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이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치열한 전장에는 아무리 화력을 쏟아부어도 부족함이 있기 마련이다. 서포터는 바로 그 부족한 부분을 케어한다. 기본적으로 캐스터와 비슷한 마법적 성질을 띄지만 부수적인 면에서 그 궤를 달리한다. 이들이 부리는 마법에는 단순한 원소아츠를 제외하고도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어 적들의 발을 묶거나, 조금이나마 메딕의 자리를 대신해주는 등의 신통한 역할을 해준다. 경험있는 지휘관일수록 압도적인 전력보다는 서포터 포지션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묘한 양상을 띄는데에는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누군가 뭘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조금 이상한 말이지만, 기분이 정말 좋거든요."
하고 에덴은 밝게 웃었다. "제가 좀더 운이 좋았다면, 어쩌면 전 요리사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다가 블라디미르가 캐묻는 집요한 질문에, 에덴의 뺨이 한층 더 빨개졌다. "음, 응- 네, 그런 셈이죠. 누구의 이빨자국인지까지는 말하지 않을래요." 하고, 에덴은 얼굴을 붉힌 채로 멍자국을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그리곤 다시 아직 트레이에 놓여 있는, 구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치킨커틀릿들로 시선을 옮겼다.
치킨커틀릿을 한 입 베어물면, 바삭한 튀김옷 아래로 닭고기가 입안에서 녹아내리다시피 부드럽게 으스러지는 게 느껴진다. 미리 시즈닝을 해둔 것인지, 으스러지는 고기에서 흘러나오는 육즙에는 스파이스하고도 감칠맛이 나는 풍미가 한가득 배어 있다. 맥주가 한 캔 옆에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블라디미르가 건넨 말에, 에덴은 다시 그를 돌아보았다.
하고, 에덴은 짐짓 처량한 눈빛을 꾸며서는 리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도 잠시, 옷을 사러 가자는 말에 리아가 처량하게 반응하자 눈을 치뜨며 전혀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
"제가 일할 때 입는 옷도 언니가 지금 입는 옷이랑 별다르지 않은걸요. 그리고 전 언니의 옷차림이 별로거나 그보다 아래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언니는 차분하면서도 와일드하니까, 그런 차림도 예쁘기도 하구요. 오히려 언니 같은 사람이 스타일을 폭넓게 소화할 수 있으니까 부러운걸요."
리아에게 눈길을 고정시킨 채로, 에덴은 말에 열기를 띄어갔다.
"그렇지만, 일할 때 입는 옷은 일할 때 입는 옷이고... 평소에 입는 옷이라는 게 있어서 나쁠 것 없잖아요? 무엇보다, 제가 언니한테 입혀보고 싶은 옷이 있어서..."
열기를 띠어가던 말끝에는 왠지 배시시 웃는 웃음을 덧붙이던 에덴은, 저녁밥의 마지막 숟가락을 뜨다가 리아가 부른 뜻밖의 칭호에 눈을 깜빡였다.
"......?"
숟가락이 공중에 멈춘 찰나. 에덴은 눈을 두어 번 더 깜빡이다가, 마지막 숟가락을 씹지도 않고 꿀떡 삼키고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서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리아에게 쫄래쫄래 따라붙었다.
꿈 속으러의, 갑작스러운 현실의 침범에 몸이 파드득 떨렸다. 나는, 또다시,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당신은 누구죠? 아, 들었던 목소리구나. 익숙한 파장. 기억을 더듬었고, 그래요.
"...칼리, 맞죠?"
불규칙한 숨소리 사이로 빠져나온 가냘픈 목소리가 속삭였다. 내가 이번에도 다쳤나요? 답이 필요없을 정도의 명백한 질문이 피비린내만을 남긴 채 입 속을 떠돌았다. 손마디에서 흰기가 빠져나가고 혈기가 도는 사이, 꾹 눌린 입술은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통제할 수 없는 과거란, 얼마나 지독한지. 생자의 목소리에 과거의 망령이 조금씩 물러가기 시작했다. 숨을 가다듬은 스카는 그제서야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칼리. 상황이 이런지라 잘 있었다고 답하기도 조금 찔리네요. 칼리는 잘 지냈나요?"
목이 턱하니 막힌 것 같았던 목소리보다야 나았지만, 미약한 떨림이 남은 지금의 목소리도 멀쩡하다고 말하기는 어폐가 있었다. 그러하더라도 입가에 띈 미소와 조근조근한 말씨는 언제나와 같이 온화하였다.
처량한 눈을 하는 에덴을 보곤 화들짝 놀란 오니가 움찔하는 반응을 보이더니 휙휙 다급하게 고개를 좌우로 저어보이곤 웅얼거리며 답을 돌려준다. 딱히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과는 다르게 술술 꺼내는 것이 대단하다고 느낄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왠지 그런 말을 듣고 있으면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오묘하게 좋아져서 가능하다면 자주 듣고 싶은게 사실이었으니까.
" ...나는 옷 같은거 잘 모르니까 ... 지금은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응, 에덴이 즐거울 것 같다면 얼마든지 갈래.. 그, 에덴이 뭘 입히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이사준비까지 하려면 조금 바쁠지도. "
딱히 짐은 많지는 않지만, 짐을 옮기고 방을 내놓고, 주소를 옮기고 하다보면 이래저래 할일이 많아지는 것이 이사였다. 하지만 그 바쁨이 그리 싫지는 않을 것 같아서 오니는 조금은 기대가 된다는 듯 차분하게 에덴의 말에 답한다. 다만 에덴이 입히고 싶다고 하던 때에는 어딘가 열기를 띄고 있어 어떤 옷일지 걱정이 되긴 했지만.
" 읏..."
자신의 말에 에덴의 숟가락 질이 멈추는 것을 본 오니가 다급하게 일어서서 쇼파로 향하려 한다. 그러다 물을 마시곤 성큼성큼 다가오는 에덴의 발소리에 허둥지둥 발걸음의 속도를 노리지만 이내 쫄래쫄래 따라잡은 에덴의 말에 얼굴을 홍당무처럼 물들인다.
" 아니, 그게.. 어.. 어... "
쇼파 앞에 멈춰선 오니가 슬쩍 뒤돌아보다 에덴이 코 앞까지 와있는 것을 보곤 당황해선 뒤로 쓰러지듯 쇼파에 넘어진다. 홍당무처럼 붉어진 얼굴은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더욱 더 열기를 머금고 있었고, 어딘가 눈이 반짝이는 듯한 에덴을 보며 침을 꿀꺽 삼킨다.
" 에짱...이란 애칭...좋을 것 같아서...그게, 연인들끼리는 그러는거라고..책에서..."
"요리사를 했다면 좋았을텐데." 라고 말하며 밝게 웃는 엑스칼리버를 향해 쓴웃음을 지었다. 운이 좋았다면- 이라는 말이 걸리는 거겠지. 그리고 볼이 약간 더 빨개진 엑스칼리버를 보고는 "걱정마, 그정도까지 캐묻지는 않을 거야. 오늘은." 이라며 장난스러운 말투로 중얼거렸을까?
" 여기 맥주도 있었으면 좋을텐데. "
느껴지는 맛에 무심코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정말 시원한 맥주 한 컵만 있으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긴 한데... 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