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 선배인가요? 저는 성학교 소속인데, 다른 학교 분이신가요? 학교에선 한번도 뵙지 못한 얼굴인 것 같아서요. "
선배라는 말에 의아한 듯 눈을 깜빡이던 하루가 부드러운 미소를 곁들이며 물음을 건낸다. 다른 학교 학생에게 선배라는 말을 들어도 되는 것일까 싶긴 했지만, 요즘은 꽤나 자주 듣게 된 단어라 익숙해져야지 하고 마음 먹고 마는 하루였다. 물론 그 고민도, 눈 앞에서 방글거리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기뻐하는 다림의 모습에 금방 사라졌지만.
" 아, 맞아요. 저도 학원섬에 처음 왔을 때, 그 생각 했어요. 고향에 있을 때는 못 보던 것들을 많이 보기도 하고, 분위기도 다르고... 물론 어디가 좋고 나쁘다 이런 건 아니지만. 확실히 제 삶에 있어서 처음인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신기했거든요. "
다림의 첫 말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여보인 하루는 이어진 다림의 혼잣말에 잠시 물끄러미 다림을 바라본다. 그러다 넌지시 물어보는 그 물음에는 '이번에는 온전히 다 즐기시는 모습을 보고 싶으니 괜찮아요. ' 하는 상냥한 말을 돌려주곤 자신이 주문한 케이크를 한번 더 작게 잘라내어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 사람들을 만나서 교류하는게 힘드신가요? 음, 그러니까.. 그 힘든 것이 피하고 싶다는 가정인가요, 아니면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일까요? "
꿀꺽, 입에서 오물거리던 달콤한 케이크를 삼키곤 옆에 놓여있던 냅킨으로 입을 닦은 하루가 잔잔한 목소리로 물음을 던진다. 혼잣말을 지나치지 않으려는 듯.
"그래. 팔 한쪽 잘라먹을 위험 감수하면 할만했지. 그런데 영화도 아니고 현실에 외팔검객이 환영받나?"
그렇게 생각한다. 가능은 했겠지. 가능은. 하지만 가능한 것과 안전한 것은 다르다. 강찬혁이 생각하기에, 가능은 했다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왜? 다음에는 드래곤도 혼자서 잡아 족치라고 그러지? 몸이 나아져서 다시 전투연구부장이 시키는 루트를 밟게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저는 1학년인걸요?" "제노시아 소속이에요. 원래는 성학교도 생각했었는데.. 어쩌다보니 제노시아가 되어있더라고요." 아. 그렇죠. 원래는 뒷사람은 성학교를 생각했던 흔적인가.. 일년 넘게 지냈다는 건 역시 최소 2학년이니까 선배님이라면 선배님이라고 생각했어요 라는 말을 하면서 아프란시아..라는 것에 요즘 아프란시아 성학교 학생들을 많이 만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째 같은 학교 학생은 물론이고 청월 쪽도 만나보지 못하다니. 아프란시아가 역시 자유로운 걸까.... 란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학원섬에는 꽤 다양한 사람이 있더라고요." 고향과는 좀 많이 다른 느낌? 쉽게 죽어주지는 않을 것 같은 그런 느낌? 이 있더라고요. 말을 하며 조금 이상하다는 걸 모르는 건지. 온전히 즐기는 모습이라는 것에 저 또 안 권할 건데. 정말 괜찮다면 냠 하고 먹어버릴 거랍니다? 라면서 케이크를 냠. 먹습니다. 확실히 맛있어요.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버리는 것 같은 맛들. 아메리카노로 입 안을 씻어내고 다시 먹으면 맛이 선명해지는 것 같기도 한 것이. 왜 아메리카노를 세트로 해놓은 건지 알게 합니다.
"...정확하게는 좀 다르긴 한데. 사람들과 만나서 교류하는 게 일회성이 아니란 게 익숙해지지 않다.. 에 가까워요." 어쩐지 의지하고 싶어지는 선배님 아우라에 말하는 것입니다. 학원섬에서 만나는 사람..학생들은 웬만해서는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요. 라고 말합니다.
강찬혁은 일어나서 얼굴을 바닥으로 향했다. 끄윽, 끄억, 헛구역질을 하다가 양 손을 무릎에 대고 아가리를 벌렸다. 쿨럭! 쿨럭! 강찬혁의 입에서는 피가 잔뜩 흘러나왔다. 토사물 따위는 하나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핏덩어리들이 쏟아졌다. 강찬혁 스스로도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알 수 있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피를 좀 토하니 기분도 몸도 나아졌다. 그는 다시 앉아서, 졌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부연했다.
"졌죠. 오크가. 내가 졌으면 지금 여기가 아니라... 납골당에 들어갔을 거고."
강찬혁은 아픈 몸을 이끌고 자판기로 다시 가서, 달달한 음료를 뽑았다. 입안에 배인 비릿한 피맛을 조금이라도 덧씌울 수 있다면, 지금은 뭐라도 마실 수 있었다. 강찬혁은 한숨을 쉬고 물었다.
" 제노시아 학생은 처음 뵙는 것 같아요. 왠지 기쁘네요. 후후. 새로운 만남은 늘 즐거우니까요. 아, 물론 제가 2학년이지만... 학교가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편하게 대해주세요. 어려움을 느끼는 건 같은 학교 선배면 충분할테니까요. "
하루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학교를 알려준 다림에게 다정하게 말한다. 어디까지나 자신은 편안한 사람이면 했다. 누군가의 존경도, 선망도 바라지 않았으니까. 그저 또 다른 인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기에, 눈 앞의 다림도 그저 한학년 위라는 것으로 어려워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 하긴, 다양한 사람들이 잔뜩 있으니까요. 의념을 가지고, 자신의 아이덴티티로 단단하게 무장한 사람부터 그저 관망하는 사람, 활기찬 사람, 고뇌하는 사람.... 수없이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서 하루하루가 색다르죠. "
자신도 그것을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충분히 느끼고 있다는 듯, 다림 다른 것이 아니라 모두 다 그럴 것이라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을 돌려준다. 이어진 냠하고 먹어버린다는 말에는 ' 표현이 귀엽네요. 네, 냠~ 하고 드세요. ' 하는 장난스런 목소리로 답을 돌려준다. 한순간 고양이처럼 교태를 부린 말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듯 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하루는 차분한 목소리로 돌아와 있었다.
" ..음, 확실히 그런게 있죠. 학원섬에 들어온 사람들은 대부분 가디언이 되기 위해 들어온 사람들이잖아요? 처음엔 분명 살아온 환경과 다르기 때문에 어색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특별한 사람들이, 앞으로 함께 가디언이 되어 힘이 되어준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든든해요. 물론 게이트가 쉬운 곳은 아니지만, 이런 분들과 함께라면 분명 해낼 수 있을거란 생각...그런 생각을 하니까 일회성이 아닌 이 교류가 상당히 기쁘고 반가워지더라구요. "
자신의 등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꽤나 좋은 일이잖아요? , 하루는 그렇게 덧붙여 말하며 상냥하게 웃어보였다. 하루의 말은 즉, 익숙해지려면 조금은 마음을 열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은 듯 했다. 어제 만난 사람이, 그리고 오늘 만나서 마주 보고 앉은 사람이 언제 자신을 도와주고 지켜줄지 모를 일이라는 것이 가디언 지망생의 현실이기도 했기에 분명 틀린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 하지만 - 처음부터 그러지 못 한다고 좌절하거나 걱정할 필요 없어요. 처음은 누구나 서툰 법이니까요. "
강찬혁은 그렇게 물으려다가 말았다. 뭐, 사정이 있겠지. 자존심의 문제가 있었거나, 일부러 부장이 역정보를 흘려서 안심하고 가게 만들었거나. 아니면 분명히 중요한 무언가가 있었거나. 멍청하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멍청한 게 아니라 멍청한 것보다는 좀 더 말이 되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테다. 강찬혁은 그렇게 말하다가, 뭔가 중요한 걸 까먹었는지 가디언 칩이 심긴 팔을 들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