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엑!!!! 내 코!!!!! 새까만 코가 말랑하다. 거센 항의! 고개를 셰킷셰킷!! 푸르르르, 물이 온데 다 튀긴다.
"그치?"
별 생각없는 듯, 가볍게 지훈의 말에 동의하는 카사. 지훈의 속내는 전혀 모르는 어투다. 당연한 말이지만 말이다.
"싫어해! 모르는 사람은 그냥 그런데, 좋아하는 사람에게선 완전 싫어. 내가 그 동안 산 삶을 그냥 '불쌍하다'라는 말로 치부해버리는 거 잖아. 난 그런 말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게 아닌데 말야."
그렇게 아이가 투정을 부리듯, 투덜거리며 수건 아래로부터 모습을 드러내는 카사의 모습은...
샤라랑~~~
이제 이 거대 멍뭉이가 노숙카사라고 한다면 누가 믿겠는가! 향기로운 냄새에 윤기가 자르르 나는 부드러운 털. 흙먼지 하나 눈꼽 하나 없이 빛나는 호박색 눈! 꽂꽂이 서있는 카사! 그야말로 맹수! 그야말로 세상에서 제일로 늠름한 맹수! 지훈의 중노동 아래 만들어진 걸작!!!
그리고 힘없이 철푸덕, 바로 바닥에 누워버린다. 살도 짓눌리고 한참 빨래 당한게 워낙 지친지, 몸이 아주 늘어져 웅덩이가 되어있었다.
"펜리르가 스스로 묶이기를 선택하는 데에는 무시무시한 이유가 있어!"
뺨도 옆으로 짓눌린 주제에 말은 잘 한다. 꿈벅꿈벅. 첫번째는, 함께 지낸 시간의 의미를 티르가 자기 손으로 없앴기 때문이야. 그 애정이 진심이 아니었기 때문이야. 그리고 가장 무서운 이유는:
"늑대는 언제나 굶주려 있거든. 내가 잘 알아. 한 번 배고프면 배고픈 걸 잊지 못해. 펜리르도 그랬을꺼야. 티르빼고 모두 펜리르를 무서워 했으니까."
굶주림을 얘기하는 것은 물리적인 굶주림인가, 정신적인 굶주림일까? 아마 둘 다 일지도 모른다. 평온하게 퍼져있는 카사와 카사가 말하는 것에 괴리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만약에 그런 애정을 받는 이유가 불쌍해서라면, 스스로 종말의 끝까지 묶여서, 최고로 불쌍해지는 방법을 택한거야..."
지훈의 눈을 따라, 카사의 눈꺼풀도 느리게 아래를 향한다. 그때는 참 멍청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묶이기도 전에, 자신의 입에 손을 집어 넣자마자 물어 뜯어 버리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끔직하지?! 무시무시하지!? 난 저어얼대 펜리르처럼 되고 싶지 않아! ...하지만'티르'들이 생겨버린 난 이미 늦은 거 같아."
"그게 그대로 잘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끔씩 저는 최대한 비관적으로 보는 편이거든요. 라는 말을 합니다. 어쩌면.. 어쩌면.. 이런 비관을 바라는 것일까? 알 수가 없어요. 그렇게 무거운 건 그만하는 것처럼 밝은 말을 합니다. 친구라는 말에 쩌적 굳은 걸 기억합니다. 음. 그렇죠.
"...그렇죠? 친구는 없어요.." 사실.. 이라고 조금 망설이듯 하다가. 그나마 후안씨도 오래 알아서 친구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라고 덧붙입니다.
첫눈에 반함, 뜨거운 사랑, 애정, 하룻밤의 행복. 무엇을 보고 제 모든 걸 내주는가. 덩어리져 구르는 감정에 휘말린다면 높은 언덕으로도 그 아래의 절벽으로도 기꺼이 몸을 던질 수 있단 걸까? 확실한 건 눈에 드는 모든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 에 나이젤은 속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이었다.
"답이 되었답니다."
옆에 몸을 눕힌 거대한 늑대가 고개를 갸웃, 하는 모습을 보고 나이젤도 같은 방향으로 웃으며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이 정도까지 맞춰준다면 조금 무례를 저질러도 괜찮지 않을까? 카사가 거부의 반응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면 늑대의 털가죽에 살그머니 손을 올려보려 했을지도 모른다.
"집을 잃으셨나요?"
아까전의 철학대화적인 말은 어디가고 갑자기 돌직구를 날리는 나이젤. 뭐지, 게이트에서 나왔는데 게이트가 클로징되어버리기라도 한 건가? 아니면 자연개발과 재개발 등의 이유로 집을 잃었다던가. 추욱 늘어진 카사의 귀가 불쌍함을 느끼게 하기에 딱 맞아 보인다.
"소문 속의 존재를 쫓아서 왔어요. 간단히 말해서, 당신을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생명체가 그 사람을 배신하고 도망쳐나왔다던가, 하는 소문이 돌았죠."
카사는 곰곰히 생각했다. 확실히 표지가 이쁜 역사책이라면 그렇게 빨리 내팽기치지는 않을테다. 지루한 것은 똑같지만. 아니, 오히려 잡고 지루한 걸 아면 실망감이 더 들지 않나?"
"하지만 네 마음을 빼앗을 모든 것도, 결국엔 손 밖에서 스러질텐데. 괴롭지 않나?"
읽지 못하는 역사책이나, 쓰지 못하는 스킬북이나! 결국엔 모든 것에 끝이 있다, 이 말이야! 아무리 좋아해도 결국엔 끝이 있는 그 모든 것을, 이 어린(?) 인간을 받아들일수는 있을까나? 늑대의 빛나는 눈에는 조금의 걱정이 담겨져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이젤의 손길에 감겨버리는 눈.
흠, 흠. 내 원래 이렇게 관대하지 않는 데. 원래는 콱 물어버리는 데. 근데 털이 있어서 인지, 최근 막 만지려하는 사람도 늘었고... 더구나 이 인간에게 지금 내가, 어?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고... 내가 딱 한번 너그럽게 참아주지, 닝겐!! 네 손길의 급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자비를 베풀었는데 이 건방진 닝겐이 뼈를 때린다. 이 자식이.
"돌아가고 싶은 곳이 아니게 되면, 잃은 것이나 다름없지..."
기숙사 허울대 자체는 안전하게 있거덩! 그냥 내가 돌아가기 싫은 거 거덩!! 죽어도 가출이란 말은 생각하지 않는 카사댕. 한숨을 푸욱, 쉬고 저 멀리로 눈길을 던진다.
"나를? 한가한가보군."
그러다 작은 웃음이 코를 통해 나온다. 아니 진짜로. 학교에 별 이상한게 돌아다니는데. 나보다 큰 댕댕도 있다고! 도바라고! 그러다가 나이젤의 말을 들을 카사, 고개를 갸웃거린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생명체? 뭐, 나도 따지고 보면 맞지? 아마 생부모는 인간일테니까? 근데 그 사람을 배신하다니 대체 뭔 말이여??? '그 사람'? 이름을 말 못하는 자???? 아니면- 길다란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내리는 것은, 늑대 나름의 뾰로퉁한 표정일까. 아니 도망친건 또 어떻게 알았데. 전략적 후퇴였다고!
"....그러고보니 저는 지금 검도 화살도 없네요.." 저울이 기울어진 상태에서 행한 행동 때문에 화살 압수당했던가.. 음. 정말 이 상태에서 끌려가면 마도를 열심히 사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의념을 마구마구 쓴다거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검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바라보고는...
"에고소드라도 하나 들이셔야겠어요.." 빤히 쳐다보며 말하지만 그다지 진지한 말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