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물어본 지 얼마나 지났다고 다시금 식기에 손이 간다, 식사 예절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이 급하게 음식을 볼이 미어져라 밀어 넣던 소년이 문득 고개를 들어봤다. 안가르쳐줄거야? 묻는 듯 두 뺨은 음식으로 불룩하게 튀어 나온 주제에 한동안 바라보다 이어지는 대답에 잠깐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여봤다. 헌팅? 근데, 헌팅이 뭐지? 분명히 수업 시간에 헌터와 가디언의 차이는 배웠던 것 같은데. 왜 사냥을 한다고 생각을 하는거지? 나를 경계하고 있는건가? 이 섬에서도 이미 헌터가 침입한 전적이 있었던건가? 보안이 그렇게 허술한가? 기본적인 상식이 결여된 인간이 다른 전문적인 분야의 지식을 잘 알고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몸소 보여주는 고민 끝에 소년이 음식을 꿀꺽 넘기며 물을 한 컵 들이켰다.
"헌터가 아니라 가디언 지망. 그래서 이름이?"
정말 안가르쳐 줄거야? 제가 독설을 들었다는 것도 인지를 못한 소년이 끈덕지게 재차 물어온다.
비록 시간이 많이 지나서 목소리도 변했고 키라던가 변한 것이 많지만, 사람의 감과 기억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잊혀질 리가 없었다. 지아는 본능적으로 말을 걸어온 누군가가 어릴 적에 헤어진 그리운 동향사람이라는 것은 본능적으로도 알만한 일이었다.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아본 지아는, 잊을 리 없는 이름을 가진, 자기보다 머리 하나보다 더 커져버린 그를 불렀다.
"지훈오빠? 지훈오빠!"
잊을리가 없었다. 유년시절, 부모님이 출근하고 퇴근해서 돌아올 때 까지 거의 매일같이 따라다녔던, 가족이나 다름 없었던 사람을 잊을리가.
'꼬르르륵...' 뱃골이 밥을 넣으라고 신호를 보내온다. 교내 식당에서 밥을 아무리 많이 받아먹어도 육체 단련부 활동에서 소비하는 열량을 도저히 따라오지 못한다. 소년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근처의 식당가를 찾았다. 용돈도 점점 떨어져가는 마당에 식비가 부담스러워 값싸고 양이 푸짐한 음식점을 찾아야만 했다.
소년은 홀로 식당가를 거닐었다. 북적이는 식당가의 분위기는 소년이 혼자 식당에 들어가기 부담스럽게 만들었고,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것은 아직 어린 소년에게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같이 밥 먹을 친구라도 사귀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외로움과 아쉬움이 밀려온다.
'꼬르르륵...!' 다시 한번 뱃골이 크게 울린다. 소년은 누가 듣기라도 했을까 얼굴을 붉히곤 괜히 교복 자락을 털어내는 시늉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가...가디언 지망....이 아니라. 물론 사전적인 의미의 헌팅은 새나 짐승따위를 포획하는 일 따위를 말하긴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보통 처음 보는 사람에게 교제를 목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헌팅'이라 하지않던가? ..어찌됬든간에, 남성은 자신에게 헌팅을 목적으로 말을 건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가디언 지망이라는 것은 말하지않아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면 단순히 이름을 묻는 이유를 생각하자면...모르겠다. 어떠한 이유로 인해서 만난 것도 아닌데,
"이름을 물어본 쪽이 먼저 알려줘야 하는 건 아닐까요."
하는 수 없이 타다는 상식적으로 대응하기로 하였다. 이유를 찾는 것은 자신의 머리만 아파오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덜커덩. 자판기에 동전을 넣어 값을 미리 지불한 다음 버튼을 눌러서 원하는 음료수를 주문하는 과정을 거친 후 들리는, 줄여서, 구매 완료를 나타내는 소리. 아, 안 돼...! 이미 뽑았잖아! 뽑기 전이라면 몰라도 이미 뽑아버린 후라면, 환불도 안 되는 거 그 맛없다는 음료수 맛이나 보자... 라는 마음으로 마시려고 하는 게 사람 마음. 그리고 대체 왜인지 몰라도 이 음료수가 무척 맛있다고 느끼는 소수의 입맛을 제외하고, 이 음료수의 맛은 이미 트라우마급이다. 그런 걸 왜 자판기에 넣어 놓은 건진 모르겠지만.
"어......"
나이젤은 이거 나쁘냐는 순수한 질문에 점을 여섯 개나 찍으며 말을 흐렸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 거죠. 도와줘요 문과뇌! 하지만 나이젤은 이과라서 실패했다. 공돌이의 폐해. 맛없으니까 먹지 말라는 말로는 설득력이 없을 거라는 것만 머릿속에 남았다. 그렇게 밖으로 나간 말은...
"그, 그건 폭탄이야!"
맛이 폭탄급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예민한 사람은 마신 다음에 속이 느글거리다가 폭발(?) 혹은 분출(?) 등의 부작용을 느낄 수 있으니 정말 틀린 말은 아니다. 급하게 오느라 벗겨진 후드를 다시 눌러써 수상해 보이는데다 뭔가 조급한 말투를 쓰고 있는 나이젤의 모습은 폭탄(?)이라는 거짓말에 조금, 조오오오 금... 설득력을 더해줄 만한 모습이기도 했고.
"그, 그러니까... 마시면 안 될지도..."
아니, 설득력이 떨어지는 말투가 되어버렸다.. 아무튼 나이젤은 선의의 거짓말을 완성하기 위해 자기보다 17cm 작은 소우의 손에 들린 음료수를 가져가려고 손을 뻗었다. 이대로는 뺏는 것 같아 보이니까 적어도 음료수값은 줘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 따윈 이미 머릿속에 없었다.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호칭에 지훈은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지아를 내려다보았다. 이젠 키차이가 꽤나 난다 싶었던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특별한 일은 없었는지 등등 물어보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막상 질문하려고 하니 말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무슨 말을 건네지. 한참이나 -사실 몇초 지나지도 않았지만- 고민한 끝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 ...그 때보다 키는 조금 더 작아진 걸지도 모르겠네. "
반가운 마음에 괜히 놀리듯 중얼거렸다. 옛날에도 자주 이런 식으로 장난쳤었지. 그땐 지아가 어떻게 반응했더라? 너무 오래된 기억인지 잘 떠오르지 않았던가. 곧 지아가 보일 반응으로 떠올렸겠지만.
식당가. 그리고 카사. 이 둘은 떼어낼랴 떼어낼수 없는 조합. 원래 야생의 짐승, 아니, 집에서 키우는 것들을 봐도 그렇다. 배를 채우고 채우고 밥을 이미 먹어도 하루종일 굷은 양 주인에게 떼쓰는 존재! 카사도 그런 숭고한 본능을 이어 받을 수 뿐.
꼬르륵...
그러니까 이건 카사의 잘못이 없었다.
식당가 의 한 구석. 북적이는 거리와 다르게 인파는 한 곳에게 적절선을 무시하며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 한거리의 동그라미 중심에는 카사, 그리고 카사가 쨕 달라붙은 한 식당의 표지판이 있었다.
[무한리필 고기 뷔페 - 배터질 만큼 먹자! 2인용 특별 세트!]
가지고 있는 GP는 부족하다. 일인용 뷔페로 쓰기에는 부족하다! 저 2인용 세트를 따~악 반으로 나누면 될텐데! 표지판 뒤에는 이미 맛있게 고기로 배를 채우는 사람들이 보여, 억울함에 매운 눈물이 날꺼 같다. 딱 한명, 같이 먹을 딱 한명이라도 더 있었다면! 처철하게 물기어린 눈과 더욱 더 물기어린(?) 입에 그 생각은 주위 모두에게 드러났다. 여기서 나쁜 소식. 신입생으로서 카사의 가디언 칩 연락부는 텅텅 빈것이나 다름없다. 지원요청은 없. 허나 여기서 좋은 소식! 수미터 떨어진 곳에서 같은 목적으로 걸어가는 학생이 한명있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기적, 운명의 공동체라 불릴 만한 기적!
이미 늦었고, 뽑은 당사자는 이 음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줄 정도라는 위험성을 모른 채 소우는 자신의 앞에서 제대로 대답은 못하고 말을 흐리는 이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뭐지? 하는 생각으로 제 뒷머리를 긁적이던 소우는 일단 뽑은 건 뽑은 거니까 마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묘하게 수상해보이는 모습의 사내가 말을 덧붙이기 전에 캔을 땄다. 틱! 하는 캔음료 특유의 소리가 경쾌했다. 이 음료는 폭탄이라는 말이 들린 건 그 후였다.
네? 폭탄이요? 빨간 눈을 깜빡이며 사내를 보며 되물은 소우는 손에 들려있는 음료를 가만히 보았다. 일단 딸 때 폭팔하지 않았고, 애초에 이 학원도에 폭탄 테러를 할 만큼 간 큰 바보가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무엇보다.. 자판기 속 음료수가 폭탄이라니. 의념기 같은 거라면 모를까.. ..생각해보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 소우는 꽤 고심했다. 거기다 그 말을 한 사람의 모습이 꽤 수상했다. 5초 정도는.
"...흐으으응." 하고, 묘하게 웃은 소우는 사내가 손을 뻗기 전에 캔을 입가에 가져갔다. 그리고 음료수를 입에 한 모금 머금고, 꿀꺽 삼켰다. 말리기엔 이미 늦은 이 행동의 결과는 곧 소우의 격한 기침과 기침과 기침으로 나타났다.
"케헥 크 콜록! 아 뭐야이ㄱ, 커허.."
그리고 제 입가를 쓱 문지른 소우는 곧 살짝 눈물이 맷힌 얼굴로 웃었다.
"아 뭐야, 이래서 말린 거였어요? 누구신진 모르겠지만 형은 좋은 사람인가봐요! 아 근데 진짜 맛 없다 이거."
무척이나 맛 없는, 이 학원도에서 지뢰 음료수로 유명한 것을 마시고도 소우는 꽤 쾌활한 웃음을 짓고, 경쾌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맛있어 하는 건 아니었지만, 재밌어하고 있었다.
한 꼬마가 나에게 물었다. 지독하리만큼 순수한 미소로 당신은 최고의 마법사가 맞냐고 물었다.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꼬마의 말들은 그만큼 우스운 이야기였다. 예를 들어 게이트에서 돌이 튀어나왔단 일을 게이트가 열리며 토룡의 숨이라도 내뱉어진 것처럼 말하곤 했다. 그러다가도 들키면 제 편한 미소를 지으며 헤실거리는 것이 영락없는 버릇 나쁜 꼬맹이었다. 하루는 그러던 녀석이 나에게 와서 얘길 했다. 왜. 세상은 이럴까요? 하고 저딴에 어울리지 않는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꼬마에게 물었다. 왜? 하는 짧은 단어였다. 꼬마는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부모가 게이트 사건에 휘말려 돌아가셨단 사실. 자신의 할아버지는 가라앉은 일본에서 돌아가셨단 사실. 그리고 자신은 가족 없는 고아하는 사실까지도. 그 말들을 들었을 때 문득 분노가 치밀었다. 이런 어린 꼬마가 그리워하는 것마저 할 수 없는 사람이 무엇이 최고의 마법사냐고 말야.
" 꼬마야. " " 응. 마법사 누나. " " 다섯 밤을 지내고 나서 어른들이 들려주는 라디오 소리를 들으러 가렴. 내가 너를 위한 선물을 준비해줄게. "
나는 날았다. 단지 영웅같은 허울 좋은 이름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단지 나는 그래야만 할 것 같다는 강박감에 휩쓸렸다. 마법을 입에 올린다. 주문의 단어들이 혀를 지나고, 수많은 속성과 개념이 손끝에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세계가 울리고 있었다.
" 영웅이 되기로 했어. "
그 지독하리만치 오만한 대답에 정체 모를 누군가가 물었다.
" 왜? "
그 의문에 내가 답했다.
" 단지 내가 그러기로 결정했을 뿐이야. "
그 대답을 끝으로 긴 바다는 숨을 토해냈다. 일본. 한때 저 바다 아래로 사라진 섬은 기나긴 잠에서 깨어 지축을 흔들며, 긴 기지개를 폈다.
" 누군가가 나에 대해 묻거든 그렇게 답하도록 하라 하여라. 나는 모든 마도의 정점이자 모든 마법의 주인이니. 내 이름은 마왕 서유하. 새로운 영웅이다. " - 마왕 서유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