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비아의 섹터 09 이동도시, 그 한복판에 위치한 사무소. 인력대행사무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그 실상은 온갖 용병들로 들어찬 사설경비업체이다. 이 업체가 특이한 것은 시류의 상황을 따지지 않고 이익이 된다고 독자적으로 판단한 가치를 따른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아르고 에이전시는 당신이 누구던, 어디서 뭘했던간에 방주 밖에 남겨진 모두를 받아들인다.」
나 매번 에덴 말 안 들으니까. 오니는 고개를 저으며 말하다 자그맣게 말을 덧붙이며 에덴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는다. 과거의 굳어버리던 에덴과 지금의 지지 않고 한걸음 더 다가오는 에덴의 모습은 너무나도 달랐지만, 아마도 좋은 쪽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오니는 생각했다.
" ..그렇구나, 몰랐어. "
자신의 손 위에 부드러운 에덴의 손이 얹어지자 눈이 아주 잠시, 찰나의 순간 커졌던 오니는 이어서 들려오는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에덴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자신보다도 더 바른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자그맣게 답하던 오니는 이어서 들려오는 에덴의 말에 다시금 화들짝 놀라더니 급하게 머리에서 손을 떼어낸다.
" 나, 테이블.. 준비.. "
허둥지둥, 홱 몸을 돌린 오니는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다 한쪽으로 밀려나있는 자그마한 테이블을 발견하곤 왠지 허둥지둥 테이블을 준비하겠답시고 걸음을 옮기다. 그러다 자기 발에 걸려 넘어져 큰 소리를 낸 오니였지만 급히 몸을 움직여 테이블을 끌고와 앉는다. 넘어지며 이마를 박았기에 꽤나 아팠지만 애써 멀쩡한 척 빨개진 이마를 한 체 앉는다.
" 준비, 끝났어.. 에덴, 튀김 가지고 와... 아, 술... "
가만히 앉아있으려고 하던 것 같은 오니는 또다시 헛하는 소리를 내더니 냉장고로 가선 급하게 냉장고를 열려고 하다 다시금 이마를 문에 부딪친다. 이번엔 좀 아팠는지 잠시 이마를 손으로 감싼 체 고개를 푹 숙이고는 5초 정도 조용해지더니 슬그머니 맥주들을 테이블로 꺼내와선 조용히 앉아버린다.
" 아파아.... "
결국 평소의 무덤덤한 표정이었지만 통증과 부끄러움으로 붉게 물든 얼굴은 한 오니가 이마를 양손으로 짚은 체 중얼거릴 뿐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그는 쏙독새에 대해서 모른다. 대신 입이 엄청 큰 개구리족인가 하여 몹쓸 예측을 할 뿐이었다.
"만약 제가 이직하게 되면 거기 소개시켜주면 안되냐고 하려 했어요."
사실 대답은 이미 정해진 것과 같았다. 그런 말을 들으면 당연히 가고 싶어지는 법이다. 나름 하늘 아래 지옥도란 지옥도, 사지란 사지에 모두 발을 걸쳐봤지만 아직 그런 곳에서 작전을 수행한 적은 없었다. 넘쳐나는 오리지늄 부스러기 사이에서 배를 깔고 엎드려 조준경으로 적을 노려본다면... 아, 침 흐른다.
"그렇지 않아요? 호흡 한번 한번마다 가슴졸이고 긴장의 연속인 곳이 아닌가요?"
아까 표정이 굳어버린 것이 무색하게 엔돌핀에게 다시 활기가 돈다. 오래동안 엔돌핀 맛을 보지 못한 그에게 이런 이야기는 너무나 달콤하다.
따가울지도 몰라요. 건드리면 바스러질 듯 시린 목소리. 하지만 상처를 치유하는 손길은 섬세하고 따스하기만 해. 그는 악당도 주술사도 아니야. 단지 표현이 서툴 뿐, 자그만 상처도 아프지 않게 치유해 주는 상냥한 메딕. 바닥에 찧었던 무릎이 아직 얼얼해서 따갑지 않았어. 다만 조금 아쉬운 건, 그 탓에 손끝의 온기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 정도. 아프지 말아요. 그 한마디가 또다시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 마음이 떨리면 똑바로 서있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머릿속이 새하얘져. 소장님이나 네로 선생님, 그리고 다른 고마운 분들이 도와주었는데도 여전하네. 그래도, 이번에도 또.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아.
"네... 고맙습니다."
도나는 무릎에 붙은 반창고를 손끝으로 가볍게 문질렀다. 심호흡을 한 번 할 동안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바로 앞에서 올려다보는 그와 조심스럽게 눈을 맞췄다.
"아, 저는 돌로레스예요."
그쪽은요? 하는 얼굴이다. 아마 이전에 친목 도모회에서 본 적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도나는 두 손을 무릎 위에 다소곳이 모으고서 커다란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뜬다. 다문 입안의 혀는 간질간질하고, 갈 곳 잃은 꼬리는 허공에서 꼼지락거리고만 있다.
"기분나쁘다-라기보단... 아프다, 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네요. 그렇지만- 아니, 오히려 그래서 언니한테 더더욱 이러는 거니까요."
에덴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을 꺼냈다. 자기 가슴팍 위에 손을 얹고는, 리아를 가만히, 가넷 같은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고 리아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리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에덴은 싱긋 웃었다.
"언니한테 놀러오는 것 말고도, 언니랑 놀러가는 것도 기대하고 있어요."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것마냥 속삭인 에덴은, 짓궂은 미소를 띠며 리아에게서 물러났다. 그러나 그녀가 조심스레 튀김이 담긴 접시를 꺼내기가 무섭게 발이 걸려 자빠지고 연달아 문짝에 이마를 부딪히는 리아를 보고 허둥지둥 달려왔다. "괜찮아요?!" 테이블 위에 튀김이 담긴 도자기 그릇-전자레인지에 돌릴 때 옮겨담았다-을 되는대로 올려놓은 그녀는 리아의 이마에 손을 대고 그녀의 앞머리를 젖히며 걱정 가득한 눈길로 이마를 살피려 했다. 리아가 자기 이마를 손바닥으로 가리고 있어 도저히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괜히 말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봐봐, 반응이 이상하잖아... 상냥한 사람이 되는 건 어렵네. 이런 말 한마디에도 괜한 걸 했다며 후회하는 나는 아마 평생이 가더라도 좋은 사람은 못 될 거야. 어느 구석진 쪽방에서 싸구려 붓과 싸구려 물감과 싸구려 도화지로 싸구려 그림을 그리는 안팔리는 화가로써 쓸쓸히 인생을 마치는 게 나을 거야.... 정말로.
그래도 고맙다는 인사는 기쁘다. 아까까지의 후회와 아무튼 혼란스러웠던 기분이 삽시간에 평온해지는 걸 보면, 감사인사나 칭찬에는 특별한 힘이 있는 게 분명해. 꺼먼 그림 위에 선명한 노란색을 덧칠하는 것 같은 기분이야. 하지만 나는 표정변화도 분위기의 변화도 영 없는 모양이라..기뻐하는 게 티가 나진 않을 거야. 사람 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나는 내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 아마도.
그녀는 돌로레스라고 하는 모양이야. 본인이 말한 거니까 분명하겠지. 들은 적 있는 지는 모르겠어. 전의 친목 도모회에서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거기서 정신을 빼놓고 있었거든.
"나는.. 이젤, 이젤이에요."
조금 말은 더듬은 것도 같아. 그보다... 나는 흘깃 그녀를 보았어.
"...잠시만요."
바닥이 빛나기 시작해. ...나는 놀라지 않았어. 내가 한 거거든. 바닥에는 크게 자란 나무 같은 그림이 그려져. 내가 원한대로. 가능한 생기있게 그리려고 하는데 어려워. 물감도 붓도 뭣도 없이 하는 거니까 그래. 나는 아마 붓을 쓰는 게 성격에 맞는 모양이야. 아마.
"....미안해요. 원래 이랬어야 하는데..."
빛이 가라앉고 그림도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입을 떼었어.
"상처..다 나았을 거에요. 그, 선생님이 없어서 조금 당황하고 있었나봐요...아츠도 까먹고.."
두사람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듣는다면 알아들을 수 없을 말을 뱉는 에덴을 바라보며 오니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망설이더니 짧은 물음을 던진다. 에덴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오니의 안에서는 좀처럼 형태가 잡히지 않았기에 이런 짧은 말밖에 돌려주질 못하는 것이었다.
" 놀러가는거.. 에덴이 말하면 괜찮은데. 다음에는, 말해줘. 가면 되잖아, 놀러. "
짖궂은 미소를 띈 체 속삭인 에덴이 물러나는 것을 눈을 깜빡이며 조용히 바라보던 오니는 아주 잠시 날카로웠던 눈매를 곱게 접어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어 냈다. 입가는 아주 미미한 변화만 일어났지만, 분명 미소라 이름을 붙일 수 있을 표정은 금방 사라졌지만 사라지는 와중에 오니는 조용히 짖궂었던 에덴의 말에 답을 돌려준다.
" 나..나.. 괜찮은데.... "
괜찮다고 말하는 오니의 긴 속눈썹에는 이미 두번의 부딪침 때문에 눈물이 약간 고여 매달려 있었지만, 오니의 입에서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괜찮다는 말만 작게 새어나올 뿐이었다. 오히려 에덴의 손이 이마에 닿을수록 버둥버둥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 우,우리 얼른 먹자, 튀김. 금방 식을거야. "
발만 바둥거리던 오니는 이내 자신의 이마에 가져다 댄 에덴의 손을 양손으로 잡아서 천천히 얼굴 밑으로 내리곤 아주 살짝 시선을 피한 체로 조용히 속삭였다. '맥주도, 마시고.. ' 하고 기어들어가듯 말하는 건 오늘따라 오니의 평정이 여러번 무너지는 탓이 분명했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더니, 그는 예상했던 답을 당연한듯이 돌려주었다. 아직 들어온지 얼마 안된 시점에서 벌써부터 이직 생각이라니, 그정도로 이곳에 싫증이 난 걸까? 역시 그건 좀 슬플지도 모른다.
"으음... 딱히 추천하지 않는걸? 거긴 말 그대로 자빠지면 그 부위 그대로 광석이 돋아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약간 과장을 좀 보태긴 했지만 아얘 틀린 말도 아니었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게 평범한 돌맹이가 아닌 오리지늄 조각들이고, 이미 썩어 문드러져 나무의 형상만 가까스로 취하고 있는 그것은 시종일관 유독가스를 내뿜었다. 차라리 탄광에 코를 박거나 유황으로 목욕을 하는게 낫지, 세상 어느 누가 오리지늄을 바로 옆에 두고 적과의 삼파전을 하고 싶을까?
"...구태여 사지로 들어서는걸 좋아하는 타입이구나...?"
이번엔 그녀가 살짝 질린 표정과 함께 몸을 슬쩍 뒤로 물렸다. 방금 전과는 다르게 활기가 도는 표정은 누가 봐도 '나 거기 가보고 싶소.'하는 반응이었기에 그녀는 그런 그의 또랑또랑한 모습에 살짝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여기라고 그런 일이 없진 않은걸? 다만 자주 없을 뿐이지... 극한직업일수록 보수도 짭짤하기에 다들 먼저 채가는 걸 수도 있고...
무엇보다 나도 지원나온게 아니라 아얘 거기 그만두고 온거니까 추천이다 뭐다 그런거 해줄 수도 없는걸~"
물론 그만두고 왔다는 말은 반쯤 거짓말이었다. 언젠가 그곳에서 자신을 필요로 하면 홀연히 사라지겠지, 대의를 위해서라면 현재의 위치 따위 언제든 버릴 수 있어야 했다. 그곳에선 잃을 것밖에 없었으니,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고 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