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이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치열한 전장에는 아무리 화력을 쏟아부어도 부족함이 있기 마련이다. 서포터는 바로 그 부족한 부분을 케어한다. 기본적으로 캐스터와 비슷한 마법적 성질을 띄지만 부수적인 면에서 그 궤를 달리한다. 이들이 부리는 마법에는 단순한 원소아츠를 제외하고도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어 적들의 발을 묶거나, 조금이나마 메딕의 자리를 대신해주는 등의 신통한 역할을 해준다. 경험있는 지휘관일수록 압도적인 전력보다는 서포터 포지션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묘한 양상을 띄는데에는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리아가 차분하게 내려놓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담겨 있는 기쁨은 에덴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에덴은 자신의 목덜미에 남은 이빨자국을 매만지는 리아를 보며 리아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살며시 포갰다. 리아의 손끝으로, 에덴의 맥박이 전해져오는 것만 같다. 그녀의 얼굴에는 순전한 기쁨이 드러나 있는 미소가, 열기가 일렁이는 발간 눈동자와 함깨 어려 있었다. 리아의 솔직한 욕심에 대한 에덴의 대답이었다. 잠깐 그러고 나서야, 에덴은 리아가 식사할 수 있도록 손을 놓아주었다.
간장으로 간이 된 달콤하고도 편안한 감칠맛이 연한 닭고기에서 배어나와 입안을 맴돈다. 그것에는 간장이나 미림 같은 조미료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평온한 일상. 리아가 리아의 삶을 좀더 원하도록 만들어줄 특별한 조미료가.
리아가 나직이 중얼거린 말에, 에덴은 눈을 동그랗게 치뜨더니 이내 배시시 웃었다. 얼굴이 한결 더 보기 좋은 빛깔로 물들었다.
"네, 언니가 원하시는 만큼..."
/ 결국 스레 하나를 건너뛰어 돌아오고야 만 답레... 죄송해요 yy 이제 사블랴의 답레를 쓰러..
" ... 뭔가 에덴이 바라는 걸 들으려고 했는데, 또 내가 하고 싶은거, 바라는 것만 말한 것 같아. "
베시시 미소를 지어보이는 에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오니는 조금 더 오야코동을 즐기다 천천히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에덴에게 말하는 것은 조금 익숙해진 것 같았다. 물론 부끄럽고, 이래도 괜찮나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 그건 아마도 에덴의 모습을 보며 지낸다면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에덴이 바라는 부분를 끌어내는 것이 쉬울까 하는 생각을 하고 마는 오니였다.
" 기왕이면.. 에덴의 욕심이나 원하는 것들을 솔직히 말해주면 좋을텐데. 같이 산다는 건 그런 것도 말해줄 수 있는 관계가 되는거잖아? 날 위한게 아니라, 오롯이 에덴을 위한 소원같은거 없어? "
오니는 차분한 목소리로 물음을 던지곤 어떻냐는 듯 바라본다. 에덴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을 생각하는 가상의 무언가가 아니라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있을까. 있다면 알고 싶고, 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천천히 고개를 든 오니는 에덴의 욕망이 일렁이는 눈을 올곧게 바라본다.
" 어려워 하지 않아도 좋고, 날 배려하지 않아도 좋아. 그런 것들은 멀리 날려버리고 말해주지 않을래..? "
늘어지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잔소리라는 것 자체가 자신을 걱정해준다는 증거였으니 별로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아하냐를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으니까. 사블랴는 자신이 걸친 자켓의 후드를 뒤집어썼다. 낄낄거리는 칼리 때문에 얼굴이 빨개진 것을 숨기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 참견 할 자격은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뭐 그건 맞긴 한데. "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지인이고,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고.. 하여튼 참견할 자격은 분명하게 있다. 그게 조금 불만스러운 것만 빼면 말이다. 히죽거리는 칼리가 얄미운지 손을 뻗어 칼리의 볼을 살짝 잡아보려고 시도했다.
에덴은 농을 두어 마디 더 덧붙이곤 후후후 웃었다. "이래봬도 처음 사무소에 왔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낯가림이 심해서, 다른 분들과 친해지기 어려웠거든요. 그나마 보바를 포함한 동기들이랑은 임무가 겹치는 때가 많아서 그럭저럭 친해지기 쉬웠지만, 선배분들은 조금 대하기 어려우니까..." 하고, 에덴은 추억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은 극동 쪽에서 온 어떤 선생님께 타코야끼 굽는 법을 배워서, 타코야끼를 구워봤는데 이래저래 연습하다가 좀 많이 만들어버렸지 뭐에요. 그런데 다른 선배분들이 맛있게 드셔주시면서 말을 붙여주시더라구요. 그 이후로 선배분들과도 꽤 친해질 수 있었고. 제 뒤에 들어온 분들과도 요리로 제법 이야기가 통하더라구요. 말하자면, 사람을 끌어들여서 이야기를 시작하기 좋은 화젯거리랄까. 보바도 음식 냄새를 맡고 왔잖아요?"
하고 이야기를 털어놓던 에덴은, 블라디미르가 에덴의 목을 지적하자 눈을 깜빡이다가, 시선을 돌리며 옅게 웃는다. 얼굴에는 흐릿한 홍조가 깔리고. "물린 자국이긴 해요... 싸우다가 물린 건 아니지만요." 그리곤 에덴은 말을 돌리기라도 하려는 듯 포크와 나이프를 치킨까스가 담긴 접시와 함께 블라디미르에게 내밀었다.
에덴은 온 얼굴에 해사한 미소를 띄우면서, 손을 뻗어 리아의 가슴팍- 쇄골 접합부에 손끝을 올렸다. 손가락 끝마저도 따뜻했다. 리아 그 자체. 에덴에게는 그것이 소원이었던 모양이다. 그것 외에는 바라지 않는다는 것처럼, 소녀는 리아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손을 내리고는 식사를 시작했다.
"언니에게 바라는 것은 앞으로 또 생각날 수 있으니까, 저랑 계속 함께 있어주시면서 제가 바라는 것을 찾아봐요. 다시 말해, 살아서, 저랑 계속 함께 있어주시기. 약속이에요?"
하고, 에덴은 미소를 거두며 첫 숟가락을 뜨다 말고는 리아를 바라보며 뭔가 떠올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잔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 칼리는 후드를 뒤집어쓰는 사블랴의 모습에 느물거리는 웃음을 흘리면서 사블랴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드러난 하나의 파르스름한 눈동자가 움직이며 이미 자리를 뜬 고양이의 흔적을 찾으려는 듯 했지만, 곧 칼리는 그 눈을 사블랴에게 고정했다.
"본인이 자네에게 참견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자네에게 참견하겠나? 안그런가?"
에이전시에 들어오지 않겠나 하는 제의를 했던 사람이 자신이기도 했으니. 히죽이며 웃던 칼리는 뺨을 잡는 사블랴의 손을 피해내지 못하고 그대로 잡혀버린다. 칼리의 눈이 묘하게 가늘어지면서 뺨을 잡고 있는 사블랴를 보고, 볼을 잡은 손을 보고. 번갈아가며 보던 칼리가 히죽이며 입매를 올렸다.
"자네 많이 컸구먼. 본인의 볼을 다 잡기도 하고 말일세."
볼이 잡힌 채 말을 하는 바람에 도드라지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숨김없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나고, 칼리의 귀가 가볍게 까딱 움직였다. 마음 먹고 잡았다면 말도 못했을테니 그 정도로 힘을 줘서 잡은 건 아니라는 것이다.
"본인 눈에는 아직 꼬맹이로 보이니 어쩌겠나. 응? 좋구먼- 애칭이라면 상관없다는게지? 그럼 애칭이라고 하면 되겠구려."
이건 언제까지 잡고 있을텐가? 칼리는 볼을 잡고 있는 사블랴의 손을 자신의 손을 가볍게 건드리려한다.
농을 덧붙이는 것에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엑스칼리버를 마주본다. "아아..." 라며 엑스칼리버의 말을 이해한다는 듯한 반응을 내비치기도 했을까. 자신도 카페라던가 디저트가 아니었다면 다른 사람들과 쉽사리 말을 붙이기는 어려웠겠지. 여러모로 카페의 덕을 많이 본 탓에 그러지는 않지만..
" 맞는 말이네. 음식은 좋은 이야깃거리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나 같은 배고픈 사람도 끌어들일 수 있고 말이야. "
느릿하게 말하다가 엑스칼리버가 말한 마지막 문장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말에 추가하였다. 배고픈 사람과는 안면 트기 좋겠네, 이렇게 음식을 만들어둔다면. 같은 생각을 하던 와중- 시선을 돌리며 말하자 "그럼 연애하다가 물린 거야?" 라며 천연덕스럽게 물어보았다. 답하지 않았다면 그걸로 묻는 건 그만뒀겠지만.
자신과는 다르게 간질거리는 말을 저렇게 자연스레 뱉어내는 에덴을 보며 오니는 살짝 홍조를 띈 체 중얼거린다.자신의 가슴팍에 와닿는 에덴의 손가락 끝은 처음 느껴보는 아찔함을 선사해서 조금은 놀란 오니였다. 그 동요가 부디 에덴에게 보이지않았기를 마음 속으로 바라며 에덴을 바라보던 오니는 이내 에덴이 식사를 시작하자 에덴을 따라 밥을 먹기 시작한다.
" 알았어, 둘이서 오래... "
에덴의 말은 무언가 오니의 삶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갈 것을 던져주는 거만 같았다. 살아야 하는 이유. 그것이 에덴의 입을 통해 기어나와 오니의 발목을 움켜쥔다. 이것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지만 그 움켜쥐는 감각이 썩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마는 오니였다.
" .... 옷, 역시 별로긴 하지. "
옷을 사러 가자는 말에 눈이 동그랗게 커진 오니는 에덴의 데이트 신청에 기쁘면서도, 역시나 하는 생각을 하며, 실용성만 가득한 전트 슈트를 걸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게다가 비슷한 키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조금 더 작은 가슴팍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오니는 한번 더 한숨을 내쉰다. 아무래도, 이런 부분에선 에덴에게 매력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 에덴은 참 예쁜데.... "
작게 중얼거린 오니는 일단 오야코동을 먼저 비우고 우울하기라도 할 생각인지 한동안 말없이 오야코동 그릇을 비운다. 깨끗해진 그릇을 내려놓은 오니는 극동식으로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이곤 천천히 입을 연다.
" 맛있었어, 에덴... 그러니까, 음... 에짱...? "
아주 옛날, 극동에서 동네 친구들을 부르던 것처럼 조심스럽게 애칭을 붙여서 말해본 오니는 이내 얼굴이 붉어진 체 몸을 일으킨다. 그리곤 다급하게 안쪽에 있는 쇼파로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며 중얼거림을 남긴다.
누군가, 누군가,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네요. 머리를 쓰다듬어주는데, 아니요, 난 그곳에 있지 않아요. 당신은 없어요. 주위에 무언가가 없는 걸요. 파동이 느껴지지 않아요. 그만 가주지 않을래요? 과거는 과거에, 현재는 여기로, 미래는 미래에.
찰박, 그 정도 소리까지는 아니예요. 똑, 똑...그 정도 소리가 들리네요. 미처 꽉 잠구지 못한 수도꼭지에서 한방울씩 물이 새어나오듯이, 장미꽃잎이 걸음걸음마다 하나씩 피는 것처럼, 발이 움직일 때마다 바닥에 흔적을 남기고 있어요. 아프지는 않은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허공을 떠도는 시선은 꿈 속을 걷기라도 하는지 이리저리 떠돌고 있네요.
정처없이 떠도는 발걸음은 어디러 가야 할지를 몰라 멈칫거리고, 잡을 곳 없는 손은 손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드레스 자락을 쥐고 있어요. 여인은 꿈 속을 헤메고 있나요? 누군가와 춤을 추고 있나요?
걸음을 걷던 칼리가 멈춰선 것은 어딘가에서 엷게 풍기는 냄새 때문이었다. 평소라면 무심코 지나쳤을 엷은 그 냄새에 칼리의 걸음이 멈춰진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피냄새가 나는군?"
칼리는 곧 시선에 닿는 낯익은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고 킁- 하고 코를 실룩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떨어지는 피가 걸어온 걸음이 지나친 바닥을 물들이고 있었다. 칼리의 걸음이 다시 재차 움직이며 계속 피를 흘리며 걷고 있는 상대와 거리를 금새 좁히고, 늙은이처럼 혀를 끌끌거렸다.
"이보게. 자네."
본인과 구면이지 않은가? 칼리는 상대의 허리로 팔을 뻗어서, 거부하지 않는다면 어렵지 않게 안아서 들어올리려는 행동을 해보였을 것이다.
"저번에 유리를 밟으려는 걸 도와줬거늘, 자네. 기어코 발을 다치지 않았나. 그 상태로 걸으면 상처가 덧난다네?"
"거기에다가 누군가 뭘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조금 이상한 말이지만, 기분이 정말 좋거든요."
하고 에덴은 밝게 웃었다. "제가 좀더 운이 좋았다면, 어쩌면 전 요리사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다가 블라디미르가 캐묻는 집요한 질문에, 에덴의 뺨이 한층 더 빨개졌다. "음, 응- 네, 그런 셈이죠. 누구의 이빨자국인지까지는 말하지 않을래요." 하고, 에덴은 얼굴을 붉힌 채로 멍자국을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그리곤 다시 아직 트레이에 놓여 있는, 구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치킨커틀릿들로 시선을 옮겼다.
치킨커틀릿을 한 입 베어물면, 바삭한 튀김옷 아래로 닭고기가 입안에서 녹아내리다시피 부드럽게 으스러지는 게 느껴진다. 미리 시즈닝을 해둔 것인지, 으스러지는 고기에서 흘러나오는 육즙에는 스파이스하고도 감칠맛이 나는 풍미가 한가득 배어 있다. 맥주가 한 캔 옆에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블라디미르가 건넨 말에, 에덴은 다시 그를 돌아보았다.
하고, 에덴은 짐짓 처량한 눈빛을 꾸며서는 리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도 잠시, 옷을 사러 가자는 말에 리아가 처량하게 반응하자 눈을 치뜨며 전혀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
"제가 일할 때 입는 옷도 언니가 지금 입는 옷이랑 별다르지 않은걸요. 그리고 전 언니의 옷차림이 별로거나 그보다 아래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언니는 차분하면서도 와일드하니까, 그런 차림도 예쁘기도 하구요. 오히려 언니 같은 사람이 스타일을 폭넓게 소화할 수 있으니까 부러운걸요."
리아에게 눈길을 고정시킨 채로, 에덴은 말에 열기를 띄어갔다.
"그렇지만, 일할 때 입는 옷은 일할 때 입는 옷이고... 평소에 입는 옷이라는 게 있어서 나쁠 것 없잖아요? 무엇보다, 제가 언니한테 입혀보고 싶은 옷이 있어서..."
열기를 띠어가던 말끝에는 왠지 배시시 웃는 웃음을 덧붙이던 에덴은, 저녁밥의 마지막 숟가락을 뜨다가 리아가 부른 뜻밖의 칭호에 눈을 깜빡였다.
"......?"
숟가락이 공중에 멈춘 찰나. 에덴은 눈을 두어 번 더 깜빡이다가, 마지막 숟가락을 씹지도 않고 꿀떡 삼키고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서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리아에게 쫄래쫄래 따라붙었다.
꿈 속으러의, 갑작스러운 현실의 침범에 몸이 파드득 떨렸다. 나는, 또다시,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당신은 누구죠? 아, 들었던 목소리구나. 익숙한 파장. 기억을 더듬었고, 그래요.
"...칼리, 맞죠?"
불규칙한 숨소리 사이로 빠져나온 가냘픈 목소리가 속삭였다. 내가 이번에도 다쳤나요? 답이 필요없을 정도의 명백한 질문이 피비린내만을 남긴 채 입 속을 떠돌았다. 손마디에서 흰기가 빠져나가고 혈기가 도는 사이, 꾹 눌린 입술은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통제할 수 없는 과거란, 얼마나 지독한지. 생자의 목소리에 과거의 망령이 조금씩 물러가기 시작했다. 숨을 가다듬은 스카는 그제서야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칼리. 상황이 이런지라 잘 있었다고 답하기도 조금 찔리네요. 칼리는 잘 지냈나요?"
목이 턱하니 막힌 것 같았던 목소리보다야 나았지만, 미약한 떨림이 남은 지금의 목소리도 멀쩡하다고 말하기는 어폐가 있었다. 그러하더라도 입가에 띈 미소와 조근조근한 말씨는 언제나와 같이 온화하였다.
처량한 눈을 하는 에덴을 보곤 화들짝 놀란 오니가 움찔하는 반응을 보이더니 휙휙 다급하게 고개를 좌우로 저어보이곤 웅얼거리며 답을 돌려준다. 딱히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과는 다르게 술술 꺼내는 것이 대단하다고 느낄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왠지 그런 말을 듣고 있으면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오묘하게 좋아져서 가능하다면 자주 듣고 싶은게 사실이었으니까.
" ...나는 옷 같은거 잘 모르니까 ... 지금은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응, 에덴이 즐거울 것 같다면 얼마든지 갈래.. 그, 에덴이 뭘 입히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이사준비까지 하려면 조금 바쁠지도. "
딱히 짐은 많지는 않지만, 짐을 옮기고 방을 내놓고, 주소를 옮기고 하다보면 이래저래 할일이 많아지는 것이 이사였다. 하지만 그 바쁨이 그리 싫지는 않을 것 같아서 오니는 조금은 기대가 된다는 듯 차분하게 에덴의 말에 답한다. 다만 에덴이 입히고 싶다고 하던 때에는 어딘가 열기를 띄고 있어 어떤 옷일지 걱정이 되긴 했지만.
" 읏..."
자신의 말에 에덴의 숟가락 질이 멈추는 것을 본 오니가 다급하게 일어서서 쇼파로 향하려 한다. 그러다 물을 마시곤 성큼성큼 다가오는 에덴의 발소리에 허둥지둥 발걸음의 속도를 노리지만 이내 쫄래쫄래 따라잡은 에덴의 말에 얼굴을 홍당무처럼 물들인다.
" 아니, 그게.. 어.. 어... "
쇼파 앞에 멈춰선 오니가 슬쩍 뒤돌아보다 에덴이 코 앞까지 와있는 것을 보곤 당황해선 뒤로 쓰러지듯 쇼파에 넘어진다. 홍당무처럼 붉어진 얼굴은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더욱 더 열기를 머금고 있었고, 어딘가 눈이 반짝이는 듯한 에덴을 보며 침을 꿀꺽 삼킨다.
" 에짱...이란 애칭...좋을 것 같아서...그게, 연인들끼리는 그러는거라고..책에서..."
"요리사를 했다면 좋았을텐데." 라고 말하며 밝게 웃는 엑스칼리버를 향해 쓴웃음을 지었다. 운이 좋았다면- 이라는 말이 걸리는 거겠지. 그리고 볼이 약간 더 빨개진 엑스칼리버를 보고는 "걱정마, 그정도까지 캐묻지는 않을 거야. 오늘은." 이라며 장난스러운 말투로 중얼거렸을까?
" 여기 맥주도 있었으면 좋을텐데. "
느껴지는 맛에 무심코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정말 시원한 맥주 한 컵만 있으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긴 한데... 으음..
굳이 종족을 내세우지 않아도 칼리는 들려오는 숨소리가 불규칙하다는 것쯤은 잘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손이 닿으며 망설임없이 들어올렸을 때 상대의 몸이 떨렸다는 것도 느꼈기 때문에 칼리는 상대에게 보이지 않을 히죽이며 웃는 입매를 제자리로 되돌려놓고 스카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쪽을 택했다. 이름을 부르는 거에 곧바로 입매가 느물거리며 히죽 치켜올라갔지만.
"그래. 본인일세."
처음에 만났을 때도 느꼈는데 생각보다 마른 편 아닌가. 칼리는 히죽이며 입매를 당겨올리고 있는 거랑 다르게 스카를 다시 바닥에 내려주는 태도나 행동은 부드러운 나긋함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칼리의 목소리는 쾌활했다. 단지 칼리는 스카의 발에서 풍겨오는 피비린내에 코를 작게 실룩이며 스카가 진정하면 의무실에 데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들려온 스카의 목소리에 칼리는 다시 히죽이며 입매를 끌어올린다.
"자네가 잘 있었다고 했다면 본인, 자네에게 농담을 못한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을까 싶구려. 처음에 만났을 때도 있었던 일이니 도움이라고 할 것도 없다네."
그와중에 본인 안부를 묻는 자네가 신기하다고 해야할지 고민은 좀 되는구먼- 칼리는 말을 덧붙히며 턱을 문지르다가 혈색이 돌기 시작하는 스카의 손에 자신의 손을 툭 치려다가 이내 장난스레 손을 내밀어보였다.
"본인은 늘 잘 지내고 있네. 그 발은 치료하는 편이 좋을 것 같소. 자네는 어찌 생각하는가? 치료하겠다면 본인이 에스코트를 하겠소."
소파 위로 자빠지다시피 주저앉은 리아의 앞에, 에덴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에덴의 눈에 담겨 있던 열기가 다시금 요동친다. 어쩌면 이 소녀에게는 사랑을 쏟아내는 데에 능숙한 게 아니라, 사랑을 마음속에 붙들어매어 놓을 줄을 모르는 것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기도 하다. 촛불에 비친 보석 같은 빨간 눈을 반짝이며, 소녀는 조심스레 리아의 뺨으로 손을 뻗었다. 리아가 싫어하거나 떨쳐내지 않으면, 그녀의 손은 리아의 뺨을 부드럽게 싸쥘 것이다.
"귀여워요."
참을 수 없는 사랑이 흘러나와, 하얀 머리 소녀의 얼굴에 미소로 맺혔다.
"연인이라는 그 말이 정말정말 좋아요."
그리고 에덴은 무릎을 들고는, 리아에게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리아가 피하지 않는다면- 리아의 입술에 얇은 입맞춤을, 애정을 담아 남길 것이다.
에덴은 쾌활하게 농담하듯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녀의 왼손에는 두터운 보호장구가 끼워져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중증 광석병자였다고 했지. 왼쪽 팔이 기형적으로 집중적으로 침식된. 지금껏 그녀는 음식을 만들 때 보호장구며 방호조치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그녀가 만든 음식에 허용량을 초과하는 오리지늄이 들어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며, 그녀의 음식을 먹고 탈이 난 사람도 없었지만... 기분이라는 게 있으니까. 오리지늄 감염은 누구도 영원히 피할 수 없는 병이라고는 하지만, 전염병이니까.
"맥주라... 숙소 냉장고에 있긴 한데, 다 주인이 있는 것들이라 함부로 마실 수는 없겠죠~..."
하면서, 에덴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 맥주들 중 몇 개는 내가 주인이니까요." 하고, 에덴은 캔맥주 두 캔을 꺼내서 블라디미르의 앞에 하나를 놓아주는 것이다.
"그러면 이건 입막음 비용이라고 할까요? 앞으로도 좀 살살 물어봐 달라는 정도의 뇌물 같은 느낌으로..."
뺨을 감싸며 자신을 귀엽다고 말하는 에덴의 행동에 그저, 더욱 더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는 오니였지만 결국은 에덴에게 시선을 향한 체 작게 한숨을 내쉰다. 정말이지 이럴 때는 당해낼 수가 없다며, 정말로 자신은 에덴의 손 위에 올라가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마는 오니였다.
" ...귀여운 건 에짱인데....읏... "
물론 지금 객관적으로 두사람을 봤을 때는 오니쪽이 더 귀엽다고 할 수 있었겠지만, 오니는 마지막으로나마 오기를 부려보는 것이었다. 물론 그 오기가 얼마나 갈 수 있을지는 오니로서는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뺨을 감싼 체 전해져오는 그 말은 오니를 함락시키기에 충분했다. 특히나 에덴의 미소라면 오니로서는 막아낼 수 없는 강렬한 무언가였다.
"... 걱정하지마, 에짱. 그 바램은 지금 이순간에도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
살며시 자신의 입술에 내려앉았던 에덴의 입술 감촉을 기억하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던 오니가 천천히 눈을 뜨며 작게 중얼거렸다. 에덴의 눈에 담긴 열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 열기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오니는 잘 알고 있었기에 천천히 숨을 뱉어내고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 자, 이리와 - 에짱. 너에게 내 사랑을 줄게. "
에덴이 오니의 제안을 거절하고 물러나지 않았다면 오니는 에덴의 목을 감싸안으며 오래도록 입을 맞추었을 것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을 몰아내고. 과거는 과거에, 현재는 이곳에, 미래는 미래에. 환상을 환상일 뿐. 나를 해칠 수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어.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것마저도 언젠가는 익숙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환각들이 익숙해지지는 않더라도 환각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익숙해질 수 있었다. 과거는 과거에, 현재는 이곳으로, 미래는 미래에. 스카는 다시 한번 되뇌었다.
"울림이 익숙하더라고요. 그래서 아, 칼리인가 보다- 했죠."
따라오는 웃음은 지금의 상황을 덮고 싶기라도 한 것인지 가벼웠고, 나긋하였다. 지금의 상황은 스카에게 있어서 날라갈 듯 가벼웠으며 놀라울 정도로 익숙한 종류의 것이었으나, 타인들에게 어떤 식으로 비칠 수 있는지는 알았다. 친절한 이들은 쉽게도 친절을 나누어주었다.
"그 정도였나요. 지금이 아니었다면, 그래도 잘 지낸 편이라고 이야기했을 텐데요. 그리고- 도움은 무슨 상황에서도 도움인 법이에요. 그러니 감사인사를 받아주시지 않겠어요, 칼리?"
짓고 있던 미소가 의아함에 굳어졌다. 고민이 된다는 말에 스카는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기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설핏 기울였다.
"신기할 정도였나요?"
자신에게 당연한 일이 신기하다는 취급을 받았을 때, 스카의 반응이 딱 그러하였다.
"희소식이네요. 발은, 안그래도 의무실에 들렀다 가야 하나 고민 중이었어요. 칼리, 에스코트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부드럽게 말려올라간 입매 사이로 풍등이 울리듯, 청아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답레를 올리고 스카주도 이만 자러 갈게요. 답레는 편하실 때 주세요, 칼리주. 첫 이벤트이니만큼 깨어있고 싶었는데 오늘은 조금 피곤하네요. 다들 좋은 밤 보내십셔!
이 사람의 곁에 함께 있고 싶다는 열망이 언제 이런 모습으로까지 피어올라 버렸는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이런 모습으로 피어날 수 있어서 기쁘다. 라고, 에덴은 생각했다.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좋아하는 이들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다면, 이런 몰골로 억지로 생명을 유지해오던 게 겨우이던 나는 어쩌면 마침내 행복한 삶을 손에 넣은 게 아닐까. 그러나 에덴은 더 이상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사랑이 머릿속에 피워올린 열기가 가득차서, 뭔가 더 이상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가 않았다.
"응."
옅은 미소를 지어보이는 리아에게 에덴은 조심스레 다가붙었다. 그냥, 본성이 시키는 대로, 리아가 이끄는 대로... 있는 대로 리아에게 몸을 기대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입맞춤.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해 안달인 것처럼 잔뜩 입맞추고 나서, 에덴은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리아의 품에 안겼다.
"언니가 원하는 만큼... 나를 안아줘요."
두 사람의 밤은, 그렇게 흘러갔다.
/ 막레를 하고 싶으시면 막레로 받으셔도 되고, 더 잇고 싶으시면 시간이 지난 뒤에 아침을 배경으로 한다던가 해서 이으셔도 돼요 uu
최근 소문에 따르면 컬럼비아의 밑바닥에선 한창 마약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자유로운 자본주의 도시에서, 하류층에게 마약이 성행하는것은 그다지 드문것이 아니다. 다만 이상한것은 이번에 새로이 발견된 마약 브로커가 리유니온이라는 것. 그리고, 그 마약에서 오리지늄 결정들이 발견되었다는 것...
"그것의 소재가 여기란 말이지."
옥상에서 상황을 지켜보고있는 도미닉이 중얼거렸다. 지상에서 대기하고 있는 대원들이 보였다. 컬럼비아의 바람은 아직도 찼다. 이번의 의뢰는, 그야말로 한탕 땡길수 있는 의뢰. 고위층에서부터 다이렉트로 찔러져 온 의뢰이다. 이번 일이 끝나면 저녁엔 피자라도 사먹을 수 있겠지.
"뱅가드가 먼저 투입되고 가드와 디펜더가 그 뒤를 따라가. 나머지 근거리와 원거리 대원은 그 엄호와 잔당을 맡는다. 단 찰리는, 언제나처럼 내 경호로 붙어있고." "찰리~!"
잔당처리를 하기로 한 라이레이는 시야가 환히 보이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 투입지의 상황을 한 눈에 대략적으로 파악하는 중이었다. 안쪽에 사람이 드글거리면 조금만 찔러도 튀어나올 테지만, 마약을 제조하는 시설에 그만큼의 인원을 둘 리는 없다. 조무래기 조금에 정예 서넛 정도가 저 시설의 전력으로 파악하면 충분했다. 리유니온도 전력으로 마약 사업에 뛰어든 것은 아닐테니 과잉투자를 하지는 않았겠지.
"이쪽은 아이다. 지정된 위치에서 대기중."
무전기로 짧게 자신의 근황을 알리고는 담배를 한 대 입에 문다. 다 피우기 전에 일이 터질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맨 앞으로 달려나가는 익숙한 뒷모습을 바라보던 칼리의 어깨에서 흐르듯이 털이 복슬하게 달린 코트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에 칼리의 귀가 뒤로 까딱 움직인다. 옷감이 바닥에 닿자마자, 칼리의 양손이 베는 것에 치중된 장창을 조립하고 사냥감을 쫒는 늑대처럼 전장을 향해 달렸다.
엑스칼리버는 왼손바닥 한가운데에 톡 튀어나온 고리에 새끼손가락을 걸고, 힘차게 잡아당겼다. 날이 양쪽으로 서 있는 기하학적이고 매끄러운 형상의 환두대도가 그녀의 손바닥 한가운데서 주욱 뽑혀나와서, 그녀의 손에 마치 신체 일부인 것처럼 편안하게 들렸다. 오리지늄 특유의 광택을 띠고 있는 은빛의 검신 위에, 붉은색의 빛무리가 아롱아롱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음껏 달려도 좋아요, 언니. 어디까지건 따라갈 테니까."
엑스칼리버는 사무소의 가드들 중에서도 가장 앞에 서서, 뱅가드의 뒤를 바로 따라 투입되는 가드였다. 그녀는 목에 걸려 있던 마스크형 방독면을 끌어올려 착용했다. 달려나갈 준비를 한 채로 그녀는 핸즈프리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창고 안에 갑자기 오니와 뇌랑이 불쑥 나타나자 화들짝 놀라는 적들. 붉게 떠오른 안광과 그들은 술렁인다. 과연 리유니온이라는 걸까? 그 특유의 흰 후드와 가면을 쓰고 마약을 제조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아주 바글바글한 숫자까지...
"니가 보고 있는게 전부야. 진입경로 제외하고 문 두 개. 너희들이 잘 틀어막으면 도망칠 일은 없을테니까, 그것보다는 묘한 아츠로 이상한 움직임을 하는 녀석을 조심해."
알트에게는 그런 답신이 들려온다. 그리고 그 말대로, 바로 아츠를 사용하는 적이 몇몇 보인다. 모습이 사라지고... 다시 나타난다. 상황파악도 빠르지. 바로 옆에 난 문으로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점멸이다. 그들을 막을 수 있는건 스페셜리스트 정도로 보인다.
"그래. 지금. 가드는 전부 돌입해서 쓸어버려. 그게 너희 할 일이잖아."
근데 왜 하필 롱고미니아드냐. 소장은 시덥잖은 생각을 하면서 지령을 내렸다. 그 때, 리유니온들의 손바닥에서 붉은 전류가 지직거린다. 리유니온의 장점은 무수한 감염자를 토대로 한 압도적인 아츠술사 점유율. 그리고 그걸 보여주려는 듯 각자 다른 아츠를 빚어내어 공세를 펼치며 가드와 뱅가드를 저지하기 시작했다. 비단 아츠술사 뿐만이 아니다. 각자 가지고 있던 무장을 챙겨들고 아르고에게 덤벼들기 시작한다.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아마 머릿수 자체는 많겠지만 제대로 훈련받은 녀석들은 아닐거야.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리타, 긴장하지 말고 그냥 썰어버려. 우리 팀은 하나하나의 전력이 중요해."
그리고 그런 주눅든 리타를 발견한건지, 바로 근접전투원이 달라붙어 쇠파이프를 그녀에게 휘두르는 것이다.
"아이다와 아브는 그 자리에서 서포트한다. 팀에는 전투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녀석이 많아. 너희들 어깨가 무겁다."
그 둘에겐 전장의 상황이 훤히 보인다. 다만 수가 많다. 신중하게 힘을 다뤄야 할 듯 했다.
라이레이는 그 자리에서 오리지늄 스테프를 문 쪽으로 겨누어 아츠를 횔용하기 시작한다. 담배를 물면 다 피기도 전에 일이 터진다는 징크스가 오늘도 들어맞은 셈이었다. 큰 도움 없이 작은 서포트 만으로도 오퍼레이터들의 능률은 크게 올라가기 때문에, 라이레이의 아츠는 리유니온의 녀석들을 직접적으로 죽이기 대신 가볍게 공중으로 띄워 실질적인 움직임을 하지 못 하게 만드는 것으로 끝났다.
오니가 날뛴다. 창이 한 번 휘둘러지면 적이 최소 둘 셋은 나가떨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수가 너무 많다. 롱고미니아드는 사각에서 날아온 아츠를 맞아버린다. 강화된 신체 덕일까. 당장은 그렇게 아프지는 않지만 확실한 상처로 남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저지하듯 엑스칼리버가 후방에서 칼을 휘두르자 날카롭게 벼려진 아츠, 새빨간 아츠의 참격이 날아가 적들을 순식간에 토막냈다. 그 틈 놓치지않고 칼리의 번개가 창고 안에 번뜩이며 내려친다. 창대를 바닥에 내리꽂음과 함께 이는 굉음이었다. 그것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던 적은 거대한 얼음의 검신에 그저 썰려나갈 뿐이다. 그건 사블랴였다.
"큭, 젠장...!"
그리고 문 손잡이를 이제 막 붙잡은 리유니온이 단검을 맞고 쓰러졌다. 그 뒤를 따르던 리유니온은 겁을 먹은건지, 아니면 복수심이 고개를 든건지 알트에게 덤벼들기 시작한다. 점멸의 거리는 확실히 짧다. 하지만 빨랐다. 사라졌다 나타나고를 반복하며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던 적은 알트의 머리 위에서 나타나 단검을 내려찔러온다. 그리고 그 광경이 도나에게 보인다. 적은 아직 도나를 눈치채지 못한듯 싶었다.
"아가씨, 보기보다 꽤 하는데. 응?!"
근접전투원은 낫의 궤적을 피하지 못했다. 팔에서 흐르는 피. 그것을 감싸쥐며 악당같은 대사를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까보다 더 호전적인 모습으로 쇠파이프를 들고 달려드는 전투원들. 아브의 지원에 나가 떨어지는 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낫의 큰 궤적을 요리조리 잘도 피하며 접근해온다. 그리고 이내 그 중 하나가 곤봉을 재빨리 휘두른다. 근거리에서 낫은 반응하기 어렵다!
각자의 활약 덕인지 돌입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적들은 벌써 절반정도가 비어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이 땅이 요동치는 느낌...
쿵 쿵 쿵 쿵-
"뭐가 이리 시끄럽지! 어엉?!"
그리고 이내, 창고 안쪽에 달려있던 문이 날아가면서 망치와 방패를 각각 한 손에 든 거한이 튀어나온다. 그는 뭐가 보이긴 한지 싶은 단단한 헬멧의 안면부로 실내를 한 번 주욱 훑었다.
"이... 빌어먹을 자식들은 뭐야!!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온거냐! 이 새끼들!!"
장비의 탓인지, 아니면 거친 언동의 탓인지. 그가 뿜어내는 위압감은 척 보아도 방금 상대했던 어중이 떠중이 이상이었다. 아마 이곳을 관리하는 간부인듯 싶었다. 그리고 그는 이내 방패를 앞세우고 망치를 어깨에 붙들더니 무슨 황소처럼 돌진하기 시작한다. 하나같이 무거운 장비를 갖췄는데, 그걸 버티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말도 안되는 속도였다. 검기를 뚫고, 번개를 뚫고, 저격탄을 뚫고. 그리고 전열에 있던 칼리에게 몸뚱이 채로 방패를 들이받는다. 칼리는 버티지 못하고 한 번에 자세가 무너져 바닥에 나뒹군다.
"한 번에 뭉개주지!!!"
빠르게 망치를 양손으로 바꿔잡은 거한이 망치를 높게 치켜들었다. 이대로면 칼리는 이자리에서 곤죽이 될게 분명했다.
칼리의 전신에서 뇌격을 쏟아낸 뒤의 남은 전류가 흐르듯 튀어올랐다. 굉음에 의해 동족보다 지나치게 좋은 청각이 얼얼하게 울려왔지만 칼리는 주변을 둘러보기보다, 창고 안쪽에서 등장한 사내의 모습에 창대를 바로 고쳐쥐고 그대로 다시 뇌격을 휘감은 창대를 휘둘렀으나-
칼리는 스스로가 단번에 균형을 잃을 정도로 단련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중장비를 입은 채 달려드는 사내와의 충돌했고 칼리의 몸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핫-! 칼리는 실소하면서 나뒹구는 속도 그대로 다시 본래대로 자세를 고친 뒤 사내에게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은 뇌격이 휘감겨져 있는 창을 내지르지 않고, 짧게 쥐고 그대로 휘둘렀다.
저쪽에 나타난 중갑기병 같은놈. 하지만 거기에 신경 쓸 여유는 없다. 최적은 기습 이후 런. 그것이 불가능할때를 대비한 다대일의 전술과 체술. 하지만 그런 상황을 상정하고 대응하기 위한거지 다대일을 노리고 거기에 능력치가 몰빵됐다는 소리가 아니다. 가능하면 이런 상황을 길게 끌고 싶지 않다는게 본심.
"흐음.."
점멸의 난사와도 같은 움직임. 아무래도 시간의 제약은 없는거 같다만 무장이 빈약한것이 활로. 나는 그림자를 최대로 전개해 사방으로 거미줄마냥 펼쳤다. 비록 거리의 문제가 있어도 내 주변을 감싸는것 정도는 하고도 남는다. 진짜 거미줄처럼 끈적이진 않더라도 그것은 공격해오는 상대의 공격을 막음과 동시에 형태를 바꿔 속박하려 할것이다.
침착해, 도나. 적은 아직 도나를 눈치채지 못했고, 도나는 운 좋게 적이 나타나는 순간을 두 눈에 담았어. 있는 힘껏 도약하면 닿을 수 있는 거리야. 하지만 도나가 달려들어서 단검으로 적을 공격한다고 해도, 그대로 내리 찔러오는 관성 때문에 알트 스승님이 다치고 말 거야. 공중에 있는 적을 밀어낼 수는 없어. 그렇다면 도나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야. 몸을 날려서 알트 스승님을 밀쳐내는 거야. 도나는 다쳐도 괜찮지만, 스승님은 다치면 안 되는 거야.
엑스칼리버는 잔챙이들을 상대하던 검을 거두었다. 뭔가 거슬리는 게 나왔어. 속으로 혀를 차며 엑스칼리버는 빠르게 전장을 가로질러 잔챙이들에게서 그 거대한 보스에게로 다가섰다. 단숨에 칼리를 들이받아 자세를 무너뜨린 거한의 옆으로 빠르게 파고들어간 엑스칼리버는 오른손에 쥐어져 있던 새빨간 검을 쳐들었다. 검에 어린 붉은 빛이 갑자기 강해진다 싶더니, 퍼엉 하는 귀가 멍멍해지는 굉음과 함께 강력한 섬광을 거인의 얼굴로 쏟아냈다.
저런 타입과의 전투는 후열에서 봐야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진다. 헬멧만 아니었어도 아츠로 눈을 찔러서 뇌를 휘저어 줬을 텐데. 너무 멀리 있어서 장비를 벗기는 등의 정교한 행위는 우선순위가 떨어진다. 그 대신 아츠로 상대의 오금을 강하게 찍어눌러 다리를 부러트리는 동시에 휘두름의 궤적응 엇나가게 해보자
무슨 무식함일까. 망치의 내려침에 검에 두른 얼음이 단 번에 박살이 나버리는것이다. 잠시 빠져서 다시 두를 필요가 있었다. 더해서, 사블랴는 그 충격을 온 몸으로 받으며 밀려난다. 우르수스라 그정도에서 멈춘 것일테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이만한 방어를 해내지도 못하고 대신 곤죽이 되거나 나가떨어졌겠지.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거한은 방패를 휘둘러 동시에 사블랴와의 거리를 벌렸다. 칼리 공격은 거한에게 닿았다. 하지만 유효타라기에는 지금의 공격은 얕다. 칼리의 번개 아츠는 공격적인 편이었지만 아마도 지금의 감각... 장비가 아츠를 방어하고 있는 듯 했다. 롱고미니아드는 완전히 등을 잡았다. 그리고 배치를 이탈하고 달려드는 지금 이 순간.
"야, 누가 좀 말려!"
듣기 드문 소장의 언성높은 목소리. 바로 그 순간에 리아는 망치를 제대로 얻어맞고 저 벽면으로 나가떨어졌다. 달려드는 것을 휘둘러 친다. 마치 야구와도 같았다. 또한 타격은 참격과는 달라 신체의 내부에 대미지를 축적한다. 리아는 신체강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폭탄을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오냐, 다음은 너다. 그 입, 곧 닥치게 만들어주지...!"
거한이 떨어진 오니를 마무리하려 성큼성큼 다가갔다.아이다의 통제는 들지 않는다. 아마 장비 자체가 아츠에 대한 저항력을 띄고 있는듯 싶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염동력으로 직접적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것은 아주 힘이 드는 일이었다. 게다가 저렇게 무거운 사람이라면... 하지만 무기에는 그런 효과가 없는건지 아까의 종횡무진한 기색이 없었다. 그 증거로 거한은 지금, 망치를 양 손으로 붙들며 몸을 이끌고 가고 있었다. 방금과는 달리 상당히 무거워보인다. 엑스칼리버의 섬광은 도통 들어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옆에선-
"뭐, 뭐야 이 앤?!"
공중에서 공격이 막힌 것 + 갑자기 도나가 뛰어든 것에 당황한 대원이 크게 당황한다. 잔뜩 흥분한적이 당황하면 하는 일은 한가지다. 마구잡이로 공격하는것. 리유니온은 갑자기 나타난 적을, 도나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그것은 도나의 어깨를 찌른다.
"하 하 하... 해독제가 무슨 소용이야...?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죽기 아님 살기인데!"
일너 전투에 익숙치 않은 리타의 판단은 느렸다. 그녀는 이내 접근을 허용해 공격당했다. 곤봉은 생각보다 아프다. 하지만 거기서 멈춘다면 더 아픈꼴을 보게 될 것이다. 아직 썰려나가지 않은 적은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다시 리타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정예가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의 무장을 갖추고 나타날줄은 몰랐는데. 리유니온이 세력확장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아츠는 쓸모없이 거한의 몸에 직접적으로 확용하는 대신 대상을 바꾸어, 이미 쓰러진 리유니온들의 무기를 들어올렸다. 끝이 뾰족한 온갖 날붙이를 장갑이 얇은 관절부위를 노려 쏜다.
출구쪽은 이 녀석 하나. 방금의 공격으로 도나는 어깨부상. 그러나 이 녀석 하나에 둘이나 붙어있기엔 아무리 그래도 상황이 좋지않다.
"맡긴다."
나는 도나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거한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접근했다. 보아하니 방어구가 아츠 저항이 강해보인다. 현재 내 물리 장비로는 뚫기 힘들고. 위력을 높이는 아츠를 두르는 방식은 저항력에 막힐터다. 나는 그림자를 손형태로 만들고 최대한 위력을 집중하기 위해서 땅을 짚었다.
"네 무기, 방어구마냥 아츠 저항력은 없지?"
무기를 양손으로 붙들고 있는것이 그 증거, 그리고 그 덕에 방패도 쓸 수 없다. 나는 그림자의 손으로 거한의 무기를 치덕치덕 붙잡아 최대한 움직임을 봉쇄하려고 했다.
"상대의 방어구는 아츠 저항력이 높아. 아츠에 의존하지 말고 냉병기로 직접 타격을 노려."
물론 기본적인 방어구의 질량이란게 있겠지만, 여러방향에서 빈틈을 노린다면 쉽게 막지 못할터. 나는 주변에게 그렇게 말하며 살짝 도나쪽을 살폈다.
사블랴가 공격을 막은 덕분에 칼리는 그나마 멀쩡하게 일어날 수 있었는데, 그 뒤 거한의 공격에 나가떨어진 리아의 모습이 칼리의 이성이 내려가게 만들었다. 무리에 해를 입히고 무리의 일원을 상처입히는 걸 본 이상 칼리의 이성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아츠가 통하지 않는 장비라면 아츠를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장비에 한정되어 있는 거면 빈틈을 노리면 되지만, 이성이 내려가버린 칼리는 늑대가 아닌 포악한 이리에 가까웠다.
"ㅡ어이. 등을 보이면 쓰나."
삐그덕거리지만 칼리의 몸이 높이 뛰어올랐다. 창대를 짧게 쥐고 칼리는 위에서 급소를 노리고 사냥감을 물어 떨어트리려는 것처럼 움직여서 거한의 목을 팔로 감아 매달리려했다.
"아츠가 안통하면 통하게 만들어드리겠소."
무슨 짓을 해서라도 말일세. 칼리의 송곳니가 번뜩이며 드러났고 칼리는 짧게 쥔 창을 내리꽂는다.
죽기, 아님 살기. 곤봉을 얻어맞은 리타가 몸을 휘청이며 뒤로 물러섰다. 생각을 해야한다. 가장 효율적으로 적을 도려낼 방법을. 가깝게 쥔 낫은 사정거리가 줄여 근접한 적을 쳐내기에 좋았으나 한 번에 많은 사람을 상대해기엔 벅차다. 피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렇다면...
" 죽기 아님 살기라뇨... 어차피 그쪽한테는 죽기 밖에 없을텐데... "
리타가 다시 한 번 가깝게 붙은 전투원들을 향해 넓게 낫을 휘둘렀다. 그들의 목을 베어낼 작정으로. 달려드는 놈들의 수가 너무 많으니, 그녀는 가능한 범위를 넓게 그리고 가깝게 잡으려 노력했다. 너무 가까운 상대는 발로 걷어 차서라도 거리를 벌려야한다. 최대한 썰어내고, 최대한 베어내라.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리타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가능한 근접 전투원을 코너로 몰아, 공격의 효율성을 추구하려 한 것이다. 그녀에게 거한을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없다. 실력이 미흡한 만큼, 그 댓가는 짊어지고 가야겠지.
도나가 적을 단숨에 처치하고, 알트의 속박이 시작된다. 사방에 퍼져있는 그림자. 그것이 곧 손이 되어 중갑방호복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리아는 끝까지 공격을 포기하지 못한채 거한에게 달려들어 그 몸을 붙잡는다.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려는지 물에 들어온것마냥 느릿하게 몸을 움직이던 거한은-
"크윽!! 뭐냐 이건! 어떤 놈이야!!"
이내 멈춘다. 그리고 마치 합이라도 잰듯이 들어오는 칼리. 늑대는 거한에게 매달려서는 그 틈으로 창을 찌른다. 송곳니로 찌르듯 푹, 하고 깊게도 들어간다. 칼리를 때어내려는듯 머리 위로 손을 올리는 거한.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 아이다가 떠올린 날붙이들이 날아들기 시작한다. 방호복의 틈사이사이를 절묘하게 노려 뾰족한 날붙이들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엑스칼리버. 검은 붉게 타올라 위협적인 기색을 보인다. 그 오리지늄 검이 가르지 못하는 것은 없다- 라고 말하는듯 틈새로 찔러넣자 거한이 드디어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크하아악!! 이...새끼들...!"
그 안에는 어떤 괴물이 살고있는걸까. 방호복이 진동하며 비명지르는 그 때.
"ㅡ얼어."
어떻게 된 일일까? 거한을 중심으로 갑자기 냉기가 서린다. 또한 몸에 붙어있던 리아, 칼리, 그리고 엑스칼리버가 얼어붙기 시작한다. 빨리 떨어지지 않는다면 위험할 듯 싶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리타와 대치하고 있던 리유니온 전투원 하나가 갑자기 후드를 벗어 던진다. 낫으로 꽤나 얻어 맞았는지 피를 흘리고 있는 필라인 여자가 그 안에 있었다.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남아 있는 그 전투원. 그녀는 대체?
"하아, 하아... 이럴 줄 알았어. 이딴 녀석들 밑에 들어오는게 아니었는데!" "너 이 자식..." "시끄러워."
그 말을 끝으로 거한은 완전히 얼어붙어, 그 자리에서 동상처럼 굳어버렸다.
"...이판 사판이네."
정말 죽기 아님 살기야. 리유니온?은 아르고의 대원들을 한번씩 슥 훑어보더니, 책상 위에 있던 물통들을 가드와 뱅가드, 스페셜리스트를 비롯한 근접 전투원들에게 던진다. 이내 물통이 펑하고 터지며 얼음파편들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접근전? 아니면 거리를 두고? 거한이 얼어붙고 모습을 드러낸 여성. 생각보다 사정거리는 있어보이나 지금 공격엔 왜인지 물통을 사용했다. 거한은 피를 많이 흘렸기에 수분으로서 쓸 수 있었던건가?
"부상을 입었다면.."
장기전으로 몰아붙일까? 아니, 저 녀석들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겠지. 어차피 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게 하려면 접근뿐. 나는 그림자로 나를 휘감고 그대로 공격을 흘리며 그림자가 닿는 사정거리로 접근하려고 하였다. 쇠사슬을 쓰기엔 얼어버릴 위험이 크다.
'측면, 노리는건..'
공격을 흘려도 데미지는 남는다. 접근하는데 성공했다면 나는 방어용으로 둘렀던 그림자를 풀며, 지면의 그림자들을 솟게해 여자의 발밑에서부터 가느다란 송곳처럼 꿰뚫어 데미지와 함께 겸사겸사 움직임 봉쇄를 노리려했다. 아츠에 대한 정보가 적다. 다소의 피해가 나오더라도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마무리 짓는다.
모든 공격들은 짜맞춘 것처럼 이어졌고, 늑대가 급소를 물어뜯을 타이밍또한 잘 맞아떨어졌다. 칼리는 자신에게 손을 뻗으려는 거한의 손을 피하려고 하며 깊게 파고 들어간 창대를 붙잡은 뒤 그대로 비틀어서 다시 깊게 쑤셔넣으려했다. 거한이 무릎을 꿇을 때까지, 칼리는 거한에게 매달려서 떨어지지 않았고 그것은 거한을 중심으로 냉기가 퍼져나갈 때까지 끈질기게 이어졌다. 창대가 부러지지 않을까 싶을만큼 칼리는 쑤셔넣은 창대를 부여쥐고 있다.
거한이 완전히 얼어붙어서 냉기가 옮기 직전 칼리는 그제야 무릎을 꿇은 거한의 어깨를 밟고 몸무게를 실어 창을 뽑아냈다. 스파크가 튀는 것때문에 길게 땋아내린 머리를 고정한 머리끈이 아슬아슬해보인다. 필라인 여성의 말과 함께 던져진 물통이 폭발하며 얼음파편이 쇄도했지만 칼리는 뱅가드라는 포지션답게 필라인 여성이 던진 얼음파편을 창을 한바퀴 크게 돌려서 박살내려하면서 여성에게 빠르게 접근한다.
이성이 내려간 칼리의 움직임은 포악하고 난폭하다.
"작전속행하겠소."
무전기를 통해 상황을 듣고, 혹은 보고 있을 도미닉과 여성에게 통보하는 것처럼 칼리는 으르렁거리며 창을 휘둘렀다.
검을 찔러넣은 거인의 몸에서 심상찮은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자마자 엑스칼리버는 깊이 박힌 장검을 강하게 비툴며 잡아뽑았다. 상처에서 튀어나온 피가 몸에 묻을 새도 없이 엑스칼리버는 빠르게 몸을 뒤로 날려 알 수 없는 위협으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거인이 얼음동상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시선을 돌리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필라인, 그리고 필라인이 던진 물통에서 쏟아져나오는 얼음조각들. 엑스칼리버는 왼손을 치켜들어 에너지 막을 형성해 얼음조각들을 일부 흘려냈다. 그리고는 몇 발 정도는 맞을 각오를 하며, 에너지막을 빠르게 걷어냈다. 엑스칼리버의 검에 서린 에너지가 순식간에 하얗게 달아오르나 싶더니,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이름 모를 필라인에게 강력한 섬광이 뿜어진다.
엑스칼리버의 동작은, 필라인이 대처를 하거나 도망가기 전에 무력화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빨랐을까?
리타가 어질이는 머리를 짚었다. 머리를 제대로 가격당한 후, 이마 쪽으로 피가 흐르는 것을 보니 어딘가가 찢어지기라도 한 모양이다. 머리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듯 눈가를 찌푸리며 주변을 경계하던 그녀의 눈에, 후드를 벗어던지는 필라인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필라인 여성이 피를 흘리고 있다. 이는 즉슨, 리타의 독에 제법 노출이 되어있는 상태라는 뜻이리라. 조금만 버티면 쉽게 제압될 지도 모른다.
리타의 뒤쪽으로는 단단히 얼어붙은 괴한이, 앞으로는 쇄도하는 얼음 파편들이. 안타깝게도 방어구 따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터라, 방어라곤 한쪽 팔로 얼굴 부근을 가리는 것이 전부였다. 어차피 이미 곤봉으로 두들겨 맞은 상황이니 사릴 것도 없다. 그녀는 파편에 몸이 베이는 것을 감수하며, 다시 낫의 손잡이를 길게 잡아 필라인 여성을 향해 낫을 내리치려 했다.
거인 상대할 때 멀리서 CC기를 걸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CC기를 건 다음에 엑스칼리버가 천장을 그 거인 머리 위로 무너뜨리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그걸 생각 못했네요. 일단 거인이 입은 방어구는 루팅해가야지... (이렇게 말해두면 엑칼주가 잊어먹어도 누가 주워가주겠지)
음.. 그리고 아르고 사전에 생포는 없는 걸로. 생포하려고 실명 걸었더니 마격들을 꽂아버리셔 yy
파편이 사방팔방으로 튄다. 아이다야 염력으로 치워버렸다지만 저정도 거리에서 폭탄처럼 터진 파편을 전부 피하기란 쉽지 않다. 근접대원들은 전부 파편이 몸을 스치고, 때론 때리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대미지는 그리 크지 않다. 다만 칼리, 그녀만은 파편을 상쇄하려 들며 달려든다. 그리고 이내 접근해서 휘둘러진 창.
"그딴건 안 통해!"
허나 너무 직선적인 공격이다. 어느새 손에 쥔 무기로 리유니온?은 그 창을 빗겨낸다. 아니, 잘라낸다! 헌데 그 손에 있는 무기, 날붙이 같은게 아니다. 그것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500ml짜리 생수병. 그것이 하나의 날붙이라도 되는 듯이 창 끝과 마주쳐 그것을 잘라내고 있었다. 다만 아주 약간이라 아직 제기능은 할 수 있다. 필라인 여자는 그것을 무기로 마저 리타의 공격을 읽은 듯이 낫을 날렵하게 피하고 서로의 발 밑에 물을 뿌린다. 금새 얼어붙어 판도라의 움직임을 봉하려 하고, 밑에서부터 솟구치는 알트의 그림자를 막아낸다. 그리고 마지막, 엑스칼리버의 접근을 막아내면. 필라인 여자는 생수통을 엑스칼리버에게 흩뿌린다. 그리고 그것은 곧 엑스칼리버의 그것마냥 칼날이 되어 엑스칼리버에게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크읏...!"
하지만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 칼에서 뿜어져나온 섬광과 폭음을 대처하지 못하고 받아 팔로 눈 앞을 가리며 비틀거린다. 방금의 거한마냥 보호장구가 없었기 때문에 필라인은 그대로 노출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된거 전부 얼려주겠어..."
그래. 그녀는 리타의 독에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이판사판인걸까. 눈도 보이지 않는 필라인 여성은 갑자기 자세를 낮추고 땅바닥에 손을 짚는다. 그러자 흔들리는 지면.
쿠구구구...
대원들은 어느샌가 발 밑에 찰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듣는다. 침수였다. 배수구에서 물이 역류하며 흘러나와 창고를 점점 채우고 있는것이다. 그리고 이윽고-
"얼어버려!"
물에서 얼음 기둥이 솟구쳐오르며 창고 안에 있는 대원 전원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한다. 그 뿐 아니라, 발 밑에서 냉기가 느껴진다. 방금의 거한처럼 얼어가고 있는 듯 싶었다. 기둥은 아이다가 서있던 난간을 무너트린다. 더이상의 서포트는 무리인듯 싶었다.
이대로 있으면 발부터 얼어서 기둥을 피하는것은 불가능. 하지만 이렇게 광범위 공격을 할때는 어쩔 수 없이 안전한 장소가 확정적으로 한 곳. 생기기 마련이다. 나는 그림자를 기둥처럼 솟게해 최대한 위로 올라간뒤 거기서 다시 점프하고, 몸에 남아있던 미세한 그림자를 늘려 그대로 천장에 착지했다. 이곳이 창고였기에 아무리 높아도 이 정도면 닿을터. 그리고 착지와 동시에 그림자로 발을 고정해 천장에 매달린다.
이런다한들 솟구치는 거대한 기둥을 피하는건 어렵겠지. 보통은 말이야. 내가 점프한것은 리유니온으로 추측되는 여성의 바로 위다. 녀석은 삶을 포기한게 아니다. 그렇다면 이 공격에서 확정적으로 안전한곳은 바로 그녀의 자신의 영역.
"...."
이 거리에서 그림자는 쓸 수 없으므로 나는 천장에서 단검을 두자루 꺼내 숨통을 끊을 생각으로 날렸다. 설령 막혀도 상관없다. 이미 독이 돌고있는데 지금의 대기술까지, 이미 체력은 한계일테고 이걸로 죽지않는다면 여기서 시간을 끌어주지.
엑스칼리버의 대응이 한 수 빨랐다. 얼음 칼이 엑스칼리버에게 꽂히는 것보다 필라인이 시력을 잠깐 잃는 것이 먼저였고, 엑스칼리버는 있는 힘껏 몸을 날려 자신에게 날아드는 얼음 칼날들을 피하려 시도했다.
자신에게 얼음 칼날을 날리려다 섬광에 잠깐 시력을 잃은 여자가 땅을 짚으려 허리를 숙이는 동안, 엑스칼리버의 머릿속은 빠르게 팽팽 돌아갔다. 어느샌가 발 밑애서 역류하는 물에서 얼음기둥들이 솟구쳐나올 때, 이미 액스칼리버는 자신이 다쳤건 아니건 자신이 몸을 던져 도착한 자리에서 발사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폭발적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온 몸의 근육을 사용한 전력질주로 여자의 왼쪽으로 휘어들어가는 곡선궤도를 그리며 엑스칼리버는 필라인에게로 전력질주했다. 그리고 엑스칼리버가 충분한 거리까지 다가간다면- 그녀는 오리지늄으로 된 무거운 왼손을 들어서, 필라인을 기절시키기에 충분한 위력이 실린 레프트 훅을 필라인의 머리에 내지를 것이다.
솔트가 투입된건. 작전이 시작된지 불과 몇분도 채 되지않았을 때다. 대부분의 대원들이 거한과 승부를 벌이고 있을 때. 다른 적들이 그들에게 공격을 하지못하도록 바쁘게 움직이며 방패로 원거리에서 오는 공격들을 막아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생체전기 조작을 십분 활용한 반응속도의 차이. 솔트에겐 화살을 막아내는 것이 가능했다. 아무리 그래도 무거운 둔기를 막아내는건 무리가 있기에, 그땐 상대방을 방패치기로 기절시키는 것으로 전법을 취했다. 이후 거한은 얼음이 되어 부서지고 필라인 여성이 공격을 가하고 있을 때도, 솔트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대원이 위험한 상황이 되지않도록 얼음 파편들을 양 손의 라운드 실드 형태의 방패로 막아낸다.
"후우....오히려 느리고 묵직한 공격보다 저런쪽이 막기가 쉬우니까 말이지."
숨을 고르며 다시 한번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다. 필라인 여성은 다시 한번 얼리는 것을 시도한다. 서둘러서 자세를 취하고 그 순간 아이다가 서있는 난간이 무너지는 것을 포착. 솔트는 빠른 계산을 시작했다. 곧 최선의 구출방법을 찾아내고, 솔트는 달려나간다.
"전광석화"
스파크가 튀기는 소리와 함께. 솔트의 모습이 잔상을 남기며 움직인다. 정확히는, 음속의 5분의 1의 속도로 움직이는 것에 가깝다. 그 속도는 아이다를 구하는데엔 충분했을까? 아니, 해보지않으면 모르는 거지.
원거리에서 지원하던 자신의 다리 밑에서 날아오는 얼음기둥을 보자 아이다는 높게 뛰어오르며 염동력으로 자신의 몸을 받았다. 천천히 낙하하려던 찰나 저 멀리서 솔트가 달려오는 것을 포착했다. 좋아, 그러면 포커스는 이쪽으로 오지 않아도 좋지. 마침 알트가 이동한 뒤였고, 조금의 서포트만 있으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아츠는 무너진 난간의 조각난 콘크리트와 철근을 집어들어 눈에 훤히 보이는 궤도로 팔루인에게 날아간다. 주의만 끌면 되는 녀석이니까.
긴급 임무나 호출은 언제 올지 모르는거고, 생사의 기로에서는 유서를 쓰고 있을 시간이 없다. 독에 중독된 후 고립되거나 과다출혈, 저체온증으로 죽어가는 느리고 고통스러운 죽음이 아니고서야. 그런 죽음을 겪고 있다고 한들 침착하게 유서를 쓰고 있을 정신머리가 있을까. 지금부터 철저하게 대비해 둔다면, 그 시간에 유서를 써 두는 편이 경제적이겠지.
"화장이 좋아 매장이 좋아 아니면 장기기증이 좋아?"
곽초의 말을 들은 순간 재산은 라이레이가 먹기로 결정되었다. 받아서 어디에 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 쓸 곳이 없으면 찰리의 가정교사를 고용하거나 공공시설에 기부하면 된다. 그마저도 안 되면 술값으로 탕진해야지.
창고안에서는 얼음이 빗발친다. 말 그대로의 냉동창고. 기둥이 이리튀고 저리튀고, 또 터지면서. 창고 안을 무차별적으로 해집고있었다. 그것은 굉장한 위력이었지만 딱히 누군가를 노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 발악일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눈치빠르게 캐치한 알트가 안전지역으로 곧장 돌입한다. 그건 바로 그녀 본인의 자리.
"...!"
천장에서 예상치도 못한 단검이 날아온다. 하지만 눈치가 빠른건 그녀도 마찬가지. 필라인 여성은 즉시 자신 주변으로 얼음을 둘러 그것을 막아낸다. 그 탓인지 엑스칼리버의 공격도, 아이다의 공세도 갑자기 둘러진 얼음방벽에 막힌다. 그 무게와 위력에 방벽은 몇 번이고 거의 뚫릴뻔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안쪽에서부터 계속해서 얼음이 덧입혀지고 있었다. 다만 방어에 집중하는지 주변의 공격은 완전히 멎었다. 이것이야 말로 진짜 발악이다. 반면 그 각오를 다지듯 얼음 건너편에서 필라인의 그녀는 얼굴을 찡그린채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난...! 끝까지 살아서 나갈거야!" "다들 떨어져."
그러나 그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가라앉은, 대원들에게는 익숙한 목소리. 말이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얼음방벽을 중심으로 폭발이 일어나 버리는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들은, 폭발이라면 짚히는 구석이 단 한 가지 있다.
"나이스샷." "찰리~!"
저 진입로에서 주머니에 손을 꽂고 들어오는 사람.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철컥거리는 꼬마. 폭발의 연기 속에서 헬멧의 푸른 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물이 흘러넘치는 창고 바닥에는 필라인 여성이 드러누워있다. 방벽탓인지 신체는 멀쩡했지만, 폭압은 견디지 못하고 기절한 듯했다.
"역시, 예상대로네. 이녀석들은 리유니온이 아니야."
소장은 그 필라인 앞으로 다가가 난장판이 된 창고의 내부, 그리고 얼어 붙어있는 거한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전멸이다. 이 창고에서 한 명도 나가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싸움으로 인해 엎어진 마약들마저도.
"높으신 분은 한 명도 남기지 말라고 했지만..."
다만, 이 필라인은 아직 죽지 않았다. 소장은 언제라도 준비가 되어있듯 해맑게 웃고있는 찰리를 힐긋 보더니,
"뭐, 예외는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등을 돌린다.
"고양이는 주워간다. 정보를 캐야겠어. 아이다, 손 좀 써줘. 손 많잖아. 그리고 찰리는 알지?" "찰리찰리!"
찰리가 유탄발사기를 들어 그 총구를 내부창고로 향했다. 남은 마약들도 전부 폭파형인것이다.
솔트는 자신보다 16cm가 더 큰 라이레이를 안고 달리며 말했다. 동시에 각각의 대원들이 여성의 주의를 끌고, 그 틈을 놓치지않은 찰리가 공격에 상황종료. 그제서야 배시시 웃음을 지으며 선배를 조심히 내려놔준다.
"어떻게든 됬으려나?"
역시나 항상 긴장을 늦추지않고 주변을 경계한 것은 좋았다. 실제로 여러번 예상치못한 상황이 발생했으니까, 디펜더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대원들을 지키는 것이니, 솔트는 그 역할을 충실하게 임하려 노력했다. 부상자는 있지만, 사상자는 없었으니 베스트인 것이다. 아무튼간에, 오늘도 이야기할 소재가 생겨서 기쁜 솔트였다.
왠지 모르겠지만 꿈에 명방이랑 이 스레가 나왔습니다 처음은 제가 명방 리세마라를 돌리느라 데삭하고 튜토하고의 반복을 하고 있었어요 근데 아무리 해도 초보박사용 가챠에서 6성 3개(?)가 안 나와서 포기하고 어장을 켰죠,,, 보트에서는 에덴주랑 리아주가 일상을 돌리구 있었는데 둘이 사무실에서 몰래 뽀뽀하구 그랬어요 그리구 에덴이가 사무소의 전원에게 손편지를 써줬는데 캐러멜과 캐러멜주가 그거 보고 감동받아서 이녀석이 가족에게 초 장문의 편지를 써버리는 꿈이었습니다 (????)
>>546 우왕 칼리주도 엑시아랑 샤이닝 나오셨어용? (반갑!!) 초반부터 엑시아는 뭔가 적폐사기캐의 향기가 폴폴 풍기더라구요 ㅋㅋㅋㅋ 첫가챠가 쫌 잘 나오구 그래서 원래 막 6성 2개씩 나오는 줄 알았더니만 리세 시작하니 그없이었던 ^-^,,, 가챠 가지고 자만하다니 어리석은 중생
사실 6성개수땜에 리세뛴건 아니구 실버애쉬를 노린 거였는데 지지리도 안나와서 금방 포기했읍니다 사람들 어케 손리세 해요...? 리세로 아무리 더미계정이 많이 생긴다지만 일일이 손리세하는 사람들의 애정은 [진짜]인데... 아아...
>>560 ㅋㅋㅋㅋ 물론 고레어 딜러가 없단거지 아마두 저레어애들은 그래두 좀 있었을거예요... 아마...?(?) 실버애쉬 2정예일러가 얼굴이 이상하대서 얼마나 이상한거야 하고 찾아봤더니 그래두 잘생겼던데요 허허(막눈 (가물가물...?!) 하 저두 완전 참가하구싶어요 ㅠㅠㅠㅠ 전투 짱 재밌잖어... 막 사전에 정보조사 한담에 전략 짜서 들가는거 있으면 넘 짜릿할거같구 그러다 맵 기믹에 당해서 골골대구... 하핳,,, 헤헤 같이 소원빌어요(?) 비나이다 비나이다 시트캐와 MPC 가운데 데플이 없게 하옵시고
네가 쉿-하는 소리를 흘리기 전, 사샤는 주변에서 나는 소음을 들었다. 종족 특성상 청각이 예민하게 발달되어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최대한 조용히 움직여야 겠네요."
네 말에 사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선에서 협상을 할 동안 이쪽은 몰래 인질을 빼돌린다. 들키는 순간 바로 전투에 돌입하게 될 것이 분명했고 그렇게 되면 인질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었으니 최대한 조심하는 것이 좋겠지. 덩치는 크긴 하다지만, 일단은 사자도 고양이과 동물이었으니 기척을 최대한 죽인 채 움직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테였다. 소리가 그들의 귀에 들어갈새라, 사샤는 네 지시에 대답 대신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수긍의 뜻을 내비쳤다. 사샤는 너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서 적들의 눈을 피해 재빨리 건물 안으로 소리죽여 들어갔다. 네게 부딪혔던 것은 정말 단순한 실수였기라도 한 건지, 건물 안으로 진입하는 도중에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사샤는 적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하지만 본인에겐 적들과 인질의 위치가 선명히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곤 숨을 죽인다. 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이 기다란 창은 조금 심각할 정도로 거추장스럽다. 눈에 띄는 밝은 머리색은 후드 같은 것을 뒤집어 쓰면 어떻게든 가려 진다지만, 창의 길이 자체는 어찌 할 방도가 없다. 일단 잠입까지는 어떻게든 무사히 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안 들키고 인질을 구해낼 수 있을까. 사샤는 자신의 바로 근처에 있는 적의 뒷통수와 인질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잠깐. 일단 뒷통수부터 후리려는 거야?
농담하듯이 말했지만 사블랴의 안색은 별로 좋지 못했다. 우르수스에서 광석병 환자들이 어떻게 대해지고, 또한 처리되는지 알면... 이런 반응이 당연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기에 저도모르게 사과를 건네버렸을까. 일단 제 친구에게는 별로 좋지 못한 일 일테고, 그런 일을 꺼내게 만든 것에 대한 사과정도는 해야겠다고 생각했기에.
엑스칼리버의 말에 사블랴는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짓다가, 캔맥주 하나를 자신 앞에 내려놓는 것을 보고는 안색을 밝혔을까?
" 하하, 이정도 비용이면 충분하지. 그럼 적어도 누구랑 사귀는지 정도는 안 물어볼테니 안심해. "
사실 같은 공간에 살고있는 오퍼레이터라면 어느정도 티가 날지도 모르지만 그건 엑스칼리버 그녀가 신경써야 할 문제고, 자신은 그저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묻어두기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을까.
아늑하고 포근한 공간. 어느 한 자라크를 위한 숙소 자리다. 고소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곳에는 온갖 간식들과 수집품들이 쌓여있어 발 디딜틈이 많지 않다. 단단히 가려진 창가로 작은 빛이 새어들어온다. 희미한 빛 사이로 곤히 잠을 청하고 있는 텔롯시의 얼굴이 비친다. 이불을 꼬옥 덮고 웅크려 동그란 뺨이 이부자리에 납작하게 몰린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간은 얼마가지 못했으니. 블라인드로 가려진 바깥으로 위이잉 날갯짓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톡, 톡톡 가벼운 노크와도 같은 창을 두드리는 소리. 그래도 반응이 없자 ‘핑포로- 퐁 퐁 퐁’ 경쾌한 소리가 창을 뚫고 들어선다. 침대에 웅크린채 단잠을 자고 있던 텔롯시는 그소리에 화들짝 놀라 귀를 쫑긋 곤두세운채 손을 옆으로 더듬거린다.
안경을 찾은 텔롯시는 비몽사몽한 얼굴로 눈을 부비며 창을 연다. 환한 빛이 기습적으로 쏟아지자 '아코!' 깜짝 놀란 소리를 낸다. 뿌연 시선 앞으로 무언가가 둥둥 떠있는 모습이 보인다. 안경을 쓰자 수하물을 실은 드론의 형태가 제대로 보인다.
〔 소포 도착. 소포 도착. 보내는 이 시나몬 얍스톤. 받는이 왕눈이 텔롯시. 〕
드론은 안내음성과 함께 수취인에게 물건을 건네주고 다음 행선지를 향해 떠난다. 잠에서 덜깬 텔롯시는 긴장이 풀린듯 제법 묵직한 소포를 바닥에 내려놓고 천천히 포장을 뜯는다. 길쭉한 나무상자와 편지 한 장이 보인다. 킁킁, 킁킁, 익숙한 냄새가 느껴져서 자기도 모르게 코를 킁킁댄다. 고향에서 보내온 것임을 알아채자 다시 귀가 쫑긋 솟아올라 기쁜 마음으로 편지를 열어본다.
『 텔롯시야! 잘 지내고 있었느냐-? 보내준 물건은 잘 받았단다. 못본 사이에 많이 홀쭉해졌더구나! 한동안 소식이 끊겨 길을 잃어버린줄 알고 모두 걱정했는데 좋은 소식이 들려오니 기쁘구나. 첫 햄드릴을 선물 받았을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씩씩하게 자라주었다니!
...
이제는 다시 일을 돕고 있단다. 너무 무리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만! 아무튼 좋은 곳에 잘 정착했다니 다행이다. 앞으로도 자주 편지 나누자꾸나.
추신/ 해바라기가 씨앗을 맺었단다. 올해는 유난히 탐스럽게 자랐더구나. 그래서 편지와 함께 보냈단다. 맛있게 먹으렴! 』
상자를 열자 에어캡 사이에 끼어있는 팔뚝만한 해바라기씨가 반짝반짝 그 자태를 드러낸다.
"와아아..."
텔롯시는 보물이라도 찾은것마냥 하늘높이 특대 해바라기씨를 들어올려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갑자기 슬픈 일이라도 생긴것처럼 '으우우..' 울음을 삼키는 소리와 함께 폴싹 주저앉는다.
왕눈이. 순둥이. 그런 텔롯시는 매번 거짓말에 서툴렀다. 금방 커다란 눈망울에 표정이 드러나곤 했으니까. 아르고와 함께한 어느날 텔롯시는 커다란 결심을 했다. 햄스톤 파크로 보내는 우편에 지금까지 있었던 이야기들을 모두 정리했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두를 속이는데 성공했다. 이제는 모두 자신이 평화로운 곳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실은 달랐다. 무서운 감염체로 득실대는 위험한 지대를 달려야했고 때로는 어두운 세계에 숨어 사는 사람들과 싸워야했다. 모두를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말이었지만 아직도 모든 것이 낯설고 무섭기만 했다. 고향의 향기가 배어있는 씨앗을 꼬옥 끌어안으며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미묘한 감정을 울음과 함께 삼켜냈다.
>>692 예예예예ㅔ,,,?! 잘 찝어낸건가유 저야말루 칭찬 감사합니다 ㅠ 하 정말 아름다운 단어밖에 어울리지 않는 그런 캐릭터라구 생각하는... 묘사도 그렇고 마치 정밀하게 깎아낸 보석 세공품 같아요 귀금속이라도 금이나 은보다는 여러 각도에 따라 빛이 투과되는 방향이 달라지는 보석... 쨍쨍한 햇볕 아래보다는 조금 어두운 방의 은은한 조명이 어울리는
칼리의 질문을 들은 스카는 눈썹마저 옅게 찡그리며 고민을 거듭했다. 듣자마자 누군가라는 것은 파악하기 쉬웠지만, 그것을 묘사하라 한다면 정확히 답하기 어려웠다. 특유의 울림, 파동. 날카로운가 싶으면서도 낭창낭창 휘어지고, 따스한 기색이 존재하는 것을 뭐라 이야기하면 좋을까.
"겨울의 눈은 말이죠, 언뜻 날카로운 차가움만을 간직한 것 같기도 하지만 그 특유의 포근함이 있다고 생각해요. 말솜씨가 좋지 않아서 이 묘사가 잘 맞을지, 제대로 전달될지도 모르겠지만요...칼리는 눈을 닮았다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저마다의 파장이 존재했다. 목소리마다, 아무리 비슷하다 하더라도 모두가 달랐다. 스카는 그런 울림들을 기억하는 데 뛰어났다. 그리고 그 울림들이 끊어지는 순간을, 기억하는 것조차. 굳으려는 입매를 끌어올렸다. 과거는 과거일 뿐, 이다. 휩쓸릴 이유가 없었다.
"고마운 건 고마운 것이니까요. 보답이라도 해드리고 싶은 심정인 걸요, 정작 해드릴 수 있는 것도 얼마 없지만요."
그정도였다는 단호한 답에 스카는 작게 침음을 흘렸다.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자신의 상태가 그리 안 좋아보이냐 묻는다면, 아무리 자신이라도 그럴 것이라 답할 수 밖에 없다지만. 하지만 제가 어떻게 제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깊이 생각하는 대신, 스카는 웃으며 감사를 전했다.
"그, 발이 덧날지도 모르는 건 사실이지만...안아들기에는 무거울 텐데요..."
스카는 우물쭈물거리며 말 끝을 흐렸다. 강한 건 알았다. 물론 이곳의 사람들이야 강한 이들이 많았지만, 애초에 평소에도 손수건을 이용해 홀로 지혈하고 걸어가기도 했던 스카였다. 실례를 더 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 아닌 의문도 머릿속을 떠돌았다.
"...그래서? 원하는게 뭔데?" "아는걸 전부 얘기해줘야겠어." 병동의 침실에 앉아있던 필라인 여성이 입을 열었다. 하룻밤 사이 판도라의 독은 물론이고 이런저런 치료를 받아 그 몸의 구석구석엔 붕대가 감겨있었다. 앞에는 소장이 앉아 헬멧에서 나오는 시린 빛으로 그녀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내려오는 푸른 머리칼을 계속해서 꼬았다. 거기서 반항적인 기색이 묻어났다. "싫다면?" "우리에겐 고문 기술자가 있지." 그 말을 들은 필라인 여성이 금새 고문이란 단어에 겁을 집어먹은듯 몸을 움찔였다. "-지만, 딱히 뭘 더 하진 않아. 내가 시간이 남아 도냐. 난 바쁜 몸이야. 너에게 할애하는 이 시간은 극히 일부라고." "그럼 그냥 꺼져버리지 그래?"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협조하면 대신 네겐 혜택이 있다." "혜택... 이라니? 너흰 그냥 용병 나부랭이들 아니었어?" "솔깃하지? 네가 어떻게 이런 의료서비스를 받게되는지는 알까 모르겠네. 뭐, 이건 더 말해줄 수 없어. 네 얘기를 듣는게 먼저야." 소장은 아리송한 말만을 꺼내놓았다. 헬멧에 떠오른 빛이 변한다. 이 다음부터는 본격적인 질문들이었다. "너흰 리유니온이 아니었어. 그렇지?" "...맞아." 도미닉이 불쑥 본론을 꺼내자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지만 "내가 알기론 리유니온은 자기들 나름 숭고한 목적으로 뭉친 단체야. 약쟁이 양성으로 돈이나 벌자는 뒷골목식 몽키 비즈니스랑은 성격부터가 다르지. 하물며 걔들도 약에 오리지늄을 넣는 장난질은 하지 않아. 즉, 너희는 이 약으로 거리의 하류층들을 감염된 약쟁이로 만들고, 약 시장을 독점해 그들을 하나로 확보하려고 했다. 맞나?" "맞아." "그리고 너도 약을 했어. 이것도 맞나?" "그건 아니야!" "이건 아닌가." 도미닉이 머리를 갸웃거리며 팔짱을 끼고 자세를 편하게 고친다. 사뭇 진지하듯도, 가벼운듯도 한 당최 종잡을 수 없는 태도에 필라인 여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간의 침묵이 일고, 그 끝에서 그녀는 결심한듯 입을 연다. "테어다운... 그게 그들의 이름이야. 전신은 다른 나라에서 왔다고 했지만 지금은 암암리에 세력 확장중이라고 들었어.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조종할 수 있는 많은 감염자를 원하고있어. 솔직히 그런건 관심 없었어. 난 그저, 감염자도 일할 수 있다는 말에 들어간거고... 약을 제조하는 일이든, 그걸 파는 일이든, 누굴 감염시키는 일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어. 난 살기위해 뭐든 해야 했으니까... 여긴 그런 곳이잖아. 감염자는 사람취급도 받지 못하는 곳. 여긴 죽기 아니면 살기야. 하지만 그게 3일도 가지 못할거라는걸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도망의 연속. 이 필라인은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감염자가 되어 갈 곳을 잃은 그녀는 항상 조금이라도 더 숨통이 트이는 곳을 찾아갔고, 그 숨구멍이 닫히기 직전에 빠져나가 또 다시 다른 구멍을 찾는다. 테라에는 이런 감염자들이 아주 많았다. 악의 연쇄인 것이다. "하지만 컬럼비아의 시장을 너무 우습게 봤군. 여기 보기보다 만만치 않거든. 그게 전부야?" "착각하지마. 나도 말단중에 말단일 뿐이니까. 그 이상은 몰라." 필라인 여성이 도미닉을 노려본다. 그 눈매가 헬멧을 뚫어버릴듯 날카로웠다. 더 이상 캐묻는건 이제 의미없어 보였다. "좋아. 그럼 약속대로 상을 줘야겠지. 너, 갈 곳도 없다고 했지. 여기서 나가봤자 배신자니까 걔들에게 쫓길거고. 도망의 연속이로군." 어쨌든 필요한 정보는 얻었다. 그리고 그녀는 감염자다... 그것도 꽤 쓸만한 아츠능력을 가진 감염자. 감염자들이 평균보다 강한 아츠반응을 일으킨다고는 하지만, 바로 전의 작전에서 보여주었던 창고를 통째로 얼릴 정도의 능력은 솔직히 도미닉도 놀랄 정도였다. 그런 감염자를 보게되면 아르고의 소장이 하는 말은 하나였다. "그럴 바엔 그냥 내 밑에 들어와라." 소장의 말에 필라인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치켜뜬다. "날 폭탄으로 터트린 녀석들이랑 일하라고?! 당신 미쳤어?" "무슨 소리 하는거야. 찰리랑 녀석들이 진심으로 날려버릴 생각이었으면 넌 이 자리에 없었어. 우리 사무소 애들도 대부분은 그렇게 들어왔고. 그리고 이래봬도 나름 보호소 비슷한 간판도 달고 있거든. 잘 곳도 있고, 광석병도 케어해주고. 냉난방도 나름 완비. 뭐, 와이파이는 조금 느리지만. 넌 그냥 내 지시에 따라 싸워주기만 하면 돼." "입 발린 소리! 감염자를 데려와 쓴다고? 내가 그걸 어떻게 믿는데? 어차피 너희들도 나중되면 그 녀석들이랑 똑같이...!" "잡아 먹는 쪽이 되지 못하면, 잡아 먹힐 뿐이지." "..." "싫으면 그냥 나가면 돼. 거기서 이 대화는 종료다." 소장이 그렇게 말하며 자세를 또 바꾼다. 이번엔 아예 의자에 드러누울듯 등받이에 몸을 완전히 맡겼다. 필라인 여자는 그런 여유로운 태도가 밉상인지, 아니면 어딜 어떻게 믿어야 할 지 모르겠는지. 배째란 식의 태도에 머리가 지끈해져 오는듯 싶었다. 완전히 할많하않의 표정이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질 만큼. 하지만, 이대로 나가서도 도망쳐서 다시 임시 숨구멍을 살필 뿐이라면, "...하아. 뭘 하면 되는데?" 조금이나마 이곳에 머물러보는게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듯 그녀는 입을 그렇게 답을 내놓았고. 소장의 헬멧이 삐빅거리며 기계음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넌 앞으로 레인메이커다."
질문을 던지자 스카의 눈썹이 찡그려지는 걸 보고 칼리는 자신의 질문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도 일단 질문은 던졌으니 그에 대한 대답을 기다리는 건 당연한 노릇이여서 칼리는 생각하는 스카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피며 관찰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내 스카에게 나온 대답은 칼리로서는 예상못한 거였기에 흠- 하는 반응을 보였다. 눈썹을 슬쩍 올리는 반응이었다.
"본인이 눈을 닮았다? 그건 또 의외의 대답이구려. 겨울의 눈은 자네의 말대로 특유의 포근함은 있네만- 본인을 눈으로 묘사하는 이는 자네가 처음일걸세."
묘사가 맞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느낀 것은,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기 때문이었다. 시라쿠사 출신의 루포족에게 눈을 닮았다는 말이 칭찬인지 아닌지 느끼는 건 별개의 감정이었다. 칼리는 턱을 문지르고 입매를 히죽이면서 끌어올린다. 갑작스러운 본인의 질문에 답해줘서 고맙네 하고 칼리가 느물거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보답은 되었네- 본인, 뭔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니까 말일세! 감사인사정도면 본인에게 충분하오."
"본인이 보기에 자네 그렇게 무겁지 않아보이는데? 아- 키차이가 제법 나는 편이니 자네에겐 그렇지도 모르겠구려."
본인, 그런 건 신경쓰지 않네만. 말끝을 흐리는 스카에게 칼리는 꽤나 당당하게 대답하면서 팔짱을 잠시 끼며 눈대중으로 스카와 자신의 키를 비교해본다. 스스로 작은 키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에이전시에 있는 사람들의 키가 대체로 크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래도 이정도 차이가 나면 무겁지는 않을텐데. 칼리는 장난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느끼면서 어떻게 반응해야하나 고민에 빠졌다.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것으로 하겠네. 손수건이 있다면 한번 감고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소. 본인은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터라 자네가 손수건이 있다면 본인이 발을 좀 감싸주겠네."
지나친 친절이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칼리는 이런 성격이었다. 부드럽고 나긋한 태도를 보이는 건 당연했다.
천진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네요. 아니요, '울리다'라는 표현은 조금 부적절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럼, 오늘도 잘 참았어, 【 】." "그러면 오늘도 사탕 먹을 수 있어요?" "물론이지. 대신 자기 전에 이는 꼭 닦고 자야 한단다?" "알구 있어요! 나 그렇게 어리지도 않단 말이에요, 선생님!" "그래, 그래. 그러면 【 】는 더이상 어린이가 아니니까 사탕도 필요없겠지요?" "치, 그건 아니잖아요! 선생님 너무해!!"
웃음소리, 머리를 쓰다듬는 누군가, 따스한 공기. 당신은 현실이 아니잖아요. 나를 내버려둘 생각은 없는 건가요? 한낱 꿈에서조차 이래야만 하는 건가요?
"*I've been, staring at the edge of the wate Long as I can remember- Never really knowing why ♬ I wish I could be the perfect daughter But I come back to the water- No matter how hard I try♪"
어린 아이 특유의 맑은 목소리, 익숙한 노래. 귀를 막아도 목소리는 끊임없이 들려와요. 멈출 수 있었더라면, 멈출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더라면 당장에라도 저 입을 찢어놓았을지도 모르지요.
"...어디서 그 노래를 들었니?" "이거요? 조앤이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그 영화에서 노래가 나왔구나?" "헉, 어떻게 알았어요? 선생님이 내 마음 읽었어요?"
구슬 굴러가는 듯한 웃음소리, 흐뭇한 미소. 이제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어요? 우리 둘 다 결말은 알잖아요. 눈을 지그시 감고, 다시 떠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요. 귓가를 맴돌던 노랫소리도 사라진지 오래고, 주위는 고요하기만 해요. 벽을 더듬거려 창문을 열자 찬 공기가 꿈을 씻어내고 현실을 일깨우듯 쏟아져 들어오죠.
그래요, 현실은 이곳에 있죠. 과거는 과거에.
드레스를 짓누르는 것처럼 쥔 손마디는 하얗게 질려있었다. 한참을, 마침내 손에 감각이 무뎌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까지, 그녀는 시린 공기를 마주하며 그곳에 서있었다. 닭의 목을 비튼대도 해는 뜰 것이고, 하루는 곧 아무렇지도 않게 시작될 터였다. 그러니 그 자신도, 그래야만 했고.
소장과 유쾌한 오니 일당들이 창고로 갔을 무렵, 류드라는 그녀 자신이 맡은 다른 임무를 수행하러 합류하지 않았다. 꽤 오랜만에 피를 묻히는 임무, 5일만이던가? 그러며 석궁을 하나 쥔채로 천천히 '포인트'로 접근한다.
"그럼 시작해볼까."
저격의 기본은 상대에게 들키지 않고 인내심있게 기다렷다가 쏘는 것. 매우 간단하면서 동시에 매우 힘든 일이다. ..그 때 3일간 기다렷다가 쏜 것은 나라고 해도 지루하긴 했으니까. 아츠를 활성화해 그저 본다. '가정을 배신한 이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세요'라니 어처구니 없는 임무구만.
"그럼 저 빛나는 대머리인가."
침착하게 볼트를 메긴다. 10발 연사가 가능한 개조 사양이지만, 그렇게 맣이 쏠 필요는 없으니 단발로 돌려놓고 한발만 끼운다. 불륜이라.. 나는 연애를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가정을 꾸릴거라면 책임감있게 해주는게 좋을텐데 말이지. 노리기 좋은 곳으로 올 때까지 그저 기다릴뿐인 단순하지만 지루한 작업. 만약 예기치못하게 이탈하면 미리 봐둔 세컨드 포인트로 이동하면 될 것이다.
"Bingo"
탁하고 짧은 소리와 함께 화살이 날아간다. 다리 사이를 노렷으니 이제 함부로 하지는 못할테지. 내가 저격했다는 흔적을 지우고, 입사하면서 지급받은 핸드폰으로 가볍게 문자를 보낸다
힌트라고 할만한 부분은 눈을 떠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서술, ▷그래요, 현실은 이곳에 있죠. 과거는 과거에. ▷드레스를 짓누르는 것처럼 쥔 손마디는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리고 위에 두 부분이었네요! 드레스를 꾹 누르듯이, 뼈나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잡는 건 스카의 습관 중 하나예요.
>>901 우와아아아앙아악 (대충 기쁘다는 말) 음음 그럼... 혹시 따로 원하시는 상황 있으실까용! 루이 시트 보고 왔는데 일단 생각나는 상황으으으은... 저는 일단 복도에서 우연히 만나거나... 리타가 지금 임무 나갔다가 머리를 초큼 다친 상태인데 실수로 균형을 못 잡아서 커피를 쏟았다거나....! 하는 상황이 떠오르네용!
스카는 말하는 와중에도 어째서인지 변명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진심이니 변명이라 하기도 애매하다며 생각을 지워냈다. 자신마저도 변명이라 생각된다면, 다른 이가 그렇게 생각하기는 더욱 쉬울지도 모르는 법이었다.
"고맙긴요. 알맞은 표현을 찾기 어려워서 좀 헤메기는 했지만- 저도 그 덕분에 칼리의 목소리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으니까요."
역시 생자의 울림은 듣기 좋은 법이라, 그렇게 생각하며 싱그러이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 다시 한 번 고맙다고나 할래요. 고마워요, 칼리."
사실 뭐가 딱히 있지도 않아서 보답하기 어렵기도 하거든요. 다른 분들에게도 기껏해야 노래 정도나 불러드리고 말기도 하는 걸요. 특유의, 조근조근하면서도 지지배배 우는 새의 재잘거림을 닮은 말들이 흘러나왔다.
"...그랬나요? 체중이 그렇게까지 적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168과 177. 9cm 차이는 그렇게 크다고도, 작다고도 할 수 없는 차이였다. 다만 그렇게 안기면 모양새가 꽤 이상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리고, 음, 역시 실례 같은 걸. 스카는 찰나 지나가는 생각으로 자신의 체중이 무겁지 않다는 건 제가 적어서인지, 혹은 아르고의 대원들이 강해서인지 고민하기도 했다. 굳이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아, 손수건은 있어요."
이런 일이 적지는 않아서 가지고는 다니거든요...조금 머쓱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허리께의 주머니를 더듬던 스카는 새하얀 손수건을 꺼내었다. 한쪽 모서리에 금사로 자수가 새겨져있었지만 오래된 것인지, 해진 터라 무엇인지 식별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면 죄송하지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정확히 어디에 박혔는지 잘 모르겠어서요."
촉각이면 몰라도 통각은 무딘 터라 유리의 차가움은 미약하게 느껴지고 있었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홀로 지혈하기에 힘든 조건이기는 하였다.
—경미한 뇌진탕입니다. 일단 이마 윗쪽이 조금 찢어졌는데 꿰맬 정도는 아니구요… 일단 드레싱 해드렸는데, 며칠 뒤에 다시 방문해주세요—
리타는 커피를 타며 의사의 말을 곰곰히 곱씹었다. 며칠 전 임무에 나섰다가 머리를 다쳐 잠시 병원에 들렀더니, 글쎄 가벼운 뇌진탕이란다. 의사의 말을 들은 직후, 그녀는 차라리 곤봉을 맞지 말고 피할 걸 그랬나. 하는 작은 후회를 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데도 말이다. 피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 시간에 스스로 성장할 방도를 고민하는 것이 차라리 낫겠건만. 시끄러운 커피 머신의 소음이 멎었다. 커피가 완성됐다는 뜻이었다.
어젯밤 자꾸 잠을 설친 덕에 리타는 무척이나 피곤한 상태였다. 병원에서 3일치 약을 받아온 그녀는 약과 커피가 상극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피곤한 정신을 흔들어줄 카페인을 차마 포기할 순 없었다. 때문에 오늘도 머그잔 가득히 커피를 내렸고, 이제 그녀에겐 휴게실을 나서 제가 있어야할 자리로 돌아갈 일만이 남아있었다. 아니, 그 일만이 남아있어야 했다.
아, 어지럽다. 차라리 몸이 안 좋다면 병가를 낼 것을. 그녀가 휴게실 문턱을 밟으며 제 이마를 짚었다. 시야가 휘청휘청 것이, 꼭 멀미가 나는 듯한 기분인데…
" 으앗! "
그녀는 순간 균형감각을 잃고 발을 헛딛고야 말았다. 그녀가 넘어질 뻔한 것은 별 대수가 아니었지만, 진정으로 문제가 된 것은 그 다음이었던 것이다.
" 아, 그… 저기… 죄송해요…! 뜨거우실텐데! "
머그컵 가득히 담겨있던 커피는 온데간데도 없다. 대신 그녀는 제 눈 앞에 선 누군가의 옷섬에 커피를 잔뜩 쏟고야 만 것이다. 리타가 제 눈가를 꾹 눌러대며 연신 사과를 해대기 시작했다. 그거 방금 내린 커피리 많이 뜨거우실텐데… 라는 말을 중얼이며.
스카의 말에 칼리는 드러나있는 파르스름한 눈동자가 아닌, 안대로 가려진 눈쪽을 손가락으로 긁적였다. 스카의 말이 변명이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친절함을 닮아서 그런가봐요 라는 말에서 멋쩍은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멋쩍음에 칼리가 입을 다물고 앓는 소리를 내며 몇번 안대 위를 긁적였다가 손을 내린다. 친절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을 때,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다는 말을 들어버리면 어쩔 수 없다. 칼리의 파르스름한 눈동자가 눈 앞의 스카를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본인이 갑자기 물어본 탓일지도 모르겠구려. 아무리 본인이라도 그런 말을 들으니 조금 쑥쓰럽기는 하다네."
스카의 싱그러운 웃음에 칼리의 손이 다시 안대 위로 올라가서, 안대의 천을 긁적였다. 헛기침을 한번 해서 멋쩍음을 날려버리고 칼리의 표정이 다시금 히죽이며 입매를 올리는 평소의 표정으로 바뀐다.
"보통일세. 라트리."
본인은 아까도 말했듯이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네. 히죽이며 입매를 끌어올린 칼리가 스카에게 과장된 움직임으로 격식을 차린 제스처를 해보이고 히죽였다. 체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제스처를 풀고 칼리의 양손이 바지 주머니로 향했다. 익숙한 듯 주머니에 양손을 넣은 뒤 칼리가 다시금 히죽이며 입매를 끌어올렸다. 뭐- 본인은 상관없다네. 웃음과 사뭇 다른 느물거리는 목소리로 칼리는 말문을 연다.
"늑대는 자신의 몸무게의 두배정도 되는 먹잇감을 물고도 나를 수 있다네."
칼리는 스카가 꺼내서 자신의 손에 쥔 손수건의 모서리에 금사로 새겨진 자수를 잠깐 바라봤지만 자수에 대해서는 묻지 않기로 했다. 불쑥 처음보는 사람에게 말을 걸 정도로 사교성이 현저히 높은 편이지만 왠지 물어봤자 좋을 것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게다가 오래됐는지 해져서 제대로 보기도 힘들었고. 칼리가 스카의 앞에서 몸을 낮췄다. 한쪽 무릎만 바닥에 대고 스카의 유리조각이 박힌 발을 들어서 세워져있는 자신의 무릎에 올리려다가 칼리는 잠시 행동을 멈췄다. 이내, 언제 그랬냐는 양 칼리가 스카의 발에 박힌 유리조각을 찾기보다 손수건으로 발을 둘러서 싸매는 것으로 대신하려 하며 느물거리는 어조로 중얼거린다.
"유리조각이 크지 않아서 본인의 손으로 빼기엔 무리가 있어보인다네. 일단 지혈은 했으나 이 상태로 걷는 건 유리조각이 더 들어갈 수도 있으니 본인, 실례지만 아무래도 자네를 안아들어야겠소."
걱정마시게. 본인, 체력이나 근력은 자신있다네. 히죽이며 칼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스카가 거절하지 않는다면 다리가 땅에 닿지 않도록 안아드는 걸 시도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