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해. 이건 아마 내가 이 섬에 도착하고 가장 많이 떠올린 감상일 것이다. 인공적으로 만든 섬이라는 것도 신기하고, 세 학교도 신기하고, 무엇보다 가디언들이 가득하다는 게 신기했다. 그냥 알음알음 듣기만 했던 유명인들이 이 섬, 이 학교에 자리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아마 생활하다 보면 한 번 정도는 대화할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종종 고개를 들었다. 4년 동안 있을테니 기회가 없진 않을 것이었다. 죽지 않는다면 말이지만. 4년은 커녕 내년에 내 사지가 멀쩡할 지도 알 수 없다. 그래도 죽기 위해 온 사람이 아니기에 일단 당연히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이라도 이렇게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긍정적이라는 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의 장점이라면 호기심이 아닐까나. 지금도, 열심히 다리를 움직이고 있고.
처음 온 곳의 지리를 대충이나마 파악하기 위해 섬을 돌아다녔다. 오늘 목표로 한 곳은 상점가. 가게가 몰려있는 만큼 자주 드나들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약이나 장비, 취미용품 등등 한두 달 여기 있을 것이 아니었다, 길을 외워둬야지. 길치가 아닌 것이 다행이었다. 당장 지갑이 얇기에 특별히 뭘 사지는 않고 고개를 들이밀며 이것저것 구경하던 나는 잠시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바로 옆에 자리한 자판기가 눈에 띄어서, 벤치에서 일어나 자판기 앞에 섰다. 본 적 없는 음료들이 빛나는 등 아래서 형형색색의 몸체를 보이고 있었다. 하나 마실까? 하고 고민하던 나는 곧 돈을 넣고 손가락을 이리저리 흔들며 음료를 고민했다. 그러다 하나, 그냥 아무거나 누르려 했다.
전직 가디언, '아브엘라'는 고기를 썰던 식칼을 내려 놓는다. 그녀가 고개를 돌면 보이는 것은 식탁에 앉 다리를 통통 튀기고 있는 소녀, '카사'. 창창한 40대한테 벌써 할멈이라 부르는 저 나쁜 입! 물론 고정하는 것은 포기한지 오래다. 한숨을 쉬며 아브엘라는 몸을 완전히 틀어 소녀를 바라 보았다.
"뭔데."
"난 왜 안 죽어?"
아브엘라는 한숨을 머금었다. 별로 예상치 못한 질문은 아니다. 어린아이들이란 언제나 궁금증으로 가득찬 존재이고, 그 중 카사는 특히 호기심이 많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최근 그녀의 질문은 나름의 고뇌를 담고 있었다.
할멈, 왜 나는 따뜻하지 않아? 할멈, 왜 눈물은 나만 흘려? 할멈, 할멈...
"언제 죽느냐"가 아닌 "왜 안 죽느냐"이다. 언제부터 였더라. 마지막 형제가 노사한 후였던가, 최근 늑대 무리에 새로운 새끼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였나...
"그 질문은 왜?"
카사는 부르퉁한 표정으로 턱을 굈다.
"엄마도 죽었고, 형제들도 다 죽었어. 나도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 일도 없잖아. 너무 슬퍼."
야생에서 죽음은 언제나 가까운 존재다. 한 이의 생존이란 다른 이의 죽음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거기에 환경 자체가 장수에 특화되어 있지 않다. 17년까지 사는 늑대의 수명도 야생에서는 반으로 깍아진다. 아무리 사랑하고 아무리 아껴도 어쩔수 없는 곳이다. 무릎위에 안착한 카사의 손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작은 손발이 부르터져 살보다는 가죽이 될때 까지, 저 작은 아이는 무슨 심정으로 달렸을까? 아브엘라의 심증이었지만, 저 작은 체구는 이름모를 부모의 유전보다는 불균형한 영양상태의 흔적이라 생각한다.
"...너는 인간이라 그래. 너랑 나는 훨씬 오래 살아."
"인간은 얼마나 오래 살아?
잘하면 100까지 살수 있다는 말을 하자 소녀가 질린 얼굴을 한다. 그에 아브엘라는 작은 웃음을 삼켰다.
"카사, 내가 누누히 말하지만..."
이에 아브엘라는 다시 등을 돌려 식사준비에 매진한다. 이 말을 반복한지 몇번이나 되, 소녀의 질색하는 얼굴은 보지 않아도 예상이 갔다. 아브엘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 그녀는 아이를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싫어하는 것에 가까웠다. 수풀 너머로 빛나는 한 쌍의 호박빛 눈동자가 자신의 식탁에 앉아있는 소녀로 이어줄지는 생각도 못했다. 거기에 더욱 더 정을 붙혀 이름도 지어주고 이런 진심어린 소원이 생길 줄은 생각도 못했다.
"나는, 네가 산을 내려가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 너랑 같이 살수 있는 친구랑 가족도 만들고 말이야."
아브엘라는 말을 돌리는 편도, 굳히 거짓말을 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이 말은 진심이었다. 자신이 있었지만, 평생 같이 해줄 수도 없고 결국엔 아브엘라도 한 사람 뿐이었다.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인 이상, 카사는 더욱 더 많은 사람을 필요로 했다.
"가디언 아카데미에 가면 좋겠지. 거기서 친구들을 사귀고 말이야. 너 만큼 강하고 오래 사는."
거기에 카사는 지나치게 강하고, 지나치게 빠르다. 카사가 이 오두막을 자신의 영역으로 칭한 후 아브엘라는 그 무슨 맹수도 본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아브엘라는 이 소녀가 네발로 달리는 것을 본 적 있었다. 의념도 별 다른 훈련도 없이 그런 속도를 내는 아이다. 이 작은 산속에서 끝나기에는 아까운 인재다. 무엇이기 이전에 아브엘라는 가디언이었다. 인간의 창과 방패로서 재능을 보면 여러가지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브엘라는 썰다 만 고기를 끝내려 식칼을 들었다. 이번에도 카사는 싫다고 할 것이고, 애초에 가디언이라는 길이 누구에게 강요할 것이 못 됬다.
"...할께."
"응?"
"할멈이 말한 그 스카우터. 만날께."
가벼운 말투와 달리 굳은 결심을 담은 말. 예상치 못한 대답에 아브엘라는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카사는 폴짝, 체구에 비해 큰 의자에서 뛰어내렸다. 문으로 걸어가는 카사의 뒷모습에 아브엘라는 멍하니 의문을 던졌다.
"...밥 아직 안 됬는데."
"옆 산의 곰탱이랑 아직 결판을 못 냈어. 오늘 끝내야지."
막 내린 결정 치고는 이미 떠나겠다는 결심을 담을 말이었다. 뒤돌아보지도 않고 문 너머로 뛰어가는 작은 적갈색 머리의 소녀. 아브엘라는 헛웃음을 지었지만, 이내 입가에는 진심어린 미소가 담긴다.
진정하게 카사를 위한다면 아마 이 산에서 계속 살게 하는 것이 좋은 선택일 것이다. 인간 세상의 어려움따위 하나도 모르게. 잦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해 어둑한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단순한 일상. 사람의 슬픔과 언어로 전달되는 복잡한 감정같은 거 하나도 모른 채, 큰 꿈도 지나친 절망도 없는 평온한 나날. 하지만 아브엘라는 무엇이기 이전에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카사가 밖으로 나가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울상을 짓다가도 행복하게 웃게되고. 더욱 더 강해지면서 너무나도 약하다는 것을 깨닫고...
무엇보다도 지킨다는 것의 행복을 깨달았으면.
철컥, 다시 열리는 문의 소리에 아브엘라는 시선을 돌린다.
"할멈!" 거기에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나 할멈이랑 같은 가디언이 될꺼니까.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최강의 가디언 말이야."
할 말은 다 하자 마자 다시 사라지는 소녀. 아브엘라은 그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웃어줄수 밖에 없었다. 이제 쯤이면 카사에게는 다시 달려나가 들리지는 않을 답을 내뱉는다.
"...그래."
Casa. 그녀의 모국어로는 '집'이라는 뜻이다. 나의 Casa, 나의 집. 너의 보금자리를 떠나, 진정한 너의 집을 만들어 나가렴. 다시는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속에서 진심으로 웃어주렴. 이 산속은 너를 담기에 부족하고, 밤하늘은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식판 위로 한가득 쌓인 음식들이 우선 보인다, 못 먹어서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는지 좀 과하게 쌓아 올린 반찬을 쏟지도 않고 능숙하게 들고 움직이는 모습이 제법 시선을 끌 만 했지만 그 식판을 든 주인의 인상 탓이련지. 식판을 살피던 학생들은 고개를 돌려 소년의 얼굴을 한번 흘끔거리고는 대강 시선을 돌리고는 했다. 그렇다고 그 시선에 태도를 움츠린다거나 눈치를 보며 재빨리 움직이는 것도 아닌지라, 느릿한 걸음을 걷던 소년에게 남은 자리가 돌아갈 일은 없었다.
그렇다. 과도한 식판을 들고 꽉 찬 테이블들을 한번 둘러보던 소년은 그제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식당 벽을 마주보고 서서 먹는 수 말고는 없다.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은데.
그렇게 잠시 걸음을 멈췄다가, 자리가 하나 끄트머리에 보이자 얼른 거기로 먼저 앉는다. 제 앞에 앉은 상대가 누구인지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확인했고.
가끔 부산 해운대가 그리워지만 항구에 오곤 했다. 바다 근처 카페-겸 비상대기소에 항상 상주하시던 가디언 언니오빠들, 긴장되지만 평온한 묘한 분위기 속에서 집 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보냈던 그곳. 지아는 항구 방파제에 앉아 다리를 흔들거리며 옛날 일을 생각중이었다. 옛날에는 어땠더라, 언니오빠들이 해질녘 되면 우리보고 이제 집에 가렴, 이라고 하면서 가끔 과자 주거나 집까지 데려다주거나... 멍하니 저녁노을을 보고있으니 떠오르는 기억들이었다.
"그 오빠는 잘 지내나~?"
어린 지아의 기억속에 또렷하게 남은 사람들 중에는 그런 가디언들 말고도 또래의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지금쯤 잘 지내려나, 그런 생각과 함께 벌러덩 드러누운 시야의 저 너머로, 누군가 다가오는게 보였다. 오늘은 저사람이랑 친구하자, 지아의 즉흥 계획이 시작되었다.
사람은 움직이지않아도 살 수 있지만 건강할 수 없다. 그리고 움직이기위해선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너지란 무엇인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기에 보충을 해야한다.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것은 식사를 하는 것. ..그래서, 타다는 가디언 아카데미로 오고나서 첫 식사를 하고 있었다.
메뉴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은 다음 식기를 준비한 뒤 그저 기다린다. 진열된 컵과 물이 있지만, 목이 마르지 않는한 식사를 할때의 수분 섭취는 그다지 추천하지않는다. 긴 시간이 걸리지않고 주문한 메뉴가 찾아오자 타다는 식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아니, 정확히는 시작하려하였다.
"동석 좀."
누군가가 자신의 앞에 앉아서 양해를 구하면서 짧은 말을 건네기 전에는. 식기를 집었던 손은 멈칫하고 시선은 주변을 둘러본다. 꽉 찬 테이블들. 어느 자리도 사람들로 붐빈다. 그 순간 타다는 상황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별 다른 대답은 하지않았다. 그저 조용히 자신도 하던 일을 마저 한다. 침묵은 곧 긍정. 거부 의사를 표출하지않았다. 무시한 것이 아니다. 그저 답변을 하지않았을 뿐.
나이젤은 조각품 위에 쌓인 나무조각을 불어서 털어내다가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오늘따라 영 집중이 되지 않는다. 이럴 때 힘들여 조각을 해봤자 잘못 깎아내거나 제 손만 베이기 일쑤다. 조금 밖에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는 게 좋을까. 작업복을 교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후드집업을 한 겹 더 껴입고 후드를 깊숙히 눌러쓴 채로 상점가로 나갔다.
익숙한 얼굴보다 모르는 얼굴이 더 많이 보인다. 아마, 1학년들일까. 나이젤은 자기 1학년 때를 떠올리며 칙칙한 추억에 젖었다. 자신도 저렇게 활기찬 모습으로 길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던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었지만. 나이젤은 칩 기능을 몰라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몇 명의 학생들을 도와주면서 무작정 길을 돌아다녔다. 조금 뒤, 몸이 지칠 일은 없었지만 피곤하고 목도 말라왔기에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근처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으려고 했다. 그래서, 바로 옆에서 먼저 일어나 자판기 앞에 선 소우의 뒤쪽에 설 수 있었다.
"...!"
그 순간 눈에 보인 것은 가벼운 태도로 '그것'을 뽑으려는 소우였다. 아니, 왜 하필 골라도 그걸? 알고도 마시려는 거든, 모르고 마시려는 거든 말려야 한다! 멋모르고 1학년 때 호기심으로 '그것'을 뽑았던 기억이 추억을 깨부수고 떠오른 나이젤은 피곤함과 겹쳐 순간 이성이 마비되어 버렸다.
"그게 뭔지 알고 마시려는 거야...?!"
평소 입에 달고 살았던 예의조차 잃은 나이젤이 식은땀을 흘리면서 소우를 말리려 이쪽 좀 돌아보란 뜻으로 어깨를 건드렸지만... 나이젤은 소우의 뒤쪽에 있고, 소우는 버튼을 누르려고 하고 있었다. 즉, 까딱하면 버튼이 눌려서 '그것'이 나와버릴 상황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지훈은 느릿하게 중얼거렸다. 방파제에 부딪히는 파도소리, 그리고 바다에서 풍겨오는 짠 냄새. 그리운 감각이었지. 고향에서는 바닷가나 파도를 자주 구경하면서 놀았으니까. 다들 지금쯤이면 뭐 하고 지내려나, 라고 생각하기도 잠시, 그는 원래 이곳에 온 목적대로 항구에서 유명한 음식점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고향에서 함께 놀던 또래중에 기억에 남는 친구도 있었던가. 부모님의 명성도 명성도 명성이었지만, 그 성격 때문에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분명 이름이...
" ...아. "
벌러덩 누워있는 소녀를 발견한 지훈은 무표정하게 중얼거렸다. 말없이 누워있는 소녀에게 점점 다가오던 지훈은 소녀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그제서야 무언가 제대로 된 말을 꺼냈다.
자리에 앉자마자 물을 한 컵 부어 마셨다. 사실 누가 앉아 있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제 앉는 것이 우선이던 소년에게 제대로 들어올리가, 뒤늦게서야 인사를 건넨 것도 나름 이 아카데미에서 무언가를 배운 덕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말 없이 앉아서 말 없이 먹다가 말 없이 일어서서 훅 가버렸겠지. 실은 그 편이 편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대뜸 꺼낸 인사여서 그랬던지 별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묵묵하게 밥을 먹고 있던 소녀를 내려보던 소년이 저도 식기를 집어 크게 한 술 떠 입에 밀어 넣기 시작한다. 이 섬에 들어와서 처음 제대로 실감을 한 것은 모든 시설이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좋다는 것 정도였을까. 그래서 가끔은 자고 일어나면 모두 꿈이 아닐까 싶은 상상을 할 정도였다. 근데 지금은 아니다, 지난 번 이사장실을 찾아갔을 때 살기 하나만으로 기절하는 충격적인 경험 이후에 그런 사소한 걱정을 하고 있을 틈이 없어졌으니. 그러고 보니 강해지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의뢰? 혼자 가면 더 많은 것을 배우겠지만 돌아오지 못한다면 말짱 꽝이다. 그래서 친구를 사귀라고 했던건가? 아, 그렇다면야.
한참 식기가 식판에 부딪히는 옅은 쇠소리만 들리던 가운데에, 대뜸 소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름이 뭐야."
친구가 되기 위해서 이름부터 물어보는게 맞던가? 잠시 식기를 멈추고 당신을 빤히 바라본다.
보통, 자판기 버튼은 누르려는 시점에서 바꾸려면 늦는다. 안타깝게도 이 금발머리 앳된 소년이 그러했다. 이 자판기 안에 들어있던 음료 절반 이상이 그렇듯 정체모를 음료를, 소우는 갈색머리의 녹색 눈이라는, 초목과 부드러움이 연상되는 색체의 사람이 말리기 전에 뽑아 버렸다. 버튼이 기계 안쪽으로 눌리고, 곧 덜커덩 하는 소리와 함께 나왔다. 그걸 꺼낼 생각도 못하고 소우는 그저 멍하게 자신의 어깨를 건드린 그를 바라보았다.
"어, 이거 뭔가 나쁜 건가요?"
누군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보다 선배일 것 같다. 소우는 자신보다 정확히 17cm 더 큰 사람을 올려다보며 꽤나 예의바르게, 그러면서 너무 딱딱하지는 않게 물어보았다. 그러면서 조심조심 몸을 숙여 자판기 구멍에 있는 음료를 꺼내들었다. 적당하게 차가운 기운이 남아있어 손바닥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이 음료를 손에 들고 소우는 상대를 보았다.
"맛 없어요? 이거?"
화려하면 100중의 90 정도는 독이 있는 버섯과 다르게, 딱 봐도 알 수 없는 음료수 캔을 소우가 살짝 흔들었다. 독은 없지만, 맛도 없다.
제가 물어본 지 얼마나 지났다고 다시금 식기에 손이 간다, 식사 예절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이 급하게 음식을 볼이 미어져라 밀어 넣던 소년이 문득 고개를 들어봤다. 안가르쳐줄거야? 묻는 듯 두 뺨은 음식으로 불룩하게 튀어 나온 주제에 한동안 바라보다 이어지는 대답에 잠깐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여봤다. 헌팅? 근데, 헌팅이 뭐지? 분명히 수업 시간에 헌터와 가디언의 차이는 배웠던 것 같은데. 왜 사냥을 한다고 생각을 하는거지? 나를 경계하고 있는건가? 이 섬에서도 이미 헌터가 침입한 전적이 있었던건가? 보안이 그렇게 허술한가? 기본적인 상식이 결여된 인간이 다른 전문적인 분야의 지식을 잘 알고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몸소 보여주는 고민 끝에 소년이 음식을 꿀꺽 넘기며 물을 한 컵 들이켰다.
"헌터가 아니라 가디언 지망. 그래서 이름이?"
정말 안가르쳐 줄거야? 제가 독설을 들었다는 것도 인지를 못한 소년이 끈덕지게 재차 물어온다.
비록 시간이 많이 지나서 목소리도 변했고 키라던가 변한 것이 많지만, 사람의 감과 기억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잊혀질 리가 없었다. 지아는 본능적으로 말을 걸어온 누군가가 어릴 적에 헤어진 그리운 동향사람이라는 것은 본능적으로도 알만한 일이었다.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아본 지아는, 잊을 리 없는 이름을 가진, 자기보다 머리 하나보다 더 커져버린 그를 불렀다.
"지훈오빠? 지훈오빠!"
잊을리가 없었다. 유년시절, 부모님이 출근하고 퇴근해서 돌아올 때 까지 거의 매일같이 따라다녔던, 가족이나 다름 없었던 사람을 잊을리가.
'꼬르르륵...' 뱃골이 밥을 넣으라고 신호를 보내온다. 교내 식당에서 밥을 아무리 많이 받아먹어도 육체 단련부 활동에서 소비하는 열량을 도저히 따라오지 못한다. 소년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근처의 식당가를 찾았다. 용돈도 점점 떨어져가는 마당에 식비가 부담스러워 값싸고 양이 푸짐한 음식점을 찾아야만 했다.
소년은 홀로 식당가를 거닐었다. 북적이는 식당가의 분위기는 소년이 혼자 식당에 들어가기 부담스럽게 만들었고,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것은 아직 어린 소년에게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같이 밥 먹을 친구라도 사귀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외로움과 아쉬움이 밀려온다.
'꼬르르륵...!' 다시 한번 뱃골이 크게 울린다. 소년은 누가 듣기라도 했을까 얼굴을 붉히곤 괜히 교복 자락을 털어내는 시늉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가...가디언 지망....이 아니라. 물론 사전적인 의미의 헌팅은 새나 짐승따위를 포획하는 일 따위를 말하긴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보통 처음 보는 사람에게 교제를 목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헌팅'이라 하지않던가? ..어찌됬든간에, 남성은 자신에게 헌팅을 목적으로 말을 건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가디언 지망이라는 것은 말하지않아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면 단순히 이름을 묻는 이유를 생각하자면...모르겠다. 어떠한 이유로 인해서 만난 것도 아닌데,
"이름을 물어본 쪽이 먼저 알려줘야 하는 건 아닐까요."
하는 수 없이 타다는 상식적으로 대응하기로 하였다. 이유를 찾는 것은 자신의 머리만 아파오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덜커덩. 자판기에 동전을 넣어 값을 미리 지불한 다음 버튼을 눌러서 원하는 음료수를 주문하는 과정을 거친 후 들리는, 줄여서, 구매 완료를 나타내는 소리. 아, 안 돼...! 이미 뽑았잖아! 뽑기 전이라면 몰라도 이미 뽑아버린 후라면, 환불도 안 되는 거 그 맛없다는 음료수 맛이나 보자... 라는 마음으로 마시려고 하는 게 사람 마음. 그리고 대체 왜인지 몰라도 이 음료수가 무척 맛있다고 느끼는 소수의 입맛을 제외하고, 이 음료수의 맛은 이미 트라우마급이다. 그런 걸 왜 자판기에 넣어 놓은 건진 모르겠지만.
"어......"
나이젤은 이거 나쁘냐는 순수한 질문에 점을 여섯 개나 찍으며 말을 흐렸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 거죠. 도와줘요 문과뇌! 하지만 나이젤은 이과라서 실패했다. 공돌이의 폐해. 맛없으니까 먹지 말라는 말로는 설득력이 없을 거라는 것만 머릿속에 남았다. 그렇게 밖으로 나간 말은...
"그, 그건 폭탄이야!"
맛이 폭탄급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예민한 사람은 마신 다음에 속이 느글거리다가 폭발(?) 혹은 분출(?) 등의 부작용을 느낄 수 있으니 정말 틀린 말은 아니다. 급하게 오느라 벗겨진 후드를 다시 눌러써 수상해 보이는데다 뭔가 조급한 말투를 쓰고 있는 나이젤의 모습은 폭탄(?)이라는 거짓말에 조금, 조오오오 금... 설득력을 더해줄 만한 모습이기도 했고.
"그, 그러니까... 마시면 안 될지도..."
아니, 설득력이 떨어지는 말투가 되어버렸다.. 아무튼 나이젤은 선의의 거짓말을 완성하기 위해 자기보다 17cm 작은 소우의 손에 들린 음료수를 가져가려고 손을 뻗었다. 이대로는 뺏는 것 같아 보이니까 적어도 음료수값은 줘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 따윈 이미 머릿속에 없었다.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호칭에 지훈은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지아를 내려다보았다. 이젠 키차이가 꽤나 난다 싶었던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특별한 일은 없었는지 등등 물어보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막상 질문하려고 하니 말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무슨 말을 건네지. 한참이나 -사실 몇초 지나지도 않았지만- 고민한 끝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 ...그 때보다 키는 조금 더 작아진 걸지도 모르겠네. "
반가운 마음에 괜히 놀리듯 중얼거렸다. 옛날에도 자주 이런 식으로 장난쳤었지. 그땐 지아가 어떻게 반응했더라? 너무 오래된 기억인지 잘 떠오르지 않았던가. 곧 지아가 보일 반응으로 떠올렸겠지만.
식당가. 그리고 카사. 이 둘은 떼어낼랴 떼어낼수 없는 조합. 원래 야생의 짐승, 아니, 집에서 키우는 것들을 봐도 그렇다. 배를 채우고 채우고 밥을 이미 먹어도 하루종일 굷은 양 주인에게 떼쓰는 존재! 카사도 그런 숭고한 본능을 이어 받을 수 뿐.
꼬르륵...
그러니까 이건 카사의 잘못이 없었다.
식당가 의 한 구석. 북적이는 거리와 다르게 인파는 한 곳에게 적절선을 무시하며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 한거리의 동그라미 중심에는 카사, 그리고 카사가 쨕 달라붙은 한 식당의 표지판이 있었다.
[무한리필 고기 뷔페 - 배터질 만큼 먹자! 2인용 특별 세트!]
가지고 있는 GP는 부족하다. 일인용 뷔페로 쓰기에는 부족하다! 저 2인용 세트를 따~악 반으로 나누면 될텐데! 표지판 뒤에는 이미 맛있게 고기로 배를 채우는 사람들이 보여, 억울함에 매운 눈물이 날꺼 같다. 딱 한명, 같이 먹을 딱 한명이라도 더 있었다면! 처철하게 물기어린 눈과 더욱 더 물기어린(?) 입에 그 생각은 주위 모두에게 드러났다. 여기서 나쁜 소식. 신입생으로서 카사의 가디언 칩 연락부는 텅텅 빈것이나 다름없다. 지원요청은 없. 허나 여기서 좋은 소식! 수미터 떨어진 곳에서 같은 목적으로 걸어가는 학생이 한명있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기적, 운명의 공동체라 불릴 만한 기적!
이미 늦었고, 뽑은 당사자는 이 음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줄 정도라는 위험성을 모른 채 소우는 자신의 앞에서 제대로 대답은 못하고 말을 흐리는 이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뭐지? 하는 생각으로 제 뒷머리를 긁적이던 소우는 일단 뽑은 건 뽑은 거니까 마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묘하게 수상해보이는 모습의 사내가 말을 덧붙이기 전에 캔을 땄다. 틱! 하는 캔음료 특유의 소리가 경쾌했다. 이 음료는 폭탄이라는 말이 들린 건 그 후였다.
네? 폭탄이요? 빨간 눈을 깜빡이며 사내를 보며 되물은 소우는 손에 들려있는 음료를 가만히 보았다. 일단 딸 때 폭팔하지 않았고, 애초에 이 학원도에 폭탄 테러를 할 만큼 간 큰 바보가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무엇보다.. 자판기 속 음료수가 폭탄이라니. 의념기 같은 거라면 모를까.. ..생각해보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 소우는 꽤 고심했다. 거기다 그 말을 한 사람의 모습이 꽤 수상했다. 5초 정도는.
"...흐으으응." 하고, 묘하게 웃은 소우는 사내가 손을 뻗기 전에 캔을 입가에 가져갔다. 그리고 음료수를 입에 한 모금 머금고, 꿀꺽 삼켰다. 말리기엔 이미 늦은 이 행동의 결과는 곧 소우의 격한 기침과 기침과 기침으로 나타났다.
"케헥 크 콜록! 아 뭐야이ㄱ, 커허.."
그리고 제 입가를 쓱 문지른 소우는 곧 살짝 눈물이 맷힌 얼굴로 웃었다.
"아 뭐야, 이래서 말린 거였어요? 누구신진 모르겠지만 형은 좋은 사람인가봐요! 아 근데 진짜 맛 없다 이거."
무척이나 맛 없는, 이 학원도에서 지뢰 음료수로 유명한 것을 마시고도 소우는 꽤 쾌활한 웃음을 짓고, 경쾌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맛있어 하는 건 아니었지만, 재밌어하고 있었다.
한 꼬마가 나에게 물었다. 지독하리만큼 순수한 미소로 당신은 최고의 마법사가 맞냐고 물었다.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꼬마의 말들은 그만큼 우스운 이야기였다. 예를 들어 게이트에서 돌이 튀어나왔단 일을 게이트가 열리며 토룡의 숨이라도 내뱉어진 것처럼 말하곤 했다. 그러다가도 들키면 제 편한 미소를 지으며 헤실거리는 것이 영락없는 버릇 나쁜 꼬맹이었다. 하루는 그러던 녀석이 나에게 와서 얘길 했다. 왜. 세상은 이럴까요? 하고 저딴에 어울리지 않는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꼬마에게 물었다. 왜? 하는 짧은 단어였다. 꼬마는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부모가 게이트 사건에 휘말려 돌아가셨단 사실. 자신의 할아버지는 가라앉은 일본에서 돌아가셨단 사실. 그리고 자신은 가족 없는 고아하는 사실까지도. 그 말들을 들었을 때 문득 분노가 치밀었다. 이런 어린 꼬마가 그리워하는 것마저 할 수 없는 사람이 무엇이 최고의 마법사냐고 말야.
" 꼬마야. " " 응. 마법사 누나. " " 다섯 밤을 지내고 나서 어른들이 들려주는 라디오 소리를 들으러 가렴. 내가 너를 위한 선물을 준비해줄게. "
나는 날았다. 단지 영웅같은 허울 좋은 이름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단지 나는 그래야만 할 것 같다는 강박감에 휩쓸렸다. 마법을 입에 올린다. 주문의 단어들이 혀를 지나고, 수많은 속성과 개념이 손끝에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세계가 울리고 있었다.
" 영웅이 되기로 했어. "
그 지독하리만치 오만한 대답에 정체 모를 누군가가 물었다.
" 왜? "
그 의문에 내가 답했다.
" 단지 내가 그러기로 결정했을 뿐이야. "
그 대답을 끝으로 긴 바다는 숨을 토해냈다. 일본. 한때 저 바다 아래로 사라진 섬은 기나긴 잠에서 깨어 지축을 흔들며, 긴 기지개를 폈다.
" 누군가가 나에 대해 묻거든 그렇게 답하도록 하라 하여라. 나는 모든 마도의 정점이자 모든 마법의 주인이니. 내 이름은 마왕 서유하. 새로운 영웅이다. " - 마왕 서유하.
가디언 지망이라는 말을 듣고도 별 다른 대답이 없는 상대를 준서는 다시금 음식들을 누가 쫓아오기라도 한다는 양 급하게 목구멍으로 넘기며 흘끔거렸다, 역시 아직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이건가? 하기야. 한번 깃든 의심을 푸는 일이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제가 잘 경험한 일이기도 했으니 굳이 채근은 하지 않으리라. 그렇다고는 해도 이름을 넘기고 친구가 되지 못하는 일은 없게 만들테지만, 준서는 슬슬 비어가는 식판을 한번 내려보다 문득 들려오는 대답에 잠깐 흐음. 짧게 소리를 내었다.
그 말이 지극히 옳은 말이기야 했으니, 상식적인 대응에 되려 말문이 막힌 모습으로 잠깐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입을 연다.
크게 배곯는 소리를 내고서 발그레하게 얼굴을 붉히며 머쓱하게 두리번거리던 소년은 한 식당 앞에 서있는 제 또래로 보이는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 소녀에게서 묘하게 동질감이 느껴져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심코 그녀 쪽으로 걸어가는 소년. 소녀 앞에는 [무한리필 고기 뷔페 - 배터질 만큼 먹자! 2인용 특별 세트!]라는 표지판이. 혼자라는 사실이 더욱 섧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무한리필...? 정말 고기를 끝없이 먹을 수 있는 거야?"
무한리필이라는 것이 생소한 소년은 무심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혼자 식당에 들어가는 것도 어려워하는 소년인데, 명백히 2인용이라는 표지가 소년을 더욱 절망으로 빠뜨렸다. 소년은 주린 배를 부여잡고 한 손으로 식당 벽을 짚으며 분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수그렸다.
'꼬르륵...'
눈치 없는 뱃속은 또 밥을 달라고 신경질을 부린다. 소년은 그제서야 이 소녀가 식당 앞에 서있는 이유를 알아차렸고, 혹시 하는 생각으로 소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말하기 전에 따버린 것도 모자라서 불길한 웃음까지. 아, 이거 늦었네요. 라고 생각할 때쯤 소우가 음료수를 마셔버렸다. 그리고 그 반응은 생각보다 약하긴 하지만, 아무튼 맛있다고 느끼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이런. 나이젤이 후드집업의 지퍼를 내리고 교복 안쪽 주머니에 넣어놓은 티슈를 꺼낸 다음 소우에게 건넸다. 그리고 소우가 진정할 동안 자판기에 가서 입가심이라도 시키게 무난하게 호불호 없는 음료수 버튼을 눌렀다.
"...저기, 당신은 1학년이죠?"
그래도 상태가 나빠 보이진 않아서 안심이다. 이거나 먹이고 돌려보내야지, 하고 생각하며 나이젤이 자판기 출구를 확인하자 똑같은 음료수가 두 개 나와 있었다. 자동결제를 설정해 놓으면 이런 게 문제라니까요... 라고 중얼거리며 하는수없이 소우에게 하나를 건네주고 하나는 나이젤이 마시기로 했다. 캔을 딴 나이젤은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꺼냈다.
"저는 아카데미 4학년, 나이젤 그람이라고 해요. 교복을 보다시피, 제노시아 교 소속이고요. 방금 마신 건... '이 섬 최대의 지뢰'로 불리는 악명 높은 음료수에요. 1학년이냐고 물은 것도, 이미 알고 있는 다른 학년들은 안 먹으니까에요."
평소에 표정이 거의 변하지 않는 나이젤이 말하면서 미미하게 표정을 흐트러트렸다.
"맛없었죠? 그나마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긴 하지만, 이거 마시고 트라우마 생긴 학생도 있었어요. 그렇다보니 후배가 이거 뽑으려고 하면 선배가 말리는 게 전통이라서... 딱히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어라? 귀에 잡힌 소리에 카사는 퍼뜩 고개를 들어 휙휙 둘러보았다. 이번에는 나에게 난 소리가 아닌데? 거기에 곁에 중얼거리는 소리! 다시 한번 고개를 들어보니 예쁜 라벤더 눈의 학생이 옆에 다가와 있었다. 교복을 보아 청월쪽, 그리고 저 절망의 표정, 왠지 알거 같은 저 기분...! 그 소년은 다시 한번 말을 걸고 조금의 의문도 종결시킨다.
야 너두...?
야 나두...!
동족(?)의 향기를 느껴버린 카사에겐 단 하나의 선택지 밖에 안 남았다. 이름, 신상, 인사같은 거치장 한것은 필요없다! 혹시라도 이 소년이 도망갈까 확, 그의 팔을 잡아채려한다. 꽈악, 온 힘을 다해 잡으려고 하며 실전하는 카사의 필살기! 「거두절미」!
청지일검류. 그 맑은 이름처럼, 물이 흐르는 듯한 검술. 청지일검류를 눈으로 본 감상은, 바다과도 같았다. 때로는 썰물처럼 빠지듯이 잔잔하게, 때로는 밀물처럼 밀려오듯이 거칠게, 하지만 그뿐이다. 나로서는 그정도의 분석이 다였다. 직접 부딪친 것도 아니고, 그저 눈에 담았을 뿐이니까. 천재들처럼 한 눈으로 보고 아는 수준이 아니다.
어떤 일을 하는 게 좋을까. 이런건 늘 고민되는 일이다. 깍지낀 손으로 뒷머리를 감싼 채 터벅터벅 걸어가던 나는, 곧 목적지를 정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친구들이 생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자신은 이 곳이 처음이었고, 아는 사람이 조금 생기긴 했지만 신입이었다. 그러니까, 즐겁기 위해서는 마음이 맞는 사람이 좋다. ..아마도?
>>275 에릭 하르트만은 지금부터 리더로 통합됩니다. 파티 명이 에릭 파티로 결정됩니다!
>>276 " 그렇습니까. "
시오조메는 천천히 자신의 검을 뽑아듭니다.
"청지일검류는 청淸의 의미에 지池의 한자를 씁니다. 푸른 호수라는 어울리지 않는 명칭을 쓰고 있지요. "
선에서 선으로, 팔이 휘젓는 자리에는 자연스럽게 길이 따라옵니다. 검은 혼란도, 생각도 없이 단지 그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유려하게 흐르고 언제 물결이 일었는지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다시 평온한 형태를 보여줍니다. 조용하다. 타다는 검에서 조용함을 찾았습니다. 부드러운 유의 검도 아니고, 또 쾌의 검도 아니며, 중의 검도 아니고 강의 검도 아닙니다. 그 어떤 검도 아니지만, 단지 유려히 흘러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검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 청월고등학교에는 두 개의 검을 다루는 동아리가 있습니다. 심으로서의 검을 다루는 검도부. 그리고, 살로서의 검을 다루는 검술부. 두 동아리 중에서 어째서 엔도 선생님께서 당신을 추천하셨는가 몰랐으나 그 눈을 보니까 알 것 같네요. "
타다는 그 말을 듣고, 눈동자가 흔들린다. 어중간한 재능을 가진 자신이 싫다. 그조차 없이 태어났다면 도전하는 용기또한 알지 못할텐데, 실패할 때 느끼는 좌절감과 절망을 알지못했을 텐데.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그저 포기하지않는 것이었다. 시오조메는 그런 자신을 한 눈에 간파하였다.
>>지훈 파티 지훈은 숨을 죽입니다. 분명 부장이 철검을 주며 이 게이트를 클리어해라. 라고 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분명 검귀의 능력 역시 게이트를 기준으로 하여 네임드 ~ 보스 급으로 생각하면 어렵지 않은 수준. 그렇다면 지훈은 생각해야만 합니다.
어째서 게이트로 가라고 했는가? 끈적하게 흐르는 피를 무시하고, 몇 번의 방어식을 거치며 지훈이 느낀 점은 검귀의 검은 지나치게 패도적이며, 방어적은 무언가가 없다는 느낌입니다. 검을 휘두르는 순간은 지나치게 방어를 무시하는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 틈을 노릴 수 있느냐, 고 묻는다면 답은 No 입니다. 여기서 제대로 된 공격 능력을 가진 것은 지훈 뿐이고, 지훈은 랜서. 남은 둘은 서포터입니다. 사실상 전투는..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죠.
카가강 -
검을 긁히고 갑작스레 날아온 발길질에 지훈은 멀리 내쳐저 벽에 부딛힙니다. 부서진 뼈가 폐부를 찌르는 것 같은 느낌에 지훈의 머리가 멍해지려 합니다.
날아간 지훈에게 급히 사오토메가 달려와 의념의 힘을 사용합니다. 온 전신에 가득한 충만감이 들고, 의념의 힘이 증폭되어 신체 바깥으로 뿜어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시오토메의 의념은 이 위치에서 펼쳐집니다.
의념기 : 환원
차르르르륵, 하고 무언가를 되돌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지훈의 뼈와 상처, 긁힌 것. 그런 것들이 돌아옵니다. 바닥에 흐른 피조차 사라진 채로, 지훈은 원래의 컨디션을 되찾습니다.
>>311 기술은 단순히 책으로 연마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술이 목적이라면 망념을 각오하고 동아리에서 가르침을 받거나 그에 준하는 존재에게 배움을 받는 것이 맞습니다. 독서실의 책으로는 기술로 승화시키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검색하시겠습니까?
>>312 " 일단은. "
만석은 대답합니다. 게이트 바다의 노래에 입장합니다.
짠 바다내음이 납니다. 코 끝으로 느껴지는 바다 특유의 짠 향기. 때때로 갈메기가 날아가는 풍경 속에서 만석은 모두를 들고 하늘 위를 날고 있습니다.
끼루루루루루루룩 -
긴 독수리 울음소리와 함께 하나미치야는 만석의 도움에서 벗어나 바다 위에 가볍게 착지하여 자신의 품에서 몇 개의 부적을 꺼내듭니다.
쿠아아아아아!!!!!!!!!!
바다 위로 커다란 메기같은 것들이 때때로 수면 위로 기어올라 하나미치야를 노리지만 하나미치야는 이정도 몬스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부적을 들지 않은 손으로 톡, 톡 메기들을 건드립니다. 그러고 나면 마치 얼어붙기라도 하듯 몬스터들은 경직된 채 저 깊은 파도 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 하암.. 너무 약한데? "
긴 기지개를 펴면서 하나미치야는 세 개의 부적을 하늘 높게 던지고 손으로 간단한 수인을 맺습니다.
거친 대해의 술
세 부적이 타오르고 주위 의념이 진동하기 시작하자 투박한 천둥소리가 바다 아래서부터 몰아치기 시작합니다. 하나미치야는 눈을 감고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듯 집중에, 집중을 가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하나미치야가 눈을 뜨고 하늘에 있는 만석과 에릭을 바라봅니다.
" 찾았어. 여기 보스. "
...이게.. 겜창 여우소녀라고요..?
>>313 게임부에 들어갑니다. 게임부 안에는 어두컴컴한 환경 속에서 다들 게임을 즐기고 있는 진성 겜창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 환영한다. 너의 10대 중후반을 버리기 위한 가장 완벽한 공간에 온 것을 환영하지. "
안쪽은 생각보다 어두웠다. 이르게 온 밤 같이 어둑한 방안에, 게임 화면만 번쩍거리는 게 참 눈 건강에 나빠보였다. 가디언이라 그런 걱정을 덜 해도 된다는 게 이들에게 있어 그나마 다행이 아니었을까? 예상보다 상당히 다크한 게임부의 풍경을 보며 소우는 잠시, 문 앞에 가만히 서있었다. 다크서클이 짙은 사람이 환영의 말을 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안녕하세요. 반응이 늦어서 죄송해요! 생각보다 열정적인 풍경이라 놀랐거든요."
놀랍게도, 소우의 이 말에 꾸밈은 없었다. 이만큼이나 집중하면서 하고 있다는 건, 정말로 좋아하는 걸 정말로 열정적으로 한다는 것이겠지. 솔직히 소우는, 최근에서야 겨우 게임에 발을 붙인 사람인데다가 썩 활동적인 성격이라 적당한 취미로 게임을 하는 라이트층이었다. 그래서 좀,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으음, 이분들에게 실례되는 일이 아닐까? 하고 소우는 생각했다.
>>316 시오조메는 검을 넣고 타다에게 다가갑니다. 자신을 나무라는 거라면 타다는 얼마든지 들어줄 생각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욕을 하는 거라면 그것도 받아낼 자신이 있습니다. 값싼 동정을 보내더라도 그것에 무시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그 모든 것들은 타다가 겪어왔던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오조메는 타다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작게 입을 열기만 합니다.
" 스스로를 혐오하건, 아니면 재능의 부족을 느끼건, 아니면 무언가를 죽이려 하건. 결국 다른 모든 것을 내려두고 당신이 기억할 것은 결국 당신의 검이 향하는 곳이 당신 스스로를 증명할 길이라는 사실 뿐입니다. "
시오조메는 품에서 작은 서책을 꺼내어 타다에게 건네줍니다. 서책에는 '검을 뽑는 법'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 검을 시작하는 것부터 다시 배우는 것도 좋겠죠. 일단 발도부터 다시 시작하도록 하죠. "
>>318 이 의뢰는 28레벨 이상의 학생을 위해 준비된 의뢰입니다. 정말로 확인하시겠습니까?
아무리 준비 없이 가더라도 랜턴 정도는 챙기는 게 맞았던 거 같지만 어쩌랴. 이렇게 된 이상 계속 가야지. 혹시라도 바닥에 트랩이 있을까, 인간 목 높이에 딱 작살 트랩 같은게 있을까, 허리를 숙이고 방망이를 앞에 내세워, 바닥을 깡깡 치고 긁으면서 트랩의 존재를 확인해가며 조심스레 전진한다. #자세 낮추고, 방망이를 앞세워서 바닥을 긁으며 전진.
초등학교를 다닐때였었나, 아니면 그보다 조금 후였나. 오래되고 어린 시절의 일은 색이 흐려지고 마모되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했다. 쓰다듬어지는 커다란 손의 감촉에 노곤노곤해진 표정으로 잠깐 흐물거리던 지아는, 그의 다음 말에 눈빛이 번쩍 살아나서는 조잘거린다.
"좋아! 어릴때 스파게티 먹고싶어서 둘이서 돈 모아서 갔던거 기억나?"
케첩을 많이 쓰고 면도 푹 익혔던, 정통이라고는 절대 말 못할 스파게티였지만, 처음으로 용돈을 모아서 간 식당에서의 경험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지훈이 들떠있단 것 정도는 사실상 남매에 가깝게 지냈던 지아에게도 확실히 느껴져서, 어느새 익숙하게 자그마한 손으로 너무 커서 다 잡지 못한 채 지훈의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 정도만 꼬옥 잡고 살짝 앞서나가듯 걸어간다.
신분증을 꺼내는 모습에 가볍게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이제서야 의심을 풀었나 싶은 생각과 함께 제 혼자만 의구심이 완전히 풀린 모양이었다. 잠시간 말이 없이 손에 쥔 식기로 반찬을 골라내는듯 뒤적이는 모습이 어떤 말을 꺼낼지 고민하는 것 같이 보이기는 했지만 실상은 별로 맛이 없었던 것을 골라내고 있을 뿐. 이름도 들었고, 학교가 어딘지도 서로 교환을 했으니 이제 더 중요한 정보를 한번 교환을 해야 친구겠지. 문득 고개를 반쯤 기울인 채 호노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의념은? 나는 불."
일면식도 없던 누군가가 대뜸 이름과 학교를 물은 뒤 의념까지 물어보는 것이 정상은 아니었으나 소년의 눈은 그런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으니 어쩔 수 있을까.
추억 속에서 그는 울고 있었다. 기억이 희미하기는 하지만 지아도 마찬가지였겠지. 그땐 친구보단 남매에 가까웠으니, 헤어질 때의 서러움이란... 희미한 기억 속에서도 드물게 자신이 눈물을 흘렸던 기억만은 또렷했으며, 그것 또한 이젠 미화되었는지 웃음이 살짝 흘러나왔다.
" 기억 나지. 지금 생각하면 그다지 좋은 스파게티라고는 못 하겠는데, 그땐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모르겠네. "
둘 다 케챱 때문에 얼굴도 옷도 더러워져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서 잔뜩 잔소리 들었지만. 이라며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검지와 중지만을 꼬옥 잡은 모습이 어릴 때와는 사뭇 달랐기에 묘한 감정이 드는 것도 잠시, 그때 먹었던 것과 완전 비슷한데라는 말에 지훈의 눈빛에 이채가 띤다.
" ...그곳에 가고싶네. 그 스파게티 엄청 그립거든. "
빨리 안내해줘. 그녀를 재촉하는 말투에 기대가 묻어나왔을까. 지금 가면 같은 맛이 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추억의 맛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으니까. 지훈은 얌전히 지아가 이끄는대로 따라가려고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의 리더였던 패배자를 내려다보며, 짧게 내뱉었다. 소름돋는 피멍,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불안한 눈빛, 박살난 라디오. 피 묻은 야구방망이. 식어가는 땀방울. 그 모든 것이 강찬혁의 승리를 선언하고 있었다. 강찬혁은 리더의 팔을 붙잡고 엎어진 책상으로 끌고 가서, A4 용지 하나를 꺼냈다. 피범벅이 된 엄지손가락을 A4 용지에 꾹 누르자, 리더의 지문이 피를 인주 삼아 선명하게 찍혔다. 백지 각서였고, 강찬혁이 파이트 클럽의 룰에 따라 리더를 뭉갠 이상 백지 각서를 작성할 권리가 있었다.
삼봉 시큐리티 1팀 팀장 직위 및 관련 권한 일체를 강찬혁에게 위임함. 이 각서로 인한 불이익에는 절대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음.
6달만이었다. 강찬혁은 처음에는 그냥저냥한 비행청소년일 뿐이었다. 조직에서도 그를 총알받이로만 봤고, 적대 조직에게 쏠 총알 정도로만 봤다. 하지만 총알일 뿐이었던 강찬혁은, 쏘아진 이후에도 어떻게든 돌아와서 다른 명령을 받았다. 다른 이들이라면 그저 무식하게 달려들어 죽었을 일도, 어떻게든 살아나오도록 판을 짰다. 어차피 총알은 총알일 뿐이라지만, 다시 살아돌아오는 총알은 꽤나 매력적이었다.
싸움도 꽤나 했고, 시키는 건 잘 했기에 어느새 위치가 꽤 올랐다. 강찬혁의 성장에 리더는 일부러 위험한 곳에 보내거나, 아예 적대 조직에게 정보를 흘려서 제거하려 했지만, 그럴 수록 강찬혁은 더 강해질 뿐이었고, 외려 리더가 정보를 흘렸다는 정황까지 잡아냈다. 그 끝은... 이랬다. 강찬혁은 자기가 이겼다며 자신만만했지만, 다른 동료들은 다들 표정이 안 좋았다.
"뭐 불만 있어?"
"아니, 너... 배에..."
강찬혁은 복부를 내려다보고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시발."
그리고 쓰러졌다.
응급실에서 문어처럼 수십개의 호스를 꽂고 있다가, 이상하게도 며칠만에 완쾌됐고, 그는 병원비를 낼 때가 되자 슬쩍 도망쳐서 돌아왔다. 팀장이 되어서는 더 많은 일을 해내야 했다. 불법 사업장의 취약점을 알아내고, 도박장에서 꼬장을 부리는 손님을 "멍이 안 나게" 죽도록 두들겨패는 초특급 기술을 시연해야 했다. 그뿐인가.
"아저씨, 이거 뭐에요. 왜 짬뽕에 못이 들어가있어요?"
"뭐? 못? 뭔 개소리야. 내가 짬뽕에 못을 왜 넣어?"
"왜 넣었는지는 내 알바 아니고, 짬뽕 먹고 있는데 못 나왔잖아요. 물어내세요."
"이거 못 배워먹은 새끼가, 어디서 진상짓은 배워가지고..."
"야 들켰다! 연장 들어!"
으악! 으악!
강찬혁이 우락부락한 경비의 얼굴에 짬뽕을 그대로 처박고, 팀원들이 연장을 들고 적대 조직의 사업장을 마구 때려부수기 시작했다. 일반인이 엮이면 끝이 안 좋기에 일반인들은 도망치면 건드리지 않았고, 가만히 앉아있어도 먹던 상을 엎어버리는 정도로 끝냈지만, 안에서 튀어나오는 놈들은 무자비하게 두들겨팼다.
"야 됐다! 튀어!"
중국요리집이 완전히 박살나버리자 팀원들과 함께 도망쳤다. 그걸 시작으로, 위에서 찍어주는 업장들은 전부 뒤엎어버렸다. 뉴스에 조직폭력배 소속 업장들이 큰 피해를 입어서, 피해액이 10억에 달한다는 보도를 보고는 신나게 웃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 문제가 생겼으니...
"찬혁아. 너네 팀 일 잘하더라."
"잘 해야죠. 믿고 맡기셨으니까요."
"새끼, 깡패 주제에 입은 잘 털어요. 뭐, 됐고... 너 남의 업장 털기만 하는건 좀 재능낭비고... 위에서 삼봉캐피탈이라고 이제 사채업 시작한다고 했거든. 너 거기에 아웃소싱 좀 해라."
"아웃소싱이요?"
"아웃소싱 모르냐?"
"뜻이야 알죠. 그런데..."
사장은 더 말할 것도 없다며 명함을 내밀었다. 누구나 조건없이 빠른대출 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사장은 강찬혁을 가리키면서 설명했다.
"요즘 사채가 아주 뜬단 말이야. 규제가 팍팍 풀린 덕분에 연이율은 최대 70%까지 올랐고, 모욕죄나 스토킹, 협박도 이 추심 관련하면 정상참작이 되거든. 이런 데에 발 안 담그는 게 바보지.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빌려줄 때는 양복쟁이 샌님들이 빌려줘도 되지만, 돌려받을 때는... 너같은 애들이 힘 써야 하는 거다 이거야."
선배님의 말에 정말로 그렇다는듯 웃으며 맞장구를 치면서도, 한편으론 거짓말을 드린 거 같아 조금 죄송해졌다. 선배님....이건 얘기드리지 않겠지만 딱 하나 안 비슷한 부분이 있사와요......에미리는 종교가 없답니다, 저희 어머니는 과학이 종교이시고 아버지는 무기를 곧 신으로 받드시는 분이시어요...뭔가 나중에 고해성사를 드려야 할거같은 죄책감이 들지만 지금은....지금은 그냥 넘어가자...괜히 죄송해진다. 그도 그럴게, 이건 그저 분수에 맞게 살다 얻은 능력일 뿐이니... "하루 선배님 같은 분의 제안이라면 누구든지 받아드리지 않겠사와요? 선배님들께서 주시는 기회라면 두말않고 잡아야지요. 전~혀 껄끄러울리가요!"
누가 어느 신입생이 이런 재학생을 껄끄러이 여긴다고, 말도 안된다는 듯한 목소리로 답이 이어졌다. 솔직히 말해 진짜 신입생들이 껄끄러이 여기는 부류는 따로 있지만 굳이 여기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기에 조용조용히 넘어가고 싶다....
"후후🎶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사와요 하루 선배님. 에미리는 신경쓰지 않는답니다~ "
전혀 괜찮다는 듯 손을 저어보이며 실눈으로 웃었다. 이정도까지는 뭐 미안할 것도 아니다. 그야 친해지고 싶어 하는건 나쁜 생각이 아닌걸. 뭔가 이 선배님은 뭔가가 들뜨면 어떤 마음이신지 잘 드러나시는 것같은 분인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소위 말해 거짓말 못하는 타입같단 소리다.
"저어, 보건부라고 하셨지요! 한번쯤은 이런 동아리활동 열심히 해보고 싶었는데 잘 됐네요~ 비는 시간대에 입부 신청서를 준비해 가겠사와요~! 보건실로 가면 되는거지요? "
제 양손을 깍지를 끼며 눈을 초롱초롱 밝히고 물었다. 딱 봐도 당연히 보건실로 가야될 것 같은 이름이긴 하지만 원래 이런건 당연한 걸 물어줘야 하는 법이니!
처음 만난 사람끼리 할만한 질문은 아니라는 말에 준서의 눈이 가늘게 트인다, 그런가? 대답은 않고 어느 사이엔가 거의 줄어든 식판을 한번 호노키의 식판을 한번 번갈아 바라본다. 그것에 대해선 딱히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대답할 말이 없으면 굳이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 습성이었지만, 친구를 만들기 위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시점에는 그러면 안되겠지. 입을 열긴 열었는데 대답이 딱히 나오질 않는다.
"그게 뭐... 그런건가?"
선선히 수긍을 한번 했을 뿐, 뭔가 더 할 말이 없는지 고개를 주억거리다 다시 말을 이어본다.
소우는 방싯 웃으며 그가 건네는 티슈를 받았다. 그걸로 입가를 가볍게 닦은 소우는 손 안에 남은 음료수를 바라보다.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목구멍을 움직이며 안에 있는 내용물을 모두 삼켜버린 소우는 크으으으으 하면서 앓는 소리를 냈다. 그래도 아까와 다르게 맛을 아는데다가, 각오를 하며 마셨기 때문인지 기침은 하지 않았다. 단지 정말로 정말로 썪은 얼굴로 인상을 쓰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 사이 사내는 음료수를 뽑고 있었다.
"네. 디가 아, 티가 나나요?"
음료수의 후폭풍인가, 묘하게 발음이 새던 걸을 고쳐서 말한 소우는 나이젤이 건네는 음료수를 보고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웃으며 받아들였다. 받은 음료수는 비교적 평범할 것 같았다. 그 음료수를 말린 사람이 준 것이니까. 남자는 자신 몫의 음료수를 마시며 말을 꺼냈다. 그는 제노시아교 4학년이었고, 이름은 나이젤 그람이었다. 그리고 방금 자신이 마신 건 이 섬에서 악명높은 지회였다. 으으 그런걸 왜 이렇게 평범한 자판기에 놓는 거지. 하다못해 경고라도 적어주면 안되나. 소우는 이런 생각을 했지만, 정작 그런 경고문을 적어둔다 하더라도 소우 본인은 오히려 궁금해할 것을, 본인도 알았다.
나이젤의 말을 들은 소우는 푸스스 웃음을 터트렸다.
"이건 제 경험상 이야기인데요."
비밀을 말하듯, 옆에서 입모양을 볼 수 없게 손으로 가린 소우는, 작진 않지만 소곤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런가요. 어쩌면 제가 열심히 기도를 드린 덕분에 운이 좋게 사오토메 양을 만났을지도 모르겠네요. 이렇게 선배를 어려워 하지 않는 후배님이라니, 기쁘네요. "
손까지 저어보이며 괜찮다는 듯 말하는 에미리를 보며, 하루는 연분홍빛 홍조를 새하얀 볼 위에 띈 체 기분 좋게 톤이 올라간 목소리로 말한다. 에미리의 말대로 좀처럼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하루는 표정으로 어지간한 감정은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물론 하루가 마냥 순수해서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에미리와 있을 때처럼 평범한 시간에는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에미리의 말에 솔직하게 기뻐하며 웃어보이는 하루였다.
" 후배님은 잘 알고 있네요. 아, 부 이름이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랑 다를 바 없긴 하지만.. 맞아요, 신청서를 작성해서 보건실로 가져가면 된답니다. 정 혼자 가기 애매하면 내일이라도 같이 가보는 것도 괜찮구요. 후배님 덕분에 어렵지 않은 부활동이 될 것 같아서 기뻐요. 얼굴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힘이 될테니까요. "
하루는 에미리의 대답에 고개를 부드럽게 끄덕이며 말한다. 보건부의 신청서를 제출하는 곳이 보건실이라는 건, 조금만 생각해보더라도 알겠지만, 그런 에미리가 대단하다는 듯 가볍게 박수까지 더하며 설명을 덧붙인다. 본인도 그리 오래 활동한 것은 아니었기에 특별하게 더 자세하게 알려줄 수 없었지만, 그래도 후배와 친해질만한 것이 하나 더 생겼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 자, 이렇게 예배당에서 쭉 걸어나오면 학교의 현관이 나온답니다. 여기서 반대편으로 나아가면 기숙사가 있구요. "
어느덧 현관 부근까지 천천히 걸어온 하루는 걸음을 멈추고, 두 손을 아랫배 부근에 공손히 모은 체 다정하게 말을 이어간다. 그리곤 살포시 미소를 짓고는 에미리를 바라본다.
" 혹시 더 궁금한 게 있을까요? 어려워 하지말고 물어봐도 괜찮아요. 숙소까지 그리 멀지도 않고, 저도 여유롭거든요. "
소년은 처음 보는 소녀에게 별안간 팔을 붙들려 당혹감을 느꼈지만 혼자가 아니게 되었다는 것과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스러웠다. 그리고 섬에 와서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게 되는 걸까 하는 기대감까지도. 호박색 눈동자가 탐스러운 빨간 머리 소녀는, 소년보다 머리 하나는 작아서 소년이 약간 고개를 기울여 내려다보는 모양새가 되게 만들었다.
"정말? 그래도 돼?"
소년은 들뜬 목소리로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같이 먹자며 팔을 붙든 것은 소녀였지만 식당 문을 힘차게 열어젖힌 것은 소년이었다. 소년은 고기를 배불리 먹을 생각에, 또 친구를 사귈 생각에 소개를 하는 것도 잊은 채 성큼 식당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서서 옆에 매달린 소녀를 살짝 내려다본 소년의 얼굴에는 뿌듯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마치 둘이서 대단한 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뿌듯한 미소가.
직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은 소년은 컵에 물을 따라 맞은편에 앉은 소녀에게 건네고서, 소개가 늦었다는 듯이 멋쩍게 웃으며 운을 떼어놓았다.
"나는 순무라고 해. 이번에 청월에 입학했어."
소년은 교복 차림이 아닌 소녀를 보고, 성학교 학생인가 하고 짐작하며 컵을 들어 가볍게 입술을 적셨다.
식판이 거의 처리가 된 준서와는 비교되게, 그녀의 식판은 거의 줄어들지않고 있었다. 식사는 20분 이상, 음식물은 최소 20번 이상은 씹어야 제대로 된 소화가 되기 때문이다. 그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을 뿐이였다.
"서로 친구가 될 생각이 있다면요."
타다는 일일히 참견하는 타입의 모범생이 아니였다. 묵묵히 자신이 주어진 일에만 충실하고 남에겐 일절 관심을 주지않는 타입이니까, 때문에 차근차근 그에게 무엇이 잘못 됬는가, 무엇을 어떻게 올바른가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은 그녀에겐 귀찮은 일이었다. 무엇보다...타다는, 친구라는 것에 대해서 생소하게 들려온다. 학창때는 사교생활에 쓸 힘을 모조리 학업이나 검도에 쏟아부었으니까. 머릿속에 기억되는 지식만이 있을 뿐이지 경험은 적었다.
그런데 레주 각성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조폭 보스한테 가슴에 총 두발 맞고 쓰러졌는데 불굴 의념 각성, 그 상태에서 일어나는 찬혁이 이마에 총알 박았는데 의념기 빨로 물리피해 무효화되어서 머리에 총을 맞았는데 아무렇지 않은 찬혁이 보고 도망갔다는 내용의 과거사 연성을 쓰려는데.
"저도 하루 선배님과 같이 부활동을 하게 될거 같아 기쁘답니다! 마음이 안정이 되어요~ 일정이 서로 다르게 끝날 수도 있을지 모르니 보건실은 저 혼자 가보겠사와요. 알려주셔서 감사드리와요. "
솔직히 살아생전에 보건부 같은데 들어갈 일이 몇이나 있겠나 싶지만 이렇게 얻은 능력이기도 하고 또 권유를 받았기도 하니 들어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선후배간은 친해져서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현관 앞, 얘기하느라 어느새 다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어머머 내가 언제 여기까지 왔담! 정말 새삼스럽게 제 손으로 머리를 살짝 콩 하는 시늉을 하며 감사 인사를 드렸다.
"바쁘셨을텐데 여기까지 안내해 주셔서 감사드리와요~ 덕분에 곧장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사와요. 정말로 감사드리와요 하루 선배님! "
이렇게 아무튼해서 어떻게 길을 찾았다! 그래서 이제 돌아가야하니 작별 인사를 드리려고 했는데...뭔가 더 궁금한 게 있으시냔 물음이 날아와 잠시 미루기로 했다. 아직 인사를 드릴 때는 아닌 듯하다.
"여쭤볼 것? 음~ 그러게요, 어떤 걸 여쭤보면 좋을까요....... "
한참은 아니고 아주 짧게 고민하다 말을 이었다.
"저어~ 괜찮으시다면 연락처를 여쭤봐도 되련지요? 나중에 선배님께 연락을 드리게 될 일이 생길수도 있을 것 같사와요! "
먹는 속도가 자신과는 다르게 너무도, 느린 편이었다. 준서의 눈에는 그저 느리다고 보였다. 실상은 제가 이상할 정도로 식사를 빨리 마치는 것 뿐이었지만 제 뜻만 생각하는 소년이 다른 방향으로 생각할 길이 요원해 보였으니 별 수 있을까. 약간의 의문과 이해가 잘 안간다는 눈으로 어느 사이엔가 다시 호노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난 친구가 될 생각이 있는데."
한 손으로 턱을 괸다, 너는 없어? 라며 묻는듯 눈썹을 한번 치켜올리고는 가만 말을 고르는듯 입을 다물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말하려던 것을 멈추는 너를 추궁이라도 하듯 몸을 조금 숙이며 빤히 바라본다. 왜 하려던 말을 멈춰? 라는 시선을 숨길 생각도 없던지 한참을 눈 슴벅거리며 바라보다가 없다는 말이 이어서 나오자 앞으로 수그렸던 허리를 펴 제대로 앉았다. 딱히 맥이 빠진다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은 아니었고, 그저 약간의 동조가 깃든 의미로서 고개를 한번 끄덕였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해."
나도, 선선히 동의의 뜻을 표하던 준서는 거기서 끝을 내려는 생각은 없었다는듯 다시금 말을 이어갔다. 네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좀 억울한 일이 있어서. 억울하지 않으려면 더 강해야 하잖아. 근데, 혼자서는 오래 걸린다던데."
나는 그렇게 참을성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솔직하다면 지나치게 솔직한 무례하다면 또 지나치게 무례한 대답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내더니 너와 눈을 마주치려 했다.
혼자서는 강해질 수 없다. 맞는 말이다. 천재들조차 아무런 지원없이는 스스로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다. 비운의 화가인 고흐가 그러하니까, 하지만 단순히 친구가 필요한 일이라고 하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분야를 가진 자라면 모를까ㅡ
그래. 친구같은건 큰 도움이 되지않는다. 파티를 맺어서 각자의 협동심과 능력이 합을 이뤄서 강해질 수는 있어도, 개개인이 강해지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무엇보다 강해지는 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1위가 되어서, 모두가 나를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 그게 되지않아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다른 걸로 최고가 될 수 있었다면 가디언같은 위험한 직업은 하지도 않았을테니까, 강해지는데에 지름길 같은건 없다. 이건 천재나 수재나 범재도 마찬가지다. 단지...어느 순간부터 한계선이 명확해질 뿐.
좋은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것도 그닥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상식적인 일을 지적 받은 시점에서 긍정적인 시선이 오고 가지 않으리란걸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그런 태평한 생각이나 하고 있던 준서의 눈이 당신의 대답을 듣고 약간은 커진다. 그리고는 이내 평소처럼 반쯤 감은 가는 눈으로 한참이나 너를 빤히 바라만 보다 남은 디저트를 입에 쑤셔넣고 목구멍으로 넘기고 나서야 태평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 친구 없었지."
무척이나 무례한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왔다, 옆자리에서 밥을 먹고 있던 학생조차 순간 목이 막혀서 울컥하는 모습이 시야 바깥쪽에서 언뜻 보였으나 준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되려 다 안다는 식으로 너무도 태연하게 너를 바라본다.
"나도 없었어, 네가 말한 생각대로 똑같이 해왔고. 지금까지. 할 수 있는 일은 죄다 혼자서 했고 부딪혀서 된다고 생각하면 나 혼자 가져다 몸뚱이 박았어."
근데 말이야, 물을 한 컵 마시고 탁 소리가 나도록 잔을 내려놓았다.
"그냥 한번 만들어 보려고, 모르는 일이잖아? 그냥 괜히 안된다고 생각하고 신경 끄려니 슬슬 궁금하기도 해서."
그러니까 너한테 말하는거야, 사실 그냥 처음 만난 김에 말을 붙인 것이 맞기는 한데. 너 이상하게 나랑 닮았거든.
타다의 식판도 이제는 어느정도 끝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만큼 둘의 대화가 길어졌다는 이야기겠지.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 있는건가요."
태준서가 타다에게 하는 말은 무척이나 무례하여서 옆에서 듣는 사람들이 놀랄 정도였다. 애초에 타다의 태도와 말투부터, 이미 주변 사람에게는 둘이 말 다툼을 나누는 것처럼 보였겠지. 실제로도 크게 다르지않았지만, 웃기게도 당사자들은 그 점에 대해서 전혀 신경쓰지않거나 혹은 알지못했다.
타다의 식판도 이제는 어느정도 끝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만큼 둘의 대화가 길어졌다는 이야기겠지.
"친구를 가지고 싶은 건가요. 싸움을 걸고 싶은건가요."
태준서가 타다에게 하는 말은 무척이나 무례하여서 옆에서 듣는 사람들이 놀랄 정도였다. 애초에 타다의 태도와 말투부터, 이미 주변 사람에게는 둘이 말 다툼을 하는 것처럼 보였겠지. 실제로도 크게 다르지않았지만, 웃기게도 당사자들은 그 점에 대해서 전혀 신경쓰지않거나 혹은 알지못했다.
어떻게 표현을 하건 결국 둘은 대화를 하며 식사를 마치기는 한 모양새였다, 사람들이 저만치서 지켜보는 눈으로는 아무리 봐도 싸움이 벌어지기 직전의 살벌한 대화 같았지만. 그것을 저나 상대가 신경 쓰지 않으리란걸 준서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것이 혼자만의 생각일지는 몰라도.
"같이 싸움을 할 친구가 필요한거지."
여전히 턱을 괸 불량한 자세로 준서는 당연하다는 듯 한마디 더 덧붙인다, 이젠 거의 도발이 아닐까? 불안한 눈빛의 주변인들이 모르는 체 하면서도 귀를 기울이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그래서, 한번 해볼래?"
혼자 다니던 의뢰도 같이 다녀보고, 어울려서 다니다 보면 어떻게 되는지. 그거 하려고 친구 하는거 아닌가? 종용이라도 하듯 문득 소년이 몸을 앞으로 기울여 너를 가까이서 바라봤다.
세 글자의 문장. 타다는 수저를 소리나게 탁 하고 식탁에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완고한 거부의 표현이였다. 합석을 한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말을 건 것은 어색하니 그럴 수 있다. 의념을 묻는 것은 뜬금 없었다. 친구가 되자고 한 것은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이 자리를 빨리 뜨고싶었다.
세 글자의 문장. 타다는 수저를 소리나게 탁 하고 식탁에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완고한 거부의 표현이였다. 합석을 한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말을 건 것은 어색하니 그럴 수 있다. 의념을 묻는 것은 뜬금 없었다. 친구가 되자고 한 것은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이 자리를 빨리 뜨고싶었다.
나이젤은 자신이 '좋은 사람'인지 여부 같은 건 생각해본 적도,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적당한 기준으로 생각해보니 나이젤은 좋은 사람 같진 않았다. 애초에 좋은 사람이란 뭘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선의를 품고 행동하는 모습이라면 그걸 좋은 사람이라고 부르는 걸까?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나이젤은 같이 웃었다.
"잘 부탁해요, 소우."
웃으면 어떻게든 될 거라 믿는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진 못했지만, 이만 가볼까... 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떠올랐다.
"가디언 칩엔 통화, 결제, 통역, 지도, 인터넷 접속 기능 같은 게 있으니 잘 쓰면 편할 거에요. 특히 통화 기능... 다양한 포지션의 사람들과 친해져서 연락처를 받아두면 나중에 의뢰를 수행할 때 편리하기도 하고요."
1학년 학생들이랑 얘기를 나눌 때마다 마지막에 했던 설명. 맨 처음 할 때는 더 길었는데 피곤해서 그런지 최저한으로 압축됐다. 아무튼... 이 정도면 됐겠죠? 라고 생각하며 나이젤은 떠날 준비를 했다.
냉담하게 느껴지는 단호한 문장, 수저를 탁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준서는 가만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싫다는 사람을 굳이 붙잡을 정도로 활달한 것은 아니었으니. 물론 그럴만한 뻔뻔한 면피는 맞는 것으로 보이지만. 완고한 거부를 표하고 일어서는 호노키를 빤히 올려본다, 금방이라도 화를 내거나 식탁을 엎을 것 처럼 분위기가 냉각 된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잠시 식당은 정적이 맴돌았고, 곧 준서가 고개를 들어 너를 바라본다.
"들어가. 나중에 또 보자."
듣는 사람들마저 귀를 의심케 만드는 문장이 아무렇지 않게 나왔다. 정말 친구끼리 건네는 인사처럼.
" 그냥 길을 알려준 것뿐인데 감사까지야. 그저 같이 숙소로 돌아갈 일이 생겨서 알려준 것 뿐인걸요. "
머리를 콩하고 귀엽게 쥐어박으며 말하는 에미리를 보곤 입을 한손으로 가린 체, 맑은 웃음소리를 입술 사이로 흘리던 하루는 정말로 별것 아니라는 듯 덤덤하기 그지 없는 말을 돌려준다. 하루의 기준에선 무언가 제대로 해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마음 속에선 다음번에는 좀 더 챙겨주자는 생각을 저장해두고 있었다.
" 아, 깜빡할 뻔 했네요. 같이 공부를 하려면 연락할 수단이 필요하겠죠? 얼마든지 제 연락처를 드려야죠. 후배님이랑 공부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테니. "
하루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하며 자신의 연락처를 건낸다. 앞으로 만나서 공부를 하거나, 부활동을 하려면 서로 연락을 할 필요가 있으니까. 에미리가 그 부분을 잘 짚어줬다고 생각하며 하루는 눈웃음을 지어보인다. 노을이 지기 시작했기에, 어두워진 길 위에서도 하루의 새하얀 머리카락은 빛나는 듯 했다.
" 꼭 잊지 말고 연락해주세요. 저, 기다리고 있을거에요 "
하루는 두손을 슬그머니 허리 뒤로 숨기며 혀를 살짝 내밀어 웃어보이곤 수줍게 말한다. 잊지 말고 자신을 찾아주길 바란다는 듯, 순수한 마음이 담긴 미소 같았다. 분명, 제대로 알게 된 후배가 생겼다는 것이 기쁜 모양이었다.
타다는 정말 자리를 뜨려 했다. 원래부터 식사를 다 마치는대로 일어날 생각이였지만, 타이밍이 우연찮게도 들어맞았을 뿐. 아니, 그러려고 했다.
"들어가. 나중에 또 보자."
친구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듯한 말투. 그런 말을 들은 것은 정말 오랜만이고...그리운 듯한...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리지않던 그녀의 표정에 조금은 변화가 찾아온다. 하지만 그건...긍정적이라기보단, 부정적이였다. 지금까지 얼굴도 마주치지않던 타다는 준서를 처음으로 똑바로 쳐다보더니 이내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리는 것과 동시에 테이블을 벗어났다. 극히 짧은 순간이였기에 주변 사람은 알아챌 수 없었겠지만,
결국 그녀는 식당에서 떨어지고나서야, 혼란해진 사고가 냉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가 되지않는 사람이었다. 역시...상식이 없다는걸로밖엔 설명이 된다. 그게 아니라면 일부러 자신의 화를 돋구려 한 걸테니, ...다음 스케쥴을 확인하도록 하자. 타다는 태준서라는 남자와 다시는 만날 일이 없기를 빌었다. 혹여나 축제가 있는 날에도.
후안의 시선이 조금 더 길어지면 어깨 위 뿐만 아니라 뿔 위에도 두 마리의 새들이 더 올라 타서 흥미롭게 주위를 둘러보고 뿔 사이를 뛰어다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새들의 관심에 바다는 기쁜 마음이 되었으나, 저번에도 이러다가 후드에 똥을 싸고 도망간 새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저 새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갑자기 우뚝 서서는 고민하기 시작하는 연바다,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쫓아내야 하나? 그러기엔 죄 없는 새들이 불쌍한데. 그리고 가볍게 작은 원을 그리며 걷기 시작했다. 새들은 그런게 재미있는지 짹짹거리며 도망치지 않은 체 자리를 지켰다. 시선을 발 끝에서 조금 위로, 조금 위로 올리며 걷다 보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감지할 수 있었다. 한 바퀴 더 돌아봐도 여전히 자신을 보고 있었고, 두 바퀴 더 돌아봐도 여전했다.
☆SSR 캐릭터 알렉산드르 로마노바 픽업 가챠 이벤트 『그 책에 모든 지식이 있다면』 유저 반응 : "이벤스 쓴 사람 인간 아님 암튼 아님" "애정캐는 뽑는게 국룰" "폭사? 실화냐?" #당가픽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1049018
강찬혁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청월고교로 쳐들어갔다. 옛날처럼 짜증나게 구는 먹물들 두들겨패러 옆 학교에 원정을 간다던지, 하는 그런 건 아니었다. 그런 폭력적인 것이 아니라, 청월고교 매점의 경제적 순환과 소비경제 활성화를 위해 한 몸 바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 이걸 좀 더 대놓고 말하면... 그는 청월고교 매점에서만 파는 피자빵을 먹기 위함이었다. 강찬혁은 학교 뒷편에 놓여있던 박살난 의자를 가져와서 놓고, 담을 타고 올라갔다. 담은 5m, 꽤 높았지만 문제없다.
이론 수업은 다 빼먹어서 망친 성적을 완벽하게 벌충 가능할 정도의 수행평가 능력을 보인 그에게 이런 담은 그냥 벽타기 운동기구나 다름없었다. 그를 막으려면 3만볼트 전기울타리 정도는 되어야 할 테고, 진짜로 전기울타리를 만들어도 그는 방법을 찾아낼 요량이었다.
"좋아, 피자빵아. 내가 간다..."
하지만 강찬혁은 담벼락을 타넘는 와중, 진한 푸른빛의 머리칼이 인상적인 여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차가운 인상이 왠지 학생부나 선도부 하면 딱 알맞을 관상이었고, 강찬혁은 담벼락에 애매하게 끼인 자세로 얼어붙었다.
한지훈, 당신은 청춘 순정만화의 엑스트라! 당신이 쓰러진 것을 알고 당신을 업고 달려온 반 친구. 어쩐지 없어진 보건 선생님을 대신해 친구가 대신 응급처치를 해주는데... 순간 등 뒤로 햇살이 비침과 함께 기묘한 정적이 감돕니다.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972769
새들은 그런 후안의 등장에 자기들 끼리 짹짹거리는 소리를 내며 마치 의논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뿔의 꼭대기까지 올라가 버렸다. 연바다의 키는 177cm. 뿔의 높이는 연바다의 머리 위에서 머리 하나정도 더 높으니 이쯤까지 오면 후안이 위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 얘들아..? "
새에게 애처롭게 말을 걸어도 바다는 새와 대화할 수 없고 새는 바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카사라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요.. "
눈동자를 굴려 뿔 위에 있는 새들을 바라본다. 마침 새와 눈이 마주쳤으나— 새는 바다의 시선에서 아무것도 읽지 못한 듯 하다.
가디언 아카데미는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계획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공섬이다. 학원도라고 불리우는 이 섬에는 세개의 아카데미가 존재하는데 각 이사들의 이념에 따라 지어졌기에, 다양한 학교적 성격을 띄는지라 가르침의 방식이외에도 미세한 부분에서부터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부터 복장이라던가, 동아리라던가, 가령 매점의 메뉴라던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타다는 방금전에 매점에서 사온 피자빵을 들고 담벼락 근처에 적당한 곳에서 쉴 예정이였다.
누군가가 담벼락을 넘으려는 장면을 포착하기 전에는. 눈과 눈이 마주치고, 긴장감 넘치는 기류가 흐른다. 그 순간 타다에게 든 생각은...
'다른데로 갈 까.'
강찬혁이 첫 인상을 보고 어떻게 생각했든간에, 타다는 귀찮은 일에는 참견하고 싶지않았다. 여기서 자신이 관여를 한다면 필시 일이 복잡해질테니까, 때문에 긴 시간이 흐르지않아서 타다는 못 본척 발걸음을 돌리며 이 자리를 벗어나려 하였다. 한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면, 그 모습이 상대방에게 귀찮은 일을 피하는게 아니라 신고를 하러 가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이였다.
강찬혁은 큰일났다고 생각했다. 저 긴장감, 저 차가움, 저 냉철함. 딱 봐도 선도부 아니면 학생부다. 저런 사람이 선도부에 들어가있지 않다면, 청월고교의 용인술(用人術)은 제노시아는 커녕 아프란시아 성학교의 그것과 비교해도 개판일 것이리라. 그리고 저렇게 가는 건 무엇 때문일까. 바로 신고하러 가는 거겠지. 강찬혁은 마음 속으로 고민했다. 아, 제기랄. 도망쳐야 하나? 아니면 매점에서 빵만 사고 바로 꺼져야 하나?
"...잠깐! 잠깐만!!!"
강찬혁은 담벼락을 붙잡고 꽁꽁 매달려있다가, 바로 내려와서 호노키를 쫓아갔다. 그리고 호노키 바로 앞으로 착 와서, 피자빵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 피자빵, 그 피자빵 좀 구하러 온 거야! 나쁜 짓 하려 온 건 아니고! 어... 그러니까... 너네 기준으로라면 담벼락 넘는 것도 충분히 나쁘긴 한데... 어쨌든 난 그 피자빵만 있으면 되니까."
강찬혁은 매점에서 피자빵만 사고 나면 순순히 꺼져주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하지만...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나중 문제다.
후안보다 바다가 키가 크긴 했지만 뿔의 크기까지 합쳐지니 새는 완전히 후안의 거리에서 벗어났다. 당연히 안될게 뻔하지만 발끝 손끝 다 세워 뻗어본다. 새와의 거리는 그렇게 가깝지 못했다. 새들의 뻔뻔한 웃음(후안이 느끼기엔)이 느껴지는것 같아 짜증나는 표정으로 새들을 쳐다봤다.
하지만 더 뭘 했다간 새들이 놀라고 흥분해서 주변에 똥을 지르고 다닐거 같다는것을 깨달았다.
뒤를 돌아서 자리를 피하려하였더니 남자는 자신의 앞에 서서 무언가 해명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고보니 청월고교에서만 파는 피자빵이 있다고 했던가...그런 것보다, 타다는 남자가 자신을 붙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면 조용히 피자빵을 구하고 나가면 되는 일이 아닌가? 그 과정에서 어떻게되든지는 관여할 바가 아니다. 타다는 특유의 일관된 표정으로 손에 들린 피자빵을 보다가, 남자를 다시금 바라본다.
"절도죄로 신고하면 될까요."
오해가 오해를 낳는다. 이런 상황에 어울리는 말이였다. 남자는 정말로 매점에서 피자빵을 사러 했을 뿐이였지만...그의 해명에는 '매점'이라는 단어가 빠져있었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남은 답은 간단하다. 정말로 어렵고, 하기 싫고 치졸하지만 어쩌랴. 자존심 좀 상하는게 청월고교 학주랑 선도부한테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는 것보다는 낫지. 강찬혁은 흠흠, 헛기침을 하더니 바닥을 탁탁 쓸어 먼지를 치우고 무릎을 꿇은 뒤 절하는 자세로 외쳤다.
"그냥 매점에서 피자빵이 먹고 싶었습니다!!!!!! 이번 한번만 넘어가주십쇼!!!!!! 피자빵만 사고 바로 나가겠습니다!!!!!!!!!!!"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작게 손을 흔드는 후안을 위로할 사회성이 없는 바다. 위로는 해 주고 싶었지만 적절한 말을 찾지 못 했기 때문에 쓸쓸히 걸어가는 소년의 등을 향해 작게 손을 흔들 수 밖에 없었다. 굿바이, 버드킬러 후안. 다음에 만날 때는 조금 더 정상적인 상황이길....
갑작스럽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기 시작하는 남자. 과연 이 행동에는 타다라고 하더라도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자신의 피자빵을 훔치려는게 아니였다는건 알겠는데...타다는 다시금 머리를 굴려 상황을 파악한다. 남자는 청월고교에만 있다고하는 피자빵을 사기위해서 담벼락을 넘어서 오다 자신과 마주쳤다. 자리를 피하려던 자신에게 다가가서 해명을 하더니 지금은 자존심조차 버린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거기까지 도달하자 한가지를 떠올린다. 혹시 자신은 다른 오해를 받은게 아닐까 하고, 동시에 귀찮은 일을 피하려한 일이 제 발로 굴러들어가는 일이였다는 걸. 일단은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떠올려본다. 이미 휘말린 시점이라면 무언가 다른 해결책이 있을지도, 남자는 피자빵을 원하고, 나는 평온함을 원한다. 그렇다면 해야될 일은 무엇인가?
"여기요."
타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피자빵을 건네주며 말하였다. 갑지기 제 돈으로 산 물품을 쌩판 모르는 남에게 쥐어주는가? 황당한 일이였지만, 지금의 타다에겐 에너지를 보충해야할 휴식시간이 더 중요했다. 때문에 값을 요구하지도 않고, 그냥 대뜸 피자빵을 건넸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의념 지수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게이트, 또는 의념을 사용한 직후에 공간에는 그 의념의 파장이나 속성이 조금은 남게 되지. 이렇게 증가한 의념의 흔적을 의념 지수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다. 보통 소형 게이트의 의념 지수를 1이라고 하였을 때 게이트 클로징에 사용되는 의념량 역시 1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소형 게이트는 단일 클리어가 기본 원칙으로 자주 사용된다. 즉 게이트의 클로징을 위해서는 게이트 클로징에 필요한 의념 파장을 정확히 맞출 필요가 있다. 물론 의념 지수의 계산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있는데 의념 지수의 계산은 너네가 하는 게 아니라 가디언 칩이 한다. 물론 과거에는 가디언 칩과 같은 물건이 없으니까 대부분 직접 계산하는 게 기본이긴 했어. 그래서 사고도 많이 났고 말야.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 의념의 응용 신도 모리오
★ 아프란시아 성학교
랜스의 심화, 버서커
3포지션은 워리어, 랜스, 서포터. 이 셋으로 구성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방검, 창, 붕대로 이루어진 셈인데 항상 이 셋으로만 포지션을 잡는 게 쉽지는 않아. 하다 보면 워리어 셋이서 파티를 짜거나 랜스가 둘이라거나 하는 경우도 충분히 있겠지. 서포터가 셋이면 어떡하냐고? 일단 파티 선언한 빡대가리부터 한 대 때리고 시작해라. 그 파티는 굴러갈 수 없어. 괜히 UGN에서도 정석적인 파티 형태로 1:1:1을 선언한 게 아니다. 그러니까 방금같은 상황에서 랜스가 정상적인 전투가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단순히 적을 다 패버리면 될까? 아냐. 워리어의 포지션을 겸하면서도 랜스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지.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사용하는 심화 포지션이 바로 버서커라고 할 수 있다. 아마 대부분은 망념의 힘을 사용하면 위험하다. 고만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내가 망념을 사용하지 않으면 우리 아군이 다 뒤져버린다는데 내 안위 챙길 틈이 있겠냐? 망념의 힘도 절이라도 하면서 데려와야지. 아마 힘을 사용하는 즉시 네 몸뚱아리는 사실상 주도권을 잃게 될거다. 망념의 힘을 이용해서 네 이성을 날려버리는 방법이거든. 망념에 의해 이성이 날아가면 네 정신을 통제하던 의념은 주위로 방출된다. 방출된 의념은 주위 몬스터를 자극해서 시선을 돌리게 되지. 이성이 날아간 상태에선 처음 가진 목표. 적을 죽이겠다는 생각 하나로 움직이게 된다. 그러니 적의 시선이 몰리고, 너는 미쳐 날뛰는 상황까지 오게 된다. 살아남는다면 서포터는 어서 가디언 칩으로 요청해서 상대의 의념 차단을 신청해야 한다. 안 그러면 죽어라 달려들 게 분명하거든. 아마 전투 직후에 평소보다 쌓이는 망념량이 한 두배는 늘어날텐데 제 목숨 아쉬운 것보다 낫다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어쩌겠어? 만약 알려줬다고 아무데서나 막 쓰고 내 이름 올라가면 그 새낀 내 손에 죽는다. 알았어? - 가디언 전투학 서혜찬
★ 제노시아 전문고교
제작에서 의념이 끼치는 영향
창조에서 다들 의념을 사용해본 경험은 있지? 보통은 의념에 의지해서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마 그런 식으로 제작하면 딱 자기 수준에 맞는 물건만 나오지 않아? 보통은 그런 일이 있으면 레벨을 올리고 의념의 힘을 늘린다고만 생각하지만 현실은 조금 달라. 결국 제작자의 수준이 물건을 제작하는 것에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거든. 의념이 아니라, 순수한 제작자의 실력 말야. 대부분의 아이템 제작자들은 시대에 와서는 의념을 통해 제작하는 것이 당연하게 변해버렸어. 과거 제작은 어디까지나 의념의 보조를 받아서 창조하는 것에 가까웠는데 이제는 의념에 맡겨서 아이템을 만드는 경우가 많더라고. 물론 그게 나쁘진 않지만 더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원한다면 때로는 재료를 이해하고, 제작 방법을 숙지하고, 과정을 지켜서 만들어본 뒤에 의념의 힘을 불어넣는 것도 좋을거라 생각해. 알겠지? - 창조와 의념의 관계 주가명
소우는 감사하라는 듯 가슴을 쭉 펴버 장난스레 웃었다. 좋은 사람에 대한 기준은 다양하다. 열 명이 있다면, 열 명 모두 다른 대답을 할 수도 있다. 그냥 소우의 입장에서 나이젤이 좋은 사람으로 보였을 뿐이다. 무엇보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의 속마음을 알 수 있을 리도 없고, 그냥 겉으로 보이는 행동으로 판단하는 게 최선이기도 하고.
"네. 나이젤 선배님."
빠릿한 차렷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나이젤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다가 떠날 준비를 하는 그를 불렀다. 선배님
"그럼 연락처, 교환해주실 수 있나요?"
손을 들어올려 손목에 장착한 가디언 칩을 흔들며 말했다.
"아 참고로 전 랜스에요. 선배님이신 만큼 주변에 더 훌륭한 사람은 많겠지만, '우와 다른 선택지가 없네' 하는 상황에서 최후의 선택으로라도 불러주세요. 아셨죠?"
//네! 슬슬 막레! 하죠! 이 말을 끝으로 서로 연락처 교환하고 헤어졌다! 로 넘어가셔도 좋아요!
돈을 받는 것은 타당하긴 했다. 어쨌든 내가 산 피자빵이니까. 다음에 돈을 받은 뒤엔 엮이지않도록 하자. 타다는 손목에 장착된 가디언 칩을 조작하더니 남자에게 통신을 보내었다. 가까운 사람에게 걸 수 있는 연락처 교환. 상대방이 동의한다면, 둘은 연락처를 공유할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런식으로 연락처를 주고 받는건 또 처음이던가...
버스를 잘 타는 바다는 집중하며 전투를 봅니다. 집중하는 분야는 의념의 활용, 자신도 저런 응용이 가능하지 않을까 눈 여겨 보았습니다. 하나미치야의 의념속성이 해 속성이 아니라 할지라도 물을 엮어내는 과정 자체를 눈에 담아둔다면 충분히 비슷한 응용을 따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하지만 이제 보스를 처리할 시간입니다.
" 저, 잘 부탁드려요! "
의념을 통한, 게이트 너머에서 온 자신의 정체성을 증폭시키는 행위. 해룡의 모습을 취하여 보스에게 물로 이루어진 창을 쏘아댄다. 지배력으로 자신이 다루는 물에 형태를 단단하게 고정시키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안쪽은 생각보다 어두웠다. 이르게 온 밤 같이 어둑한 방안에, 게임 화면만 번쩍거리는 게 참 눈 건강에 나빠보였다. 가디언이라 그런 걱정을 덜 해도 된다는 게 이들에게 있어 그나마 다행이 아니었을까? 예상보다 상당히 다크한 게임부의 풍경을 보며 소우는 잠시, 문 앞에 가만히 서있었다. 다크서클이 짙은 사람이 환영의 말을 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안녕하세요. 반응이 늦어서 죄송해요! 생각보다 열정적인 풍경이라 놀랐거든요."
놀랍게도, 소우의 이 말에 꾸밈은 없었다. 이만큼이나 집중하면서 하고 있다는 건, 정말로 좋아하는 걸 정말로 열정적으로 한다는 것이겠지. 솔직히 소우는, 최근에서야 겨우 게임에 발을 붙인 사람인데다가 썩 활동적인 성격이라 적당한 취미로 게임을 하는 라이트층이었다. 그래서 좀,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으음, 이분들에게 실례되는 일이 아닐까? 하고 소우는 생각했다.
만석은 날개를 남겨둔 채 바다로 떨어집니다. 하늘에 덩그러니 남은 에릭과 바다의 의념기는 일시적으로 보류하도록 하겠습니다.
" 대충 내 위치에서 13미터 아래. 이름을 보스라고 하긴 했는데 네임드 중위권쯤 돼. "
하나미치야의 오퍼레이트를 들은 만석은 천천히 숨을 고르고 의념을 한 점에 모으기 시작합니다. 호흡을 내뱉는 만석의 입에서 새하얀 김이 뿜어나옵니다. 단순한 김이 아니라 마치 전신에서 뜨거운 열을 뽑아내고 있는 것만 같이. 하늘 높이 떠있는 에릭과 바다도 느낄 수 있을 만큼 뜨거운 열기입니다.
방출
만석은 손을 바다에 올리고, 손바닥의 형태로 의념을 방출합니다. 고요한 바다에서 수 초의 시간이 지나고, 바다와 에릭은 갑작스럽게 신체의 의념이 증가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약 3배정도 크기의 상어 한 마리가 수면 위로 두둥실 떠오릅니다.
" 너무 저레벨 게이트잖아. " " 자자 조용합시다 버스 기사님? "
에릭의 망념이 1 상승합니다. 바다 역시 망념이 1 상승합니다. 경험치를 충분히 획득했습니다.
>>912 하루는 보건실로 이동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건실 내부는 상당히 혼잡스런 분위기입니다!
>>914 퉁, 퉁, 퉁, 퉁, 찬혁은 방망이로 바닥을 몇 번 두들길 때마다 그 짧은 진동을 타고 느껴지는 듯한 소리에 집중합니다. 케륵, 케혜레륵데륵. 하는, 알 수 없는 목소리들의 집합. 다만 일반 고블린이 말하듯 의미 없는 목소리가 아니라 의미가 느껴지는 목소리들.
...! 어둠 속에서 수 개의 독침이 날아옵니다. 몇 개의 독침을 쳐내기는 했지만 하나의 독침이 찬혁에게 박혔고, 찬혁의 몸에 약간의 독이 침투하지만 곧 저지당하고 맙니다. 찬혁에게 이정도 디버프는 통하지 않습니다!
- 케륵헤에레륵?
가디언 칩이 몬스터의 정보를 확인합니다!
< 네임드 : 비열한 작전의 코라켈 >
네임드를 발견했습니다!
>>917 " 조용해야지. 지금 기록 갱신 중인 친구가 있거든. "
부장은 어깨를 으쓱이면 한 사람을 가르킵니다. 열심히.. 테트릭스를 하고 있습니다.
>>919 ▶ 하르바니오의 투기장 ◀ ▶ UGN 발급 의뢰 ▶ 3학년, 레벨 제한 27 ▶ 최대 인원 : 1인 ▶ 결투, 전쟁형 게이트 '하르바니오의 투기장'을 클리어할 것 ▶ 보상 : 25000GP, 게이트 내부의 획득물에 대한 모든 소유권
하르바니오의 투기장,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하나? 3학년, 레벨 제한이 너무도 높은 의뢰다. 전쟁형 게이트라고 한다면 분명 이계의 장면을 재현 하는 게이트라고 했던가. 많은 수를 모아서 도전한다고 하더라도 위험부담이 정도를 넘어선다고 보일 정도였으나... 위험을 넘기지 않고서야 강해질 수 없다.
>>지훈 파티 검귀의 검이 쇄도하기 직전에 나이젤은 채찍을 휘두릅니다. 검을 잡고 있던 검귀의 팔에 채찍을 휘감고, S랭크의 신체 능력치를 믿고 나이젤은 검귀와 힘겨루기를 합니다. 팽팽한 채찍은 당장이라도 몸을 뜨게 할 것만 같지만, 나이젤은 거의 드러눕기 직전까지 채찍을 잡아 당기고 몸을 버팁니다.
지훈은 생각해야만 할 것입니다. 진심을 다하여 휘두른다. 진심을 다한다. 과연 어떤 검에 진심이 담기는지 그 의문부터 시작합니다. 검을 휘두르는 것에는 검의 경로, 스스로 이 곳으로 휘두르겠다는 길이 남습니다. 그리고 베어내겠다는 검사의 마음이 남습니다. 그리고 그를 해내기 위한 검의 힘이 담깁니다. 이 모든 것은 지훈이 배운 것들입니다. 그러나 검에 무언가를 담아내는 법은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 지훈은 검을 잡아왔고 수련해왔지만 지훈의 무기술 랭크는 D. 단순히 무기를 잘 다룬다의 영역일 뿐 '술'이라는 영역에 도달하진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부장은 지훈에게 검귀와 싸워보라고 했을까요.
나이젤의 채찍이 허공으로 날아가기 직전, 나이젤은 채찍을 풀고 한 걸음 물러납니다. 이미 검귀의 눈에는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같은 검을 들고 싸우길 바라고 있는 지훈만 눈에 들어올 뿐입니다. 지훈은 검을 잡습니다. 이해해야만 합니다. 나와, 검귀의 차이점.
검귀의 검은 지독하리만치 상대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 검에 담긴 의지 역시 지독하리만치 상대를 죽이겠다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 검의 방향은 자유롭습니다. 검이 단순히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그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지훈의 머릿속에 부장이 잡았던 자세가 스쳐갑니다. 기억을 더듬고, 분해하고, 조립하여 하나의 모습을 찾아냅니다. 지훈이 검을 휘두르고, 마침내 이것은 닿았다. 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때. 그 순간에 부장은 검끝을 들어 검의 경로에 검끝을 대어 긁고, 튕겨나는 검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부장의 검이 행하고자 한 것은 하나였습니다. 검을 튕겨낸다. 그 이외에 검의 경로도, 무엇도, 검에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의 의지와, 하나의 힘만이 검에서 느껴졌을 뿐입니다.
어쩐지. 손이 간지러운 듯한 느낌이 듭니다.
무언가 알 것만 같습니다. 지훈은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쇄도하는 검귀의 눈을 바라봅니다. 검귀의 눈에는 당신, 지훈이 담겨있습니다.
검을 들어올립니다. 낡은 철검, 지금까지 무기에 대한 집착을 버립니다. 이것은 검입니다. 저 자가 휘두르는 것도 검입니다. 내가 하려는 것도 검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도, 저도, 검을 휘두를 준비를 할 뿐입니다.
진심을 담는다. 전심을 담는다. 마음을 담는다. 그 모든 것을 담는다는 것은.
혼魂 혼을 담는다는 것. 스스로의 검을 보인다는 것. 그러므로, 전심이 되는 것.
온 힘을 다하여 검을 잡고 의념과 공명하여 지훈은 자세를 잡습니다. 생각은 오직 검귀의 틈을 노리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고 충만한 의념과 힘은 서로 합쳐져 하나가 됩니다.
지훈은 문득 하나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먼 과거, 13영웅 중 하나이자. 검성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에반 보르도쵸프는 검이 무엇이냐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검은, 나를 표현하는 길이며, 상대에게 닿는 길이며, 우리를 완성하는 길이며, 곧, 우리를 무너지게 하는 길이다.
길.
지훈의 검은 길을 찾습니다. 지훈의 눈은 벨 지점을 알아냅니다. 지훈의 마음은 베고 싶다는 생각으로 뛰기 시작합니다. 지훈의 생각은 타올라 사라지고 맙니다.
이 곳에 있는 것은.
오직.
두 자루의 검 뿐.
검혼劍魂
카가가가가가가가각!!!!
절대 베어질 수 없었던 검귀와 지훈 사이의 '거리'가 베어집니다. 검귀는 검을 집어든 채로 지훈에게 다가가기 위해 검을 휘두르지만, 지훈은 단지 그 자리에서 스스로 완성한 검격을 바라봅니다. 단지, 검에 혼을 담을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검이란 물건은 이런 것마저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웅- 낡은 철검이 토해내는 짧은 음성에는 자신을 알아줘서 기쁘다는 음색이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철검은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맙니다.
- .... 사과드리리다.
옆구리에 긴 자상을 입은 검귀는 자신의 검을 바르게 들고, 허리를 편 채 지훈과 나이젤, 사오토메를 바라봅니다.
- 진짜 검수를 만났으니 인사는 제대로 드리는 것이 맞겠지요.
그의 검이 숲에 새어든 빛을 받아 빛나고, 이성을 잃은 것만 같던 검귀의 눈이 원래의 색을 되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