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의 말에 정말로 그렇다는듯 웃으며 맞장구를 치면서도, 한편으론 거짓말을 드린 거 같아 조금 죄송해졌다. 선배님....이건 얘기드리지 않겠지만 딱 하나 안 비슷한 부분이 있사와요......에미리는 종교가 없답니다, 저희 어머니는 과학이 종교이시고 아버지는 무기를 곧 신으로 받드시는 분이시어요...뭔가 나중에 고해성사를 드려야 할거같은 죄책감이 들지만 지금은....지금은 그냥 넘어가자...괜히 죄송해진다. 그도 그럴게, 이건 그저 분수에 맞게 살다 얻은 능력일 뿐이니... "하루 선배님 같은 분의 제안이라면 누구든지 받아드리지 않겠사와요? 선배님들께서 주시는 기회라면 두말않고 잡아야지요. 전~혀 껄끄러울리가요!"
누가 어느 신입생이 이런 재학생을 껄끄러이 여긴다고, 말도 안된다는 듯한 목소리로 답이 이어졌다. 솔직히 말해 진짜 신입생들이 껄끄러이 여기는 부류는 따로 있지만 굳이 여기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기에 조용조용히 넘어가고 싶다....
"후후🎶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사와요 하루 선배님. 에미리는 신경쓰지 않는답니다~ "
전혀 괜찮다는 듯 손을 저어보이며 실눈으로 웃었다. 이정도까지는 뭐 미안할 것도 아니다. 그야 친해지고 싶어 하는건 나쁜 생각이 아닌걸. 뭔가 이 선배님은 뭔가가 들뜨면 어떤 마음이신지 잘 드러나시는 것같은 분인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소위 말해 거짓말 못하는 타입같단 소리다.
"저어, 보건부라고 하셨지요! 한번쯤은 이런 동아리활동 열심히 해보고 싶었는데 잘 됐네요~ 비는 시간대에 입부 신청서를 준비해 가겠사와요~! 보건실로 가면 되는거지요? "
제 양손을 깍지를 끼며 눈을 초롱초롱 밝히고 물었다. 딱 봐도 당연히 보건실로 가야될 것 같은 이름이긴 하지만 원래 이런건 당연한 걸 물어줘야 하는 법이니!
처음 만난 사람끼리 할만한 질문은 아니라는 말에 준서의 눈이 가늘게 트인다, 그런가? 대답은 않고 어느 사이엔가 거의 줄어든 식판을 한번 호노키의 식판을 한번 번갈아 바라본다. 그것에 대해선 딱히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대답할 말이 없으면 굳이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 습성이었지만, 친구를 만들기 위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시점에는 그러면 안되겠지. 입을 열긴 열었는데 대답이 딱히 나오질 않는다.
"그게 뭐... 그런건가?"
선선히 수긍을 한번 했을 뿐, 뭔가 더 할 말이 없는지 고개를 주억거리다 다시 말을 이어본다.
소우는 방싯 웃으며 그가 건네는 티슈를 받았다. 그걸로 입가를 가볍게 닦은 소우는 손 안에 남은 음료수를 바라보다.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목구멍을 움직이며 안에 있는 내용물을 모두 삼켜버린 소우는 크으으으으 하면서 앓는 소리를 냈다. 그래도 아까와 다르게 맛을 아는데다가, 각오를 하며 마셨기 때문인지 기침은 하지 않았다. 단지 정말로 정말로 썪은 얼굴로 인상을 쓰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 사이 사내는 음료수를 뽑고 있었다.
"네. 디가 아, 티가 나나요?"
음료수의 후폭풍인가, 묘하게 발음이 새던 걸을 고쳐서 말한 소우는 나이젤이 건네는 음료수를 보고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웃으며 받아들였다. 받은 음료수는 비교적 평범할 것 같았다. 그 음료수를 말린 사람이 준 것이니까. 남자는 자신 몫의 음료수를 마시며 말을 꺼냈다. 그는 제노시아교 4학년이었고, 이름은 나이젤 그람이었다. 그리고 방금 자신이 마신 건 이 섬에서 악명높은 지회였다. 으으 그런걸 왜 이렇게 평범한 자판기에 놓는 거지. 하다못해 경고라도 적어주면 안되나. 소우는 이런 생각을 했지만, 정작 그런 경고문을 적어둔다 하더라도 소우 본인은 오히려 궁금해할 것을, 본인도 알았다.
나이젤의 말을 들은 소우는 푸스스 웃음을 터트렸다.
"이건 제 경험상 이야기인데요."
비밀을 말하듯, 옆에서 입모양을 볼 수 없게 손으로 가린 소우는, 작진 않지만 소곤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런가요. 어쩌면 제가 열심히 기도를 드린 덕분에 운이 좋게 사오토메 양을 만났을지도 모르겠네요. 이렇게 선배를 어려워 하지 않는 후배님이라니, 기쁘네요. "
손까지 저어보이며 괜찮다는 듯 말하는 에미리를 보며, 하루는 연분홍빛 홍조를 새하얀 볼 위에 띈 체 기분 좋게 톤이 올라간 목소리로 말한다. 에미리의 말대로 좀처럼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하루는 표정으로 어지간한 감정은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물론 하루가 마냥 순수해서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에미리와 있을 때처럼 평범한 시간에는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에미리의 말에 솔직하게 기뻐하며 웃어보이는 하루였다.
" 후배님은 잘 알고 있네요. 아, 부 이름이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랑 다를 바 없긴 하지만.. 맞아요, 신청서를 작성해서 보건실로 가져가면 된답니다. 정 혼자 가기 애매하면 내일이라도 같이 가보는 것도 괜찮구요. 후배님 덕분에 어렵지 않은 부활동이 될 것 같아서 기뻐요. 얼굴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힘이 될테니까요. "
하루는 에미리의 대답에 고개를 부드럽게 끄덕이며 말한다. 보건부의 신청서를 제출하는 곳이 보건실이라는 건, 조금만 생각해보더라도 알겠지만, 그런 에미리가 대단하다는 듯 가볍게 박수까지 더하며 설명을 덧붙인다. 본인도 그리 오래 활동한 것은 아니었기에 특별하게 더 자세하게 알려줄 수 없었지만, 그래도 후배와 친해질만한 것이 하나 더 생겼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 자, 이렇게 예배당에서 쭉 걸어나오면 학교의 현관이 나온답니다. 여기서 반대편으로 나아가면 기숙사가 있구요. "
어느덧 현관 부근까지 천천히 걸어온 하루는 걸음을 멈추고, 두 손을 아랫배 부근에 공손히 모은 체 다정하게 말을 이어간다. 그리곤 살포시 미소를 짓고는 에미리를 바라본다.
" 혹시 더 궁금한 게 있을까요? 어려워 하지말고 물어봐도 괜찮아요. 숙소까지 그리 멀지도 않고, 저도 여유롭거든요. "
소년은 처음 보는 소녀에게 별안간 팔을 붙들려 당혹감을 느꼈지만 혼자가 아니게 되었다는 것과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스러웠다. 그리고 섬에 와서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게 되는 걸까 하는 기대감까지도. 호박색 눈동자가 탐스러운 빨간 머리 소녀는, 소년보다 머리 하나는 작아서 소년이 약간 고개를 기울여 내려다보는 모양새가 되게 만들었다.
"정말? 그래도 돼?"
소년은 들뜬 목소리로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같이 먹자며 팔을 붙든 것은 소녀였지만 식당 문을 힘차게 열어젖힌 것은 소년이었다. 소년은 고기를 배불리 먹을 생각에, 또 친구를 사귈 생각에 소개를 하는 것도 잊은 채 성큼 식당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서서 옆에 매달린 소녀를 살짝 내려다본 소년의 얼굴에는 뿌듯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마치 둘이서 대단한 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뿌듯한 미소가.
직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은 소년은 컵에 물을 따라 맞은편에 앉은 소녀에게 건네고서, 소개가 늦었다는 듯이 멋쩍게 웃으며 운을 떼어놓았다.
"나는 순무라고 해. 이번에 청월에 입학했어."
소년은 교복 차림이 아닌 소녀를 보고, 성학교 학생인가 하고 짐작하며 컵을 들어 가볍게 입술을 적셨다.
식판이 거의 처리가 된 준서와는 비교되게, 그녀의 식판은 거의 줄어들지않고 있었다. 식사는 20분 이상, 음식물은 최소 20번 이상은 씹어야 제대로 된 소화가 되기 때문이다. 그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을 뿐이였다.
"서로 친구가 될 생각이 있다면요."
타다는 일일히 참견하는 타입의 모범생이 아니였다. 묵묵히 자신이 주어진 일에만 충실하고 남에겐 일절 관심을 주지않는 타입이니까, 때문에 차근차근 그에게 무엇이 잘못 됬는가, 무엇을 어떻게 올바른가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은 그녀에겐 귀찮은 일이었다. 무엇보다...타다는, 친구라는 것에 대해서 생소하게 들려온다. 학창때는 사교생활에 쓸 힘을 모조리 학업이나 검도에 쏟아부었으니까. 머릿속에 기억되는 지식만이 있을 뿐이지 경험은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