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 사내의 두상을 뒤엎고 있는 머리카락은 연한 잿빛이다. 곡선을 그리며 내려오는 머리카락 한올한올이 꺼끄러움 없이 연하고 부드러웠으며 윤기가 사르르 돌았다. 목까지 내려온 긴 뒷머리와는 다르게 앞머리는 그리 길지 않아 이마가 그대로 드러났으며 왼쪽 5, 오른쪽 5의 비율을 지켰다. 둥글둥글하게 내려오는 머리카락은 물론이며 그리 날카롭지 않은 반원형 눈매 역시 사내의 부드러운 인상을 돋보였다.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으나 가까운 곳에서 바라보면 부드럽게 내려온 속눈썹이 있으며 장난기가 살짝 녹아있는 눈동자는 머리카락보다 조금 더 진한 검은빛으로 반짝였다. 오똑한 코와 연하게 올라온 입술은 사내가 난폭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전체적으로 순둥순둥한 느낌의 인상을 유지하게 일조했다. 신장은 현 기준 176cm. 작은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매우 큰 것 또한 아니었다. 어느 정도 단련을 했기에 몸의 근육이 잡혀있으나 나라를 지키는 기사나 병사들에 비하진 못했고 화려함보단 수수한 느낌이었기에 얼핏 보면 그저 마을의 평범한 사내 정도의 인상을 주기 딱 좋았다. (이미지 출저 - https://picrew.me/share?cd=UGCkO4pa7w )
성격 - 어린 시절엔 고집도 강하고 무작정 앞으로 돌진하는 저돌적인 느낌이 있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옛날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현재는 조용하고 차분하면서도 순한 성격이다. 친한 이에게는 가벼운 장난을 걸기도 하고 사교적이지만 자신의 입장을 잘 알기에 무작정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것은 또 아니었다. 스트레스 등을 속으로 쌓아두는 성향이 있으며 혼자 있을 때 그것을 풀기도 하며 호기심이 많아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어떻게든 해소하고자 하는 어릴 적 모습도 어느 정도는 남아있다.
기타
1.제국의 제 2황자. 황위 계승권 2순위. 허나 자신은 딱히 황위를 잇는데는 별 관심이 없다. 물론 자신이 이어야 한다면 잇겠지만 굳이 권력 투쟁을 하면서까지 황위를 이을 생각은 없기 때문에 권력투쟁에선 일부러 다섯 걸음 정도 멀리 떨어져서 관망하고 있다.
2.마을에 자주 나갈 수 없다는 것이 현재 사내의 가장 큰 불만이다. 입장이 입장인만큼 어느 정도 이해를 하지만 그래도 내심 스트레스 요소이다.
3.자신의 몸을 자신이 지킬줄 알아야하는 신조가 있기에 어느 정도 검술을 단련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벼운 정도에 지나지 않기에 전문적으로 검을 다루는 이들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4.어린 시절 다른 사람들 몰래 황궁을 빠져나와 성 아래 마을에 찾아가 친구들을 사귀었다. 특별대우를 받기 싫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자신의 정체를 말하지 않고 어울리는데 성공했지만 몇 년 후, 결국 제대로 걸려버린 바람에 그때 사귀었던 이들과는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었고 그 이후 그저 마음속으로 그리워하고 있다.
5.마을에 신기한 물건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어떻게든 구경하고 싶어할 정도로 호기심이 매우 강하다.
어느 동화에 등장할 법한 외모다. 새하얀 피부와 붉은 입술, 그것들과 대조되는 검은색 머리카락. 키는 160 초반 정도이며, 근육이 균형 있게 붙어있다. 날개뼈를 덮는 길이로 내려오는 머리카락은 움직임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한 갈래로 끌어모으듯 묶었다. 눈매가 꽤나 날카로운데다, 오른쪽은 눈의 색상이 다른데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다. 왼 쪽은 검은색에 가까운 갈색이며, 오른 쪽은 그것보다 살짝 밝은 정도에 불과하다. 시력에 이상이 있는 건 절대 아니다. 몸에 흉터가 자잘하게 있는데, 훈련 하면서 다친 것이다.
성격: 어렸을 적에는 비교적 순했다. 조용조용하고 무리에 있는 그저 흔한 그런 사람 중 한 명에 가까웠다. 훈련과 연습의 반복 때문인건지, 성격이 전체적으로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I성향의 사람이 E성향으로 바뀐 정도. 그럼에도, 예의는 갖추고 있다. 기억력 하나는 꽤나 좋은 편인데, 자신이 그냥 넘기는 문제들도 제법 많다고 한다.
기타
1. 하트가문 뼈대 있는 기사 가문이며, 인장은 스페이드 형태에 가까운 하트 모양. 직위도 있기는 하나, 그녀는 그냥 기사라고만 지칭한다. 실제로 그렇게 높은 직위가 아니기도 했다. 위에 오라버니가 두 명, 여동생이 한 명 있으며, 가족들과는 서신으로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이다. 문제는, 그녀가 답장을 잘 안한다는 것.... -장남: 사무엘 스노우 하트(32세) -차남: 레이먼드 스노우 하트(28세) -차녀: 앨리스 스노우 하트(13세)
2. 어렸을 적 친구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골목대장 같은 성격이고 자신이 속한 무리의 대장이었다.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는 친구를 그녀는 찾고 있다.
3. 좋은 기억력 기억력 하나는 끝내주게 좋다. 그래서 어렸을 적에는 요령을 피우기도 했었다.
나 역시 점심시간이라 아주 잠깐 갱신할게! 음. 개인적으로는 시트가 성인 버전으로 올라온만큼 재회한 장면이 좀 더 나을 것 같아.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그냥 썰로 가볍게 풀면서 놀아도 좋지 않을까 싶거든. 헬레나주가 어린 시절도 일상으로 돌려보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무방해!
나 역시 일 끝나기 전엔 길게 보기가 힘들어서 그런 것은 괜찮아. 그냥 서로 현생 맞춰가면서 여유롭게 이어가는 거 좋아하거든. 너무 급하게 가는 것보단 말이야. 나도 보통 저녁 7시 이후로 완벽하게 자유로워지는 편이야. 일상은 그때부터 돌려도 되지 않을까? 일단 첫 일상은 기사임명식으로 하면 되겠지?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말이야. 아마 란델도 그 자리에는 참여할테니까 자연스럽게 대면할 수 있을 거야.
오늘은 일년에 딱 한 번 있는 기사 임명식이 있는 날이었다. 황가는 엄격한 시험에 통과하여 기사의 자격을 얻어낸 이들을 기사로서 임명하여 명예를 주는 것과 동시에 자신들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했고 기사로 임명받은 이들은 기사로서의 명예를 받으며 그 자리에서 제국에 대한 영원한 충성을 맹세하는 아주 중요한 행사였다. 당연히 황가의 피를 이은 이들은 모두 이 자리에 참석해야 했으며 제 2 황자인 란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일주일 전부터 꼭 참석해야만 한다는 말이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란델은 두 귀를 꽉 막고 임명식이 있는 황궁의 홀로 향했다.
"형님은 물론이며 동생들까지. 내가 그렇게 못 미더운걸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자리에 불참하진 않았는데."
작년은 물론이고 재작년도 란델은 항상 자리에 참석했다. 물론 철없던 어린시절에는 몇 번 빠지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항상 붙잡혀와서 꼭 참석했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게 아닌가 생각하며 괜히 투덜거리는 란델의 모습은 아직 미숙한 모습이었다.
궁에서 일하는 이들의 안내를 받아 홀로 들어선 가볍게 자신의 형인 제 1 황자와 그 아래로 있는 자신의 남동생, 여동생에게 일일히 인사하며 자신의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올해는 또 어떤 이들이 그 어려운 시험에 통과해서 기사로서 임명되는지 눈여겨볼 생각으로 란델은 빨리 식이 시작되는 것을 기다렸다. 그러다 혹시 마음에 드는 이가 있으면 자신의 전속으로 임명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날지는 제 스스로도 알 턱이 없었다.
곧 란델의 아버지이자 이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와 란델의 어머니이자 황제를 옆에서 보좌하는 황비가 홀로 들어왔고 란델을 포함해서 황자와 황녀, 그리고 대신들까지 모두 예를 갖춰 머리를 숙였다. 이어 황제의 머리를 들라는 말이 있고 나서야 모두 고개를 들 수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임명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시험에 합격하여 명예로운 기사의 자격을 얻게 될 일들은 모두 입장하시오!"
이 제국의 기사들을 총 지휘하는 기사단장의 목소리와 함께 다섯 명 정도의 합격자들이 하나하나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란델은 가만히 바라봤다. 얼굴 하나하나를 확인하던 란델의 눈동자가 어느 한 여성에게서 멈췄다. 의아한 감정을 담은 눈동자가 여성에게 그대로 고정되었고 란델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앞으로 밀며 두 눈을 깜빡였다.
"란델아.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이냐?"
"아. 아닙니다. 아버님.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뭔진 잘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걸리는 느낌에 란델의 눈빛은 더욱 한 여성에게 향했다. 물론 그걸 상대가 느꼈을진 모를 일이었다.
헬레나 스노우 하트라는 그녀의 이름이 호명되자 란델은 더욱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어린 시절 성을 몰래 빠져나가 성 아래 마을에서 놀던 친구들 중에 그런 이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저런 느낌의 여성이었는지에 대해 란델은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기억 속에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여성과는 이미지가 다르지만 얼굴은 확실하게 비슷했기에 혼란이 찾아왔다. 어린 시절의 얼굴과 현 그녀의 얼굴은 분명히 매칭이 되었기에 비슷하게 생긴 타인이겠지라고 거부하는 것조차 바보같았기에 란델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복잡한 표정을 좀처럼 풀지 못했다.
"형님? 왜 그러시나요?" "오라버니?"
자신을 걱정하는 듯한 동생들의 목소리에 란델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손을 휘저으면서 일단 그 자리의 분위기를 지키고자 했다. 어쨌든 지금 이 자리는 신성한 자리였고 함부로 분위기를 망칠 순 없었다. 자신은 이 제국의 제 2 황자이고 이 자리에 참석하는 이상 황족으로서 예를 갖춰야만 했으니까.
"그대. 황제의 이름으로 이 제국에 충성을 다하는 기사가 될 것을 명한다."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황제는 그녀에게 제국에게 충성을 하겠다는 맹세를 하는 것을 요구했다. 임명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이며, 기사로서 당당하게 인정받기 위한 절차였다. 허나 그 분위기가 어찌되었건 란델은 그저 뚫어져라 헬레나를 바라보다 다른 기사들을 바라봤다. 지금 이 의식이 끝이 나야 무슨 말을 하던지 뭘 하던지 할테니 지금은 자신이 황족이라는 것이 참으로 원망스럽다고 란델은 생각했다.
이렇게 된 이상 모든 의식이 끝난 후에 그녀에게 직접 찾아가서 확인을 해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그는 다른 기사들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세면서 괜히 오른발로 땅만 약하게 굴렸다.
황궁 안에 있는 정원은 오로지 황가의 피를 이은 이들만의 것이었다. 황족의 안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기에 원래대로라면 란델의 안내가 없었다면 그녀는 절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그만큼 지금부터 나눌 이야기는 많은 이들이 들어서 좋을 것이 없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선 상관없을지도 모르나 지금 단계에선 괜히 말이 많이 터져나오게 해서 좋을 것이 없었다. 황자에게 어떻게든 접점을 만들려고 하는 욕심 많은 이들이 많았기에 더더욱.
"별 이유는 없어요. 그저 경에게 조금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말이죠."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란델은 애써 태연한 자세를 보였다. 맞으면 다행이나 아니면 그것만큼 부끄럽고 곤란한 일이 없을테니까. 어쩌면 상대가 거짓을 고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대답보단 그녀의 행동이나 표정, 그 외 자잘한 것에 집중하려고 했다.
"경이 여쭈고 싶은 것이 있나요? 좋아요. 그럼 제 물음은 뒤로 미루고 경의 물음부터 들어보도록 하죠."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그녀의 질문이 무엇인지 듣는 것 또한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었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어린 시절 친구가 맞고 자신을 알아봤다면 아마 묻지 않을까 추측하며 란델은 애써 침착한 표정을 가장하며 괜히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려고 했다.
"천천히 해도 괜찮아요. 이곳은 우리 황족에게만 허락된 장소. 황가의 피를 이은 자가 아닌한 그 누구도 들어오지 않을테고 저의 안내로 들어왔으니 다른 황족이 본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으니까요."
물음을 들으며 란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채 눈을 감았다. 그 물음은 본래 자신이 묻고자 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상대에게서 먼저 물으니 그저 신기하면서도 아련함이 그의 마음 속을 채웠다. 어린 시절 몰래 성에서 빠져나가 마을로 찾아간 후에 놀았으나 결국 그 행동이 걸려서 크게 꾸중을 듣고 성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어 더 이상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이가 바로 눈앞에 있으니 그리움과 기쁨을 넘어선 뭔가가 마음 속으로 터져나올 것 같았지만 란델은 애써 그것을 자제했다.
"참 신기하군요. 그 물음은 본래 제가 경에게 주고자 한 물음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제가 물어볼 게 없지 않습니까?"
눈을 부드럽게 감은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란델은 그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명확하게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 존재는 기억하고 있었다. 희미함 속에서도 성은 잊었더라도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다. 숨을 약하게 내쉬며 감은 눈을 뜨며 그녀의 모습을 눈에 담은 란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적의 추억입니다. 경이 기억하는 것에 틀린 것은 없고 제가 그 친구입니다."
작게 웃음소리를 내며 란델은 그녀를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반가움에 가득찬 눈빛을 그녀에게 보냈다.
"오랜만이야. 그러니까 헬레나..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겠네. 아. 편하게 대해도 좋다고 해도 역시 안되겠지? 그렇겠지. 응."
난처하게 웃던 그는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주변을 빠르게 두리번거리면서 다시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 그 말. 다른 사람이 있었으면 불경죄로 기사 박탈에 처벌을 받았을거야. 물론 나는 그렇게 할 생각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자신의 손을 잡는 그녀의 손을 덩달아 잡으며 란델은 미소지었다. 흐릿해지긴 했으나 그래도 그리워하던 이 중 하나였다. 다른 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성 안에서만 지내면 도저히 알 길이 없었으나 이렇게 한 명이라도 만났으니 된 것 아니겠는가. 허나 낯선 감정 또한 남아있었다. 꽤 오랜 시간을 못 봤고 자신이 아는 바 그녀는 이런 이미지는 아니었으니까.
"역시 다른 이가 있으면 내가 괜찮다고 해도 안 되겠지? 알았어. 나도 곤란하게 하진 않을게. 아무튼 나야말로 그 애가 이렇게 기사님이 되어서 올 줄은 몰랐는걸."
그 때문에 임명식 때 얼마나 놀라서 당황했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인 황제부터 시작해서 어머니인 황후, 그리고 제 1 황자인 형부터 그 밑의 동생들까지 얼마나 이상하게 바라봤던가. 나중에 어떻게 해명해야할지 알 수 없어 조금 곤란한 처지였지만 그래도 란델은 지금 이 순간을 기뻐하기로 했다.
"잘 지냈지. 이래보여도 이 제국의 제 2 황자야. 물론 편하고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성 밖 사람들에게는 그저 배부른 고민이겠지. 그러는 너는? 그리고 다른 이들은? 그건 그렇고 많이 변했구나. 내 기억 속의 넌 이런 성격은 아니었는데."
물론 정확히 어떤 이미지인지를 기억하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하지만 대략적인 느낌은 있지 않던가. 그렇기에 그는 괜히 웃음소리를 내며 괜히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꼬옥 잡아보려 했다.
"다들 잘 지냈다고 하면 다행이네. 미안해. 성을 빠져나오다가 그만 걸려서. 그 이후로 못 나오게 되었거든. 경비가 더욱 철저해져서 이용하던 개구멍도 막혀버려서."
다들 자신을 찾았다는 그 말에 란델은 미안함을 느꼈는지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원래대로라면 그 날도 성을 무사히 빠져나와서 모두와 함께 놀 생각이었지만 그만 걸려버린 바람에 한동안은 방에 갇혀있었던 기억이 문뜩 떠올랐고 자연히 란델의 입가에 쓴 표정이 지어졌다.
아직도 자신을 찾는 것일지. 혹은 그녀 말고도 다른 이들도 자신을 기억하고 있을지. 차마 그것을 묻는 것조차 미안한지 마음 속으로만 가라앉히면서 란델은 그녀의 말을 순순히 인정했다.
"그거야 나는 제 2 황자니까. 어릴 때처럼 지낼 수는 없거든. 이 자리에 있으면 워낙 주변 눈치를 보게 되고 신경써야 할 것이 많고 기품이나 그런 것도 따져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며 란델은 괜히 소리를 내어 웃으면서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놓으면서 잠시 생각을 하다가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좋아. 너 나의 전속으로 있어볼 생각 없어? 황족은 기사들 중에 자신의 전속을 붙일 수 있거든. 물론 네가 괜찮다면이야. 어릴 때의 친구가 전속으로 붙어있는 것이 나로서는 편하긴 한데 너는 너대로 꿈이 있을 수 있으니까. 이를테면 형님인 제 1 황자의 전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테고, 같은 성별인 황녀의 전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거야. 물론 형님이나 동생이 허락을 해줘야 가능하겠지만 말 정도는 전해줄 수 있어."
이런 말조차도 사실상 란델로서는 조심스러웠다. 자신과 그녀는 더 이상 옛날 같은 관계가 아니었다. 분명하게 자신이 위고 그녀는 아래였다. 결국 황자와 귀족 공녀로서 다시 마주한 것이었으니까.
/조금 널널해져서 답레를 달아놓을게! 그리고 햄스터의 건강상태가 안 좋구나. 햄스터가 빨리 나아지길 바라!
"노블리스 오블리주와는 조금 다른 것 같지만 비슷할지도 모르겠네. 아무튼 괜찮아. 갑자기 연락이 끊어진 것에 대한 사과 표시로 생각도 좋아."
슬슬 옆에 기사를 하나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시기였다. 란델은 어느 정도 검을 다룰 수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기사 정도로 훌륭히 잘 다루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지킬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검술을 익혔으나 어떻게 전문적으로 검을 휘두르는 기사에 미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녀는 적합한 이였다. 자신의 친구이기도 하고 조금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존재였기에 아예 모르는 이보다는 그녀가 란델에게서도 편했다. 허나 이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이야기일 뿐. 귀족 공녀의 입장에선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알 수 없었다.
"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본 적이 없어. 하지만 시험에 합격한 시점에서 충분히 제 몫은 할 거라고 생각해. 오히려 검술 실력도 나보다 훨씬 나을걸?"
씩 웃으면서 승낙하는 그녀의 말에 란델은 바로 임명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으며 일단은 그 정도로 대답했다. 어릴 때처럼 편하게 대하면 좋으련만, 마냥 그렇게 대할 수 없었기에 답답함을 느끼며 란델은 눈을 감고 입을 꾹 다물었다. 약간의 거리감을 두듯, 그 침묵이 조금 길었다.
"정말로 좋다면 전속으로 삼겠어. 후회하지 않을거야?"
물론 자신의 전속이 된다면 엄연히 황족을 지키는 전속 기사가 되는 것이었기에 지금 란델이 친구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명예인 셈이었다. 허나 그 자리는 큰 명예가 따르는만큼 그만큼 큰 책임감이 필요했다. 황족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야말로 난리가 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에 란델은 신중하게 대답하라는 듯이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만약 후회할 것 같고 생각해보고 싶다면 답은 미뤄도 괜찮아. 물론 난 네가 전속으로 붙어있는 쪽이 편하긴 해. 조금이라도 아는 이냐, 아니면 모르는 이냐를 떠나서... 쌓인 이야기라던가 그런 것을 풀고 싶기도 하니까. 너도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여럿 있을지도 모르는 거잖아. 사실 제일 큰 이유는 뭔가 다른 기사들은 내가 마을로 가려고 하면 무조건 막을 것 같아서 말이지. 아. 너도 막으려나? 그건 곤란한데."
괜히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듯 란델은 괜히 장난스러운 웃음소리를 풍겼다.
/나 역시 느긋하게 하고 있어. 이번 주는 어쩌다보니 여유로운 주간이 되어버려서 푹 쉬는 느낌이지만 다음 주는 다시 바빠질지도 모르겠네. 휴무가 없는 주간이라니. 에고. 컨디션 조절 잘하기야!
"나로서는 후회하지 않는다는 답을 원했지만 그래도 알겠어. 그럼 내 목숨, 너에게 맡길게. 잘 지켜줘."
스스로의 몸을 지킬 수는 있었으나 아무리 그래도 기사만큼의 검술 실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황족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황족에게는 전속 기사가 있는 것이었고, 다른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오직 황족들을 수호하는 임무만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맡기는 것이기에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이에게 맡기는 것이었고, 황족의 신뢰를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사에게는 큰 명예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짊어져야 할 것이 많았고, 책임져야 할 것 역시 많을 수밖에 없었다.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하면 거짓말이라는 것으로 보아 이 제안이 그녀에게 있어선 뭔가를 후회하게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지만 지금의 란델은 그녀에게 그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지금은 물어도 아무 것도 답하지 않을 것 같았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어느 정도 짐작 가는 것도 있었으니까.
"아. 역시 그렇게 되는거야? 혼자 마을로 가도 상관없을텐데. 네가 가면 내가 높은 신분이라는 것이 들킬게 뻔하잖아. 하지만 네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싫으니까 나도 고집 부리진 않을게."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수용해야겠다고 란델은 생각했고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그녀를 바라보며 손을 가만히 내밀었다.
글쎄. 지금의 란델이라면 빌만한 소원은 역시 제국이 앞으로도 번성하는 것 그 정도가 아닐까 싶네. 물론 이야기가 진행되고 서사가 쌓이다보면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아. 두 번째 소원이라면 어릴 때 놀던 친구들이 모두 다시 한 번 그때처럼 모여서 노는 것을 바랄지도 모르겠어. 물론 그것은 절대로 이뤄지기 힘든 소원이겠지만..
어떻게든 모일 순 있겠지만 그때처럼 모여서 노는 것은 아무래도 힘드테니까? 일단 란델은 제 2 황자인만큼 다시 모인다고 해도 아무래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도 할테니까. 그런 것은 란델이 그리 좋아하지 않거든. 물론 스스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렇게 보면 란델이 대등하게 지낼 수 있는 친구를 바라는 것처럼 보일텐데 그게 맞습니다. 물론 자신의 위치와 자리를 잘 알고 있기에 란델은 어느정도 포기한 상태야.
찌통은 아니야!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그러진 않거든! 그냥 약간의 욕심과 아쉬움? 딱 그런 느낌에 가까울 것 같아. 아무튼 그렇다보니 내심 헬레나를 만난 것을 기뻐하고 있고 반가워하고 있어. 물론 그때처럼 막연하게 지내긴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그냥 이렇게 다시 본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그런 것에 가깝다고 보면 돼.
황자님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말에 란델은 살며시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물론 서로의 입장은 그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은 황자이고, 상대는 기사였다. 황족과 귀족, 황자와 기사. 이렇게 구분지어 보여도 그녀는 당연히 해야 할 말을 하고 있는 것을 충분히 이해했으나 그럼에도 불만족스러움이 어느정도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허나 그 이상 말을 하지 않으며 알았다는 듯이 무언을 지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딱딱하게 할 필요는 없는데. 하지만 절차는 절차니까. 어쩔 수 없지. 내가 양보할게."
검을 받아들이며 란델은 헬레나의 어깨에 살며시 검날을 가져가며 가볍게 툭 쳤다. 이럴 때 자신의 형님은 어떻게 말을 했었는지 떠올리며 나름 근엄한 목소리로 진지하게 란델은 이야기했다.
"그대. 헬레나 스노우 하트. 이 제국의 제 2황자인 란델 리노이드 칼바니아가 명한다. 나의 기사가 되어 나의 검, 나의 방패가 되어 충성을 맹세하라."
딱히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이것은 형식뿐인 절차. 이 절차를 끝마친 후, 직접 기사단장에게 가서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그녀는 자신의 전속기사가 되는 것이었다. 정말로 간편하지만, 어쩌면 정말로 무거운 맹세를 고하면서 란델은 그녀의 말이 끝나는 것을 기다렸다.
"다른 황족이었다면 바로 꽤씸죄를 물었겠지만 난 그럴 생각 없어. 편하게 대해도 괜찮아. 이렇게 말을 해도 너는 정말로 사적으로 둘만 있는 게 아니면 말을 놓지 않을 것 같지만..."
어색하게 존대를 하는 것에 란델은 작게 웃음을 터트리면서 상관없다는 듯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래도 그런 어색함이 마냥 나쁘진 않았다. 자신을 존대하고 높게 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는 이야기니까. 그런 점이 오히려 조금 마음이 편했고, 자신도 그녀를 대하기 편했다. 물론 입장이 입장인지라 그런 말을 마음대로 할 순 없긴 했지만 지금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란델은 생각했다. 그것이 안일함이라고 하더라도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야말로 기사 임명식 때 옛 친구가 기사가 되어 서있을줄은 몰랐는걸. 거기다가 전속까지 만들었으니. 이제 내 사적 시간은 조금 평화로워지려나. 적어도 잔소리하고 황자님! 혼자 다니면 안됩니다! 이러진 않을테니까."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하며 란델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어 잠시 출구 쪽을 바라보던 란델은 헬레나를 바라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기사단장에게 가서 네 소속을 옮길게. 오늘은 돌아가봐도 좋아. 다른 이들도 업무는 내일부터 할테니까 너도 쉬어. 아. 집에 이야기 정도는 해 둬. 황족의 안전을 책임지는 이상, 너도 이 성에서 지내야만 할테니까. 멀리 떨어져있으면 아무래도 정작 위험할 때 황족을 수호할 수 없잖아?"
하루종일 붙어있으란 이야기가 아니었다. 최소한 위험이 닥치거나, 혹은 필요할 때 바로 소집될 수 있도록 근처에는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며 란델은 이제 가봐도 좋다는 듯이 그녀에게 가볍게 손짓했다.
/쉬는 날이라구? 아이구! 축하해! 헬레나주! 그리고 사실상 다음이 막레가 되려나? 더 잇고 싶다면 이어도 괜찮아!
바쁜 난라은 언젠가 꼭 끝날거야! 그런 의미에서 묻는건데 헬레나는 이후에 어떻게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했을지 궁금하네. 가족들의 반응이라던가 말이야! 란델은 무슨 신입기사를 전속으로 삼냐고 잔소리를 듣긴 했지만 뜻을 끝까지 굽히지 않아서 황족들에게 모두 허락을 받아내는데 성공했어. 대신 나중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잔소리는 엄청 들었지만!
헬레나의 가족들의 표정이 절로 연상이 된다. ㅋㅋㅋㅋㅋㅋ 내 딸의 어릴적 친구가 제 2 황자님. 진짜 가족들 입장에선 완전히 기겁하고 기절했을지도 모를 일이겠어. 하지만 동시에 뭔가 노림수를 꾸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 그리고 란델이야 아무래도 황족이니까 더 실력이 좋은 기사를 붙이는 것을 황제는 원할테니까. 딱히 가족들간에 피바람이 불 정도로 사이가 나쁜건 아니거든. 오히려 란델은 황제가 될 생각이 그다지 없어서 정치적인 안점에서도 그리 적대시 되고 그러진 않아. 그래서 권력 싸움 그런 거 없이 잘 지내는 편이야.
아주 훌륭한 집안이로구나! 황자와 가까워졌다고 하면 권력욕을 낼만도 할텐데! 허나 아마 란델은 한동안은 헬레나의 집안 자체는 조금 경계할거야. 자신의 입장이 입장인만큼 자신을 이용하려고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어릴때부터 뼈저리게 느꼈거든. 정략 결혼이라던가 그런 것들 등등으로 말이야. 물론 지금 란델에에게 약혼녀는 없지만!
안녕이다! 헬레나주! 기본적으로 란델이 조금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무래도 자신의 입장상 이용하려는 것은 아닐까 경계하는 것에 가까운거고 크게 악의는 없다고 봐도 좋아. 그래도 기본적으로 헬레나는 친구 버프가 있어서 그렇게 경계하거나 의심하진 않아! 오히려 헬레나를 떼어놓고 몰래 마을로 내려가려고 하지 않을까 걱정이지
사실 해보고 싶은 상황은 많이 떠오르긴 한다! 황가에서 뭔가 큰 파티 같은 것을 해서 다른 황족들이나 그런 이들이 많이 참석했는데 아마 경비를 서고 있을 헬레나에게 란델이 먹을 것을 싸가지고 와서 슬쩍 찾아와서 저런 정치적 자리는 별로 취향이 아니거든. 하면서 기사인척 거기서 시간 보낸다던가 그런 것도 떠오르고 말이지!
황가에서 벌이는 축제는 너무나 화려했다. 이런저런 만찬이 차려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예복을 입고 참가하며 제각각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기적으로 이렇게 파티를 벌여서 다른 나라와 동맹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고 혹여나 비슷한 또래의 황족이 있으면 연을 맺게 해서 모두가 한 가족, 한 핏줄이 되는 것이 이런 파티의 주목적이었다. 당연히 란델 역시 하얀 예복을 입고 자리에 참여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인사를 나누고 때로는 비슷한 나이의 황자와 황녀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며 란델은 자신에게 부여된 의무를 하나하나 수행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런 자리를 좋아하는지는 또 별개라고 할 수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란델은 이런 자리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순수하게 즐길 수 없고 정치적 목적으로 이런저런 인사를 돌아야만 하는 것은 영 제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며 란델은 슬며시 자리를 비울 것을 계획했다. 허나 성 밖으로 나가면 난리가 날테니, 적어도 성 어딘가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란델은 어디로 가면 좋을지를 떠올렸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란델은 자신의 전속기사인 헬레나가 있는 곳으로 슬그머니 다가왔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어보이던 란델은 슬그머니 살금살금 다가간 후에 그녀의 어깨를 콕콕 찔렀다.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고기와 과자, 그리고 샌드위치 류가 담긴 접시를 뒤로 숨기면서 란델은 헬레나가 어떻게 반응을 보일지를 기대하듯 조용히 아무런 말도 없이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만약 그녀가 뒤를 돌아본다면 미소를 짓고 있는 란델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런 말 없이 그저 조용히 장난끼 가득한 웃음소리만 내고 있는 그런 란델의 모습은 어떻게 보였을까.
들었냐는 그 말에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란델은 헬레나를 빤히 바라봤다. 혹시 누군가의 뒷담이라도 까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들어서는 안되는 혼잣말이라도 한 것일까. 빨개진 얼굴을 괜히 더 빤히 바라보다 쿡쿡거리는 웃음소리를 감추면서 란델은 헬레나에게 접시를 내밀었다.
"뭘 들었냐는건진 모르겠지만 여기 초대객 중 누군가의 뒷담을 깐 거라면 난 못 들은 것으로 할게. 입장상 그런 것이 있으면 나는 꾸짖을수밖에 없는데 괜히 화를 내고 싶진 않거든. 아. 물론 나도 진짜 마음에 안 드는 이는 있긴 해. 같은 황족이면서 되게 급을 나누려는 이들이 간혹 있거든."
누군지 말을 하진 않지만 이번에도 그런 이가 오기라도 했는지 란델은 괜히 혀를 차면서 쓴 소리를 냈다. 아무튼 잠시 딴길로 가버린 이야기를 원래대로 돌리기 위해 헛기침소리를 내며 란델은 접시를 손으로 가리켰다.
"배고프지 않아? 좀 먹으라고 가져왔어. 기사들은 지금 아무 것도 못 먹고 경비서기 바쁘잖아? 그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여기에 좀 있게 해주면 되게 고마울 것 같은데. 아. 절대 도망친게 아니야. 그냥 나는 여기가 좀 더 편할 것 같아서 온 것 뿐이야."
결국 그게 그거지만 완전 다른 것인양 이야기를 하며 란델은 한 손을 자신의 허리에 대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먹으라고 가져온건데 안 먹으면 곤란하지. 물론 배가 부르다면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지만 배가 고프다면 어서 먹어. 괜찮으니까. 이럴 때 이런 곳 음식을 먹어보지. 언제 먹어보겠어?"
물론 전속 기사니까 결국 성 안에서 지내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먹는 것이 온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최고급 식재료들은 모두 황족들을 위해서 사용되니, 그보다는 조금 질이 떨어지는 음식이 나올 수밖에 없었을테니까. 적어도 그녀가 먹었던 성의 음식보다 훨씬 더 맛이 좋으리라. 란델은 그렇게 예상했다.
"더 먹고 싶으면 이야기하면 가져와줄게. 평소에 일을 열심히 하니 가끔은 황자로서 이런 상도 줘야하지 않겠어? 물론 지금 당장 줄 수 있는 것은 이 정도 뿐이지만."
만약 자신이 황제라면 더욱 더 많은 상을 줄 수 있겠지만 그래봐야 란델은 제 2황자였다. 결국 할 수 있는 것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상기하며 란델은 근처에 있는 벽에 등을 살며시 기댔고 헬레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래? 나라면 이렇게 가만히 서 있는 것은 못할 것 같은데. 역시 기사들은 다르구나. 믿음직한 기사가 옛 친구라서 다행이야."
헬레나의 말에 란델은 절로 감탄했다. 이 연회를 위해서 기사들은 정말로 일찍 기상했을테고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키면서 서 있었을테니 자신이라면 절대 못 버틸 거라고 생각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아니면 기사들은 교육을 받을 때 이렇게 가만히 있는 훈련도 하는 것일까하는 순수한 호기심을 품기도 하다 곧 들려오는 그녀의 물음에 란델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원래는 안되지만 여기라면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일단 성 안이잖아? 나는 저런 정치적인 느낌이 가득한 곳은 별로여서 말이야. 그러니까 여기까지 도망쳐 온 것도 있어. 아. 하지만 성 안이니까 도주한 거 아니야. 단지 모두가 있는 곳과 거리가 있는 곳일 뿐이지."
적어도 자신은 규율을 어기지 않았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란델은 조금 더 편하게 등을 댄 후에 그녀를 바라보면서 피식 웃어보였다.
"귀족가의 영애로서 이런 비슷한 연회에 많이 참여해봤어? 넌? 귀족들끼리만 모이는 곳은 어떤 분위기야? 황가는.. 보다시피. 알게모르게 꽤 불꽃이 튀거든. 특히 다음 황제의 자리를 이을 이들끼리는 더더욱. 가끔 만남의 장이 되기도 하지만 그게 또 보통 어색한게 아니란 말이야."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란델은 가만히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안과는 다르게 바깥은 상당히 고요하고 조용했다. 그리고 저 너머에 있는 마을은 아마도 더욱 조용했을 것이다. 그 분위기를 머릿속에 그리다 란델은 헬레나에게 넌지시 말했다.
"역시 나는 성보다는 저기가 더 잘 맞을지도 모르겠네. 아. 그렇다고 성의 생활이나 황가의 생활이 싫다는건 아니지만... 알잖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헬레나가 픽, 웃으면서 대답했다. 정말로, 자신은 목표로 하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아니, 그 이상인지도 몰랐다.
“그게 뭐야, 확실히. 여기는 거리가 좀 있는 위치이긴 해.”
란델의 말이 재미있던 건지, 헬레나가 작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무리에서 나온 것은 사실이었다.
“웃는 모습 뒤에 칼을 숨기고 있다고 할까.... 우리 집은, 권력욕이 없어서 아버지가 최대한 사교회를 즐기고 와라. 라고 하셨지만, 그 분위기가 가끔 숨 막힐 때가 있더라고. ....... 권력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바꾸는구나, 싶어지는 순간이 자주 생겨. 그 외에는, 마음이 맞는 영애들과 놀거나 해.”
디저트도 많긴 했지만,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금. 아니, 제법 많이. 예를 차리는 것은 어렵지는 않았다만, 그녀는 약간 딱딱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란델을 따라, 시선을 마을 쪽으로 돌린 헬레나가 두 눈을 천천히 끔뻑였다.
“알아, 확실히 저 쪽에서 만났을 때의 너는, 엄청 행복해 보였으니까. 그러면, 잠행할 겸 가보는 건 어떻습니까?”
근처에 인기척이 느껴진 헬레나가 존댓말로 물었다. 잠행을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의상은 따로 준비하겠습니다.”
상점가에서 사는 편이 좋을지도 몰랐다. 로브 같은 거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하던 헬레나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결국엔 권력싸움이라는 이야기에 란델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대체 저놈의 권력으로 왜 저리 싸우는 것인지. 물론 그건 황자인 란델이 할 말은 아닐지도 모르나 그럼에도 그는 굳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지 고개를 강하게 저어보이는 것이 그런 이야기는 질색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친한 사람들은 있다고 하니 다행이네. 어릴 적의 너라면 상상하기 힘든 모습인데 역시 시간이 달라지게 하는걸까."
어릴 적의 그녀는 어땠더라. 어렴풋이 떠오르는 이미지로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란델은 괜히 얄밉게 웃어보였고 조금 더 편하게 등을 기댔고 갑자기 말을 올리는 모습에 슬며시 눈동자를 옆으로 돌렸다. 누군가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조금 곤란한데. 여기서 바로 잡혀가고 싶진 않은데. 그런 생각을 하며 란델은 살며시 그녀에게 다가간 후에 조용히 속삭였다.
"그건 다음에. 아무리 그래도 지금 나갈 순 없으니까. 그보다 같이 근무서는 기사처럼 있을테니까 연기 잘하기다. 알았지?"
이어 란델은 살며시 그녀의 뒤로 이동한 후에 등을 맞대듯이 앞을 바라보았다. 인기척의 주인공이 이곳으로 와도 기사로 착각하게 하려는 듯이 일부러 그렇게 자세를 잡았다. 물론 헬레나가 그것에 맞춰줄지는 자유였다.
다음 황제가 될 예정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황족인 그가 온전히 같을 순 없었다. 교육을 받는 것이 있었고, 성장 과정 속에서 환경은 큰 영향을 끼친다고 했었으니까. 어릴 적의 자신은 어땠더라. 잠시 그리 생각을 하며 란델은 곧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의 도움 덕에 란델은 어떻게든 들킬 위험을 모면할 수 있었다. 목소리가 사라지자 겨우 안도를 하면서 란델은 자세를 풀고 헬레나를 바라봤다. 미소를 환하게 지으면서 란델은 곧 헬레나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고마워.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어. 물론 황족으로서 좋은 자세는 아니긴 한데. 이건 서로에게 비밀이야. 너도 어떻게 보면 임무를 내팽겨친거니까."
황족이 다른 짓을 하고 있으면 그것을 막는 것 역시 전속 기사의 일이었다. 그렇게 따지자면 헬레나 역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셈이었기에 란델은 괜히 얄밉게 웃어보였다. 오른손을 들어 쉿 자세를 취하면서 손을 아래로 내린 란델은 다시 편한 자세로 서면서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한편, 케이크를 가르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그는 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곧 오른손으로 입을 막고 소리를 참으면서 웃기 시작했다. 설마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일까.
"설마 이렇게 반으로 나눌 줄은 몰랐는데. 됐어. 큰 것을 먹어. 난 이미 많이 먹었으니까. 정말 일을 잘하는 기사라니까. 누가 뽑았나 몰라."
괜히 뻔뻔하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란델은 작은 쪽으로 괜찮다고 하며 오히려 큰 쪽을 그녀의 입가에 가져가려고 했다.
안녕이야! 헬레나주! 많이 피곤한 삶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서 몸은 괜찮은지 걱정이 되네! 아무튼 황가는 사자 머리 모양의 문양을 달고 있고 란델은 자신의 신분은 속일수 있다고 무척 좋아하겠지만 황가 사람들이나 기사단장님은 아마 거품을 물지도 모르겠어. 황자님에게 그런 옷을 입히다니. 기사. 자네 제 정신입니까? 이렇게 될지도 몰라!
한편 손으로 잡아서 먹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입을 벌리고 냠 받아먹는 헬레나의 모습에 란델은 살짝 당황했다. 물론 여동생에게 이것저것 먹인 적이야 있지만 그녀는 자신의 여동생이 아니었다. 물론 주군으로서 기사에게 이것저것 먹일 수야 있다지만 예상하지 못한 행동은 그를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허나 당황하지 않은 척 표정 관리를 하며 란델은 당연한 것 아니겠냐는 듯이 웃어보였다.
"하하. 당연하지. 이래보여도 최고급만 취급하고 먹고 있어. 물론 가끔은 서민들이 먹는 그런 것도 좋긴 한데 황가의 체면이라던가 그런 것들이 있으니까. 알게 모르게 신경쓰는 것이 많거든. 이미지라던가. 황가가 평범한 것을 먹으면 그 나라의 위신이 떨어진다고 해서 일부러 더 고급적인 것을 먹을 때가 많아. 솔직히 무슨 상관이냐 싶긴 한데 아바마마가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물론 어느 정도는 란델도 공감하는 바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일매일 최고급 음식만 먹는 것은 조금 질릴 때도 있었다. 물론 배부른 소리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매일 똑같은 것을 즐기는 이의 욕심에 가까운 생각을 슬며시 밝히면서 란델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럼 누굴 위해서 가져와야 해? 내 기사는 너 뿐이잖아. 내 기사는 내가 챙겨야지. 형님이나 동생들이 챙기게 할 순 없잖아?"
무슨 당연한 것을 묻냐는 듯이 란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자신이 먹으라고 그녀가 자른 부분을 먹으면서 그는 그 맛을 즐겼다.
"역시 맛있네. 그러고 보니 너는 춤을 추는 시간이 있을 때 춤을 추는 편이야? 파티라던가 그런 곳에서 말이야. 나는 어쩔까 고민 중이야. 형님도 있고 동생들도 있는데 슬쩍 빠지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곳보다는 조금 더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그런 곳이 좋은데. 하지만 맛있는 곳이 어딘지 궁금해. 특히 귀족들이 자주 가는 곳이 말이야. 이렇게 성에 있다보면 먹을 수 있는 것들이 한정되어있잖아? 그래서 궁금해. 아. 그런 것도 있지만 혹시 마을의 상가에서 희귀한 뭔가를 취급하거나 하진 않아? 사실 그런 쪽이 더 궁금한데."
그의 내면에 실려있는 호기심이 꿈틀거리면서 고개를 내밀었다. 맛집도 궁금하고, 희귀한 물건이 있다면 그것도 보고 싶은지 그는 두 눈을 초롱거리면서 내심 기대하는 눈빛을 란델은 헬레나에게 내비쳤다. 성에 있으면 들려오는 소식이 있었으나, 차단되는 소식도 있었다. 자신이 성에 있기에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고 싶은 마음은 성인이 된 지금도 어릴 때와 그다지 다를 바가 없었다.
"잠깐? 어디에?"
잠깐 나간다 온다는 그 말에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헬레나를 바라봤다. 지금 그녀는 자리를 비울 수 없지 않았던가? 이곳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잠깐이라면 나갔다 올 수 있는 것일까. 그러다가 어떤 한 가능성에 도달하며 란델은 웃음을 터트렸다.
"황자인 내가 자리를 비운 것을 눈감아주는 대신, 너도 잠시 근무에서 자리를 비우고 쉬고 싶은거야? 이해해. 이렇게 계속 한 자리에만 있으면 지루하고 심심할테니까. 그럼에도 해내는 기사들이 대단하다고 생각을 하긴 하는데. 아주 잠깐이라면 나도 눈감아주는 대신에 눈감아줄게. 그래서 어디로 안내하게?"
어차피 성밖으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성에서 파티를 여는데 황자가 자리를 비우고 성밖으로 이탈한다면 그야말로 난리가 날테니까. 그런 사실을 알 거라고 생각하며 란델은 헬레나가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 호기심을 품고 답을 기다렸다.
때로는 성에서는 보기 힘든 물건들이 그런 곳에서 취급될 때가 있었다. 물론 란델로서는 과연 정말일지 알 수 없었으나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빠른 시일내에 잠행을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허나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힘들지도 모르는 일인만큼 란델은 천천히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웠다.
"일단 정식으로 잠행을 한다면 아바마마나 어마마마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테니 조금 시간이 걸리겠는걸? 그리고 숙소와 기사 훈련장?"
굳이 말하자면 란델로서는 그런 장소도 그다지 가본 적이 없기에, 정확하게는 갈 일이 없다보기에 신선한 장소 중 하나였다. 허나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기대에 부응이야 되겠지만 숙소를 내가 들어가도 되는거야? 그러니까 여자 숙소 아니야?"
그녀는 여성. 즉 여성이 사용하는 숙소를 쓰는 것이 아닌가 싶어 란델은 의문을 표했다. 자신이 갔다가 문제가 커지는 것은 아닌지 그게 걱정이라고 생각하다 문뜩 한가지를 떠올리며 란델은 헬레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훈련장이라면 설마 나에게 검 대련을 부탁하는거야? 만약 그런거라면 내가 질 것 같은데. 물론 하자고 한다면 거절하진 않을게. 적어도 내 몸을 스스로 지킬 정도의 실력은 쌓아뒀으니까. 지겠지만, 그래도 쉽진 않을거야."
"네가 안내해준다면 잠깐 얼굴을 들이밀수도 있겠지만.. 아냐. 역시 기숙사는 안 갈래.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네가 피해를 볼 것 같거든. 황자인 나에게 책임을 묻는게 아니라 말이야."
그 점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란델은 그 사안은 피하려는 듯 거절의사를 보였다. 그저 훈련장 정도만 가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는 그녀에게 길 안내를 요청하듯이 바라봤다. 물론 그러다 몸을 살짝 트는 모습에 란델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건 그렇긴 하겠네. 한 합만으로 승부가 난다면 또 모를까. 아무리 그래도 한 합만으로 승부가 나진 않겠지? 아냐. 그럴 수도 있겠어. 네가 나보다 훨씬 강할테니까."
기사로서 임명받은만큼 그녀의 실력은 진짜였고 그저 호신용으로 검을 익힌 자신이 감당할 이가 아니라고 란델은 판단했다. 그렇기에 그녀의 검술에 조금 호기심이 생겼는지 그는 그녀의 뒤를 따르려고 하면서 넌지시 부탁 하나를 던졌다.
"그럼 헬레나. 네 검술을 조금 볼 수 있을까? 너의 실력이 개인적으로 궁금하거든."
원래라면 그 실력도 모두 보고 개인 기사로 임명하겠지만, 란델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오직 과거의 친분을 생각해서 임명한 것이었으니 실력을 보기엔 지금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그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물론 거절해도 상관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하는 것을 그는 잊지 않았따.
목적지에 도착한 란델은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까지 오는 일은 잘 없었기에 신기하기도 하고, 혹시나 성에서 자신을 찾으러 누군가가 나오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섞여있는 행동이었다. 딱히 누군가가 올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역시 오래 자리를 비우는 것은 위험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뿐, 그의 입은 가만히 닫혀있었다.
"아까도 말했잖아? 이상하다고 할 생각 없다니까."
그렇게 긴장이 되는 것일까. 또 다시 확인을 요하면서 긴장된 표정을 짓는 헬레나를 바라보며 란델은 편하게 해도 좋다고 이야기를 하며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조금 순서가 달라지긴 했지만 그녀의 검술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흥미와 호기심이 돋았기에 한 장면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란델은 가만히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그래도 너무 긴장되면 말해. 너무 긴장하면 오히려 다친다고 하잖아?"
검이란 자고로 사용자의 심리에 따라 크게 흔들리는 무기였다. 너무 긴장하면 역으로 자신을 베는 위험한 무기인만큼 그는 혹시나 컨디션이 별로거나 너무 긴장되면 그만둬도 상관없다고 이야기를 하며 헬레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하지만 자신이 있다면 얼마든지 보여줘. 황자에게 검 실력을 보여주는거, 꽤 영광스런 자리라고 하잖아? 물론 난 그런 건 그리 신경쓰고 싶지 않지만."
/전혀 짧지 않아! 아무튼 나도 답레야! 답레는 언제든지 편할때 써도 되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허리춤에 찬 검이 뽑히자 자연히 란델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녀의 전용 검이자 수도 없이 휘둘렀을 검. 그리고 그녀의 이름인 '스노우 하트'의 명예가 걸려있는 검은 그의 눈에 상당히 아름답게 보였다. 저 검에 실려있을 무게감, 책임감, 그리고 자부심은 아마 자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일거라고 추측하며 란델의 눈빛은 더욱 반짝였다.
검이 곧 선을 그으며 움직였고 그에 따라 란델의 눈동자 역시 상당히 빠르게 움직였다. 그 검끝을 조금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바라보면서 작게 감탄을 하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가 방금 검이 흐른 선을 가만히 바라보던 란델의 입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녀는 긴장된 표정을 지었을지 모르나 란델은 그와는 반대로 상당히 감탄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두 손으로 박수를 쳤다. 조용한 두 사람만 있는 공간이니 틀림없이 그 박수소리는 이전보다 더 크게 울렸을 것이다.
"당연히 잘했지. 나도 나름 검술을 배우긴 했지만 너 정도로는 못 해. 역시 내가 내 기사 하나는 정말로 잘 뽑았다니까. 집에서 엄청 자랑스러워하겠는데? 지금의 네 검술을 보면 말이야."
물론 기사단장이 어떻게 말할진 모르겠으나 란델의 눈에 그녀의 검은 충분히 멋지고 아름다운 검이었다. 기사가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했을 땀방울과 열기가 그대로 날이 되어 붙어있을테니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다. 박수를 치는 두 손을 천천히 멈추면서 란델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유지했다.
"아버지가 잘하는 것이 뭐가 중요해? 네가 뛰어나다는 것이 중요하지. 물론 넌 내 친구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하게 평을 하진 않아. 난 황자니까. 이런건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 말대로 란델은 헬레나의 검술에 일부러 후한 점수를 매긴 것이 아니었다. 사실상 기사로 임명받은 시점에서 실력은 증명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나 그의 눈에 비친 그녀의 검술은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멋지고 강렬했다. 자신이 정말로 열심히 검을 연습해도 그녀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괜히 눈동자를 그녀의 검으로 향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검을 한번 부딪쳐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들었으나 지금은 꾹 참으며 그는 괜히 장난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잘 부탁할게. 나의 기사님."
모든 위험에서 지킨다. 그것이 그녀의 사명감이라면 자신은 그에 의존하겠다는 듯이 란델은 편안하게 웃으면서 귀가 빨개진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방금 전의 멋진 모습은 어디 갔는지. 어느 순간 귀여운 모습을 비추는 그 모습에 란델은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어보이면서 살며시 저 편을 바라봤다. 병사 몇 명이 주변을 수색하는 모습이 그의 눈에 비쳤고 이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네. 이미 병사들이 나온 것 같으니까. 괜찮아. 잠시 바람을 쐬러 너를 경호로 삼아 나온 거라고 할테니까. 그러니까 괜히 딴 말 하기 없기다. 알았지?"
적어도 그녀는 무사하리라. 애초에 자신도 잠깐 바람을 쐬러 나온 것 뿐이니 별 일은 없으리라.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란델은 돌아가자는 말을 하며 병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어 병사들은 란델과 헬레나를 바라보면서 바로 경계 자세를 취했고 성에서 찾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자캐가_누군가를_울린다면 - 울린다고 한다면 황가를 모욕하는 행위나 발언을 했을 때 정말로 매섭게 돌변해서 살벌한 모습을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것으로 울린다면 아마 관심을 조금도 두지 않을 것 같네. 반대로 실수로 울린다고 한다면 정말 빠르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일거야. 란델은 이런 것으로 자존심을 세우거나 하진 않거든.
편지를_받은_자캐의_모습 - 이건 누구에게서 받냐에 따라서 다를 것 같긴 한데 뭐라고 하기 애매하네. 그래도 아마 잘 읽고 곱게 접어서 서랍에 넣어둘 것 같아.
자캐의_의외인_설정 - 의외라는 것이 가장 어려운데. 사실 란델은 시트에도 쓰여있다시피 그렇게 남에게 마음을 잘 여는 편은 아니야. 헬레나의 경우는 믿고 있으니 편하게 대하는데 다른 이를 대할땐 자상하고 기품있게 대하지만 그럼에도 벽이 느껴지는 정도로 대하고 있어. #shindanmaker #오늘의_자캐해시 https://kr.shindanmaker.com/977489
란델 리노이드 칼바니아은(는) 감정적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장검을 다루는 간부 입니다.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1068063
가고 싶어하는 곳은 많을 것 같긴 한데 란델이라면 아마 어린 시절에 놀았던 골목이나 그런 쪽을 제일 보고 싶어할 것 같아. 걸린 이후로 성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된 이후로는 한번도 가질 못했으니까. 그래서 헬레나에게 그곳으로 안내해달라고 할지도 모르겠네. 혹은 슬쩍 빠져서 그 골목으로 들어간다던가! 물론 이건 헬레나에게 바로 걸릴 것 같지만!
표정이 무서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란델은 혼자서 사라지지 않을거야!! 절대로! 간식은 글쎄. 어릴 적에는 막 크게 관심을 안 보였을지도 모르겠어. 대신 성의 간식을 몰래 싸서 나눠줬을 것 같긴 해. 하지만 지금은 또 그때의 맛이 궁금해서 먹으러 가보자고 할지도 모르겠는걸?
바쁜 시기가 끝났다고 하니 일단 다행이야!! 그래도 너무 무리는 하지 말기야! 쉬는 날에 쉬는 것도 중요하니까! 시작 상황이라고 하면 역시 마을로 내려가는 그런 것이 좋지 않을까? 가장 무난한 스타트가 아닐까 싶기도 한걸! 그리고 그냥 헬레나라니! 인정할 수 없다! 예쁘고 기품 넘치는 헬레나 기사님이다!
황가의 피를 이은 자는 원래 성 밖으로 함부로 돌아다닐 수 없었다. 아무래도 신분이 높은만큼 위험에 잘못 휘말렸다간 차후 제국을 뒤흔들 정도로 엄청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그만큼 쉽게 암살이나 범죄의 타깃이 되기 쉬웠으니까. 그렇기에 황가의 피를 이은 자들은 성 밖으로 나갈 때는 자신을 지켜줄 이를 한 두명 데리고 가기 마련이었다. 원래라면 전혀 허락되지 않았겠으나 헬레나를 자신의 호위 기사로 삼은 이후, 란델에게도 어느 정도 성 밖으로 외출이 허락이 되었다.
자신의 방에서 란델은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했다. 마을 사람들이 주로 입는다는 평민의 옷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렇다고 해서 황가에서 입는 옷을 입으면 너무 눈에 띄기 딱 좋았다. 그렇다면 귀족이 입을만한 것이 좋을까. 고민에 고민을 하던 그는 이전에 어떻게든 구했던 평민이 입는 평범한 옷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상당히 어색한 느낌이었으나, 그래도 시찰을 나가기 이전에, 간만에 마을로 내려가는만큼 너무 눈에 띄지 않는것이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그는 닫혀있는 문을 열었다.
"물론이야. 옷이 조금 어색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그녀 역시 자신처럼 평민이 입는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이 정도면 누가 봐도 황가에서 내려온 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아무튼 지금부터는 오로지 그녀에게 안내를 부탁할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미소를 지어 그녀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그럼 가볼까? 마을 시찰. 그러니까, 시찰이니까... 사람들이 많은 곳을 보는게 낫겠지? 그러니까 시장이라던가, 막 신기한 것이 있는 곳이라던가, 혹은 가볍게 휴식을 취하면서 놀 수 있는 곳이라던가."
결국 말이 좋아 시찰이지, 밖에서 놀 생각만 가득한 마인드를 살며시 내비치며 그는 소리없이 웃었다. 뒤이어 그는 그녀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고개를 기울이는 그녀의 말에 란델은 정말로 장난스러움을 담아 그렇게 대답했다. 물론 전혀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약간의 짓궂음이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로 놀러가기만 할 생각은 없었고 확실하게 해야 할 것도 할 생각이었다. 거리의 분위기, 사람들의 모습과 목소리. 그 모든 것을 듣고 아버지인 황제에게 보고할 생각이었으나 지금은 그저 가벼운 반응만 보이며 란델은 헬레나의 뒤를 따랐다.
"든든한데? 사용한 돈은 나중에 얘기해줘. 기사단장을 통해서 보낼테니까."
어디까지나 시찰은 공무의 일종이었고 공무로 사용한 돈은 당연히 공무용 자금에서 나가야 하는 법이었다. 얼마나 사용할진 알 수 없었으나 부족하진 않겠거니 생각하며 란델은 어릴 적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때는 시장에서 뭘 먹었더라. 뭔가 덜 화려하지만 신선했던 뭔가를 먹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을 하다 옛 친구들이라는 말에 란델의 눈이 초롱초롱 반응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애들은 다 뭘 하고 있을까? 내가 황자라는 거 들은 애 있어? 괜히 궁금하네."
말을 마친 직후 란델은 뭔가를 떠올렸는지 손뼉을 짝 치면서 그녀를 바라보면서 바로 한 가지를 이어 제안했다.
"그럼 김에 네 저택도 안내해줄 수 있을까? 그래도 딸을 기사로 데리고 갔으니, 인사 정도는 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그러니까 하트 경에게 말이야."
당황하면서 시선을 회피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란델은 괜히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물론 거절한다면 그것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인사를 해두고 싶다는 것은 그저 자신이 일방적으로 제안한 것이었으니까. 곤란하다고 한다면, 거절해도 딱히 상관없다는 듯이 란델은 그저 그녀의 답을 조용히 기다렸다.
허나 곧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승낙이었다. 물론 목소리가 꽤 떨리는 것 같았기에 그는 소리를 내어 크게 웃으면서 고개를 가만히 저었다.
"그렇게 떨 일이야? 너무 긴장되고 곤란하다고 싶으면 거절해도 괜찮아. 하지만 그래도 승낙이라면 거절은 하지 않을게. 하트 경에겐 따로 인사는 드리고 싶긴 하니까."
괜히 자신이 찾아갔을 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한 것은 사실이었던지라 그는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상상을 동원했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다보니 성 아래 마을의 모습이 보였다. 참으로 한가하고 평화로워보이는 그 모습에 란델의 눈동자가 괜히 반짝였다.
물론 자신으로서는 상관이 없었으나,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의 입장에선 역시 조금 곤란한 일일까 생각을 하며 란델은 헬레나에게 의사를 물었다. 그녀가 다음이 좋겠다고 한다면, 다음에 정식으로 찾아갈 생각이었다. 어찌되었건 딸을 기사로 데리고 있는 이상 한번은 인사를 드리고 싶은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만약 다음에 와야한다면 그땐 좀 더 큰 선물이라도 하나 챙겨서 와야겠다고 란델은 생각했다.
이어 들려오는 물음에 란델은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고 싶은 장소라. 사실 이곳저곳 상당히 많았으나, 정말로 가고 싶은 곳을 꼽자면 역시 한 군데밖에 없었다. 이어 란델은 저 멀리, 하늘 저 너머를 손으로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정말로 가고 싶은 장소라면 이곳을 넘어선 저 너머도 구경해보고 싶어. 어떤 곳일지 궁금하거든. 하지만 그러자고 해도 너는 반대하겠지? 너는 날 지켜야 하는 기사의 입장이니까. 그러니까 그런 것은 말 안할게. 음. 그러게. 가장 평이 좋은 식당을 보고 싶어. 과연 얼마나 맛이 있을지 말이야."
내심 밖에 품고 있던 호기심을 가득 보이면서, 란델은 주변을 살며시 두리번거리며 길거리로 들어섰다.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둘을 알아보는 눈치는 아니었고, 오늘도 어김없이 하루를 평화롭게 보내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눈에 담으며 란델은 헬레나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혹은 네가 마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도 좋아. 내 기사는 어떤 것을 좋아할지 궁금하거든."
"알았어. 그럼 다음에 정식으로 찾아가는 걸로 할게. 그리 큰 차이는 없을 것 같지만 말이야."
굳이 차이를 두자면 자신이 온다고 미리 준비를 하는 것 정도가 아닐까? 란델은 그렇게 추측했다. 어쩌면 맛 좋은 요리가 준비되어있을지도 모르고 필요 이상으로 딱딱한 자세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의 입장, 그리고 하트 경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며 란델은 스스로 납득했다.
"무리하지 마. 기사로서, 그리고 내가 황자인 이상 그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니까."
마음만 고맙게 받겠다고 이야기를 하며 란델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럴 때는 좀 더 자유롭고 싶었으나 자신의 입장이 있는 이상 그것을 고집할 순 없었다. 그것보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조금 더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또한 그와 동시에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란델은 헬레나의 뒤를 따랐다.
"그래? 그렇다면 맡겨볼까? 기왕이면 계란 요리가 먹고 싶네. 계란 요리 잘하는 곳이 어딘지 혹시 알아? 잘 모르면 그냥 메뉴가 있는 곳으로 가도 상관없어. 성에서 먹는 것이 아니라 여기선 뭘 먹고, 어떤 요리가 유행하는지 알고 싶거든. 그래도 시찰인데 아바마마에게 보고 할 거리는 있어야겠지?"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란델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앞으로 걸어가다 근처 골목길을 잠시 눈여겨봤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낯익네. 여기. 어릴 때 친구들과 달리면서 저 골목으로 들어가서 숨고 그랬었는데. ...그때가 어쩌면 좋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