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해. 이건 아마 내가 이 섬에 도착하고 가장 많이 떠올린 감상일 것이다. 인공적으로 만든 섬이라는 것도 신기하고, 세 학교도 신기하고, 무엇보다 가디언들이 가득하다는 게 신기했다. 그냥 알음알음 듣기만 했던 유명인들이 이 섬, 이 학교에 자리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아마 생활하다 보면 한 번 정도는 대화할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종종 고개를 들었다. 4년 동안 있을테니 기회가 없진 않을 것이었다. 죽지 않는다면 말이지만. 4년은 커녕 내년에 내 사지가 멀쩡할 지도 알 수 없다. 그래도 죽기 위해 온 사람이 아니기에 일단 당연히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이라도 이렇게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긍정적이라는 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의 장점이라면 호기심이 아닐까나. 지금도, 열심히 다리를 움직이고 있고.
처음 온 곳의 지리를 대충이나마 파악하기 위해 섬을 돌아다녔다. 오늘 목표로 한 곳은 상점가. 가게가 몰려있는 만큼 자주 드나들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약이나 장비, 취미용품 등등 한두 달 여기 있을 것이 아니었다, 길을 외워둬야지. 길치가 아닌 것이 다행이었다. 당장 지갑이 얇기에 특별히 뭘 사지는 않고 고개를 들이밀며 이것저것 구경하던 나는 잠시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바로 옆에 자리한 자판기가 눈에 띄어서, 벤치에서 일어나 자판기 앞에 섰다. 본 적 없는 음료들이 빛나는 등 아래서 형형색색의 몸체를 보이고 있었다. 하나 마실까? 하고 고민하던 나는 곧 돈을 넣고 손가락을 이리저리 흔들며 음료를 고민했다. 그러다 하나, 그냥 아무거나 누르려 했다.
전직 가디언, '아브엘라'는 고기를 썰던 식칼을 내려 놓는다. 그녀가 고개를 돌면 보이는 것은 식탁에 앉 다리를 통통 튀기고 있는 소녀, '카사'. 창창한 40대한테 벌써 할멈이라 부르는 저 나쁜 입! 물론 고정하는 것은 포기한지 오래다. 한숨을 쉬며 아브엘라는 몸을 완전히 틀어 소녀를 바라 보았다.
"뭔데."
"난 왜 안 죽어?"
아브엘라는 한숨을 머금었다. 별로 예상치 못한 질문은 아니다. 어린아이들이란 언제나 궁금증으로 가득찬 존재이고, 그 중 카사는 특히 호기심이 많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최근 그녀의 질문은 나름의 고뇌를 담고 있었다.
할멈, 왜 나는 따뜻하지 않아? 할멈, 왜 눈물은 나만 흘려? 할멈, 할멈...
"언제 죽느냐"가 아닌 "왜 안 죽느냐"이다. 언제부터 였더라. 마지막 형제가 노사한 후였던가, 최근 늑대 무리에 새로운 새끼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였나...
"그 질문은 왜?"
카사는 부르퉁한 표정으로 턱을 굈다.
"엄마도 죽었고, 형제들도 다 죽었어. 나도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 일도 없잖아. 너무 슬퍼."
야생에서 죽음은 언제나 가까운 존재다. 한 이의 생존이란 다른 이의 죽음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거기에 환경 자체가 장수에 특화되어 있지 않다. 17년까지 사는 늑대의 수명도 야생에서는 반으로 깍아진다. 아무리 사랑하고 아무리 아껴도 어쩔수 없는 곳이다. 무릎위에 안착한 카사의 손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작은 손발이 부르터져 살보다는 가죽이 될때 까지, 저 작은 아이는 무슨 심정으로 달렸을까? 아브엘라의 심증이었지만, 저 작은 체구는 이름모를 부모의 유전보다는 불균형한 영양상태의 흔적이라 생각한다.
"...너는 인간이라 그래. 너랑 나는 훨씬 오래 살아."
"인간은 얼마나 오래 살아?
잘하면 100까지 살수 있다는 말을 하자 소녀가 질린 얼굴을 한다. 그에 아브엘라는 작은 웃음을 삼켰다.
"카사, 내가 누누히 말하지만..."
이에 아브엘라는 다시 등을 돌려 식사준비에 매진한다. 이 말을 반복한지 몇번이나 되, 소녀의 질색하는 얼굴은 보지 않아도 예상이 갔다. 아브엘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 그녀는 아이를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싫어하는 것에 가까웠다. 수풀 너머로 빛나는 한 쌍의 호박빛 눈동자가 자신의 식탁에 앉아있는 소녀로 이어줄지는 생각도 못했다. 거기에 더욱 더 정을 붙혀 이름도 지어주고 이런 진심어린 소원이 생길 줄은 생각도 못했다.
"나는, 네가 산을 내려가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 너랑 같이 살수 있는 친구랑 가족도 만들고 말이야."
아브엘라는 말을 돌리는 편도, 굳히 거짓말을 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이 말은 진심이었다. 자신이 있었지만, 평생 같이 해줄 수도 없고 결국엔 아브엘라도 한 사람 뿐이었다.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인 이상, 카사는 더욱 더 많은 사람을 필요로 했다.
"가디언 아카데미에 가면 좋겠지. 거기서 친구들을 사귀고 말이야. 너 만큼 강하고 오래 사는."
거기에 카사는 지나치게 강하고, 지나치게 빠르다. 카사가 이 오두막을 자신의 영역으로 칭한 후 아브엘라는 그 무슨 맹수도 본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아브엘라는 이 소녀가 네발로 달리는 것을 본 적 있었다. 의념도 별 다른 훈련도 없이 그런 속도를 내는 아이다. 이 작은 산속에서 끝나기에는 아까운 인재다. 무엇이기 이전에 아브엘라는 가디언이었다. 인간의 창과 방패로서 재능을 보면 여러가지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브엘라는 썰다 만 고기를 끝내려 식칼을 들었다. 이번에도 카사는 싫다고 할 것이고, 애초에 가디언이라는 길이 누구에게 강요할 것이 못 됬다.
"...할께."
"응?"
"할멈이 말한 그 스카우터. 만날께."
가벼운 말투와 달리 굳은 결심을 담은 말. 예상치 못한 대답에 아브엘라는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카사는 폴짝, 체구에 비해 큰 의자에서 뛰어내렸다. 문으로 걸어가는 카사의 뒷모습에 아브엘라는 멍하니 의문을 던졌다.
"...밥 아직 안 됬는데."
"옆 산의 곰탱이랑 아직 결판을 못 냈어. 오늘 끝내야지."
막 내린 결정 치고는 이미 떠나겠다는 결심을 담을 말이었다. 뒤돌아보지도 않고 문 너머로 뛰어가는 작은 적갈색 머리의 소녀. 아브엘라는 헛웃음을 지었지만, 이내 입가에는 진심어린 미소가 담긴다.
진정하게 카사를 위한다면 아마 이 산에서 계속 살게 하는 것이 좋은 선택일 것이다. 인간 세상의 어려움따위 하나도 모르게. 잦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해 어둑한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단순한 일상. 사람의 슬픔과 언어로 전달되는 복잡한 감정같은 거 하나도 모른 채, 큰 꿈도 지나친 절망도 없는 평온한 나날. 하지만 아브엘라는 무엇이기 이전에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카사가 밖으로 나가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울상을 짓다가도 행복하게 웃게되고. 더욱 더 강해지면서 너무나도 약하다는 것을 깨닫고...
무엇보다도 지킨다는 것의 행복을 깨달았으면.
철컥, 다시 열리는 문의 소리에 아브엘라는 시선을 돌린다.
"할멈!" 거기에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나 할멈이랑 같은 가디언이 될꺼니까.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최강의 가디언 말이야."
할 말은 다 하자 마자 다시 사라지는 소녀. 아브엘라은 그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웃어줄수 밖에 없었다. 이제 쯤이면 카사에게는 다시 달려나가 들리지는 않을 답을 내뱉는다.
"...그래."
Casa. 그녀의 모국어로는 '집'이라는 뜻이다. 나의 Casa, 나의 집. 너의 보금자리를 떠나, 진정한 너의 집을 만들어 나가렴. 다시는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속에서 진심으로 웃어주렴. 이 산속은 너를 담기에 부족하고, 밤하늘은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식판 위로 한가득 쌓인 음식들이 우선 보인다, 못 먹어서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는지 좀 과하게 쌓아 올린 반찬을 쏟지도 않고 능숙하게 들고 움직이는 모습이 제법 시선을 끌 만 했지만 그 식판을 든 주인의 인상 탓이련지. 식판을 살피던 학생들은 고개를 돌려 소년의 얼굴을 한번 흘끔거리고는 대강 시선을 돌리고는 했다. 그렇다고 그 시선에 태도를 움츠린다거나 눈치를 보며 재빨리 움직이는 것도 아닌지라, 느릿한 걸음을 걷던 소년에게 남은 자리가 돌아갈 일은 없었다.
그렇다. 과도한 식판을 들고 꽉 찬 테이블들을 한번 둘러보던 소년은 그제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식당 벽을 마주보고 서서 먹는 수 말고는 없다.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은데.
그렇게 잠시 걸음을 멈췄다가, 자리가 하나 끄트머리에 보이자 얼른 거기로 먼저 앉는다. 제 앞에 앉은 상대가 누구인지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확인했고.
가끔 부산 해운대가 그리워지만 항구에 오곤 했다. 바다 근처 카페-겸 비상대기소에 항상 상주하시던 가디언 언니오빠들, 긴장되지만 평온한 묘한 분위기 속에서 집 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보냈던 그곳. 지아는 항구 방파제에 앉아 다리를 흔들거리며 옛날 일을 생각중이었다. 옛날에는 어땠더라, 언니오빠들이 해질녘 되면 우리보고 이제 집에 가렴, 이라고 하면서 가끔 과자 주거나 집까지 데려다주거나... 멍하니 저녁노을을 보고있으니 떠오르는 기억들이었다.
"그 오빠는 잘 지내나~?"
어린 지아의 기억속에 또렷하게 남은 사람들 중에는 그런 가디언들 말고도 또래의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지금쯤 잘 지내려나, 그런 생각과 함께 벌러덩 드러누운 시야의 저 너머로, 누군가 다가오는게 보였다. 오늘은 저사람이랑 친구하자, 지아의 즉흥 계획이 시작되었다.
사람은 움직이지않아도 살 수 있지만 건강할 수 없다. 그리고 움직이기위해선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너지란 무엇인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기에 보충을 해야한다.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것은 식사를 하는 것. ..그래서, 타다는 가디언 아카데미로 오고나서 첫 식사를 하고 있었다.
메뉴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은 다음 식기를 준비한 뒤 그저 기다린다. 진열된 컵과 물이 있지만, 목이 마르지 않는한 식사를 할때의 수분 섭취는 그다지 추천하지않는다. 긴 시간이 걸리지않고 주문한 메뉴가 찾아오자 타다는 식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아니, 정확히는 시작하려하였다.
"동석 좀."
누군가가 자신의 앞에 앉아서 양해를 구하면서 짧은 말을 건네기 전에는. 식기를 집었던 손은 멈칫하고 시선은 주변을 둘러본다. 꽉 찬 테이블들. 어느 자리도 사람들로 붐빈다. 그 순간 타다는 상황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별 다른 대답은 하지않았다. 그저 조용히 자신도 하던 일을 마저 한다. 침묵은 곧 긍정. 거부 의사를 표출하지않았다. 무시한 것이 아니다. 그저 답변을 하지않았을 뿐.
나이젤은 조각품 위에 쌓인 나무조각을 불어서 털어내다가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오늘따라 영 집중이 되지 않는다. 이럴 때 힘들여 조각을 해봤자 잘못 깎아내거나 제 손만 베이기 일쑤다. 조금 밖에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는 게 좋을까. 작업복을 교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후드집업을 한 겹 더 껴입고 후드를 깊숙히 눌러쓴 채로 상점가로 나갔다.
익숙한 얼굴보다 모르는 얼굴이 더 많이 보인다. 아마, 1학년들일까. 나이젤은 자기 1학년 때를 떠올리며 칙칙한 추억에 젖었다. 자신도 저렇게 활기찬 모습으로 길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던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었지만. 나이젤은 칩 기능을 몰라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몇 명의 학생들을 도와주면서 무작정 길을 돌아다녔다. 조금 뒤, 몸이 지칠 일은 없었지만 피곤하고 목도 말라왔기에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근처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으려고 했다. 그래서, 바로 옆에서 먼저 일어나 자판기 앞에 선 소우의 뒤쪽에 설 수 있었다.
"...!"
그 순간 눈에 보인 것은 가벼운 태도로 '그것'을 뽑으려는 소우였다. 아니, 왜 하필 골라도 그걸? 알고도 마시려는 거든, 모르고 마시려는 거든 말려야 한다! 멋모르고 1학년 때 호기심으로 '그것'을 뽑았던 기억이 추억을 깨부수고 떠오른 나이젤은 피곤함과 겹쳐 순간 이성이 마비되어 버렸다.
"그게 뭔지 알고 마시려는 거야...?!"
평소 입에 달고 살았던 예의조차 잃은 나이젤이 식은땀을 흘리면서 소우를 말리려 이쪽 좀 돌아보란 뜻으로 어깨를 건드렸지만... 나이젤은 소우의 뒤쪽에 있고, 소우는 버튼을 누르려고 하고 있었다. 즉, 까딱하면 버튼이 눌려서 '그것'이 나와버릴 상황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지훈은 느릿하게 중얼거렸다. 방파제에 부딪히는 파도소리, 그리고 바다에서 풍겨오는 짠 냄새. 그리운 감각이었지. 고향에서는 바닷가나 파도를 자주 구경하면서 놀았으니까. 다들 지금쯤이면 뭐 하고 지내려나, 라고 생각하기도 잠시, 그는 원래 이곳에 온 목적대로 항구에서 유명한 음식점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고향에서 함께 놀던 또래중에 기억에 남는 친구도 있었던가. 부모님의 명성도 명성도 명성이었지만, 그 성격 때문에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분명 이름이...
" ...아. "
벌러덩 누워있는 소녀를 발견한 지훈은 무표정하게 중얼거렸다. 말없이 누워있는 소녀에게 점점 다가오던 지훈은 소녀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그제서야 무언가 제대로 된 말을 꺼냈다.
자리에 앉자마자 물을 한 컵 부어 마셨다. 사실 누가 앉아 있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제 앉는 것이 우선이던 소년에게 제대로 들어올리가, 뒤늦게서야 인사를 건넨 것도 나름 이 아카데미에서 무언가를 배운 덕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말 없이 앉아서 말 없이 먹다가 말 없이 일어서서 훅 가버렸겠지. 실은 그 편이 편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대뜸 꺼낸 인사여서 그랬던지 별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묵묵하게 밥을 먹고 있던 소녀를 내려보던 소년이 저도 식기를 집어 크게 한 술 떠 입에 밀어 넣기 시작한다. 이 섬에 들어와서 처음 제대로 실감을 한 것은 모든 시설이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좋다는 것 정도였을까. 그래서 가끔은 자고 일어나면 모두 꿈이 아닐까 싶은 상상을 할 정도였다. 근데 지금은 아니다, 지난 번 이사장실을 찾아갔을 때 살기 하나만으로 기절하는 충격적인 경험 이후에 그런 사소한 걱정을 하고 있을 틈이 없어졌으니. 그러고 보니 강해지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의뢰? 혼자 가면 더 많은 것을 배우겠지만 돌아오지 못한다면 말짱 꽝이다. 그래서 친구를 사귀라고 했던건가? 아, 그렇다면야.
한참 식기가 식판에 부딪히는 옅은 쇠소리만 들리던 가운데에, 대뜸 소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름이 뭐야."
친구가 되기 위해서 이름부터 물어보는게 맞던가? 잠시 식기를 멈추고 당신을 빤히 바라본다.
보통, 자판기 버튼은 누르려는 시점에서 바꾸려면 늦는다. 안타깝게도 이 금발머리 앳된 소년이 그러했다. 이 자판기 안에 들어있던 음료 절반 이상이 그렇듯 정체모를 음료를, 소우는 갈색머리의 녹색 눈이라는, 초목과 부드러움이 연상되는 색체의 사람이 말리기 전에 뽑아 버렸다. 버튼이 기계 안쪽으로 눌리고, 곧 덜커덩 하는 소리와 함께 나왔다. 그걸 꺼낼 생각도 못하고 소우는 그저 멍하게 자신의 어깨를 건드린 그를 바라보았다.
"어, 이거 뭔가 나쁜 건가요?"
누군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보다 선배일 것 같다. 소우는 자신보다 정확히 17cm 더 큰 사람을 올려다보며 꽤나 예의바르게, 그러면서 너무 딱딱하지는 않게 물어보았다. 그러면서 조심조심 몸을 숙여 자판기 구멍에 있는 음료를 꺼내들었다. 적당하게 차가운 기운이 남아있어 손바닥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이 음료를 손에 들고 소우는 상대를 보았다.
"맛 없어요? 이거?"
화려하면 100중의 90 정도는 독이 있는 버섯과 다르게, 딱 봐도 알 수 없는 음료수 캔을 소우가 살짝 흔들었다. 독은 없지만, 맛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