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비아의 섹터 09 이동도시, 그 한복판에 위치한 사무소. 인력대행사무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그 실상은 온갖 용병들로 들어찬 사설경비업체이다. 이 업체가 특이한 것은 시류의 상황을 따지지 않고 이익이 된다고 독자적으로 판단한 가치를 따른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아르고 에이전시는 당신이 누구던, 어디서 뭘했던간에 방주 밖에 남겨진 모두를 받아들인다.」
그 이상한 녀석에게 대원 전체의 의료검진을 아웃소싱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찰리 교사까지 그 양반에게 맡기다니. 찰리에게 물어봐도 대답은 뻔하고 돌팔이에게는 사적으로 말을 걸고 싶지 않으니 결국 그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둘만의 비밀이 된 셈이다.
"글쎄... 약쟁이들 소문이라 믿을건 없긴 해."
그냥 마약 제조사가 쇳가루를 흘리거나 순도를 낮춘걸 오해하고 오리지늄을 섞었네 뭐네 호들갑을 떠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직접 가서 약을 사오면 외부인이니 구린걸 줄리도 없고 제대로 확인하려면 여하튼 돈이 든다.
"그래, 돈도 없는데 괜히 삽질할 필요는 없지. 더 할 말 없으면 나는 이제 간다?"
염력으로 몸을 둥둥 띄우며 하품을 크게 하는 아이다. 기숙사로 가 비싼 돈 주고 산 라텍스 베개를 베고 눕는 순간 꿈나라로 갈 것이다!
>>861 험악한(귀여운) 맨얼굴 궁금해! 이미 친해진 상황이라면 무서워하진 않겠지만~ 일단 도나가 다쳐야 하니까(!!) 제가 선레를 써오는 게 좋겠죠? 혹시 선레 하고 싶으시면 말씀하시고! 하나 묻고 싶은 건, 이젤은 네로쌤처럼 의무실에서 근무하나요? 그런 게 아니라면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하는 방법도 있고 해서!
솔직히 이 바닥에서 제대로 된 녀석을 찾는게 더 코메디였으니. 가정교사를 달아주려면 할 수는 있겠지만 도미닉은 그런걸 원하지 않았다. 찰리는 이미 발라그보다 폭음을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되었고, 그러면 안돼! 라고 이제와 말한들 답으로 돌아오는건 40mm의 플리셰트 탄일것이다. 그리고 그건 중장갑도 막을 수 없겠지.
"그래, 가라. 나도 좀 자야겠다. 피곤하네."
그렇게 말하며 의자에 몸을 뉘인다. 테이블에 다리를 올리자 소장의 헬멧의 등이 조금씩 점멸하기 시작했다.
리아가 뺨까지 살짝 붉히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자, 에덴은 한 술 더 떴다. 입술을 달싹대며 잡지, 라고 겨우 말하는 리아를 바라보다가, 에덴은 눈을 꼭 감고 자기 이마를 리아의 이마에 툭 기댔다. 그리곤 살며시 손을 들어, 리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려고 한다. 그러고 나서야 에덴은 자신의 이마를 들며 눈을 떴다.
"후후후, 장난은 이쯤해요... 더 식기 전에 데워야겠네. 먹고 나서도 배고프면, 배달을 시킨다던가, 아니면 나가서 더 사먹어도 좋을 것 같아요."
장난이라는 말로 얼버무리며 몸을 일으킨 에덴은, 리아가 위태위태라는 말을 온 몸에 써붙인 것만 같은 동작으로 튀김을 집어들려 하자 잽싸게 몸을 일으켜서는 튀김 접시를 집어들었다.
"아뇨, 언니, 또 무작정 고화력으로 돌렸다가 전자레인지 폭발시킬 거죠? 같이 가요."
오늘 주말 데이트를 또 가전제품 매장에서 하고 싶진 않네요, 하고 농담처럼 덧붙인 에덴은 혀를 쏙 내밀어보이고는 리아를 부축하다시피 잡아주었다.
하고 엑스칼리버는 짐짓 겸양을 떨었다. 그건 겸양인 것이 확실했다. 저번에 옆에서 하나씩 주워먹은 통새우 미니 고로케는 상당히 맛있었고, 사샤 이외에 그것을 맛볼 기회가 있었던 운 좋은 동료들 사이에서도 호평이었으니까. 주방에서 뭔가 맛있는 냄새가 나고, 새하얀 단발머리를 한 살카즈가 서 있으면 사샤 이외에도 주방을 얼쩡대는 동료가 꽤 있었다. 물론 그 중에서 음식을 가장 적극적으로 집어먹는 건 사샤였지만, 엑스칼리버는 그것을 딱히 저지하거나 하지 않았다. 말 수가 적어도, 사회성이 없어도 엑스칼리버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샤에게, 믿음직스러운 동료에게 그렇게 친근감을 표했다.
"아, 그러신가요. 무리하지 마시고 느긋하게 마치세요."
가봐야겠다는 사샤의 말에 엑스칼리버는 딱히 부정을 표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염려하는 말을 한 마디 남겼다. 쓸데없는 참견이라고 할 수도 있고 겉치장뿐인 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원래 모든 관계는 가식이 진심으로 바뀌어가는 데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던가.
한술을 더 뜨는 에덴의 말에 말조차 구성하지 못한 오니의 소리가 입술 틈새로 세어나온다. 오니는 무슨 말을 하냐는 듯 희미하게 떨리는 눈꺼풀을 느끼며 에덴을 바라보지만 이어진 에덴의 이마를 맞대는 행동과 쓰다듬에 결국 눈을 꼭 감아버리곤 활동기능을 포기해버린 로봇마냥 자그맣게 숨을 뱉어낼 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는 체로 목석처럼 굳었던 오니는 이마를 떼어낸 에덴이 거리를 두고 나서야 천천히 눈을 뜬다.
" .... 나쁜 후배..."
놀리지 말라는 듯 조금이나마 평정을 되찾은 눈으로 장난이라며 얼버무리는 에덴을 보며 작게 주얼거린 오니는 일단 튀김 접시를 들고 갈 생각이었지만 이내 그것도 잽싸게 몸을 움직여 접시를 잡는 에덴 탓에 실패 해버리고 만다. 퇴로가 막히자 움찔한 오니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무어라 말을 할지 고민한다.
" 나, 튀김 데울 줄 아는데... 근데, 데,데이트..? "
데이트라는 에덴의 덧붙인 말에 다시금 화들짝 놀란 오니는 결국 안되겠는지 혀를 쏙 내밀어보이는 에덴을 타박하듯 자신을 부축한 에덴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콩콩 두드린다. 물론 그 주먹에는 전혀 힘이 실려있지 않아 아프지는 않았지만.
" 에덴.. 점점, 개구쟁이, 되어가. 예전엔, 안 그랬는데. "
에덴과 함께 전자렌지 앞에 선 오니는 이건 자신있다는 듯 에덴 손의 접시를 들어서 전자렌지에 넣고 올바르게 돌린 후에 살짝 고개를 돌려 얼굴을 바라보며 작게 말한다. 에덴을 보며 무슨 새각을 하는지 잠시 입술을 딸싹거리다 검지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펼쳐서 에덴의 코를 건드리려 한다.
알라스토르, 그가 아르고 에이전시에 몸을 담게된지 3달정도가 지났을때 얻게된 코드네임이었다. 복수자라는 뜻을 담고있는 그 이름은 그에게 있어 어울린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6년이나 그 이름으로 활동해온 지금은 이미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버렸기에 아무런 생각도 들지않았다.
"글쎄, 어떨까."
꼼지락거리며 자기소개를 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있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굳이 다시 한 번 자기소개를 한다는것인 본인이 그만큼 거리감있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라고 느꼈다. 그 거리감을 굳이 좁힐 생각은 없지만.
"현장이 아닐땐 라샤라고 불러도 돼. 리타"
하지만 같은 조직에서 일하고있는 와중에도 코드네임으로 불리며 서먹서먹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보단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는게 좋을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게 불편한거야?"
악의없는 순수한 궁금증이 자아낸 물음을 내뱉으며 그는 눈 앞의 의자에 걸터앉았다. 더 이상 시선은 그녀를 향해있지 않았다.
기껏 장난은 이쯤하자고 해두고 고개를 돌리려 했건만, 리아의 한 마디가 에덴을 붙들어버렸다. 에덴은 돌리다 만 고개로 눈을 가늘게 뜨고 리아를 살며시 곁눈질하며,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띄웠다.
"싫어할 거에요?"
하고, 에덴은 짓궂기 그지없는 질문을 리아에게 던졌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나서 에덴은 딱히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튀김접시를 엎어버리던가 전자레인지를 최대출력으로 20분씩 돌리던가 할 것 같았는걸요." 하며 에덴은 능청스럽게 튀김접시를 쥐고 리아와 함께 전자레인지 쪽으로 갔다. 그러다 리아가 투닥투닥 가슴팍을 때리자 에덴은 후후후 하고 웃어버리고 만다. "그건 유감이네요." 리아에게 접시를 내어주고는, 그녀가가 출력을 너무 높게 설정하거나 시간을 너무 길게 설정하지 않는지 확인한 에덴은 내심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리아가 코끝에 경고하듯이 검지손가락을 툭 올리자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만둘까요?"
가넷을 깎아붙여 놓은 것 같은 예쁜 붉은 눈동자가, 눈웃음을 치는 눈꼬리 안에서 반짝인다.
나른한 휴일 오후. 도나는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살의 포근함을 만끽하며 사무실 근처에서 조용히 혼자만의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사무실 사람들은 아직 조금 어색하고 무서워 보이지만 다들 친절하고 상냥해. 익숙하지 않은 훈련에 적응하는 것은 힘들지만, 이제 살아남기 위해 혼자서 발버둥 치지 않아도 돼. 그녀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마냥 긴장을 풀어놓은 채 발길이 닿는 대로 걸음을 옮겨놓았다.
"앗?"
아야. 평온함의 대가는 결국 이런 건가? 꼴사납게 흙바닥에 엎어진 도나는 저를 이렇게 만든, 바닥에 빼죽 튀어나온 돌부리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주위에 사람이 없었기에 부끄러운 상황은 면할 수 있었지만 바닥에 쓸린 무릎에선 핏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냥 두어도 자연스레 아물 가벼운 상처였지만, 평소 훈련 등으로 자잘한 부상이 잦았던 도나는 습관적으로 의무실을 찾았다. 똑똑똑.
"계세요...?"
그녀는 문 손잡이를 돌리고 나서야 여기 올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작 무릎이 까진 걸로 의무실을 찾다니, 어린아이도 아니고. 분명 웃음거리가 될 거야. 하찮아 보일 거야. 하지만 어쩌겠어. 이미 문은 열려버린걸.
리타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주변을 잠시 살피다, 다시 자리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시기 시작한다. 큼, 하고 리타가 목을 가다듬었다.
" 아,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단지... "
리타가 놀란 눈으로 라샤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더이상 리타를 향하지 않는다. 리타는 커피잔을 한 번, 라샤를 한 번 바라보다 다시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런 것은 아니고, 단지...
" 그, 저를 좀... 불편하게 여기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실제로 저를 꺼림칙하게 여긴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혹시 불편하실까봐... "
그녀가 뜨문뜨문 말을 이어갔다. 매끈하게 정리되지 못한 횡설수설한 말들이었다. 두 손은 따뜻한 커피잔을 쥐고 있었지만, 당장이라도 제 몸에 달린 뿔과 고리, 날개를 쥐어 잡고 싶은 기분이었다. 검은 고리와 날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구태여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테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뜻을 알았다. 동족 살해. 살인자. 그래, 살인자의 증표. 신의 이름으로 용서 받을 줄만 알았던.
" 저는, 걱정되어서... "
리타가 커피잔 사이로 시선을 박았다. 다시 남자의 눈을 바라보기가 무서워진 것이다. 리타가 살며시 눈길을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손, 어깨, 입술, 그러한 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