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닥뜨린다, 는 건 마주친다는 뜻이지. 소년은 다섯 살이 가질 수 있는 어휘력의 한계 내에서 비슷한 단어를 떠올려 본다. 한 줄짜리에 불과한 짧은 설명이었지만, 그래도 소년은 그 설명을 통해 직면한다는 단어의 뜻을 나름대로 이해한다. 세계의 끝과 마주친다는 건 어떤 일일까. 소년은 아직 학교에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배울 나이는 아니다. 그 이전에, 세계의 끝이라는 개념 자체는 소년에게 낯설게 다가온다. 이전까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탓이다. 세계의 끝을 '직면'한 주인공은 어떤 기분이었을지, 소년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럼 갈마드는 건 뭐예요?"
하지만 언제까지고 상념에 잠겨 있을 수만은 없다. 소년은 아직 다섯 살이고, 다섯 살은 한창 질문이 넘쳐날 나이다. 하나의 의문이 해소되면 곧바로 또다른 질문이 그 빈자리를 채운다. 소년에게 세계는 아직 그 끝을 감히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넓고, 모르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대답을 기다리면서 소년은 다시금 세계의 끝을 상상해 본다. 주인공은 세계의 끝에 어떻게 갔을까. 걸어갔을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타고 갔을까. 소년에게 세계의 끝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보다 물리적인 실체를 가진 무언가로 다가온다. 이 역시, 아직 다섯 살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기차를 타고 갔을 수도 있다. 소년은 일전에 책에서 기차 그림을 본 적이 있다. 그 나이대의 어린이들 입맛에 맞게 데포르메된 아기자기한 기차였지만, 그럼에도 그 그림은 소년의 머릿속에 남았다. 소년의 형에게 책을 보여주며 나도 기차를 타고 싶다고 했더니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중에 소년이 크고 나면 타보자는 말도 했더랬다. 그 이야기가 미래에 이르러서는 조금 다른 형태로 실현될 것임을, 소년은 아직 모른다. 그 미래에서 소년의 곁에 형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함께할 것이라는 사실도 소션은 아직 모른다. 다만 소년은 다시금, 세계의 끝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오후의 햇살이 비쳐 들어오고 바람이 머리칼을 살짝 흔들어 놓는 작고 낡은 부실 안에서.
/이번 답레는 좀 늦었네;v;
나도 그 생각을 했어. 너무 덥지 않고 살짝 선선한 오후가 어울리는 것 같아. 뭔가 정적이면서도 너무 고독하지는 않은 느낌이랄까:D 둘 다 부지런한 편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XD 해월주는 오전에 팽팽 놀다 점심 지나면 다른 의미로 벌써 하루가 반이나 지났네?! 하는 편인데 말이야😂
해월이는 아직 어리니까 아침잠이 좀 더 있는 편 아니었을까? 수업이 9시부터 시작이니까 8시 정도에 형이 깨워서 비몽사몽한 채로 일어날 것 같네. 밤에는 9시쯤에 침대에 눕고. 아마 크면서 점점 일찍 일어나게 됐을 것 같아. 그래도 아침에 잠투정이 심한 편은 아니지 않았으려나XD
바로 이어지는 질문은 차라리 예상의 범위 내라고 해야했겠으나, 역시나, 대답하기는 난해했다. 정제되지 않은 대답을 바로 내뱉는 대신 글쎄, 하고 그는 잠시 말끝을 흐린다. 딱히 평소의 그 답지는 않은 말투였으니, 그것이 곧 고민의 흔적이었다. 그에게 독서라는 건, 조금 더 나아가서 문장이라는 건 일종의 세계였고, 그는 세계의 정합성을 찾는 일에 흥미와 적성을 두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로서는, 어쩌면 그 약간의 망설임이야말로 그 다운 것일지도 몰랐다. 주저라는 것은 조바심. 그리고 조바심이라는 것은, 대상의 완성도를 쫓는 일에서 나올테니.
다시 끝없이 꼬리를 무는 잡념의 동시에도, 그는 대답을 생각하고 있다. 허나 그의 잡념이 이전에 읽었던 책에서는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말이 있던데, 하는 부분에 도달했을 때는 결국 조금 포기에 이른다. 가지고 있는 표현을 제한하여 이야기하는 일은 지난하다. 그러니 그가 뱉은 대답은 그의 기준에서는, 지리했다. “번갈아서…… 들어오는, 거지.” 그리고 이어 그는 덧붙인다. 들어온다, 고 하는 말의 의미에는 나타난다거나, 어떤 영역에 걸치게 된다거나, 하는 등의 뜻이 있으니, 갈마든다는 말은 결국 이것과 저것이 차례대로 반복하여 나타나는 일이라고.
스스로의 대답에 그다지 만족하지 못하면서도, 그는 이럭저럭 설명을 끝마친다. 소년이 몇가지의 질문을 더 하더라도, 그는 아마 이리 잡념과 고심의 장고 끝에, 스스로만 알아챌 수 있는 마땅치 않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내어놓게 될 것이다. 그는 표정이 적고, 알고있는 단어가 많고,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답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의 성실성인 동시에, 미숙함이었다. 그것을 반쯤 알아채고 있기 때문일까, 그는 설명 설명 들의 사이에 옅은 한숨을 끼운다. 녹아들듯 가벼워서 딱히 신경 쓰이지 않는 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멋쩍음이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모르는 이가 알고있을 이에게 답을 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사실 정도이다. 그 생각 하나만으로, 그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들 하나하나에 차근차근 답을 달아나가는 중이다. 그것은 소설을 통해 세계의 풍경을 읽어내리는 데에 흥미를 둔, 그리하여 알아나가는 것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그이기에 체득한 태도이다. 조금 더 근사하게 말하자면, ‘가치관’이다. 그에게 있어 답을 구하는 자는, 답을 얻을 자격이 있다. 요컨대, 그 역시 ‘구하는 자’라는 뜻이다. 대답을 바라는 이이기에 그는 대답에 인색하지 않다. 언제까지 대답하기 위해서는 그도 또다른 어딘가에서는 계속해서 질문해야겠지만.
그의 선배가 이런 생각을 알았더라면, 중학생 답지 않은 어른스러운 사고가 정말로 중학생 같다는 평가라도 들었겠지만, 뭐, 아직이다. 그의 선배가, 그리하여 소년의 형이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려면, 아직은 시간이 조금 남았다. 자연스럽게 ‘돌아온다’는 표현을 쓰고, 그는 다시 조금 한숨을 쉴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가, 이내 다시 소년을 위해 입을 연다. 조금 남은 시간, 소년의 질문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표변이 적은 얼굴으로, 다만 답하기 위해 노력해본다.
번갈아서, 들어온다. 이번 설명은 전번보다 조금 더 난해하다. 번갈아서 들어오는 서로 다른 두 이야기. 보통 다섯 살배기를 위해 나온 책은 내용이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경우가 많았으므로, 두 이야기가 '갈마든다'는 개념 자체가 소년에게는 생소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소년은 그 생소함이 싫지 않다. 다만 고개를 한쪽으로 약간 기울이고 골똘히 생각에 잠길 뿐이다. 이전보다 조금 더 오래.
소년의 머리는 제 또래를 기준으로 배움이 빠른 편에 속하나, 갈마든다는 표현을 이해하는 데는 역시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그 나이대의 아이란 으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결국 완전히 다른 곳에서 끝나곤 하는 법이다. 결국 소년은 갈마든다는 말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길 포기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떠나보낸 것은 아니다. 다만 잠자코 때를 기다릴 뿐이다. 언젠가 그 단어가, 이번에는 직접 소년에게 찾아와 마음에 와 닿기를.
"같이 읽어도 돼요?"
비록 불완전하기는 하나, 질문에 대한 답은 어느 정도 얻었다. 그렇다면 이제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다. 물론 아직 어린 소년과, 소년의 기준으로는 다 큰 사람인 그의 독서 속도가 같을 리 없다. 소년은 그에게 민폐를 끼칠 생각은 없다. 비록 아직 민폐라는 단어의 뜻을 잘 모르더라도. 시간이 허락해주는 안에서 천천히 읽다가, 그가 페이지를 넘기면 이번에는 또 다음 장을 천천히 읽기 시작하면 된다. 굳이 한번에 내용을 전부 이해하려 들 필요는 없다. 서두르지 않아도 언젠가 기회는 다시 오게 되어 있다.
소년은 그의 옆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바투 붙어앉는다. 함께 읽으려면 차라리 소년이 그의 무릎에 앉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겠으나, 그러기에는 소년이 조금 무거울 터다.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그가 같이 읽자는 제안을 승낙할 때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소년은 이번에도 역시, 이상하리만치 그가 승낙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자기중심적으로 구는 것도 아니요, 이기적으로 구는 것도 아니다. 그저 묘하게 확신이 들 뿐이다.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고, 믿을 만한 사람이며, 비록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이지만 소년의 제안을 딱 잘라 거절할 사람도 아닐 것이라고.
말을 하고 나서야, 그는 그 대답이 완곡한 거절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그야 소년과 그의 읽는 속도는 다를 것이었고, 그는 자신이 책을 읽는 습관을 익히 알았다. 속독가, 다독가, 난독가. 처음에는 보조를 맞추기로 마음 먹는다 해도, 분명 중간부터는 잊고서 멋대로 읽어내리기 시작하겠지. 그리고 애초에 이 책이 소년이 읽어도 괜찮을 내용인가 싶기도 했다. 사용된 단어나 문장의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내용이…… 하기는, 그렇게 말한다면 그도 고작 14살이다. 14살이 읽을 책은 아니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그런가. 짧은 대답인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후에 다시 잠시간의 침묵 끝에, 그는 납득한다. 자신이 다섯살일 적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다섯살은 아니었다고 해도 역시 어릴 지나간 시절부터 소위 ‘나이에 맞지 않는’ 책을 읽고 싶어했던 기억은 있다. 그러니 그 부분은 아무래도 좋다. 애초에 읽고 있는 것이 두 권짜리 장편의 두번째 권이니 만큼 책의 내용은 중간부터 시작하겠지만, 때로는 그렇게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그는 생각한다. 중간중간 유실본이 존재하는 공공도서를 읽는 것에 익숙한 그에게는 신경쓰일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니 남은 것은 결국, 독서의 불편함이었다. 소년은 그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으나, 글쎄, 그와 소년은 눈 높이부터가 어지간히 다르다. 차라리 무릎에 앉는 게 나을지도. 소년의 키라면, 딱히 시야가 가릴 일도 없겠다. 그는 중학생 치고는 그래도 꽤 큰 편이었으니까. 그러나 그에게는 역시, 오늘 처음 만난 아이에게 무릎에 앉겠냐고 대뜸 물어볼 정도의 붙임성은 없는 모양이었다. 소년이 그러자고 하면 거절하지 않겠지만, 이 경우에 불편한 건 소년일테니까, 아무래도.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네가 불편하지 않다면, 괜찮고.”
그리하여 결국 그 잠시의 침묵 끝에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딱 그 정도였다. 다른 권유나 제안은 없이, 그저 간접적인 응낙. 조금 천천히 읽는 게 낫겠지, 아무래도.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그는 차례대로 소년에게, 다시 책의 지면에 시선을 두었다가, 소년의 대답을 기다리듯 침묵한다. 그리고 자신의 승낙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조금 궁금해한다. 그야 같이 책을 읽자고 한 상대가 평범한 급우였다면 거절했을테니까. 허나 소년에게 있어서는, 그는 딱히 고개를 저을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그건 급우라서, 는 아니었다. 제의한 게 선배였어도 그는 아마 거절했을 테다. 어쩌면 그냥 ‘싫어요.’하고 말해버렸을런지도 모르고. 소년에게 밥을 먹었냐던가, 무릎 위에 올라오겠느냐는 말을 하기는 어렵지만, 선배라면… 하고 생각해버리는 것은 그 나름대로 친할 걸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평소부터 책을 읽을 때는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기로 반에서 나름 유명한 그이다. 그럴 때엔 이야기를 해도 한귀로 듣고 흘리기 일쑤라, 이제는 딱히 말을 거는 사람도 없었다. 다른 사람을 곤란하게 하는 나쁜 버릇이라고 알면서도 딱히 고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은 그 스스로도 아는 그의 단점이다. 그래도 역시 고칠 생각까지는 들지않았으나.
답을 구하는 이에게 답이 주어진다는 일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눈 앞의 텍스트가 더 중요하기도 한 거지. 가끔보다는 조금 더 자주 그럴 수도 있는 거고. 흘러가는 사고의 조금 뻔뻔한 어조는 그의 것이라기보다는 언젠가 읽었던 글의 인용문에 가깝다. 입밖으로 내어 말하지는 않겠지. 그러니 여전히 생각에 비해서 말이 부족한 그임에도 불구하고, 소년에게만은 조금 더 말수가 많은 것은…… 글쎄, 그것을 친절이라고 부를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쩌면 단순히 소년의 맑고 색이 옅은 갈색 눈동자가 인상적이어서인지도 모른다. 뭐, 아니겠지만.
조금 더 장난스러워 생각이 몸짓으로 드러나는 성격이었다면 눈이라도 굴렸을 터이나, 그는 역시 무표정하다. 다만 그는 어쩐지 조금 유쾌한 기분으로 소년의 대답, 내지는 반응을 기다리며,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으로 책등을 쓸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이는 그가 거절하더라도 굴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소년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읽는 속도의 차이, 내용의 어려움, 그 이전에 다 큰 성인 남성ㅡ물론 그의 신체는 아직 완전히 다 자랐다고 할 수는 없으나, 소년에게는 성인이나 다름없다ㅡ과 함께 책을 읽는다는 건, 어떻게 해도 완벽하게 편안한 자세는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소년은 개의치 않는다. 보다 정확히는, 당장의 사소한 불편함보다는 책을 읽는 그 행위 자체에 대한 갈망이 더 크다고 해야 하리라. 설령 그 책이 다섯 살이 이해하기에는 복잡한 언어로 이루어져 있더라도.
문자를 읽고, 음미하고, 종국에는 삼켜 천천히 소화하는 그 행위는, 일단 익숙해지고 나면 상당히 중독성을 일으킨다. 소년은 지금 그 독서의 재미를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에 있다. 이미 다른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는 상당한 독서량을 자랑하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발을 담근 수준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면 처음에는 낯설지만, 이내 종아리와 무릎까지, 그리고 더 위까지 담그고 싶은 마음이 드는 법이다. 소년의 상태는 그와 같다. 독서라는 물에 발을 담갔고,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니, 이제 더 알고 싶은 것이다.
마침내 떨어진 승낙의 말에 소년은 말없이 시선을 조금 내리깔고는 그의 옆으로 바투 다가앉는다. 오늘 들어 처음으로 보이는 부끄러워하는 모습, 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소년 나름대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 것인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여전히 애늙은이처럼 보이는 무표정을 드러내고 있으나, 사실 소년은 그의 승낙이 내심 기껍다. 거절당할 여지도 얼마든지 존재했다는 사실을 소년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 나름대로 자비를 베푼 것일까, 라고 소년은 잠시 생각한다. 비록 아직 자비라는 단어의 뜻은 잘 모르지만.
자세는 그의 말마따나 차라리 무릎에 앉는 편이 더 나았을 뻔했지만, 어쨌거나 소년은 그의 옆에 자리를 잡는 데 성공한다. 상체를 약간 기울여 책을 들여다보며, 소년은 그가 독서를 시작하길 기다린다. 어떤 페이지가 펼쳐지고 어떤 내용이 나올지, 어떤 단어와 어떤 문장과 어떤 표현이 나올지, 그 모든 것에 대한 기대가 조금씩 부풀어오른다. 겉으로 태는 잘 안 나지만, 자세히 본다면 볼이 조금 상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소년은 신나하고 있다. 이 버릇은 십 년이 넘어서도 그대로 이어지지만, 거기까지는 아직 소년이 알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229 나름 텔레파시라면 텔레파시지XD 어쨌거나 둘 사이에 말이 없어도 의사가 통하는 게 어느 정도는 있다는 생각도 드니까🙃
식물이라.. 해월이는 아무래도 동물보다는 식물을 더 좋아하는 편일 것 같네. 동물을 싫어하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말없이 식물에 물 주고 보살피는 그런 평화로운 걸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야. 나름대로의 힐링이랄까XD 하지만 별개로 아무래도 이 세계관에서 가드닝이 그렇게 대중적인 취미는 아닐 것 같지? 이래저래 품이 많이 드는 취미니까 말야. 있다고 해도 아마 현재의 가드닝과는 조금 다른 형태가 되지 않으려나🤔
시선을 내리깐 소년의 모습을 보며, 그는 조금 묘한 표정을 짓는다. 이런 때에 웃는 것도, 혹은 모른 척 하는 것도 둘 다 나름의 재주가 될 텐데. 그리 생각하며 시선을 흘리는 그의 겉모습만큼은 분명 꽤나 그럴듯한 모른척이었지만, 속생각이 많은 그는 딱히 깨닫지 못한다. 그런 부분을 어리다고 표현하는 일은 쉽지만, 옳은 답은 아니다. 그야, 그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소년을 낯설어 하지 않게 된 이후에도, 다시 시간이 지나 서로에게 익숙해진 이후에도, 그리고 끝내 소년의 곁을 떠나게 되었을 때도, 소년과 재회하였을 때도, 비슷한 방식으로 시선을 흘리고, 속생각을 되뇌이게 될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나름의 웃음기가 스며들어 조금 넉넉해진 그 순간을 성장이라고 부르고 싶어한다해도, 그는 동의하지 않겠지.
그리하여 미래의 일 같은 건 알지도 딱히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지금의 그는 다만 미끄러진 시선을 흰 종이 위로 두며, 책을 들고 있던 각도를 조금 옮겨 소년의 시선에 들도록 하고는 페이지를 넘길 뿐이다. 이런저런 생각과 걱정으로 침묵을 늘이고 말을 줄인 것이 방금 전인데도, 지면을 앞에 둔 그의 집중력은 꽤나 쓸만한 편이었다. 처음에나 신경이 쓰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 그의 생각은 금세 글의 내용으로 옮겨간다. 글을 읽으며 장면을 상상하는 능력은, 그가 스스로 가진 것 중에 가장 요긴하게 쓰는 부분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 대부분이 그렇듯이, 라고 그는 제멋대로 생각한다. 제대로 된 근거도, 반론에 대한 대비도 없는 주장이었으므로 입밖으로는 내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렇게 소설 속 주인공이 세상, 혹은 개인, 더 나아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갈마드는 이야기의 중앙을 똑바로 가로지르며 나아가는 동안, 그와 소년은 산들산들 바람 부는 오래된 창고 안에 가만히 붙박혀 앉아, 그렇게 시간을 보내게 될 테고, 사실 그 둘은 어느정도 같은 일이라고 언젠가의 그는 깨닫게 될 터이다. 먼 길을 타박타박 걷다가 문득, 십년이 지나도 같은 버릇을 가진 소년의 여전히도 색이 옅은 뒷모습을, 그 옛날과 같은 묘한 표정을 하고 바라보게 되는 어느 순간에…… 약간의 웃음과 함께.
배경 상으로는 두번째 일상이랑 네번째 일상 사이에 건너뛴 부분이 있다고 해도 1월 초중순이지 싶으니까요ㅋㅋㅋ… 이제부터 다시 현재 쪽의 시간을 돌려봐야죠😊
그리고 과거 레스 복습하다 >>195 보고 생각한 흐름인데, 저번 일상 다음 부분에서 선배가 오고 그대로 헤어지고, 선배한테 사찬이를 설명하던 해월이가 아저씨 < 라고 불러 버리고 선배가 (웃기니까) 말리지 않는 바람에 다음 만남부터는 그렇게 정착하게 된 거 아닐까 싶었어요~ 처음에 팍! 하고 정착되지 않는 한 어려운 호칭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ㅋㅋㅋ
갑자기 서늘해졌다. 새벽녘 꿈의 종류가 바뀌어, 그는 그 사실을 알았다. 수면 위로 떠오른 의식을 깨달은 다음 순간, 그는 무거운 눈꺼풀을 띄웠다. 시야를 가득 채운 푸른색에, 느릿하게 두번 눈을 깜박인다. 시야의 확장에 의식의 각성이 잇따른다. 좁은 침상이 흔들리고, 이어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소음이 들려온다. 덜컹, 두번째로 진동이 느껴진 그제서야 그는 깨달았다. 여기는, 야간 열차의 객실이다.
한숨과 함께 몸을 일으키자, 건너편의 빈 객석이 시야에 든다. 탑승자가 적은 이 시대에는, 칸막이 없는 3등석의 객실도 그 나름대로 고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말로도 쾌적하다고는 못할 환경이었으나, 시간에 맞게 운행하는 표가 없었던 탓에. 허나 이미 몇년의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온 그로서는, 사실 불평할 생각도 들지않았다. 길 위에서 보내왔다는 건 어느 정도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이기도 했으니. 어찌되었든 길바닥에서 쪽잠을 자야했던 날보다는 낫다.
그래도 새삼 굴러떨어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좁은 침상이다. 흰 시트 위로 떨어지는 그림자를 보다가, 문득 그리 생각한다. 아직 꿈결이 건너가지 않아 조금 멍하다. 그림자가 구분 되는 것을 보니 일출이 머지 않았다는 건 알겠지만, 몇시쯤 된 걸까. 간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손목시계를 들어, 창문 가까이에서 확인한다. 어두워도 빛은 빛이라, 간신히 시침이 5를 조금 지난 부분을 가리키는 것이 보인다.
새벽 다섯시. 언젠가 그가 읽었던 오래된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시(寅時)에서 묘시(卯時) 쯤일까. 어느 쪽이든, 잠에서 깨기에 적당한 시간은 아니었다. 열차의 도착 시간은 적어도 6시 이후였고, 선로의 상태 때문에 연착이 잦은 겨울에는 더 늦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다시 잠드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하였으나, 다시 누울 생각은 들지 않아 그는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3등석의 좁은 침상, 작은 간이 테이블. 그리고 그 건너편에는 소년이 잠들어 있다.
어둠이라기에는 밝은, 하지만 아직 숨을 죽인 여명의 시간. 이 박명 속에서는 소년의 밝은색 머리칼도 검푸른빛으로 물들어있다. 잠이 깨면서 느낀 추위가 거짓은 아니었는지, 공기가 싸늘하다. 그는 큰 소리가 나지 않게 주의하며, 짐속에서 담요를 하나 더 꺼내 소년에게 덮어주었다. 승무원이 나누어주는 침구는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지만, 역시 시베리아의 추위 앞에서는 조금 얇았다. 본래 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그런대로 적응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와 소년에게는.
이윽고 그는 다시 자리에 누워, 눈을 감는다.
# 횡단열차 3등석 풍경이 너무 재밌어보여서 시작은 이렇게… 흐름 상 다음 장면은 해뜨고 난 다음이 좋을 것 같네요~ # 이번 일상도 잘 부탁해요!
눈을 뜨기에 앞서 소년은 냄새로 아침이 오고 있음을 안다. 코끝에 와닿아 고인 새벽의 향이 서늘하다. 소년은 새벽을 퍽 좋아한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어둡던 밤하늘이 점점 푸른 빛에 물들고, 또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밝아 오는 그 과정을 소년은 좋아한다. 그래서 소년은 잠시 동안 눈을 뜨지 않고 이 순간을 즐기기로 한다. 평소에 아침잠이 적은 편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소년치고는 답지 않은 어리광이다.
그제야 소년은 제 위에 한 겹 더 덮인 담요의 존재를 알아챈다. 서서히 올라가는 눈꺼풀 아래 드러난 소년의 시선이 건너편의 침상을 향한다. 비록 상대는 미동도 않은 채 눈을 감고 누워 있으나, 누가 이 담요를 덮어 두었는지는 자명하다. 소년은 손바닥으로 담요를 부드럽게 쓸어내린다. 담요는 깨끗하지만 얇고, 또 조금은 거칠다. 오리털을 채워 넣은 호화로운 이불을 기대하기는 힘들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반쯤 무의식적으로 담요를 매만지면서 소년은 생각에 잠긴다. 시선은 여전히 건너편을 향한 채다. 겨울 해는 습관적으로 늑장을 부리고, 열차 안은 아직 어둑하다. 이번에는 소년의 시선이 손목시계로 향한다. 6시가 넘었음에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지 않은 것을 보면, 아무래도 연착된 모양이다.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소년은 그리 걱정하지 않는다. 급히 가야 할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에 맞춰 행해야 할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연착 또한 소년에게는 여행의 일부다. 그리고 그에게도.
그가 덮어준 담요를 어깨에 걸치고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는 간이 테이블에 앉는다.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괸 채 소년은 그를 바라본다. 그리고 소년은, 그가 잠든 모습을 본 적이 얼마 없음을 깨닫는다. 아마 그는 지금 말고도 소년이 잠든 모습을 여럿 봤으리라.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소년은 고작 다섯 살이었으니, 그는 소년이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모습과 장면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문득, 소년은 카메라로 그의 모습을 찍어 남기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소년은 알고, 그는 알지 못하는 드문 시간을.
이윽고 그에게서 눈을 뗀 소년은 창 밖을 내다본다. 어스름한 새벽 하늘 아래 나무들이 스쳐 지나간다. 창문을 열까 싶기도 하지만 소년은 곧 단념한다. 지금도 공기게 이렇게 싸늘한데 창문을 열었다간 분명 추우리라. 소년이야 별 상관 없었으나, 그가 추위 때문에 잠에서 깰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년은 닫힌 창 너머로 검푸른 하늘과 눈 쌓인 나무와 아직 뜨지 않은 해를 구경한다. 작게 들려오는 손목시계의 초침 소리를 배경 삼아, 그가 잠에서 깨기를 기다리면서.
/>>253에서 다음 장면은 해 뜨고 난 뒤로 하자고 했지만.. 개인적으로 새벽 특유의 분위기를 정말 좋아해서 멋대로 시간을 잡아 버렸어. 미안해😂 나도 이번 일상도 잘 부탁해!
아니.. 병원이라니 무슨 일이야 사찬주..🥺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 무리할 필요 전혀 없어😢 사찬주 건강이 괜찮아지면 그때 천천히 돌아와도 되고 만약에 더이상 이어가기가 힘들 것 같다고 해도 건강 때문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지. 정말로 무리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사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