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건.." 네가 울어주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라는 말을 하는 목소리는 들뜬 듯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나는 너의 웃는 모습만을 봐왔단 말이지.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울어줄 수 있어요." 그러나 당신이 말하는 그 울음이 떠난 뒤라면 한 번 울어준 다음에는 미련없이 떠날 거에요. 라고 조용히 말했습니까? 그런 말을 들은 당신은 그렇게까지 진지하진 않아보입니다. 오히려 생기가 넘쳐보이는 느낌일까요.
"아 그건 괜찮아. 어차피 난 네가 우는 모습은 못 볼 것 같거든." "아니면 가물가물할 때 눈물 감촉은 느낄지도" 좀 기운이 생겨서 말이지. 저번에 뭐 던져서 머리에서 피난 건 미안. 피하지 말라고 소리쳤을 때 진짜 안 피해서 놀랐다고? 키들키들 웃는 사람입니다.
"그럼. 내가 부탁할게. 나를 막지 말고 나를 위해 울어줄래?" "거절 못하는 거 알고 말하는 거죠?" "그럼. 이제야 각오가 섰거든. 무기력함에서 드디어 벗어났으니까. 다 네 덕분이야." 순간적이지만 한없이 공허한 표정을 드러낸 상대방을 보던 다림은 눈을 깜박였습니다. 어떤 방식일지 모를 것이기 때문에 다림은 기다렸고, 그의 끝에서 피로 옷을 적시면서 울어주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뒤에 후회하면서도 또다시 찾으려 했을 겁니다.
어떠한 설명이 필요할까, 오늘은 외출하기엔 썩 좋은 날은 아니었다. 먹구름이 하늘에 잔뜩 끼어있었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처럼 습한 공기가 폐를 꾹꾹 누르는 듯한 느낌이 불쾌하게 그지없었다. 숨을 내쉬면 습기를 머금은 공기와 함께 비냄새가 느껴졌다.
다시 말하지만, 외출하기엔 썩 좋은 날은 아니었다.
이전에 쓰던 가죽장갑을 손에 씌우며, 벨트를 조였다.손가락의 끝까지 들어가 확실하게 차오르는 느낌을 확인하며,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폈다. 하얀색 셔츠위엔 단검따위를 수납할 수 있는 하네스를 차며, 가슴이 답답하진 않게 적당히 사이즈를 조절하면서 어깨를 가볍게 몇번씩 돌려보았다. 바지 위에는 긴급용으로 쓸 수 있게, 주사기 형태의 힐킷을 수납하는 벨트를 허리에 둘렀다.
준비가 끝난 듯, 가디언칩을 찬 손목을 이리저리 돌려본 뒤, 컨디션을 체크하고, 청월의 교복인 서코트에 팔을 넣어 입었다. 등에 있는 검집에 밤동안 날을 세운 프룬을 납도하고, 현관으로 가서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는 부츠를 신은 다음. 하나하나 꼼꼼하게 부츠의 끈을 당겨 조인다. 무슨 일로 나가냐는 고로의 머릴 한 번 쓰다듬어주고, 괜시리 메리에게 '다녀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일어난다.
외출하기에 썩 좋은 날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같이 습기가 많고 비냄새가 공기에 섞인 날은 후각이 뛰어난 짐승이 쇳냄새를 쉽게 맡지 못한다고 들었다. 즉. 외출하기에 썩 좋은 날은 아니지만, 사냥하기엔 좋은 날이다. 짐승이라지만 숲에 숨어있는 녀석도 아니고.....
가디언 넷에서 그 사실을 봤을 땐, 반신반의했다. 왜?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너는 그런 꼴로 돌아다니는거지? 너는 재능도 있고, 아브엘라의 선택도 받았고, 부족한 것 하나 없이 지냈잖아. 그런데 도대체 왜??
지훈이가 웃는다.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려져 있다. 보통은 눈치채기 힘들다고 들었는데, 카사에게는 모든 사람들의 표정의 섬세한 변화 같은거, 어려웠다. 그래서 언제나 배의 노력을 쏟아부었다. 언제나 누구든 자세히 살펴보았다. 정확히 무슨 감정을 내보이는 지 언제나 아는 것은 아니라도, 이를 드러내어 위협이 아닌 기쁨을 내보이는 이상한 자신의 종족을 알기위해서 노력했다. 애정을 쌓기 위해서, 애정을 주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 카사는 지훈이가 웃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하지만 평소와 다르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모른다. 짐승이 무릇 모르는 상황에 반응하듯, 카사도 똑같이 반응했다. 불안으로.
그리고 다가오는 지훈의 손.
아아. 나는 이 상황을 몰라.
칼에 찔리는 것은 알아. 검에 베이는 것은 알아. 총에 관통당하는 것은 알아. 사지가 뜯겨나가는 것은 알아. 이에도, 주먹에도, 발톱에도, 밧줄에도, 신체가 아프고 피가 흐르고 아드레날린이 요동치고 본능이 비명을 지르는 것은 알아.
하지만 이 것은 몰라. 본능이 조용해. 머리 속이 고요해. 난 이 상황을 몰라.
모르는 것은 무서워.
따뜻한 지훈의 손이, 어느때나 처럼 머리에 닿는다. 나는 분명 그저, 그냥, 이것더것 하찮은 한탄을 하고 있었는데.
".....뭐?"
목에 나오는 소리가, 목소리 같지 않다. 언어같지 않다. 나는 그저 늑대의 성대를 이용해 신음소리를 내고, 그것을 인간의 언어로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불쌍한 카사. 불쌍한 카사. 너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늑대의 얼굴 근육은, 인간이나, 길들여진 강아지와 다르다. 감정 표현을 위해 발달한 강아지의 근육이 늑대에게는 없다. 인간과 소통할 필요가 없는 야생동물은 무릇 그렇다. 늑대를 닮은 야수의 모습을 가진 현재의 카사는, 보통 때와 달리,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그래, 얼굴 근육을 사용해 표정을 굳히 크게 만들어내지 않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