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이분법이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정체 모를 소년의 손이라도 붙잡아야만 했다. 살기 위해선 이 소년의 발이라도 붙잡아야 했다. 나는, 영웅이라는 꿈을 꾸었을 뿐이다. 분명 그것이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존경을 받는 그런 영웅이 말이다. 소년은 키득거리며 날 바라봤다. 마치 즐거운 장난감을 만났다는 표정이었다. 그래. 저런 눈이라도 괜찮다. 나는 소년에게 손을 뻗었다. 좋아. 내 소원을 이루어다오.
“ 후후, 왜 카사만 좋아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카사 생각만큼 전 엄청나게 이타적인 사람은 아니랍니다. 제 욕심도 부릴 줄 아는걸요? ” 카사가 뺨을 감싸곤 날카로운 눈을 빛내며 말하는 것을 잠자코 듣고 있던 하루는 맑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덤덤하게 말한다. 그리곤 콩하고 이마를 부딪치는 카사의 행동에 더 큰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러다 이어진 카사의 말에는 자연스럽게 이마에 입을 맞춰주며 덧붙였다.
“ 글쎄요, 카사가 그런 말하면 확 받아버릴지도 몰라요. 전 장난도 좋아하거든요. ” 하루는 카사의 말에 짖궂은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런 대답을 돌려준다. 카사의 강렬한 눈에도 태연하기 짝이 없는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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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하하, 카사가 많이 신이 난 모양이네요. ”
자신의 품에 뛰어드는 카사를 요령껏 받아낸 하루는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며 부드럽게 속삭인다. 방금 샤워를 하고 와서 그런지, 기분 좋은 향을 풍기는 카사를 꼬옥 안아준 하루는 무엇을 할지 고민을 하다가 눈을 마주한다.
“ 아, 맞다. 요즘 대화하는게 어려워서 힘들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정말이에요?”
어려워 하지말고 편하게 말해달라는 듯 다정하게 물음을 던지는 하루였다. 귀여운 아이가 어려움에 처했다면 당연히 손을 내미는 것은 정해진 일이 아니던가.
"맞아요.. 아, 그거 아세요? 저도 팜플렛 보고 안 건데... 갈치가 사실은 심해어라고 하네요."
킥킥 웃으며 갈치가 심해어라니~ 하고 말을 하다가 유부초밥을 먹는다. 아!! 유부초밥 안에 날치알이 들어가있어! 톡톡 씹히는 맛이 좋다~ 고래우동... 이름이 특이하지만, 고래 잡는 건 금지되어있으니까 진짜 고래는 아니겠지. 진짜 뭘까? 팜플렛에... 있나? 싶어서 팜플렛을 꺼내 주르륵 확인해본다. 그때... 쿵! 하고 무언가 무거운 것이 테이블 위로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싶어서 눈을 돌리니... 양동이. 거대한 양동이에 담겨져 있는 면발과 국물. 그리고 팜플렛에 보이는 글자. [식당 특별 메뉴 고래우동! 고래 한 마리가 배부르게 먹을만한 우동을 드셔보세요! 남길 시 벌금 10000GP]
지금은... 갈치가 심해어인 이유를 설명하기보다는 왜 이게 나왔는지 그 이유가 필요하다. 설명과 함께.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소리에 고개를 젓는다. 그러다 1만GP의 벌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이 떠올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먹어야 해요..."
괜찮아... 이 정도... 양이면.. 둘이서 충분히 먹을 수 있어... 다른 초밥은 못 먹겠지만... 힐끔... 터치스크린을 쳐다보니... 고래우동과 그냥 우동이 서로 번갈아서 표시되고 있었다. 아아... 내가 우동을 선택하는 찰나에 고래우동으로 표시가 바뀌어 이게 나왔구나...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젓가락을 집고.. 면발을 먹으려는 찰나에
[서비스~! 개장 기념으로 모든 손님들께 덴뿌라를 무료로 드립니다!] 라는 안내 방송과 함게 덴뿌라가 배달되어온다. 그리고 그 덴뿌라는 고래우동 양동이에 퐁당.
베에- 하고 작고 붉은 혀를 내미는 행동을 답으로 한 카사. 그러다가 이마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에 아휴, 하는 한숨과 함께 벌러덩 누워버린다. 그러니까 그렇게 확, 받아버리면 안된다니까! 그 누구의 마음이라도 말야! 아이고 답답해! 답답함에 콩콩, 이태것과 다른 느낌으로 가슴팍을 두드리는 카사. 어휴, 어휴 하고 한 숨이 끊기지가 않는다. 하루가 그냥 늑대라면 아예 머리을 꽉, 물어서 혼내주는 건데! 어휴, 어휴! 하루의 철옹성같은 표정은 그저 답답함을 늘여만 간다!
하루의 품에 퍼즐 조각마냥 쏙 들어간 카사. 자신에게서 나는 향과 하루에게서 나는 향이 똑같아 기분이 좋다.
"응? 응! 어떻게 알았지?!"
쿠쿵. 충격의 눈빛. 하루의 품에서도 자세를 나름 바르게 해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아니아니, 그거야 당연한게 아닌가!! 산 속하고 인간하고 대화하는 주제도 모자라 대화하는 법 자체가 달랐다! 언어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아니, 으음.... 굳이 어려운 점이라면...... 다...?"
아니 기선제압을 해서 서열정리를 하려하면 아예 피하고! 선물이라고 다람쥐를 건네면 비명을 지르고! 그냥 남하는 거 따라 대화를 시도하면 뭘 얘기하는 지도 모르고! 뭐부터 얘기하는 지도 모르고! 선배한데 말깐다고 이상한 말도 하고! 재잘재잘. 다 얘기하는게 퍽 씨끄럽다.
" 하하하, 새끼 손가락 걸고 약속이라도 해야하나요? 아니면 카사만의 약속 방법이 있어요? "
답답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카사를 보며 그저 귀엽다는 듯 맑은 미소를 지은체 물음을 던진다. 뭔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카사가 귀여워서 그런지, 자꾸만 장난을 치게 되는 모양이었다. 물론 더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크앙하고 물기라도 하면 그만 하겠지만.
" 카사의 존재감이 뛰어나서 그만. "
어떻게 알았냐는 듯, 놀란 카사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을 돌려준다. 지나가다보면 종종 카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에 불과 했기에, 무엇이 문제인지는 들어봐야 하긴 했지만.
" 음... 일단... 선배랑 이야기 하는 것부터 연습해볼까요? 인간들은 윗사람을 대할 때, 공손하고 부드러운 말을 써요. 지금 제가 말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아마도 카사는 지금 저한테 말하는 것처럼 말할테니... 기운이 넘치는 것은 그대로 가고.. 처음엔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해보는거에요. 할 수 있죠? "
저한테 한번 해보도록 해요, 하루는 연습해보자는 듯 방긋 미소를 지어보이며 자기에게 말해달라는 듯 손짓을 한다.
젠장... 맛있어서 더 열받아.. 아니!! 누가 저걸 저렇게 해두냐고!! 튀김이 우동 국물을 흡수해서 기름진 맛이 적당히 빠져 맛있는 바삭거림과 국물의 축축함이 맞나 부드러워.. 젠장!!! 면발도 탱글탱글하고 국물도 개운하면서 진해! 후루루룩... 그리고 중간 중간에 유부초밥과 장어초밥도 먹는다. 장어는 소스가 되게 진하다... 그리고 달콤해... 간장이랑 같이 먹으면 밥알의 신맛과 소스의 달큰함, 그리고 간장의 짭짤함이 어우러져서 대박 맛있다... 먹고... 마시고.. 먹고... 마시고... 으윽... 배가.. 너무 불러.. 더는 못 먹겠는지 의자에 앉아서 헥헥 거리고 있을 때... "저기, 너희 그거 안 먹을거면 내가 대신 먹어도 될까?" 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프린스 송...? 아니, 잡지에도 소개된 적 있는 미식가이자 대식가, 푸드파이터!! 과연! 이 식당이 맛집이라 찾아오신 거구나!
고개를 바로 끄덕끄덕끄덕! 윽... 토 나올 것 같아... 아무튼 자신의 승락 표시를 보고는 그는 바로 양동이를 잡고... 들어올렸다!!!! 그리고 자기 입쪽으로 기울여서는 꿀꺽꿀꺽꿀꺽. 국물과 면을 씹지도 않고 삼켰어!!!!! 족히 2L는 마시고 계신데 지치거나 배부르거나 배가 빵빵해지는 기색도 없이! 꿀꺽꿀꺽! 그는 신인가!? 아니, 푸드 파이터다!!!
답답함 덕분인지 말이 사납게 나간다. 아무리 화난 어투여봤자 그저 투정부리는 느낌이지만 말이다. 여휴우우우... 흘깃, 싱글벙글 웃기만 하는 하루 쪽을 흘겨본다. 웃는 얼굴은 예쁘다! 그래도 저렇게 태평하게 웃는 모습이라니!!! 어쩔수 없다. 비장의 무기다! 척, 하고 치켜올려지는 새끼 손가락. 말없이 부루퉁하게 하루를 바라본다.
"공손하고 부드러운..."
확실히 내가 존재감이, 응? 좀 보통 존재감이 아니긴 하지! 하고 왠지 뿌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가, 이어지는 하루의 말에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하루 같은 말투... 그렇게 말한다면 확실히 알겠지만, 그래도 자신이 그 어투를 쓰는게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도 그럴께, 카사의 어투가 아니라 하루의 어투지 않는가! 그리고 카사는 하루가 아니었다! 이렇게 간단한 에로상황?
그래도 연습 정도는 해야하지!! 하루가 인사를 하라고 한다! 카사는 인사는 잘 했다!! 특이 하루에겐!!
"안녕!!!"
마음의 꼬리를 방방 흔드며 힘차게 말하는 카사. 실수는 수초후에야 깨닫는다. 아차!!! 연습이었지!! 카사, 깨달음에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다!! 그리고 덧붙이는 신의 한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