴물의 얼굴을 태우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아이의 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괴물은 황급히 허연 가죽을 얼굴 위에 덮어씌웠고,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가죽 아래에서 역겨운 고기 타는 냄새가 나는 증기가 솟구쳤다. 이번에는 괴물은 얼굴가죽을 벗지 않았다. 얼굴에 덮어씌워진 하얀 가죽에 난 눈구멍이 벌어진다. 소름끼치는 점같은 동공이 가죽 사이로 드러난다. 괴물이 다시 전진해오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열심히 움직인 덕인지 불꽃은 훨씬 커졌다. 더 큰 타격을 준 것도 맞는 것 같았다. 문제가 있다면 머리가 아팠다는 걸까. 가능성이야 많았다. 추워서 그럴 수도 있고, 그제야 공포심이 몰려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불꽃이 원인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말곤 저 괴물에 대응할 방법이 없으니까. 우리가 재빠르게 달려가 아이의 손을 붙잡고 일으켰다.
“뛸 수 있어? ...아님 업힐래?”
으아아—. 다시금 다가오는 괴물을 향해 힘껏 손을 휘두른 우리가 아이를 데리고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번 더 불길을 휘두르자 이젠 경미한 빈혈이 오는 듯한 어지러움까지 느껴진다. 아이는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움직이려 했고, 삐걱거리는 걸음으로나마 우리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아까보다는 확실히 도망칠 수 있다... 는 느낌이지만, 역시 느리다.
그러나 이번에는 참 보람없게도, 괴물의 얼굴가죽에 닿은 불은 효과적으로 괴물에게 피해를 주지 못하고 얼굴가죽을 조금 그슬러버린 정도에 불과한 모양이다. 괴물은 잠깐 움찔한 것을 끝으로 점점 가속도를 붙여가면서 우리와 아이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얼마 가지 못해, 추격전의 양상이 당신에게 아주 나쁜 방향으로 바뀌었다... 갑자기 온 지하상가의 불이 꺼지더니, 붉은색의 비상등이 점등되면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천장의 스프링쿨러에서 물이 거세게 쏟아지기 시작했고, 복도 저편의 방화셔터가 당신 혼자 전력질주해도 따라잡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빠르게 드르륵 내려와서는 닫혀버린 탓이다.
양옆으로 고개를 돌려봐도, 옆으로 샐 만한 골목에서도 이미 방화셔터가 내려와 닫히고 있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셈이다. 이 지하상가의 그림자 같은 곳은, 이 괴물의 영역... 괴물은 소방수로 축축하게 젖은 새하얀 얼굴가죽을 뒤집어쓴 채로, 가죽에 난 입을 쩌억 벌렸다. 온통 새까만 진액으로 가득찬 입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들이 비어져나온 게 보인다. 속도는 줄어들지 않는다.
그리고 그 순간, 이변이 발생했다.
갑자기 땅에서 엄청난 기세로 날카롭게 부러진 파이프같은 게 튀어나오더니, 괴물의 윗입술을 비스듬하게 꿰뚫어버린 것이다. 그 풀에 괴물의 윗입술이 훌렁 벗어져 천장에 못박히는 바람에 괴물의 새빨간 얼굴이 다시 드러났다. 괴물은 가속도를 잃지 않고 계속 전진해오려 했지만, 파이프를 조금 구부리는 데에 그쳤다. 당신과 겨우 사오 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그 괴물은 저지당해버리고 말았다.
확실히 해두고 싶었던 건지, 천장과 땅바닥에서 몇 가닥의 굵은 파이프가 더 튀어나와서 괴물의 가죽을 무두질 선반에 걸어놓듯이 꿰면서 감옥 창살처럼 괴물을 옭아맸다. 괴물은 입을 벌려 분노와 고통에 가득찬... 말로 형용하기 불쾌한 소리의 고함을 질러댔다.
그때 당신은 방화셔터의 한구석이 무슨 꽃송이라도 된 것처럼 자연스레 벌어지며 갈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 틈새로 들어오는 것은... 당신이 언젠가 본 적이 있던, 그러나 그때 봤던 것보다 훨씬 커다란... 황소만한 체구의, 꼬리 여섯 개 달린 새하얀 여우였다. 여섯 갈래의 꼬리 끄트머리마다 자주색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여우는 당신과 소년에게로 고개를 돌려서는 꼬리를 흔들었다. 여우의 입은 벌어지지 않는데 당신의 머릿속에 말소리가 들린다.
조금 느리지만 천천히 움직이는 아이와 발 맞춰 걷던 우리가 갑자기 쏟아지는 물에 깜짝 놀라 짧은 비명을 질렀다. 머리도, 교복도 축축하게 젖었지만 일단은 도망치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잠깐만, 안 돼!”
우리가 빠르게 내려가는 방화 셔터를 보며 외쳤다. 당연히 괴물이 우리의 말을 들어줄 리 없으니 상황이 나아지는 일은 없었다. 아이의 앞에 서서 천천히 뒷걸음질치던 우리가 눈을 질끔 감았다가, 괴상한 소리에 눈을 떴다. 괴물을 공격한 파이프를 멀뚱히 보던 우리는 저 끔찍한 광경을 아이가 볼 수 없도록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 탓에 닫힌 셔터를 밀어내고 들어오는 흰 여우를 조금 늦게 발견하고 말았다.
“그렇게 세게 쥐어도 되는 거야? 응, 어. 그럴게!”
우리가 불꽃을 꽉 쥐었다.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하나도 뜨겁지 않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선 아주 힘껏, 온 힘을 다해 괴물을 향해 던졌다.
불꽃을 거머쥐자, 그것은 손 안에서 마치 스펀지나 종이뭉치를 구기는 것처럼 쪼그라들었다. 손을 펴봤을 때에는 조그만 살구씨만한 불잉걸 덩어리 같은 게 손에 들려 있었다. 한 번 손을 뒤로 잦히고, 휙 던지자 그것은 마치 유성처럼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 괴물의 입 안으로 빨려들어갔고... 괴물은 그걸 덥석 삼켰다.
그리고 괴물의 몸이 들썩하면서 괴물의 눈과 입, 콧구멍을 통해 벌건 섬광이 한번 번쩍 비치는가 싶더니, 그것은 이내 입을 떡 벌리곤 완전히 뻗어버리고 말았다. 눈, 코, 입, 구멍이라는 구멍에서 연기가 풀풀 나오는 몰골로 보아, 이로 보나 모로 보나 확실히 "잡았다".
여섯 꼬리 여우는 꼬리를 살랑 흔들며, 폴짝 뛰어서는 재주를 한 번 넘었다. 뛰어오를 때는 여우의 발이었는데 도로 내릴 때는 단화를 신은 발이 되어 있다. 단화를 신고, 하복 셔츠와 바지 차림에, 크로스백을 메고 있는 고운 소년이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번인가 눈인사 정도나 하고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인, 별나고 이상한 반 친구. 분명 단랑, 이라는, 조금 별난 이름이었지.
소년은 크로스백에서 길다란 공책과 빨간 색연필 같은 것을 꺼냈다. 공책을 펼치자 노르스름한 종이가 드러났고, 소년은 그 위에 익숙한 손길로 뭔가를 휙휙 그린 뒤에 책장을 북 뜯어서는 그것을 연기를 뿜는 괴물의 이마에 착 붙였다. 괴물은 서서히 쪼그라들었다.
그리고는 이번엔 괴이라기엔 좀 이상한 게 나왔는데... 그는 핸드폰을 꺼내들어서는 뜬금없이 그 괴물의 사진을 한 장 찍더니 어디론가 보내는 것이다. 그러고서야 자기 일을 마쳤는지, 괴물(의 시체인지 아니면 빈사상태인지)을 내버려두고 당신에게로 돌아섰다.
"...늦게 와서 미안해. 많이 놀랐지."
처음으로 꺼내는 말은 그것이다. 방화셔터는 언제 내려갔냐는 듯 사라져 있고, 쇼핑몰은 아직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어두침침하거나 싸늘한 기색은 모두 사라져 있는... 점포 문만 전부 닫혀있지 않았던들 평소의 지하상가와 별다를 게 없어보이는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우리는 비록 제가 던졌지만 아무리 봐도 불덩어리인 것–이미 알고 있어 그렇게 보이니?–을 삼키는 괴물의 행동에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불안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우리가 번쩍이는 섬광에 눈을 꼭 감았다. 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터질 줄 알았는데. 연기가 나는 괴물을 본 우리가 잠깐 표정을 찌푸렸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단랑이 무언가 붙이자 쪼그라드는 괴물의 모습이 썩 유쾌한 장면은 아니었지만 그보다는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사실에 더 안심이 됐다.
“아니야, 이렇게 된 게 네 잘못도 아니구... 오히려 와줘서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겨우 긴장이 풀린 얼굴을 한 우리가 다시 안도의 한숨을 뱉는다. 계속 괴롭히던 추위도 가시고, 아까보단 덜 으스스한 느낌이 드는 걸 보니 정말로 끝난 모양이다. 우리가 제게 내밀어진 손을 보다가 조심스레 제 손을 뻗어 그 손을 쥐었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아, 하고 짧은 소리를 냈다.
“나가기 전에 이 애 엄마 찾아주고 싶은데...”
계속 제 뒤에 숨겨두었던 아이를 보여주기 위해 살짝 비켜서며 말했다. 잘못된 곳에 가서 놀라게 한 것에 책임이 있으니 부탁을 꼭 들어주고 싶었다. 우리가 간절한 표정으로 단랑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괴물이 그걸 받아먹었다기보단 당신이 그걸 괴물의 입 안에 던져넣는 데에 성공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 끝없이 커다랗고 탐욕스러운 주둥아리는, 괴물의 얼굴을 노리고 뭔가를 던지면 아무리 마구 던진다 해도 세 번 중에 한 번쯤은 괴물의 입 안에 집어넣는 데 성공할 수 있을 만큼 컸으니까.
"단숨에 부적을 붙일 수 있을 만큼 뻗어버릴 줄은 몰랐는데."
괴물의 이마에 무언가를 붙으며 단랑은 무심코 중얼거렸다.
그는 당신의 말에 당신이 손을 잡고 있는 아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말라붙은 동사체 같던 끔찍한 몰골은 어디 가고, 어느새 그 아이도 비록 조금 창백할지언정 살아생전의 모습을 되찾은 것처럼 또랑또랑한 여덟 살짜리 아이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비록... 아까 전에 비해 너무 가벼워졌고, 그림자도 없었지만. 그래도 손만은 우리의 손을 쥔 채로,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그 어린아이는 단랑을 올려다보았다.
"응, 지하상가에서 길을 잃었구나."
단랑은 당신의 손을 받아쥔 채로, 그 아이 앞에 잠깐 쭈그려앉아서 다른 손으로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답레가 짧다고 고민하거나, 억지로 이런저런 내용을 덧붙이거나 하실 필요는 없어요. 필요한 만큼 쓰는 게 좋은 레스라고 생각하니까요. (간결하면 잇기 쉽기도 하구요)(<-본심) 우리의 행동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질문사항이 있으면 질문드릴 테니 마음쓰시지 않으셔도 좋아요uu 다른 일과 병행하느라 조금 손이 느릴 듯하지만, 곧 써오겠습니다.
단랑은 손을 가방에 폭 찔러넣더니 음료수 캔 하나를 톡 따서는 우리에게 내밀었다. "이걸 마시면 훨씬 나아질 거야." 싸늘함과는 다른 청량한 시원함이 남아 표면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는 청량음료 캔이었다. 시중에 파는 시제품이었지만, 마셔보면 확실히 그의 말대로 시원한 액체가 머릿속에 들어찬 현기증을 씻어주는 듯한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을 바라보며 단랑은 "처음엔 다 그래." 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말이 왠지 뭔가 단념한 것처럼 들리는 건 기분 탓일까.
"잠깐만... 구역 담당 차사님께 뭔가 아시는 게 있나 여쭈어볼게. 일단은 여기서 나가자."
그는 핸드폰을 다시 집어들고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더니, 전화기를 한쪽 귀에 대고는 눈은 당신을 바라보며 당신에게 손을 내밀어왔다. 한 손에는 아이의 손을, 다른 손에는 단랑의 손을 나란히 잡게 생겼다.
우리는 단랑이 꺼내준 음료를 보며 생각했다. ...나 당 떨어진 건가? 순진한 생각과 함께 한 모금씩 음료수를 마신 우리는 곧 두통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오직 평범한 음료의 효과라고 생각한 우리는 빈 캔을 빤히 쳐다보다가 아이에게 양해를 구하며 손을 놓고선 쓰레기통에 캔을 넣은 뒤 다시 돌아왔다. 처음엔 다 그렇다니. 그럼 이 다음도 있다는 뜻일까?
“응, 그럼 난 그동안...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게.”
돌아온 우리는 다시 아이의 손을 잡고 단랑이 내민 손도 잡았다. 어쩌다보니 중앙에 서서 양쪽에 선 사람–정확히 말하면 하나는 사람이 아니지만–의 손을 잡은 채 서 있게 됐다. 어쩐지 제가 어린애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묘했다. 개인적인 마음은 일단 제쳐두고, 우리는 통화하는 단랑을 바라보다 어느 정도 통화가 진행된 듯 하자 입모양으로 물었다. 천천히 움직이는 걸 읽어본다면 이런 뜻이었다.
통화를 걸면서, 단랑은 우리에게 막연히 앞쪽을 눈짓해보이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원래대로 멀쩡하게 돌아온 표지판에 가장 가까운 입구로 향하는 표시가 찍혀 있었다. 전화는 얼마 안 가 연결됐다. "안녕하세요, 차사님. 단랑입니다." 로 시작된 통화는 중간중간 "네, 운정지하상가에 숨어있다던, 조금 전에 제보드린 외신의 유충이요..." "남겨진 넋이 있는데, 어머니를 찾아주어야..." "네. 아, 그런 제보가 있었다구요?" "공영주차장의 지박령이... 그렇구나. 네. 아, 그렇게 하시게요?" 하는 말이 띄엄띄엄 흘러나온다. 통화가 마무리되어간다는 느낌이 있을 때쯤에는 그와 당신과 아이는 어느덧 지하도 밖으로 나가는 입구에 도달해 있었다. 어느새 뉘엿뉘엿 주황색으로 변하기 시작한 햇살이, 지하로 내려오는 계단의 벽에 비껴드는 것이 보였다.
그는 시선을 당신에게로 두며, 입모양으로 '밖에 있다는 것 같아.' 하고는, "곧 그리로 갈게요. 감사합니다." 하는 인사를 마무리로 전화를 끊었다. 그는 손을 뻗어서 지상으로 나가는 문을 열었다. "두 발이 다 문턱을 넘어설 때까지는 손 꽉 잡고 있어야 돼." 하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렇게나 아찔하게 헤매었던 지하도인데, 나오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나오자, 매암 매암 매암 찌르르르... 하고 아직도 그치지 않은 매미 울음소리와, 차가 다니는 소리 등 생활소음이 와글와글 밀려든다. 그를 따라 아이를 데리고 문턱을 넘어서면, 당신의 뒤로 지하도의 문이 닫힌다. 문이 닫히는 바람이 등을 한번 휘잉, 쓸고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면... 유리로 된 입구 너머로 비치는 지하도는, 평소의 수많은 사람이 오락가락 왕래하면서, 점포가 모두 활짝 열려서는 점원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점포를 관리 중인, 평소의 지하상가의 모습 그대로다.
"이제 손 놔도 돼. -얘네 어머니 찾아주는 건 의외로 간단하게 끝날지도 모르겠는데, 넌 어쩌지..."
단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우리가 손을 꼭 잡았다. 어느 쪽 손을 말하는지를 몰라 양쪽을 다 그렇게 잡은 우리는 어딘가 비장한 얼굴로 문턱을 넘었다. 음산한 몇몇 소리를 빼곤 적막뿐이던 세계에서 다시 일상으로. 뒤를 돌아보자 눈에 들어온 상가는 평소와 같은 모습이라, 아까 제가 발 디뎠던 곳이 평범한 곳은 아니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무사히 나오게 되어 다행이야.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렇구나. 다행이다.”
“엄마 찾아주기로 약속했거든.” 덧붙인 우리가 웃었다. “다행이다, 그치?” 아이를 내려다 보면서도 밝게 웃으며 말했다.
“나? ...혹시 나 뭐 잘못했어?”
하지만 뒤에 붙는 말은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어 금세 시무룩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미루어 짐작컨대, 제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도무지 어떤 지점이 잘못된 건지 감이 오질 않았다. 일단은 일부터 마무리 해야 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은 우리가 단랑을 보며 답했다.
저벅저벅. 문이 닫히자마자 느껴진 것은, 원래 세계로 나왔구나- 뿐만이 아니라, 훅 끼쳐오는 초여름의 더운 공기도 있었다. 아아, 여름이구나.
밖으로 나가는 문과 계단을 바라보며 뭔가 흐릿한 기억을 떠올려보려는 듯 골몰하는 표정을 짓고 있던 아이는, 당신의 말에 당신을 올려다보며 조금 어설프지만, 그래도 밝은 미소를 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 잘 잡아줘." 단랑은 당신과 아이를 번갈아 보며, 착잡한 얼굴에 옅으나마 미소를 띄었다. 그러다 당신이 반문하자, 그는 "너 눈치 못 챘구나." 하는 말을 건네며 주변을 휘휘 둘러보다가, 때마침 출구 근처에 표지판과 함께 세워져 있는 볼록거울을 눈짓해보인다. "머리."
그의 말을 단서삼아 거울을 바라보면, 당신의 머리에 아주 분명한 이변이 발생해있을 것이다. 당신의 두 귀 모두 멀쩡히 머리 양쪽에 달려 있는데... 그것보다 좀더 높은 곳에, 새하얀 여우귀가 머리카락 사이로 툭 튀어나와 있었던 것이다.
"내가 보낸 마지막 편지 기억해?"
단랑의 마지막 편지에 어떤 내용이 있었더라. 노리개가 감당하지 못할 괴이를 운운했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면 언제인가 그 노리개 부적이 든 주머니는 다시 당신에게로 돌아가 있었다. 다만, 이제 그것은 그 효력을 잃어버리고, 예쁜 장신구 정도의 의미만이 남아버리게 되었지만.
"...일단, 한소리 듣겠지만, 어머니나 할아버지한테 보여드리는 수밖에 없겠다... 일단은, 어머니를 찾아주러 가자."
그는 한쪽 길을 가리켰다. 빌딩 몇 채 때문에 그늘이 진 길은 꽤나 선선해보였다. 사람 몇몇이 오가고 있었는데, 대부분 주부로 보였다.
>>113 어... 제가 이것과 똑같은 말씀 드리려고 스레에 왔는데 몇 분 전에 저와 똑같은 말씀 남기셨어(동공지진) 그렇게 되었으니, 우리주도 너무 마음쓰지 마시고 우리주께서 해야 되는 일을 우선해주세요. 무슨 일이신지는 모르지만, 끝나시면 맛있는 거 드시구요. 너무 늦지 않게 주무실 수 있기를 바라요.
손을 잡고 있는 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단랑의 손은 꽤 시원했고, 꼬마아이의 손은 서늘했다. 당신의 입술에 내려앉은 두려움이 보였던 걸까, 단랑은 당신에게 쉽사리 눈을 맞추지 못했다.
"이상한 일에 말려들게 해버렸네."
그는 붉은 시선을 비스듬히 내리깔고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머리카락에 여우귀 같은 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기분 탓일까 왜인지 귀를 축 늘어뜨린 것처럼 보인다.
"...내가 최대한 도와줄게. 어머니나 할아버지께 여쭈어보면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길을 드문드문 지나가는 행객들은 당신의 머리에 돋은 여우 귀가 보이지 않는 건지 별 내색을 하지 않고 그러려니 하고 옆을 스쳐지나갔다. 지하철을 올라올 때 당신은 당신이 알던 세상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올라오는 계단 위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당신이 알던 것과 조금 달라져 있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당신이 건넨 인사에, 단랑은 뜻밖이었던 건지 당신을 돌아보며 눈을 깜빡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이라는 듯이. 그는 엷은 웃음을 띄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고맙다고 하지 않아도 돼. 내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으니까."
이야기를 나누며, 단랑은 당신을 어떤 코너에서 가볍게 잡아끌었다. 재래시장 방문객들을 위한 공영주차장 건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 저기 계신다." 하는 말에 고개를 들어보면, 저 멀리 조금 이상한 차림의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키가 2미터 가까이 될 것 같은 대단히 홀쭉한 남자였는데, 이 한여름에 붉은 셔츠와 새까만 수트 바지, 재킷을 쫙 빼입고 있었다. 얼굴에는 딱 봐도 몇 주 정도 내내 야근한 것 같은 피로가 한가득 절어 있었고, 한 손에는 까만 케이스에 담긴 태블릿 PC가 들려 있었다. 그 남자는 눈을 슬몃 들어 당신과 일행을 거들떠보더니 "왔구먼." 하고는 자기 옆에 서 있는 사람을 곁눈질해 보였다.
그 옆에 서 있는 사람은 거의 낡아빠진 누더기가 된 옷을 입은 아주머니였는데, 머리룰 푹 숙이고 있고 산발이 된 머리카락이 길게 드리워져 있어 얼굴을 볼 수가 없는 음산하고 귀기넘치는 몰골이었다. 그 아주머니에게도 그림자가 없었다. 귀를 기울여보면, 산발이 된 머리카락 사이로 웅얼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저기, 우리 애기 봤어요? 올해로 여덟 살 난 아이인데, 머리카락은 까맣구요, 키는 이만큼 오고, 줄무늬 티셔츠에 데님 오버롤을 입고 있어요. 눈이 또랑또랑하고 귀엽고 총명하게 생긴 아이니까, 한 눈에 보면 기억에 남을 거에요. 지하상가 주변에서 잃어버렸는데..." 하는 횡설수설하는 소리.
그리고 당신의 손을 쥐고 있던 아이의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아이를 내려다보면, 눈에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는 눈물.
피로가 너무 쌓여있었네요.. 잠이 너무 모자랐나... >>116 쓰고 나서 병든 닭마냥 졸다가 이제 깼네요. 모자란 잠을 자고 있었으니 편안한 저녁...일까요? 이 쪽도 만만찮게 습도가 높아요.. 습도가 높고 바람이 불면 곧 비가 오던데, 비가 내릴 기색은 안 보이는 이상한 날씨네요.
단랑이 그 귀신을 부르고, 우리가 아이의 손을 놓아주자... 아이는 소리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아주머니에게로 후닥닥 달려갔다. 중얼거리는 소리가 멈추나 싶더니, 산발이 되어 늘어진 머리카락 사이에서 놀라울 정도로 평범한 어머니의 얼굴이 드러났다. 황망한 기색을 띄고 있던 그 얼굴은 아들이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허리를 꼭 끌어안자, 경악을 하더니 그만 눈물을 왈칵 흘리고 말았다. "아이고 우리 새끼 어디 있었어. 우리 ○○이 어디 있었어. 엄마가 놓쳐서 미안해. 두고 가서 미안해. 드디어 찾았구나. 이제 엄마가 같이 있을게. 엄마와 같이 가자 내 새끼..." 수트 차림의 남자는 피곤에 찌든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문득 시선을 다른 곳으로 피했다.
"선생님도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학생들도, 학생들이 우리 ○○이 찾아준 거죠.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뭔가 드려야 하는데 드릴 게 남아있지 않아서 어쩌면 좋아. 내 이 일은 잊지 않을게요. 두 사람 쌓은 공덕이 분명히 두 사람에게로 돌아갈 거에요.."
아주머니는 시선을 들어올리더니, 수트 차림의 남자와 단랑, 그리고 당신에게도 거푸 고개를 꾸벅꾸벅 숙여보였다. 수트 차림의 남자는 아주머니의 말에도 별다른 대꾸 없이 손에 든 태블릿을 몇 번 톡톡 건드려보더니, 태블릿과 두 모자를 한 번씩 번갈아보곤 고개를 끄덕인다.
"뭐, 아드님 찾아드렸으니... 이제 가셔야죠." "그래야죠... 그 동안 같이 못 있어줬는데 가는 길이라도 같이 갈 수 있게 되었네요."
수트 남자는 피곤한 시선을 단랑과 우리에게로 돌리더니, 한번 손을 들어보였다.
"고맙다, 두 사람. 백단랑과... 또 한 명은... 아이고 저런. 힘내라."
당신에게 일어난 이변을 그 남자도 알아볼 수 있었던 걸까, 그는 격려를 하는 건지 시니컬하게 놀려먹는 건지 모를 한 마디를 건네고는 모자를 데리고 주차장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단랑은 그 남자에게 "조심히 가세요, 차사 선생님." 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이제서야... 당신의 귀갓길은 평화로운 것이 되었다.
"?"
당신에게 뭔가 말을 꺼내려던 단랑은, 당신이 먼저 선수를 쳐서 말을 꺼내자 눈을 깜빡이다가 이어져오는 뒷말에 아, 하는 표정이 되어서는 당신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래, 그렇구나."
그렇게 당신을 무심코 가만히 바라보며, 다음 말을 꺼내려던 단랑은 당신이 얼굴에 띄워보이는 환한 미소에 말문이 막혔다. "어..." 그는 눈을 깜박이며 뒷목을 긁적이다가, 시선을 조금 내리깔며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마워." 하고 대답했다. 당신이 내밀어온 새끼손가락에 자기의 새끼손가락을 마주걸 때는 그의 시선이 다시 돌아왔다.
"응.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볼게." 그리고 손을 풀고서야, 단랑은 고개를 들었다. 어느덧 땅거미가 뉘엿뉘엿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내가 집에 바래다줄게. 어느 쪽으로 가?"
앗 안 돼 우리 엇갈려버리네요 ㅠ-ㅠ... 제가 지금 자러간다는 뜻이랍니다 흑 어제오늘 데굴데굴 굴렀더니 꽤 피곤하네요 ㅇ<-<... 올려주신 답레 보았으니 내일 일찍 답레 써놓을게요! 이건 다른 말이지만 단랑주 종종 잠을 잘 못 주무시는 것 같아서 조금 걱정이 되네요. 오늘은 편안하게, 푹 주무셨으면 좋겠어요. 꿈 없이 깊게 자는 밤 되세요!
연거푸 인사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에 우리도 따라 허리를 숙였다. 그 모습에 괜히 코끝이 찡해져 한 번 훌쩍이기도 하면서. 평화가 찾아온 듯 보이는 모자의 모습에 안심한 우리가 뒤늦게 남자를 바라보았다. ...저승사자? 동그랗게 뜬 눈을 깜빡인 우리는 곧 들려오는 힘내란 소리에 저도 모르게 머리를 더듬었다. 새삼 제가 발 담근 비일상이 피부로 와닿아 기분이 묘해졌더라도,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다.
“안녕히 가세요–.”
우리가 멀어지는 세 사람을 향해 인사했다. 그리고 이제 둘만 남았다. 다짐하듯 얽힌 새끼 손가락을 가볍게 흔든 우리가 웃었다.
“그렇게 말해주니까 든든하네. 나도 고마워.”
단랑에게 말하진 않았으나 우리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마 처음 단랑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들키고 싶지 않았을 비밀을 괜히 알아낸 것 같아서도 그랬고, 괜히 귀찮은 일을 떠안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도 그랬다. 비록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단랑은 꽤 진중하고 성실한 편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너도 피곤할 것 같은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 우리가 다시 씩씩한 표정으로 이어 말했다.
“우리집 여기서 되게 가까워. 저기 횡단보도 건너서 조금만 걸어가면 아파트 단지 나오거든.”
우리가 근처 횡단보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방금 큰일이 있기야 했지만... 설마 또 무슨 일이 생기겠어?
오늘 하루가 마무리되었다고, 뉘엿뉘엿 기울어지는 햇빛이 말해주는 것 같다. 지극히 이상한 해후가 끝난 뒤, 아이의 팔랑팔랑거리는 손짓을 뒤에 남기고 모녀와 남자는 주차장 안으로 사라지고... 이상한 급우와, 당신만이 그늘진 골목에 남았다. "별말씀을." 당신이 움켜쥔 새끼손가락을 살래살래 흔들며 웃어보이자, 단랑은 시선을 조금 피하며 덧붙였다.
말수가 적고 신중한 이 별난 소년은, 그러나 오늘부터는 당신과 함께 이상한 비밀 하나를 공유하게 되었다.
"아니, 그다지. 널 바래다줘도 늦지 않으니까."
당신이 방향을 가리켜보이는 것에 단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방향이 같았던 모양이네. 다행인걸."
그렇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평온한 일상과는 전혀 다른 이상한 것들을 보고 이상한 비밀을 공유하게 되었음에도, 이러고 있자면 당신의 삶은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그저, 오늘따라 웬일로 별로 이야기나눠본 적 없는 서먹서먹한 아이와 같이 귀가하게 되었다는 정도의 작은 변화밖에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단랑의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다소곳한 무표정은, 아까 있었던 일은 그저 구닥다리 옛날 이야기에 불과했다고 말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오늘은 이제 더 이상 별난 일이 없이 당신이 기억하던 당신의 원래대로의 일상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이고야 계신 곳은 비가 안 왔나요 ㅋㅋㅋㅋ큐ㅠㅠㅠㅠ.... 저.. 저는... 평일은 역시 힘들다고 느끼는 중입니다 orz.. 이제 씻고 누워서 일상 이을 여력은 없고 괜찮으시다면 얘기 조금 나누다 자게 될 것 같아요 88 참 제가 내일 저녁~밤에는 들어오지 못할 것 같아서 미리 말씀 드려요! 답레는 내일 오후 중으로 드리겠습니다...!
ㅂ벼벼벼별말씀을다 그렇군요. 그러시다니 다행이네요. 저는 내일 낮에 시간을 못 내는 게 엄청 아깝지만... 그래도 스케줄 맞춰 주시는 거라니 안심하겠습니다. 배려는... 우리주를 위해드리는 것도 위해드리는 거지만, 오래 돌리고 싶으니까요 ◐◐ 부담갖지 않으셨으면 해서.. (후다닥)
이제 귀여우셔~~~ ㅎ-ㅎ 분홍글씨 다 봤어요~~~ ㅋㅋㅋㅋㅋㅋㅋ 시간될 때마다 핑퐁하는 걸로 즐거우니까요..! 그리고 뭔가 저희 평일 밤에는 나름 동접 잘 되지 않나요? 저도 부담 드리는 거 아니니까 꼭 밤마다 오려고 하지 않으셔도 돼요 ㅋㅋㅋㅋㅋ 각자 체력이랑 취향 맞춰 오래오래 돌릴 수 있음 좋겠네요! 단랑이 꼬리가 아홉 개 되는 날까지......!
그냥 제가 빨개지는 걸 보고 싶으신 거죠... (나만 당할 수 없다) 단랑이도 칭찬에 약해요 (?) 즐거우시다니, 마찬가지네요. 기뻐요. 음.. 저도 우리주가 다른 바쁘신 일이 있다면 마찬가지 말씀을 드리겠지만. 이렇게 우리주를 뵙는 게 기뻐요. 네, 오래오래 돌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맞아요.. 저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딱히 그걸 감출 생각이 없습니다...! 빨개지는 거 귀여우세요 ㅎ-ㅎ~! 앗 이번 레스에서 단랑이 시선 조금 피한 게 혹시 부끄러워서였던 건가요! 그렇다면 너무 귀엽다... 둘러싸고 강강수월래하면서 칭찬감옥에 가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랑이 귀여워~ 든든해~ 멋져~ (앟... 그보다는 적어야겠는걸요...... 우리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다 못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 는...)
예리하시네요. 단랑이는 얼굴은 얼추 포커페이스인데 제스쳐에서 다 드러나는 애라.. 단랑이가 얼굴을 싸쥐고 도망가(려)는 것까지 보고 싶으신 거군요.. 단랑이 앞길이 왠지 훤하다(?) (우리가 만일 꼬리 갯수가 늘어나면 100년 정도로는 꼬부랑할머니는커녕 나이먹은 티도 안 나게 되겠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단랑이가 익숙해질 때까지 우리를 시켜 단랑이 칭찬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어요! 우리는 사람을 좋아하는데다 비교적 표현에 익숙해서 어렵지 않게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네요 ㅋㅋㅋㅋㅋ 아앗 완전히 여우가 되는 건가요....! 우리에겐 새드엔딩이 될 수도 있겠네요..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걸 견뎌야 하니까 88 스포일러 보고 동공지진 하였습니다... 우리도 많이 놀라겠는데요 ㅋㅋㅋㅋㅋ
슬슬 눈이 감겨서 이제 자러 가려고 해요! 단랑주 오늘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평안한 밤 되세요~
시선을 돌리는 단랑을 보며 우리가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우리의 눈에는 그쪽에 무언가 있어 바라본 것처럼 보인 탓에, 자연스레 눈이 그쪽으로 갔다.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방향이 같구나. 다행이네. 그럼 같이 가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천천히 걸어 그늘을 벗어나 다시 횡단보도 앞에 섰다. 햇볕은 시간이 지난 덕에 조금 덜 따갑게 느껴졌다. 그래도 여전히 눈 부시기는 했다. 손으로 차양막을 만든 우리가 단랑의 말에 대답했다.
“응, 물어보시면 그렇게 말씀 드릴게. 틀린 말도 아니니까.”
그 아이가 산 사람은 아니었고, 괴물을 마주치기도 한 데다 머리 위에는 귀까지 생겨버렸지만— 어쨌든 아이를 데려다 준 건 맞았으니까. 많은 게 생략되긴 했어도 거짓말은 아니었기에 죄책감은 덜했다. 도로에 있는 신호등이 노란불을 거쳐 빨간불이 되고, 횡단보도 건너편의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왔다. 좌우를 살피곤 움직이기 시작한 우리가 무언가 생각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크게 뜬 눈은 당연히 단랑을 향했다.
“근데 신기하다. 같은 방향인데 한 번도 안 마주친 거.”
우리는 집에 갈 때도, 등교할 때도 단랑을 본 기억이 없었다. 사람이 많더라도 쉽게 묻힐 만한 인상이 아니라 더욱 신기하게 느껴진 걸까?
“일찍 다니는 편이야? 시간 대가 안 맞았나.”
대부분 아슬아슬하게 교실에 도착하곤 하는 우리니까 단랑이 조금만 일찍 집을 나선다면 방향이 겹쳐도 마주치지 않았던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야 당연히 뭔가 특별한 게 있을 리가 없다. 그가 시선을 돌린 건 뭔가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뭔가를 마주보기 힘들어서였으니까.
"응?"
방향이 같구나, 하는 말에 단랑은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방향이 아주 같은 건 아냐." 그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한 발짝 비스듬하게 앞으로 나섰다. 우연하게도 그가 그렇게 움직이자 단랑의 그림자가 당신에게로 길게 드리운 덕에, 더 이상 손으로 차양막을 만들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가 고개를 돌리고 당신을 내려다보면, 자연히 뉘엿뉘엿 기울어지는 태양을 등지고 오렌지빛 햇살에 휩싸인 모습이 되었다. 하얀 머리카락에 쏟아지는 햇살이 말갛다.
"응."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가 생긴 것은 맞지만... 당신의 원래 귀는 분명히 당신의 머리 양쪽에 잘 달려 있었다. 머리 위로 새로운 귀가 돋았나 싶어 머리 위를 쓸어보면 당신의 머리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을 테고.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은 아직 인간인 모양이다. "그거 말고도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 아는 선에서 대답해줄게. 당신을 따라 횡단보도에 발을 들여놓으며 그가 덧붙였다.
"내 집으로 가려면 아까 지하상가에서 ○○동 방향으로 나갔어야 돼."
확실히 지하상가쯤에서부터 길이 겹치긴 하지만, 방향이 미세하게 달라 당신은 이쪽 인도, 그는 저쪽 인도에서 등하교하는 그런 길이다. 당신과 달리 단랑이 일찍 등교하는 편이라는 것은 차치해두고서라도, 당신이 등하교하면서 길 건너편만 바라보고 있다거나, 그가 학교 근처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대신에 좀 더 일찍, 지하상가 근처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게 아니라면- 단랑을 지금껏 등교길에서 발견하지 못했을 만도 하다. 그러나 그것뿐만이 이유가 아닌 듯, 단랑은 얼굴에 옅은 웃음을 지었다. 조금 장난스러워도 보이는.
단랑의 반응에 오히려 우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제 위로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손을 내린 우리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단랑을 보고 있었다.
“난 아주 같은 줄 알고 같이 가자고 한 건데...”
우리가 시무룩한 티를 내며 말했다. 피곤할 텐데 괜히 돌아가게 만든 건 아닐까,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물론 이렇게 얘기하면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올 테고 어쩌면 정말로 아무렇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이제와 돌려보내기도 애매한 데다 구태여 계속 거절하며 선의를 무시하는 것도 좋은 행동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단랑과 발을 맞춰 걸었다. “궁금한 거...” 중얼거린 우리가 고민에 빠졌다.
“네가 준 거말이야. 아까 따뜻해지던데 그건 무슨 뜻이야?”
추운 데서 따뜻해지는 거라고 하기엔 괴물과 가까워졌을 때 온도가 더 올라갔었지. 어렴풋이 경고의 의미가 아닐까 예상은 해보지만 조금 더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응, 그렇구나. 다른 방향이네.”
같은 방향이었던 건 지하상가까지였던 셈이다. 고개를 끄덕이다 이어지는 말에 단랑을 바라보았다. 얼굴에 언뜻 비치는 웃음. 흔치 않은 모습에 저도 모르게 빤히 쳐다보다 뒤늦게 반응하고 말았다.
그래서 거의 같은 방향이라고 말한 거고. 시무룩하게 변해버린 당신의 얼굴에, 단랑은 고개를 살살 저었다.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 게 맞았다. 그것도 그것이고, 단랑에게는 오늘 귀갓길 내내 평생 생각도 못 해봤을 받아들이기 힘든 일에 고초를 겪은 사람을 상황 종료됐답시고 혼자 보내는 것은 너무 매몰찬 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러나저러나 자신과의 만남을 징검다리 삼아 이 세계를 접해버린 것이기에, 당신에게는 가이드가 필요하기도 했고, 기왕이면 이렇게 된 것- 연관이 있는 자신이 그 노릇을 하는 게 낫지 않겠나. 단랑의 생각은 그랬다.
"그 노리개가 따뜻해진 게 아냐."
우리의 질문에 단랑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너한테 옮겨간... 기氣라고 하면 될까? 그게 네가 무의식적으로 떠올린 이미지대로 그 노리개를 통해서 구현된 걸 거야. 그 노리개, 그러는 데 쓰는 물건이 아니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덕분에 같이 그 유충을 무찌르는 데 도움이 됐네."
그 노리개는 아직도 당신의 품에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이제는 괴이의 막이 부적으로써의 능력은 잃어버리고 예쁜 장신구일 뿐이지만. 그래도 소년에게 말해보면 다시 고칠 수 있기야 할 것이다(아마도). 당신이 다음 번에 건넨 질문에,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 목소리를 낮췄다.
"그렇게도 할 수 있지만, 나는 아직 그걸 그렇게 오래 유지하진 못해...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이 나를 인식하는 감각을 흐린달까, 존재감을 흐린달까 해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단랑의 설명에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모르게 무의식 중에 불을 떠올렸던 모양이다. 덕분에 쥐어도 뜨겁지 않은 불로 괴물에게 타격을 줄 수 있었지. 사실 여전히 제대로 다루는 법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익숙해지지 않는 편이 나은 걸까?
“그런 거구나. 추워지고 나서부터 따뜻하게 느껴져서 난 노리개가 경고라도 했던 걸까 생각했어.”
결과적으론 틀린 예상이었지만 상황을 해결하는 것에 도움이 되었으니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랑의 말에 귀 기울여 듣던 우리가 조금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일찍 나온 몇 번은 함께 등교했던 적도 있겠구나, 짧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럼 앞으로는 전보다 자주 마주치게 될 지도 모르겠네.”
우리가 웃으며 얘기했다. 질문이 있냐는 말에는 조금 고민했다. 궁금한 건 많았다. 괴이라는 것에 어떤 종류가 있는지, 오늘 만난 것처럼 악의를 가진 것들이 많은지, 또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유충치곤... 좀 크지 않았는지. 하지만 집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고 궁금한 걸 모두 물어봤다간 단랑을 아주 오래 잡아두어야 할 게 분명했다. 입가에 힘을 주고 계속 생각하던 우리가 단랑을 보고선 물었다.
"아마 네가 무의식적으로 위기감을 느껴서 그랬던 걸 거야. 그게 경고 기능이 있었긴 한데... 네 위기감을 먼저 느끼고 거기에 반응하느라 그게 작동을 하지 않았나 봐."
단랑은 주머니에 손을 폭 찔러넣고, 주섬주섬 무언가를 주머니에서 꺼낸다. 들어올려서 보면, 그것은... 매달려 있는 옥패가 까만색인데다 가운데에 커다란 금이 딱 깨어져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가 당신에게 건네준 것과 상당히 똑같은 노리개였다.
"원래 같으면 여우로 변해서 네 발목을 물고 잡아당겨야 하는데, 나도 이게 뜨거워져서 알아챘거든."
그는 그것을 주머니에 쿡 집어넣었다. ...이야기 한 번 변변히 못 나눠본 소년과 커플 아이템을 갖고 있었다는 건가.
"...그게 뭐하는 물건인지 너한테 정확히 설명을 해줬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미안해. 미처 정확히 말해주지 못했지만- 괴이라는 건 일종의 밈 전염을 통해 확산되니까,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괴이에 대한 이야기나 사실을 접하면 접할수록 조금씩조금씩 괴이의 세계에 가까워지게 되거든. 너한테 그 영향이 조금이라도 덜 미치게 하기 위해 그것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마저도 하지 않기로 했었지만, 그 유충이 하필 지하상가에 숨었다가 너와 마주칠 줄 알았더라면... 얘기해 주는 게 나을 뻔했다."
단랑의 말맺음은 조금 씁쓸했다. 괴이에 대해 알면 알수록 괴이의 세계에 가까워지는 것... 단랑이 말한 이제부터 내가 네 눈에 좀더 잘 띌 것이라는 이야기도 그런 맥락의 이야기였다. 괴이로부터 거리를 두고 평범한 삶을 계속 살아가도록 도와주고 싶었는데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은. 그러나 당신에게선 참으로 별난 대답이 돌아왔다. 별나게 해사한 웃음과 함께. 전보다 자주 마주치게 될지 모르겠다고.
"그랬으면 좋겠어?"
씁쓸한 심정과는 별개로 그는 이런저런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괴이라는 것은 종류가 아주 다양해 괴이에 대해 모두 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던가, 악의를 가진 것들도 많지만 사람들이 활발히 살아가는 생기가 가득한 장소에 침투하는 놈은 드물다던가, 새로운 대책을 준비해 주겠다던가, 성충이 된 다른 차원의 벌레 신을 보면 그게 유충이라는 것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라던가... 그러나 당신이 건네온 질문은 전혀 의외의 질문이었다.
"네가 그랬으면 좋겠다고 한다면,"
그랬으면 좋겠다고 한다면, 이라는 말은 당신의 두 가지 말에 대한 대답이었다. 자주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인사해도 되냐고. 피했던 시선을, 단랑은 당신에게로 가만히 되돌렸다. 빨간 눈이 깜빡인다.
여우로 변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단랑의 말을 듣는 우리의 표정은 내내 아주 신기한 것을 접한 사람처럼 보였다. 단순히 부적 같은 용도일 줄로만 알았지, 직접 여우로 변하기까지 할 거라곤 미처 예상치 못한 것이다. 그날 봤던 것처럼 하얀 여우였을까? 이상한 호기심이 따라 붙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응, 그때 편지로 말해줬던 것처럼 말이지? 지금 이야기해주기도 했고 아까도 도와주러 와줬잖아. 해결도 잘 됐고.”
오지랖에서 나온 괜한 추측일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겐 단랑의 말이 이상하게 자책하는 것처럼 들렸다. 얼떨결에 전혀 모르던 세계와 연결되긴 했어도 그게 누구의 잘못이라곤 생각 않는 우리였기에 더욱 신경이 쓰였는지도 모른다.
“난 만나면 반갑고 좋을 것 같아서.”
물론 그러려면 내가 더 일찍 다녀야겠지만, 덧붙인 우리가 조금 민망한 듯 웃었다. 눈이 마주치자 민망한 기색은 가시고 조금 더 친밀한 웃음으로 바뀐다.
“그럼 우연히 만나게 되는 날엔 내가 먼저 인사할게.”
어쩌면 가까워질 리 없었을 텐데. 우리는 이 낯선 세계가 두렵기도 했지만 새로운 관계를 열어준 것 같아 조금 즐겁기도 했다. 우리의 걸음이 조금 더 가벼워졌다. 가벼운 걸음은 얼마 남지 않은 집까지의 거리를 빠르게 줄여나갔다.
물론 일종의 부적은 맞았다. 다양한 기능이 있었을 뿐. 원래대로라면 당신을 괴이한 일들에게서 서서히 밀어내는 물건이었지만... 지하상가에 숨어있던 그것이 일을 그르쳤다. 비록 그것은 퇴치되었고, 지하상가의 이용객들이 그것에 해코지를 당할 일은 더 이상 없게 되었지만, 당신의 발목은 평범한 세계의 이면에 또 한 발짝 깊숙이 내딛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렇지만, 당신 말대로, 우선은 최선의 형태로 해결된 것이 맞긴 하다. 얼마든지 더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사건이었으니까.
"그래?"
당신의 얼굴에 민망한 기색은 날아가고 웃음만이 남자, 단랑의 시선이 조금 흔들렸다.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리려다 말았다는 느낌. 그것이, 왜인지... 비단 당신에게뿐만 아니라 단랑에게도, 무언가가 시작되어버리고 만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생전 처음 느껴보는 낯선 느낌에 단랑은 무표정한 얼굴 너머로 조금 갈팡질팡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왜인지 엄마나 할아버지한테 쟤를 소개시켜줬다간 불필요한 오해를 사서 엄청 놀림받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과 함께.
"그랬으면 좋겠네."
하고 단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신이 웃고 있으니, 조금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웃는 표정은 제대로 지을 수 있는 게 신기햇다.
"조심히 들어가. 내일 봐."
희한하게도, 주말에 본가에 한번 들러볼 일정보다, 내일 학교에서 당신을 만날 모습이 좀더 생생하게 그려진다. 이래저래, 무언가 낯선 게 시작되는 느낌에, 단랑은 현관으로 발을 뻗는 당신에게 막연히 손을 흔들어주는 것이다.
시간이 늦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으시다면 부탁드릴게요. 편지 내용은 아마 "안녕. 막상 이렇게 또 편지를 보내려니 기분이 이상하네. 혹시 오늘 방과후에 시간 괜찮아? 만나서 이야기할 일이 있어. 심각하거나 한 일은 아니지만, 중요한 일이야. 오늘 방과후에 시간을 낼 수 없다면 언제가 괜찮은지 적어서 나한테 편지해 줘." 정도였을 것 같네요. 그리고 교실에서 아주 잠깐 눈이 마주치면, 단랑이는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조그맣게 끄덕, 하면서 눈짓 보내고..
학교에 마법처럼 금빛으로 바랜 햇살이 내려앉으면서, 활기와 생기로 가득찼던 학교가 조금씩 차분하게 가라앉는 시간. 미술실로 가는 복도를 걷노라면 며칠 전 그 때로 되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오늘은 그때와는 조금 달리, 초대를 받아서 가는 길이다. 점심시간 때, 책상에 놓여있었던 익숙한 필체의 쪽지. "미술실에서 만나" 라고 적혀 있는.
미술실 문을 드르륵 열어보면, 그래, 거기에는 당신이 기대하고 있던 그 소년이 있을 것이다. 새하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단랑이, 미술실의 투박한 나무 스툴에 앉아있다가 당신에게로 그 빨간 시선을 들어올리고. 다만... 소년의 허리춤에는, 당신이 그때 보았던... 왠지 엄청나게 푹신푹신할 것만 같은 여섯 가닥의 꼬리가 흘러나와서는, 강아지풀 흔들리는 마냥 살래살래 흔들리고 있다. 머리에는 예의 그 여우귀가 돋아 있고.
"응, 왔구나."
눈이 마주치면, 단랑은 당신에게 반갑게 인사해온다. 얼굴에 딱히 웃음기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 표정없는 얼굴에 조금은 반가워하는 기색이 느껴진다.
늘 신발장에 있던 쪽지가 오늘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누가 볼세라 잽싸게 쪽지를 챙긴 우리가 종이에 쓰인 글자를 찬찬히 읽고선 작게 웃었다. 막상 학교 안에선 인사 정도 하는 데면데면한 사이처럼 굴면서 이런 비밀을 공유하고 있다는 게, 어쩐지 즐거운 일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자주 웃고 있는 우리라서 수업이 마치기 전까지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딱히 수상해 보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오늘 기분 좋은가 보네—. 하는 말 정도만 들었으니까.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느릿느릿 짐을 쌌다. 누구보다 빠르게 집에 갈 준비를 하던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곧바로 하교하는 친구들을 배웅하고, 다른 반 아이들로 북적대는 복도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린 우리가 슬그머니 교실 밖으로 나왔다. 조용하지만 즐거운 기색이 담긴 가벼운 걸음이었다. 미술실 문을 열었을 때는 우리가 예상했던 상대가 있었다. 그날은 어쩌다 보게 된 거지만 오늘은 알고 보는 단랑의 모습은... 꽤 폭신해보였다! 작게 움직이는 꼬리에 정신이 팔려 있던 우리가 뒤늦게 말했다.
“내가 조금 늦었지......”
미안한 얼굴을 하며 단랑을 보았던 우리는 저도 모르게 다시 꼬리를 바라봤다. 아차, 하는 얼굴로 민망하게 웃은 우리가 뺨을 긁적였다.
“미안, 꼬리가 멋있어서. ...이런 말 실례인가? 그랬다면 미안해.”
그제야 본 목적을 떠올린 우리가 단랑의 맞은편에 앉았다. 가방을 근처에 내려놓은 우리가 바른 자세로 앉아 단랑을 바라보며 물었다.
단랑의 여우꼬리들이 살랑, 하고 흔들린다. 바람이 불어와 흔들린 건지, 그가 가볍게 흔든 건지, 산들바람이라도 한 차례 쓸고 지나간 마냥 부드러운 하얀 털들로 뭉쳐진 꼬리가 한 차례 찰랑였다.
"그래서 평소에 내놓고 다닐 때도 있었는데.. 넌 이제 이게 보이나 보구나."
그날 그 모습을 봐버린 게 어떤 계기가 되어버린 걸까. 단랑에게서 지금껏 못 보고 지나치던 어떤 면모가 당신 앞에 드러나 있었다. 그는 여섯 꼬리를 사르륵 늘어뜨리고는 검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당신의 등 뒤의 한 지점을 가리키더니, 스마트폰 화면을 밀어서 잠금해제하는 것처럼 손가락을 옆으로 슥 밀듯이 움직였다. 그와 함께 등 뒤로 미술실 문이 소리없이 닫혔다.
왜인지, 뭐라고 해야 되나. 할 말이 있다고 쪽지로 방과 후에 아무도 없는 미술실로 불러내고는, 게으르게 기우는 금빛 햇살이 비쳐드는 미술실에 단 둘이. 청춘 로맨스에서 흔히 고백 장면이 나올 때 이런 배경을 즐겨 사용하지 않던가...? 당신이 눈을 반짝이며 건넨 질문에, 단랑은 용건을 꺼냈다.
"이번 주말에, 혹시 시간을 좀 내어줄 수 있나 해서."
일반적인 고교 청춘 로맨스라면 확실히 데이트 신청 장면이라고 해도 좋을 법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단랑은 그 분위기에 초를 쳤다. 그는 손가락을 들어 당신의 머리... 정확히는 머리 위를 가리켰다.
오늘은 늦어도 너무 늦었죠... ㅇ<-< 주무시고 계시겠네요...... 어떻게 이틀 연속으로 이런 악재가. 8.8
우리의 여우귀는 실제로 머리에 여우귀가 돋아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환상이에요(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괴이와 접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심상에 이미지로 남았는데, 우리의 안에 깃들게 된 마력(마력이라고 표현하는 게 전달하기 쉬울 것 같네요)이 그 이미지대로 마치 진짜인 것처럼 물리적 환상으로 나타나는 거라고 할까요. 괴이와 근접했을 때 반응해서 나타나게 될 거에요. 단랑이의 여우꼬리처럼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요.
보통의 사람은 보지 못한다는 단랑의 말에 우리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기뻐하는 건 확실히 아닌 듯 보였으나 슬픔이나 짜증의 기색이라기에도 애매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속은 꽤 시끄러웠다. 그날 미술실 앞을 지나간 걸 후회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괴이와 엮인 게 달가운지를 묻는다면 아니라고 할 테니까. 살랑이는 꼬리를 본 우리는 그냥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던 우리는 단랑이 제 뒤를 손으로 가리키자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뒤를 돌아보자 부드럽게 문이 닫힌다. 누구에게 들킬까 살금살금 들어와놓고 문을 닫지 않았다니. 바보 같은 실수에 괜히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머리카락 끝을 꼬았다.
“미안, 문 닫고 왔어야 했는데 조심성이 부족했네.”
그러고 보니, 지금 이 상황 꽤 낭만적이다. 단랑의 뒤로 저물어가는 해는 따뜻한 빛을 내고 있었고, 조금 열린 창문 틈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이따금 머리카락을 간질였다. 거기에 조용한 미술실에 단 둘뿐이라니. 누군가는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을지도 모르지만, 이 자리에 있는 게 우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상대가 단랑이라면 더더욱. 단랑이 괜찮다곤 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단랑에게 약간의 부채감이 있었다. 비밀과 꼬리 때문에. 그 부채감은 단랑의 어떤 말에도 귀 기울이고 어떤 일에도 협조할 마음을 먹도록 도왔다. 단랑의 물음에 우리가 지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때문에 그러는 거지? 주말 이틀 다 괜찮아.”
우리가 귀가 있을 만한 자리를 콕콕 가리키며 말했다. 자신도 최선을 다 하기로 약속했으니 했던 말은 지킬 생각이다.
“그때 지하상가에서 나왔던 곳 있잖아. 거기가 너희 집이랑 우리집 중간쯤 되나? ...다른 곳이면 말해줘! 내가 그쪽으로 갈게.”
말한 우리가 다시 무언가 굳게 맘 먹은 듯한 표정으로 단랑을 바라봤다. 그러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아니... 그건 내가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방 얻어서 사는 하숙집." 단랑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우리 집 본가는 기차를 두 시간 넘게 타야 돼. 예성시에 있거든. 그래서 아마 너희 댁 부모님한테도 말씀을 드려야 할 거야."
예성시라고 한다면, 남부 지방에 있는 두 도의 경계선쯤에 위치해 있는 도시로, 남해와 접해 있는 관광도시였다. 남부 끄트머리까지 내려가려면 확실히 기차로 두 시간 정도는 소요될 것이다. 단랑이 제의한 여행길이라는 건 꽤나 먼 길이었다.
"빨리 가는 방법이야 있지만 그건 어지럽고 불편하니까 논외로 두고.."
뭔가 좀 떠올리기 꺼림칙한 걸 떠올린 듯 단랑의 미간에 조그만 실금이 스쳐갔다. 당신의 머리 위에 달린 그 귀와, 그의 등뒤에 흔들리고 있는 몽실한 꼬리들만 아니었으면 해수욕장이 유명한 예성시로 놀러가는 즐거운 주말 피서 여행 제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 그 귀와 꼬리들이 아니었으면 이 소년과 이렇게 빨리 안면을 트지도 못했을 테니, 하늘도 무심하다는 말을 이런 데 갖다붙여도 될까.
"네가 그렇게 멀리 가는 게 안된다면, 본가에서 어르신을 모셔올 수도 있으니까 곤란하다면 언제건 말해줘..." 하고 말을 끝맺으려던 단랑은, 당신의 심각한 표정에 따라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긁적였다. "글쎄, 괜찮다고 하고 싶지만, 할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복채나 새전 삼아서 뭔가를 가져가는 게 좋을 거야. 유부초밥이라면 사족을 못 쓰시니, 유부초밥을 가져가면 어떠려나."
늘어진 꼬리가 하나로 겹쳐지나 싶더니, 이내 거기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다. 고개를 들어보면 여우귀는 온데간데없이, 단랑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평소의 단정한 얼굴을 하고 있고. 머리를 만져보거나 거울을 보면 당신의 여우귀도 사라졌을 것이다. 단랑은 추가적인 용건이 있는 듯, 당신에게 다른 질문을 꺼냈다.
"맞아... 우리 너 혹시, 이전에도 이상한 걸 봤다거나, 굿 같은 걸 받아봤다거나 한 적 있어?"
우리주의 타이밍 감각에 박수를 보내요. 네, 주말 동안 이리저리 예정에 없던 외출에 끌려다니긴 했지만(그 덕분에 답레손실이 엄청 뼈아프게 났지만 8-8) 그럭저럭 잘 보냈어요. 일단 지금은 저녁을 건너뛴 제 호적메이트랑 밤참을 차려먹기로 한지라.. 다음 답레가 또 늦어질지도 몰라요. 8.8 답레는 모쪼록 느긋하게 써 주세요.
본가는 다른 곳에 있었구나.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과 함께 지냈던 우리에게 홀로 사는 일은 조금은 동경할 만한 것이었고, 또 조금은 신기한 일이었고, 약간은 쓸쓸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멋대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실례니까. 설레설레 고개를 저은 우리가 조금 고민하는 얼굴을 했다.
“내 시간 빼는 거야 어렵지 않은데, 부모님께 뭐라고 말씀 드릴지가 고민이네. ...역시 친구랑 같이 공부한다고 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일까.”
어딘가 결연함마저 느껴지는 얼굴로 말했다. 이 시기 학생에게 공부나 숙제 같은 단어는 거의 프리패스권이었다. 우리라고 예외일 리 없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예성시까지 가는 시간을 가늠해보던 우리는 무의식 중에 단랑에게로 시선을 옮겼다가, 아주 옅게 구겨지는 그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방금 떠올린 방법이 딱히 좋은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에 기차를 타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섰다.
“아냐, 괜찮아.”
사실 좋은 일로 가는 거라 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이 예정된 여정에 조금 떨리는 걸 느꼈다. 어쨌거나 익숙한 공간을 떠나는 일이 아닌가. 시간이 남는다면 바다 구경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구나. 물어보길 잘 했다. 나 하마터면 과일바구니나 주스 같은 거 들고 갈 뻔 했어.”
유부초밥 네 글자를 머리에 꼭꼭 눌러 쓴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알았다는 표시였다. 직접 만드는 게 나을까,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는 곳에서 사 가는 게 나을까. 소소한 고민에 침묵을 지키던 우리가 시야를 간질이던 꼬리가 조금씩 줄어드는 모양에 단랑을 쳐다봤다. 아차, 실례가 됐을지도. 잠깐 다른 쪽으로 눈을 굴린 우리가 단랑의 물음에 다시 그를 바라봤다.
“어..., 아니. 그런 적은 없는 걸로 알아.”
우리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보통을 벗어나 본 적 없는. 비록 지금은 평균 키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긴 했지만, 평균 밖인 건 그게 고작이었다.
시간내어 답레 이어주셔서 감사해요. 우리... 뭐라고 해야 될까 똘망똘망하고 호기심많고 예절바른 게 골든두들 같아서 귀여워요.. 네, 답레는.. 지금 바로 잇고 싶지만, 아무리 봐도 지금 답레를 이을 만한 기력이 없으므로 내일 이어오겠습니다.. 우리주도 평안한 밤 되시고, 좋은 한 주가 되기를 바라요. 안녕히 주무세요.
제가 재밌어서 잇는 답레인걸요! 골든두들 검색해보고 왔다가 귀여워서 심호흡 해야 했네요... 우리를 귀엽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단랑이는 잘생긴 여우예요. 같아요를 쓰지 않은 건 이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ㅎ-ㅎ 오늘도 자기 전에 뵐 수 있어서 좋았어요. 푹 주무세요, 단랑주~
엄밀히 말해 혼자 사는 건 아니었고, 개성 강한 하숙집 메이트들이 있지만... 음, 그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당신이 알아도 좋을 만한 사실은, 그도 당신만큼이나 하숙집 말고 아예 원룸 얻어서 혼자서 자취를 해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일까. 당신의 고민에 단랑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덧붙인다.
"음... 그렇게 말하고도 부모님이 납득 못하시면, 내 번호 줄 테니 내가 부모님과 통화하게 해줘."
그는 자기 옆에 놓여있던 연습장의 종이 한귀퉁이를 쪽 찢더니 정갈한 필체로 연락처를 삭삭 써내려서는 당신에게 건네어준다. 당신의 부모님을 설득할 좋은 수단이 있는 걸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기도 하다. 단랑의 성적은 전교 최상위권이었으므로, '저번 중간고사 때 우리 학교에서 몇 등 한 애랑 친해져서 같이 공부하기로 했다' 고 말하면 "그것 참 좋은 친구구나" 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굳이 타박하거나 비평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당연하게도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하니까.
"과일-" 당신의 말을 단랑이 가만히 되뇌어보다가, 딴데 팔려있던 정신을 다잡는 듯이 눈을 깜빡인다. 그러다 당신이 꼬리에 시선을 두는 것을 보았는지 소년은 옅게 웃었다. 그의 허리춤에서 줄어들던 새하얗고 복슬복슬한 꼬리가 다시 여섯 갈래로 피어나 폭신하게 살랑인다. "왜. 만져볼래?" 하고, 조금 장난스러운 질문이 건네어져온다.
공부에 영 취미가 없는 우리라 아마 부모님은 공부라는 단어를 꺼냈다는 것으로도 기뻐하며 등 떠밀어주실 테지만, 또 혹시나라는 게 있으니까. 아마 단랑의 등수까지 얘기한다면 그 혹시나도 사라질 것 같긴 하다. 오히려 공부하고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면서 용돈을 쥐여주실지도. ...그걸로 유부초밥을 사서 갈까? 우리가 잠깐 생각했다.
“아, 응. 고마워.”
쪽지를 받자마자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 우리가 적힌 번호를 저장했다. “잠깐만....” 중얼거린 우리는 계속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저장만 하는 거라면 아직까지 휴대폰을 붙들고 있을 리 없는데, 우리의 손가락이 이상하게 오래 꼬물댔다. 조금 지나면 단랑의 휴대폰이 울렸을 것이다. 확인해 보면 도착해 있는 메시지. <안녕, 나 우리!> 느낌표 뒤에는 웃는 얼굴을 한 이모티콘이 하나 붙어있다.
단랑이 웃는 얼굴을 조금 신기하게 쳐다 본 우리가 다시 늘어나는 꼬리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들린 말엔 도리어 제가 난감한 얼굴을 했다.
“...그래도 돼?”
미간을 좁힌 채 고민하던 우리가 물었다. 우리에겐 꽤 심각한 고민 끝에 나온 질문이었는지, 입술까지 동그랗게 모은 채였다.
당신이 핸드폰을 잠깐 붙들고 있자, 부모님한테 연락드리는 건가 하고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단랑은 뜬금없이 자기 핸드폰의 알림음이 울리자 조금 놀랐다. 눈에 띄게 움찔하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에 눈을 조금 휘둥그레 뜨는 정도로. 그는 자기 핸드폰을 꺼내며, 멋적게 머리를 긁적였다.
"네 번호를 달라고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하고 그는 웃는다. 곤란해하는 듯한? 아니, 저건 쑥쓰러워하는 듯한-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뜻밖에, 가족과 선생님들의 전화번호만이 저장되어 있던 삭막한 전화번호부에 처음으로 반 친구의 전화번호가 남았다. 그것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몰라 단랑은 말을 아꼈다. 절대로 나쁜 기분은 아닌데, 티내기에는 왠지 쑥쓰러운 그런 기분이었기에.
"...그래도 알려줘서 고마워." 단랑은 핸드폰을 톡톡톡 건드렸다. 곧 당신의 핸드폰에 알림이 간다. 채팅창에 들여다보면, 참 짓궂게도 뭐라 말은 없이 🦊 이모지 하나가 대답으로 톡 띄워져 있다.
당신은 힘겨운 고민 끝에 내놓은 대답임에도 그는 여전히 너그럽다고 해야 되나, 느긋하다고 해야 되나 옅은 웃음을 얼굴에 건 채로 꼬리들을 살랑 흔들었다.
"어디까지나 네가 그러고 싶다면."
꼬리를 만지는 게 (어쩌면, 허락하에 꼬리를 만지는 게) 딱히 크게 실례되거나 하는 일은 아닌 모양이다.
끝에 가선 조금 자신감이 줄어든 목소리였다. 그야 괴이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것도 단랑이었고, 성적도 단랑이 월등히 좋은 데다 학교 생활도 무난하게 잘 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내 도움이 필요할까? 고민에 빠진 우리의 얼굴이 또 다시 심각해졌지만 곧 좋은 대답을 생각해낸 듯 환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 그래도 친구니까.”
어떤 조건을 만족해야 단랑의 친구가 될 수 있는지는 몰라도, 일단 단랑은 제 친구였다. 친구라면 휴대폰 번호 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우리의 지론이다. 고맙다는 말에 웃은 우리가 다시 울리는 제 휴대폰을 봤다. 여우 이모티콘을 하나 보낸 게 참 잘 어울리기도 하고, 의외이기도 하고.
흔들리는 꼬리에 시선을 뺏겼던 우리가 단랑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실례합니다.”
조심조심 손을 뻗어 살짝 건드리곤 눈치보듯 단랑을 쳐다봤다. 어정쩡하게 꼬리에 손을 올린 채로. 손에 닿은 하얀 털은 보이는 것만큼이나 부드러웠다. ...근데 손을 언제쯤 떼야 하지?
조금씩 줄어들던 목소리가 갑자기 피는 게, 왠지 나팔꽃 같아 단랑은 하려던 말도 잊고 당신을 바라보았다. "친구..." 단랑은 문득 다시 핸드폰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고우리, 라고 적힌 이름이 전화번호부에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친구. 친구. 낯선 울림이다. 당신의 손끝이 폭, 하고 하얀 털 사이에 파묻힐 때 단랑은 당신에게 시선을 둔 채로 당신의 이름을 나직이 불렀다.
"우리야. 고우리. 맞지?" 하고는, 조금은 어색하게 웃는다. "제대로 입으로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그러고 보면, 서로 누가 누군지도 알고, 편지도 자주 주고받았고, 서로 이름도 알고 있었을 텐데 서로를 제대로 불러본 적은 없다. 그래서, 당신과 이 소년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알고 있는 정도에 비해 조금 뒤늦게서야- 그러니까 이제서야 시작했다.
"나 어쩌면, 너한테 도움을 엄청 많이 받아야 할지도 몰라." 살랑, 하고 흔들리는 하얀 꼬리가 푹신해서, 털이 길고 숱이 많은 어떤 동물의 등을 쓰다듬기라도 하는 느낌이다. 그것은 꽤 따뜻했다. "어머니는 나더러 항상 교우관계를 넓게 가지는 게 좋다고 말씀하시는데... 사실, 나 사람 대하는 걸 잘 모르고... 조금 무서워서, 여태껏 누구와도 전혀 가까워지지 못했거든."
당신도 알고 있었겠지만, 단랑은 반에서 자기 혼자 조금 둥실 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에 대해 험담을 하는 사람은 없었고, 좋은 인상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많았지만, 정작 또 그와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모범생의 신비한 거리두기로 보였던 그것은, 그의 정체를 알고 나서는 영물이라는 정체를 들키지 않도록 거리를 두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 동급생은... 그저 인간관계에 대한 경험이 없는데다 겁이 많아서 그랬던 것인 모양이다.
그야, 우리처럼 햇살같은 아이가 친구가 되어주겠다는데... 무자각 아싸인 단랑이에겐 너무 과분한 찬스니까요 u.u... 네, 답레는 모쪼록 원하시는 만큼 천천히 써주세요. 귀엽게 보이는 부분은 그저 단랑이가 미숙한 부분일 뿐이에요... 잘하는 것이 있는 만큼 부족한 면도 많은 아이지만, 우리 단랑이를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u.u 모처럼의 휴일인데 답레를 너무 늦게 가져왔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 밤에도 푹 주무시고, 좋은 꿈 꾸시기를 바라요.
무자각 아싸 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 우리랑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단랑이에게도 다른 친구들이 조금씩 생겨가면 좋겠네요...! 우리도 여러모로 부족한 부분이 많은걸요. 우리도 잘 부탁드려요 ㅎ-ㅎ 아니에요, 이렇게 잠깐 뵙는 것도 반갑고 좋은걸요! 답레 잘 생각해서 써올게요. 단랑주 평안한 밤 되세요~
제 이름을 부르자 우리가 단랑과 눈을 맞췄다. 눈치를 살피듯 조심스럽게 바라보던 직전과는 다른 시선이다. 아주 또렷하게 단랑을 마주보고선 웃는다.
“응, 너는 단랑이지? 백단랑.”
단랑이 한 말을 비슷하게 반복했다. 같이 이상한 일을 겪고 대화도 나누어 봤는데, 이렇게 이름을 부르는 건 처음이다. 어딘가 간지러운 느낌이 드는 것도 같다. ...아니, 부드러운 느낌인가? 무의식 중에 손에 닿는 따뜻하고 보들보들한 털을 조금 더 쓰다듬다가 손을 떼어냈다. “그러네.” 대답한 우리가 조금 멋쩍게 웃었다. 곧 그 얼굴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게 되었지만.
조곤조곤 이어지는 단랑의 말을 들은 우리는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였다.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거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거라 예상했는데, 단랑도 그저 타인에게 쉽게 마음주는 일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건 꽤나 의외였다. 아무리 조금 다르다고 해도 똑같은 또래의 아이인데. 우리가 혼자 조용히 반성했다. 자신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알 수 없는데 더더욱 알 수 없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자신을 내보이는 일은 쉽지 않다. 어떤 상처를 받을지 모르고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까. 하지만 마음을 열고 난 뒤에만 보이는 타인의 세계도 있기 마련이다. 거긴 아름다운 꽃밭이기도, 울창한 숲이기도 했는데 제각각 아름답다는 점만큼은 같았다.
보통 친구라는 게 계약 맺듯이 상징적인 의식을 통해서 정해지는 건 아니지만, 친근함이며 친밀감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거운 것도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게 얇고 가벼운 친밀감은 차근차근 쌓아가는 데에 익숙하지 못한 이 모범생에게는 물꼬를 터주는 일이 필요했다. 당신이 내민 손은 그 첫삽이었다.
그러니 당신이 괜히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본의가 아니었다고 하지만, 어찌되었건 이 신비로운 동급생에게 닿은 인연을 붙들기로 한 것은 당신의 선택이고, 그것은 명백히 그에게 좋은 일을 해주는 것이니까. 이번 여름은 아무래도, 이래저래 기묘한 여우들린 여름이 될 것 같다. 영광이야, 하는 말에 단랑은 다짐해 주듯이 대답했다.
"고마워."
이 소년은 평온한 무표정 뒤에 무엇을 숨기고 있을까? 그는 당신의 손을 쥐고 짧게 흔들며 웃어보일 뿐이다. 다만 악수를 해서 그런 걸까, 당신이 다른 이들보다 이 소년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걸까, 그도 아니면 그냥 햇볕 탓일까... 교실에서 보았더라면 평소의 그 신비롭게 평온한 미소로 보였을 그 웃음은, 조금 붕 떠있고 순진한 웃음으로 보인다.
"아무튼... 그럼, 집에 가서 부모님께 한번 말씀드려 볼래? 나는 집에 가서 기차표를 찾아볼게."
... (기차표를 예매했는데 자연스레 연속으로 붙어있는 옆자리로 예매한 단랑이를 떠올린 사람의 표정) (조금씩조금씩 흔들리는 좌석과, 나직하게 덜컹덜컹거리는 기차 달리는 소리에 고개가 꾸닥 꺾이더니 우리의 어깨에 기대고 졸기 시작한 단랑이를 떠올린 사람의 표정) (...이런 망상을 해도 되는지에 대한 죄책감)
저도 단랑주와 단랑이와 이번 여름 함께하게 돼서 기뻐요! 넵 같이 예쁘게 잘 채워봐요 ㅎ-ㅎ 이번 주 정말 바쁘네요.. 일주일에 두 번은 운동까지 끼어있으니까 집에 오면 그냥 물미역이 되어버리는 ㅇ<-<.... 지금부터 답레 쓰기 시작해서 잠들면 내일쯤 올라가지 않을까 해요 ㅎ-ㅠ.. 편안하게 쉬시면서 기다려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그래도 너무 조용히 쓰는 것보단 다녀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발도장 남깁니다. 콩!
운동을 안 하면 저질체력이 되고, 하고 나면 물미역이 되니 그것 참 딜레마죠... 그렇지만 기초체력을 관리해두면 확실히 수면의 품질이라던가 기력이라던가 달라지니, 좋은 선택이에요. 그 외에도 일정이 많이 바쁘신 것 같은데... 저도 하루하루 그날그날 쳐내면서 쉴 때는 확실히 쉬고 있으니 너무 기다릴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목-금요일에 오시겠다고 사전에 말씀해주시기도 했구요. 우리주도 답레에 너무 서두르거나 무리하지 마시고, 느긋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써주셨으면 해요.
그렇지만.. 이렇게 가끔이라도 갱신해주셔서 이야기 남겨주시는 건, 기뻐요. 오늘 밤도 느긋이 휴식 취할 수 있는 좋은 밤 되길 바라요.
단랑의 고맙다는 말에 우리는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오늘부터 친구!'라는 선언과 함께 관계를 정의하는 건 아주 오랜만이었던 탓에 조금은 낯간지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기분 나쁜 간질거림은 아니었다. 오히려 웃음이 나게 하는 쪽이라면 모를까. 단랑이 웃는 장면은 귀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우리는 제가 희소한 무언가를 얻은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잠깐이지만 가볍게 흔들렸다가 떨어진 손은 퍽 다정했다. 어쩐지 이상한 표현인 것도 같지만,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늘 어른스럽게, 혹은 조금 멀게만 느껴지던 단랑이 이제야 제 또래처럼 느껴졌다고 하면 좀 우스울까. 머릿속으로 홀로 이런 저런 생각을 굴리던 우리가 단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허락 받으면 문자할게."
아마 공부라는 말을 꺼낸다면 더 묻지도 않고 허락해 주실 분들이니 말씀 드리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닥 걱정되는 일이 없었다. 너무 속 편한 생각일까?
"그럼 오늘 비밀모임은 여기서 해산이지?"
우리가 조금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짧은 시간이었는데, 이름 붙이니 뭔가 중요한 일이라도 된 것 같았다.
"비밀모임?" 생소한 단어 선정에 단랑은 눈을 깜빡였다. 왠지 조금 낯선 느낌이 들었다. 부모님의 설계대로 반듯하게 설계되어 오던 자신의 나날에 예기치 못하게 돌멩이가 하나 굴러들어온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낯선 느낌이 결코 싫지가 않았다. 굴러들어왔기에 무심코 집어든 그 돌멩이가 예쁜 하얀색으로 반짝이고 있어서, 단랑은 문득 가지런히 앞으로만 두고 있던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네..." 라는 말로 당신이 굴려준 그 조약돌을 되짚어보며, 단랑은 자기도 모르게 배싯 웃었다. 비밀 모임이 이번이 끝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왜인지 그 조약돌이 굴러온 샛길로 가면, 거기 놓여있는 것들을 따라가면 재밌고 기쁜 것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지. 오늘은 여기서 해산하자. 너도 집으로 바로 갈 거야?"
단랑은 가방을 집어들며, 당신에게 가볍게 질문했다. 해산을 한다고 해도 미술실에서 떠나는 것뿐으로, 어차피 지하도까지는 당신과 귀갓길이 겹치니까 그 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갈 수 있을 것이다.
# 3.3 다음 답레를 쓰실 때 우리주께서 귀갓길에 오르는 장면을 서술하면서 짧게 끝맺은 뒤에, 톡을 주고받는 느낌으로 잠깐 이었다가 바로 기차역에서 만나는 장면으로 넘어가면 자연스러울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어떨까요..?
몰래 쪽지를 교환해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고 몰래 약속한 곳에서 만나는 일. 어쩐지 거창한 단어 같기는 해도, ‘비밀모임’ 말고 달리 다르게 칭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쉽게 수긍해주는 단랑을 보고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고. 마주 웃은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려둔 가방을 다시 멨다.
“응, 너도 집에 가지? 지하상가 있는 데까지 같이 갈래?”
물은 우리가 제가 있던 자리를 꼼꼼하게 정리하고 미술실 문을 열었다. 누군가 있는지 두리번거리며 살핀 우리는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자 아직 미술실 안쪽에 있는 단랑을 향해 손짓했다. 지난 번엔 마냥 즐겁다고만 할 수 없는 귀갓길이었지만, 오늘은 어쩐지 기분 좋게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한 입 깨문다면 단 맛이 날 예감이었다.
일단 집에 가는 느낌으로 짧게 적어봤어요. 이 뒤로 집에 돌아가서 단랑이가 적당히 쉬고 있으면 우리가 먼저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고 단랑이가 먼저 메시지를 보내도 좋구요! 가볍게 주고 받다가 단랑주가 말하신대로 역에서 보면 될 것 같아요 ㅎ-ㅎ 단랑이 또래 아이들 모습 나오는 것 같아서 귀여워요~~ ㅠ-ㅠ 배싯 웃는 단랑이에서 저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 쪽은 샤워꼭지라도 틀어놓은 것처럼 잔뜩 쏟아지고 있어요. 귀가하고 난 이후부터 쏟아지기 시작해서 비를 맞거나 하진 않았고, 방에 가만히 앉아서 듣는 빗소리는 정말 좋아하니 나쁜 일은 아니지만요. 오히려 이 정도로 비가 내리고 나면 내일 아침은 조금 선선하지 않을까 기대해보게 되네요. (내일 아침까지도 이 기세로 내리고 있으면 안 되는데^p^) 오히려 낮에 정말 공기가 무겁고 후텁지근해서 고역이었네요. 우리주도 좋은 밤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레스 남겨두시고 주무시러 가시는 거면, 좋은 꿈을 꾸시기를 빌어요.
오늘 비 많이 안 왔어야 할 텐데요 ㅜ-ㅠ! 여긴 다행히 비는 안 오고 후덥지근한 날씨네요. 흐린 걸 보아하니 내일부터는 다시 오는 것 같지만요... 모기.. 맞아요 벌써 모기들이 슬금슬금 나오죠... 여름 다 괜찮은데 모기는 정말 ㅋㅋ큐ㅠㅠㅠㅠ 오늘은 부디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본격적으로 쏟아지는 장대비에 찐만두 그 비슷한 무언가가 되어버린 단랑주다.) 그래도, 차라리 이렇게 한번씩 시원하게 쏟아져버려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미스트처럼 찹찹 흩뿌리듯이 찔끔 와서 습도만 올려놓고 가는 가랑비보다야... 그렇지만 모기는 용서가 안 되네요. 비가 침울하게 쏟아져서, 좋은 하루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주 가시는 곳에 선선한 바람이 불기를 빌어요. 답레와 함께 갱신해두고 갈게요.
저는 "Red Moon" 스레에서 루이스 캄파넬라 "적영 고등학교" 스레에서 채별비 "HELPERS" 스레에서 폴라리스라는 캐릭터를 굴렸었고, 현재는 1:1 스레인 "초여름, 구닥다리 옛날 이야기였으면 했던" 스레에서 단랑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레스를 남기게 된 이유는, Red Moon/적영 고등학교/HELPERS의 3개 스레에서 무통보 잠수를 하게 되었고, 분쟁 조정 스레에서 HELPERS 스레의 캡틴과 조정을 거친 결과 여태껏 무통보잠수를 해온 3개 스레와 현재 활동중인 1개 스레에 어째서 말없이 잠수를 하게 되었는지/잠수를 하고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서술한 레스를 남기기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첫째, "Red Moon" 에서 작년 말에서 올해 2월까지 활동했으나 점점 접속이 뜸해지다가, 3월경에 들어서는 개강 및 답레 작성의 한계점에 부딪혀 접속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플러팅 스레임을 감안하고라도 감정교류보다는 선정적인 흐름을 타버린 점과, 서로의 심경만을 서술하다가 서술 교착 상태에 빠져 응답을 작성하는 것이 힘들어 텀이 늘어졌으며, 일과성 허혈 발작을 일으켜 입원 및 통원 생활을 하게 되어 기입이 끊기기도 했습니다. 돌아간다고 해도 어디서부터 합의점을 찾아야 할지 긴 공백기를 어떻게 메워야 할지도 난감했기에 되돌아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적영 고등학교" 스레에서 4월 말경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나, 실용음악에 대한 전공지식이 모자랐던 결과 캐릭터의 서술의 난해함/매너리즘에 빠져 캐릭터를 플레이하는 것이 힘들었으며, 중간고사 기간을 넘기고 5월을 넘어 기말고사 기간이 다가오면서 2학기로 연계되는 졸업작품 프로젝트에 지대한 차질+신체적 이상이 생겨 해당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간상의 문제로 접속을 줄이다가, 결국 접속을 거의 하지 않기에 이르렀습니다.
셋째, "HELPERS" 스레에서 5월 초에 활동하기 시작하였으나 얼마 가지 않아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는데, 진행상의 불일치점(진행은 쉰다는 안내에 다른 일을 하러 갔는데, 그 사이 다른 두 플레이어와 진행을 했던 점)으로 인해 스레에서의 소속감에 의문을 느꼈고, 또한 상술한 현실 생활에서의 차질 및 신체적 이상으로 인해 통보 없이 접속을 하지 않기에 이르렀으며, 6월을 거쳐 7월인 현재까지 접속하지 않았습니다.
앗 아뇨! 사과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는 어느 방향으로 진행되어도 괜찮아서 단랑주가 몸과 마음이 편하신 쪽으로 결정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재개하는 것도 좋구요. 여유 있게 시간 두고 잘 생각하신 다음에 답 주셨음 해요. 날이 많이 덥네요 ㅠ-ㅠ... 오늘도 고생 많으셨고 좋은 저녁 보내세요~
용서해주시고, 상냥한 말씀까지 해주신 점 감사합니다. 우리주께서 단랑이와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으신 의사가 있는지에 따라 결정하려고 했습니다만... 말씀하신 대로 사나흘 정도 휴식기를 가지는 것도 좋은 생각이겠네요. 이런 일도 있었던데다, 저도 현생 스케줄이 퍽 고달픈 편이고 우리주도 바쁘신 듯하니까요. 우리주도 느긋하게 휴식하시고, 이야기를 다시 이어나갈 마음이 드셨을 때 다시 답레를 남겨주세요. 우리주께서 답레를 남겨주실 때 돌아오겠습니다.
비가 쏟아지고 나니 밤바람이 차네요. 주무실 때 여름감기 걸리시지 않도록 보온에 신경써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어요.
주말 잘 쉬셨나요? 시간 정말 빠르네요... 벌써 월요일이야.... 아니 이제 곧 화요일이죠.. 단랑주가 괜찮으시다면 내일이나 모레 중으로 이어두려고 해요. 혹시 휴식이 조금 더 필요하시거나 지속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드신다면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그럼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푹 쉬세요~ ㅎ-ㅎ
먼저 갱신할 염치가 없어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주께서 원하신다면 저는 계속 이 이야기를 유지시키고 싶기에. 모쪼록 편하실 때 계속 이어주세요. 우리주께서는 잘 지내고 계셨나 모르겠네요. 요 며칠간 워낙에 더웠어야죠. 거기다가 이게 시작이라니... 우리주도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 우리가 타기로 한 열차는 5번 승강장이래 ] <[ 승강장에서 만나자 ] <[ 선크림 꼭 챙겨! ]
* * * * *
운정기차역은 운정시의 크기에 비해서도 꽤 큰 편이었는데, 그것은 운정역이 커다란 2개의 철도선의 환승역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넓은 운정역은 한산한 아침이라도 사람들이 꽤 많은 편이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소년을 찾는 것은 퍽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놀이공원 수준으로 붐비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승강장으로 내려오는 개찰구 저만치에서부터 승강장의 밴치에 크로스백을 맨 채로 단정하게 앉아있는 그의 모습이 잘 보였기 때문이다. 하늘색의 품이 넉넉한 셔츠에, 짙은 데님 바지를 입고 있는 하얀 머리의 소년은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철로 너머를 막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유부초밥과 과일 도시락을 넣은 백팩을 매고, 선크림까지 꼼꼼히 바른 우리가 집을 나섰다. 부모님께는 공부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나온 탓에 조금 죄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막상 나와서 몇 걸음 걷다보니 금방 잊혀질 만큼 날씨가 좋았다. 나들이 가기엔 딱 좋은 날씨였다. …물론 단순한 나들이는 아니라고 해도. 역에 도착해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우리는 오래 지나지 않아 단랑을 발견했다. 반가움에 웃음 지은 우리의 걸음이 빨라졌다.
아무래도 가족들이랑 함께 먹는 거랑은 조금 다르게 느껴지나봐요. 일정이 잘 맞아서 그때는 본가에 가실 수 있음 좋겠네요. 장마 끝, 폭염 시작이라더니 날씨가 하루하루 살벌하게 더워지고 있어요 ㅋㅋㅋ큐ㅠㅠㅠㅠ 가만히 있으면 안 덥다는 말이 들어맞지 않는 요즘입니다.. 날도 더운데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이래저래 상황이 도와주진 않지만 ㅇ<-<... 내일 즐거운 금요일 보내셨음 해요~! 일단 오늘 푹 주무시구요!
잠이 쏟아져서 자려고 누웠다가 마지막으로 한 번 확인하던 차에 갱신된 것을 발견했네요... 우리주도 오늘 하루 고생많으셨어요. 날씨가 정말로 40도를 찍어버리는 걸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88 그래도 에어컨 나오는 실내에서 가만히 옹송그릴 수 있으면 괜찮은 날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주도... 좋은 밤 보내시길 빌어요. 답레는 내일 드리기로 하고,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그래도 주말에 만나서 하기로 한 일 중에는 숙제를 같이 하는 것도 있으니까, 너무 거짓말이라고 불편해하지 않아도 좋을 듯하다. 그렇게 되면 거짓말이라고 할 수는 없는 셈이니까. 그래도 참 정말이지 공부만 하고 있기에는 아까운 날씨이기도 했다. 한 번 정도는 특별한 주말이 있어도 되지 않을까?
"나도 온 지 얼마 안 된 참이야."
밝게 건넨 인사에, 단랑도 곱게 웃어보인다. 그가 웃을 때에는 뙤약볕이 따갑던 개찰구에 한 줄기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어 당신과 단랑의 이마를 쓸고 지나간다.
"그러게. 여행가기엔 좋은 날씨네."
그러고는, 단랑은 조금 이상한 질문을 꺼냈다.
"오는 길에 딱히 뭐 이상한 것이 눈을 마주쳐오거나, 말을 걸어오거나 하진 않았지?"
* 그러고 보면 운정지하도에서 그 유충이라는 것을 잡은 이후로, 당신은 원래 일상에서 보이지 않던 이상한 것들을 종종 눈치채는 순간이 한두 번 정도는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벤치 밑이나 가로등 뒤편 같은 으슥한 곳에서 어슬렁거리는 조그맣고 말라빠진 아귀들이라던가, 노숙자를 둘러싸고 키득거리는 아이들이라던가, 건물 틈새에서 스멀스멀 움직이는 이상할 정도로 키가 큰 사람이라던가.
그러나 그런 것들은 당신과 눈이 마주치면, 당신이 그것과 눈이 마주쳤을 때만큼이나 화들짝 놀라서는 황급히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곤 하는 것이었다. 그 이상한 것들은 당신을 두려워하는 낌새였다. 흔히 보이는 인터넷 괴담 썰처럼 "너 나 보여?" 하고 다가와서는 "너 나 보이잖아아아아아" 하고 땡깡을 부리는 케이스는 단 한 건도 없었다. *
그러니 물어보나마나 한 질문이다. 단랑이 보기에 오늘은 당신에게 뭔가 엉뚱한 게 달라붙은 기색이 없었으니까. ...자기 꼬리였던 것을 빼면 말이다. 그는 아직도 당신의 머리에 여우 귀인지 너구리 귀인지 분간 안 가는 귀가 아직도 깜찍하게 달려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 별표 사이에 써진 내용은 우리주의 취향에 따라 없는 것으로 할 수도 있고 그런 일이 있었던 것으로 할 수도 있으니 원하시는 대로 해주세요.
기다렸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고된 기다림은 아니었을 것이다. 벤치에 앉아 있었고, 이용객을 위해 승강장에 쳐놓은 차양의 그늘이 벤치에 드리워져 있었으니까. 당신이 기대감을 가득 담아 던진 말에, 단랑은 대답을 바로 하지는 못했다. 걔들이 아무래도 널 우리들 중의 하나로 보는 것 같아. 라는 말을 당신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가 없으니까.
그렇지만 그것은 본가에 도착해서 할아버지께 여쭈어보아 해결할 문제고, 지금은 여행길에 따라붙는 칩칩스러운 잡귀가 없다는 점을 잘 된 일이라고 인정해주어야겠지.
"그렇네. 걔네들이- 그래, 걔들은 널 무서워하는 게 맞을 거야. 잘됐네."
단랑이 내어놓은 대답은 당신이 설마 하는 그 대답이었다. 그때 열차가 들어오는 것을 알리는 신호음 소리가 역 안에 울려퍼졌다. 이윽고 안내방송이 그 뒤를 따라서 흘러나왔다.
-5번 승강장으로 예성, 예성행 1059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탑승구에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게요... 저도 답레만 써야지- 했다가 무심코 잠들어서, 이제야 깨서 늦은 저녁 간단하게 먹었어요. 확실히 더운 여름에는 움직임을 줄이는 게 현명한 일이지만...... 전 너무 지나치게 자버렸나 봐요. 88 우리주도 좋은 저녁 보내고 계시길 바라면서, 천천히 답레 써서 드릴게요.
동그랗게 눈을 뜨고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에 단랑은 곤란한 듯이 웃어보였다. 사실 단랑도 간략하게나마 당신에게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설명해줄 수 있지만, 흔히들 말하는 사람의 기라느니, 음양이라느니 팔자라느니 하는 수상하게 들리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찜찜했던 탓이다. 그는 그 대신에, 열차가 역으로 들어오는 동안 당신의 어깨를 살며시 붙잡았다.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내는 소음이 역을 울렸다. 이내 열차는 정차구역에서 멈춰섰고, 문이 덜컥 열린다.
단랑은 당신의 어깨를 놓아주고는, 다소곳하게 당신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객차로 올라설 때는 바깥의 후덥지근한 여름 공기와 대비되는 에어컨 바람이 얼굴에 훅 끼쳐온다.
"여행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당신의 바로 옆자리에, 단랑은 여우가 자리에 올라앉듯이 살며시 앉았다. "숙제는 금방 끝내버리지, 뭐." 하고 당신을 돌아보며 웃으려던 단랑은, 어라- 하는 표정이 됐다. 그게 옆자리라는 게 이 정도 거리감인 줄은 몰랐어서. 단랑은 이 시점에서 엉뚱하게도 백미러를 떠올렸다. 백미러에 종종 이런 문구가 적혀있지 않은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음>
단랑은 크로스백을 뒤적여선, 괜히 시선을 피하며 공책 한 권을 꺼내서 부채질을 했다. 공책이 펄럭이는 바람이 당신 얼굴에도 시원하게 닿는다.
기다리고 있던 것도 사실이지만, 어차피 피치 못할 사정으로 늦게 자야 되는 일이 있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오히려 두통이 있으시다니 걱정되네요... 답레는 나중에 시간나실 때 천천히 생각해주시고, 타이레놀이라도 드시고 충분히 휴식을 취해주세요. 푹 주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백팩을 무릎 위에 올려둔 우리가 작게 웃었다. 여행이라 생각하지 않았을 때에도 들떴는데, 여행이라 생각하니 더 설레는 느낌이었다. 일상을 지루하다 생각하는 편은 아니지만, 듬성듬성 끼어드는 약간의 변수들이 즐거움을 주는 건 사실이니까. 숙제에 대한 말에 고개를 끄덕인 우리는 단랑의 얼굴을 보고 덩달아 어리둥절한 표정을 했다. 뭔가 불편한 게 있나, 이상한 걸 발견했나. 괜히 창밖을 한 번 살핀 우리가 어느새 부채질을 하고 있는 단랑을 보면서 물었다.
"많이 더워? 이 자리가 에어컨 더 잘 오는 것 같은데, 자리 바꿔줄까?"
날이 꽤 덥지, 덧붙인 우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단랑을 쳐다봤다. 시원한 걸 찾아 가방을 뒤적이다 얻어 걸린 초콜릿을 보고 입술을 비죽인다.
당신이 건넨 제안에 단랑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표정을 원래대로- 평소의 그 잔잔한 웃음으로 되돌렸다. 아니 평소보다 조금 더 고운 웃음이다.
"이 자리가 좋아."
고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열차는 11시 34분에 예성역에 도착하는 고속열차입니다. 고객님께서 편안히 여행하실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하는 안내방송이 끝나고 차창 너머의 풍경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여행이 시작됐다. 단랑도 그걸 아는 듯, 나와있지도 않은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 같다. 이 뜻밖의 여행이 설레이는 것은 그 역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아, 고마워..."
당신이 초콜릿을 쓱 꺼내주자 단랑은 손을 내밀어서 받았다. 꼬리가 다시 한 번 살랑... 이번에는 진짜로 허리춤에서 하얗고 북슬북슬한 꼬리가 튀어나와 있다. 단랑도 그걸 알아챘는지, 머쓱한 표정이 되어서는 허리를 의자에 딱 다가붙인다. 꼬리는 다시 허리춤으로 쏙 들어가버렸고. 그걸 얼버무리려는지 단랑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돌렸다.
그래도 어제보단 오늘이 훨씬 나아서 바로 쓰러질 정도는 아니에요! 누워서 조금 밍기적대다가 자려고 합니다 ㅎ-ㅎ 요즘은 습도도 좀 높은 것 같아요.. 아가미가 필요한 여름이네요...! 네네 답레는 느긋하게 주세요~ 날도 덥고 덥다고 현생이 봐주는 건 아니구 ㅠ 여러모로 지치기 쉬운 날이니까 체력 잘 살펴주시구요~!
단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단랑도 달리는 차나 기차 밖으로 창밖을 구경하는 걸 퍽 좋아한다. 그렇지만 그 정도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니 당신에게 별 주저 없이 선뜻 창가 자리를 내어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복도 자리에서 앉아 좀더 작은 창문을 바라볼 때, 창문 밖의 프레임에 자신과 친한-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잔잔히 설레는 여행길의 얼굴을 하고 있는 모습이 끼어들어 있는 것이, 무미건조하고 건강하고 예절바른 삶을 살아온 단랑에게는 꽤 색다른 경험이어서.
그러니, 이제는 창가에 앉아도 그만, 복도에 앉아도 그만인 게 아니라,
"나는 창가에 앉아도 복도에 앉아도 다 좋으니까."
라는 말을 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서, 단랑은 조금 쑥스럽게 웃으며 꼬리를 손으로 꾹꾹 밀어넣었다. 당신이 화들짝 놀라 눈치를 보다 소곤소곤 말을 건네오자, 단랑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돼..." 당신이 약간 주눅든 것처럼 보이자, 그는 부러 다시 장난스럽게 눈가를 샐쭉 구부려 웃었다. "또 만져볼래?"
당신이 창밖으로 시선을 두다 던진 질문에, 단랑은 당신을 따라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며 질문했다. 논밭 풍경이며, 철책선이며, 시골 가옥이며, 외따로 떨어진 공장 같은 풍경들이 그림처럼 스쳐지나간다.
"바다... 풍경은 나도 정말 좋아해."
그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지만, 그 대답에 풍경이라는 단서를 붙여서 선을 그었다.
그때쯤엔 앉고 싶은 자리가 생겼을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생각하며 단랑을 봤다. 자리가 크게 중요한 건 아닌 듯 했지만, 처음으로 함께 멀리 놀러가는 건데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쪽을 고르게 해주고 싶었다. 친구가 된 계기는 다소 엉뚱하고 갑작스러운 일이었대도 그 뒤는 즐거운 기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얼빠진 얼굴로 단랑을 보며 눈을 깜빡이던 우리가 장난임을 깨닫곤 웃음을 터뜨렸다. 눈을 가늘게 뜨며 가볍게 흘긴 우리가 자그맣게 외치는 척 했다.
“장난쳤지!”
그리곤 살래살래 손을 내저었다. 꼬리야 이미 만져본 데다, 이렇게 사방이 트인 장소에서 비밀스러운 꼬리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무슨 말이냐 묻는다면 저도 몰라 민망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겠지만.
“풍경은 좋아해도 물에 들어가는 건 별로 안 좋아하는구나.”
우리가 단랑을 보며 물었다. 보고 있으면 시원해서 좋고, 더운 날 발을 담그는 것도 좋지만 물을 아예 뒤집어 쓰는 것과는 얘기가 다르니까. 발 담그는 것도차 싫어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걸 떠올린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단랑도 그렇다면 조금 고양이 같다고 생각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여우와 고양이라니, 어쩐지 거리가 멀지만.
나 이걸 왜 이제 봤지...88888888? 우리주도 좋은 주말 보내고 계셨나요. 저는.. 저는... 일곱 시부터 동접일 수 있었는데 8888 스레가 갱신된 걸 미처 못 보고 놓쳤어요... 잠깐만요. 일단 답레를 급히 쓰긴 했어요. 지금이라도 올려둘게요. 좋은 밤 보내시고 계셨으면 해요.
당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단랑은, 당신이 눈을 흘기며 꺼낸 말에 장난스레 웃어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교실에서는 볼 수 없던 표정들이 당신의 앞에 서툰 민들레꽃처럼 한 송이 두 송이씩 피어나는 것 같다. 문득 장난이 아니면 어떻게 할 거야? 하고 또다른 장난을 쳐보고 싶었지만, 실없는 장난을 계속하기도 쑥스러워서 단랑은 당신이 꺼낸 화제를 기꺼이 따라갔다.
"아니, 물에 들어가는 것도 싫어하지는 않는걸." 그가 수영복 차림을 하고 바닷가나 수영장에 있는 것을 연상해보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그렇지만- 으음, 이런 말 해서 분위기 깨긴 싫은데." 단랑은 이런 말을 해도 되나, 하고 주저하는 듯이 턱을 감싸고 잠깐 뜸을 들이다가 괴담이라도 이야기해 주듯 목소리를 으스스하게 깔았다.
"아무래도 밤이 되면 바다에서 나쁜 것들이 많이 흘러들어오니까 말야. 물론 환경문제도 심각하지만, 이건 우리들의 관점에서 하는 이야기야."
우리들의 관점이라면, 아마 비일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관점에서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도 그렇겠지. 바다에서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는 것만큼이나 얼마나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는가.
"바닷가에 사시는 어른들 말씀을 들어보면 항상 밤에는 바닷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잖아? 해수욕장도 해 떨어지기 전에 영업을 종료하고."
괴담 톤으로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꾸며낸 이야기는 아니었다.
"본가에서 하는 일들 중에는 예성시의 바닷가에 몰려오는 그런 것들을 막거나, 잡아다가 정화하는 일들도 있어."
단랑의 말에 우리가 어리둥절한 기색을 표했다. 물에 들어가는 게 싫지 않으면 굳이 풍경이라 콕 찝어 이야기 할 필요가 있나? 설명이 덧붙을 거라 생각한 우리의 시선이 단랑을 응시했다. 목소리가 낮아지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게 됐다. 조금은 심각한 얼굴로 단랑의 말을 듣는 우리가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였다. 작게 입술을 벌리고 놀라기도 했다.
"그런 이유 때문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평범한 시선에서 밤의 바다가 위험한 건 어둡기 때문이다. 빛이 없는 곳에선 작은 위험도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데다 다들 잠에 들 시간이니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도움 받기도 어려웠다. 근데 단순히 그런 이유가 아니라니. 지하상가에서의 일을 떠올린 우리가 작게 찌푸렸다. 확실히,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무서웠다.
"본가가 예성시에 있는 이유가 있었구나. 음..., 그럼 단랑이 너도 졸업하고 나면 같은 일을 하게 돼?"
아직은 졸업까지 멀긴 했지만 생각은 자연스럽게 그리 기울었다. 만일 정말 그렇게 된다고 해도 서로 오가며 교류할 수 있으니 큰 문제는 없겠지만... 막상 그런 일이 닥치면 아쉬울 것 같았다. 부담 주기 싫어 말하진 않을 테지만.
"예성시의 바닷가는 그래서 밤에도 안전한 편이지만 만일이라는 건 있으니까... 만일이라는 말이 제일 무섭지." 하고 단랑은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당신이 운정지하상가에서 마주친 그 유충도 만일 유충이 그 많고 많은 터널들 중 지하상가에 숨어들었다면, 이라는 말이 현실로 이루어진 게 아니던가.
"아아니."
당신의 질문에 단랑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그건 외가 삼촌이 알아서 하고 계시기도 하고, 나름대로 고향에 정착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 경쟁이 세다구... 반쯤은 농담이지만." 농담이지만, 하고 덧붙이면서 단랑은 옅게 웃었다. 그러다 단랑은 갑자기 조금 먼 산을 보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졸업하고 나면─..."
조금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 되어서 고민하던 단랑은 당신과 눈을 마주쳐왔다. 석류같은 눈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여서는.
제가 너무 늦어서 죄송해요 ㅠ-ㅠ... 다른 게 아니라 답레를 계속 쓰고는 있는데 이상하게 우리가 손에 붙지를 않아서 늦어지고 있어요. 제가 많이 놓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무래도 편지 이후의 상황을 명확히 생각해두지 않은 캐릭터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그 정도 편지를 썼으면 말랑하고 다정한 성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했는데 그 이상으로는 따로 생각해둔 게 없었거든요. 설정에 있어서 상당 부분 단랑주에게 의존하고 있는 것도 그때문이구요. 단랑주 덕분에 우리와 단랑이의 세계가 조금씩 구체화된 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설정을 잘 짜는 편이 아니라 많이 막히는데 늘 단랑주가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답레 완성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어쩌면 단순히 답레 쓰는 것 이상의 고민을 좀 해봐야 할 것 같기도 해요. 웬만하면 답레랑 같이 오려다가 시간을 많이 지체했네요 ㅠ-ㅠ 소식이 늦어 죄송합니다...!
죄송해하실 것 없어요. 어서 오세요 우리주. 집에 들어오면서 폰 들여다보다가 후다닥 서둘러 왔네요..
애초에 세계관이라거나, 두 사람의 이야기라거나 같은 것들을 모두 우리주와 이야기해보면서 차근차근 맞추어나가려고 했는걸요. 오히려 제가 우리주께 단서를 너무 못 드려서 답레 쓰시는 데 고생시켜드린 게 아닌가 걱정이네요. 어떤 고민을 하실지는 우리주의 자유이지만, 그 과정에서 혹시 제가 도와드리거나, 대답해드릴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질문을 남겨주세요. 우리와 단랑이가 사는 세계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나 어떤 설정을 잡고 있는가, 라던지요... 확인하는 대로 제가 최대한 도와드릴게요.
여우에 씌이고 난 후 우리의 종족(?) 정체성은 어떻게 되는가, 수명의 차이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이야기들에 대해서도 모두 해답이 준비되어 있으니 궁금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물어보세요.
그러니 충분히 생각을 가지시되, 고민에 너무 신경을 쏟지 않으셔도 돼요. 맞지 않는 부분은 서로 이야기해서 맞춰나가면 되는 거고, 저는 우리주께서 행복할 수 있는 결론에 도달하시면 좋겠어요. 기다리는 것은 잘하는 편이니까, 시간이 늦어진다고 부담 느끼시거나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우리가 웃었다. 만일의 일이 중요하다는 말엔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리 확률이 낮아도 본인에게 닥치면 겪어야 하는 일이니까. 우리가 우연히 여우가 된 단랑을 마주치게 된 것도, 지하상가에서 유충을 만나게 된 것도 다 그렇게 벌어진 일이 아니겠는가.
“하긴, 아무래도 나고 자란 곳이 익숙하고 좋겠지.”
새삼 단랑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혼자-물론 하숙집에서 지낸다고 했으니 누군가와 함께 지내긴 하겠지만- 자리를 잡고 지내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닐 거라 생각됐다. 우리와 단랑 모두 고작 열일곱일 뿐이니까. 처음 해보는 일들이 낯설고 가끔은 두렵게까지 느껴지는 건 똑같으리라. 단랑이 고민하는 기색을 표하자 우리가 눈썹 사이를 좁히며 덩달아 고민했다. 단랑의 말에 집중하다보니 자연히 따라 생각을 하게 됐다.
“역시 아직 결정하기엔 이르지?”
조금 더 고민하던 우리가 이내 눈가를 접어 웃었다. 고작 열일곱이다. 아주 긴 시간은 아니라도 졸업하려면 아직도 멀었으니 아직 생각할 시간이 남아있었다.
"근데 넌 어떤 일을 해도 잘할 거야."
단랑은 성적도 최상위권에, 미술부 소속이 아니던가. 그의 그림을 본 적은 없지만... 꽤나 멋진 그림을 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지만말이다.
설정은 진행하면서 찬찬히 풀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단랑주가 단서를 안 주신 것보다는 제가 우리를 '다정한 말랑이'라는 것까지만 생각하고 시작해서 캐릭터가 납작해진 것 같아요 ㅠ-ㅠ... 우리랑 다시 가까워지려고 맘 편하게 먹고 레스 쓰고 있어요. 단랑주가 해주신 말 덕분이네요. 앞으로 궁금한 게 있으면 여쭤보고 레스 쓰고 설정 잡는 데 참고하도록 할게요. 1:1이 혼자 꾸려가는 얘기가 아닌데 혼자 너무 고민한 것 같아요. 기다려주셔서 감사하고 또 단랑주도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해주신다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당신의 미소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리며 단랑이 꺼낸 말이었다. 그는 다시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당신에게로 시선을 되돌렸다. 철컹철컹, 하고, 기차가 당신과 그의 여름을 달리는 나지막한 박자가 자장가 같다.
"잘하는 일을 하면 그건 행복한 걸까?"
단랑은 눈을 반쯤 감았다. 열일곱의 청춘- 진심으로 인생에 대한 생각을 시작하기 좋은, 잔잔한 대격변이 시작되는 나이다. 열여섯까지 예성시에서 온실 안의 화초처럼 자라오던 단랑에게는 변화의 너울이 더 높게 치밀었으리라, 당신을 포함하여 열일곱의 모든 아이들이 그러하듯, 단랑 역시도 방황을... 잔잔하고 고요하며 얌전하게, 그 나름대로의 방황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착각이 아니라면 적어도 그는 지금 혼자서 표류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몰랐다. 문득 딱히 미소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는데, 무의식적으로 단랑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337 그런 고민까지 하신다는 점에서 우리주는 정말 좋은 방향으로 세심한 분이세요. 그래도 캐릭터는 혼자서도 살을 붙여나갈 수 있지만 다른 캐릭터와 어울리며 이야기를 써나가면서도 서로 살을 붙여줄 수 있으니까요. 우리주께서 단랑이와 어울려주실 준비가 되셨다고 한다면 언제든지 단랑이와 어울려주세요. 저 역시도 우리주와, 우리와 어울리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니까요, 오늘도 함께 있어주셔서 고마워요. 우리주도 오늘 저녁이 행복한 저녁이 되기를 바라요. 복날인데, 저녁에는 뭔가 맛있는 것을 드시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봐주신다는 점에서 단랑주도 따뜻하게 세심하신 분이라고 생각한답니다. 감사해요! ㅎ-ㅎ 기다리는 게 익숙하다곤 하셨지만 종종 와서 진행소식 정도는 말씀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우리가 손에 붙었다가 안 붙었다가 하는 중이라 당분간은 답레가 조금 늦어질 것 같아요... ㅠ-ㅠ 단랑이 질문이 귀여워서 빨리 답 드리고 싶은데 손이 마음 같지 않네요... 제가 우리랑 많이 가까워지면 또 말씀 드릴게요! 언제나 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 행복한 저녁 되시고 주말도 잘 보내시길 바랄게요~
이 스레를 진행하는 데에 부담같은 것을 갖거나 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가끔 오셔서 말씀 남겨주시는 게 기뻐요. 충분히 생각해보시고 우리와 충분히 친해지는 시간을 가지신 다음에 즐겁게 돌릴 준비가 됐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단랑이를 만나러 와주세요. 우리주도 행복한 주말 보내시고, 회사가 대체공휴일을 우리주께 챙겨주었기를 바라요..(파들)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 보내셨나요? 오늘은 죄송한 말씀을 드리게 됐어요. 답레를 쓰면서 계속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제가 이쯤에서 우리를 놓아주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온건하고 다정한 캐릭터를 어려워하는 걸 간과하고 캐릭터 짠 제 잘못이 가장 크네요. 굴리다보면 손에 붙을 거라 생각했는데 점점 멀어지는 느낌만 들더라구요. 늘 기다려주시고 배려해주셨는데 이런 말씀 드리게 돼서 죄송해요. 답장이 올 거라고 기대 안 한 편지에 답장 보내주신 것부터 초반부 이야기 이끌어주신 것까지 모두 감사드려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름의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오래 기다려주셨는데 결국 이런 말씀 드리게 돼서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ㅠ-ㅠ...
우선 우리주께서 남기신 말씀에 대답부터 드리자면, 저는 우리주의 선택을 존중해드리고 싶네요. 우리주께서 우리를 굴리기 어렵다고 하시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힘겹게 짠 캐릭터가 막상 돌려보니 손에 잘 안 맞는다던가... 자꾸 제 손을 벗어난다던가 하는 문제가 있어서 우리주가 어떤 기분으로 그런 이야기를 꺼내셨는지 조금은 알아요.
사실, 우리주와 우리와 같이 보냈던 시간들이 꽤 행복한 시간이었기에, 우리주께서 우리가 손에 맞지 않는다시면 다른 캐릭터를 짜오셔서 단랑이와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시작해도 괜찮다고 저는 생각하지만... 단순히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고, 우리주께선 그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일로도 꽤 바쁘셨죠. 그러니 저는 우리주의 선택을 전적으로 존중해드릴게요.
그 동안 우리를 만날 수 있게 해주셔서...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일들도,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우리주께도 우리주가 제게 주셨던 행복만큼의 행복이 찾아가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