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비아의 섹터 09 이동도시, 그 한복판에 위치한 사무소. 인력대행사무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그 실상은 온갖 용병들로 들어찬 사설경비업체이다. 이 업체가 특이한 것은 시류의 상황을 따지지 않고 이익이 된다고 독자적으로 판단한 가치를 따른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아르고 에이전시는 당신이 누구던, 어디서 뭘했던간에 방주 밖에 남겨진 모두를 받아들인다.」
아마도 이게 영화였다면 지금쯤 극의 고점을 향해 올라가는 갈등이 나오고 있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이번에는. 그녀는 마치 그 말을 마법처럼 여기고 항상 입에 달고 살았지만 아마 그 말이 나온 후에는 항상 똑 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것 쯤은 그 누구보다 선배인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안 갚을 생각은 없어!!! 빌린 돈은 갚는다!!! 그 약속은 지키거든!!! “
그래도 그녀가 지키는 몇 안되는 약속이 금전에 대한 것이다. 청중들은 의심하는 눈초리기는 했지만 그녀가 저러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것을 판단하자 이제는 그녀와 당신을 그대로 놔둘 모양인 듯 그녀가 있던 자리에는 누군가가 이미 꿰찬 상태였다. 잠시 벙찐듯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본 그녀는 이내 자신의 옷소매를 끌어당기는 당신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여 그대로 손을 마주잡았다.
“ 아니!!! 약속을 지키러 가야 할 거 아니야!!! 출근하러 가야지!!! 미안한데 주정뱅이 혼자서는 길을 잃을지도 몰라… 심지어 나는 제법 마스크가 괜찮은 편이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 적당한 오니가 길안내나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
일부러 어딘가 과장된 듯한 몸짓으로 당신과 함께 가게의 문쪽으로 먼저 나가 문을 활짝 열고는 태양빛을 가게 안에 들여놓았다. 대낮부터 술에 취해서는 주정을 부리고 있던 것이다.
질질, 로우와 손을 맞잡은 체 끌려나오듯 밖으로 나온 오니는 대낮의 햇살에 눈이 부신 것을 느끼며 아주 잠시 눈을 감았다 뜬다. 금방 눈이 적응을 해준 덕분에 아주 잠깐 찌푸려졌던 표정이 다시금 평소의 무덤덤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손을 잡고 나아가는 로우의 손을 어찌할지 고민을 하다 살며시 맞잡은 오니는 붉그스름한 입술을 천천히 열었다.
" 나 때문에, 흥 깨져서 미안해. 로우 "
출근 때문에 로우를 찾아 이곳까지 온 오니였지만, 로우가 즐기는 것을 방해했다는 미안함이 있는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분명 선후배 관계이지만 나이는 오히려 로우쪽이 연상인 기형적인 둘의 관계는 의외로 꽤나 괜찮았고, 오니는 로우와의 그런 관계가 좋았다. 그래서 로우가 좋아하는 것도 존중해주고 싶었지만 출근 같은 기본적인 것은 자기가 도와주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몇번이고 로우를 귀찮게 만든 것이었다. 그게 늘 미안했던 오니였기에 조금은 기운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을지도 모른다.
" 출근만 하고 나면.. 술, 같이 마셔줄게. 재미는.. 모르겠지만. "
여전히 한걸음 정도 뒤쳐진 체 손을 잡고 나아가며 로우의 등을 보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한 오니는 혹여 로우의 기분이 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를 좌우로 살짝 살짝 기울어 살펴본다.
도나는 목에서 쇳소리까지 내며 기쁜 듯이 되물었다. 이는 지금까지 그녀가 내었던 목소리 중에 가장 큰 소리였을 것이다. 동그랗게 뜬 눈은 가늘게 휘어 손톱 모양을 그렸고, 그녀는 손바닥으로 양 뺨을 감싸며 혀를 날름 내밀었다. 끝이 반으로 갈라진 혀가 파르르 떨렸다.
"약속한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꼬리가 슬그머니 올라와, 마주 보고 있는 네로의 손등을 톡. 하고 가볍게 건드렸다. 그녀는 시내에 몇 번 가본 적이 있지만 엄연히 교육 목적이었을 뿐, 순전히 그녀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들르는 것은 처음이 될 테니. 그녀가 그토록 기뻐할 만도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테이블을 둘러싼 인원들이 하나둘 자리를 일어나기 시작했고, 몇몇 이들은 어질러진 테이블을 정리하기도 했다. 그녀는 햇병아리 신참인 저도 조금은 거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앞에 선 네로를 슬쩍 올려다보았다.
>>73 오오 좋네요 관계 코멘트같은건 역시 머랄까 뿌듯하기도 하고 보람차요 "내 책상에서 담배를 핀다고? 아, 어쩐지 가끔 볼때 담뱃재가 수북히 쌓여있더라고. 근데 상관없어. 어차피 다음 날엔 난 거기에 없을거고, 그 날 당직자만 욕하면서 치울테니까 말이야. 가끔 아이다는 귀여운 짓을 한단 말이지. 중요한건 안 어울린다는거야."
그녀에게 햇살은 하얗고 두꺼운 유리막과 같았다. 안정감은 느낄 수 없었고 지금 제대로 서있는지 조차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워서는 당신과 마주잡은 손에 아주 조금이지만 힘이 들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표정은 가게에서 나올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웃는 얼굴로 당신이 하는 말을 끊으려 들었다.
“ 리아가 미안해 할 이유가 있던가? 원인을 따지면 내 쪽이 문제 거든!!! “
길을 걸어가며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말을 거듭한다. 오히려 자신이 잘못했다는 정도는 의식하고 있는 것이 가게 안에서 하고는 어쩐지 조금 다르게 보였다. 그녀가 사무소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이어진 기형적이기만 한 관계였지만 그녀도 어쩌면 당신도 이런 관계가 그다지 나쁘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당신의 말을 듣고는 자세를 바로 잡았다. 길 한가운데에 서서는 당신과 눈을 맞추고 당신이 하는 말에 대해 물어보려 했다.
“ 당연하지!!! 화났어!!! “
이상하게도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에는 분노와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녀가 방해 받는 것을 좋아하는 특이한 취향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표정이나 행동에서는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았다.
한입 크기의 칵테일 새우에 으깬 감자와 야채, 후추, 소금 등으로 간을 한 소를 양옆으로 붙여 공모양으로 만들고, 녹말가루를 섞은 튀김옷과 굵은 빵가루를 입혀 한입 크기로 튀겨낸 것. 깨무는 순간 바삭하고 쫀득한 껍질 아래로 옅은 바다향을 품은 새우의 풍부한 기름기가 터져나온다. 생각없이 하나둘 집어먹다 보면 일일 섭취 권장 칼로리를 훌쩍 넘어갈 수 있으니 주의.
선후배 이전에 친구니까. 친구가 즐기던 것을 망치는 것이 미안하다고 말하려던 오니는 끝내 그 말을 뱉지 못하고 입에 머금는다. 저 미소를 보고 나니 굳이 그 말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오니는 그저자기가 잘못 했다는 로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화났다는 로우의 말에 놀란 듯 맞잡고 있던 손에 커다란 떨림이 몰려온다. 분명 로우도 느꼈을 것이 분명했다.
" 그런걸로, 안 다치는거 알잖아. 뭐, 다치는 것도 익숙하지만. "
과장스런 몸짓으로 자신의 몸을 살핀 로우에게 잔잔한 목소리로 말한 오니는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쉰다. 언제나 로우와는 이렇게 되는 것 같아서, 오니는 등을 두드리며 말하는 로우를 바라보았다.
" 선배이기도 하지만 친구니까 그런거야. 로우. 너가 좋아하는게 뭔지 아니까. 방해해서. 그래서 그런거야."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말을 한 오니는 일단 멈춰선 채로 있으면 안되겠다 싶었는지 아까와는 반대로 한걸음 앞장서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친구여서 그렇다는 말을 한게 내심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말하려고 하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한순간 움직임을 멈추고는 이내 크게 웃어버리면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언제나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것인지 아니면 그저 평소처럼 생각이 없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손이 떨려오는 당신에게 맞추듯 더욱 강하게 손을 쥘 뿐 그녀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아니아니 평범하게 안좋거든. 현직 죽을병에 걸린 년이 하는 말이니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게 좋을걸? 몸만 믿고 뻣대다가 골로가는거 한순간이다 너? "
자신을 바라보는 당신에게 어이가 없다는 듯이 좌우로 고개를 저어보인 그녀는 쇳소리 같은 발소리를 내면서 앞서나가려는 당신을 쫓아가려 빠른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목소리가 작아지는 것을 느끼는 걸과 동시에 당신의 등을 강하게 치려 들었다.
" 너랑 지낸지도 제법 오래됐는데 말이야. 너는 아직도 나를 모르는구만!!! 좋아하는 걸 방해받는다고 해서 진심으로 화를 내는 건 삼류!!! 방해하는 존재 조차 좋아해야 진정한 일류아니겠냐!!! 나는 너도 좋아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루이틀이냐? "
가벼운 한숨을 뱉은 그녀는 이내 아무일도 아니라는듯이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술도 마시지 않고 일도 열심히 하라는 말에 어딘가 말이 이상하다고 느낀듯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가볍게 운을 뗐다.
" 내가 리아 너랑 약속했던건 매일 출근 도장은 찍는다! 였던것 같은데!!! 날 속였구나 리아 네놈!!! "
자캐의_약간_중간_엄청_화날때_단계별_반응 : 약간 화날 때의 엑스칼리버: 눈썹을 역팔자로 찌푸리고 빤히 바라본다 진지하게 화났을 때의 엑스칼리버: 정색하고 무표정으로 빤히 바라본다 머리 끝까지 화났을 때의 엑스칼리버: 부드러운 미소를 띈다 머리 끝을 넘어 화가 난 엑스칼리버: 엑스칼리버 움브라가 된다(???)
사람_많은_곳에서_빙판길에_미끄러진_자캐반응 : 부딪힌 데를 싸쥐고는 최대한 아파하는 표정을 하며 털고 일어나겠네요. 최대한 아파하는 표정을 짓는 이유는, 자빠진 걸 쪽팔려하며 일어나면 '저 사람 자빠졌네 ㅋㅋㅋ' 이라는 반응을 살 것 같지만 아파하면서 일어나면 '저 사람 자빠졌네 아프겠다...' 로 반응이 바뀌기 때문이라고(??)
자캐는_아침이_어울리는편_밤이_어울리는편 : 상대방이 아침에 머리는 부스스한 채로 잠이 덜 깨 멍한 표정을 한 엑스칼리버를 보고 싶느냐, 밤의 화려한 거리를 등지고 이쪽을 뒤돌아보며 눈을 가늘게 뜨고 생긋 웃는 엑스칼리버를 보고 싶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여러분은 어느 쪽 엑스칼리버를 보고 싶은 편?
>>211 리타는 인내심이 강하구 또 스스로 분노나 짜증을 꾹꾹 누르는 타입이기 때무네... (끄덕끄덕) 호호 저두 화나면 돌변하는 설정 무척 좋아해용 그래서 자캐에게 와장창 들이부었고.....(=리타) 유리 멘탈... 유리도 강한 거 같아요 사실 <설탕으로 만든 소품용>유리 멘탈 정도이지 않을까... 태그가 리타에게 개쎈 한 방이 된 것도 영향이 있긴 하지만요! (음흉한 웃음)
>>214 전날에 리아랑 같이 자기로 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반응이 갈려요. 리아랑 같이/가까이서 자게 될 줄 알았다면 왜인지 모르게 애교가 늘어난 에덴을 볼 수 있지만, 에덴의 오피스텔에 기습방문하거나 한 거라면 상황파악 안 된 얼굴로 리아를 멍하니 보고 있다가 화닥닥 놀라서 제정신차리고 이어서 홍당무가 되는 에덴을 볼 수 있어요 uu
>>203 승리했다! 쏙독새쟝 해태 XD!! 아그냥 뚝배기 깨버리는건가여 ㅋㅋㅋㅋㅋ함 깨져보그싶네요(??) 아앗...이번에도 놀리기 쉽지않은!!(크읏 밤에 슝슝 날아다니는것처럼 빨리 다니면 진짜 멋있겠네여 *ㅁ* 마지막 대사들은 어떻게 이렇게 하나같이 무섭고 간지나는지 다 주워담을거야....(행복
>>204 아하 에덴이는 화가날수록 표정이 풀어지는(움브라) 젠장...똑똑하잖아..또 놀려먹기 어려워보여(아쉬움) 둘다 볼래여!!!!!!!!(카메라 장전(?)) 전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자 인터뷰는 여기까지..
" ...그럼!!! 죽을때까지는 살거야!!! 그러니까 리아나 몸 관리 잘하라고. 건강 제일이란 말도 있거든! "
일부러 문장의 주체를 표현하지 않는 것은 그녀 나름의 다짐이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병은 극복할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 시대가 온다면 자신이 남아있지 않을거라는 것 정도는 그녀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슬픈 일이지만 그건 돌이키거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큰 목소리로 당신에게 자신감을 보인 뒤 발을 가볍게 내딛었다.
" 내가 리아를 미워하는 모습이라는게 상상이 안가는데 말이지... 오히려 네가 나한테 환멸느끼는 편이 빠를것 같은데? "
적어도 이번은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자신은 분명 주정뱅이에 망나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인을 버릴 수 있을만큼 냉정한 성격은 아니었다. 물론 자기보전의 욕망은 남들만큼 가지고 있었기에 조직이 무너지는 사이에서도 홀로 도피행을 택한 것이지만 함께하는 동안만큼은 동료나 친구라고 인식한 사람을 버릴만한 사람은 아니다. 그것만큼은 당신도 같을 것이다. 그녀 역시 자신이 당신을 싫어하게 되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는 만큼 그 반대도 성립하지 않을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 한 것은 아니었다.
" 거짓말의 댓가치고는 너무 무거운것 같은데!!! "
그녀는 당신의 손에 이끌려서 당신의 뒤를 쫓아 오후의 메마른 햇살이 내려쬐는 도시를 헤쳐간다. 목적지는 언제나의 사무소. 이곳에서는 그다지 오래걸리는 곳이 아니었다.
짜증스러운 소리를 내며 소장실 테이블에 다리를 올리고 있는 그녀는 누구인가. 바로 바로 아르고 에이전시의 원년맴버이자 소장대리 당직 경험 1위를 차지하는 짬토끼 라이레이 되시겠다. 평소보다 수북히 쌓여있는 재떨이는 놀랍게도 한 번 버렸던 녀석이다. 즉 평소보다 오래... 이틀 연속으로 당직을 섰다는 말씀. 지원자는 아무도 없고 입사 초반인 친구들에게 맡기고 가기에는 책임감이 없는것도 아니라서 이 악 물고 캔커피와 담배로 눈을 붉혔다.
다들 화기애애한 와중에 유독 저기압인 이가 있었으니, 마치 다람쥐가 도토리를 입속에 담듯 과자를 한주먹씩 욱여넣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두린족이라고 했나... 훤칠한 이들이 많은 아르고에선 자신도 제법 작은 축에 속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확실히 종족 단위의 특성은 어쩔 수 없다보다. 그렇기에 그런 불만 가득한 모습이 더 귀여워보여서 한번쯤은 찔러보고 싶었을까?
이상한 나무심기를 시킨다. 라는 말에 얼핏 생각나는게 있다면 화려한 전장의 불꽃놀이를 생각하며 들어온 이들에겐 지루하기 짝이 없는 아르고의 일상이려나... 그런 부분에서 실망하는 대원들은 몇몇 본거같긴 한데, 대체적으로 다들 금방 순응해보였지만 여기 있는 그는 그렇지 않은가보다.
"다리까지 덜덜 떨고선, 보는사람이 애처롭게 느낄 정도로 좌불안석인데? 이런 자리는 맘에 안드나봐?"
비록 대화의 억양은 그녀의 분위기와 어울려 음침하고 날카롭게 와닿았지만 아무리 작다 해도 견고한 기사같은 이에겐 그것이 공포로 와닿을 리가 없다는걸 잘 알고 있었다.
>>246 로우라면 나이가 나이니 아이돌은 활동했다면 미 은퇴한지 오래됐을거고... 안했으면 처음부터 희극인단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마 지금은 예능프로에 자주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아마 보이는 모습은 지금에서 망나니성을 뺀... 박명수씨 같은 느낌일까요? 오프에서도 그다지 차이는 없을것 같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나. 피곤에 시달려서 거의 병처럼 '언제와'를 반복하고 있던 그녀 앞에 기적이 일어났다. 한 번 자리를 뜨면 거진 2주는 기본으로 자리를 비우는 소장이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 태연한 말투였고, 언제나 그렇듯 머리엔 헬멧이 씌워져있었다.
"뭐야 오늘 당직이었나보네. 수고한다."
그런 그가 아이다의 피곤한 기색을 그제야 눈치챘는지 그렇게 말한다. 비꼼의 의도나 악의는 하나도 없는 말이었는데, 아무래도 피곤이 누적되면 예민해지기 마련이었고 그것은 곧 아이다가 예민하게 받아들이기 충분한 트리거였다.
자캐의_약간_중간_엄청_화날때_단계별_반응 : 약간 '이게 화난 걸까..? 그렇구나...' 중간 아. 음. 감정적인 반응이 보여지네요.(나름 냉정) 엄청 이 단계에서는 본인보다 해신님 말리는 데 신경써야 하므로 오히려 해신님이 입을 빌려서 퍼부을 겁니다(?)(※실제 실현 능력은 별개입니다!) -재앙이 대대손손 너희에게 임하리라. 선민아. 내 선택과 권위를 넘보는 너희의 죄업은 이 바다가 기억하고 너희를 거부하리라. 영광의 길을 걸어갈 후예에 너희들은 철저히 버려지고 짓밟히리라. '좀 다무세요...'(화내려다가도 깨장창 가라앉아버림)
사람_많은_곳에서_빙판길에_미끄러진_자캐반응 : 원래 도짓코 성향인 걸 이미 다들 알아서 으에엑! 거리며 엎어지고는 아파. 라며 울먹거리며 일어나려다가 또 엎어집니다.
자캐는_아침이_어울리는편_밤이_어울리는편 :아침의 비몽사몽한 참치가 아누트(참치인형)을 끌어안는 걸 보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밤의 제단에 기도하는 성녀를 보고 싶으십니까(?)
너_사람까지_죽였다면서_왜_그랬어_를_들은_자캐의_반응은 : 동족살해를 하려는 사람은 사람보다는 맹수나 오염물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누군가. 엔돌핀은 아주 짧은 간격으로 그녀를 보았다가 다시 과자 봉지를 보았다 하며 여러번 시선을 옮겼다. 우적우적 과자 씹기를 멈추고 엔돌핀은 우물거리며 말했다.
'이깟 자리 백번이고 천번이고 앉아있을 수 있어요! 마땅히 할 일을 던져주기만 한다면!'
발음이 심각하게 어그러지긴 했지만 대략 저런 내용의 말이었다. 침이 나오지 않아 입 안에 있는게 뻑뻑한 모양이다. 엔돌핀은 표정을 찡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힘겹게 그것을 모두 삼켰다. 볼때기는 여전히 찐빵처럼 빵빵하다. 뭐지 이건.
"그 쪽은 편하게 일하면서 월급 받아서 좋을지 모르지만, 난 아니라구요.... 벌써 하릴없이 3달 동안이나 아무것도 못 하고 묶여있는걸요."
지금 그의 상태를 묘사한다면, 주의력 산만한 아이를 생각하는 의자에 다섯 시간동안 묶어놓은 모양이다. 시선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물고기가 헤엄치듯 돌아다닌다. 주변의 작은 소리에도 산만하고 급작스럽게 시선을 돌린다. 손가락을 꼼질거리거나 다리를 떠는 행동을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도미닉이 주춤거린다. 그가 아는 아이다는 꽤 침착하고 이성적인 편이었다. 간혹 욱하는 성질을 제외하고는. 처음 만났을때만 해도 아이다는 자신을 그 자리에서 죽여버릴 기세였다. 지금 도미닉은 그 때가 플래시백 되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 회상은 아니다. 실제로 눈 앞에 재떨이가 떠오르고 있었으니까. 아주 단단한 재떨이가.
"아, 그런거냐... 그럼 가서 쉬어. 어차피 내일 아침까지는 여기 있을거 같으니까 내가 앉아있지 뭐.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하지만 소장 노릇을 하고 있으면 늘어나는 것은 오히려 눈칫밥 밖에 없기에. 하긴 대원이 이 소장실에 앉아있는 이유도 하나 밖에는 없겠지. 아이다가 원하는 말을 흔쾌히 골라 말하면서 그는 사장님 테이블 위에 털썩 걸터앉았다. 근데 그렇다고 해도 아이다가 고작 당직으로 이렇게 열을 올릴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과자봉지와 이쪽을 번갈아보던 그가 무언가 어눌한 투로 말하는게 느껴졌다. 정확히는 입안 가득있던 과자를 우물거리다보니 뭉개진 단어였지만... 기이하게도 그것이 본래 목적이었던 언어로 들려왔다.
"마땅히 할 일이라... 그건 나도 여기 와서 여지껏 받아본적이 없는데..."
이제 1년하고도 조금 지났다는 경력이 무색하리만치 그녀 역시 고이다 못해 썩어있는 물이었다. 몇번의 싸움판은 있다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말싸움으로 이어진 가벼운 폭동제압이라던가, 대부분이 환경미화같은 일들이었으니까... 그래도 자신이 있던 곳과는 사뭇다른 아르고의 환경에 차차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물론 상대방에게 금방 익숙해질거라던가 하는 말은 할수 없었다. 당장 본인부터가 감질맛나니까...
"나도 1년 조금 넘게 허드렛일만 하고 있었으니까 걱정 마. 어쩌겠어? 우리한테 주어지는 의뢰가 그게 다인데, 유령회사를 무너뜨린다거나, 억류•구금된 이를 풀어준다거나, 아니면 한창 난장판처럼 싸우거나 하는 일도 없으니까..."
그의 모습은 주의력 산만한 아이를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도무지 멈출줄 모르는 시선, 아까부터 계속 떨고 있던 다리에 이젠 꼼지락거리는 손까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런 상황에 필요한건... 우선 지금 당장은 억지로 과자를 욱여넣어 적잖이 답답할 그를 위한 음료수.
"일단 음료수라도 좀 마시면서 이야기하자. 그러다가 목막혀서 저세상 갈지도 몰라?"
얌전히 그의 앞에 음료수가 가득한 컵을 놓아두고선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생글생글 웃어보였다.
"그 짬에, 라기에는 육개월도 안 된 애들을 당직에 세우려는 네가 나쁘다고 생각하는데...."
용병단 짬만 십수년의 라이레이의 눈에 6개월 된 친구들을 소장 대리로 세우자는 말은 너무나도 위험해 보여서 종종 당식을 서주고는 했는데... 이는 유구한 전통으로서 라이레이의 어쩌구 저쩌구. 말을 하는 사이에 화 비스무리한 감정은 가라앉아서 재떨이를 다시 책상 위에 살포시 올려두었다.
"나도 이제 나이가 있어서 예전처럼 팔팔하게 연속당직은 못 하겠네."
눈을 느리게 꿈뻑이며 품 안의 담배를 찾다가, 이미 돗대까지 다 피워버린 것을 알고는 눈쌀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왔으면 일을 해야지. 이건 아르고의 운영 방침이라고. 안 그래도 너네 평소에 내가 일 안 주면 맨날 과자 까먹으면서 놀고 있을거 아니야. 무슨 저기, 다과회 온 리베리 아가씨들처럼."
확실히 아르고의 수습기간은 짧다. 대원 중 누군가는 여기를 형벌부대라고 말했는데 그 표현이 완전 틀려먹은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이곳은 자기 발로 걸어오는 이들도 많았지만, 테러활동을 하다가 잡혀서 운이 좋게 기회를 찾고자 온 녀석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상이나 선과 악의 관계없이, 도미닉은 그들을 이미 당장 투입할 수 있는 전력이라 판단했고 기간이 끝나면 바로 자신의 대리로 써먹기를 원했다.
"그럼 일단 담배부터 끊지. 다시 전설의 연속당직 생체리듬이 돌아올지 누가 알아."
도미닉이 코 앞에서 가볍게 부채질 하는 시늉을 해보였다. 정확히는, 홀로그램이 번뜩이는 헬멧 앞에서. 딱히 담배를 기피하는건 아니었지만 여기는 소장실이고 도미닉의 방이다. 심지어 실내흡연은 그녀 말마따나 '애들'에게 좋지 않다. 도미닉은 안 그렇게 보이지만 은근히 그런걸 신경쓰는 구석이 있었다. 근데 그런 헬멧을 쓰고도 냄새가 나기는 하는걸까?
"별거 아니야. 보안협력차 우르수스 쪽에 잠깐 다녀왔는데 이미 일은 다 끝나있더라고. 학교가 완전 개판이 나있더라. 거기 애들, 눈이 완전 맛이 가있었어. 나라도 못 버텨 그런건."
무엇을 보고온건지 고개를 가볍게 절레절레 저었는데 중요한 것은 그 일이란게 파토가 났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도미닉은 헛탕만치고 돌아온 것이다.
"그거는 임무를 충분하게 받아서 로테이션 파견을 보내지 못 하는 누구누구의 잘못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라이레이는 성과급도 성과급이지만 연차가 높고 이런저런 일에 관여하는 덕에 임무에 잘 나가지 않아도 충분히 많은 돈을 번다. 심지어 임무 도중에 구매하는 담배도 경비 처리가 되니까 돈 나갈 일이 거의 없지. 도미닉이 그 조항을 땅을 치고 후회할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분명 뼈아프긴 할 것이다. 비싼 담배만 한 보루씩 사가니까.
".....차라리 죽으라 그러지?"
그 전설의 연속 당직 생체리듬도 금연도 전혀 바라던 바가 아니었다. 가볍게 도미닉을 째려보다가 염력으로 자기 몸을 두둥실 띄워 소파에 눕는다. 누우며 끄응 하고 신음을 내는 것은 덤이다.
"매일 매일 세상이 흉흉해지네. 학교랑 애들은 안 건드렸으면 좋겠는데."
혀를 차며 소파에 몸을 더 파고들어 편안한 자세를 잡았다.
"리유니온 쪽에서 마약공방을 하나 집어 삼키고, 자기들 상품에 저순도 오리지늄을 첨가해서 판매하고 있다는 전황은 포착했는데... 시간을 두고 광석병 감염자수 변동추이를 살펴봐야 뭘 자세히 알 수 있겠어."
할 말 없다는 소장의 대답에 라이레이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런 불안정한 구조로 8년 가까이 되가다니, 운이라 해야 할지 실력이라 해야 할지.
"그걸 알면 찰리 월급을 올려주거나 가정교사라도 붙여주질 그래."
아직 미성년자인 찰리에게 보호자에 가장 근접한 사람은 도미닉이었으니, 눈을 가볍게 뜨며 제안하였다. 찰리한테 월급을 준다고 해도 막.. 엄청 대단한 소비를 하지는 않으니까, 차라리 월급을 삭감하고 교사를 붙이는게 장기적으로 옳은 선택일까. 모르겠다. 이런건 전문가가 따로 필요한 법이지.
"아.... 네가 그렇게 말하면 걔들 진짜 마약에 손대는거잖아....."
마약은 자연스럽게 사회의 취약계층을 파고들고, 위생도 면역력도 그닥인 그들이 저순도라 할지언정 오리지늄을 직접 신체에 흡수하고 있다면 빠른 시일 내에 광석병이 발병할 것이다. 인간관계가 파탄난 취약계층이 더 많은 마약을 섭취하니까 연고도 없이 몰래 광석화해서 2차 감염원이 될 것이고... 어쩌면 섹터에서 의뢰를 할 때에는 빈민촌 철거 및 감염자 퇴거 의뢰가 될지도 모르겠다.
"작전비 조금만 주면 색터 행정부에 견적 올릴만한 보고서 작성해올게."
이 사태를 미리 파악하는 섹터는 고름을 미리 짜서 좋고, 우리는 행정부의 신뢰와 일거리를 확정적으로 독점할 수 있어서 좋다. 문제는 그게 진짜임을 밝히는데 돈이 들어가서 그렇지...
다소 뻔뻔하게도 들리는 너의 말에 사샤는 슬 미소를 지을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도넛까지 만들어 허공에 뿜는 모습이 뻔뻔했지만 밉게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금 당돌하고 얄미운 후배, 그 정도로 됐다.
"다음에 가보도록 할게요."
사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 다음이라는 게 과연 언제가 될지는 사샤 본인조차도 알 수 없었다. 뭐든 조기발견이 중요하다는 점에서는 공감하는 바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샤가 제 몸을 끔찍이 아끼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귀찮기도 하고, 큰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했다. 광석병에라도 걸렸으면 어쩔거야? 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으나, 한 번 걸린 이상은 별달리 손 쓸 방법이 없는데다 다른 이들에게 옮기는 것 또한 아니기에 더더욱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네, 맞아요. 후배님은요? 출퇴근을 하는 모양이던데, 근처에 사나봐요."
딱히 어딘지는 관심은 없었고, 알아둘 필요 또한 없었다. 때문에 방금의 말은 대답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그만이나 다름이 없는 말이었다.
그 앞에 콜라가 담긴 컵이 놓인다. 새카맣고 혹은 검붉어 보이기도 하는 액체에서 탄산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온다. 컵 안에 비치는 엔돌핀의 모습이 잔잔히 흔들린다.
"......"
그는 검은 콜라를 지그시 내려다 보았다. 그 범위가 좁아졌을 뿐 엔돌핀의 동공은 여전히 브레이크댄스를 추고 있다. 오예 렛츠 댄스 브레이킹 브레이킹! 그나마 불안해 보이던 손발은 잠잠해졌으니 다행인가? 엔돌핀은 약 30초 가량을 그렇게 목석처럼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양 손으로 콜라 컵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41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417 원래 천상의 외모는 인간의 언어로 설명 불가능해요.(? >>418 리아 같은 멋진 선배가 있으니 다들 앞다투어 빼빼로를 줬을 거라구요~ >>419 ㅋㅋㅋㅋㅋ 받긴 하는군요! 류드라한테 빼빼로 주고 싶다!
해방감을 느끼는 탄산이 피어오르며 컵에 잔잔한 파동을 흘리고 있었다만 어째 그것을 바라보는 이는 어지간히도 불안한듯 보였다. 이쯤 되면 별도의 심리상담이라도 받아야 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떨리는 동공, 불행중 다행인건 그나마 손발의 움직임만큼은 잦아들었단 것이다. 그렇다 해서 그의 복잡한 심경을 잠재웠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사람에 따라 감정의 역치도 다르니깐 내가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이때껏 버텼는데 그 이상이라고 못버틸까, 라고 생각하는데? 음~ 너무 막연한 생각인가? 아니면... 뭔가 커다란 일이라도 생기길 원하는 걸까...?"
벌써부터 파들거리는걸 보면 금단증상이라도 걸린 건지, 그녀 역시 호승심 넘치는 이들을 수없이 봐왔지만 이정도로 평온한 일상에 염증을 느끼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과연, 그의 코드네임이 괜히 엔돌핀인게 아니었단 증거일까?
"아, 그렇게 보였어? 내가 인상이 좀 차갑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서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자주 웃곤 했거든~ 기분나쁘거나 했다면 미안? 하지만 웃기게 생기거나 하진 않았어. 그건 확실해. 음~ 뭐라고 하면 좋을까~ 마치 자신이 태어났던 전장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기사 같은 모습이 보였을까? 그정도로 악재 타도! 같은 문구를 얼굴에 써붙인 사람은 처음이거든."
산 어딘가에 숨은 적군 저격수와의 숨통을 쥐어 흔드는 스릴, 그런 목숨을 내건 상황이야말로 스나이퍼다운 발상이지 않을까? 그것은 분명 전방에서 직접 무기를 부딪혀가며 싸우는 이들과는 다른 방향의 전의를 불러일으킬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렴 보이는 적보다 보이지 않는 적이 도사리고 있다는 편이 훨씬 더 긴장감 넘칠테니,
다만 그런 과거회상을 하며 고조된 분위기의 그는 어째 그런 감각에 의도적으로 취해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건... 또다른 의미의 발견일지도 모른다.
"...죽음과 가까워질 수록 살아있음을 느끼는 거려나? 으음... 좀 어려운 주제네..."
그의 질문에 그녀는 잠깐 시선을 옆으로 빗겨내며 살짝 앓는 소리를 냈다. 마치 없는 기억을 끄집어내는듯이, 하지만 그것은 망각이라는 서랍장 안에 기밀이라는 자물쇠로 잠겨진 서류같은 것이었고, 그것에 맞는 열쇠를 찾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게... 오리지늄이 빼곡히 들어선, 선민은 커녕 생물자체가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은 버려진 공간에 자주 내몰렸다는거? 아마 그건 1년 가지고는 도무지 설명이 불가능할거 같지만 말야~"
입가에 완연한 미소를 띄고있던 부드러운 곡선이 조금씩 비죽이며 귓볼을 향하고 있었을까, 눌러담고 있던 광기가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느낌이었다.
>>653 에덴과 마찬가지네요. 리아는 에덴을 그렇게나 가까이 여겨주고 있었던 건가요yy(감격) 원래 에덴주가 생각하기로는 회사에서 늦게까지 서류 작성할 일이 있어서 작성하다가 생각나서 리아의 방에 와봤다- 였는데 리아주 말씀대로라면 회사 들렀다 퇴근하는 길에 자기 오피스텔로 간 게 아니라 리아네 방으로 왔다- 고 해도 괜찮겠네요. 리아가 맡았던 임무가 격렬한 전투 임무만 아니라면 아주 좋다고 생각해요uu!
"부정은 못하지. 하지만 광석병 감염자들의 얼마 없는 피난처를 그리 표현하면 못 써. 이녀석."
알트 본인이 그 당사자이니까, 강한 어조로 부정하기도 뭐하다. 특이한 사람들이라. 그런 이들이 모였기에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남은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하하... 그래. 안좋은걸 배우는것도 배운다고 해 줘야지."
알트는 5년간 이곳에서 일하며 살아남았다. 물론 우리가 직원들의 목숨을 내던지는 블랙기업까지는 아니지만, 무력을 행사하는 곳이다. 그러한 곳에서 저만큼이나 살아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당연히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후배들이 그것을 받아들여 살아남을지 어떨지는 미지수이지만.
>>666 리아가 불려나갈 정도의 전투 임무였는데 자기한테는 기별 하나 없었다는 점에서 당황 + 리아언니는 힘들게 일하고 오는데 자긴 탱자탱자 놀고 있었다는 죄책감으로 감정선이 뒤흔들려버릴 것 같았거든요 yy 가벼운 전투임무였다면, 리아주가 원하면 그렇게 하기로 해요. 선레는 어떻게 할까요?
생각해보면 여기 남는 사람들은 왜 남는건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말하는 내가 눌러붙어서 5년이나 지내고 있다만 그런 사소한건 넘어가도록 하자.
"하지만 선배도 잘 알잖아요. 뭐 이곳의 상식이야 알려줄 수 있어도 전투부분에서 절 참고하긴 힘들다는거."
간단한 체술의 참고정도면 모를까. 같은 스페셜리스트 포지션이 아니고서야 내 전투방식이 차이가 나는건 내가 가장 잘 안다. 어쨌거나 이런 업종이기에. 결국 밖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전투기술을 가르치는게 제일 중요하고. 그렇다고 멘탈케어쪽으로 자신이 있는것도 아니었기에 지금 이렇게 둥가둥가 놀고 있는거지.
"뭐 그게 정공이지만, 글쎄요~ 선배가 앞에서 방패들고 전진하고 있는데 뒤를 신경 쓸 놈들이 있을까 싶네요~"
전투에 있어서 방심은 죽음이라지만, 조금 분위기가 무거워진 감이 있어 나는 가볍게 농담을 했다. 실제로도 그 위압감은 장난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무조건 나는 괜찮다고 말한건 아니라는듯 쓴 웃음을 짓는건 별개로..
문을 열어보면, 그 곳에는 조금 의외의 풍경이 있었다. 새하얀 머리카락의 단발머리 소녀가 잠들어있는 모습. 쿠션을 끌어안은 채로 앞으로 고꾸라진 건지 절을 하는 건지 고양이가 식빵 굽는 것 같은 자세로. 하얀 머리카락은 관자놀이에서 돋아난 검붉은 뿔 위로 흐트러져 있고, 그 아래의 속눈썹 긴 눈은 곱게 꾹 감긴 채로, 기묘한 자세로 잠들어있는 것 빼고는 별다른 잠꼬대도 하지 않고 그녀는 곱게 잠들어 있었다.
앉은뱅이 테이블 위에는 술안주로 가져왔음직한 닭꼬치와 튀김이 들어있는 스티로폼 접시가 놓여 있고, 그 옆에는 이미 비어 있는 맥주 캔이 하나 있었다. 십중팔구 냉장고를 열어보면 다른 맥주캔이며 술병이 들어있을 모양이다.
에덴 마이어. 작년 이맘때쯤 입사한 루키로, 리아에게 멘티로 붙여진 오퍼레이터였다. 함께 전장을 몇 차례인가 굴러다니며 몇 달을 보내자 그녀는 제법 혼자서도 1인분을 할 수 있는 오퍼레이터로 자라났지만, 멘토와 멘티 생활을 하면서 다져진 유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그녀는 종종 이렇게 리아의 집을 찾아오곤 했다.
리아가 들어오는 소리가 에덴의 귀에 들렸는지, 에덴은 앞으로 고꾸라진 채로 눈을 움찔했다. 숱 많은 속눈썹이 찬찬히 열리나 싶더니, 석류석을 보는 것 같은 새빨간 눈동자가 리아를 빤히 응시했다. 인사 대신 에덴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샤워하니까 살 것 같다. 오니가 샤워장을 나서면서 느끼는 단촐한 감상이었다. 언제나 임무에 나설 때면 날뛰고 마는 오니였기에, 치료를 받고 피냄새를 최소화 하는 것은 빼먹어서는 안될 작업이었다. 따스한 물에 먼지와 말라붙은 피를 씻어내고 나면 한결 쉬기 좋은 상태로 돌아오는 것은, 용병으로 활동하면서 배운 몇 안되는 좋은 것으로 어지간하면 샤워를 미루는 법이 없었다.
" ... 배고파 "
오늘은 다행히 팔부분만 다쳤기에 오른팔에 붕대를 감아두는 간단한 치료로 마무리 했기에, 기력 회복까지는 안 했기 때문에 배고프고 마는 오니였다. 집에 사다둔 것이 있었나 고민을 하면서도, 배고픔에 머리가 그리 잘 굴러가지 않는지 작게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집에 아무것도 없더라도 무언가 시켜먹던가 하면 될지도 모르니까.
차분한 걸음걸이로 사무소 근처의 방으로 걸음을 옮긴 오니는 언제나의 무덤덤한 표정으로 집 앞에 멈춰선다. 한순간 비밀번호 키로 손가락을 옮기던 오니는 무언가 냄새를 맡듯 코를 움찔거리더니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평소의 향과는 다른 무언가가 섞여있었다. 그렇지만 그리 낯선 향은 아니었다. 잘 알고 있는 익숙한 향. 그렇기에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여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문을 연다.
" .. 에덴? "
에덴의 붉은 눈동자가 오니의 눈동자와 마주치자 오니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잔잔하게 이름을 부른다. 자신의 집에 먼저 들어와있는 방문자를 보고도 그리 놀라지는 않은 듯 차분하게 전투화를 벗고 집으로 들어선 오니는 겉에 걸치고 있던 새하얀 코트를 옷걸이에 걸어두곤 천천히 누워있는 에덴에게 다가온다.
" 오늘, 쉬는날? "
천천히 붕대가 감겨있는 손을 내밀어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에덴의 머리에 손을 얹으려 하며 무덤덤한 표정으로 속삭인다.
리타 무에르테, 그녀는 제법 가창에 소질이 있었다. 이에는 신앙의 국가인 라테라노 출신으로서 어릴 적부터 갖가지 성가를 들으며 커온 탓도 있겠지만 타고나길 그녀가 노래를 좋아하는 성향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에 어울리는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어릴 적부터 신앙심이 가득 들어찬 성가를 좋아했다. 신이시여, 내 생명을 드리니 부디 받아주소서. 어두운 밤의 길을 밝히소서. —와 같은.
리타가 커피잔 안으로 각설탕을 넣으며 콧노래를 흥얼였다. 오늘은 제법 널널한 날인지라, 휴게실에서 간단한 다과를 즐길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녀는 커피를 좋아했다. 다만 아직도 커피의 씁쓸함 즐기지 못해, 그것을 중화시키고자 꼭 설탕을 쏟아야만 했다. 따뜻한 머그컵을 쥐고 리타가 휴게실 안쪽 의자에 앉았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적막한 공간. 리타는 적막과 고요를 좋아했다. 외로운 것을 싫어하는 그녀가, 적막과 고요를 좋아한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지만.
" I'm lying on the moon. My dear, I'll be there soon… "
느릿히 눈꺼풀을 감고 커피를 마시던 그녀가 별안간 흥얼이던 멜로디를 입 밖으로 꺼내들기 시작했다. 차마 이곳에서까지 찬가를 노래하긴 싫었던지라, 그나마 기억에 남아있는 노래 중 가장 제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른 것이다. 노랫말을 타고 흐르는 여자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위축되고, 불안에 차있는 대신 평화와 고요가, 차분함과 부드러움이,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향수가.
" It's a quiet and starry place. Time's we're swallowed up "
여자가 노래를 흥얼였다. 옅은 커피향과 고요함에 젖어, 채 앞을 바라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휴게실 근처로 사람의 기척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눈치 채지 못한 듯, 계속해서 가사를 읊어나갈 뿐이었다.
#리타가 부른 노래도 같이 올려둘게요! 리타 목떡으로 쓸까 생각했던 노래인데, 영화 OST라서... 고민이 참 많았...ㅎ.ㅎ
리아가 에덴의 이름을 부르자, 에덴은 아직 졸음이 덜 떨어진 게슴츠레한 눈으로나마 생긋 눈웃음을 쳤다. 그리곤
"왔어요?"
하고, 자연스럽게 리아를 반겼다. 리아가 코트를 걸 때, 옷걸이의 옆자리에 에덴의 하얀 야상이 걸려있는 게 보였다. 리아가 손길을 뻗어 에덴의 머리에 손을 얹자, 에덴은 눈을 감으며 리아의 손에 머리를 기댔다. 그리곤 리아의 속삭이는 목소리에 맞춰 나직이 대답해왔다.
"새벽부터 경호 임무를 나갔거든. 일찍 시작해서 일찍 끝났어요. 오후 다섯 시쯤..."
반말과 존댓말이 반씩 섞인 기묘할 말투- 그러나 그것은 에덴의 친근감의 표시들 중 하나였다. 휴일을 리아와 보내고 싶었던 건지, 에덴은 그 이후 간단한 마실 것들이며 간식을 사서는 바로 리아의 집으로 온 모양이다. 시간이 약간 엇갈려 리아를 조금 더 기다리다가, 그만 잠들어버린 듯하지만. 그리고 이제 리아가 돌아온 기척에 깨서는 리아를 반기고 있는 것이다.
잠기운이 남아있는 눈으로 눈웃음을 지어보이는 에덴의 물음에, 에덴의 머리 위에 얹은 손을 살살 움직여 매만져주며 잔잔한 목소리로 답한다. 비밀번호를 알려준 것도 오니 본인이었으니 어찌보면 비밀번호를 알려준 의도를 자신의 멘티가 제대로 잘 써먹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쓰다듬에는 칭찬의 의미도 담겨있음이 틀림없었다. 물론 에덴이 반가운 것도 마찬가지였지만.
" 경호.. 에덴, 잘하니까 별 문제, 없었겠네. 응. 고생했어. "
여전히 에덴을 내려다보는 오니의 표정은 큰 변화가 없었다. 날카로운 눈매와 가라앉은 듯한 붉은 눈동자, 그리고 자그마한 입술까지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지만, 분명 에덴에게는 조금의 부드러움이 느껴졌을 것이다. 조금 더 손을 움직여 머리를 매만져주던 오니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곤 천천히 닫혀있던 입술을 연다.
" 깨운거야, 내가? 더, 잘래? "
자신이 문을 여는 소리에 깨버린 것이라 생각했는지 피곤하면 더 자도 괜찮다는 듯 조용히 물음을 던진 오니는 답을 기다리듯 살짝 고개를 기울 체 에덴의 붉은 눈동자와 눈을 마주했다. 자고 싶으면 좀 더 자도 괜찮다고, 딱히 잠자리를 가리지 않는 오니였기에 불편할지도 몰랐지만 에덴이 쉬고 싶으면 더 쉬어도 좋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 ... 샤워, 하고 오길 잘 했네. 이상한 냄새 맡게 할 뻔 했어."
응, 다행이네. 작게 중얼거린 오니는 샤워를 하고 오느라 묶지 않은 머리가 기울어진 고개를 따라 비단처럼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머리를 묶고 올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차피 이젠 쉴 일만 남았으니 그다지 묶을 필요성은 못 느끼는 듯 했지만.
식인마귀라 불리는 살카즈라고 해도, 이럴 때는 어째 반려견이나 반려묘라도 하나 키우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눈을 감고 리아의 손길을 만끽하던 에덴은, 리아가 손을 떼자 입을 가리고 조그맣게 하품을 하더니 팔을 쭈욱 펴서 기지개를 늘어지게 하고는 기묘한 자세로 엎어져 있던 몸을 일으켰다. 깍지를 끼고 팔을 든 채로 상반신을 이리저리 뒤틀자 두둑대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 나서야 에덴은
"별 문제도 별 일도 없었어요."
하고 리아의 말에 웃으며 대답해주는 것이다. 그러다 또 머리를 매만지는 손길에, "아니, 지금 자버리면-" 하고 뭐라 말을 하려던 에덴의 눈길이 리아의 팔에 묶인 붕대에 닿았다. 에덴은 말을 하다 말고 눈을 깜빡이며 그것을 빤히 바라보다가, 리아에게로 시선을 맞춰온다. 피냄새는 어찌 씻어냈지만 이건 감추지 못한 모양이다.
"또 다쳐서 왔네. ...아프지 않아요?"
이미 입어버린 상처에 대해 에덴은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에덴이 잔소리를 하는 것은 리아와 함께 전장 한복판에 있을 때-다시 말해 리아에게 잔소리를 해도 제일 소용없을 때-뿐이었다. 이미 입어버린 상처에는 안쓰러운 눈길을 보낼 뿐이다.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하고 리아의 상처입은 팔 쪽의 손목을 공연히 쥐어보던 에덴은, 이내 "튀김, 데워올까요? 냉장고에 맥주도 몇 캔 사뒀는데. 목이라도 좀 축여요." 하고 화제를 돌렸다.
살아가면서 제일 무서운 것은 무언가를 잃는것도, 부수는것도, 잊어버리는 것도 아니다. 익숙해진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무서운 세상에서 닳을 대로 닳아버린 눈동자가 새하얀 구름처럼 푸근한 연기가 가득한 방 안을 비췄다.
언제부터 잠들었던 것일까,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던 그는 불편한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연기가 거쳐가는 방 안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침이 가르키고있는 어느 시간. 아르고 에이전시로 돌아온지 고작 3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3시간을 수면으로 낭비해버렸다는 생각밖에 들지않았다.
연기로 가득해져버린 방을 나서며 묘한 분위기를 조성하고있던 적막을 깨트린것은 2층의 휴게실에서 들려오는 나즈막한 노랫소리였다. 고요하게 떠올라 시간마저 먹혀버린 듯 조용하고 반짝이는 목소리. 휴게실로 향한 라샤의 눈에 들어온것은 노래를 부르고있는 여성이었다.
녹색의 단발머리가 인상적이었던 그녀는 분명 1년 전 부터 에이전시에 몸을 담게된 리타라는 여성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존재를 느끼지못한 그녀에게 말을 걸기 위해 손을 뻗었으나 이 고요함을 깨트리고싶지 않다는 생각에 그는 말 없이 벽에 기대어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어쩌면 한 편으로는 처음부터 지켜보고있었다, 라는 모습에 어떤식으로 반응할지 궁금해한 걸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버린채 노래를 부르고있는 그녀를 놀리고 싶었던 걸지도.
"......"
//역시 시작이 힘들단 말이지 시작이..ㅇ...너무 늦어버렸다ㅡ.. 하지만 첫 단추는 꿰었으니 이 다음부턴 빠르게 답레를!!
다음에 가보겠다는 태만한 대답만으로 충분했던 것인지, 에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붙임성없지만 정겨운 선배님을 직접 병원에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도를 넘은 간섭도 실례니 이 정도의 권유만으로 참는 수밖에 없다. 모두가 광석병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시대고... 특히나 PMC 오퍼레이터처럼 광석병에 노출될 위험이 높은 직업군이라고 한다면 조심하는 것만으론 광석병을 피할 수 없으니, 사샤의 저런 스스로의 건강에 무관심한 태도가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자기만 해도 결국 자신의 왼팔이 자신을 잡아먹어 버릴 것이라는 운명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물론이에요. 근처에 작은 오피스텔을 하나 얻어두고 있어요. 여기 기숙사는 방이 다 찼기도 하고... 제가 원하는 조리기구를 놓는 데 한계가 있기도 하구요."
하고 엑스칼리버는 후후 웃었다. 그러고 보면 이 무시무시한 살카즈 용병은 엑스칼리버라는 거창한 호출명에 걸맞지 않은 꽤나 깜찍한 취미를 갖고 있었다.
긴 말은 하지 않는다. 에덴이 아무일도, 별일도 없었다면 오니는 그저 믿을 뿐이었으니까. 추궁하지도, 되묻지도 않는다. 이건 누군가에게 파고드는 것을 망설이는 것인지, 아니면 신뢰하는 것인지 오묘했지만. 아무튼 오니는 그러지 않는다. 그저 에덴의 말을 올곧게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었다.
" ... 조금, 근데 그리 심하진 않아. 오늘, 큰 일은 아니었어. "
에덴의 안쓰러운 듯한 눈빛과 상처를 알아차린 말에 혹여 잔소리를 들을까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던 오니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에덴을 보며 놀란 듯 눈을 깜빡이다. 에덴의 잔소리는 꽤나 무시무시하니까 각오를 했었는데 별로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에 마음속으로 마냥 기뻐하는 오니였다.
" 에덴도 같이, 먹자. 자고 가도, 괜찮으니까. "
자신의 손목을 잡은 에덴과 다시 눈을 마주한 오니는 화재를 바꾼 에덴의 말에 조심스럽게 말을 던진다. 혼자 먹는 것은 그다지 상관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자신의 집에 찾아온 에덴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으니까. 에덴에게는 뭐라도 챙겨줘야 할 것 같은 것이 멘토로서의 마음이었다.
" 음, 그러니까... "
문득 심심할 때 읽었던 잡지가 떠오른 오니는 잠시 입을 열더니 뜸을 들인다. 아무래도 이런 상황에 말하면 상대바이 좋아할 대사 같은 랭킹에서 읽었던 것인데 그것을 현실로 옮기려니 조금 망설여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먹은 듯 에덴에게 잡힌 손이 아닌 반대손을 들어 살며시 주먹을 쥔 손으로 입가를 살짝 가린다.
" 에덴이랑, 먹고 싶은데. 괜찮지? "
물론 여기엔 매력적인 표정이 함께 했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오니의 표정은 무덤덤한 상태 그대로였다. 그저 손동작만 따라한 체 말한 오니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리타는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마치 퍽퍽한 세상에서 혼자 분리된 듯 말이다. 일말의 여유를 느끼며 노랫말을 흥얼이던 그녀가, 별안간 가사의 끄트머리를 천천히 늘이며 노래를 끊어버린다. 다음 가사가 뭐더라... 분명 그녀가 좋아하는 노래였다. 참 자주 흥얼였고, 참 자주 듣던 노래였는데. 가사가 기억나질 않는 것이다. 그녀가 아쉬운 듯 느릿히 눈을 뜨며 한숨을 내뱉었다. 아주 잠시나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그 끝맛이 너무도 아쉬운 것이다.
" ...어? 누구세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
씁쓸한 향수에 젖을 시간은 그리 오래되질 못했다. 애초에 이곳은 그녀의 직장 휴게실이다. 그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그 누구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그런 곳에서 대담히 노래를 부르다니. 리타가 눈 앞에 보이는 낯선 이를 향해 당황한듯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낯선 이'는 아니고, 저보다 연차가 꽤나 많은 선배였다. 부끄러움, 창피함, 죄송함…. 그 모든 감정들이 한 순간에 그녀를 현실로 집어끈다. 이곳은 과거의 라테라노가 아닌, 현재의 아르고라는 것을 말이다.
" 죄송해요... 아무도 없는 줄 알고... 그게... "
여자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갛게 달아오른 귀끝이 그녀가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냈다. 한 손으로는 커피잔을 든 채로, 그녀는 제 눈가를 어루어만지며 열감이 오른 얼굴를 차분히 식혔다. 지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갈까. 차마 눈 앞의 남자를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없어, 채 함부로 걸음을 옮기지도 못하는 꼴을 보아하니 제법 난처해진 모양이다.
" 그, 방해해서 죄송... 합니다, 정말... "
여자가 기어들어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황하는 눈길이 남자의 발끝을 바라보다, 힐금 남자의 눈을 바라보다, 다시 발끝을 향해 흘러내린다.
노래를 끝마치고서야 자신의 존재를 눈치챘던 눈 앞의 여성을 말 없이 바라보고있었다. 소심한 성격을 여과없이 드러내며 낯부끄러워하는 리타의 모습이 보기엔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새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보단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커피잔이 라샤의 시선을 향하게끔 만들었다.
"......"
라샤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지도 못한채 시선을 발끝으로 향하고선 금방이라도 자리를 뜰 것 같은 그녀의 곁에있던 커피머신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잘 부르던걸."
역시 그녀를 바라보지않은채 묵묵히 제 할일을 하며 커피를 타고있던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부끄러워하는 그녀를 조금이라도 복돋아주기 위해 내뱉은 가벼운 칭찬의 말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무척이나 무신경한 그 모습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에덴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어지간해서는 곧이곧대로 말해주는 타입이었다. 확실히 오늘 근무는 별일 없었다. 광석충 몇 마리 정도는 칩칩스런 날벌레 몇 마리나 다름없는 것이고, 그것들 외에는 오늘의 호위임무는 따분하리만치 평화로웠으니까. 적어도 에덴은 리아가 자신을 파고들겠다고 한다면 리아를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만큼이나 리아를 파고드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항상 그렇게 자기 몸 생각은 안 하고. 내가 언니 걱정하는 건 몰라줄 셈이죠."
결국에는 잔소리 한 마디를 톡 뱉어내고 만 에덴은, 리아의 손목에서 손을 뗐다. 그리곤 짐짓 심통이 난 것처럼 고개를 돌렸지만... 리아가 대체 어디서 배워온 건지 모를 무표정 애교를 시전하자 그녀는 더 이상 정색하는 표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그만 후후후, 하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에덴은 다시 고개를 돌려 리아와 눈을 맞춘 채로, 몸을 기울여 리아에게로 자기 얼굴을 가깝게 다가세우고는, 리아와 똑같은 각도로 머리를 살짝 기울인다. 그리고 눈웃음을 치며, 속삭이듯 질문했다.
"그런 귀여운 건 어디서 배웠어요?"
그러다 에덴은 얼굴에 빙긋이 미소를 띄면서 물러서서는, 튀김이 담긴 접시를 집어들었다.
"애초에 언니랑 먹으려고 가져온걸요. -언니랑 같이 먹기엔 양이 좀 적으려나?"
하고, 그녀는 다시 접시 위로 눈길을 돌렸다. 확실히 그 접시에 담겨 있는 튀김이며 닭꼬지는 2인분이 넉넉하게- 3인분이라고 해도 될 양이었지만, 리아의 식사량을 생각해보면 조금 모자랄지도 모르겠다고 에덴은 생각했다.
오니는 말문이 막힌 듯 심통이 난 것처럼 말하는 에덴을 바라보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늘 전투에 나서는 그녀는 사람이 바뀌어버려 에덴의 잔소리는 뒤로 한체 이판사판으로 적을 향해 달려들고, 다치곤 했으니까. 물론 에덴이 걱정하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때문에 에덴의 말에 무어라 반박을 할 수 없었던 오니는 그저 앵두빛이 감도는 입술을 달싹이다 말을 잇지 못하는 것이었다.
" 그, 아... 잡,잡지... "
다행히 책에서 읽은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심통이 났던 에덴이 웃는 것을 보며 안도하던 오니는 이내 얼굴을 가까이 하는 행동에 놀라선 아주 조금 커진 눈으로 바라본다. 파르르, 눈가가 떨려오는 것이 적잖이 에덴의 행동에 놀란 모양이었다. 여전히 오니를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무표정해보일지 모르지만, 분명 지금 가슴팍에 귀를 대보면 심장소리가 빨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에덴의 거리에서라면 약간의 홍조가 생겼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지도 몰랐다.
" 아냐, 괜찮아.. 같이 먹으면, 많이 배부르지 않아도.. 괜찮아. 에덴도, 먹어야 하니까. "
에덴의 물음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화끈거리는 얼굴을 가라앉히려는 듯 고개를 휙휙 저어보인 오니가 평소 보다 작아진 목소리로 말한다.
" 어, 그, 내가 준비.. "
아직 평정을 되찾지 못한 듯 벌떡 몸을 일으킨 오니는 휙 돌아서서 에덴에게 등을 보이더니 휘청거리는 걸음걸이로 튀김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 모습으로 봐선 누가 보아도 뭔가를 맡기면 일이 터질 것이라는 것이 뻔해보였지만 오니는 동요를 감추려는 듯 허겁지겁 움직이기 시작했다.
"걔는 돈보다 딸기케이크를 더 좋아하는 애야. 교사 역할은 이미 계약처의 돌팔이 의사가 하고있고. 가끔이지만 말이지."
계약처라고 하면, 아르고를 보호소로 굴러가도록 할 수 있는 의료기업이었다. 그곳의 닥터 [검열됨]가 아르고의 대원들 전반의 광석병 상태를 진찰하고 처방하고 있는 것은 아이다도 아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그 닥터는 믿음직한 사람은 아니었다. 실력은 좋디만 따지자면 매드 사이언티스트에 가까운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이 찰리의 가정교사를 한다고?
이런저런 임무에 호출을 받고 나가려면 건강을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러니 부상이라도 당하면 메딕에게 꼬박꼬박 얼굴을 비추는 것이었고. 하지만 상처를 치료하는 것과 건강검진은 아무래도 큰 차이를 보일 수 밖에는 없었고, 사샤는 검진을 받는 것은 시간 낭비라 여겼다.
"그러고보면 후배님은 요리를 잘했죠."
종종, 네가 하는 요리들을 집어먹은 기억이 있다. 사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말없이 담배만 뻑뻑 피워대다 아직 반쯤 남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서 껐다. 이 또한 자주 보이는 모습 중 하나였다. 말 없이 담배만을 태우는 모습. 사회성과는 또 별개로, 애초에 말 수 자체가 그리 많은 사람이 아니었으니 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난 오늘은 이만 가볼게요. 아직 오늘치 훈련을 다 못 끝내서."
사샤는 다소 느릿한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래, 저렇게 느긋해 보이는 사람이지만 일단 하루하루의 일이나 훈련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으니까 말이야. 사샤는 기지개를 쭉 한 번 켜고는 너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놀란 눈으로 라샤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곧, 다시 얼굴를 붉히며 고개를 푹 숙이고 마는 것이다. 언제부터였을진 모르겠다만, 그녀는 칭찬을 들으면 그것을 부정하는 버릇이 있었다. 아마도 라테라노를 떠난 이후부터였겠지. 검은 고리와 날개, 뿔을 당당히 보여줄 수 없었던 그 시절부터 말이다. 하지만 이는 좋은 버릇이 아니다. 부정의 말을 내뱉은 리타가 자동적으로 감사 인사를 덧붙였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라도 그 버릇을 고쳐먹는 것이 좋을테다.
리타의 시선이 라샤의 뒤를 쫓는다. 그는 커피 머신을 켰고, 이어 따뜻한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노래를 좋아한다는 한마디와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리타는, 그저 그를 묵묵히 바라보다 퍼득 제 손에 들린 커피의 존재를 알아채는 것이다. 리타가 어색히 주변을 살피며 입을 달싹였다. 이럴 때는, 뭐라고 말을 하는 게 좋지?
" 그, 저도... 노래 좋아해요. "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던 눈동자가 하얀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러자 리타는, 무언가를 들킨 듯 놀랜 기색으로, 눈길을 돌려 버리곤 그를 따라 커피를 한모금 넘겨냈다. 뜨거움와 따뜻함 그 사이로 적절히 식은 커피는 향기로웠고, 마음을 가라앉히기 충분했다.
" 알라스토르...씨 이시죠? 그, 임무 하면서 몇 번 뵌 적이 있어요. 저는 아직 일 년차라... 잘 모르실 수도 있지만... "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힌 뒤, 리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르고에서 6년을 보낸 그를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으리라. 리타가 커피잔을 쥔 손을 꼼질였다. 그러니까, 저는요...
" 저는, 판도라... 구요. 이름은 리타예요. 리타 무에르테. "
리타가 따뜻히 열이 오른 손으로 제 왼 뺨을 문질렀다. 생각해보니, 얼마 전 과자파티에서 했던 자기소개를 들었을지도 모르리라. 리타가 조심스레 라샤의 눈을 바라보았다. 지금, 제대로 말을 이어가고 있는 게 맞겠지…
그 이상한 녀석에게 대원 전체의 의료검진을 아웃소싱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찰리 교사까지 그 양반에게 맡기다니. 찰리에게 물어봐도 대답은 뻔하고 돌팔이에게는 사적으로 말을 걸고 싶지 않으니 결국 그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둘만의 비밀이 된 셈이다.
"글쎄... 약쟁이들 소문이라 믿을건 없긴 해."
그냥 마약 제조사가 쇳가루를 흘리거나 순도를 낮춘걸 오해하고 오리지늄을 섞었네 뭐네 호들갑을 떠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직접 가서 약을 사오면 외부인이니 구린걸 줄리도 없고 제대로 확인하려면 여하튼 돈이 든다.
"그래, 돈도 없는데 괜히 삽질할 필요는 없지. 더 할 말 없으면 나는 이제 간다?"
염력으로 몸을 둥둥 띄우며 하품을 크게 하는 아이다. 기숙사로 가 비싼 돈 주고 산 라텍스 베개를 베고 눕는 순간 꿈나라로 갈 것이다!
>>861 험악한(귀여운) 맨얼굴 궁금해! 이미 친해진 상황이라면 무서워하진 않겠지만~ 일단 도나가 다쳐야 하니까(!!) 제가 선레를 써오는 게 좋겠죠? 혹시 선레 하고 싶으시면 말씀하시고! 하나 묻고 싶은 건, 이젤은 네로쌤처럼 의무실에서 근무하나요? 그런 게 아니라면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하는 방법도 있고 해서!
솔직히 이 바닥에서 제대로 된 녀석을 찾는게 더 코메디였으니. 가정교사를 달아주려면 할 수는 있겠지만 도미닉은 그런걸 원하지 않았다. 찰리는 이미 발라그보다 폭음을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되었고, 그러면 안돼! 라고 이제와 말한들 답으로 돌아오는건 40mm의 플리셰트 탄일것이다. 그리고 그건 중장갑도 막을 수 없겠지.
"그래, 가라. 나도 좀 자야겠다. 피곤하네."
그렇게 말하며 의자에 몸을 뉘인다. 테이블에 다리를 올리자 소장의 헬멧의 등이 조금씩 점멸하기 시작했다.
리아가 뺨까지 살짝 붉히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자, 에덴은 한 술 더 떴다. 입술을 달싹대며 잡지, 라고 겨우 말하는 리아를 바라보다가, 에덴은 눈을 꼭 감고 자기 이마를 리아의 이마에 툭 기댔다. 그리곤 살며시 손을 들어, 리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려고 한다. 그러고 나서야 에덴은 자신의 이마를 들며 눈을 떴다.
"후후후, 장난은 이쯤해요... 더 식기 전에 데워야겠네. 먹고 나서도 배고프면, 배달을 시킨다던가, 아니면 나가서 더 사먹어도 좋을 것 같아요."
장난이라는 말로 얼버무리며 몸을 일으킨 에덴은, 리아가 위태위태라는 말을 온 몸에 써붙인 것만 같은 동작으로 튀김을 집어들려 하자 잽싸게 몸을 일으켜서는 튀김 접시를 집어들었다.
"아뇨, 언니, 또 무작정 고화력으로 돌렸다가 전자레인지 폭발시킬 거죠? 같이 가요."
오늘 주말 데이트를 또 가전제품 매장에서 하고 싶진 않네요, 하고 농담처럼 덧붙인 에덴은 혀를 쏙 내밀어보이고는 리아를 부축하다시피 잡아주었다.
하고 엑스칼리버는 짐짓 겸양을 떨었다. 그건 겸양인 것이 확실했다. 저번에 옆에서 하나씩 주워먹은 통새우 미니 고로케는 상당히 맛있었고, 사샤 이외에 그것을 맛볼 기회가 있었던 운 좋은 동료들 사이에서도 호평이었으니까. 주방에서 뭔가 맛있는 냄새가 나고, 새하얀 단발머리를 한 살카즈가 서 있으면 사샤 이외에도 주방을 얼쩡대는 동료가 꽤 있었다. 물론 그 중에서 음식을 가장 적극적으로 집어먹는 건 사샤였지만, 엑스칼리버는 그것을 딱히 저지하거나 하지 않았다. 말 수가 적어도, 사회성이 없어도 엑스칼리버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샤에게, 믿음직스러운 동료에게 그렇게 친근감을 표했다.
"아, 그러신가요. 무리하지 마시고 느긋하게 마치세요."
가봐야겠다는 사샤의 말에 엑스칼리버는 딱히 부정을 표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염려하는 말을 한 마디 남겼다. 쓸데없는 참견이라고 할 수도 있고 겉치장뿐인 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원래 모든 관계는 가식이 진심으로 바뀌어가는 데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던가.
한술을 더 뜨는 에덴의 말에 말조차 구성하지 못한 오니의 소리가 입술 틈새로 세어나온다. 오니는 무슨 말을 하냐는 듯 희미하게 떨리는 눈꺼풀을 느끼며 에덴을 바라보지만 이어진 에덴의 이마를 맞대는 행동과 쓰다듬에 결국 눈을 꼭 감아버리곤 활동기능을 포기해버린 로봇마냥 자그맣게 숨을 뱉어낼 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는 체로 목석처럼 굳었던 오니는 이마를 떼어낸 에덴이 거리를 두고 나서야 천천히 눈을 뜬다.
" .... 나쁜 후배..."
놀리지 말라는 듯 조금이나마 평정을 되찾은 눈으로 장난이라며 얼버무리는 에덴을 보며 작게 주얼거린 오니는 일단 튀김 접시를 들고 갈 생각이었지만 이내 그것도 잽싸게 몸을 움직여 접시를 잡는 에덴 탓에 실패 해버리고 만다. 퇴로가 막히자 움찔한 오니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무어라 말을 할지 고민한다.
" 나, 튀김 데울 줄 아는데... 근데, 데,데이트..? "
데이트라는 에덴의 덧붙인 말에 다시금 화들짝 놀란 오니는 결국 안되겠는지 혀를 쏙 내밀어보이는 에덴을 타박하듯 자신을 부축한 에덴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콩콩 두드린다. 물론 그 주먹에는 전혀 힘이 실려있지 않아 아프지는 않았지만.
" 에덴.. 점점, 개구쟁이, 되어가. 예전엔, 안 그랬는데. "
에덴과 함께 전자렌지 앞에 선 오니는 이건 자신있다는 듯 에덴 손의 접시를 들어서 전자렌지에 넣고 올바르게 돌린 후에 살짝 고개를 돌려 얼굴을 바라보며 작게 말한다. 에덴을 보며 무슨 새각을 하는지 잠시 입술을 딸싹거리다 검지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펼쳐서 에덴의 코를 건드리려 한다.
알라스토르, 그가 아르고 에이전시에 몸을 담게된지 3달정도가 지났을때 얻게된 코드네임이었다. 복수자라는 뜻을 담고있는 그 이름은 그에게 있어 어울린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6년이나 그 이름으로 활동해온 지금은 이미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버렸기에 아무런 생각도 들지않았다.
"글쎄, 어떨까."
꼼지락거리며 자기소개를 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있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굳이 다시 한 번 자기소개를 한다는것인 본인이 그만큼 거리감있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라고 느꼈다. 그 거리감을 굳이 좁힐 생각은 없지만.
"현장이 아닐땐 라샤라고 불러도 돼. 리타"
하지만 같은 조직에서 일하고있는 와중에도 코드네임으로 불리며 서먹서먹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보단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는게 좋을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게 불편한거야?"
악의없는 순수한 궁금증이 자아낸 물음을 내뱉으며 그는 눈 앞의 의자에 걸터앉았다. 더 이상 시선은 그녀를 향해있지 않았다.
기껏 장난은 이쯤하자고 해두고 고개를 돌리려 했건만, 리아의 한 마디가 에덴을 붙들어버렸다. 에덴은 돌리다 만 고개로 눈을 가늘게 뜨고 리아를 살며시 곁눈질하며,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띄웠다.
"싫어할 거에요?"
하고, 에덴은 짓궂기 그지없는 질문을 리아에게 던졌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나서 에덴은 딱히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튀김접시를 엎어버리던가 전자레인지를 최대출력으로 20분씩 돌리던가 할 것 같았는걸요." 하며 에덴은 능청스럽게 튀김접시를 쥐고 리아와 함께 전자레인지 쪽으로 갔다. 그러다 리아가 투닥투닥 가슴팍을 때리자 에덴은 후후후 하고 웃어버리고 만다. "그건 유감이네요." 리아에게 접시를 내어주고는, 그녀가가 출력을 너무 높게 설정하거나 시간을 너무 길게 설정하지 않는지 확인한 에덴은 내심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리아가 코끝에 경고하듯이 검지손가락을 툭 올리자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만둘까요?"
가넷을 깎아붙여 놓은 것 같은 예쁜 붉은 눈동자가, 눈웃음을 치는 눈꼬리 안에서 반짝인다.
나른한 휴일 오후. 도나는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살의 포근함을 만끽하며 사무실 근처에서 조용히 혼자만의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사무실 사람들은 아직 조금 어색하고 무서워 보이지만 다들 친절하고 상냥해. 익숙하지 않은 훈련에 적응하는 것은 힘들지만, 이제 살아남기 위해 혼자서 발버둥 치지 않아도 돼. 그녀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마냥 긴장을 풀어놓은 채 발길이 닿는 대로 걸음을 옮겨놓았다.
"앗?"
아야. 평온함의 대가는 결국 이런 건가? 꼴사납게 흙바닥에 엎어진 도나는 저를 이렇게 만든, 바닥에 빼죽 튀어나온 돌부리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주위에 사람이 없었기에 부끄러운 상황은 면할 수 있었지만 바닥에 쓸린 무릎에선 핏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냥 두어도 자연스레 아물 가벼운 상처였지만, 평소 훈련 등으로 자잘한 부상이 잦았던 도나는 습관적으로 의무실을 찾았다. 똑똑똑.
"계세요...?"
그녀는 문 손잡이를 돌리고 나서야 여기 올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작 무릎이 까진 걸로 의무실을 찾다니, 어린아이도 아니고. 분명 웃음거리가 될 거야. 하찮아 보일 거야. 하지만 어쩌겠어. 이미 문은 열려버린걸.
리타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주변을 잠시 살피다, 다시 자리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시기 시작한다. 큼, 하고 리타가 목을 가다듬었다.
" 아,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단지... "
리타가 놀란 눈으로 라샤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더이상 리타를 향하지 않는다. 리타는 커피잔을 한 번, 라샤를 한 번 바라보다 다시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런 것은 아니고, 단지...
" 그, 저를 좀... 불편하게 여기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실제로 저를 꺼림칙하게 여긴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혹시 불편하실까봐... "
그녀가 뜨문뜨문 말을 이어갔다. 매끈하게 정리되지 못한 횡설수설한 말들이었다. 두 손은 따뜻한 커피잔을 쥐고 있었지만, 당장이라도 제 몸에 달린 뿔과 고리, 날개를 쥐어 잡고 싶은 기분이었다. 검은 고리와 날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구태여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테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뜻을 알았다. 동족 살해. 살인자. 그래, 살인자의 증표. 신의 이름으로 용서 받을 줄만 알았던.
" 저는, 걱정되어서... "
리타가 커피잔 사이로 시선을 박았다. 다시 남자의 눈을 바라보기가 무서워진 것이다. 리타가 살며시 눈길을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손, 어깨, 입술, 그러한 것들을.
오늘은 날씨가 좋아. 의무실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볕의 색채만 보더라도 바깥 하늘을 어떤 물감으로 표현해야할지 상상이 될 정도야. 이런 날씨면 바깥에 나가 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겠지. 나는 아니지만 말이야. 머리를 쓰다듬는 햇볕에 노곤해지기 보다는 내 방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 쓰던가, 하얀 종이를 그림으로 채우던가 하는 게 더 좋은 사람도 있어. 나처럼.
그렇다고 해서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방이란 건 아냐. 앞에서 말했듯, 나는 지금 의무실에 있어. 다친 건 아니야. 다친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거지. 나는 애매한 실력을 가지고 있긴 해도 메딕이니까, 하루 중 꽤 많은 시간을 의무실에서 보내고 있거든. ..사실 의술보다는 그림이 좋아. 하지만 해야할 일이 있는 한 노력하지 않을 순 없잖아. 나는 쓸모 있고 싶단 말야.
의술서적을 보고 있던 중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어. 문이 열리는 소리도 났고. 문가에는 나무가 떠오르는 색채에 사람이 있었어. 황금색 꽃이 뿌리부근에 피어있는, 자그마한 키의 나무. 잠시 그녀를 관찰하느라 조금 늦게 나는 대답했어.
"어디를 다쳤나요."
내가 들어도 딱딱한 목소리야. 정이 안가. 색으로 따지면 차가운 파랑일까. 이름부터 딱딱한 스틸 블루 같은. 서늘한.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책상 위에 내려놨어. 대답하기 전에 아까 관찰하며 봐둔 상처부위를 생각하며 약을 챙겼어. 소독제랑 연고랑, 거즈.상처 부위를 닦을 필요도 있겠네. 나는 가까운 의자로 손짓했어.
"앉으세요. 치료할게요."
목소리가 건조해. 조금 더 정감있게 말하는 것도 좋겠다 싶지만, 됐어. 딱히, 친해지지 않아도 되잖아. 그렇지?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띈 체 물어오는 에덴의 말에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던 오니는 자게 한숨을 푹 내쉬며 말한다. 뜸을 들이는 것이 시간이 좀 걸려서 몸을 일으킨 에덴의 등에 대고 답하는 것이 되어버렸지만, 목소리는 그리 작지만은 않아서 제대로 전해졌을 것이었다.
" 짖궂어, 에덴. 그치만.. 아니라곤 못 해. "
솔직히 에덴의 부축을 받기 전의 오니였다면 에덴의 말대로 됐을 가능성이 꽤나 높았으니까. 부정을 하지 않은 체 눈동자만 살짝 굴려 다른 곳을 바라보며 짧게 답할 뿐이었다. 그치만 그건 그거고, 자꾸만 놀리는게 분하긴 한 모양인지 가슴팍을 두드리자 웃음을 터트리는 에덴을 몇번 더 두드려주는 오니였다. 물론 힘을 주지 않은 것은 여전했지만.
" 어차피, 그만두라고 해도... 안 그만할 거 잖아. "
그리고, 괜찮아. 나는. 오니는 고개를 기울인 체 자신을 응시하는 가넷빛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며 작게 중얼거린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는 그냥 선배를 엄청나게 걱정하는 후배였는데. 어느샌가 이렇게 장난꾸러기가 되어버렸다. 오니는 자신이 너무 무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역시 어두운 것보단 밝은 것이 좋으니까.
" 에덴이 편하고, 좋다면. 그거면 돼. 응. "
손가락을 들어보였던 손을 그대로 다시금 에덴의 머리 위에 얹고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려 하며 다시금 비슷한 색을 띤 에덴의 눈과 마주하며 나지막이 속삭인다. 에덴이 좋으면, 무엇을 하든 받아줄 수 있다. 매번 잔소리를 듣고도 어기는 자신이 해줄 수 있는 몇 안되는 일이라는 것을 오니는 잘 알고 있었다.
" 근데, 에덴, 다른 사람들처럼 여기저기 놀러다니는게 좋지 않아? "
여기 있는 것보다. 말수도 적고, 어설픈 자신보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다른 곳에 놀러가는 것이 에덴에게 더 즐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오니는 째깍거리며 시간이 흘러가는 전자레인지의 소리를 배경으로 물음을 던진다.
어쩌지, 어쩌지? 이제 와서 다시 돌아갈 수도 없어. 적잖이 당황했는지 혀를 샐쭉 내민 도나는 커다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 의무실 안을 훑어보았다. 늘상 있던 의무관 선생님은 자리에 없고, 그 대신... 후드를 뒤집어쓰고 얼굴엔 밴드가 덕지덕지 붙은 낯선 사람이. 이건 메딕이 아니라 주술사가 분명해! 그쪽에서 어디를 다쳤냐는 물음이 들려오자, 흡. 하고 도나의 혀가 입안으로 쏙 들어간다.
"무, 무릎이요."
차가운 목소리에 사무적인 말투. 생각하는 것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도나는 악당에게 붙잡힌 인질처럼 순순히 그의 말대로 의자에 가 앉는다. 악당이라는 건 단지 그녀의 과도한 상황 몰입일 뿐이지만.
"네에..."
목소리는 기어들어가고 다리는 움찔움찔. 조심스럽게 코트를 들춰 무릎의 상처를 보인다. 눈에 띌 정도로 긁히긴 했지만 피는 이미 멎었고, 잠깐 새에 피가 가맣게 굳어 딱쟁이까지 앉으려고 했다.
"요 앞에서, 넘어져서..."
긴장보다 부끄러움이 더 컸는지 도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다. 정신 차리라고 제 엉덩이를 꼬집어주고 싶지만 꼬리에는 손가락이 없는걸 어떡해. 무릎 위에 다소곳하게 모은 손가락만 꼼지락거린다.
>>924 휴우 다행이다. 무섭게 물어보셔서.....!! 원작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참고했긴 한데 감염 여부 문구랑 사람 몸에 꼬리가 있다는 것 정도만 참고했어요.(피티아가 걔 하나밖에 없더라고요) 다 짜고 나중에 보니 단발이라던가 몇가지 설정이 겹쳐보이긴 했는데 보고 짜진 않았서요!
짧고 굵은 감탄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는 알 수 없겠지만 그 복잡한 표현에 대해 딱히 무어라 되묻지는 않았다. 최소한 그쪽에 흥미는 안가지길 바란다만, 사람일이란게 어쩔 수 없으니 그녀는 살짝 그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설마하니 오리지늄 파편으로 공기놀이를 하다가 질리면 알까기도 해보고 싶은건 아니겠지. 그건 이미 정상이 아니라 위기감이라는 것에 취한 중독자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부디 그가 그런쪽은 아니길 바라며...
"...어머나, 어쩐지 입안에 바람이 좀 들어찬다 했더니~ 후후후... 미안~ 이거야말로 확실히 결례를 범했네?"
그의 표정이 갑자기 굳더니 뒤로 조금씩 물러나는게 보였다. 이게 그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싶지만, 그녀도 스스로의 표정을 거울에서 본적이 있기에 뒤늦게나마 입을 가리며 웃을 뿐이다.
"걱정 마. 이래뵈도 문제없으니까, 확실히 멀쩡한 사람도 이성을 잃게 만드는게 오리지늄이긴 하지만... 이건 그저 내 개인적인 특성일 뿐이니까, 종족차이란 말인 거지."
그가 이미 질색하는듯 행동을 보이는데도 그녀는 보란듯이 자신의 입꼬리 끝에 검지를 걸어 쭉 벌렸다가 얼굴에서 손을 떼며 키득거렸다.
그녀는 겁먹은 것처럼 보이네. 내 탓이겠지. 붙임성 없는 울적한 꼬맹이를 좋아해줄 사람은 그리 없거든. 미드나잇 블루 같은 어두운 녀석이야 나는. 그래도 내 말을 들어줘서 다행이야. 무시받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도 들어. 준비해둔 약을 들고 앉은 그녀의 앞에 쪼그렸어. 코트가 들춰지며 보인 무릎의 상처는 피가 멈춰가고 있었어. 크게 다친 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야. 나는 살가운 성격도 아니고, 정이 많지도 않고, 부정적인데다, 소심하고 안쪽으로 파고드는 성질이 있지만, 남이 다치는 걸 좋아하진 않거든. 다친 사람이 적이 아닌 이상에야 대부분 그럴 거라고 생각해. 착하기 보다는 당연한 거야.
상처를 닦아내려 하기 전에 흘깃 올려다 본 그녀는 이래저래 불편해 보였어. 남의 표정을 보고 어떤 기분인지 아는 건 나로써는 못하는 일이야. 그러니까 그냥 나오는 대로 말했어. 조금이라도 안심할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거든. 좋은 사람이고 싶다고 생각해. 나는.
...아마도.
"따가울지도 몰라요."
하지만 나오는 목소리는 뻣뻣해. 죽어가는 고목이 더 유연할 거 같을 정도로 빳빳해. 차라리 입을 다무는 편이 낫지 않을까 나는? 상처 부위를 닦고, 소독하고, 거즈를 붙였어. 그리고 바로 일어서지 않고 잠시, 생각했어. 내 안의 좋은 사람의 대표라 친다면 네로 선생님일 거야. 좋은 의사의 표본 같지. 어색하고, 어려워서 멀찍이 떨어지려 해도 다가오는 사람이니까.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듯 해. 확신은 못해. 아마의 아마의 아마야. 정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면 좀 더 친근하게 굴기 위해 노력했겠지. 그래도 조금 좋은 사람인 척을 해보고 싶어. 윤기가 없이 건조하여 더욱 나무 같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을 올려다보며 말했어.
선배를 엄청나게 걱정하는 후배인 점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리아가 어딘가 다쳐올 때마다 잔소리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하지만, 염려가 가득 담긴 눈빛은 한 치도 줄이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그 반동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는 이렇게 끼를 부려대는 것이다. 그러나 그만두라고 해도 그만두지 않을 거라는 리아의 말에는 에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리아가 손을 뻗어 에덴을 쓰다듬자, 에덴은 늘 하던 것처럼 당신의 머리에 손을 기댄다. 에덴의 머리에 처음으로 손을 얹었을 때 흠칫 놀라더니 망부석처럼 굳어서는 리아의 쓰다듬이 끝날 때까지 차렷 자세였던 것을 생각하면, 그녀와 1년 남짓한 세월을 보내면서 꽤 많이 풀어진 게 느껴진다. 아니, 이게 원래 그녀다운 모습이 아닐까. 그러다 리아가 꺼낸 의외의 질문에 에덴은 눈을 깜빡였다.
"별 말을 다 하네. 나 여기저기 많이 놀러다닌다구요."
그리고 에덴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리아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가볍게 포갰다.
"그렇지만 언니에게 놀러오는 것을 좋아할 뿐이에요. 언니처럼."
그러다 전자레인지가 작동을 끝내는 삑삑삑 소리가 울리자, 에덴은 "아, 다 됐네요..." 하고는 리아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떼곤 전자레인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 매번 에덴 말 안 들으니까. 오니는 고개를 저으며 말하다 자그맣게 말을 덧붙이며 에덴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는다. 과거의 굳어버리던 에덴과 지금의 지지 않고 한걸음 더 다가오는 에덴의 모습은 너무나도 달랐지만, 아마도 좋은 쪽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오니는 생각했다.
" ..그렇구나, 몰랐어. "
자신의 손 위에 부드러운 에덴의 손이 얹어지자 눈이 아주 잠시, 찰나의 순간 커졌던 오니는 이어서 들려오는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에덴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자신보다도 더 바른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자그맣게 답하던 오니는 이어서 들려오는 에덴의 말에 다시금 화들짝 놀라더니 급하게 머리에서 손을 떼어낸다.
" 나, 테이블.. 준비.. "
허둥지둥, 홱 몸을 돌린 오니는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다 한쪽으로 밀려나있는 자그마한 테이블을 발견하곤 왠지 허둥지둥 테이블을 준비하겠답시고 걸음을 옮기다. 그러다 자기 발에 걸려 넘어져 큰 소리를 낸 오니였지만 급히 몸을 움직여 테이블을 끌고와 앉는다. 넘어지며 이마를 박았기에 꽤나 아팠지만 애써 멀쩡한 척 빨개진 이마를 한 체 앉는다.
" 준비, 끝났어.. 에덴, 튀김 가지고 와... 아, 술... "
가만히 앉아있으려고 하던 것 같은 오니는 또다시 헛하는 소리를 내더니 냉장고로 가선 급하게 냉장고를 열려고 하다 다시금 이마를 문에 부딪친다. 이번엔 좀 아팠는지 잠시 이마를 손으로 감싼 체 고개를 푹 숙이고는 5초 정도 조용해지더니 슬그머니 맥주들을 테이블로 꺼내와선 조용히 앉아버린다.
" 아파아.... "
결국 평소의 무덤덤한 표정이었지만 통증과 부끄러움으로 붉게 물든 얼굴은 한 오니가 이마를 양손으로 짚은 체 중얼거릴 뿐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그는 쏙독새에 대해서 모른다. 대신 입이 엄청 큰 개구리족인가 하여 몹쓸 예측을 할 뿐이었다.
"만약 제가 이직하게 되면 거기 소개시켜주면 안되냐고 하려 했어요."
사실 대답은 이미 정해진 것과 같았다. 그런 말을 들으면 당연히 가고 싶어지는 법이다. 나름 하늘 아래 지옥도란 지옥도, 사지란 사지에 모두 발을 걸쳐봤지만 아직 그런 곳에서 작전을 수행한 적은 없었다. 넘쳐나는 오리지늄 부스러기 사이에서 배를 깔고 엎드려 조준경으로 적을 노려본다면... 아, 침 흐른다.
"그렇지 않아요? 호흡 한번 한번마다 가슴졸이고 긴장의 연속인 곳이 아닌가요?"
아까 표정이 굳어버린 것이 무색하게 엔돌핀에게 다시 활기가 돈다. 오래동안 엔돌핀 맛을 보지 못한 그에게 이런 이야기는 너무나 달콤하다.
따가울지도 몰라요. 건드리면 바스러질 듯 시린 목소리. 하지만 상처를 치유하는 손길은 섬세하고 따스하기만 해. 그는 악당도 주술사도 아니야. 단지 표현이 서툴 뿐, 자그만 상처도 아프지 않게 치유해 주는 상냥한 메딕. 바닥에 찧었던 무릎이 아직 얼얼해서 따갑지 않았어. 다만 조금 아쉬운 건, 그 탓에 손끝의 온기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 정도. 아프지 말아요. 그 한마디가 또다시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 마음이 떨리면 똑바로 서있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머릿속이 새하얘져. 소장님이나 네로 선생님, 그리고 다른 고마운 분들이 도와주었는데도 여전하네. 그래도, 이번에도 또.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아.
"네... 고맙습니다."
도나는 무릎에 붙은 반창고를 손끝으로 가볍게 문질렀다. 심호흡을 한 번 할 동안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바로 앞에서 올려다보는 그와 조심스럽게 눈을 맞췄다.
"아, 저는 돌로레스예요."
그쪽은요? 하는 얼굴이다. 아마 이전에 친목 도모회에서 본 적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도나는 두 손을 무릎 위에 다소곳이 모으고서 커다란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뜬다. 다문 입안의 혀는 간질간질하고, 갈 곳 잃은 꼬리는 허공에서 꼼지락거리고만 있다.
"기분나쁘다-라기보단... 아프다, 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네요. 그렇지만- 아니, 오히려 그래서 언니한테 더더욱 이러는 거니까요."
에덴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을 꺼냈다. 자기 가슴팍 위에 손을 얹고는, 리아를 가만히, 가넷 같은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고 리아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리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에덴은 싱긋 웃었다.
"언니한테 놀러오는 것 말고도, 언니랑 놀러가는 것도 기대하고 있어요."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것마냥 속삭인 에덴은, 짓궂은 미소를 띠며 리아에게서 물러났다. 그러나 그녀가 조심스레 튀김이 담긴 접시를 꺼내기가 무섭게 발이 걸려 자빠지고 연달아 문짝에 이마를 부딪히는 리아를 보고 허둥지둥 달려왔다. "괜찮아요?!" 테이블 위에 튀김이 담긴 도자기 그릇-전자레인지에 돌릴 때 옮겨담았다-을 되는대로 올려놓은 그녀는 리아의 이마에 손을 대고 그녀의 앞머리를 젖히며 걱정 가득한 눈길로 이마를 살피려 했다. 리아가 자기 이마를 손바닥으로 가리고 있어 도저히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괜히 말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봐봐, 반응이 이상하잖아... 상냥한 사람이 되는 건 어렵네. 이런 말 한마디에도 괜한 걸 했다며 후회하는 나는 아마 평생이 가더라도 좋은 사람은 못 될 거야. 어느 구석진 쪽방에서 싸구려 붓과 싸구려 물감과 싸구려 도화지로 싸구려 그림을 그리는 안팔리는 화가로써 쓸쓸히 인생을 마치는 게 나을 거야.... 정말로.
그래도 고맙다는 인사는 기쁘다. 아까까지의 후회와 아무튼 혼란스러웠던 기분이 삽시간에 평온해지는 걸 보면, 감사인사나 칭찬에는 특별한 힘이 있는 게 분명해. 꺼먼 그림 위에 선명한 노란색을 덧칠하는 것 같은 기분이야. 하지만 나는 표정변화도 분위기의 변화도 영 없는 모양이라..기뻐하는 게 티가 나진 않을 거야. 사람 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나는 내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 아마도.
그녀는 돌로레스라고 하는 모양이야. 본인이 말한 거니까 분명하겠지. 들은 적 있는 지는 모르겠어. 전의 친목 도모회에서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거기서 정신을 빼놓고 있었거든.
"나는.. 이젤, 이젤이에요."
조금 말은 더듬은 것도 같아. 그보다... 나는 흘깃 그녀를 보았어.
"...잠시만요."
바닥이 빛나기 시작해. ...나는 놀라지 않았어. 내가 한 거거든. 바닥에는 크게 자란 나무 같은 그림이 그려져. 내가 원한대로. 가능한 생기있게 그리려고 하는데 어려워. 물감도 붓도 뭣도 없이 하는 거니까 그래. 나는 아마 붓을 쓰는 게 성격에 맞는 모양이야. 아마.
"....미안해요. 원래 이랬어야 하는데..."
빛이 가라앉고 그림도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입을 떼었어.
"상처..다 나았을 거에요. 그, 선생님이 없어서 조금 당황하고 있었나봐요...아츠도 까먹고.."
두사람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듣는다면 알아들을 수 없을 말을 뱉는 에덴을 바라보며 오니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망설이더니 짧은 물음을 던진다. 에덴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오니의 안에서는 좀처럼 형태가 잡히지 않았기에 이런 짧은 말밖에 돌려주질 못하는 것이었다.
" 놀러가는거.. 에덴이 말하면 괜찮은데. 다음에는, 말해줘. 가면 되잖아, 놀러. "
짖궂은 미소를 띈 체 속삭인 에덴이 물러나는 것을 눈을 깜빡이며 조용히 바라보던 오니는 아주 잠시 날카로웠던 눈매를 곱게 접어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어 냈다. 입가는 아주 미미한 변화만 일어났지만, 분명 미소라 이름을 붙일 수 있을 표정은 금방 사라졌지만 사라지는 와중에 오니는 조용히 짖궂었던 에덴의 말에 답을 돌려준다.
" 나..나.. 괜찮은데.... "
괜찮다고 말하는 오니의 긴 속눈썹에는 이미 두번의 부딪침 때문에 눈물이 약간 고여 매달려 있었지만, 오니의 입에서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괜찮다는 말만 작게 새어나올 뿐이었다. 오히려 에덴의 손이 이마에 닿을수록 버둥버둥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 우,우리 얼른 먹자, 튀김. 금방 식을거야. "
발만 바둥거리던 오니는 이내 자신의 이마에 가져다 댄 에덴의 손을 양손으로 잡아서 천천히 얼굴 밑으로 내리곤 아주 살짝 시선을 피한 체로 조용히 속삭였다. '맥주도, 마시고.. ' 하고 기어들어가듯 말하는 건 오늘따라 오니의 평정이 여러번 무너지는 탓이 분명했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더니, 그는 예상했던 답을 당연한듯이 돌려주었다. 아직 들어온지 얼마 안된 시점에서 벌써부터 이직 생각이라니, 그정도로 이곳에 싫증이 난 걸까? 역시 그건 좀 슬플지도 모른다.
"으음... 딱히 추천하지 않는걸? 거긴 말 그대로 자빠지면 그 부위 그대로 광석이 돋아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약간 과장을 좀 보태긴 했지만 아얘 틀린 말도 아니었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게 평범한 돌맹이가 아닌 오리지늄 조각들이고, 이미 썩어 문드러져 나무의 형상만 가까스로 취하고 있는 그것은 시종일관 유독가스를 내뿜었다. 차라리 탄광에 코를 박거나 유황으로 목욕을 하는게 낫지, 세상 어느 누가 오리지늄을 바로 옆에 두고 적과의 삼파전을 하고 싶을까?
"...구태여 사지로 들어서는걸 좋아하는 타입이구나...?"
이번엔 그녀가 살짝 질린 표정과 함께 몸을 슬쩍 뒤로 물렸다. 방금 전과는 다르게 활기가 도는 표정은 누가 봐도 '나 거기 가보고 싶소.'하는 반응이었기에 그녀는 그런 그의 또랑또랑한 모습에 살짝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여기라고 그런 일이 없진 않은걸? 다만 자주 없을 뿐이지... 극한직업일수록 보수도 짭짤하기에 다들 먼저 채가는 걸 수도 있고...
무엇보다 나도 지원나온게 아니라 아얘 거기 그만두고 온거니까 추천이다 뭐다 그런거 해줄 수도 없는걸~"
물론 그만두고 왔다는 말은 반쯤 거짓말이었다. 언젠가 그곳에서 자신을 필요로 하면 홀연히 사라지겠지, 대의를 위해서라면 현재의 위치 따위 언제든 버릴 수 있어야 했다. 그곳에선 잃을 것밖에 없었으니,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고 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