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말소리를 묵묵히 듣고있다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봄의 경로는 이미 설명했다. 그럼에도 길을 함께 가겠다고, 소년은 말한다. 별로 즐겁지는 않을텐데, 하고 덧붙여볼까 하다가 그는 그냥 그만두기로 한다. 이미 말한 결정에 다시 단서를 붙여 되묻는 건, 너무 어린 취급이 아닐까 싶어서. 몇 년 만에야 다시 만난 소년은 이미 제 길을 걸을 줄 아는 개인이라, 그렇게까지 일일히 ‘돌보고’ 싶지는 않았다. 19살 무렵의 자신을 떠올리면 더 그랬다. 알 건 다 아는 나이지, 속으로 그렇게 덧붙인다. 간혹 가다가는 몰라야할 것도 아는 나이고.
커피잔을 들어 다시 한 모금 마시는 새에, 그는 봄의 경로를 어떻게 수정할까, 하고 생각한다. 소년은 이메일에서 경로의 수정에 대해 걱정했지만, 사실 그에게는 처음 정한 길이 그대로 이어지는 쪽이 드물었다. 길은 어디에든 있지만, 이 시대에서는 또한 어디에 있는 길이든 금방 망가지기 마련이다. 야생마가 도로를 점령해서,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던지…… 도보 여행이면 돌아가면 그만인데, 자동차는 그럴 때 불편하다. 음, 그러고보니 소년은 야생마를 보고싶어했었지.
“……점심 먹고, 장갑이나 사러가자.”
그리 말하고는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정오의 하늘은 잿빛이고, 오래된 도시는 말이 없다. 눈이 더 굵어지기 전에 움직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맞은 편 테이블에 앉은 소년은 쉽게 눈을 마주쳐주지 않는다. 그는 그에 대해 무어라 부연할 생각이 없었다. 말하고자한다면야 10년 전부터 기회는 많았으니 이제와서, 의 기분이다. 다만 그는 소년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것은 그의 버릇이기도 했다. 입밖으로 내는 말수가 적고 속생각이 많은 그는 찬찬히 들여다보는 일을 좋아한다.
그렇게 그는 소년의 시야를 가린 채 가볍게 흔들리는 밝은색 머리칼을, 잔을 쓸어내리는 몸짓을, 여전히 발갛게 부르튼 손끝을, 어딘가에 적어두듯 눈에 담는다. 유리를 깐 테이블과, 그 아래의 오래된 엽서들과, 차가운 유리 창 밖의 잿빛도 같이. 그리하여 그것은 사진이다. 그러니 그의 사진 취미는, 사실 이 버릇의 연장선상일지도 모른다. 달리는 야생마 떼도, 긴 울음을 우는 유빙도, 굳이 찍지 않은 것은 배터리 나간 카메라보다도, 사진 아닌 눈에 남기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홀로 새기고 지나간 풍경들이었다. 이메일을 쓸 때에는, 역시 찍어둘 걸 그랬나 싶기도 했지만. 그러나 이제는 그 글들을 받던 이가, 그와 동행하겠다고 말한다. 그즈음에서 그는 조금쯤 사진 찍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아직 보지 못한 것들, 그러니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이야말로 매혹적이라는 이야기에는, 어느정도 동의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일탈의 논리다. 그 풍경들을 이미 보았어도 소년이 그의 봄에 그저 발디뎌 주었을 것이라 믿는 일은, 그에게는 약간 쑥쓰러운 데가 있었다. 그랬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뭐, 봄이 되면 추위보다도 벌레가 문제가 될 거다만은.”
그러니 내뱉은 말은 맥락 없었다. 그 맥락은, 그의 속에나 존재한다. 아무리 시간을 공유하고 배경을 공유해도 소년이 독심술을 쓰는 건 아니니, 이 맥락까지 이해하지는 못하리라. 그러나 이해받기를 원하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야말로 그와 소년의 관계이다. 애초에, 속생각이 쑥쓰러워 문득 말을 돌려봤습니다, 하는 부분을 단번에 이해받아도 곤란하지만. 반쯤 설렁설렁한 태도로, 그러나 겉으로는 여느때와 같은 무표정으로 그리 생각하고, 그는 저번에 봐두었던 식당이나 떠올린다. 보르시도 좋고, 삼사도 괜찮았고, 당근 넣은 필라프도 좋지. 음.
아무튼, 괜찮을 것이었다. 이 대지의 겨울은 길고, 봄은 조금 멀지만, 그건 그것 나름대로 괜찮았다. 겨울을 같이 보낼 사람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고. 약간 만족한 기색으로 그렇게 속생각을 덧붙이고, 그는 슬몃 웃었다.
장갑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소년은 새삼스레 부르튼 제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무언가가 손목에 달려 있기라도 한 것처럼. 소년은 그 상태로 한동안 자신의 손을 관찰했다. 소년의 손은 작은 편이다. 손톱은 짧게 깎여 있다. 아직 굳은살이라고는 펜을 쥐면서 생긴 정도밖에 없지만, 앞으로 여정이 계속되면 어떻게 바뀔지 또 모르는 일이다.
소년은 문득, 걷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지금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잿빛 눈보라를 뚫고 정처없이 걷고 싶었다. 목적지는 필요없었다. 그저 지금, 소년이 걷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게 될 지도 모른다. 바이칼 호수로 되돌아가게 될지도 모르지. 정신을 차려 보면 한국에 도착할지도 몰라. 아니면, 어딘가에서 유빙이 우는 소리가 들려올 수도 있고.
하지만 소년은 곧 작게 고개를 흔들어 그 생각을 떨쳐 버렸다. 바깥은 곧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될 터였다. 시베리아의 설원도 아니고 모스크바 한가운데서 조난이라니, 안 될 일이었다. 게다가 소년에게는 이제 일행이 있었다. 말하자면 혼자가 아니게 된 셈이었다.
혼자가 아니다. 소년은 입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문장이지만, 어쩐지 그 울림이 마음에 들었다. 소년은 시선을 아주 약간 위로 올렸다. 그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손과는, 손가락이 다섯 개 달렸다는 걸 제외하고는 뭐 하나 비슷한 부분이 없는 손이다. 그럼에도 소년은 그들의 손이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소년은 손을 티나지 않을 만큼만 앞으로 옮겼다.
그의 말을 듣고 소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벌레를 특별히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건 아니었지만, 동시에 곤란할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완벽하게 곤란하거나 완벽하게 곤란하지 않은 건 세상에 없어. 소년은 생각했다. 그런 것이다. 바이칼 호수도 누군가에게는 곤란한 상황을 부여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벌레 덕분에 곤란함에서 벗어날 수도 있는 법이다.
소년은 마지막으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잔에는 물이 반 정도 남아 있었다. 소년은 오래된 책에서 본 내용을 떠올린다. 물이 반밖에 안 남았는지, 아니면 반이나 남았는지를 결정하는 건 관찰자 자신이다. 소년은 이 역시, 크게 신경쓸 일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반밖에 안 남았어도, 반이나 남았어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이 물이, 콤소몰스카야 광장 근처의 카페에서, 그의 맞은편에 앉아 마신 물이라는 사실이었다.
"가요."
주어와 목적어를 모두 빼먹은 문장은 물론, 식사를 하러 가자는 말이었다. 소년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알아들었을 것이라고 의심치 않으며. 그게 그들 사이의 관계였다. 다른 말로 하자면, 소년은 타인이 보기에 퍽 묘한 방식으로, 그를 믿고 있다는 뜻이었다.
잘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호텔에 선예약기간이 있으니, 바로 옮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헤어지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오늘은 즐거웠다. 점심을 먹고도 눈이 그치지 않아서 차까지 마셨지만, 그래도 해가 지기 전에 날이 개어서 다행이었지.
짧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야로슬라브스키역에서 지하철을 타면 중심지까지는 금방이라, 생각보다 이것저것 구경할 수 있었다. 하늘이 개어서 붉은 광장의 중앙에 서니, 성 바실리 성당과 구 러시아 국립역사박물관, 니콜스카야탑까지 볼 수 있었지. 비록 인구가 줄었다고 해도, 모스크바는 모스크바더구나.
너도 같이 본 걸 길게 써봤자 의미가 없겠지. 그래도 숙소에 들어와 씻고 나니 이메일이 보내고 싶어져서 말이다. 네가 언제 확인할지는 모르겠지만 짧게나마 보내본다. 그리고 사진도 한 장 첨부할게. 오늘 바실리 성당 앞에서 널 찍었거든. 셔터를 누를 때까지 돌아보지 않아서, 알아챘는지는 모르겠지만.
북미… 당장 가는 건 무리일 것 같네~ 하다가 생각난 건데, 북미는 사찬이 발이 닿은 적이 없는 곳이니까, 사찬이랑 해월이가 이번 해를 같이 보내고(어쩌면 그러고도 조금 더 지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영원히 같이 다닐 순 없으니 헤어지고 > 중앙아시아 돌아다니는 동안은 사찬이가 경로를 정한 편이었으니 스스로 마음 가는 곳으로 여행을 시작한 해월이가 북미로 넘어가고, 이번에는 사찬이가 해월이를 찾아가는… 전개도 재밌을 것 같아요! 그러려면 시간이 좀 지난 이후의 미래편이 되겠지만요… (해월이 성장버전도 좀 궁금해서 슬쩍 들이밀어보는 설정)
그리고 이건 설정 제안인데.... 현재 시점… 이라기보다도 지금 돌린 일상 기준, 작중 년도의 뒷자리를 '20'으로 해도 될까요? 실제로 3020년인지 2220년인지는 불명이지만 뒷자리는 20인 걸로요…! 전개 정리할 때 연표처럼 슥슥 쓰는 편인데, 연도가 없으니 곤란해서… 이왕 정하는 거 현실이랑 비슷하면 계산도 편하니까요… 정하지 않고 두고 싶으면 그것도 괜찮고, 앞에 자리수까지 정하고 싶으면 그것도 괜찮아요!
Tmi 겸 잡설정 :
사찬이 이메일 주소가 schkwon1957@knist.ac.kr < 인데 knist.ac.kr은 대학 이메일이고, Korea National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의 약자라고 생각하고 썼어요. 국립한국과학기술원(?)인 셈인데 사실 도시국가 단위로 바뀌었으니 K라는 문자로 시작하는 도시 이름으로 바꾸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sist, 로 수정해서 서울과학기술원도 괜찮고… (아무래도 전 수도니까)
그러면 XX20년일지 XXX20년일지는 몰라도 20년 겨울부터 21년… 까지는 해월이랑 사찬이 둘이서 다니는 것으로! 사실 일년 딱 같이 다니고 21년 겨울, 거의 같은 날에 헤어지는 이야기도 재밌을 것 같기는 하죠 어차피 가는 길 갈라져도 계속 연락은 할테고(?) 그치만 북미 루트 타면 해월이는 자동으로 정착은 안 하게 되려나요? 쭉 중앙아시아에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형 보고 태평양 건너 북미 가도 괜찮을 것 같고, 아니면 중앙아시아에서 유럽 쪽으로 가서 대서양 건너 북미 가도 괜찮을 것 같은…! 일단은 미래의 이야기지만요XD
30대의 사찬이는… 재미없을 정도로 똑같을 것 같기도 해요🤔 겉으로 보기엔 그다지 안 바뀌었을지도…!
해월이 이메일은… 해월주도 모른다… (메모) 사찬이 이메일은 그냥 schkwon1957@sist.ac.kr 로 해둘게요! (새삼 스스로가 중요치도 않은 설정 디테일에 집착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고…)
오 딱 일 년 같이 다니고 겨울에 다시 헤어지는 것도 좋은데?🤔 정착은 지금으로선 아직 열린 문이야! 오너는 나지만 선택은 해월이가 하는지라 (?) 아마 시기상으로는 북미로 떠나기 전에 한 번쯤은 형을 만나러 갈 것 같네. 이 부분은 나중에 독백으로 처리해야겠지? 아 근데 대서양 건너가는 코스도 끌리고.. 으악ㅇㅁㅇ (머리싸맴
헉 맞아 사찬이는 뭔가 세월 안 타는 이미지야! (?) 나이 먹어도 얼굴 별로 안 바뀔 것 같은 그런..? 왠지 나이 가늠하기 힘들단 얘기도 들어봤을 것 같고:D (아님
일단 그럼 일년 계획 세우고(?) 다음 일상을 쓰다보면(??) 태평양 루트가 나올지 대서양 루트가 나올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갈땐 한국 들러서 태평양 루트인데 사찬이랑 북미에서 만나서, 올 땐 대서양으로 오는 것도 가능^^)9
형 간만에 만나서 여행에서 본 것들 이야기해주고 다시 여행 떠날 거라고 말하는 해월이도… 좋네요… 정착은 언젠가 이곳으로 돌아오겠다, 고 생각하고 여행 계속하는 흐름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요. 여행은 젊을 때 하는 것이다…! (?)
사찬이는 어쩐지ㅋㅋㅋ 고등학생 때나 지금이나 인상도 체격도 전체적으로 비슷할 것 같고 그래요ㅋㅋㅋ (???: 어린 녀석이 인생 다 산 듯한 표정을 짓고 다니니까 그렇지!)
그럼 지금이든 나중이든 일상으로 풀어볼만한 주제는 이 정도려나요!
1. 20년 겨울~21년 겨울 둘이서 중앙아시아 여행: 아마 겨울 동안은 걷기 힘든 계절이니 이동수단 구해서 유빙 보고 이것저것 같이 보러 다니고 봄철에 사찬이 원래 일정 맞춘 뒤에 여름 가을 겨울은 경로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흐름 아닐지! 개인적으로는 가을에 몽골 쪽에 가서… 축제에 한번쯤 참여했으면 싶지만요…
2. 약간 미래편? 2부 느낌? 2n년 북미 버전… 이 부분 시점 같은 건 해월이 설정이랑 맞물릴 것 같아서 해월주가 정해주면 좋겠어요! 사찬이는 그때까지 어차피 별 다를 거 없이 그즈음에 있을 것 같아서() 미래편 나이는 해월주에게 맡깁니다…☆
3. 과거편! 한국에 있을 때의 둘(셋?) 이야기를 해볼 수가 있겠네요. 첫만남도 좋고, 아니면 둘 다 우당탕탕 캠퍼스 라이프(?) 하고 있을 때도 좋고… 이쪽으로 가면 자연풍경보다 세계관 속 사회 묘사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것도 재밌을 것 같기는 해요. 선배 분량이 늘겠군요(?)
4. 이건 일상 소재는 아니고 일단 독백 소재 정리: 북미로 넘어가기 전 형이랑 만나는 해월이 / 중앙아시아로 훌쩍 떠나기 전에 자퇴서 내면서 선배한테 좀 혼나는(?) 사찬이 등등등!
으음 일단 중앙아시아 부근에서 갈라지게 된다면 혼자 도보여행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을 테니 한국까지는 다시 기차를 역방향으로 타고 돌아가는 식이 되려나🤔 아니면 그 근방에서 다른 이동수단을 찾는 걸로 설정을 보강해도 괜찮고? 대서양 루트로 가려면 아예 유럽까지 같이 간 다음에 헤어지..는 게 경로상 가능하려나? (고민
아마 한국에 잠깐 들른 거라고만 하면 형은 좀 서운해하지 않을까 싶네😁 꼬박꼬박 메일도 주고받지만 한참 어린 동생이 아직 많이 걱정될 것 같단 말이지:)
뭔가 30대 사찬이도 딱 사찬이답다는 생각이 드네! 해월이 성장버젼.. 그것은 해월주도 모르는 비밀의 시크릿.. 미스터리.. (?
음 일단 지금까지 나온 건 그 정도가 아닐까 싶어! 새삼 아직 돌릴 거리가 한참 남았다 싶네🙃 소재가 무궁무진해서 더 기대되는걸! 앞으로도 잘 부탁해 사찬주:D
유럽까지 가는 것 자체는 문제 없을 것 같아요. 어차피 우체통에 편지 넣을 때까지만 해도 예정 경로는 타슈켄트 → 구레프 → 앙카라 → 이스탄불 → 아테네였으므로(?) 만약 한국 쪽으로 돌아가는 경로라고 하면… 음 1년 후 다시 모스크바에서 헤어지는 방법이 있네요. 수미상관적 의미로는 좋다고 생각해요! 거기서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가는 것도 가능한 흐름이기도 하고, 가는 도중에 다시 반가운 얼굴이나 풍경을 달라진 감상으로 보게 될지도 모르는 거고요☺️✨
선배… 정말 키워놨더니 애들이 다 집을 나가네요…(?) 사찬이는 정말 계속 바깥으로 나돌테고, 해월이도 잘하면 여행라이프 살 것 같아서ㅋㅋㅋ… 그치만 왠지 형은 여행… 안 오실 것 같단 말이죠, 나까지 연구실에서 빠지면 어쩌냐고 하실 것 같단 말이죠🙄
ㅋㅋㅋ그래도 사실 사찬이는 정기적으로 선배에게도 (자주는 아니더라도) 이메일도 보낼 것 같고 사진도 보낼 것 같고 그렇기는 해요(?) 해월이랑 만났다는 이야기도 이미 하지 않았을까? (선배는 이메일 답장으로 여느때처럼 좀 불평했을지도 모르지만) 원래 적당히 크면 독립도 하고 그러는 거죠(?)
ㅋㅋㅋㅋㅋㅋㅋ아마 원래 크면 다 독립도 하고 그러는 거란 얘기를 들으면 형은 ༼;´༎ຶ ༎ຶ`༽ <-또 이 상태가 되지 않을까.. 아무래도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없이 어린 해월이를 키웠다 보니 형제 말고도 부모 같은 느낌도 있을 거구! 해월이도 사찬이랑 만났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을까 싶네:D
근데 정말 부모님 같은 느낌이긴 했을 것 같아요. 띠동갑이니까 사실 나이차 많이 나는 형뻘~나이차 적게 나는 삼촌뻘? 정도지만… 해월이가 혼자 산다고 하면, 그것도 외국에서 혼자 산다고 하면 독립해서 날아가는 아기새 보는 기분이려나요ㅋㅋㅋㅋ (물론 이쪽은 통신이 가능하지만)
둘이 만났다는 이메일이 거의 비슷한 시점에 나란히 메일함에 들어와 있어서, 또 새삼 왜 나랑 해월이는 그렇다쳐도 쟤네들끼리 닮은 거지? 하는 선배도 생각나고 그러네요ㅋㅋㅋ
으아아 이럴수가 시험공부 하다가 14일은 아예 못들어와버렸네요88 그래도 이것저것 일 마무리도 요번주 중으로 끝날 거라, 다음 일상 돌리는 건 무리 없을 거에요!
선배 안경…! (아주 좋은 생각이라는 의견) 호남형인 것도 좋은 것 같아요…! 해월이랑 친형제인데 색소는 엷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좀 더 색이 진해도 좋고, 아니면 색이 엷은데 인상의 선은 좀 더 굵어서 이국적으로 보이는 외모~ 같은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좀 북방형 외모(?) 해월이가 정말 정착하면 연구실에 장기휴가 몰아서 내고 와서 봐도 좋겠네요ㅋㅋㅋㅋ 셋이서 간만에 모였는데 외국이라던가?
에구 사찬주가 시험공부때문에 고생이 많네;^; 너무 무리하지 말고 몸 챙겨 가면서 하기야! 요즘 안그래도 날씨도 추운데;^; 일상은 여유롭게 돌려도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구:>
으음.. 뭔가 형은 해월이랑 다르게 한국적인 유전자가 좀 더 진하다는 내 안의 뇌피셜이 있다! 머리 색도 해월이보다는 짙을 것 같구:3 헉 근데 듣고 보니 이국적인 외모도 끌리고..? 으악 왜째서 내게 이런 시련을ㅇ<-< (기절 헉 셋이서 하는 여행은 또 다른 느낌이겠다ㅇㅁㅇ! 형 한 사람 낀 거 가지고도 분위기가 180도 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드네◝(⁰▿⁰)◜
어므으어아악 사찬이가!! 사찬이가 머리가 짧아요!!!! 리즈사찬이야!!!!!! ༼;´༎ຶ ༎ຶ`༽ 애기 해월이도 만들어보고 싶어서 픽크루를 열심히 뒤지고 있다는 건 안 비밀이지롱:3
저녁 10시에 잠들어서 새벽 내내 깨다가 자다가 여덟시에 기상해서 다시 졸다가 깨다가 멍하니 있다보니 오후네요(❁´∇ `❁)💦
선배가 해월이랑 겉보기에 외모가 많이 다르다면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외모가 닮는 거랑 별개로 인상은 확실히 다를 것 같고요XD 셋이서 여행하면 별로 조용하지 않을 것 같긴 하네요ㅋㅋㅋ 걷기보단 자동차 여행이 어울릴 것 같은 인상이에요 선배는… 이 시대에도 국제운전면허의 개념이 있으려나요? 없겠죠…? 왠지 선배가 운전할 것 같아서(??) 핫 선배가 운전하면 조수석은 사찬이일까요 해월이일까요? 한국에서는 어땠을 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애기 해월이…! (헉) 후후 두근거리고 있을게요💕 사실 픽크루를 좀 더 가져오고 싶은데 이미지에 맞는 걸 찾기가 힘드네요… 혹시 더 만들게 되면 또 가져올게요!
시험이 끝나면 할게 많았던 것 같은데 전-혀 기억이 안나요🤔 일단은 점심을 먹으러 나가야 하지만요! 해월주도 맛점하세요!
헉 나도 이것저것 하다 보니 벌써 오후네ㅇㅁㅇ 사찬주도 시험 보느라 고생 많았고 당분간은 푹 쉬기야:D
일단 나도 픽크루를 들고 왔..는데... 너무 어린가? (동공강진) 초딩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다면 대충 5살 정도라고 봐주면 되지 않으려..나..ㅇ<-< 맞아 요즘은 픽크루 찾기가 또 은근 힘들더라;^; 얼마전에 괜찮은 픽크루 주소를 모아둔 걸 또 날려먹어서..8v8
뭔가 셋이서 자동차 여행을 한다고 하면 선배-운전석 사찬-조수석 해월-뒷좌석 이렇게가 어울릴 것 같아XD 해월이는 뒤에서 타고 가다가 중간에 조금 졸기도 할 것 같구>:3 국제면허.. 라기보다 그냥 면허가 국제면허가 되지 않으려나? 애초에 국경의 의미가 별로 없댔으니 (흠티콘) 한국에서도 형이 운전하면 해월이는 주로 뒷좌석에 탔을 것 같네!
셋이서 같이 있으면 대체로 조용하려나요! 하긴, 둘만 있을 때 보다는 좀 나을 것 같기는 해요. 둘 다 말수가 적긴 하지만 말 걸면 곧잘 대답하는 편이니까(말의 앞뒤를 끊어먹긴 해도) 국경의 의미도 면허의 의미도 사실 이젠 거의 없지 않을지ㅋㅋㅋ… 도시 국가 내에서는 면허 발급 여전히 해주지만 초원 같은 인구가 밀집하지 않은 지역은 무법지대(?)겠죠…
그래도 치안이 유지된다는 설정을 넣고 싶어서 자원은 풍부하고 인력은 귀하다 < 라는 설정을 넣은 거지만… 일단 포스트 아포칼립스니까 어딘가는 정말 범법지대일지도요🤔 있다고는 해도 당장은 그런 쪽 이야기를 할일은 없겠지만요 (분위기랑도 안 맞고!)
않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큐 사찬주 맞으면 안돼ㅋㅋㅋㅋㅋㅋㅋㅋ 저때는 아직 볼이 말랑찹쌀떡이었을 시기지.. 지금도 볼살이 쪼끔은 남아있을 것 같긴 하지만XD 응응 나도 좋은 저녁 보내고 있었지😊 오늘은 무려 고기를 구워 먹었다구!!
뭔가 대화의 주도는 거의 대부분 형이 할 것 같은 이미지니까! 말주변도 좋은데 이것저것 잡다한 지식도 많아서 대화 되게 잘 할 것 같구.. 사찬이가 간간히 맞장구 쳐주고 해월이는 말없이 듣기만 할 거라는 내 뇌피셜이 있다^ㅅ^ (사찬주: ? 그러게.. 분명 어딘가는 범법지대가 있지 않을까😱 어디까지나 목표는 재앙 이후 두 사람의 평화로운 여행 이야기니 아마 범법지대를 지나게 될 일은 없겠지만 대화에서 잠깐 언급만 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맞아 뭔가 이전에도 우범지역이었던 곳(남미라던가)이 그렇게 되었으려나 아니면 아예 새로운 곳이 범법지대가 되었으려나? 🤔 강도단도 분명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헉 크리스마스ㅇㅁㅇ!!! 으음 개인적으로 해월이는 둘 다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아마 카메라를 선물받으면 사진 찍는 걸 알려달라고 할지도? 🙃 책은 뭐 원래 좋아하니까 또 계속 곱씹으면서 읽을 거구! 어느 쪽이든 좋아할 테니까 사찬주가 끌리는 대로 주면 될 것 같아XD 그러고 보니 난 사찬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줘야 하지..? (머리싸맴
12월 24일. 흔히들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부르는 날이다. 이전에는 오히려 성탄절보다도 전야인 이날을 더 떠들썩하게 축하했다고는 하나, 인구수가 확연히 줄은 지금에 와서는 그것도 전부 옛말이다. 다만 붉은색과 녹색 전구에 감겨 빛나는 커다란 나무를, 소년은 책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선물을 교환하는 풍습은 아직도 얼마간 남아 있었지만, 화려한 장식과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는 제법 큰 도시인 모스크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간간히 보이는 문간을 장식한 붉은 꽃이—소년은 그 꽃의 이름이 포인세티아이며, 꽃처럼 보이지만 실은 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빛바랜 기념일의 흔적을 간신히 드러내고 있었다.
소년이 향하는 곳은 그가 머물고 있는 숙소였다. 역 근처의 작은 호텔. 다행히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덕분에 소년이 추위를 뚫고 먼 걸음을 해야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낡은 목조 건물과 그 위에 달린 놋 간판까지 한 번 올려다본 뒤, 소년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맞이하는 훈훈한 공기에 붉게 달아오른 코끝이 조금 아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역시 작지만 난잡하지 않은 로비에는 커다란 괘종시계를 제외하면 주목할 만한 점은 없었다. 그를 만나기로 하고 이곳에 왔지만,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조금의 여유가 남아 있었다. 소년은 그 시간을 로비에서 기다리며 보내기로 결정한다. 조용한 공간을 채우는 초침 소리를 들으며 소년은 벽에 기대어 섰다. 이제 곧 저 시계가 정각을 알리면 그가 내려오리라. 물론 그보다 빠를 수도, 혹은 늦을 수도 있다. 소년은 가만히 눈을 감고 귀기울이며 숫자를 세었다. 45초, 70초, 100초. 내친김에 자신의 심박도 세어 보았다. 소년의 심장은 저 시계의 톱니바퀴보다는 느리게 뛰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내려오는 발소리에 소년은 비로소 눈을 떴다. 얼굴을 보지 않더라도 그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아직 시계는 정각을 알리지 않았다. 그는 으레 약속에 늦곤 하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다. 잠시 대화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고민하다, 소년은 이내 할 말은 한 가지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답하는 말투는 무겁지 않다. 일찍 왔구나, 하고 건네는 말도. 로비의 오래된 의자에 걸터앉아 그를 기다리던 소년의 눈동자가 잠시 시야에 든다. 사람의 안구를 유리구슬 같다고 표현하는 건 재앙 시대 이전이 아니더라도 흔한 비유인데도, 그는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고만다. 빛이 비치면 간혹 투명하게 까지 느껴지는 그 밝은 색. 그러나 그것도 잠시이고, 이내 소년의 시선은 다시 아래쪽을 향한다. 그 대신 시야에 든 것은 붉어진 뺨, 코끝, 그리고 귓가이다. 실내에 들어와있던 덕인지 발그레 혈색이 돌기 시작했지만, 얼어붙을 듯한 추위는 그래도 흔적을 남긴다.
눈을 한번 깜빡이며, 시선의 끝에 걸린 포인세티아의 붉은 잎을 스쳐보낸다. 성탄 전야, 라고 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 준비해두었던 것은 주머니 속에서 바스락 거리지만…… 장갑만으로는 안되려나. 하긴 방한구는 많은 편이 좋았지, 하고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무심코 그러고 나서야 소년이 앞에 있었지, 하고 떠올리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고개를 끄덕이는 몸짓은 사실상 타인에게는 의미불명의 행동이겠으나, 소년은 크게 신경쓰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몇년간 혼자였던 버릇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점심은 먹었느냐고 물으려다, 그는 잠시 멈춘다. 비슷한 말을 했던 기억이 있어서. 매 끼니를 챙기는 일 역시, 요 몇년간 그에게 익숙한 일은 아니었다. 홀로 걷는 먼 길에서, 식사의 형식을 따지기란 지난한 일이다. 허나 소년을 앞에 두고서, 그는 어떠한 형태의 ‘버릇’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끼니를 챙기고, 식사의 형식을 고민하던 것은 길을 떠나기 전, 무언가를 배우며 머무르던 시절의 버릇이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의. 실상 그 자신의 버릇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애매한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주입됐다고 하는 쪽이 낫지 않나, 그는 조금 눈을 굴리는 투로 생각한다. 결국에는 ‘선배’의 영향이다.
“……가고 싶은 곳 있나?”
한숨을 내쉬는 대신, 그는 소년의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보며 질문한다. 방한구든, 선물이든, 점심식사든, 천천히 하나씩 하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