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다림의 말에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뵈며 말한다. 반말을 하더라도 아마 하루는 기분 나빠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어찌됐든 편하게 대하는 것이, 다림에게 편안함으로 다가와 쉬는 시간처럼 느껴진다면 하루는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애초에, 호칭이라던지 나이로 나눈다거나 하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그녀였기에 가능한 면모이기도 했지만.
" 물론 이건 제 생각이니까, 이걸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은 아니에요.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자신의 마음에 달렸고, 자신의 생각에 결정되는 법이니까요. 그냥 가벼운 팁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생각해보시면 좋을거에요. "
처음에는 무표정하다, 발랄한 미소로 바뀌어가는 다림의 표정을 보며 눈웃음을 짓고는 가볍게 덧붙이듯 말한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하루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눈 앞의 다림이 선택을 하는데에 있어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 정도로 받아들여주는 것이면 충분했다.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선 그 선택이 자신의 생각이여야 했으니까. 그래도 눈 앞에서 발랄한 미소를 짓는 것은 보기 좋았기에, 하루도 한결 밝아진 미소를 답례삼아 돌려주었다.
강찬혁은 그렇게 말했다. 가디언 각성 직후에 쓰러져서 본 거기에서, 다른 건 기억나지 않지만 그 깡패멋쟁이라는 말만큼 기억에 남았다. 일제강점기에 지나가던 일본 순사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고 때려죽이고서는 자랑스럽다고 스스로를 여겼던 독립투사도 깡패멋쟁이고, 기차를 타고 지나가던 일본 고관이 꼴보기 싫어 짱돌을 던진 사람도 깡패 멋쟁이라지. 강찬혁은 슬슬 긍정적인 이명이 하나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강찬혁은 자신을 깡패 멋쟁이라 지칭하기로 했다.
"선택이란 언제나..." 애매모호하네요. 라는 말을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말하지만,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자신에게 이득이 되었지만 그것이 타자에게 향하는 일은 선택하지 않고선 없었으므로. 그것은 지금은 묻어두고, 호칭에 대해서나 고민하는 게 더 생산적이리라.
"하루씨라고 부른다거나. 여러가지로 부를 수도 있겠네요." 하루 선배~ 가 될지도 모르죠? 라는 장난스러운 호칭을 입에 담으며 기분좋은 듯한 발그레해짐에 자신도 기분이 좋아지는 듯한 기분일까? 편한대로 대해달라는 것이 영향을 미친 것일지도 모른다.
"또다시 일회성이 아닌 인연이 쌓여가네요." 분명 신이 내린 것이라는 말에는 신에 대한 큰 믿음은 없었기에 큰 반응은 없었지만. 상대방이 믿는 것에 태클을 걸거나 조목조목 말을 거는 정도의 인성은 아닙니다. 그정도로 썩은 인성은 아니라구. 확실히 맛있는 샘플러는 의외로 9종류를 다 먹으면 배가 많이 부르는 타입일지도. 케이크 조각 최소 2개정도는 먹은 느낌일 거야.
진담이었다. 의념기의 효과는 영구적이지 않았고, 나이젤이 한 일은 고작 한화 불빠따를 편 다음 약간의 개조를 도와준 것뿐이었다. 나이젤이 완벽하진 않다보니 조금 달라졌을 수는 있지만, 그 정도는 수리하면서 감수해야 할 약간의 변화였다. 진짜 영향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나이젤은 그런 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감사인사는 됐어요. 다시 휘지 않은 건... 다행이네요. 하지만 너무 험하게 쓰면 자주 수리해야 하니까 조심하세요."
이 다음에는 수리비를 받아야 하니까. 나이젤은 그리 비싼 값을 받진 않지만, 돈은 아끼는 쪽이 좋지 않을까.
"그러면, 저는 먼저 가볼게요."
다시 종이봉투 손잡이를 양손으로 쥐면서 나이젤이 일어났다. 우연히 일어난 만남이었으니 빨리 끝나는 것도 필연이지 않을까.
"하하. 맡은 일만 한다. 그걸 못 해서 이 세상이 얼마나 개판이 났는지를 생각해보면, 그것이야말로 제일 좋은 미덕이에요."
마침 강찬혁의 앞에 콜택시가 도착했다. 강찬혁도 이제 병원으로 떠날 시간이었다. 강찬혁은 웃으면서 손을 저었다. 그 덕분에, 죽을 수도 있었던 곳에서 살아나왔으리라. 강찬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강찬혁은 택시 문을 열고, 스스로를 던지듯 콜택시의 뒷자리칸에 누웠다. 델라메인 콜택시의 AI는 강찬혁의 상태를 보더니, 군말없이 "가장 가까운 병원을 목적지로 설정하였습니다. 예상 도착시간: 5분" 이라는 말을 남기고 출발했다.
" 선택이란 건, 원래 그런 법이니까요. 단번에 고를 수 있을 때도, 심사숙고를 해야할 때도 있죠. "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하루는 그렇게 말하며 눈웃음을 지어보인다. 고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기에 전혀 아쉬워하거나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답은 언제든 내리면 되는 것일뿐, 두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있을 때, 꼭 내려야 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 왠지 하루 선배~ 라고 부르는 어조가 귀엽긴 하네요. 물론 하루씨라는 것도 매력이 있긴 하지만요. "
둘 다 잘 어울려요, 하루는 발그레 웃어보이는 다림에게 맑은 웃음소리와 함께 답을 돌려준다. 호칭이 무엇이 중요할까, 그저 호칭이 생겨나면서 좀 더 두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 좋은 것이니까. 아무튼 다림의 분위기가 한결 편해진 것처럼 느껴지자 하루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따스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 이 그릇 위의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다림양만의 인연이 차곡차곡 쌓여갈거에요. 그 중의 하나가 저라는 것이 기쁘네요, 다림양. "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다 천천히 테이블 위로 손을 뻗는다. 포크를 쥐지 않은 다림의 손을 자그맣고 새하얀, 그리고 부드러운 두 손으로 감싸쥐려 하며 천천히 눈을 감는다.
" 앞으로도 다림양이 나아가는 길 앞에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어요. 그걸 위해서 아주 잠시, 제가 믿는 신께 기도를 드릴게요. "
"어쩐지 어른같은 말을 하는 선배님이네요" 그게 꺼려진다거나 멀어보이는 건 아니지만, 많은 걸 경험한 것 같은 관록..같다고 생각합니다. 다림 스스로가 많은 것을 경험했냐. 라면 그건 아니기에.
"귀여운 어조인가요?" 놀리듯이 귀여운 어조라는 말을 하네요? 얖으로 부르는 호칭이 하루 선배~ 가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말이다. 한결 편안해지는 것은 매력 A의 위력일까. 이 카페가 의념이 요리쪽이라는 가정하에 일일까(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정말 농담이다) 그릇 위의크레이프처럼 쌓여간다는 말에는 그렇다면 그렇게 되겠네요. 라며 상상한 것은 공룡화삭이 있는 퇴적층이라니. 낭만이 없어. 낭만이..
"저는.. 잘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기도를 드린다는 것을 보면서 그렇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눈을 감은 하루를 보면서 짓는 표정은 언제나처럼 생글생글한 표정이었을까. 아니면 약간 ㅇㅁㅇ스러운 미약한 당황의 표정일까. 그래도 공통점이라면 둘 다 호의에 기반한 것일 거라는 사실이다. 기도를 드리는 동안에는 조심스러운 행동을 할까? 아마..가만히 있을 것이 최선이겠지.
조금은 들떴을지도, 하루는 그렇게 덧붙여 말하며 눈웃음을 지어보인다. 조금은 말을 아낄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녀의 조심스러운 성격 때문이었지만.
" 네, 귀여운 어조요. 방금 전에 귀여웠어요. "
하루는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보이 방긋 미소를 더한다. 분명 다른 사람들도 아까전의 다림을 보았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라는 듯 당당하기 그지 없는 말이었다. 물론 자신의 비유를 들은 다림이 공룡화석이 들어있는 퇴적층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 하는 하루였지만.
" 분명 그럴거에요. 다림 양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
기도를 마무리 한 것인지 천천히 손을 떼어낸 하루가 눈을 뜨곤 금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다림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리곤 이내 기분 좋은 미소를 띄며 포크를 집어든 하루는 조금은 속도를 올려 케이크를 먹기 시작한다. 어느샌가 하루의 그릇에 놓인 케이크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었고, 어느덧 깔끔해진 그릇만이 놓여지게 되었을 때 하루는 냅킨으로 입가를 닦곤 일어설 준비를 한다.
" 다림양을 만난 덕분에, 케이크도, 대화도 달콤하게 즐길 수 있어서 기뻤어요. 슬슬 저녁 기도를 드리러 가야해서 지금은 일어나야 하지만... 다음에 또 만날 수 있겠죠? "
연락처 교환을 잊지 말자는 듯 칩이 심어진 가냘프고 새하얀 팔을 내밀며 방긋 미소를 지어보인다.
"물론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어른스러운 말은 저도 모르게 받아들여지는 느낌인걸요? 확실히 그렇다는 어조입니다.
"귀엽다니. 굉장히 드물게 들은.. 말인데.. 말이죠?" "어린 시절 이후론 들어본 적 없는 느낌?" 다림이가 귀여운 걸까.. 뒤의 참치는 좀 고민했지만 생각은 그만두기로 했다! 귀엽다고 하면 귀여운 거지!(?) 하지만 공룡화석이 들어있는 퇴적층은 잘만 생각해보면 초콜릿 크레이프 케이크랑 좀 닮지 않았을까.. 아니 사실 그냥 케이크가 더 어울릴지도 몰라..? 두께감을 보면.. 그러고보니 마트에서 초코케이크를 봤는데 진짜 맛있어보였는데..(삼천포를 서울길로 끌어들이자) 하루의 케이크가 거의 빈 것을 볼 때. 곧 일어나시려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실제로 일어나려 할 때에는 예상치 못했단 생각을 했겠지만.
"그럼요.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답니다." 저는 바라는 걸 손에 넣게 되고 마는 족속이니까요. 라는 농담같지만 진담인 말을 합니다. 저녁기도.. 신실한 사람이구나. 라는 감상은 있었지만. 내색하진 않으며 내민 팔에 대답하듯 팔을 내밀고 연락처를 교환한 뒤. 떠나가는 하루를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다시 샘플러를 해치워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