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이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치열한 전장에는 아무리 화력을 쏟아부어도 부족함이 있기 마련이다. 서포터는 바로 그 부족한 부분을 케어한다. 기본적으로 캐스터와 비슷한 마법적 성질을 띄지만 부수적인 면에서 그 궤를 달리한다. 이들이 부리는 마법에는 단순한 원소아츠를 제외하고도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어 적들의 발을 묶거나, 조금이나마 메딕의 자리를 대신해주는 등의 신통한 역할을 해준다. 경험있는 지휘관일수록 압도적인 전력보다는 서포터 포지션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묘한 양상을 띄는데에는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경미한 뇌진탕입니다. 일단 이마 윗쪽이 조금 찢어졌는데 꿰맬 정도는 아니구요… 일단 드레싱 해드렸는데, 며칠 뒤에 다시 방문해주세요—
리타는 커피를 타며 의사의 말을 곰곰히 곱씹었다. 며칠 전 임무에 나섰다가 머리를 다쳐 잠시 병원에 들렀더니, 글쎄 가벼운 뇌진탕이란다. 의사의 말을 들은 직후, 그녀는 차라리 곤봉을 맞지 말고 피할 걸 그랬나. 하는 작은 후회를 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데도 말이다. 피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 시간에 스스로 성장할 방도를 고민하는 것이 차라리 낫겠건만. 시끄러운 커피 머신의 소음이 멎었다. 커피가 완성됐다는 뜻이었다.
어젯밤 자꾸 잠을 설친 덕에 리타는 무척이나 피곤한 상태였다. 병원에서 3일치 약을 받아온 그녀는 약과 커피가 상극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피곤한 정신을 흔들어줄 카페인을 차마 포기할 순 없었다. 때문에 오늘도 머그잔 가득히 커피를 내렸고, 이제 그녀에겐 휴게실을 나서 제가 있어야할 자리로 돌아갈 일만이 남아있었다. 아니, 그 일만이 남아있어야 했다.
아, 어지럽다. 차라리 몸이 안 좋다면 병가를 낼 것을. 그녀가 휴게실 문턱을 밟으며 제 이마를 짚었다. 시야가 휘청휘청 것이, 꼭 멀미가 나는 듯한 기분인데…
" 으앗! "
그녀는 순간 균형감각을 잃고 발을 헛딛고야 말았다. 그녀가 넘어질 뻔한 것은 별 대수가 아니었지만, 진정으로 문제가 된 것은 그 다음이었던 것이다.
" 아, 그… 저기… 죄송해요…! 뜨거우실텐데! "
머그컵 가득히 담겨있던 커피는 온데간데도 없다. 대신 그녀는 제 눈 앞에 선 누군가의 옷섬에 커피를 잔뜩 쏟고야 만 것이다. 리타가 제 눈가를 꾹 눌러대며 연신 사과를 해대기 시작했다. 그거 방금 내린 커피리 많이 뜨거우실텐데… 라는 말을 중얼이며.
스카의 말에 칼리는 드러나있는 파르스름한 눈동자가 아닌, 안대로 가려진 눈쪽을 손가락으로 긁적였다. 스카의 말이 변명이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친절함을 닮아서 그런가봐요 라는 말에서 멋쩍은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멋쩍음에 칼리가 입을 다물고 앓는 소리를 내며 몇번 안대 위를 긁적였다가 손을 내린다. 친절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을 때,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다는 말을 들어버리면 어쩔 수 없다. 칼리의 파르스름한 눈동자가 눈 앞의 스카를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본인이 갑자기 물어본 탓일지도 모르겠구려. 아무리 본인이라도 그런 말을 들으니 조금 쑥쓰럽기는 하다네."
스카의 싱그러운 웃음에 칼리의 손이 다시 안대 위로 올라가서, 안대의 천을 긁적였다. 헛기침을 한번 해서 멋쩍음을 날려버리고 칼리의 표정이 다시금 히죽이며 입매를 올리는 평소의 표정으로 바뀐다.
"보통일세. 라트리."
본인은 아까도 말했듯이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네. 히죽이며 입매를 끌어올린 칼리가 스카에게 과장된 움직임으로 격식을 차린 제스처를 해보이고 히죽였다. 체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제스처를 풀고 칼리의 양손이 바지 주머니로 향했다. 익숙한 듯 주머니에 양손을 넣은 뒤 칼리가 다시금 히죽이며 입매를 끌어올렸다. 뭐- 본인은 상관없다네. 웃음과 사뭇 다른 느물거리는 목소리로 칼리는 말문을 연다.
"늑대는 자신의 몸무게의 두배정도 되는 먹잇감을 물고도 나를 수 있다네."
칼리는 스카가 꺼내서 자신의 손에 쥔 손수건의 모서리에 금사로 새겨진 자수를 잠깐 바라봤지만 자수에 대해서는 묻지 않기로 했다. 불쑥 처음보는 사람에게 말을 걸 정도로 사교성이 현저히 높은 편이지만 왠지 물어봤자 좋을 것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게다가 오래됐는지 해져서 제대로 보기도 힘들었고. 칼리가 스카의 앞에서 몸을 낮췄다. 한쪽 무릎만 바닥에 대고 스카의 유리조각이 박힌 발을 들어서 세워져있는 자신의 무릎에 올리려다가 칼리는 잠시 행동을 멈췄다. 이내, 언제 그랬냐는 양 칼리가 스카의 발에 박힌 유리조각을 찾기보다 손수건으로 발을 둘러서 싸매는 것으로 대신하려 하며 느물거리는 어조로 중얼거린다.
"유리조각이 크지 않아서 본인의 손으로 빼기엔 무리가 있어보인다네. 일단 지혈은 했으나 이 상태로 걷는 건 유리조각이 더 들어갈 수도 있으니 본인, 실례지만 아무래도 자네를 안아들어야겠소."
걱정마시게. 본인, 체력이나 근력은 자신있다네. 히죽이며 칼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스카가 거절하지 않는다면 다리가 땅에 닿지 않도록 안아드는 걸 시도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