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5살+14살으로 가야할까요, 아니면 첫만남 이후의 8살+17살이 좋을까요? 어느쪽이든 둘 다 지금이랑 비슷비슷한 느낌일 것 같기는 하지만요… 8-17 시점이면 별명 지어주는 것도 가능할 것 같고… 아니면 8-17에서 액자 구조로 5-14 첫만남 회상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고요!
아 그러게요 사찬이… 여행 떠난 게 3년 전이니 25 / 16일 때겠는 걸요. 해월이라면 이별의 순간에도 덤덤했을 거라고는 생각하고 우리 우체통 때 생각하면 그후로도 이메일 연락은 계속 했을 것 같지만요… 정말로 사찬이가 지금까지 쌓아왔던 커리어 두고 여행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해월이는 어떤 반응이었을까요? (개인적으로 선배는 좀 화냈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첫만남 계절도 좀 궁금해졌어요 부활동이면 역시 신학기일까요, 아니면 1학년 2학기일까요? 신학기 나름의 두근거림도 있지만요! 선배랑 사찬이는 부활동으로 만났다기보단 이전에 아는 사이였을 것 같기도 하고…
해월이는 아마 겉으로는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은 채로 다만 마지막 순간까지 배웅하러 나갔을 것 같아. 하지만 그 이후에 사찬이랑 메일을 주고받으면서도 종종 어딘가 허전한 느낌을 받았을 거고, 결국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을 것 같네. 무덤덤해 보여도 사찬이가 여행을 떠난 게 해월이에게는 제법 큰 영향을 미쳤으니까:D 사찬주 말대로 선배는 처음엔 화내다가 결국은 사찬이 선택을 존중했을 것 같아. 그래도 마지막 순간까지 잔소리하면서 보내주지 않았을까? 😄
으음.. 개인적으로는 어떤 계절이어도 다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해! 지금 배경이 계속 겨울이었으니까 이번에는 다른 계절로 돌려 봐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마음에 드는 계절로 골라도 무방하지 않을까? 😄
자꾸 밥 챙기라고 잔소리하는 선배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ㅋㅋㅋ 해월이가 간다고 했을 때 선배는 어쩌면 좀 예감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동생들 둘 다 자꾸 둥지 떠나 날아가는군요… (??)
그러면… 음 사실 나도 둘 다 좋은데, 그러면 아예 정반대 계절로 여름방학 끝난 후 아직 어수선한 2학기 초 8월은 어떨까요? 1학기 때도 선배랑 사찬이는 아는 사이였는데, 2학기 들어서 선배가 부를 만들게 되면서 사찬이가 끌려온건지, 인원수맞추기인지, 함께하게 된 걸로!
8월의 방과후는 한적했다. 굳이 말하자면 8월이라서기보다는,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 첫주 특유의 어수선한 분위기 탓에 학생들이 급히 학교를 떠나버려서 그렇겠지만. 애초에 그가 재학하는 청소년 교육기관에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기는 했다. 선생이든, 학생이든. 아니, 세계정부에서까지 나서서 고아들을 거둬 키우고 있으니 차라리 아이들은 그럭저럭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이 시대에서 부족한 것은 언제나, 전문인력의 존재였다.
그러니, 이 교육기관의 분위기도 자연히 그런 쪽으로 흐른다. 대재앙 전의 열네살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사실 지금의 그는 아직, 잘 모른다. 그러나 남아있는 ‘이전’의 자료들—텍스트, 이미지, 때때로는 영상—에서 보이는 ‘학교’는 그의 ‘청소년 교육기관’과는 분명 다른 장소이다. 그리고 열네살의 그는 본 적도 없는 것을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아직은.
그가 그리워하게 될 풍경은 적어도 거기에 있지 않았다. 그리고 희게 지었으나 약간 바래어 한적한 건물도, 토지보다 사람이 부족하여 넓으나 높지 않은 이곳의 풍경도, 그는 그럭저럭 좋아하는 편이었다.그러니까, 역시, 그럭저럭. 아직 ‘소년’이라 불려야할 나이치고는 묘하게도 차분한 말투로 생각하며, 그는 걸음을 옮긴다. 긴 흰색의 복도를 걸어, 구석진 회색빛 계단을 몇개인가 오르고, 큰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을 힘을 주어 밀면서.
문이 열리고, 옥상의 바람이 훅 불어왔다. 높이 제한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실용적인 목적일까, 그만그만한 높이의 건물들뿐인 풍경이었지만, 가장 높은 곳에 서있는 기분은 나쁘지 않다고, 그는 잠시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마음에 든 것은 풍경이 아니라 바람이었는지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늦여름, 그는 가만히 서서 잠시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다. 하지만 그의 목적은 옥상 자체에 있지는 않았으므로, 그는 다시 걸음을 뗀다.
그가 향하는 것은 옥상 한켠의, 어쩌면 관리실 같은 작은 건물이다. 건물이랄까, 옛날의 자료에서는 ‘옥탑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겠지만, 그는 아직 그 단어를 제대로 알지는 못하여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다만 그가 아는 것은, 이 작은 옥상 위의 방이 그에게 주어진 새로운 부실이라는 것이었다. ……굳이 정정하자면, 그가 아니라 그의 ‘선배’에게 주어진 것이겠으나.
천체를 관측해야하는 천문부라면 인공적인 조명에서 자유롭고, 하늘이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해야할테니, 이전에는 창고로나 쓰이던 옥상의 이 방을 부실로 받게 된 것도 그럴듯하다. 그야 그의 선배에게 ‘천문부’가 먼저였는지 ‘옥상의 빈 창고’가 먼저였는지, 그는 굳이 따지지 않을테니 더욱. 천문부라니. 그 사람답다면 다운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고문 선생님이 어떻고, 청소년 교육기관에서 시도하는 자기주도적인 직업흥미 교육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다가, 갑자기 내밀어진 입부신청서에 이름을 적어서 내준 것은, 사실 그답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는 인원 수 채우기였으나, 어느정도의 흥미도 있었다고, 그는 선선히 인정한다. 그리고 신학기가 시작된 후 벌써 5일째, 지난 이틀 간, 그는 부실에 앉아서 책을 읽는 일에 조금 익숙해져가는 중이었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오래된 책걸상이라던가, 바닥매트라던가, 상자를 쌓아만든 책장이라던가. 그런 것들에도. 그러니 그는 오늘도 절반은 선배의 넉살 좋은 수완이랄까, 하는 것에 나름대로 감탄하고 나머지 절반은 적당히 남의 일처럼 부실에 앉아 책을 읽을 예정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부실에, 낯선 아이가 앉아있는 걸 보게되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창고로 쓰이던 작은 방의 작은 유리창을 통해 비치는 늦여름의 농익은 햇살과, 그 햇살 속을 가볍게도 부유하던 먼지들. 재앙 이전과 이후의 책이 가득히 꽂혀 오래된 책장들. 낡은 먼지의 냄새와 오래된 책의 냄새와 두꺼운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던 농익은 여름해의 냄새가 나는. 어딘가 갑갑하고, 덥고, 시큼하고, 이글거리고, 푹 익어버린듯한, 그런 여름이 머무르는 곳에, 옅은 색을 띈 아이가 있었다.
호화롭기는커녕, 빈말로도 크다고는 할 수 없는 방이었다. 낡은 책상은 흔들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고, 커튼은 빛이 바래 있었다. 어째서 옥상의 작은 방에 커튼까지 달려 있는지, 소년은 알지 못했다. 어쩌면 오래 전 이 방을 쓰던 다른 사람이 달아 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창가에는 한때 흰색이었을 커튼이 달려 있었고, 가끔 창문을 열어 두면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것으로 제 존재감을 드러냈다.
중고등부에서는 이 방을 전문 용어로 부실이라고 불렀겠지만, 소년은 아직 그 용어를 알지 못했다. 소년에게 이곳은 그저 방이었다. 소년의 형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이 방에서 기다리라고 일렀고, 소년은 그 말에 따라 초등부 수업이 끝나고 옥상으로 향한 참이었다. 부실 안은, 당연한 말이지만, 비어 있었다. 아직 고학년 수업이 끝나려면 시간이 한참 남았다. 소년의 형도 아마 그 비는 시간 동안 소년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염려되어 이 방의 존재를 가르쳐준 것이리라. 기실 소년이 사고를 치고 다닐 성격은 아니었으며, 혼자서 집을 찾아가지 못할 만큼 어린 나이도 아니었으나, 소년의 형은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었다. 보다 직설적으로는, 종종 사서 걱정을 하는 사람이었다.
기묘하리만치 선명한 녹색을 띤 매트 위에 앉자 먼지가 풀썩 일어났다. 소년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 아래 먼지가 천천히 부유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대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형이 올까. 소년은 그러나 그 의문을 굳이 입밖으로 내지는 않는다. 어차피 말한다고 해도 들어줄 사람이 없을뿐더러, 소년은 기다림을 지루하게 여기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었다. 정 심심하면 계속해서 먼지를 구경하면 될 노릇이었다. 먼지 알레르기가 없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랄까.
낡고 좁으며 어딘가 엉성한 부실은,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놀랍게도 갖출 만한 것은 다 갖추고 있었다. 소년은 책장에서 책을 하나 꺼내볼까 하다가 곧 단념했다. 소년은 다섯 살이었지만 이미 글을 읽을 줄 알았고, 또 읽는 것을 제법 즐기는 편이었다. 하지만 형의 책은 아직 소년에게는 어려웠다. 게다가 마음대로 책을 건드리는 걸 형이 원치 않을 수도 있었다. 사실 소년의 형은 소년이 형의 물건을 건드린다고 화를 낸 적은 없었지만ㅡ물론 위험한 물건이었다면 얘기가 달랐겠지만,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소년은 말썽이 잦은 편은 아니었다ㅡ또 모르는 일이었다. 소년은 어렸지만 책을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소년의 독서는 주로, 모르는 단어를 볼 때마다 어떤 뜻을 담고 있을지, 혹은 복잡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어떤 이야기를 말하는 것일지 상상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독서讀書의 사전적 의미와 완벽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고, 어떨 때는 원 내용과 상당히 동떨어질 때도 있었으나, 어찌 되었건 소년은 나름대로 글자를 음미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었다.
허나 소년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소년은 곧, 혼자서가 아닌 함께 읽는 독서의 즐거움을 배우게 될 것이다. 말수도 적고 과묵한 편이지만,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 줄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소년은 알지 못했다. 제가 나중에 아폴로Apollo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고, 또 누군가에게 스푸트니크Спутник라는 별명을 지어주게 될 것임을. 학교를 졸업하고 미지의 곳으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싣게 될 것임을.
소년의 물음을 듣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잠시 침묵한다. 1초, 내지는 2초 정도의 적막. 그러나 그가 느끼고 있는 것은 의외로 당황스러움은 아니다. 그러기에 그는 소년의 정체라고나 할까, 어째서 소년이 여기에 있는지에 대해 그럭저럭 납득할만한 이유를 이미 하나 쯤 알고있었다. 그러니, 1초 반의 고요 속에서 그가 생각한 것은, 어떻게 말을 꺼내야 저 어린 소년, 아니, 소년이라기보다도 유년(幼年)에 가까울 저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고 받아들일까, 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1초, 하고도 절반 쯤 지났을 때, 그는 애초에 저 소년의 정체가 짐작대로라면 굳이 답을 미뤄서 침묵의 시간을 연장 시킬 필요가 있나,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만약 그의 짐작이 틀리더라도, 이 낯선 공기가 이어지는 게 소년에게 딱히 덜 불안한 상황일 것 같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이젠 아무말이든 하는 게 덜 수상해보이겠다고. 그리하여 침묵이 2초 이어지고, 그는 입을 뗀다.
“……형 친구.”
친구랄까, 3년 후배지만. 동시에 그는 이전에 ‘선배’가 이야기 해주었던 여러 순간들을 빠르게 검토해본다. ‘어른스러운 아이야.’ ‘초등부에 다니고 있어.’ ‘책 읽는 걸 좋아하더라고—’ ‘5살,’ 애정어린 목소리로 웃으며 말하던 선배의 얼굴이 몇가지 머릿속을 지나가고, 그는 마침내 바라던 것을 찾아낸다. ‘해월이는,’ 소년의 이름이었다. 지금까지 딱히 불러본 적은 없었지만, 선배와 같은 성을 쓸테니, 성과 이름을 붙여쓴다면 천해월이 될 것이다. 이름을 대뜸 불러도 되는 걸까, 싶기는 했지만 이미 형의 친구라고 말해둔 상황에 이름이라도 부르는 게 설득력 있겠지.
“네가, 천해월이구나.”
말하고보니 의문문도 평서문도 아닌, 애매한 어조가 되었지만 그는 그러려니 하기로 한다. 그보다 신경쓰이는 것이 있어서, 그는 그냥 별 말 없이 소년 쪽으로 몇 걸음을 내딛는다. 움직이고 나서야 소년이 신경쓰려나 싶었지만, 뭐 어쩌겠는지.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하고 팔을 뻗어, 소년의 옆에 있는 창문을 드르륵, 연다. 혼자, 혹은 선배와 있을 때는 생각도 않던 두터운 먼지의 냄새가 문득 신경쓰이기도 했고, 여름날의 햇살에 달궈진 방의 공기가 갑갑하지 않을까 싶은 참이기도 했다.
소년 옆의 창문을 열고, 그는 바로 돌아서서 뒤쪽의 창문도 연다. 그다지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등 뒤에 시선이 있다고 생각하니 약간 신경이 쓰이는 것도 같다. 낯가리는 건가, 나. 5살도 아니고. 소년 쪽은 어떨까 싶었지만, 맞바람에 순간 휘날린 커튼을 잡아채 동여매어 두느라 그는 소년에게 다시 말을 거는 대신 침묵을 조금 더 연장한다. 이래서야, 정말로 낯이라도 가리는 건지.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다섯살짜리 아이라는 건…… 낯선 존재기는 했다. 아니, 그야, 9년 전의 그 역시도 다섯살의 아이였겠으나.
커튼을 얌전히 묶어두고, 그는 그제야 몸을 돌려 다시 소년의 쪽을 바라본다. 어째서 여기있냐고 물어볼까, 하다가 그야 고등부 수업과 초등부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차이가 있으니 당연하겠지 싶어 그만둔다. 그와 세 살 차이인 선배는 지금 고등부의 1학년이었다. 대재앙 이전에는 그리하여 3년의 고등부 수업 이후에 ‘대학’에 진학했다는 것 같은데, 이제는 대학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고 분야별로 ‘전문 고등교육 기관’이 존재할 뿐이다. 사실상의 직업 교육기관이었다.
“……아직 한시간 정도 남았을거다, 고등부 수업은.”
중등부는 오늘 단축수업이라, 하고 덧붙이고 그는 잠시 소년이 내용을 이해해주려나, 생각한다. 이미 지난 어린 시기의 발달 정도를 파악하기란 지난한 일이다. 너무 어리게 보다 반감을 사거나,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하다가 아니라는 걸 깨닫거나…… 다섯살 무렵의 자신은 어땠었지…… 떠올려보려고 해도 기억나는 건 정말이지 단편적인 장면들 뿐이라, 그는 그냥 빠르게 포기하기로 한다. 그 대신, 창문 밖의 방수 페인트를 바른 옥상 풍경에 잠시 시선을 주었다가, 적당한 의자를 집어 앉는다.
붙임성이 없는 그로서는, 그냥 선배가 해주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리면서 어린 소년을 대하는 정도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어린 아이를 다루는 법 같은 건 모르기도 하고. 그리하여 그는 소년이 책을 좋아한다던 선배의 말을 떠올리며, 기다리기 심심하다면 책장에 있는 책들 중 아무거나 꺼내어 보면 될 것이라고 말해둔다. 정작 말하고보니 그 본인에게도 해당하는 내용이라 조금 어이가 없어졌지만…… 그는 그냥 가벼운 한숨과 함께, 이전에 읽다만 채 적당히 뒤집어 부실 아무데나 두었던 소설책을 들어올린다.
아이를 다루는 법은 모르는 열네살 권사찬… 이네요ㅋㅋㅋㅋ 그렇지만 그래서 해월이를 너무 어린 취급하지 않는 점이 어쩌면 마음에 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아무튼 여전히 표정은 없고 말씨는 조곤조곤 조용하지만 나름 어린 아이를 대하는데 노력하고 있는 중학생이었습니다…
쓰면서 생각한 건데 열네살인데 벌써 아저씨 말투더라구요 사찬이~ 아마 선배도 꽤나 어이없어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ㅋㅋㅋ 그치만 키가 원체 큰 편이어서 나이보단 더 많게 보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해월이도 아저씨라고 불러버린 거겠죠)
눈앞에 있는 사람이 형의 친구라는 소식을 소년은 아무 말도 않은 채, 그저 조용히 받아들인다. 소년의 형은 이곳에서 기다리라고만 했지 그 사이에 누가 찾아올 것이라고는 말해준 바 없었다. 그러니 소년이 모르는 형의 친구가 온다고 해도 크게 이상할 일은 아니리라. 애초에, 소년은 형의 친구들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했다. 다만 어린 마음에도 형 같은 성격이라면 교우 관계가 좁지는 않으리라고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처음 만난 사람이 제 형제 관계는 물론 이름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 역시 소년을 흔들어놓지는 못한다. 애초에 자신이 누군지 몰랐더라면 제 형이 누구인지 알 방법도 없었을 테니. 게다가 소년은 아직 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다. 다섯 살이란 세상의 모든 이상한 것들을 이상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다. 어쩌면 소년뿐만이 아닌 다른 또래 아이들에게도, 생면부지의 타인이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상황은 특이한 축에 속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물론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었지만.
소년은 그가 창문을 열고 커튼을 정리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없이 관찰한다. 그는 열네 살이고, 아직 다 컸다고 하기에는 조금 이른 나이지만, 소년이 그 사실을 알 방법은 없다. 소년의 눈에 그는 학교 선생님이나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과 같은 성인으로 비추어진다. 다섯 살에게 열네 살은 범접할 수 없는 나이나 마찬가지이다. 열한 살의 간극은 소년에게 성큼 다가온다. 어찌 되었건, 그는 나쁜 사람 같지는 않다.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감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지만,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소년은 이상하리만치 그 사실을 확신한다.
그의 말에도 소년은 입을 열지 않고 다만 짧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다시 그를 관찰하는 일로 돌아간다. 계속해서 쳐다보면 기분 나빠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와닿기에 소년은 아직 어리다. 그런 점에서는, 상대가 그라서 다행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책을 봐도 된다는 말에는, 잠시 책장에 눈길을 준 뒤 다시 고개를 돌린다. 소년의 관심사는 약간 먼지가 쌓인 책장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
"그건 무슨 책이에요?"
소년은 묻는다. 온전히 책에 대한 관심이라고 하기에는, 베일에 싸인 형의 친구에 대한 호기심 또한 얼마간 섞여 있다. 게다가, 이 사람이라면 소년이 모르는 것을 물어봐도 화내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해줄지도 모른다. 소년은 발을 앞뒤로 살짝씩 흔들며 그의 대답을 기다린다.
/답레가 생각보다 많이 늦었네;^;
헉 사찬이 픽크루 너무 귀여워😍😍😍 맞아 확실히 픽크루에는 더벅머리 파츠가 별로 없는 것 같더라구..😂
소년의 물음에, 그는 반쯤 무의식적으로 책을 뒤집어본다. 그야 스스로가 읽고 있는 책이므로 그 내용이라던가 제목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꽤나 갑작스런 질문 앞에 자연스레 나온 행동이었다. 뒤집어본 책의 표지에는 미색의 바탕에 하나의 뿔을 가진 말이 그려져있다. 다시 말해 흔히 일각수라고 부르는 종류, 그러니까 상상의 동물이다. 그렇지만 표지와 달리, 책의 내용이라는 건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종류의 정보값이다.
그 책은 대재앙 이전의 소설이었다. 지금은 없는 나라에서 쓰여진. 거기까지 생각하고, 그는 잠시 속으로 한숨을 내쉰다. 현 시대에 국경은 사라졌지만, 글쎄, 그것이 문학에서까지 통용되는 이야기일지는 애매하다. 조금 더 확장해서 말하자면 문화라고 해야할테고. 결국에는 그런 이야기였다. 그는 여전히, 그 옛날 한 나라의 수도였던 도시에서, 여전히 그 옛 나라의 언어를 쓰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 많은 것이 달라졌음에도, 여전한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그야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 않은가? 결국 인류는 멸망하지 않았고, 살아남은 이들이 세상을 재건하였다. ‘살아남은’ 이들이. 그러니 딱히 제로에서부터 시작하지는 않은 것이다. 인프라의 복구를 위해 국경을 지우고 세계정부를 받아들일 수는 있어도, 예술과 문화의 분야에서의 정체성으로 가자면…… 언어와 지역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옛날에 비해 퇴색 되었다고는 덧붙여둬야 진실이 되겠지만.
“……소설책.”
그리하여, 그 긴 잡념의 끝에 나온 대답은, 결국 세 글자였다. 길다고 해봤자 생각이라, 실제로는 딱히 침묵이 길어지는 일조차 없었지만. 14년 후의 그였다면 그 답 이후로도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거나 했겠지만, 지금의 그에게 그런 ‘요령’은 없다. 14살의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소년의 반응을 기다리며, 소설의 첫문장을 다시 떠올려보는 정도이다. 사실 14년이 지난 후의 그에게도 요령이 있다, 고 말한다면 웃어버릴 사람이 있겠지만, 아무튼 간에.
발을 흔들며 그를 살피는 소년의 시선에 신경을 할애하고 마는 것 역시, 아직 요령이 없기 때문인 걸까? 그러나 이 묘한 긴장감이 실상 단순한 낯가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는 그도 동의하는 바가 없지 않았다. 다섯살의 어린 아이든, 동급생이든, 성인이든, 낯선 이에게 목소리를 내어 말을 거는 것이 그에게는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차라리 글로 써서 제출하는 레포트라면 괜찮을텐데, 소년에게 소설을 읽고 난 독후감을 쥐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숨을 내쉬려다, 눈앞의 소년을 보고 되삼킨다.
사실 중학생 나잇대의 사찬이는 완전 반에서 아싸였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었는데(물론 지금도 아웃사이더지만) 쓰다보니 왜 그랬을지도 짐작이 가네요ㅋㅋㅋ 속생각이 깊어서 현실의 말을 할 타이밍을 잘 잡질 못하니까… 그랬겠죠… 호기심 많을 나이의 해월이가 좀 더 말문 터주기를 바라보며(네?)… 일단 마무리 지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권사찬도 사실 말재주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지만, 이제는 해월이가 스스로의 말투에 익숙해졌을 거라는 생각도 할테고, 아무래도 저 이후로 14년 간 사회생활이든 여행이든 하면서 더 여유가 생겼겠거니 해요~ 이제는 처음보는 사람이랑도 적당히 잡담할 수 있는… 요령 붙은 권사찬(??) 물론 사찬이한테 '요령 있다'는 표현을 하면 선배가 웃을 거라고도 생각합니다ㅋㅋㅋㅋ (걔한테 요령이?)
나도 잠깐 얼굴 비추고 갈게~~ 아무래도 이번 답레는 특히 시간이 오래 걸리네😢 어린 해월이를 최대한 끌어내고 싶어서 그런가봐. 사찬주도 좋은 주말 보내!
>>200 5살 해월이는 반대로 지금보다 오히려 낯을 덜 가리지 않았을까 싶네XD 사실 지금도 많이 가리는 건 아니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 먼저 다가가는 데 좀 더 스스럼없었을지도 모르겠고? 반 친구들이랑도 막 하루종일 놀러다니는 건 아니어도 의외로 평범하게 지내지 않았을까 싶어. 아마 지금 해월이의 모습은 중학교 즈음부터 시작되지 않았으려나😄
누워서 곰곰히 생각하다가 중학교 즈음부터~ 라고 한다면 5~6년쯤 전이겠구나 싶어졌어요! 해월이의 태도가 바뀐 이유도 궁금하고, 그때의 사찬이 반응도 궁금한데 역시 이유에 따라서 달라질 것 같긴 하네요☺️ 사실 나이를 먹으면서 세계관을 확립하고 별다른 이유없이 성격이 굳어지는 경우는 흔하잖이요~ 어떤 식이든 간에 지금의 사찬이 태도를 보면, 둘 다 크게 불편하지 않은 것 같고 서로에게 익숙한 것 같고요.
갱신이야:D 지금은 좀 여유가 생겨서 아마 오늘~내일 중으로 답레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네😄 기다려줘서 늘 고마워 사찬주!
뭔가 계기가 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지 않았으려나 싶어? 특별히 사람이 싫어졌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형과 사찬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어쩌면 알게 모르게 사찬이에게 영향을 받은 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 대학원 나온 시기랑 겹친다면 사찬이가 여행을 떠난 것도 어느 정도는 성격 형성에 일조했을 수도 있겠고😊 어찌 됐든 결론은 딱히 특별한 원인이나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이거네:D
소설책. 소년은 머릿속으로 그 세 글자를 조용히 곱씹는다. 그의 짧은 대답애도 소년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소년의 입장에서 그의 답변은 자신을 어린아이 취급하면서ㅡ물론 나이만 놓고 봤을때 소년은 엄연한 어린 아이가 맞다ㅡ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는 것보다 훨씬, 이른바 정상적인 답변이다. 책의 표지에는 이마에 뿔이 달린 말이 있다. 소년은 아직 그 말의 이름은 모르지만, 동화책에 자주 나오곤 하는 존재라는 사실만은 알고 있다. 소년은 몸을 조금 움직여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간다. 너무 많이는 아니고, 딱 적당할 만큼만.
"어떤 소설책이에요?"
소년은 다시금 묻는다. 소년은 아직 소설책 한 권을 끝까지 다 읽어본 적은 없다. 아직까지 소년에게 소설책이란, 손이 가는 대로 펼쳐 들고 그 장에 쓰여 있는 내용을 읽는 행위에 해당한다. 당연히, 그런 방식으로 소설의 전체 줄거리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형의 책장에 꽂혀 있는 다른 어려운 책들보다는 어렵지 않다. 제법 재미있기도 하다. 가끔은. 그럴 때마다 소년은 꼭 숨은 보석을 찾은 듯한 기분에 빠져든다. 바위 깊이 숨어 있던 진주 한 알을 찾은 잠수부의 심정처럼.
소년은 재촉하지 않고, 다만 참을성 있게 그가 답해주기를 기다린다. 누차 강조하지만, 소년은 기다림을 싫어하지 않는다. 게다가, 소년은 그가 답을 해 줄 것이라고 이상하리만치 확신하고 있다. 천천히, 그러나 성실하게,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소년은 벌써 기묘한 방식으로 그에게 신뢰를 주고 있다. 소년의 형이 본다면 의아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소년은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은 아니지만, 동시에 이 사람 저 사람 안 가리고 말을 걸고 다니는 성격 또한 아니기 때문이다.
열어둔 창문으로 기분 좋은 바람이 새어 들어온다. 소년은 정갈하게 묶인 커튼을 보면서, 어쩌면 커튼을 걷지 않는 편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창 밖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나부끼는 커튼은 그것대로 아름다우니까. 하지만 사실, 먼지가 날릴 것을 생각하면 커튼을 걷은 그의 선택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가 말하기를 기다리는 소년의 작은 머리 안에서, 커튼은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흔들리고 있다. 살랑살랑, 살랑살랑.
/아마 중학교에 들어오고 성격이 바뀌기 시작함->사찬이가 떠남->성격이 완전히 자리잡음 이런 식이지 않았을까? 일단은 떠나기 전에도 근 10년을 알고 지냈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이미 익숙했을 거라는 생각이네. 선배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식사 자리에도 자주 불러서 함께했을 것 같기도 하고XD
해월이도 성격이 바뀐다고 자기 자신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는 바로 그 점을 알아서 자신의 성격 변화를 딱히 신경쓰지 않았을 것 같아. 해월이 입장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고 언젠가 거쳐가야 할 하나의 과정이었을 것 같네. 다만 선배는 해월이가 밖에 나가서 친구 좀 사귀어야 하지 않나.. 하고 조금 걱정했을 것 같기도 하고?
이번에는 답레가 좀 많이 늦었네. 그래도 이 둘의 답레는 쓰면서 항상 즐거워. 언제나 고마워 사찬주😊
해월이 픽크루 너무 귀여워요… 볼통통… 답레 내용 속에서도 귀여워요ㅠ 귀엽다는 말 밖에 못하는 사람 된 기분인데 그치만… 낯도 안 가리고… 너무 똑똑하고… 말랑~ 한 걸요…
ㅠㅠ요즘 현생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답레는 좀 걸릴 것 같아요. 대충 쓰고 싶지는 않아서, 흑흑… 어린 해월이랑 사찬이는 열심히 선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러고보니 해월이네 형제는 같이 살 당시에 요리는 누가 했을까요? 해월이 요리 할 줄 아려나요? 사찬이는 의외로… 대식가 설정 붙어있어서 아마 어느정도까지는 할 것 같아요ㅋㅋㅋ 곧잘 만들고 잘 먹지 않을까 싶은… 여행을 떠나고 나서부터는 딱히 요리를 제대로 할 기회는 없었겠지만요~
음식 취향 같은 것도 따로 있으려나요? 사찬이는… 음… 잘 안 가릴 것 같기는 하지만ㅋㅋ… 한식보다는 양식 잘 먹을 것 같고… 그러네요. 최근에는 역시 러시아-중앙아시아 음식이 익숙할테고요!
전체적으로 말랑말랑하던 시기의 해월이라구;D 지금은 말랑까지는 아니고 음.. 보들보들 정도려나? XD
늘 말하는 거지만 답레는 천천히 줘도 괜찮아! 해월이랑 사찬이도 아마 기다리면서 나름대로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5성급 수준은 아니지만 해월이도 요리는 어느 정도 할 줄 알아! 지금 일상 돌리는 시점(5살)에서는 너무 어려서 아직은 선배가 했을 것 같고, 크면서 하나둘씩 배웠을 것 같네:D 선배가 대학원에 들어간 뒤에는 점점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을 테니 아마 그때를 기점으로 해서 가사 분담이 서서히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해월이는 딱히 가리는 음식은 없을 것 같아. 일단은 한국을 떠난 게 이번이 처음이니까 기본적으로는 한식에 더 익숙하겠지만 양식을 딱히 싫어하거나 못 먹는 편도 아닐 것 같네! 의외로 새로운 음식을 시도해 보는 데 별다른 거리낌이 없기도 하고 말야:D
역질문이 돌아올 거라고는 그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야 빈약한 답변이었으니 별 수 없지.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2권짜리 소설의 내용을 요약하는 것은 꽤나 품이 드는 일이라, 이번에야말로 침묵이 길어진다. 사실 소년이 그렇게까지 자세한 내용이나 비평을 원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은 충분히 알고 있는데도, 고민이 길어지고야 마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말이 정리되지 않으면 바깥으로 내어놓지 못하는 그의 성격 탓이다. 속생각이 깊어, 표현이 늦는다.
“……암호를 취급하는 주인공이, 세계의 끝에 직면하는 이야기.”
대답하면서도, 대답이 되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해둔다. 애초에 소설의 구성 자체가 복잡하니 적어도 한두문장은 더 할애하지 않으면, 하고도. 그러면서도 동시에 기억에 남았던 문장을 되짚어 보고, 다시 머릿속의 한 구석에서는 그다지 좋아하는 작가는 아닌데, 하는 말도 중얼거린다. 생각해보면 문장을 더 기꺼워하는 버릇은, 그 본인이 듣는 것에 비해 읽는 것으로 정보를 얻는 속도 훨씬 빠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속독가이고, 다독가이고, 난독가이기 때문에. 칭찬 받기는 힘든 방식이겠으나.
“전혀 다르지는 않지만, 갈래가 다른 두 이야기가 갈마드는 내용이니까, 설명하기 조금 복잡한데.”
그리고 그는 소년의 눈길이 책의 표지에 잠시 머무른 것을 반박자 늦게 떠올린다. 순간순간 찾아오는 생각에, 이전에 본 것을 나중에야 되짚어 깨닫는 경우도 그에게는 흔한 일이었다. 생각이 빠른 그에게 현실은 간혹 느리게 찾아온다. 생각이 깊다는 일이 나쁜 일은 아니라고 말하는 건 쉽지만, 대답이 늦어 동급생들의 친절하게 곤란해하는 얼굴을 계속 보고있는 것도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딱히 불화가 있는 것은 또 아니지만, 적어도 그 본인은 그런 부분을 단점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정도의 이야기이다.
산만하다고나 할까. 그에게 산만하다는 표현을 사용한다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사람도 꽤나 있겠지만, 본인의 생각이 산산히 튀어나가는 방향성을 알고있는 그로서는 차라리 당연한 평가이다. 뭐, 선배라면 또 어린 녀석이 인생 다 산 듯한 표정을 짓는다고 하겠지. 애초에 그도 생각하는 것에 비해서는 사실 그렇게까지 신경 쓰고 있지는 않다. 누군가에게 지적 받는다고 해도 놀라지는 않겠지만, 나서서 유감스러워할 일도 아니다. 아무래도, 그냥 성격이니까.
“……표지의 동물은, 일각수야.”
보통은 유니콘이라고 하겠지만, 하고 덧붙이고 초판의 표지는 아마 이게 아니었을 거라고도 말해둔다. 옛 소설들을 읽다 보면 도서관의 오래된 책, 에 대한 언급도 흔하지만, 글쎄…… 대재앙 이전의 책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몇판이든 간에 이미 ‘오래된 책’이다. 책의 내용에 있어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문득, 바람이 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고개를 들자 소년의 뒷통수가 시야에 들어온다.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는 색이 옅은 머리칼도.
암호, 주인공, 세계의 끝. 소년은 천천히 단어의 나열을, 그 간격을 음미한다. 소년의 작고 동그란 머리는 벌써부터 소설의 내용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소년은 아직 직면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지 못한다. 소년은 집에 돌아가서 사전을 찾아보리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사전의 뜻풀이라는 것이 그 나이의 어린이에게는 종종 원래의 단어보다도 더 어려운 터라, 소년이 직면의 명확한 뜻을 이해하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모르겠다면 형에게 물어보면 알려주리라. 그리고 소년은 불현듯, 굳이 형이 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직면이 뭐예요?"
직면은 또 무엇이고, 갈래가 다른 두 이야기가 갈마든다는 것은 또 어떤 내용일까. 갈마든다는 말의 뜻을 모르는 것도 매한가지이지만, 그건 아직 조금 기다려도 될 것이다. 한 번에 하나씩, 천천히. 어쨌거나 고등부가 끝나려면 아직 한참 남은 모양이고, 그들에게는 시간이 많으니까. 어쩌면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생각이 여러 방향으로 튀는 것에 대해 얘기하자면, 소년 또한 그보다 더 나을 바는 없다. 꼭 소년만이 아니더라도, 원래 다섯 살의 머리는 그 누구보다도 바쁘게 돌아가는 법이다. 세상을 인식하고, 더 나아가 재구성하기 시작하는 나이. 소년의 생각은 어느새 이마에 뿔을 단 동물을 향해 나아간다. 일각수, 또는 유니콘. 보다 더 많이 쓰이는 쪽은 유니콘이겠으나, 소년은 일각수라는 말이 더 마음에 든다. 그 울림에는 묘하게 소년을 이끄는 부분이 있다.
지금의 표지와 예전의 표지가 다르다면ㅡ소년은 초판이라는 말의 뜻 역시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이번 경우는 적어도 짐작은 간다ㅡ전에 있던 표지는 어떻게 생겼을까. 그 표지에는 일각수, 또는 유니콘이 그려져 있지 않다는 걸까. 표지에 유니콘이 있다는 건 내용이 유니콘과 관련이 있다는 뜻일까. 질문거리는 자꾸 늘어나기만 한다. 하지만 소년은 개의치 않는다. 그럴 나이다.
소년은 팔을 뻗어 손끝으로 조심스레 책을 매만진다. 부드러운 책등은 세월의 흐름을 담고 있다. 오래된 책인 것 같다고, 소년은 짐작한다. 오래된 책에는 오래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리고 소년은 항상 이야기를 좋아했다. 결코 질리는 법이 없다. 하지만 그 이야기도 지금은 잠시 기다려야 한다. 우선은 처음 듣는 단어를 하나 배우는 게 먼저, 그 다음은 그 다음에. 하나하나, 차근차근.
갑작스레 돌아온 질문은 예상하지 못했던 종류의 것이라서, 그는 잠시 멈춰선다. 이미 알고있다고 생각했던 단어라고 해도, 타인에게 그 의미를 풀어 설명하는 것은 때때로 난해한 작업이다. 상대가 어린 아이라면 더더욱 그러하겠으나, 그에게는 아직 그 정도를 가늠할 정도의 지혜는 없다. 다섯살이라고 해도, 막연하게 어리구나- 할 뿐. 그건 그가 중학생에 지나지 않는 나이여서라기보다는, 실제로 다섯살의 아이를 오래 접할 정도의 경험을 가지지 못해서에 가깝다. 아무래도 그가 아는 다섯살이라는 건 역시 9년전의 그 본인 정도고, 그때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으라는 것도 무리이니까.
“글쎄…… 맞닥뜨린다, 고 하면 나을까.”
방금의 설명이 어려웠던 걸까 생각하며 그는 몇가지 단어를 조금 더 설명하다가, 나름 간단하다고 생각한 단어를 골라 이야기를 다시 풀어보지만, 소년에게 얼마나 통하였는지는 미지수다. 눈 앞의 소년은 고맙게도 낯을 가리지 않고 그에게 말을 걸어주고 있으나, 그로서는 사실 선배는 언제쯤 오는걸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릿속 한구석에서 이쪽도 중학생 밖에 안됐는데,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아니, 그야, 소년을 사실상 ‘돌보고’ 있는 선배도 미성년자인 건 마찬가지지만.
선배, 언제 옵니까. 속으로만 중얼거린 것은 잠시였고, 어느샌가 책을 만져보는 소년의 정수리를 보면서, 그는 소년이 점심을 먹었을까 생각해본다. 중등부는 단축수업이어서 점심시간 이전에 끝났지만, 딱히 열성적으로 끼니를 챙기는 편이 아닌 그는 식사를 챙기러 카페테리아나 매점으로 가는 대신, 바로 부실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소년은? 초등부 수업은 끝난 것 같은데, 어쩌면 수업시간의 길이가 차이가 있으니만큼 이미 소년은 점심시간을 끝내고 온 걸지도 몰랐다.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가 무얼 해야할까. 이 부분에서 그는 결국 멈칫거리고, 조금 다른 문장으로 다시 한 번 되뇌인다. 만약 그렇다 해도, 그가 무얼 할 수 있을까. 무얼 해도 괜찮은 걸까. 오늘 처음 본 다섯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보호자의 동의도 없이 어딘가로 이동하는 건, 아무리 그래도 조금 이상하니까. 결국 그는 끼니에 대해 묻는 대신, 입을 다물고 소년의 하늘하늘한 머리칼을 잠시 눈으로 쫓는 정도에서 멈춘다.
결국 언젠가의 그는, 소년에게 자기 것이 아닌 버릇으로 끼니에 대해 묻고, 소년의 뒤를 따라 낯선 거리를 걷고, 한 번도 들어가본 적 없었던 문을 열고, 스스로의 산만하게 흘러가는 사고 흐름에 조금쯤 질려하면서도, 소년이 아직 모르는 단어들에 대해 설명하게 될테지만, 역시 지금의 그로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이다. 다만 현재의 그는 소년의 봉긋한 정수리에 비추는 햇빛에 시선을 두고, 약간 낯설어하면서도, 동시에 이유모를 안도감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언젠가는 분명 그 안도가, 아주 오래된 그리움에서 나온다는 걸 알게될 터이나.
단축수업 이야기 쓸 때부터 생각했지만 어쩐지 사찬이랑 해월이는 점심이라고 해야하나, 조금 늦은 오전이나 이른 오후가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해요. 둘 다 은근하게 부지런한 사람들이라 그런 걸까요? 약간 아침에 할 일 다 해두고 점심 되면 벌써 하루가 반이나 지났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러고보니 둘은 취침시간이랑 기상시간 어떻게 되려나요! 사찬이는 전이나 지금이나 6시쯤이면 일어나고 자정쯤 되면 잠드는 사람이었을 것 같기는 하네요ㅋㅋㅋ 주말이어도 늦게 일어나는 경우가 별로 없는 사람 아니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