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혁은 옛날의 그때가 생각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총을 맞았을 때. 가슴에 두 발을 맞고, 미간에 총을 맞았을 때. 운 좋게도 그때가 의념을 각성한 때였기에 살았지만 이번에는 살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기초훈련 기간에도 사고로 총을 맞은 적이 있었는데(정확히는 포복해서 기어가는 훈련을 하는데, 고개 함부로 들지 말라고 위에서 기관총을 쏘고 있었다. 자꾸 철조망에 걸리는 게 짜증나서 철조망을 손으로 잡고 들어올렸는데 기관총이 강찬혁의 손을 명중해서 구멍이 크게 뚫렸기에, 강찬혁의 과실이 컸지만...) 강찬혁은 상대방이 든 게 힐건인 줄도 모르고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된 게 내 주변에는 정상적인 일이 하나도 안 일어나냐..."
강찬혁이 양 손을 들었다. 만약 방망이가 있었다면 반사신경을 이용해 쳐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강찬혁은 다리를 다친데다가, 몽둥이는 부목 대용으로 묶여있었다.
자신을 향한 총구를 보고 강찬혁은 가슴이 싸하게 식었다. 아니, 아무리 불량배가 싫어도 그렇지 이렇게 대놓고 총을 쏜다고? 가디언이? 강찬혁은 이쯤 되면 그냥 왔던 길로 돌아가서 선도부하게 가까이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신이시여, 대체 이런 미친 사람을 만나는 저주는 왜 거셨는지. 그리고...
철컥!
"으악!"
강찬혁은 이대로 순순히 장전을 기다려주다가는 자신이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 의념의 힘을 다리에 집중했다. 아까 전에 다리를 쏘려는 것 같던데, 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의념의 힘이 잘못 꽂히면 죽을지도 모른다. 미치겠네 진짜. 어차피 반병신이 된 다리로 살기는 힘드니, 저 녀석이 총을 다 쏘거나, 아니면 총을 맞았는데도 견디는 것을 보고 당황하는 틈을 타 총을 뺏고 몸싸움을 할 생각이었다.
소년은 "선배님이셨네요. 반갑습니다."하고 답하며 예의 바른 자세로 인사를 해 보이는 소녀를 마주 보고 말갛게 웃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녀의 말을 경건한 표정과 자세로 귀담아들었다. 중간중간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기도 하면서 말이다.
"말씀 감사합니다. 새겨들을게요. 사실 지금 이렇게 쉬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아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성장하기 위해서는 휴식도 꼭 필요한 건데, 저는 이렇다 할 취미도 없고 아직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 못했거든요. 제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몸을 쓰는 것밖에 없어서 쉰다는 것이 더 답답하게 느껴져요."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소년은 착잡한 표정으로 가볍게 그러쥔 주먹으로 제 허벅다리를 툭툭 두드렸다. 이윽고 다시 소녀를 바라본 소년은 작은 목소리로 "저..." 하면서 운을 떼었다.
"있잖아요. 혹시 다른 학교 학생도 성당에 들어갈 수 있나요?"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는 눈치다. 키워준 삼촌의 영향으로 불교에 가까운 무교인 소년은 여태 신앙이라는 것에 관심이 없었지만,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안정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보다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생각이었다. 그것이 꼭 성당이리라는 법은 없었으나 괴로워하는 제 앞에 나타나 따뜻한 말을 건네어준 소녀가 수녀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의 바른 자세로 말하는 순무에겐 손짓으로 저어보이며 그냥 편하게 대해달라는 듯 차분한 말을 돌려준다. 왠지 경건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느낌에 조금 어색한 미소로 변했다는 것을 순무는 알지 모르지만.
" 확실한 것은 순무군이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알게 모르게 순무군은 나아가고 있다는 것만 기억하면 되는거에요. 노력하는 사람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일은 없거든요. 배에서 노를 젓는데 나아가지 않을리 없잖아요?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
하루는 주먹으로 자신의 다리를 두드리는 순무를 바라보며 걱정할 것 없다는 듯 다정하게 말한다. 애초에, 나아가지 않는 사람은 나아가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 뿐이니까. 개인마다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노력을 하면 분명히 나아간다. 그것은 신이 내린 은혜니까. 신은 노력하는 자를 버리지 않으시니까.
" ... 글쎄요, 제가 타학교의 학생을 알게 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아서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교문만 지날 수 있다면 예배당은 언제나 열려있답니다. 하지만 신께서는 장소를 가리는 분이 아니니, 그저 때때로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것 만으로도 기뻐하실거에요. "
장소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 하루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간다. '들어올 수 있는지는 알아보도록 할게요. 이따가 연락처를 알려드릴 필요는 있겠네요' 라는 말을 덧붙인 하루는 후후 하고 웃음소리를 흘리며 또다시 손으로 입을 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