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야! 헬레나주! 많이 피곤한 삶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서 몸은 괜찮은지 걱정이 되네! 아무튼 황가는 사자 머리 모양의 문양을 달고 있고 란델은 자신의 신분은 속일수 있다고 무척 좋아하겠지만 황가 사람들이나 기사단장님은 아마 거품을 물지도 모르겠어. 황자님에게 그런 옷을 입히다니. 기사. 자네 제 정신입니까? 이렇게 될지도 몰라!
한편 손으로 잡아서 먹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입을 벌리고 냠 받아먹는 헬레나의 모습에 란델은 살짝 당황했다. 물론 여동생에게 이것저것 먹인 적이야 있지만 그녀는 자신의 여동생이 아니었다. 물론 주군으로서 기사에게 이것저것 먹일 수야 있다지만 예상하지 못한 행동은 그를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허나 당황하지 않은 척 표정 관리를 하며 란델은 당연한 것 아니겠냐는 듯이 웃어보였다.
"하하. 당연하지. 이래보여도 최고급만 취급하고 먹고 있어. 물론 가끔은 서민들이 먹는 그런 것도 좋긴 한데 황가의 체면이라던가 그런 것들이 있으니까. 알게 모르게 신경쓰는 것이 많거든. 이미지라던가. 황가가 평범한 것을 먹으면 그 나라의 위신이 떨어진다고 해서 일부러 더 고급적인 것을 먹을 때가 많아. 솔직히 무슨 상관이냐 싶긴 한데 아바마마가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물론 어느 정도는 란델도 공감하는 바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일매일 최고급 음식만 먹는 것은 조금 질릴 때도 있었다. 물론 배부른 소리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매일 똑같은 것을 즐기는 이의 욕심에 가까운 생각을 슬며시 밝히면서 란델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럼 누굴 위해서 가져와야 해? 내 기사는 너 뿐이잖아. 내 기사는 내가 챙겨야지. 형님이나 동생들이 챙기게 할 순 없잖아?"
무슨 당연한 것을 묻냐는 듯이 란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자신이 먹으라고 그녀가 자른 부분을 먹으면서 그는 그 맛을 즐겼다.
"역시 맛있네. 그러고 보니 너는 춤을 추는 시간이 있을 때 춤을 추는 편이야? 파티라던가 그런 곳에서 말이야. 나는 어쩔까 고민 중이야. 형님도 있고 동생들도 있는데 슬쩍 빠지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곳보다는 조금 더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그런 곳이 좋은데. 하지만 맛있는 곳이 어딘지 궁금해. 특히 귀족들이 자주 가는 곳이 말이야. 이렇게 성에 있다보면 먹을 수 있는 것들이 한정되어있잖아? 그래서 궁금해. 아. 그런 것도 있지만 혹시 마을의 상가에서 희귀한 뭔가를 취급하거나 하진 않아? 사실 그런 쪽이 더 궁금한데."
그의 내면에 실려있는 호기심이 꿈틀거리면서 고개를 내밀었다. 맛집도 궁금하고, 희귀한 물건이 있다면 그것도 보고 싶은지 그는 두 눈을 초롱거리면서 내심 기대하는 눈빛을 란델은 헬레나에게 내비쳤다. 성에 있으면 들려오는 소식이 있었으나, 차단되는 소식도 있었다. 자신이 성에 있기에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고 싶은 마음은 성인이 된 지금도 어릴 때와 그다지 다를 바가 없었다.
"잠깐? 어디에?"
잠깐 나간다 온다는 그 말에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헬레나를 바라봤다. 지금 그녀는 자리를 비울 수 없지 않았던가? 이곳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잠깐이라면 나갔다 올 수 있는 것일까. 그러다가 어떤 한 가능성에 도달하며 란델은 웃음을 터트렸다.
"황자인 내가 자리를 비운 것을 눈감아주는 대신, 너도 잠시 근무에서 자리를 비우고 쉬고 싶은거야? 이해해. 이렇게 계속 한 자리에만 있으면 지루하고 심심할테니까. 그럼에도 해내는 기사들이 대단하다고 생각을 하긴 하는데. 아주 잠깐이라면 나도 눈감아주는 대신에 눈감아줄게. 그래서 어디로 안내하게?"
어차피 성밖으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성에서 파티를 여는데 황자가 자리를 비우고 성밖으로 이탈한다면 그야말로 난리가 날테니까. 그런 사실을 알 거라고 생각하며 란델은 헬레나가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 호기심을 품고 답을 기다렸다.
때로는 성에서는 보기 힘든 물건들이 그런 곳에서 취급될 때가 있었다. 물론 란델로서는 과연 정말일지 알 수 없었으나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빠른 시일내에 잠행을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허나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힘들지도 모르는 일인만큼 란델은 천천히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웠다.
"일단 정식으로 잠행을 한다면 아바마마나 어마마마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테니 조금 시간이 걸리겠는걸? 그리고 숙소와 기사 훈련장?"
굳이 말하자면 란델로서는 그런 장소도 그다지 가본 적이 없기에, 정확하게는 갈 일이 없다보기에 신선한 장소 중 하나였다. 허나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기대에 부응이야 되겠지만 숙소를 내가 들어가도 되는거야? 그러니까 여자 숙소 아니야?"
그녀는 여성. 즉 여성이 사용하는 숙소를 쓰는 것이 아닌가 싶어 란델은 의문을 표했다. 자신이 갔다가 문제가 커지는 것은 아닌지 그게 걱정이라고 생각하다 문뜩 한가지를 떠올리며 란델은 헬레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훈련장이라면 설마 나에게 검 대련을 부탁하는거야? 만약 그런거라면 내가 질 것 같은데. 물론 하자고 한다면 거절하진 않을게. 적어도 내 몸을 스스로 지킬 정도의 실력은 쌓아뒀으니까. 지겠지만, 그래도 쉽진 않을거야."
"네가 안내해준다면 잠깐 얼굴을 들이밀수도 있겠지만.. 아냐. 역시 기숙사는 안 갈래.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네가 피해를 볼 것 같거든. 황자인 나에게 책임을 묻는게 아니라 말이야."
그 점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란델은 그 사안은 피하려는 듯 거절의사를 보였다. 그저 훈련장 정도만 가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는 그녀에게 길 안내를 요청하듯이 바라봤다. 물론 그러다 몸을 살짝 트는 모습에 란델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건 그렇긴 하겠네. 한 합만으로 승부가 난다면 또 모를까. 아무리 그래도 한 합만으로 승부가 나진 않겠지? 아냐. 그럴 수도 있겠어. 네가 나보다 훨씬 강할테니까."
기사로서 임명받은만큼 그녀의 실력은 진짜였고 그저 호신용으로 검을 익힌 자신이 감당할 이가 아니라고 란델은 판단했다. 그렇기에 그녀의 검술에 조금 호기심이 생겼는지 그는 그녀의 뒤를 따르려고 하면서 넌지시 부탁 하나를 던졌다.
"그럼 헬레나. 네 검술을 조금 볼 수 있을까? 너의 실력이 개인적으로 궁금하거든."
원래라면 그 실력도 모두 보고 개인 기사로 임명하겠지만, 란델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오직 과거의 친분을 생각해서 임명한 것이었으니 실력을 보기엔 지금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그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물론 거절해도 상관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하는 것을 그는 잊지 않았따.
목적지에 도착한 란델은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까지 오는 일은 잘 없었기에 신기하기도 하고, 혹시나 성에서 자신을 찾으러 누군가가 나오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섞여있는 행동이었다. 딱히 누군가가 올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역시 오래 자리를 비우는 것은 위험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뿐, 그의 입은 가만히 닫혀있었다.
"아까도 말했잖아? 이상하다고 할 생각 없다니까."
그렇게 긴장이 되는 것일까. 또 다시 확인을 요하면서 긴장된 표정을 짓는 헬레나를 바라보며 란델은 편하게 해도 좋다고 이야기를 하며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조금 순서가 달라지긴 했지만 그녀의 검술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흥미와 호기심이 돋았기에 한 장면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란델은 가만히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그래도 너무 긴장되면 말해. 너무 긴장하면 오히려 다친다고 하잖아?"
검이란 자고로 사용자의 심리에 따라 크게 흔들리는 무기였다. 너무 긴장하면 역으로 자신을 베는 위험한 무기인만큼 그는 혹시나 컨디션이 별로거나 너무 긴장되면 그만둬도 상관없다고 이야기를 하며 헬레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하지만 자신이 있다면 얼마든지 보여줘. 황자에게 검 실력을 보여주는거, 꽤 영광스런 자리라고 하잖아? 물론 난 그런 건 그리 신경쓰고 싶지 않지만."
/전혀 짧지 않아! 아무튼 나도 답레야! 답레는 언제든지 편할때 써도 되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허리춤에 찬 검이 뽑히자 자연히 란델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녀의 전용 검이자 수도 없이 휘둘렀을 검. 그리고 그녀의 이름인 '스노우 하트'의 명예가 걸려있는 검은 그의 눈에 상당히 아름답게 보였다. 저 검에 실려있을 무게감, 책임감, 그리고 자부심은 아마 자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일거라고 추측하며 란델의 눈빛은 더욱 반짝였다.
검이 곧 선을 그으며 움직였고 그에 따라 란델의 눈동자 역시 상당히 빠르게 움직였다. 그 검끝을 조금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바라보면서 작게 감탄을 하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가 방금 검이 흐른 선을 가만히 바라보던 란델의 입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녀는 긴장된 표정을 지었을지 모르나 란델은 그와는 반대로 상당히 감탄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두 손으로 박수를 쳤다. 조용한 두 사람만 있는 공간이니 틀림없이 그 박수소리는 이전보다 더 크게 울렸을 것이다.
"당연히 잘했지. 나도 나름 검술을 배우긴 했지만 너 정도로는 못 해. 역시 내가 내 기사 하나는 정말로 잘 뽑았다니까. 집에서 엄청 자랑스러워하겠는데? 지금의 네 검술을 보면 말이야."
물론 기사단장이 어떻게 말할진 모르겠으나 란델의 눈에 그녀의 검은 충분히 멋지고 아름다운 검이었다. 기사가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했을 땀방울과 열기가 그대로 날이 되어 붙어있을테니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다. 박수를 치는 두 손을 천천히 멈추면서 란델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유지했다.
"아버지가 잘하는 것이 뭐가 중요해? 네가 뛰어나다는 것이 중요하지. 물론 넌 내 친구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하게 평을 하진 않아. 난 황자니까. 이런건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 말대로 란델은 헬레나의 검술에 일부러 후한 점수를 매긴 것이 아니었다. 사실상 기사로 임명받은 시점에서 실력은 증명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나 그의 눈에 비친 그녀의 검술은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멋지고 강렬했다. 자신이 정말로 열심히 검을 연습해도 그녀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괜히 눈동자를 그녀의 검으로 향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검을 한번 부딪쳐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들었으나 지금은 꾹 참으며 그는 괜히 장난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잘 부탁할게. 나의 기사님."
모든 위험에서 지킨다. 그것이 그녀의 사명감이라면 자신은 그에 의존하겠다는 듯이 란델은 편안하게 웃으면서 귀가 빨개진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방금 전의 멋진 모습은 어디 갔는지. 어느 순간 귀여운 모습을 비추는 그 모습에 란델은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어보이면서 살며시 저 편을 바라봤다. 병사 몇 명이 주변을 수색하는 모습이 그의 눈에 비쳤고 이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네. 이미 병사들이 나온 것 같으니까. 괜찮아. 잠시 바람을 쐬러 너를 경호로 삼아 나온 거라고 할테니까. 그러니까 괜히 딴 말 하기 없기다. 알았지?"
적어도 그녀는 무사하리라. 애초에 자신도 잠깐 바람을 쐬러 나온 것 뿐이니 별 일은 없으리라.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란델은 돌아가자는 말을 하며 병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어 병사들은 란델과 헬레나를 바라보면서 바로 경계 자세를 취했고 성에서 찾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