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혁은 지금 내가 뭘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강찬혁은 제노시아 고등학교에 들어간 걸까? 그것도 박살나서 사실상 임시 불구가 되어버린 왼쪽 팔과 오른쪽 다리에 석고깁스를 해놓고, 목발을 짚고 다니는 그 처량하고 끔찍하며 대체 왜 싸돌아다니나 싶은 몰골로. 그래, 다른 게 아니라 제노시아에서 수학중인 서포터가 자신의 의념인 "행복"을 담아 만든 과자가 그렇게 맛있고 당충전이 잘 된다는 소문을 듣고 어떻게든 사려고 이 박살난 몸을 이끌고 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후회가 되었다.
"으윽... 행복한 슈크림 두개만 싸주시오... 사랑하는 제노시아 학우님..."
강찬혁은 겨우겨우 물건을 사서 나왔다. 그런데... 이제는 돌아가는 길이 산넘어 산이었다.
그런데 계속 진행에서 "약자는 도태된다" 그런 언급들이 나오는데, 그렇게 도태된 가디언 학생들은 어떻게 되려는지 궁금하네요.
파워레벨 관련 묘사나 언급을 보면 어지간한 헌터보다는 어쨌든 가디언이 강한 거 같던데, 도태당한다고 두려워하는것도 솔직히 일반인들이 보면 재벌가문 도련님들이 "이 사업에서 내 가치를 보이지 못하면, 다음 회장 자리에서 떨어지고 나는 끝장나는 거야!"라고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자 한번 생각해보자. 여기는 제노시아 고교다. 그리고 매점이다. 그런데 저런 중상자같이보이는 이가 왜 여기 있는 것이며 슈크림을 사는 건 물론이고 나가서 더 나아가지를 못하는 것인가. 주위의 다른 학생들도 뭔가 접근하기 애매한 모양인지 눈치를 보는 듯하자. 다림은 결국 접근하고야 말았다. 사근사근한 외양과 나긋나긋한 성격을 써서라도 말해야지. 어쩌겠니.
"저.. 보건실이나. 병원에는 가지 않으시는 건가요?" 모두의 궁금증을 해결해줄 질문이다! 아마. 다림의 속으로는 하이고.. 요래 뿌사믁은 걸 끌고 와갔고 머하는 짓이고.. 같은 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교복으로 보이는 게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는 성학교 학생인 것 같았는데..
"성학교.. 로 보이는데. 가시는 길에 쓰러질 것 같아서요.." 말을 건 이유를 덧붙인다. 얼굴이 걱정가득한 얼굴과 한께 나긋나긋한 말투를 유지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결혼 적령기가 16세로 내려오며 인구의 증가도 이뤄졌고, 혼란기 상황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범죄들로 인해 사라지고 태어난 아이들이 많음에도 세계의 인구가 아직 60억 정도에서 유지중인 이유는 그만큼 수많은 게이트에 의해 사람들이 아직도 죽어가고 있고, 헌터나 가디언의 수가 늘어나고 싸우는 인원은 많아졌지만 게이트도 그에 맞춰서 늘어나고 있고. 아프리카 지역에는 어째서인지 가디언들이 등장하지 않아서 타 국가에서 뽑힌 가디언들이 사실상 들이부어지면서 게이트를 닫고 죽어가는 현장이고 남극에선 초대형 게이트가 현실과 공명해서 거대한 몬스터 제국이 나타나고 하는 상황이라 절대로.. 세상은 평화롭지 않아. 약하면 도태된다. 가 아닌 거야.. 약하면 아무것도 못 하게 되니까. 다들 어느정돈 절박함을 가지는 거지.
옆에서 누군가 다가왔다. 창백과 미백 사이의 차가운 피부와 검청색 머리를 한 여자가 와서,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그래, 강찬혁은 이런 사람이 좋다. 굳이 얼굴 험해지거나 협박 안 해도 처음부터 서로 좋게좋게 말할 수 있는 사람! 하지만 강찬혁은 지금 대화를 할 때가 아니었다. 강찬혁은 오크와 싸운 여파로 어깨가 박살났고(광폭화된 오크의 글레이브가 꽂힌 부위라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강찬혁은 팔이 일단 "붙어라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게다가 오크와 싸울 때는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아픈 줄도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오크에게 튕겨나갔다가 낙법을 쓰는 과정에서 발목이 박살난 상황이었다. 강찬혁은 상대방이 좋게 말했으니, 나름의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좋게 말해주기로 했다.
"신경써주셔서 고맙네요. 오크랑 싸우다가... 죽을 뻔했거든요. 원래 병원에 있어야 하는게 맞는데..."
강찬혁은 제노시아 전문고교에서만 살 수 있다는 행복의 슈크림이 담긴 봉지를 흔들었다. 강찬혁은 힘들게나마 웃어보였다.
소년의 삶은 언제나 단념과 함께했다. 그것은 지긋지긋한 지병이나 기벽처럼 항상 쫓아다니면서 그를 괴롭혔다. '가족이 없어서 고아원에서 지내야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런 시대인걸' '장난감을 뺏겼지만 어쩔 수 없지. 우리 고아원은 장난감이 금지인걸' '친구가 죽었지만 어쩔 수 없지. 우리 고아원은 돈이 없는걸..'
하나 둘 단념의 범위가 늘어날수록, 소년의 정신 역시 병들어갔다. '어차피 저기까지 도달하려고 발버둥처봤자 실패하겠지. 의미없는 노력인걸'
그리고 그런 모습을 안쓰럽게 여긴 고아원의 선생님은 한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것은 소년이 사는 나라에서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였다. 소년과 반대로 단념하지 않는 영웅에 대한 이야기였다. 영웅은 게이트를 닫고, 사람들을 구하고, 언제나 포기하지 않았다. 단념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에 매료된 소년은 한밤중 몰래 고아원 밖을 나와 그 영웅을 흉내내기도 해보았다.
어설픈 검술을 어설프게 만든 나무검으로 흉내냈지만 그 어느때 보다 가슴이 뛰었다. 처음으로 단념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소년은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그는 가디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심장이 터질 것 처럼 기뻤다. 왜냐면 단념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그것이 너무 기뻐서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곧 다가온 현실은 언제나 소년의 발목을 잡는 단념과 동시에 찾아왔다. 재능의 차이가...너무나 잔인했다.
자신보다 재능이 많아 보이는 이도 단념하고 마는 곳 이었다. 재능을 지닌 몇몇 소수도 영웅의 꿈을 접고마는 잔인한 곳. 소년이 들어간 학교는 그런 곳 이었다.
태어났을 때 부터 쭉 혼자였던 소년은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었다. 소년은 친구들에게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하며, 검을 들었다. 하지만 곧, 자신은 검에 재능이 없다는 현실을 마주하였다. ..소년은 단념하였다. 자신이 동경하는 영웅 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접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생이란 동화처럼 달콤하지 않기에, 검에 대한 동경을 가슴에 묻은 소년은 힐건을 들었다. 영웅에 대한 열망을 가슴에 묻은 소년은 그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좋은 사람이라면... 그 정도라면 재능이 없어도 할 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열망과 동경은 여전히 그의 가슴 한켠에 남아 뜨겁게 타올랐다. 힐건을 마치 권총처럼 쏘는 것은 아주 조금이나마 그것에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 소년은 단념했다..........
그리고 이젠, 그 좋은 사람 마저 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였고. 그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소리치는 소년에게 어쩔 수 없다고. 안타깝다고 말하며 단념을 선언하는 자는. 그 누구도 아닌 소년이 동경하던 영웅이었다.
심장이 찢어지는 기분이다. 주마등처럼 스쳐지가나는 모든 기억이 의미없이 녹아내린다. 이것도 의미없고, 저것도 의미없고, 불등하나에 의지하며 용돈을 모아 산 검성의 이야기를 읽던 시절도 의미없고, 나무를 엮은 검을 휘두르며 기뻐하던 시절도 의미없고. 뭐 어쩔 수 있나..... 단념해야지. 이건 자연재해 같은 것 이다. 태풍이나 지진에게 화를 낼 순 없지 않은가.
...단념해야지.
["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난 단지 들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으니까!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게 그런 것밖에 없는데! 내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냐고! "]
목소리가 들렸다. 하나미치야가 내 손을 잡고, 검성님을 향해 외치는 목소리는.. 너무나 절박하였다. 나는 네가 재능을 가지고 있다 여기고 거리를 유지했는데, 너는 내가 걱정되서 와주었고, 나와 시간을 보내주었고. 나를 대신해서 화를 내주고 있었다. 내가 동경하는 이 마저 단념하라고 말하는 것을 너는 화내주고 있었다.
[" 네게는 두 선택지가 있어. 하나는 지금 내 손에 죽는다. 아 물론 죽는다 하더라도 걱정하진 마. 가족들에겐 시체가 온전히 전해질거고 원한다면 신한국에 작은 작위라도 마련해주지. 겸사겸사 그 핏빛 대가리 쓴 여자도 내가 죽여주고 말야. "]
그리고 뒤 이어 찾아온 왕은 나에게 선택지를 주고 있었다. 이것은 단념의 선택지였다. 내가 할 수 없다면 그냥 이곳에서 포기하면 된다. 어찌보면 현실적이었다. 그 여왕에 의해 하나미치야도 다치지 않을 것 이고, 행여나 다른 사람이 다칠 위험도 줄어든다. 언제나 그랬던 것 처럼 단념해버리면 .......
단념하고 단념해서 목숨마저 단념해버린다면.. ..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너무나 분했다. 사실 단념하고 싶지 않았다. 영웅이 되고 싶었다. 적어도 조금이나마 욕심을 낼 수 있다면, 이딴식이 아니라 적어도 같은 풍경을 보는 자리에서 검성에게 '당신을 동경해서 가디언이 되었습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영문을 모르는 자연재해 같은 것에 의해 이런 식으로 꿈을 잃고 싶지 않았다. 재능의 벽에 막혀, 둔재의 구덩이에 떨어져, 천재들이 하늘을 나는 모습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싶진 않았다. 그렇기에.
" 할거야. ...빌어먹을 통제하면 되잖아...! 그러니까..."
자신에게 단념하라 말한 동경하는 영웅이 보는 자리에서. 자신을 위해 대신 화내주는 의지되는 친구가 보는 이곳에서. 자신에게 선택지를 주는 왕의 앞에서 나는 소리쳤다.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저 털어내는 모습에 그는 말을 멈췄다. 분명히 안 좋은 기억인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억지로 끌어내려고 해봤자 역효과만 날 것 같았고... 애초에 지아가 그것을 원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는 그저 입을 조용히 하려고 했다.
" 아마 그렇겠지. 근데... 날 잊어버리시진 않으셨겠지? "
살짝 걱정되는지 중얼거린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날 잊어버리셨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지만... 그래도 친구를 넘어서 거의 가족처럼 지냈는데 잊어버리셨다고 하면 조금 슬프네. 이런. 왜 자꾸 우울한 이야기로 빠진담. 그는 고개를 갑자기 도리도리 젓더니 헝클어진 머리를 가다듬으며,
" 아. 지아는 동아리 어디에 가입했어? 궁금해졌어. "
지금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니까 추측하기 어려웠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건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지만, 지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동아리를 들어가셨는지 안 들어가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들어가신다면... 들어가기 전에 생각 한번, 두번, 아니, 세번 정도 더 하고 들어가세요. 특히! 전투계열 동아리는요. 끄윽..."
진심을 담았다. 그의 썩어버린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지금 동아리 하나 잘못 들어가서 그렇게 되었음을. 게다가 입에서 작은 목소리로 '전투연구부장 임마 내가 조금만 더 강했어도 콱...' 이라는 저주가 새어나왔으니 더욱 잘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강찬혁이 조금이라도 굼떴다면? 그는 지금 이곳이 아니라 그의 고향 기차역에 "동탄시의 영웅 강 찬 혁"이라는 명판과 함께 동상 신세가 되어 서 있었으리라. 그것도 실제 시체는 머리와 몸이 분리된 채로.
업어준다? 그런 건 바란 적도 없다. 의무 계열 서포터들은 당연히 자기 체중의 두배 정도 되는 가디언들은 들고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는 꼰대스러운 생각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꼰대스러운 생각이었지 바깥으로 내뱉어진 "의견"은 아니었으니까. 강찬혁은 혹시 몰라서 물었다.
"혹시 그런거 없나요. 혈액순환이랑 상처재생에 좋거나, 아니면 하다못해 진통이라도 되는 의념이라던지..."
정신을 차리자마자 본 것은 기숙사의 익숙한 천장도, 졸다가 번뜩 깬 교실 안도 아닌 항구구역이었다. 두 뺨이 젖은 느낌에 손을 뻗어 따라가보니 눈물이었다. 어째서? 무의식 중에 벌어진 일을 인지하기도 전에 지아는 뒤이어 따라오는 수많은 물음표에 잠시 숨이 멎는 듯 눈 앞이 아찔해졌다.
나는 왜 울고있는거지? 꿈속의 그 풍경은? 그 아이는 대체 누구? 한번 터져나오기 시작한 의문의 연쇄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 없이 이어지다, 어느 한 순간에서 필름이 끊어지듯 뚝 하고 끊어져버린다. 처음으로 각성하기 전날부터 각성한 후의 몇년. 그 몇년 사이의 기억이 먹으로 덧칠한 듯 새카만 것. 떠올리려 하면 감정이 받쳐 올라 울고 싶어지는 것. 너무나도 무거운 죄책감.
"...이상해."
이미 흘러내린 눈물을 닦은 지아는 울고싶어지는 기분을 애써 억누르며 기숙사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여전히 의문투성이인 채로, 여전히 죄책감에 물든 채로.
[ 속보입니다. 현재 해운데 앞바다에 거대한 태풍이 관측 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현재 면밀한 조사중이며... ]
[ 속보입니다, 현제 해운대 근해의 폭풍은 이상기후가 아닌 게이트의 영향으로 판단되어... ]
[ ...이번에 출현한 것은 매우 드물게 관측되는 재해형 게이트로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으며, 해운대 인근 시민들은 대피를... ]
[ 속보입니다. 현재 해운대 앞바다에 출현한 재해형 게이트는 강한 환각현상을 불러 일으키는 것으로 연구 및 조사에 의해 밝혀졌으며 '하멜른'이라는 이름이 부여되었습니다. 환각현상에 양성반응을 보이는 것은 대부분 12세 미만의 어린 아이들로써, 공통적으로 피리소리가 들린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각 가정에서는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시길 당부드립니다. 이어서 하멜른 관련소식... ]
─빨리! 내 손 잡아! 가면 안돼!
─난. 저 피리소리를 따라 가야해.
─싫어! 제발 가지 말아줘!
─안녕, 지아. 다녀올게. 다음에 또 놀자.
소녀가 그날의 기억과 함께 떠나보낸 것은, 자신의 친구를 지키지 못했다는 짙은 죄책감. 그리고 남은것은 그날의 거센 폭풍을 기억하라고 절규하는듯한 풍의 의념속성. 이 사실을 다시 기억해내기까지, 그리고 극복해내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저는 전투 쪽이 처지는 편이니만큼 그런 쪽도 생각했는데.." 학생분의 말을 들으니 몇 번은 생각해야겠네요. 라고 말합니다. 먼저 통성명을 해야하는가? 라는 생각은 약간의 망설임을 담고 있었을 것이다. 그냥 해도 되는 걸까?
찬혁이 말하는 것에 전투부는 무서워지기 시작했을지도 저정도로 다치는 건 다림주 생각으론 아마 한번도 없었을걸! 그야 걸어다니기만 해도 종잣돈이 모이는(농담이지만) 행운아가 저정도로 다치는 거면 주위 사람들 떼거지로 죽어나가는 게이트에 휘말림 정도의 일이지 않을까. 아니 그래서 진짜 휘말린 적 있어? 그거야 다림은 알지만 다림주는 모르는 영역이지. 찬혁의 부탁을 듣고는 귀 뒤로 반짝거리는 백색과 청색의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넘기고는
"아. 따끔하겠지만 일단은 바라는 것을 좀 드릴까요?" 바라는 것이 그렇다면 그렇게 되도록 버프해줄 수는 있다. 그러니까.. 대충 말하자면 이 경우에는 버프를 빌어서 순간적이나마 잊도록에 가장 가까울까. 라는 느낌? 꺼내든 게 화살이라서 문제지만. 사근사근한 표정으로 한번 따끔이에요. 라니. 언밸런스하다!
"저는 워리어거든요. 아시잖아요. 맞짱 뜰 줄 모르는 워리어는 제주도 수학여행 가서 노점상이 500원 받고 파는 중국산 싸구려 돌하르방 열쇠키 기념품 수준으로 쓸모가 없다는거. 그래서 들어갔는데... 보시다시피... 네..."
강찬혁은 그렇게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사실이다. 싸움을 못하는 워리어는, 500원짜리 기념품만큼이나 쓸모가 없다. 약하면 도태된다는 청월고의 살인적인 엘리트주의도, 한 우물만 판다는 제노시아 고교의 비실용적인 외길인생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찌됐든 가디언이 된 이상 인생을 날로 먹을수는 없었기에 그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렇다쳐도... 이번 건 좀 심했다. 강찬혁은 상대방이 제안하는 것을 보고 한번 받아나 보기로 했다.
"네, 부탁드릴게요."
강찬혁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곧게 폈다.
//다림주. 기다림 의념기 중에 다이스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보니까 낮은 확률로 아군의 상태 최악화가 있던데 불행하게도 하필 강찬혁이 그거에 딱 걸렸다는 서사 괜찮을까요?
"어.. 그정도로 쓸모가 없나요?" 500원이라면 길가다 주우는 정도인데 그정도라니. 상당히 곤경에 처해있게 된 상황처럼 보인다. 청월고교도 제노시아도.. 라는 말을 들을 순 없었지만.
"서포터라도 전투 자체를 할 줄은 알아야겠죠." "그랬는데 무서워지니..." 그래도 생각해보니 활을 쏘아야 할 일이 많겠으니 궁도부라도 가야 하나. 라고 중얼거립니다. 네 성이 기인 건 양궁선수도 감안한 거야.. 라는 건 헛소리입니다. 이 참치는 그런 거 생각없이 했다가 아. 하고 나중에 붙인 거에요.
"묘하게 동음이긴 하지만 이의어니까 괜찮겠죠." 바라는 것이니까요. 바라는 대로. 라니 엄청 대단해보인다고 누가 말한 적은 있지만 그다지..? 화살촉이 콕 하고 따끔하면 버프가 걸릴 것이다. 버프라고 한다면 일종의 활력을 더해주는 것일지도 모르고.. 불안점이라면...?
//서사 자체를 해도 괜찮기는 하지만 제가 찬혁이에게 미안하고.. 다림이가 불행을 몰고오는 느낌이라.. 미안해진다아앗...!
짧지 않은 생을 살았지만 모든 것에 적당히 선이 있어야 한다는 건 안다. 그리고 선을 넘게 두는 것에는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물론 지금도 사실상 미션스쿨을 다니고 있긴 하지만 사오토메 에미리는 다년간의 미션스쿨 생활을 통해 뼈져리게 깨달은 점이 있다. 역린은 정말 믿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공개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캐묻지 않길 바라냐는 말에 에미리는 특별히 말로 대답하진 않았다. 그저 살짝 오른눈을 감고 윙크하고 말았다. 말로 뭘 답할 수가 없으니 사실상 노코멘트나 마찬가지다.
쨘! 하고 잔을 가볍게 부딪히고는, 잔을 조용히 입에 가져가 조금씩 홀짝이고는 이내 3분의 2만 남기고 잔을 내려놓았다. 따뜻한 밀크티로 주문한 덕에 게이트에서 쌓인 피로가 조금은 풀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쌉싸름한 홍차에 부드러운 우유가 적당히 좋은 비율로 섞여 담긴 게…
“으음~ 이맛이어요🎵 노곤해지면서 사르르 녹는듯한~ 정말이지 천상의 맛이와요~! “
오른손을 뺨에 올리며 한츰 맛을 음미하다 다시 잔을 들어 조금씩 마셔넘겼다. 내가 진짜 이 맛에 차를 마신다…티라미슈도 조금 한 스푼 떠서 입에 넣고는 또다시 감동했다는듯 왼손을 뺨에 올렸다. 아아,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운 맛인지💕에미리는 감동했사와요~! 이 카페의 단골이 될것이와요!
막 슬라임이 되어버리는듯한 느낌~? 이라고 하면 맞으려나요…~🎶 덧붙이면서도 끝이 늘어지고 있는 것이 정말 밀크티 몇모금으로 온몸에 긴장이 싹 풀어지긴 했나 싶다. 차가운 콜라던 따뜻한 밀크티건간에 게이트 끝내고 나서 마시면 노곤노곤해지는건 다 똑같다. 살짝 눈을 감으며 다시금 밀크티를 머금었다. 역시 티타임은 이런 맛에 즐기는 거지요, 느물느물해지는 이런 맛에요…🎵
그렇게 노곤하다면 노곤하고, 느물느물하다면 느물느물해지는 티타임을 보낸 둘이었다…
//끝까지 다 썼는데 막레 날려서 처음부터 다시 쓴 사람이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 BGM) 눈물나는거에요 늦게나마 막레 올립니다 수고하셨어요 지훈주~~! ♪(๑ᴖ◡ᴖ๑)♪
"서포터라고 하셨죠? 생각해보세요. 눈 앞에서 적이 랜서랑 서포터를 씹어먹으려고 달려들고 있는데 워리어가 그거 하나 못 막고 넘어져서 접근을 허용했다면? 힘싸움에서 밀려서 넘어졌다면? 차라리 돌하르방 열쇠고리는 단돈 500원이면 되니까 싸기라도 하지, 그런 워리어는 나중에 의뢰 수고비도 1/3 만큼씩 받아갈거 아니에요. 얼마나 짜증나요."
강찬혁은 그렇게 말한다. 사실 이건 다른 직업군에도 적용될 수 있었다. 워리어가 전방에서 틀어막고 적이 뒤로 못 가도록 차단하는 일, 그러니까 탱킹을 못 한다면 가만히 앉아서 중후한 표정으로 장중을 압도하는 모아이 석상보다도 쓸모없는 워리어고(차라리 그건 잘만 배치하면 뚫기라도 힘들다), 랜서도 워리어가 버틸 수 있는 한계점까지도 적을 못 쓰러뜨리면 그 사람은 랜서가 아니라 끊어진 랜선보다도 쓸모가 없고, 서포터도 서포트를 제대로 못하면... 말을 말자.
"한번 해 보세요. 음..."
강찬혁은 잠깐 기다려보았다. 오, 왠지 몸이 좋아진 느낌인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표정이 밝아졌다.
"와, 서포터 능력 확실하시네요. 뭔가 고통이 사라진 느낌이에요. 병원까지 제발로 걸어갈 수 있겠는데요?"
"비유를 들어주시니 이해하기 편하네요. 그... 중상자 씨." 여러가지 상황에서 워리어나 랜서가 잘 하지 못한다면 그것 참... 뒷사람은 뭔가 메 모 씨가 POTG인가 뭔간가를 먹은 걸 상상했다! 통성명이 없었으니까 중상자 씨라고 부르다니. 묘하네.
"수고비를 받아가는 것..." 의뢰를 다녀본 적 없지만 와닿는 설명이었다. 화살을 톡 건드립니다. 하는 생각을 알았다면 워리어가 워리어를 못하면 월월 짖는 거고. 랜서가 랜서 일을 못하면 랜서가 신다! 고 서포터가 서포트를 못하면 스팟만도 못한 게 되겠다면서 맞장구를 쳐줬겠지. 근데 사실 따지고보면 다림 네가 저 스팟만도 못한 게 되지 않을까? 일단 버프가 먹혀들어간 걸 보고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버프일 뿐이니까요. 대신 풀리면 피로감이나 아픈 거나 그런 거 한번에 닥칠지도 몰라요?" 겁주듯 말하는 게 진짜인지는 모를 일이다. 그냥 바로 싹 사라지게 하는 거라면 좋겠지만 그걸 바란다고 해도 그대로 될지는 모르잖아? 사근사근함은 줄어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되니까 따라가겠다는.. 오지랖이라고 불릴 만한 일을 자처하나?
강찬혁은 모르는 사람들이나 자신을 얕잡아보려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사용했던 지칭어들을 떠올려보았다. 거지, 깡패, 양아치, 조폭, 미친놈, 또라이, 싸이코, 문신충(놀랍게도 강찬혁은 어떤 문신도 하지 않았다), 폭력전과 47범(실제로 강찬혁이 체포되었다면 50범 정도는 노려볼 수 있었겠지만 강찬혁은 체포된 적이 없다), 멍청이, 뇌근육, 얍삽이, 인성질맛집, 테러리스트, 싸가지, 강도범, 빚쟁이, 사채꾼, 그 외 기타등등. 그 중에서 "중상자"라는 아주 점잖은 지칭어가 추가되니 강찬혁은 기쁠 따름이었다. 그래도, 중상자보다는 사람을 더 낫게 부르는 법이 있으니, 이름이었다. 강찬혁은 가디언 칩이 담긴 팔을 내밀며 말했다. 괜찮다면 통성명을 하자는, 그 나름의 의사 표시였다.
"네, 워리어 겸 무직 백수 겸 중상자 겸 아프란시아 성학교 학습부진아 겸 전투연구부 마루타 강찬혁입니다."
그리고 닥칠지도 모른다는 말에 껄껄 웃었다. 강찬혁은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진짜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어차피 병원까지만 가면 의사들이 알아서 다 해주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중상자가 예의바른 지칭이라니." 몰랐네요. 라며 생글생글 미소짓습니다. 그러고보면 자신을 지칭하는 것 중 가장 나쁜 건 뭐였더라. 그렇게까지 신경쓰지 않아서 잘 기억나지는 않는데. 역시 두려움을 사는 것이 그랬을까? 생각을 안하는 게 가장 나아. 찬혁이 말하는 말이 통성명인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끝에 이름이 나올 무렵이었다.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 대단하네요." 찬혁 씨. 라고 말한 뒤 저는... 제노시아 학교의 기다림이라고 해요. 다림이라고 불러주세요. 라고 모호한 표정으로 통성명을 하지만 악수하기엔 중상자라서 멈칫하네요. 괜찮다면 가디언 칩이 들어있는 팔을 내밀어 악수를 했겠지.
"그래도 의사 말을 들어서 나쁠 건 없지요...?" 의사 말 무시까고 130세까지 산 할머니의 이야기를 생각하지만 여기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아서 그저 걸어가면서 알아서 해줄 거라는 말을 듣곤 의사선생님께서 등짝에 스매싱을 날리려다가 참으실지도 모르죠. 랍니다.
강찬혁은 가디언 칩이 붙은 팔을 기다림과 맞댔고, 그 사람의 이름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기다림이라, 강찬혁은 그 이름을 보고 잠깐 고민에 빠졌다. 기다림, 기다림, 기 다림, 음. 그렇단 말이지. 강찬혁은 이 사람의 실제 성격과는 별개로 부모님이 왜 이런 이름을 지어줬는지는 알 것 같았다. 영웅처럼 살라고 임영웅 같은 이름을 붙이거나 주님의 은혜 아래 살라고 주은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처럼, 지금 옆에 서 있는 사람의 부모님은 이 기다림이라는 사람이 기다림의 미덕을 아는 신중한 인물상이 되길 바랐을 것이다. 신중함과 기다림, 인내심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게 없어서 강찬혁의 인생이 진흙탕을 구른 것이니.
"좋은 이름이군요. 뜻이 느껴져요."
그렇게 말하고는 계속 걸어갔다. 이상할 정도로 몸이 편했다. 석고깁스만 아니었다면 아예 깁스를 풀어버리고 걸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사람, 어디서 뭐하는 누구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대단한데. 그렇게 생각했다. 강찬혁은 고통이 느껴지지 않아서 이야기한다.
"인생을 막 살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아닌가?" 잘 모르겠다는 척 부드럽게 미소지었던가.
팩트를 말하자면 다림의 이름을 지은 사람은 다리 밑에서 유일하게 물에 안 적셔지고 건져왔다고 다리라고 지으려다가 다리는 좀 그렇다는 태클에 대충 림을 붙였고. 성도 전화번호부를 펼쳐서 김으로 하려다가 고건 넘 흔하다안카나. 로 기가 되어버린 거라. 찬혁이 생각하는 부모님이 뜻을 담은 훈훈함은 기대할 수 없지만.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걸 다림이 알아차릴 수도 없는 일이지.
"으음..." 좋은 이름이라는 말에 그런가요? 라는 짤막하고 사근사근한 말만을 하며 가치중립적으로 생각하려 한 다림은 편하다는 찬혁의 말을 듣고는
"게이트를 닫거나, 여러가지 일에 대비해서 배울 게 아직도 많지만요." 도움이 되었다니 기뻐요. 라고 답하면서 천천히 보폭을 맞춰 걸어갑니다.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다. 강찬혁도 배울 게 너무 많았다. 인류 역사부터 해서 게이트 물리학, 게이트 역학, 외계역학, 외계생물학, 외계환경학, 그 외 기타등등. 대체 그런 거 배워서 뭐하느냐는 말을 하려다가 선생님의 한마디라도 뱉으면 죽여버리겠다는 살인적인 시선에 입을 다문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뭐 어쩌랴,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겨야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강찬혁은 드디어 병원에 도착했다. 저곳에 가서, 맛난 행복의 슈크림을 먹을 차례였다.
"덕분에 빨리 온 것 같아요. 아주 고맙습니다. 윽... 몸이 갑자기 안 좋아지는게 빨리 병원에 들어가봐야 할 거 같네요."
"배우는 것은 끝이 없는 것 같으니까요." 지금도 게이트를 닫는 이들로 역사는 갱신되어가고 있을까.. 그러고보면 이런 게이트들은 계속 생겨나고 있지.. 같은 어려운 것은 다림에게는 의미없이 흘러가는 생각이 될 것이다. 그렇게 대충대충 하는 것이란. 참으로 외면하는 것에 재능있는 자로 보일지도 모른다.
"덕분에라뇨. 누구라도 그 모습을 봤다면 도움을 주려 하지 않았을까요?" 병원에 도착한 찬혁과 다림. 병원 입원환자들이 보이고. 정문도 보인다. 낯선 공기다. 병원 특유의 냄새가 흘러나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으니 잠깐 머뭇거리기만 할 뿐이다.
"오늘은 먹고 푹 쉬세요." 고개를 끄덕이며 병원으로 들어가봐야겠다는 찬혁을 바라봅니다. 들어가서 보이지 않게 되면 너 또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강찬혁이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기다림은 최고의 행운아였다는 것이고, 그에 비해 강찬혁은 운이라곤 쥐꼬랑지만큼도 없는 불운아였다는 것이다. 기다림의 행운은 자기 바로 옆에 서 있던 사람이 비명횡사하지 않는 선까지만 배려해줬을 뿐, 그 이상 배려해줄 이유는 없었다. 기다림이 튕긴 주사위는... 오늘만큼은 꽤나 기괴한 불운을 보였다.
"쿠헉?!"
강찬혁은 갑자기 코와 입으로 피를 토하면서 멈춰섰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갑자기 몸이 단단해지는게 느껴졌다. 사경을 헤매기 직전, 그 정도로 강찬혁은 상태가 안 좋았다. 그리고...
깡!
하필 그때, 불안불안하던 병원 로고가 뜯어지면서 강찬혁을 덮쳤다. 보통의 가디언이라면 그대로 사망했겠지만, 다행히도 강찬혁은 체력이 낮아지면 데미지를 무효화할 수 있는 의념기를 가졌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것이 기괴한 불운 아닐까?
물론 지켜보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끔찍한 사고였지만, 기다림이 그 잔혹한 몰골을 못 본 것은 참으로 다행이리라.
>>236 뛰어드는 애 : 주인공 맨 앞 바위 : 주인공이 만나는 첫번째 보스. 쿨시크. 주인공에게 지고 동료가 됨 오른쪽 바위 : 첫번째 보스가 지면 나타나는 보스 맨 오른쪽 : 단순무식한 파워타입 맨 왼쪽 : 맨날 만사를 귀찮아하지만 2인자이자 강력한 무력을 가짐 태양만세 : 최종 보스
기억하고 있니? 예전에 네가 자판기를 눌렀더니 와르르 쏟아져버린 것 말이야. 하지만 그런 것은 이제 졸업할 때도 되었지. 라는 말들은 꿈 속에서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여유로운 일과를 보내던 도중에 다림은 공터로 향하게 되었다. 스스로의 바람이 무엇인가를 알아도 달라질 건 없지만..
"검..?" 검을 수련하는 사람이 눈에 띄어 빤히 바라봅니다. 졸지에 구경꾼이 된 것 같았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라 생각하나요? 검도가 끝날 때까지 계속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마치고 나면 구경 잘 했어요. 라는 말을 할 것입니다.
검귀에게 검을 휘두르는 법을 배웠지만, 그 이후로도 검이라는 것을 다루기는 쉽지 않았던가. 더 빠르고, 더 정확하고, 더 날카롭게 벤다. 말로 하기는 쉽지만 몸으로 체득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지훈은 꾸준히 공터에서 혼자 검을 휘둘렀다. 비단 수련의 의미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검을 휘두르는 감각이라던지, 다루는 법을 연습하는 것... 지훈은 그게 좋았으니까. 그렇기에 지훈은 누군가 자신을 보고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검을 계속해서 휘둘렀고, 수련을 멈추고서 다림이 말을 걸었을 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겉으로는 잘 티가 안 나긴 했지만.
" ...언제부터..? "
가쁜 숨을 내쉬며 조용하게 다림을 바라보고는 물었다. 수련을 시작할 때엔 없었으니까 하던 중에 왔다는 뜻인데... 언제부터 온 걸까. 눈치채지 못 하고 있었어...
" 재미는 별로 없었을텐데. 조금 특이하네. "
의외라는 듯 소녀를 바라보며 말한다. 눈 앞의 소녀는 검이랑은 관련이 없어보였다. 그러니 수련하는 모습을 구경해도 그다지 재미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검을 아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흠을 찾으면서 즐겼겠지만 눈 앞의 소녀는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신기하다는 감흥마저 들었던가.
검에 대한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이들도 있지만 다림은 그런 쪽은 아니었지. 오히려 칼은 그다지.. 라는 반응이 많을 거야. 칼부림을 아는 것이니까? 하지만 잘 다루는 것은 좋다는 것은 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처음부터였을까요. 살짝 내려그을 때부터였을까요. 그것도 아니면 마지막 동작 직전이었을까요?" 라고 말하면서 생글생글 웃는 것은 역시 짖궂음일까? 아니면 그렇게 열심인 것에 대한 신기함일까 그것은 중요하지 않은 듯 재미는 없었을 거라는 말에는 글쎄요? 라고 한 뒤
"재미가 있다..라고 하긴 어려웠지만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건 나름 볼만한걸요?" 의외라는 듯 바라보는 말을 하는 지훈에게 매일 그렇게 수련하시나요? 라고 물어봅니다. 수련을 매일 한다면 그거 힘들 것 같은데. 물론 그것을 하기 때문에 도태되지 않는 것이겠지.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나아가야 하니까요."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처럼요? 라고 말합니다. 다만 진심은 조금만 들어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아예 거짓말은 아닌걸? 그런 이유로 다림은 거리낌없이 말했다. 보기에 정답이 없는 문제는 너무하다는 것에 걷어차는 것으로 뭔가 숨겨진 게 드러나버릴지도 모르는 곳이니까요? 라는 냉혹한 현실을 농담으로 받습니다.
양치질을 매일 한다고 해서 힘들진 않죠. 라는 것에 납득하나요? 납득하는 겁니까?
"그러고보니 콜라에 요즘 이벤트 하던것 같던데. 맞나요?" 다림은 아마. 콜라 캔을 보면 하나 더! 라던가 하는 게 있나 싶어서 물어본 것이었을 것이다. 다림이 콜라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콜라를 하나 뽑으려 누르자. 아슬하게 걸린 두 개가 같이 떨어져버리고, 다림의 몫인 오렌지쥬스는 다림이 뽑자마자 품절이 뜨는군요.
"...바라는 것이지요." 모호한 말이었지만. 바라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일까? '무언가를' 바라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니.
"글쎄요... 운이 좋은 건 좋은 거지만. 그것이 꼭 행복을 의미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그럼에도 운이 좋다는 것은 다림의 인생에서 상당히 좋은 것을 주었기 때문에 딜레마에 걸리는 것이겠는가? 지훈의 말을 듣고는
"둘 다 해주시나요?" 과하게 대접받고 또 보답하고 그렇게 이어질 것 같네요. 라는 말을 하지만 그렇게 인연을 이어가는 것을 싫어할 리가 없잖아요? 라는 생각을 하며 그럼.. 교환하실래요? 라면서 가디언 칩이 있는 손을 내미려 합니다. 저는 다림이에요. 제노시아 고교생이고요. 라는 통성명을 잇습니다.
"불행한 일이 있긴 했지만 아마 행복하지 않을까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로 넘어갈 순 없는 일들이었지만. 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론 행복하다고 생각할 법하다.
"같은 학교가 아니라도 괜찮으니까요." 만나서 얘기나누면 그것도 나름 친구라면 친구죠. 라는 생각과 함께 더 좋았을지도에 대해선 그렇겠다. 라는 중얼거림을 돌려줍니다. 지훈의 말을 듣고는...
"장난이 없다곤 할 수 없지만. 진심이기는 해요." 진실을 덜 말할 순 있지만 거짓말은 없어요. 라고 말하는 표정은 진지하지 않아보였지만, 그럼에도 다림 자신이 말하는 것처럼 거짓은 느껴지지 않았을 겁니다. 가볍게 다 마신 캔을 쓰레기통에 던지면 마치 예술처럼 한 번 튕겼다가 쏙 들어가버리는군요.
외팔 외눈이 오크와 죽도록 싸우고, 한잠 푹 자고 피바다 위에서 눈을 떴다. 망가진 몸을 이끌고 나오니, 해는 저 멀리 수평선에 빛 한줄기까지 포함해 전부 먹힌지 오래였고, 검보랏빛의 하늘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외계의 차가운 별빛이 수놓아져 있었다. 강찬혁은 말없이 망가진 몸을 이끌고 거리를 걸었다. 어지간한 음식점들은 전부 불을 끄고 장사를 마친 시간, 강찬혁을 받아주는 가게라고는... 사람 한 명 없는 자판기뿐이었다.
"제기랄..."
강찬혁은 지갑을 꺼냈다. 한쪽 팔이 망가져서 잘 되지 않아, 신경질적으로 카드를 꺼내서 마구 긁었다. 피로회복제를 두 병 꺼내고, 옆의 벤치에 앉아 일단 한 병을 까서 쭉 들이켰다. 사레가 들렸다. 강찬혁은 마시다 말고 쿨럭거리면서 앞에 물을 뱉었고, 그 물은 핏빛이 섞여있었다. 입 안의 수많은 상처들이 피로회복제의 탄산과 만나서 엄청 쓰리게 느껴졌다. 되는 일이 없었다.
강찬혁은 툴툴거리면서 양호실 바깥으로 나왔다. 정확히는 탈출했다. 양호교사 보조랍시고 앉아있는 미친놈은 사람이 실려오면 뭘 주울 수 있을까 상상하고 사람의 시체를 떠내면서 즐거워하는 미친놈이었고, 다른 이들도 비슷했기에 아무도 정상이 아닌 곳에 가만히 있느니 다른 데 가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자, 오늘의 밥은... 정말 맛없음의 마에스트로다. 딱 봐도 코다리조림에 묽은 된장국이나 나오겠지. 그딴 거 먹느니 굶고 만다. 그런데 굶을 수는 없으니. 매점이나 가자.
강찬혁은 그렇게 해서, 붕대를 칭칭 감아서 미라 몰골이 된 상태로 매점에 가서 물건을 샀다.
새하얀 파블로바. 바닐라 향이 보이는 듯한 달콤한 크레이프 케이크. 새빨간 딸기가 올라간 쇼트케이크...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카페의 특정 케이크는 한정이라는 것이죠. 사실 그 주문을 알게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으음.." "죄송해요. 합석하는 것만 가능하니까요."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한 번 둘러보려 하지만 확실히 카페 안은 자리가 하나도 빠짐없이 차 있었습니다. 가장 좋아보이는 자리는 물론이고, 불편해보이는 자리까지도. 뭔가 감으로는 주문해도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네. 라고 중얼거리며 등을 돌렸다. 내일도 날이니까. 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오늘이 가장 적합한 날이었는데. 백색과 청색 그런 머리카락이 미련이 흐르듯 목선을 타고 흘러내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가려 했어.
...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려 돌아보았던 것이 너의 운을 증명하는 것이겠지만.
많은 일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목적은 달성한 오늘. 나이젤은 종이봉투를 들고 길을 걸었다. 너무 어두운 곳은 잘 보이지 않아서 힘들다.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 하나가 여기로 떨어지면 얼만큼 충격이 갈까, 같은 쓸모없는 생각을 떠올리며 익숙한 길을 불빛 따라 걷던 중. 붉은 눈처럼 발광하는 자판기의 붉은 버튼에 눈이 갈 때 자연스럽게 사람도 볼 수 있었다.
"거기 누구 있나요?"
많이 맡아봤을, 확신은 하지 못할 냄새가 풍겼다. 음료수를 뽐내기 위한 하얀 조명에 비친 얼굴은 본 적이 있었고, 그 안면 있는 사람이 다친 것도 알았다. 나이젤은 벤치로 향했다.
"병원이 멀게 느껴질 만도 할 것 같네요."
의학적 소견은 없지만 좋아 보이진 않는다. 슬슬 어두운 것에 적응할 듯한 눈에 힘을 풀었다. 거리가 가까워져 막아서지 않는 이상 다음 말을 꺼낼 때쯤은 벤치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바닐라향이 향긋하게 감도는 크레이프 케이크를 바라보고 앉은 하루는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수녀복이 아닌 수수하지만 새하얀 원피스를 걸치고 나온 그녀는 느긋하게 거리를 걸으며 산뜻한 바람을 즐겼다. 그러다 그 바람에 실려오는 달콤한 향기에 이끌려 카페에 들어온 결과물이 눈 앞에 가지런히 그릇 위에 올려져 있었으니까, 만족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럼, 잘 먹겠습니다. "
하루는 가볍게 성호를 그으며 우아하게 포크를 들고 케이크를 살며시 먹기 좋게 잘라내려고 했다. 손을 내밀던 하루의 귓가에 누군가의 곤란한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면, 그대로 하루의 자그마한 손에 쥐어진 포크가 케이크를 잘라냈겠지만, 포크는 케이크 위에 멈췄다가 천천히 테이블 위로 돌아간다. 포크를 내려놓아 자유로워진 새하얀 팔을 살며시 들어 다림과 이야기 하고 있던 종업원이 자신을 보게 만든 하루는 살풋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 ... 제 앞에 자리가 비어있는데, 괜찮으시다면 여기서 합석해서 드셔도 될 것 같아요. 혼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못 드시고 돌아가는건 아쉽게 될테니까요. "
하루의 상냥한 목소리가 종업원과 다림에게 들렸을 것이다. 종업원은 그런 하루를 보곤 곤란해하던 얼굴에서 화색이 감돌더니 조심스럽게 다림을 바라본다.
' .. 저쪽 분 말씀대로 합석하시겠어요? 아무래도 기다리시거나 하려면 오래 걸릴 것 같은데. '
강찬혁은 남은 병 하나를 따서 마저 들이마셨다. 저 사람에게 준다는 선택지도 있기는 했지만, 그런 선택지를 고르기에는 강찬혁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기에. 마시자 한결 몸이 나아졌다. 당장은, 당장은 걸어서 갈 수 있을까? 조금만 쉰다면 가능하리라. 목소리의 주인이 가로등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벤치로 가까이 오자 몸을 옆으로 끌어 자리를 양보했다. 오늘도 실수였나? 강찬혁은 그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실수라, 실수를 많이 하긴 했다. 여기로 오기 전까지 그의 인생은 정말로 실수의 연속이었으니까.
"애매해요."
하지만 오늘은 실수라 하기도 애매했다. 실수란 게 있었다면, 강해질 수 있다면 죽을 수도 있는 방법도 일단 쓰고 보는 정신나간 놈을 부장이랍시고 만난 게 실수였을까? 그것은 실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강찬혁이 오크랑 싸우지 않았다면 강해지지는 못했더라도 이렇게 온몸이 박살났을 리는 없었기에, 그건 실수인 것 같기도 했다. 강찬혁은 피가 배어나온 지 오래라 검게 물든 왼쪽 어깨 부분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쉰다.
케이크들이 예쁘게 있는데다가 자리에 내리는 햇살과 합쳐지면 사진찍기 아주 좋은 느낌일 겁니다. 정말로 돌아가려고 버스라던가 이래저래 검색하려 했다가. 잠깐만요. 라는 하루의 말을 듣고는 잠깐 멈칫합니다.
종업원이 합석을 권하는 말에 다림은 잠깐 망설이는 듯 하지만, 하루의 매력이나.. 기다리는 게 너무 오래 걸릴 것이라는 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자리에 가벼운 가방을 내려놓은 다음 감사합니다. 라고 하루에게 인사합니다.
"합석에 감사해요." 종업원에게 말하는 것은 그렇다면 저는 샘플러 세트 하나 주시겠나요? 라고 말하려 합니다. 샘플러란 케이크를 큰 조각이 아닌 작은 조각들로 다양한 케이크를 먹을 수 있는 세트라고 하네요. 이 카페에서만 한정으로 파는 것이죠. 세트에 음료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킬 모양입니다. 하긴. 케이크 종류가 다양하니만큼..
"여기 케이크가 대부분 맛있어서 샘플러 한정을 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꿀팁이에요? 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려 하나요?
강찬혁은 자신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강찬혁 특유의 의념기가 시의적절하게 발휘되지 않았다면, 강찬혁은 아프란시아 성학교가 아니라 제노시아 성학교의 의학선생, 그리고 대장장이 선생과 함께 사용 가능한 의족 옵션과 강화수술 패키지에 대해 심도깊은 토론을 나누고 있었으리라. 아직도 그 오크 녀석의 하울링을 떠올리면 어깨 부분이 아려왔다.
"한번에 레벨을 두 계단이나 올렸지만... 글쎄. 그 위험을 감수할 정도의 가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어."
합석을 권하는 말에, 망설이는 듯 하더니 다가와 자리에 앉으며 인사를 건내는 다림의 말에 상냥한 눈웃음을 지어보이곤 고개를 살살 저어보이며 말한다. 그다지 어려운 일도, 망설일 일도 아니었다는 듯 겸손한 말이었다. 물론 혼자 앉아서 즐기는 것도 즐겁긴 하지만, 이야기 상대가 생기는 것도 나름대로 반길만한 일이라는 것을 하루는 잘 알고 있었다.
" .. 그런 건 몰랐네요. 저는, 뭔가 알고 온게 아니라... 달콤한 향기에 이끌려서 온거라서요. "
하루는 그런 것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는 듯 처음에는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가, 새하얀 볼위에 분홍색 열꽃을 피워내며 수줍은 미소를 지어보인다. 한손으로 입을 가린 체, 부끄럽다는 듯 말한 하루는 이내 고맙다는 듯 다음번에는 샘플러 세트를 시켜보겠다는 말을 덧붙이며 눈을 반짝인다. 이래뵈도 단것을 좋아했기에, 이런 정보를 알게되면 결국 또 와버리고 마는 하루였다.
" 카페에는 여기저기 찾아다니시는 모양이네요? 그런 정보 같은 것도 잘 알고 계신 것을 보면.. "
이런 부분에 있어선 하루는 백지나 다름 없었다. 애초에 고아원에서 지낼 때에는 카페에 올 일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이렇게 카페에 앉을 생각을 하는 것도 학원섬에 오고 나서 변화한 모습이었으니까.
"혼자 자리를 차지한다고 해도 좋은 일인데.." 양보해준다는 말과 겸손해보이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려운 것도. 망설일 일도 아니었다는 것일까... 그건 맞는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림에게는 어려운 일이었겠지. 뭔가 알고 온 게 아니라는 말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운이 좋으시네요. 좋은 카페를 찾는 감각이 있으신가 봐요. 라는 말을 합니다.
"아니요." "저도 정보를 우연히 알게 된 거라서요." 하지만 우연히 알게 된 거라고 해도 알아버린 걸 안 써먹기는 그러니까요? 라고 하루의 카페를 돌아다니냐는 물음에는 아니요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젓지만. 그리 말하면서 나오는 샘플러 세트를 봅니다. 9가지의 가지런한 케이크 조각들이 예쁘게 나오는 것이 눈을 즐겁게 하나요?
딸기, 블랙 포레스트, 단호박, 치즈케이크, 크레이프 케이크... 그런 걸 보면서 흥미롭다는 듯 바라봅니다. 자기도 처음 시키는 거면서 여유로운 척인가요?
강찬혁은 짜증을 냈다. 그래, 오크랑 싸우기로 한 건 강찬혁 스스로의 결정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암묵적인 위계에 의해 강요된 결정이었다. 강찬혁은 자기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간결하게 설명했다.
"처음에 전투연구부장이 고블린 소굴 게이트가 열렸으니 가서 다 죽이고 오라 하더라고.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갔지, 그런데 들어가니까, 오크가 있었어. 적당히 눈치 봐서 도망치려는데 전투연구부장이 '튀면 뒤진다'를 아주 자세하게 풀어서 장문의 문자로 보냈더라. 오크를 죽이던지 아니면 내가 죽던지였으니까. 알았어?"
하루에게 그런 모습을 보고 외면하라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으니까, 어찌됐든 하루의 눈에 들어온 이상 같이 합석을 하던, 자신은 포장을 해서 카페를 나가던 다림이 카페에서 케이크를 즐길 수 있게 해줬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곤 이어서 들려오는 운이 좋다는 말에는 맑은 웃음소리를 내며 '그런가요?' 하고 기분 좋은 듯 가벼운 대답을 돌려준다.
" 우연히 알게 된 것도 대단한걸요. 학원섬에 일년이 넘게 있었는데도 모르는 사람인걸요, 전."
하루는 다림의 말에 눈웃음을 지어보이며 결국은 다림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로 가볍게 흘러가게 만들곤, 이내 다림이 주문한 세트가 나온 것을 보며 하루의 입에선 '와' 하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그리곤 그 아홉가지 케이크 조각을 눈에 담아두려는 듯 초롱초롱 눈을 빛내더니 히죽거리며 자신의 케이크를 작게 잘라 입에 넣는다.
" 다음번엔 저 그거 꼭 시켜서 즐겨봐야겠어요.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이 채워지는 메뉴라니... 최고네요. "
오늘 충분히 즐겁게 즐기실 수 있겠어요, 라는 말을 건내며 부드러운 시선으로 다림을 바라본다. 다림이 케이크를 즐기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물론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도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 슬쩍 눈을 피하긴 했지만. 분명 귀여운 얼굴로 힐끔힐끔 다림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소년의 삶은 언제나 단념과 함께했다. 그것은 지긋지긋한 지병이나 기벽처럼 항상 쫓아다니면서 그를 괴롭혔다. '가족이 없어서 고아원에서 지내야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런 시대인걸' '장난감을 뺏겼지만 어쩔 수 없지. 우리 고아원은 장난감이 금지인걸' '친구가 죽었지만 어쩔 수 없지. 우리 고아원은 돈이 없는걸..'
하나 둘 단념의 범위가 늘어날수록, 소년의 정신 역시 병들어갔다. '어차피 저기까지 도달하려고 발버둥처봤자 실패하겠지. 의미없는 노력인걸'
그리고 그런 모습을 안쓰럽게 여긴 고아원의 선생님은 한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것은 소년이 사는 나라에서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였다. 소년과 반대로 단념하지 않는 영웅에 대한 이야기였다. 영웅은 게이트를 닫고, 사람들을 구하고, 언제나 포기하지 않았다. 단념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에 매료된 소년은 한밤중 몰래 고아원 밖을 나와 그 영웅을 흉내내기도 해보았다.
어설픈 검술을 어설프게 만든 나무검으로 흉내냈지만 그 어느때 보다 가슴이 뛰었다. 처음으로 단념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소년은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그는 가디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심장이 터질 것 처럼 기뻤다. 왜냐면 단념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그것이 너무 기뻐서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곧 다가온 현실은 언제나 소년의 발목을 잡는 단념과 동시에 찾아왔다. 재능의 차이가...너무나 잔인했다.
자신보다 재능이 많아 보이는 이도 단념하고 마는 곳 이었다. 재능을 지닌 몇몇 소수도 영웅의 꿈을 접고마는 잔인한 곳. 소년이 들어간 학교는 그런 곳 이었다.
태어났을 때 부터 쭉 혼자였던 소년은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었다. 소년은 친구들에게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하며, 검을 들었다. 하지만 곧, 자신은 검에 재능이 없다는 현실을 마주하였다. ..소년은 단념하였다. 자신이 동경하는 영웅 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접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생이란 동화처럼 달콤하지 않기에, 검에 대한 동경을 가슴에 묻은 소년은 힐건을 들었다. 영웅에 대한 열망을 가슴에 묻은 소년은 그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좋은 사람이라면... 그 정도라면 재능이 없어도 할 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열망과 동경은 여전히 그의 가슴 한켠에 남아 뜨겁게 타올랐다. 힐건을 마치 권총처럼 쏘는 것은 아주 조금이나마 그것에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 소년은 단념했다..........
그리고 이젠, 그 좋은 사람 마저 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였고. 그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소리치는 소년에게 어쩔 수 없다고. 안타깝다고 말하며 단념을 선언하는 자는. 그 누구도 아닌 소년이 동경하던 영웅이었다.
심장이 찢어지는 기분이다. 주마등처럼 스쳐지가나는 모든 기억이 의미없이 녹아내린다. 이것도 의미없고, 저것도 의미없고, 불등하나에 의지하며 용돈을 모아 산 검성의 이야기를 읽던 시절도 의미없고, 나무를 엮은 검을 휘두르며 기뻐하던 시절도 의미없고. 뭐 어쩔 수 있나..... 단념해야지. 이건 자연재해 같은 것 이다. 태풍이나 지진에게 화를 낼 순 없지 않은가.
...단념해야지.
["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난 단지 들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으니까!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게 그런 것밖에 없는데! 내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냐고! "]
목소리가 들렸다. 하나미치야가 내 손을 잡고, 검성님을 향해 외치는 목소리는.. 너무나 절박하였다. 나는 네가 재능을 가지고 있다 여기고 거리를 유지했는데, 너는 내가 걱정되서 와주었고, 나와 시간을 보내주었고. 나를 대신해서 화를 내주고 있었다. 내가 동경하는 이 마저 단념하라고 말하는 것을 너는 화내주고 있었다.
[" 네게는 두 선택지가 있어. 하나는 지금 내 손에 죽는다. 아 물론 죽는다 하더라도 걱정하진 마. 가족들에겐 시체가 온전히 전해질거고 원한다면 신한국에 작은 작위라도 마련해주지. 겸사겸사 그 핏빛 대가리 쓴 여자도 내가 죽여주고 말야. "]
그리고 뒤 이어 찾아온 왕은 나에게 선택지를 주고 있었다. 이것은 단념의 선택지였다. 내가 할 수 없다면 그냥 이곳에서 포기하면 된다. 어찌보면 현실적이었다. 그 여왕에 의해 하나미치야도 다치지 않을 것 이고, 행여나 다른 사람이 다칠 위험도 줄어든다. 언제나 그랬던 것 처럼 단념해버리면 .......
단념하고 단념해서 목숨마저 단념해버린다면.. ..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너무나 분했다. 사실 단념하고 싶지 않았다. 영웅이 되고 싶었다. 적어도 조금이나마 욕심을 낼 수 있다면, 이딴식이 아니라 적어도 같은 풍경을 보는 자리에서 검성에게 '당신을 동경해서 가디언이 되었습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영문을 모르는 자연재해 같은 것에 의해 이런 식으로 꿈을 잃고 싶지 않았다. 재능의 벽에 막혀, 둔재의 구덩이에 떨어져, 천재들이 하늘을 나는 모습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싶진 않았다. 그렇기에.
" 할거야. ...빌어먹을 통제하면 되잖아...! 그러니까..."
자신에게 단념하라 말한 동경하는 영웅이 보는 자리에서. 자신을 위해 대신 화내주는 의지되는 친구가 보는 이곳에서. 자신에게 선택지를 주는 왕의 앞에서 나는 소리쳤다.
"이렇게 맛있는 것을 포장해도 되는데 굳이 합석을 제안해주신 것은..." 배려..라고 생각하니까요. 라는 말을 하면서 사진을 찰칵 찍지도 않고 있네요. 원래 사진을 잘 찍는 편이 아니니까 당연한 것일까? 운이 좋다는 말에 그런가요? 라는 말은 그저 넘깁니다. 다림이 생각하기에 모르고 찾은 것도 운이 좋다는 것이라 생각하는 거지요?
"다음번에 시키시면 눈으로도 그렇고 맛으로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답니다.. 선배님?" 일년을 넘게 있었다는 말에서 다림은 앞의 소녀가 자신보다 최소 한 학년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케이크를 조금 잘라서 한 입 먹으면 유명한 카페답게 달콤상큼부드러움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며 입을 즐겁게 해서 다림의 얼굴에 방글거리는 슈가하이의 미소가 지어졌겠지. 흘끔이 아니라 대놓고 봐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려나
"고향에서 지낼 때랑은 많이 다르네요.." 또래 학생들이랑 지내는 경험이 많이 없어서 그런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많아지는 게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아요.라고 혼잣말하듯 말하며 궁금한 샘플러가 있다면 조금 잘라드릴까요? 라고 넌지시 물어봅니다.
그녀는 겉으로는 냉정해보이지만...실은, 항상 신경질적이고 감정적인 면이 있었다, 현실적으로 항상 압박감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고있는 사람이 멘탈적으로 여유가 있는 경우는 흔치않으니까. 그러면 너무할 정도의 조롱이나 비난에도 반응을 하지않는 것은 어째서일까... 그건 단지 익숙해졌기 때문이겠지. 과거엔 일일히 감정적으로 대응하다가 낭패를 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타다라고 그런 일을 후회하지않고 학습하지못하는 건 아니다. 비굴하고 자신을 낮추더라도 어떻게든 화를 눌러야되는 것이 타인과의 관계다. 학교는 어른이 되기위한 과정이지만 하나의 작은 사회 생활을 배우는 것이니까, 그래서...남자의 말에 그녀는 무엇을 느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타다 호마레는 어째서 저 사람은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해온걸까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다. 아니, 열받지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자신이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의 경력도 알지못하고 현재의 위치도 알지못하는 상태에서, 나는 어떠한 행동도 섣불리 해선 안된다.
눈동자가 빠른 점멸 반응을 보이며 풀리고, 돌아오길 반복하고 있습니다. 입 주위에는 침이 흐르고, 때때로 손에 발작 반응이 보이고 있습니다. ....급한 상황입니다! 이 이상 환자를 방치하는 경우 뇌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뇌를 살폈어야 했을 문제점이었습니다!
>>463 유찬영의 눈썹이 살짝 위로 솟구칩니다. 에릭의 반말에 기분이 나빴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만약 기분이 나빴더라면 에릭은 이미 죽었을 것이 분명하니까요. 잠깐의 불안한 시간이 지나고, 유찬영은 행동을 시작합니다.
" 끄흐흐흐흐흐.. 하하하하하하하하!!!!!!!! "
그 얼굴에는 만연한 웃음이 피어오릅니다.
" 그래. 내가 그런 걸 좋아해. 사람을 죽여? 내가? 왜? 내가 왜 널 죽이겠어. 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데 뭐하러 선택지를 주겠냐는 말이잖아? 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
유찬영은 쾌활한 웃음을 터트립니다. 그런 유찬영의 반응을 보고, 에반 역시 피식 웃습니다.
" 꽤 맘에 든 모양이군요. "
그는 고개를 숙입니다.
" 먼저 사과부터 전하겠습니다. 갑작스레 홍왕.. 아니, 신 한국의 국왕이 나타나 제 말이 끊어지긴 했으나. 전 당신을 포기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
그는 품에서 작은 서책 하나를 꺼내듭니다. 책에는 '서념칠상검'이란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 재능이 없다고 하셨지만 그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은.. 꽤 많이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게는 꽤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눈을 보는 것으로, 상대의 재능을 어림잡을 수 있는 능력이지요. " " 맞아. 꽤 대단한 눈이지. 영감이 키운 제자들이 다들 한 실력 하는 이유거든. 영감의 눈이 틀리지 않으니까 말야. "
유찬영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냅니다.
" 뭐. 저 영감이 저렇게 하니까 내가 말해주지. 간단히 말하면 널 제자 삼으려고 했단 얘기야. 물론 공사다망하신 영감이 모두 알려줄 수는 없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장 스스로의 정신을 지킬 수 있는 기술' 같은 거를 전수하고 떠나려고 했겠지. "
에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긍정의 표현입니다.
" 이 영감도 솔직히 오래 살 영감은 안 돼. 오지랖이 넓은 편이거든. 그리고 내 선택지는 방금 보여줬지만 두개였어. 난 솔직히 네가 죽여달라고 했으면 진짜 죽일 생각이었거든. "
기술! 획득! 소우는 오오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회피 기동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소우의 전투방식은 근접전이니 대쉬를 사용하여 거리를 좁히는 것도 좋을 것이다. 기술은 사용하기 나름. 고개를 끄덕인 소우는 더 훈련할까 하다가 차오른 망념을 생각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의뢰..를 찾아볼까? 뭐랄까 좀, 좋은 걸로, 그러니까..
...그런걸로. 가슴 펼 수 있는 그런 거 있잖아. 훈련장을 나선 뒤 복도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칩을 조작했다.
..이 사람..알면서도 일부러 이런 말을 하는걸까? 그가 말한대로라면 나같은 사람을 본 건 한 두번이 아닐텐데, ..그저 시비를 거는거라면, 무시하고 넘어갔을텐데...
"저는 추천서를 받고 왔을 뿐이니까요."
엔마 선생님은 자신을 이곳으로 보냈다.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그리고 칸나 부장은...자신을 부원을 받아들이려 하였다.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그래. 내막이 어땠든간에 거절하고 포기하고 있었음에도 나는 이곳으로 왔고. 그것을 후회하지않으니까, ...남자가 이래라저래라할 사항은 아니잖아.
" 음, 선배인가요? 저는 성학교 소속인데, 다른 학교 분이신가요? 학교에선 한번도 뵙지 못한 얼굴인 것 같아서요. "
선배라는 말에 의아한 듯 눈을 깜빡이던 하루가 부드러운 미소를 곁들이며 물음을 건낸다. 다른 학교 학생에게 선배라는 말을 들어도 되는 것일까 싶긴 했지만, 요즘은 꽤나 자주 듣게 된 단어라 익숙해져야지 하고 마음 먹고 마는 하루였다. 물론 그 고민도, 눈 앞에서 방글거리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기뻐하는 다림의 모습에 금방 사라졌지만.
" 아, 맞아요. 저도 학원섬에 처음 왔을 때, 그 생각 했어요. 고향에 있을 때는 못 보던 것들을 많이 보기도 하고, 분위기도 다르고... 물론 어디가 좋고 나쁘다 이런 건 아니지만. 확실히 제 삶에 있어서 처음인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신기했거든요. "
다림의 첫 말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여보인 하루는 이어진 다림의 혼잣말에 잠시 물끄러미 다림을 바라본다. 그러다 넌지시 물어보는 그 물음에는 '이번에는 온전히 다 즐기시는 모습을 보고 싶으니 괜찮아요. ' 하는 상냥한 말을 돌려주곤 자신이 주문한 케이크를 한번 더 작게 잘라내어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 사람들을 만나서 교류하는게 힘드신가요? 음, 그러니까.. 그 힘든 것이 피하고 싶다는 가정인가요, 아니면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일까요? "
꿀꺽, 입에서 오물거리던 달콤한 케이크를 삼키곤 옆에 놓여있던 냅킨으로 입을 닦은 하루가 잔잔한 목소리로 물음을 던진다. 혼잣말을 지나치지 않으려는 듯.
"그래. 팔 한쪽 잘라먹을 위험 감수하면 할만했지. 그런데 영화도 아니고 현실에 외팔검객이 환영받나?"
그렇게 생각한다. 가능은 했겠지. 가능은. 하지만 가능한 것과 안전한 것은 다르다. 강찬혁이 생각하기에, 가능은 했다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왜? 다음에는 드래곤도 혼자서 잡아 족치라고 그러지? 몸이 나아져서 다시 전투연구부장이 시키는 루트를 밟게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저는 1학년인걸요?" "제노시아 소속이에요. 원래는 성학교도 생각했었는데.. 어쩌다보니 제노시아가 되어있더라고요." 아. 그렇죠. 원래는 뒷사람은 성학교를 생각했던 흔적인가.. 일년 넘게 지냈다는 건 역시 최소 2학년이니까 선배님이라면 선배님이라고 생각했어요 라는 말을 하면서 아프란시아..라는 것에 요즘 아프란시아 성학교 학생들을 많이 만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째 같은 학교 학생은 물론이고 청월 쪽도 만나보지 못하다니. 아프란시아가 역시 자유로운 걸까.... 란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학원섬에는 꽤 다양한 사람이 있더라고요." 고향과는 좀 많이 다른 느낌? 쉽게 죽어주지는 않을 것 같은 그런 느낌? 이 있더라고요. 말을 하며 조금 이상하다는 걸 모르는 건지. 온전히 즐기는 모습이라는 것에 저 또 안 권할 건데. 정말 괜찮다면 냠 하고 먹어버릴 거랍니다? 라면서 케이크를 냠. 먹습니다. 확실히 맛있어요.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버리는 것 같은 맛들. 아메리카노로 입 안을 씻어내고 다시 먹으면 맛이 선명해지는 것 같기도 한 것이. 왜 아메리카노를 세트로 해놓은 건지 알게 합니다.
"...정확하게는 좀 다르긴 한데. 사람들과 만나서 교류하는 게 일회성이 아니란 게 익숙해지지 않다.. 에 가까워요." 어쩐지 의지하고 싶어지는 선배님 아우라에 말하는 것입니다. 학원섬에서 만나는 사람..학생들은 웬만해서는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요. 라고 말합니다.
강찬혁은 일어나서 얼굴을 바닥으로 향했다. 끄윽, 끄억, 헛구역질을 하다가 양 손을 무릎에 대고 아가리를 벌렸다. 쿨럭! 쿨럭! 강찬혁의 입에서는 피가 잔뜩 흘러나왔다. 토사물 따위는 하나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핏덩어리들이 쏟아졌다. 강찬혁 스스로도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알 수 있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피를 좀 토하니 기분도 몸도 나아졌다. 그는 다시 앉아서, 졌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부연했다.
"졌죠. 오크가. 내가 졌으면 지금 여기가 아니라... 납골당에 들어갔을 거고."
강찬혁은 아픈 몸을 이끌고 자판기로 다시 가서, 달달한 음료를 뽑았다. 입안에 배인 비릿한 피맛을 조금이라도 덧씌울 수 있다면, 지금은 뭐라도 마실 수 있었다. 강찬혁은 한숨을 쉬고 물었다.
" 제노시아 학생은 처음 뵙는 것 같아요. 왠지 기쁘네요. 후후. 새로운 만남은 늘 즐거우니까요. 아, 물론 제가 2학년이지만... 학교가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편하게 대해주세요. 어려움을 느끼는 건 같은 학교 선배면 충분할테니까요. "
하루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학교를 알려준 다림에게 다정하게 말한다. 어디까지나 자신은 편안한 사람이면 했다. 누군가의 존경도, 선망도 바라지 않았으니까. 그저 또 다른 인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기에, 눈 앞의 다림도 그저 한학년 위라는 것으로 어려워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 하긴, 다양한 사람들이 잔뜩 있으니까요. 의념을 가지고, 자신의 아이덴티티로 단단하게 무장한 사람부터 그저 관망하는 사람, 활기찬 사람, 고뇌하는 사람.... 수없이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서 하루하루가 색다르죠. "
자신도 그것을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충분히 느끼고 있다는 듯, 다림 다른 것이 아니라 모두 다 그럴 것이라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을 돌려준다. 이어진 냠하고 먹어버린다는 말에는 ' 표현이 귀엽네요. 네, 냠~ 하고 드세요. ' 하는 장난스런 목소리로 답을 돌려준다. 한순간 고양이처럼 교태를 부린 말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듯 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하루는 차분한 목소리로 돌아와 있었다.
" ..음, 확실히 그런게 있죠. 학원섬에 들어온 사람들은 대부분 가디언이 되기 위해 들어온 사람들이잖아요? 처음엔 분명 살아온 환경과 다르기 때문에 어색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특별한 사람들이, 앞으로 함께 가디언이 되어 힘이 되어준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든든해요. 물론 게이트가 쉬운 곳은 아니지만, 이런 분들과 함께라면 분명 해낼 수 있을거란 생각...그런 생각을 하니까 일회성이 아닌 이 교류가 상당히 기쁘고 반가워지더라구요. "
자신의 등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꽤나 좋은 일이잖아요? , 하루는 그렇게 덧붙여 말하며 상냥하게 웃어보였다. 하루의 말은 즉, 익숙해지려면 조금은 마음을 열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은 듯 했다. 어제 만난 사람이, 그리고 오늘 만나서 마주 보고 앉은 사람이 언제 자신을 도와주고 지켜줄지 모를 일이라는 것이 가디언 지망생의 현실이기도 했기에 분명 틀린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 하지만 - 처음부터 그러지 못 한다고 좌절하거나 걱정할 필요 없어요. 처음은 누구나 서툰 법이니까요. "
강찬혁은 그렇게 물으려다가 말았다. 뭐, 사정이 있겠지. 자존심의 문제가 있었거나, 일부러 부장이 역정보를 흘려서 안심하고 가게 만들었거나. 아니면 분명히 중요한 무언가가 있었거나. 멍청하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멍청한 게 아니라 멍청한 것보다는 좀 더 말이 되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테다. 강찬혁은 그렇게 말하다가, 뭔가 중요한 걸 까먹었는지 가디언 칩이 심긴 팔을 들이민다.
"그런가요.." 어쩐지 저 자신도 같은 학교 학생을 잘 만나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듯 생각하면서 탐스럽게 올라간 딸기를 톡 건드렸다가 입 속에 넣습니다. 입 안에서 부드럽게 뭉개지며 품고 있던 즙을 내놓는 딸기가 맛있네요.
"편하게 대하라면 정말 편하게 대해버리니까요." 나름대로의 선을 정해두는 건데. 어쩐지 선배님~하고 불러보고 싶은 느낌인걸요? 라는 말을 하다가 정말 괜찮다면.. 편하게 대할 수도 있어요. 하는 다림입니다. 다림의 마이-페이스적인 그런 현실인식은 제멋대로인 걸까.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하긴. 확실히 일회성이 아니라서 조금 어색했지만 앞으로 해나갈 일들이나 배워나가는 데에 한명한명이 아쉬울 게 된다고 생각하면 친구들...이 되는 것도 괜찮겠어요." 하루의 말을 듣고 한 첫번째 말은 표정이 무표정에 가까운 그런 묘함이 있었지만, 두번째 말에서는 변해서 발랄한 미소를 지으려 했구나.
"처음부터 그러지 못한 것에 좌절하기보다는.. 바라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위험할지도. 라는 생각을 하기에 조심스러운 말이었을까? 아 맞다. 하고는 저는 기다림이라고 해요. 다림이라고 불러주셔도 좋아요. 라는 간단한 통성명을 하려 하나요?
피를 토한다는 건 내장 쪽에서 출혈이 일어났단 것 아닐까. 나이젤은 아까 뭔가 마시고 있던 찬혁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것의 영향도 있을까? 함부로 건들지 못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이젤은 눈에 좋은 광경은 아닌 그 모습을 보며 혐오감을 느끼고, 저걸 청소하는 사람은 힘들겠네요.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을 돌렸다.
"납골당에도 못 들어갔을 수도 있죠. 속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뭔가 더 드셔도 괜찮은 건가요?"
원인이란 법은 없지만 그 출혈쇼를 조금도 더 보고 싶지 않았기에(속 안 좋아진다) 나이젤은 음료수를 마시려는 찬혁에게 물었다. 제지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지만 걱정하는 것으로 보이기 쉬웠을까.
"택시인가요... 잠시만요."
작은 섬 안에서 이동수단을 부를 일이 어딨겠는가. 나이젤은 칩의 번호 목록들을 뒤지다가 겨우 이거다 싶은 번호를 찾았다. 번호도 있으니 굳이 숫자를 부르기보단 보내는 게 좋겠지. 나이젤은 문자로 번호를 전송했다.
강찬혁은 받은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델라메인 종합 택시 서비스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강찬혁이 전화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하이톤이지만 무감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 이야기에 바로 대답했다.
"델라메인 양반... 아프란시아 성학교 앞으로 콜택시 한대 보내줍쇼..."
강찬혁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제 곧 택시가 올 거다. 병원으로 가면 되겠지. 강찬혁은 그렇게 생각하고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음료수를 마시자 다시 정신을 차렸다. 강찬혁은 웃었다. 이렇게 심하게 두들겨맞은 때가 세상에 또 있던가? 총 맞아서 죽을 뻔했을 때 빼면 없다. 게다가, 이렇게 심하게 다쳐놓고서는 그냥 앉아서 여유롭게 이야기나 나눈다니. 강찬혁은 그러다가, 뭔가 잊은 게 있는 거 같아서... 갑자기 떠올리고는 감사부터 전했다.
"그 전에, 제 야구 방망이에 요술 부려두셨죠? 고마워요. 뭐하는 요술인지는 몰라도, 그거 덕분에 산 거 같아요. 오크 골통을 두들겨패는데, 옛날에 그 방망이였으면 방망이가 휘어버렸을 거에요."
하루는 다림의 말에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뵈며 말한다. 반말을 하더라도 아마 하루는 기분 나빠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어찌됐든 편하게 대하는 것이, 다림에게 편안함으로 다가와 쉬는 시간처럼 느껴진다면 하루는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애초에, 호칭이라던지 나이로 나눈다거나 하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그녀였기에 가능한 면모이기도 했지만.
" 물론 이건 제 생각이니까, 이걸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은 아니에요.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자신의 마음에 달렸고, 자신의 생각에 결정되는 법이니까요. 그냥 가벼운 팁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생각해보시면 좋을거에요. "
처음에는 무표정하다, 발랄한 미소로 바뀌어가는 다림의 표정을 보며 눈웃음을 짓고는 가볍게 덧붙이듯 말한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하루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눈 앞의 다림이 선택을 하는데에 있어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 정도로 받아들여주는 것이면 충분했다.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선 그 선택이 자신의 생각이여야 했으니까. 그래도 눈 앞에서 발랄한 미소를 짓는 것은 보기 좋았기에, 하루도 한결 밝아진 미소를 답례삼아 돌려주었다.
강찬혁은 그렇게 말했다. 가디언 각성 직후에 쓰러져서 본 거기에서, 다른 건 기억나지 않지만 그 깡패멋쟁이라는 말만큼 기억에 남았다. 일제강점기에 지나가던 일본 순사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고 때려죽이고서는 자랑스럽다고 스스로를 여겼던 독립투사도 깡패멋쟁이고, 기차를 타고 지나가던 일본 고관이 꼴보기 싫어 짱돌을 던진 사람도 깡패 멋쟁이라지. 강찬혁은 슬슬 긍정적인 이명이 하나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강찬혁은 자신을 깡패 멋쟁이라 지칭하기로 했다.
"선택이란 언제나..." 애매모호하네요. 라는 말을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말하지만,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자신에게 이득이 되었지만 그것이 타자에게 향하는 일은 선택하지 않고선 없었으므로. 그것은 지금은 묻어두고, 호칭에 대해서나 고민하는 게 더 생산적이리라.
"하루씨라고 부른다거나. 여러가지로 부를 수도 있겠네요." 하루 선배~ 가 될지도 모르죠? 라는 장난스러운 호칭을 입에 담으며 기분좋은 듯한 발그레해짐에 자신도 기분이 좋아지는 듯한 기분일까? 편한대로 대해달라는 것이 영향을 미친 것일지도 모른다.
"또다시 일회성이 아닌 인연이 쌓여가네요." 분명 신이 내린 것이라는 말에는 신에 대한 큰 믿음은 없었기에 큰 반응은 없었지만. 상대방이 믿는 것에 태클을 걸거나 조목조목 말을 거는 정도의 인성은 아닙니다. 그정도로 썩은 인성은 아니라구. 확실히 맛있는 샘플러는 의외로 9종류를 다 먹으면 배가 많이 부르는 타입일지도. 케이크 조각 최소 2개정도는 먹은 느낌일 거야.
진담이었다. 의념기의 효과는 영구적이지 않았고, 나이젤이 한 일은 고작 한화 불빠따를 편 다음 약간의 개조를 도와준 것뿐이었다. 나이젤이 완벽하진 않다보니 조금 달라졌을 수는 있지만, 그 정도는 수리하면서 감수해야 할 약간의 변화였다. 진짜 영향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나이젤은 그런 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감사인사는 됐어요. 다시 휘지 않은 건... 다행이네요. 하지만 너무 험하게 쓰면 자주 수리해야 하니까 조심하세요."
이 다음에는 수리비를 받아야 하니까. 나이젤은 그리 비싼 값을 받진 않지만, 돈은 아끼는 쪽이 좋지 않을까.
"그러면, 저는 먼저 가볼게요."
다시 종이봉투 손잡이를 양손으로 쥐면서 나이젤이 일어났다. 우연히 일어난 만남이었으니 빨리 끝나는 것도 필연이지 않을까.
"하하. 맡은 일만 한다. 그걸 못 해서 이 세상이 얼마나 개판이 났는지를 생각해보면, 그것이야말로 제일 좋은 미덕이에요."
마침 강찬혁의 앞에 콜택시가 도착했다. 강찬혁도 이제 병원으로 떠날 시간이었다. 강찬혁은 웃으면서 손을 저었다. 그 덕분에, 죽을 수도 있었던 곳에서 살아나왔으리라. 강찬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강찬혁은 택시 문을 열고, 스스로를 던지듯 콜택시의 뒷자리칸에 누웠다. 델라메인 콜택시의 AI는 강찬혁의 상태를 보더니, 군말없이 "가장 가까운 병원을 목적지로 설정하였습니다. 예상 도착시간: 5분" 이라는 말을 남기고 출발했다.
" 선택이란 건, 원래 그런 법이니까요. 단번에 고를 수 있을 때도, 심사숙고를 해야할 때도 있죠. "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하루는 그렇게 말하며 눈웃음을 지어보인다. 고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기에 전혀 아쉬워하거나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답은 언제든 내리면 되는 것일뿐, 두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있을 때, 꼭 내려야 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 왠지 하루 선배~ 라고 부르는 어조가 귀엽긴 하네요. 물론 하루씨라는 것도 매력이 있긴 하지만요. "
둘 다 잘 어울려요, 하루는 발그레 웃어보이는 다림에게 맑은 웃음소리와 함께 답을 돌려준다. 호칭이 무엇이 중요할까, 그저 호칭이 생겨나면서 좀 더 두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 좋은 것이니까. 아무튼 다림의 분위기가 한결 편해진 것처럼 느껴지자 하루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따스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 이 그릇 위의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다림양만의 인연이 차곡차곡 쌓여갈거에요. 그 중의 하나가 저라는 것이 기쁘네요, 다림양. "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다 천천히 테이블 위로 손을 뻗는다. 포크를 쥐지 않은 다림의 손을 자그맣고 새하얀, 그리고 부드러운 두 손으로 감싸쥐려 하며 천천히 눈을 감는다.
" 앞으로도 다림양이 나아가는 길 앞에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어요. 그걸 위해서 아주 잠시, 제가 믿는 신께 기도를 드릴게요. "
"어쩐지 어른같은 말을 하는 선배님이네요" 그게 꺼려진다거나 멀어보이는 건 아니지만, 많은 걸 경험한 것 같은 관록..같다고 생각합니다. 다림 스스로가 많은 것을 경험했냐. 라면 그건 아니기에.
"귀여운 어조인가요?" 놀리듯이 귀여운 어조라는 말을 하네요? 얖으로 부르는 호칭이 하루 선배~ 가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말이다. 한결 편안해지는 것은 매력 A의 위력일까. 이 카페가 의념이 요리쪽이라는 가정하에 일일까(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정말 농담이다) 그릇 위의크레이프처럼 쌓여간다는 말에는 그렇다면 그렇게 되겠네요. 라며 상상한 것은 공룡화삭이 있는 퇴적층이라니. 낭만이 없어. 낭만이..
"저는.. 잘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기도를 드린다는 것을 보면서 그렇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눈을 감은 하루를 보면서 짓는 표정은 언제나처럼 생글생글한 표정이었을까. 아니면 약간 ㅇㅁㅇ스러운 미약한 당황의 표정일까. 그래도 공통점이라면 둘 다 호의에 기반한 것일 거라는 사실이다. 기도를 드리는 동안에는 조심스러운 행동을 할까? 아마..가만히 있을 것이 최선이겠지.
조금은 들떴을지도, 하루는 그렇게 덧붙여 말하며 눈웃음을 지어보인다. 조금은 말을 아낄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녀의 조심스러운 성격 때문이었지만.
" 네, 귀여운 어조요. 방금 전에 귀여웠어요. "
하루는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보이 방긋 미소를 더한다. 분명 다른 사람들도 아까전의 다림을 보았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라는 듯 당당하기 그지 없는 말이었다. 물론 자신의 비유를 들은 다림이 공룡화석이 들어있는 퇴적층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 하는 하루였지만.
" 분명 그럴거에요. 다림 양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
기도를 마무리 한 것인지 천천히 손을 떼어낸 하루가 눈을 뜨곤 금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다림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리곤 이내 기분 좋은 미소를 띄며 포크를 집어든 하루는 조금은 속도를 올려 케이크를 먹기 시작한다. 어느샌가 하루의 그릇에 놓인 케이크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었고, 어느덧 깔끔해진 그릇만이 놓여지게 되었을 때 하루는 냅킨으로 입가를 닦곤 일어설 준비를 한다.
" 다림양을 만난 덕분에, 케이크도, 대화도 달콤하게 즐길 수 있어서 기뻤어요. 슬슬 저녁 기도를 드리러 가야해서 지금은 일어나야 하지만... 다음에 또 만날 수 있겠죠? "
연락처 교환을 잊지 말자는 듯 칩이 심어진 가냘프고 새하얀 팔을 내밀며 방긋 미소를 지어보인다.
"물론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어른스러운 말은 저도 모르게 받아들여지는 느낌인걸요? 확실히 그렇다는 어조입니다.
"귀엽다니. 굉장히 드물게 들은.. 말인데.. 말이죠?" "어린 시절 이후론 들어본 적 없는 느낌?" 다림이가 귀여운 걸까.. 뒤의 참치는 좀 고민했지만 생각은 그만두기로 했다! 귀엽다고 하면 귀여운 거지!(?) 하지만 공룡화석이 들어있는 퇴적층은 잘만 생각해보면 초콜릿 크레이프 케이크랑 좀 닮지 않았을까.. 아니 사실 그냥 케이크가 더 어울릴지도 몰라..? 두께감을 보면.. 그러고보니 마트에서 초코케이크를 봤는데 진짜 맛있어보였는데..(삼천포를 서울길로 끌어들이자) 하루의 케이크가 거의 빈 것을 볼 때. 곧 일어나시려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실제로 일어나려 할 때에는 예상치 못했단 생각을 했겠지만.
"그럼요.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답니다." 저는 바라는 걸 손에 넣게 되고 마는 족속이니까요. 라는 농담같지만 진담인 말을 합니다. 저녁기도.. 신실한 사람이구나. 라는 감상은 있었지만. 내색하진 않으며 내민 팔에 대답하듯 팔을 내밀고 연락처를 교환한 뒤. 떠나가는 하루를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다시 샘플러를 해치워야겠지.
문이 열렸다. 세상이 바뀌었다. 아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 날과 다르지 않은 붉은 하늘이었다. 아이는 색맹이었다. 그것도 가장 특이하다는 붉은 색만 볼 수 있는 적색색맹말이다. 거기에서 나아가 아이는 모든 색을 붉은 색으로만 볼 수 있었다. 먹는 음식도, 보는 무언가도, 심지어 자기 자신도 붉은 색이었다. 그래서 아이는 색을 몰랐다. 아이에게 있어 색이란 붉은 색의 명암 차이였다. 아이는 숨을 내뱉었다. 입에선 새빨간 연기가 내뱉어졌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었을까. 아이의 감수성? 아니면 감정?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면 이미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아이는 자라나 어른이 되었다. 진한 붉은 연지를 입술에 바르고, 방긋방긋 웃으며 삶을 버리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바로 아이의 앞에서 그 지독한 문이 열렸으니까 말이다. 아이는 입을 방긋거렸다. 문에서는 수없는 존재들이 걸어나왔다. 강철의 군단이 세상을 휩쓰는 동안에도 아이는 누구도 건들지 않았다. 마치 일부러 무시하기라도 하듯 문 너머의 존재들은 아이를 보고도, 지나쳐 넘어갔다. 아이는 의문을 가지기도 전에 도망쳤다. 더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 희망을 무시하기라도 하듯 누군가가 아이의 뒤에서 둔기를 휘둘렀다. 아이는 기절했다. 눈을 떴을 때 아이는 두 손발이 묶인 채였다. 꼼꼼히 묶여 풀리지 않는 그것에 체념한 채,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대신 소리를 들었다.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피려는 행위였다.
" 저건 팔아 넘기려고 그러죠? "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당히 들뜬 듯한 목소리였다. 꽤나 목청이 큰지 이 주위에 목소리가 울렸다.
" 그래. "
말을 취소해야했다. 그 뒤에 따라오는 목소리도 울렸다.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이 곳의 풍경은 점점 어둠에 익숙해지는 곳의 풍경에 따라 익숙해졌다. 낡은 컨테이너를 가정용으로 개조한 것 같은 풍경이었다. 아이는 조소를 지었다. 이제야 바닥에서 벗어나나 했는데, 이제는 컨테이너에 갖히는 운명이라. 하며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 날, 아이의 꽃이 꺾였다. 그 뒤로도 아이의 꽃은 찢겨지고, 밟히고, 부서졌다. 붉은 세상 속에서 붉게 피어난 자신의 탓이라고 아이는, 아이는 이해하려 했다. 그렇게 부러져 꺾인 뒤에야 아이는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버린 그것은 이제 우는 법도, 감정을 표현하는 법도 잊어버렸다. 단지 몇 푼 되지도 않을 돈에 팔려버린 자신의 가치에 따른 이름을 가졌을 뿐이다. 물건이라는 이름 말이다. 게이트가 열리고 인간은 물건이 되었다. 자신도 거기서 벗어나지 않았을 뿐이다. 물건은 그저 휘둘렸다. 물건처럼, 물건답게, 휘둘리고, 사용되며, 마침내 부서지기 직전이 되어서야 버려졌다. 하지만 그런 물건을 주운 누군가가 있었다.
" 괜찮나요? "
그는 물건에게 처음으로 '상태'에 대해 물어봤다. 고개를 갸웃거린 물건의 상태를 살피고 상처를 치료해주고, 붕대를 감아주었다.
" 배가 고프진 않나요? "
더러운 빵으로 연명하던 물건에게 처음으로 먹을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비록 여러 재료들을 모아 만든 스프였지만 수 년만에 먹은 제대로 된 음식에 맛을 느끼기도 전에 마셔버린 물건에게 그는 자신의 몫을 더 나누어주었다. 때때로 물건은 원래 하던 것처럼 스스로 휘둘려지길 바랬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물건을 잡지 않았다. 다만 거부하고, 손을 잡아주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물건이 놀랐던 것은 그때였다.
" 당신의 이름은 뭔가요? "
이름? 이름이 무엇인지 물건은 몰랐다. 물건의 호칭은 아이였고, 꼬마였고, 꽃이었고, 물건이었다. 물건은 그 단어들을 나열했다. 아이, 꼬마, 꽃, 물건. 그러자 남자는 그 단어들을 듣고 방긋 미소를 지었다.
" 그럼 당신의 이름을 제가 지어주어도 괜찮을까요? "
물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라고 부르더라도 자신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자신은 아이니까. 아이는 어른이 시키는 것을 따라야 했으니까. 꼬마니까. 꼬마는 말을 잘 들어야 했으니까. 꽃이니까. 꽃은 누군가가 부르기에 따라 이름이 바뀌었으니까. 물건이었으니까. 물건은 정해진대로 불려야 했으니까.
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한 꽃이 꺾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 저 다음에 소녀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해보면, 수사적으로 뭘 표현했는지 감은 잡히네요. 직접적으로 말하는 건 불가하겠습니다만. 세상이 불쾌하게 느껴짐과 동시에, 소녀가 겪은 일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1. 세상 무너지던 시기에 북한. 그것도 탄광에서 태어난 정치범 출신임. 2. 그 와중에 피난민 행렬에서 팔리기 위해 납치되듯 한국으로 끌려옴. 그런데 지진나서 혼자 격리됨 3. 마트에서 혼자 격리된 상황에서 5년동안 혼자 버팀. 그 과정에서 게이트가 열러 죽을 뻔 하거나 죽는 사람들을 틈으로 계속 지켜봄. 4. 어찌저찌 친해진 사람은 게이트가 열림과 동시에 두조각나버림. 그 과정에서 각성했지만 의념 속성의 문제로 크게 지고 죽을뻔함. 겨우 살아남음. 5. 그 과정에서 의념을 각성했단 사실이 밝혀지면서 의념 중화제의 재료로 구름 이제 겨우 인생사 10% 얘기함
6. 의념 중화제로 사실상 매번 빈혈상태로 살던 도중 작업장에 게이트가 열림. 게이트에서 나온 존재가 인간에게 호의적인 개체였음. 7. 은 개뿔 이제 의념 연구재료로 굴려짐. 그 뒤에 죽을 뻔 하던 도중 의념 속성이 각성하여 겨우 해치움 8. 해치우고 나니까 이제 게이트 속의 존재들에게 노려지기 시작함 9. 겨우겨우 살아남으니 이젠 사람들에게 휘둘리기 시작함. 10. 휘둘리며 게이트를 막아도 사람들은 잘 공간도 주지 않음. 그러면서 인간 혐오를 가지기 시작. 11. 이 시기에 유찬영과 서유하가 만남. 이미 서유하는 당시에도 대마법사로 유명했음. 12. 그런데 어림도 없지ㅋㅋ 서유하는 게이트가 열리자 공방을 버리고 타 지역으로 도망감. 지키던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도 유찬영은 발악한 끝에 마을을 지킴 13. 그러니까 이제 사람들이 유찬영보고 너때문에 마을이 이꼴이 났다고 욕함. 쫓겨남 14. 새로운 마을에서 평범한 전쟁 고아인 척을 함. 어느정도 호감을 가진 여자아이가 생김. 그런데 의념 각성자에게 납치되어 죽은 모습을 봄. 15. 결국 의념을 사용하여 각성자들을 모두 쳐죽였지만 여자아이의 부모는 유찬영이 힘을 숨긴 탓에 여자아이가 죽었다며 돌을 던짐. 돌을 맞으면서 유찬영은 도망감 16. 큰 게이트가 열려 실력을 숨긴 채 게이트를 클로징함. 사람들에게 어느정도 이름이 유명해지자 의념 중화제로 쓰던 사람들이 유찬영의 존재를 까발림. 또 사람들에 휘둘려 노예짓을 할뻔함
부산에 대해 영웅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웅들 중 하나이자, 부산의 등대라는 이명을 가진 영웅 이현은 부산 해운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웅입니다. 170을 넘는 큰 키와 연노란빛을 띄는 숏컷. 하얀 코트를 걸치고 항상 전선에 서는 이현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가디언을 희망하는 아이들도 있죠. (이 이후로는 캡틴용 설정이라 안됨!)
가치를 재는 것을 어려워 하기 시작한 것이 얼마나 되었더라, 아마 의념을 각성하기 전까지는 무언가에 가치를 두길 좋아했던 적도 있었다. 그 시절에는 물건에 가치를 매겨 중요도를 달리 하곤 했었다. 이 물건이 있으면 내가 행복할 수 있다거나 하면서 말이다. 준은 자신의 모자를 만지작거리며 허공에 떠다니는 정보들을 읽어내기 시작했다. 흐르는 의념의 형태나, 떠다니고 있는 의념의 잔재들에서 의념 각성자에 대한 정보를 읽곤 환경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남들이 보면 평범한 풍경일 뿐인 장소에서 준은 정보를 조합하고, 유추하고, 기억을 읽어냈다. 그리고 웃었다.
" 뭐야. 드디어 미친 거야? "
옆에서 준을 바라보던 이현은 질린다는 듯한 표정으로 준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당연할 반응이었다. 그는 가만히 의념의 흐름을 읽고, 주위 풍경을 바라보더니 미친 사람이 하듯 갑작스럽게 웃음을 터트렸으니까 말이다. 준은 그것을 이해했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타인도 볼 수 있다면 아마, 이 정보의 바다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단 것을 알기에 이현의 웃음을 준은 이해했다.
" 너무 웃겨서 말이다. " " 뭐가? " " 이 게이트를 만든 녀석들 말야. "
준은 게이트의 한 켠에 있던 바위를 발로 툭 차버렸다. 바위는 그 형태에 어울리지 않게 허무하게 밀려나버렸다. 물론 가디언. 그것도 최고등급으로 평가받는 가디언들이라면 바위를 차는 것 만으로 가루로 만들 수 있으니 별로 특별한 장면은 아니었다. 다만 이상한 점을 말하자면, 바위가 밀려났단 것이다. 아무리 서포터라 한들 미야모토 준은 최상위의 가디언이었다. 그것도 유찬영의 수제자 소리를 들을 정도의 가디언. 이현은 그 장면을 보고 나서야 드디어 준이 말하는 이야기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소름이 돋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UGN이 이번 오세아니아의 던전을 공략할 파트너로 연결해주었기에 이현은 미야모토 준의 파트너가 되었을 뿐이었기에 큰 관심도 없었다. 영웅이니 유명함이야 신 한국에선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었고 부산에는 그녀의 이름을 따서 만든 길도 있었다. 그렇기에 달라봐야 별로 다를 것이 있냐고 생각했는데, 틀려버리고 만 것이다.
" 하.. 이거. "
이현이 머리를 헝클이며 스트레스를 표현했다. 아마 그녀의 지식은 슬슬 이 상황에 대한 지식으로 혼란스러울 것이 분명했다. 답안지를 눈 앞에 두고 있다면 어떤 공식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알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 진짜 개같은 게이트 맞잖아? "
이 게이트는 수많은 악의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의 발을 흐트리는 것은 기본이었고, 방금처럼 평범한 풍경 속에 진실을 숨겨두거나, 아니면 막힌 길 앞에서 뚫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왔던 길을 돌아가야먄 진짜 길이 나온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게이트 '로키의 장난감 미로'. 뉴질랜드 웰링턴 중앙에 대놓고 생겨난 이 대형 게이트는 수많은 가디언과 헌터들을 잡아먹었다. 의념 파동은 하급도 아니고, 안개 수준의 게이트였지만 그럼에도 많은 가디언과 헌터가 이 게이트 안에서 죽어나갔다. 결국 위험감을 느낀 UGN에서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신 한국과 영국, 일본에 요청하여 각지에서 '유명한' 가디언들을 하나씩 강제로 착출시켰으니 말이다.
" 지금도 실시간으로 의념 파장이 바뀌고 있군. 이 안에선 말 그대로 공격의 좌표를 잡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수준이겠어. " " 그래서 제대로 된 길은 어딘데. " " 왼쪽으로 13미터 앞 37도 위. "
그리고 UGN은 이 게이트를 가장 완벽히 클리어 가능할 사람들로 파티를 꾸렸다. '셜록 홈즈' 미야모토 준. '부산의 등대' 이 현 '황야' 게일 트라드넌. 이현은 자신의 손을 들어올렸다. 대놓고 좌표를 알려주었는데 그걸 틀리는 게 더 힘들 것이다. 정확한 위치에 그녀의 의념에 의해 게이트가 천천히 구겨졌다. 주위의 풍경이 완전히 변한 뒤 이현과 미야모토 준은 자신들을 향해 도끼를 들고 있는 가면 쓴 무언가를 발견했다. 음속을 아득히 넘을 듯한 속도로 무언가의 목을 움켜쥔 이현은 미야모토를 바라보고 고개를 까딱였다.
공통분모를 가진 이야기가 나오자 이현은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이 분위기가 꽤나 맘에 들지 않았던 탓이었다. 이현은 성격대로 화끈하고, 거친 면이 있었다. 그렇기에 남들과 서스럼없이 다가가길 좋아했다. 하지만 UGN이 맺어준 파티의 인물들은 서로서로가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성격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현도 처음에는 이런 이들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먼저 말을 걸어보기도 했고 초창기 게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것들은 의례적인 답변들 뿐이었다. 아, 어, 그래 같이 감정 없는 대답들 말이다. 그런 분위기에 내심 질렸던 차에 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갑갑한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 우리 딸냄이 얼마나 예쁜데. 성격은 날 닮았지 외모도 눈은 날 닮았지. 근데 키는 누굴 닮아서 그리 작은지 모르겠단 말이야? 하지만 가끔 키가 컸으면 하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남편하고 얼마나 마음이 속상했는지 모르겠어. " " 확실히. 윤지아의 키는 작긴 했지. 하지만 그녀는 랜스 포지션이기에 키는 별로 제약이 되지 않아보였다만. " " 우리 딸이 랜스로 갔어? 의외네. 하긴. 남편이 앉혀놓고 하루종일 넌 성학교로 가는 게 좋아. 엄마아빠 이명도 신경 안 쓰고 편하게 너 하고 싶은 공부 하면서 크는 게 좋다고 몇 시간이나 얘기했다니까? " " 확실히. 청월의 수업 방식을 따라가기엔 그녀는 좀 힘들겠더군. 성격은 쾌활하지만 그만큼 참을성이 조금 적어보였으니 말야. " " 그래도 역시 엄마는 청월고등학교가 좋지 않았을까 싶었지.. 청월이면 아는 사람도 많고 다들 어릴 적부터 지아를 봐왔으니까 지아랑 놀아주기도 좋았을텐데. "
그들도 별로 바쁘지 않은 사람들은 아닌데 말야. 하고 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 뭐. 이번 기에는 유난히 특이한 학생들이 많이 보이긴 하더군. " " 그거 얘기해도 되는거야? 아무리 그래도 난 신 한국의 가디언이야. 내가 먼저 접근해서 빼가려고 하면 어쩌려고? " " 그거 이상하군. 신 한국은 이전 성학교 학생회장을 영입하는 것에 실패하지 않았던가? " " 그건.. " " 물론 외무차관보가 실수한 것도 있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말일세. " " 하.. "
답답한 일임을 기억하는지 이현의 몸이 살짝 떨렸다.
" 그래서 얘기나 좀 해줘. 이번에 '셜록 홈즈'의 눈을 받은 학생들은 어떤 녀석들이야? "
준은 피식 웃으면서 자신의 수첩을 열었다.
" 가장 간단히는 당신 딸도 내 눈길에 띈 학생 중 하나지. 꽤 뛰어난 재능을 보유한 것 같았거든. " " 생각하는 거는? " " 충분히 가르치면 신속 SS도 불가능하지 않을 정도. " " 역시 지아야! 그런 부분은 자기를 쏙 빼닮았다니까? "
역시 딸바보는 어쩔 수 없는 건가. 준은 그 미소가 웃기면서도, 내심 부럽기도 했다.
" 외에 눈에 띈 학생이라면 타다 호마레. 이 녀석도 있군. " " 걘 왜? " " 글쌔. 신 한국쪽 데이터라 나보단 그쪽이 잘 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 " 잘 모르겠어서? " " .... 뭐. 말해도 상관 없겠지. 내가 생각하기에는 최대까지 개화한다면 무기술 SS를 노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깨달음이 있다면 검성의 영역이라는 SSS도 가능할지도 모르지. " " 아마 그럼 마도일본에서 노리겠네. 아마도? " " 그렇지. " " 다음은.. 강찬혁. " " 신 한국의 이름이 꽤 많이 적혀있네? "
이현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담겼다. 그도 어쩔 수 없는 신 한국의 귀족이었었다. 재능 있는 후배들의 등장은 이현으로썬 국력의 상승과 관련이 있었으니 당연했다.
" 이쪽은 솔직히 조금 특이해.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 " 뭔데? " " .. 건강 능력치의 최대치가 SSS로 보이더군. "
이현은 꽤 놀란 눈을 지었다.
" 그거.. " " 그래. 아마 이 정보를 러시아가 먼저 접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포섭하려고 할지도 모르지. 이름도 그럴싸하게 바꿔서 말이야. 게르찬혜프 비토보르비츠 식으로. 예카르의 숨겨진 아들. 정도로 꾸며댈 수 있겠지. "
준은 머리카락을 슬쩍 만지다가 어느 한 방향을 바라보았다. 단지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을 뿐인데도 일렁이던 공간 속에서 붉은 피가 떨어졌다.
" 아마 우리들의 '즐거운' 이야기에 적들도 반응을 한 듯 싶군. " " 아.. 어쩔 수 없네. "
이현은 주먹을 맞부딪히며 자세를 잡았다.
" 이깟 게이트. 빨리 다 쓸어버리고 가야겠어. 영웅절은 가족끼리 보내는 게 맞잖아? " " 부디.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군. "
이현이 질주함과 동시에 준은 입술을 한껏 끌어올렸다.
" 유난히 이번 년은 즐거울지도 모르겠어. "
재능 넘치는 가디언의 등장은 그로서도 환영할 일이었다. 어쩌면 그들 중. 지금의 영웅들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들이 생길지도 몰랐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