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만 해도 그의 리더였던 패배자를 내려다보며, 짧게 내뱉었다. 소름돋는 피멍,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불안한 눈빛, 박살난 라디오. 피 묻은 야구방망이. 식어가는 땀방울. 그 모든 것이 강찬혁의 승리를 선언하고 있었다. 강찬혁은 리더의 팔을 붙잡고 엎어진 책상으로 끌고 가서, A4 용지 하나를 꺼냈다. 피범벅이 된 엄지손가락을 A4 용지에 꾹 누르자, 리더의 지문이 피를 인주 삼아 선명하게 찍혔다. 백지 각서였고, 강찬혁이 파이트 클럽의 룰에 따라 리더를 뭉갠 이상 백지 각서를 작성할 권리가 있었다.
삼봉 시큐리티 1팀 팀장 직위 및 관련 권한 일체를 강찬혁에게 위임함. 이 각서로 인한 불이익에는 절대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음.
6달만이었다. 강찬혁은 처음에는 그냥저냥한 비행청소년일 뿐이었다. 조직에서도 그를 총알받이로만 봤고, 적대 조직에게 쏠 총알 정도로만 봤다. 하지만 총알일 뿐이었던 강찬혁은, 쏘아진 이후에도 어떻게든 돌아와서 다른 명령을 받았다. 다른 이들이라면 그저 무식하게 달려들어 죽었을 일도, 어떻게든 살아나오도록 판을 짰다. 어차피 총알은 총알일 뿐이라지만, 다시 살아돌아오는 총알은 꽤나 매력적이었다.
싸움도 꽤나 했고, 시키는 건 잘 했기에 어느새 위치가 꽤 올랐다. 강찬혁의 성장에 리더는 일부러 위험한 곳에 보내거나, 아예 적대 조직에게 정보를 흘려서 제거하려 했지만, 그럴 수록 강찬혁은 더 강해질 뿐이었고, 외려 리더가 정보를 흘렸다는 정황까지 잡아냈다. 그 끝은... 이랬다. 강찬혁은 자기가 이겼다며 자신만만했지만, 다른 동료들은 다들 표정이 안 좋았다.
"뭐 불만 있어?"
"아니, 너... 배에..."
강찬혁은 복부를 내려다보고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시발."
그리고 쓰러졌다.
응급실에서 문어처럼 수십개의 호스를 꽂고 있다가, 이상하게도 며칠만에 완쾌됐고, 그는 병원비를 낼 때가 되자 슬쩍 도망쳐서 돌아왔다. 팀장이 되어서는 더 많은 일을 해내야 했다. 불법 사업장의 취약점을 알아내고, 도박장에서 꼬장을 부리는 손님을 "멍이 안 나게" 죽도록 두들겨패는 초특급 기술을 시연해야 했다. 그뿐인가.
"아저씨, 이거 뭐에요. 왜 짬뽕에 못이 들어가있어요?"
"뭐? 못? 뭔 개소리야. 내가 짬뽕에 못을 왜 넣어?"
"왜 넣었는지는 내 알바 아니고, 짬뽕 먹고 있는데 못 나왔잖아요. 물어내세요."
"이거 못 배워먹은 새끼가, 어디서 진상짓은 배워가지고..."
"야 들켰다! 연장 들어!"
으악! 으악!
강찬혁이 우락부락한 경비의 얼굴에 짬뽕을 그대로 처박고, 팀원들이 연장을 들고 적대 조직의 사업장을 마구 때려부수기 시작했다. 일반인이 엮이면 끝이 안 좋기에 일반인들은 도망치면 건드리지 않았고, 가만히 앉아있어도 먹던 상을 엎어버리는 정도로 끝냈지만, 안에서 튀어나오는 놈들은 무자비하게 두들겨팼다.
"야 됐다! 튀어!"
중국요리집이 완전히 박살나버리자 팀원들과 함께 도망쳤다. 그걸 시작으로, 위에서 찍어주는 업장들은 전부 뒤엎어버렸다. 뉴스에 조직폭력배 소속 업장들이 큰 피해를 입어서, 피해액이 10억에 달한다는 보도를 보고는 신나게 웃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 문제가 생겼으니...
"찬혁아. 너네 팀 일 잘하더라."
"잘 해야죠. 믿고 맡기셨으니까요."
"새끼, 깡패 주제에 입은 잘 털어요. 뭐, 됐고... 너 남의 업장 털기만 하는건 좀 재능낭비고... 위에서 삼봉캐피탈이라고 이제 사채업 시작한다고 했거든. 너 거기에 아웃소싱 좀 해라."
"아웃소싱이요?"
"아웃소싱 모르냐?"
"뜻이야 알죠. 그런데..."
사장은 더 말할 것도 없다며 명함을 내밀었다. 누구나 조건없이 빠른대출 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사장은 강찬혁을 가리키면서 설명했다.
"요즘 사채가 아주 뜬단 말이야. 규제가 팍팍 풀린 덕분에 연이율은 최대 70%까지 올랐고, 모욕죄나 스토킹, 협박도 이 추심 관련하면 정상참작이 되거든. 이런 데에 발 안 담그는 게 바보지.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빌려줄 때는 양복쟁이 샌님들이 빌려줘도 되지만, 돌려받을 때는... 너같은 애들이 힘 써야 하는 거다 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