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이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치열한 전장에는 아무리 화력을 쏟아부어도 부족함이 있기 마련이다. 서포터는 바로 그 부족한 부분을 케어한다. 기본적으로 캐스터와 비슷한 마법적 성질을 띄지만 부수적인 면에서 그 궤를 달리한다. 이들이 부리는 마법에는 단순한 원소아츠를 제외하고도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어 적들의 발을 묶거나, 조금이나마 메딕의 자리를 대신해주는 등의 신통한 역할을 해준다. 경험있는 지휘관일수록 압도적인 전력보다는 서포터 포지션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묘한 양상을 띄는데에는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늘어지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잔소리라는 것 자체가 자신을 걱정해준다는 증거였으니 별로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아하냐를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으니까. 사블랴는 자신이 걸친 자켓의 후드를 뒤집어썼다. 낄낄거리는 칼리 때문에 얼굴이 빨개진 것을 숨기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 참견 할 자격은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뭐 그건 맞긴 한데. "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지인이고,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고.. 하여튼 참견할 자격은 분명하게 있다. 그게 조금 불만스러운 것만 빼면 말이다. 히죽거리는 칼리가 얄미운지 손을 뻗어 칼리의 볼을 살짝 잡아보려고 시도했다.
에덴은 농을 두어 마디 더 덧붙이곤 후후후 웃었다. "이래봬도 처음 사무소에 왔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낯가림이 심해서, 다른 분들과 친해지기 어려웠거든요. 그나마 보바를 포함한 동기들이랑은 임무가 겹치는 때가 많아서 그럭저럭 친해지기 쉬웠지만, 선배분들은 조금 대하기 어려우니까..." 하고, 에덴은 추억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은 극동 쪽에서 온 어떤 선생님께 타코야끼 굽는 법을 배워서, 타코야끼를 구워봤는데 이래저래 연습하다가 좀 많이 만들어버렸지 뭐에요. 그런데 다른 선배분들이 맛있게 드셔주시면서 말을 붙여주시더라구요. 그 이후로 선배분들과도 꽤 친해질 수 있었고. 제 뒤에 들어온 분들과도 요리로 제법 이야기가 통하더라구요. 말하자면, 사람을 끌어들여서 이야기를 시작하기 좋은 화젯거리랄까. 보바도 음식 냄새를 맡고 왔잖아요?"
하고 이야기를 털어놓던 에덴은, 블라디미르가 에덴의 목을 지적하자 눈을 깜빡이다가, 시선을 돌리며 옅게 웃는다. 얼굴에는 흐릿한 홍조가 깔리고. "물린 자국이긴 해요... 싸우다가 물린 건 아니지만요." 그리곤 에덴은 말을 돌리기라도 하려는 듯 포크와 나이프를 치킨까스가 담긴 접시와 함께 블라디미르에게 내밀었다.
에덴은 온 얼굴에 해사한 미소를 띄우면서, 손을 뻗어 리아의 가슴팍- 쇄골 접합부에 손끝을 올렸다. 손가락 끝마저도 따뜻했다. 리아 그 자체. 에덴에게는 그것이 소원이었던 모양이다. 그것 외에는 바라지 않는다는 것처럼, 소녀는 리아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손을 내리고는 식사를 시작했다.
"언니에게 바라는 것은 앞으로 또 생각날 수 있으니까, 저랑 계속 함께 있어주시면서 제가 바라는 것을 찾아봐요. 다시 말해, 살아서, 저랑 계속 함께 있어주시기. 약속이에요?"
하고, 에덴은 미소를 거두며 첫 숟가락을 뜨다 말고는 리아를 바라보며 뭔가 떠올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잔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 칼리는 후드를 뒤집어쓰는 사블랴의 모습에 느물거리는 웃음을 흘리면서 사블랴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드러난 하나의 파르스름한 눈동자가 움직이며 이미 자리를 뜬 고양이의 흔적을 찾으려는 듯 했지만, 곧 칼리는 그 눈을 사블랴에게 고정했다.
"본인이 자네에게 참견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자네에게 참견하겠나? 안그런가?"
에이전시에 들어오지 않겠나 하는 제의를 했던 사람이 자신이기도 했으니. 히죽이며 웃던 칼리는 뺨을 잡는 사블랴의 손을 피해내지 못하고 그대로 잡혀버린다. 칼리의 눈이 묘하게 가늘어지면서 뺨을 잡고 있는 사블랴를 보고, 볼을 잡은 손을 보고. 번갈아가며 보던 칼리가 히죽이며 입매를 올렸다.
"자네 많이 컸구먼. 본인의 볼을 다 잡기도 하고 말일세."
볼이 잡힌 채 말을 하는 바람에 도드라지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숨김없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나고, 칼리의 귀가 가볍게 까딱 움직였다. 마음 먹고 잡았다면 말도 못했을테니 그 정도로 힘을 줘서 잡은 건 아니라는 것이다.
"본인 눈에는 아직 꼬맹이로 보이니 어쩌겠나. 응? 좋구먼- 애칭이라면 상관없다는게지? 그럼 애칭이라고 하면 되겠구려."
이건 언제까지 잡고 있을텐가? 칼리는 볼을 잡고 있는 사블랴의 손을 자신의 손을 가볍게 건드리려한다.
농을 덧붙이는 것에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엑스칼리버를 마주본다. "아아..." 라며 엑스칼리버의 말을 이해한다는 듯한 반응을 내비치기도 했을까. 자신도 카페라던가 디저트가 아니었다면 다른 사람들과 쉽사리 말을 붙이기는 어려웠겠지. 여러모로 카페의 덕을 많이 본 탓에 그러지는 않지만..
" 맞는 말이네. 음식은 좋은 이야깃거리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나 같은 배고픈 사람도 끌어들일 수 있고 말이야. "
느릿하게 말하다가 엑스칼리버가 말한 마지막 문장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말에 추가하였다. 배고픈 사람과는 안면 트기 좋겠네, 이렇게 음식을 만들어둔다면. 같은 생각을 하던 와중- 시선을 돌리며 말하자 "그럼 연애하다가 물린 거야?" 라며 천연덕스럽게 물어보았다. 답하지 않았다면 그걸로 묻는 건 그만뒀겠지만.
자신과는 다르게 간질거리는 말을 저렇게 자연스레 뱉어내는 에덴을 보며 오니는 살짝 홍조를 띈 체 중얼거린다.자신의 가슴팍에 와닿는 에덴의 손가락 끝은 처음 느껴보는 아찔함을 선사해서 조금은 놀란 오니였다. 그 동요가 부디 에덴에게 보이지않았기를 마음 속으로 바라며 에덴을 바라보던 오니는 이내 에덴이 식사를 시작하자 에덴을 따라 밥을 먹기 시작한다.
" 알았어, 둘이서 오래... "
에덴의 말은 무언가 오니의 삶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갈 것을 던져주는 거만 같았다. 살아야 하는 이유. 그것이 에덴의 입을 통해 기어나와 오니의 발목을 움켜쥔다. 이것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지만 그 움켜쥐는 감각이 썩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마는 오니였다.
" .... 옷, 역시 별로긴 하지. "
옷을 사러 가자는 말에 눈이 동그랗게 커진 오니는 에덴의 데이트 신청에 기쁘면서도, 역시나 하는 생각을 하며, 실용성만 가득한 전트 슈트를 걸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게다가 비슷한 키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조금 더 작은 가슴팍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오니는 한번 더 한숨을 내쉰다. 아무래도, 이런 부분에선 에덴에게 매력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 에덴은 참 예쁜데.... "
작게 중얼거린 오니는 일단 오야코동을 먼저 비우고 우울하기라도 할 생각인지 한동안 말없이 오야코동 그릇을 비운다. 깨끗해진 그릇을 내려놓은 오니는 극동식으로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이곤 천천히 입을 연다.
" 맛있었어, 에덴... 그러니까, 음... 에짱...? "
아주 옛날, 극동에서 동네 친구들을 부르던 것처럼 조심스럽게 애칭을 붙여서 말해본 오니는 이내 얼굴이 붉어진 체 몸을 일으킨다. 그리곤 다급하게 안쪽에 있는 쇼파로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며 중얼거림을 남긴다.
누군가, 누군가,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네요. 머리를 쓰다듬어주는데, 아니요, 난 그곳에 있지 않아요. 당신은 없어요. 주위에 무언가가 없는 걸요. 파동이 느껴지지 않아요. 그만 가주지 않을래요? 과거는 과거에, 현재는 여기로, 미래는 미래에.
찰박, 그 정도 소리까지는 아니예요. 똑, 똑...그 정도 소리가 들리네요. 미처 꽉 잠구지 못한 수도꼭지에서 한방울씩 물이 새어나오듯이, 장미꽃잎이 걸음걸음마다 하나씩 피는 것처럼, 발이 움직일 때마다 바닥에 흔적을 남기고 있어요. 아프지는 않은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허공을 떠도는 시선은 꿈 속을 걷기라도 하는지 이리저리 떠돌고 있네요.
정처없이 떠도는 발걸음은 어디러 가야 할지를 몰라 멈칫거리고, 잡을 곳 없는 손은 손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드레스 자락을 쥐고 있어요. 여인은 꿈 속을 헤메고 있나요? 누군가와 춤을 추고 있나요?
걸음을 걷던 칼리가 멈춰선 것은 어딘가에서 엷게 풍기는 냄새 때문이었다. 평소라면 무심코 지나쳤을 엷은 그 냄새에 칼리의 걸음이 멈춰진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피냄새가 나는군?"
칼리는 곧 시선에 닿는 낯익은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고 킁- 하고 코를 실룩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떨어지는 피가 걸어온 걸음이 지나친 바닥을 물들이고 있었다. 칼리의 걸음이 다시 재차 움직이며 계속 피를 흘리며 걷고 있는 상대와 거리를 금새 좁히고, 늙은이처럼 혀를 끌끌거렸다.
"이보게. 자네."
본인과 구면이지 않은가? 칼리는 상대의 허리로 팔을 뻗어서, 거부하지 않는다면 어렵지 않게 안아서 들어올리려는 행동을 해보였을 것이다.
"저번에 유리를 밟으려는 걸 도와줬거늘, 자네. 기어코 발을 다치지 않았나. 그 상태로 걸으면 상처가 덧난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