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비아의 섹터 09 이동도시, 그 한복판에 위치한 사무소. 인력대행사무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그 실상은 온갖 용병들로 들어찬 사설경비업체이다. 이 업체가 특이한 것은 시류의 상황을 따지지 않고 이익이 된다고 독자적으로 판단한 가치를 따른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아르고 에이전시는 당신이 누구던, 어디서 뭘했던간에 방주 밖에 남겨진 모두를 받아들인다.」
리타는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마치 퍽퍽한 세상에서 혼자 분리된 듯 말이다. 일말의 여유를 느끼며 노랫말을 흥얼이던 그녀가, 별안간 가사의 끄트머리를 천천히 늘이며 노래를 끊어버린다. 다음 가사가 뭐더라... 분명 그녀가 좋아하는 노래였다. 참 자주 흥얼였고, 참 자주 듣던 노래였는데. 가사가 기억나질 않는 것이다. 그녀가 아쉬운 듯 느릿히 눈을 뜨며 한숨을 내뱉었다. 아주 잠시나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그 끝맛이 너무도 아쉬운 것이다.
" ...어? 누구세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
씁쓸한 향수에 젖을 시간은 그리 오래되질 못했다. 애초에 이곳은 그녀의 직장 휴게실이다. 그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그 누구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그런 곳에서 대담히 노래를 부르다니. 리타가 눈 앞에 보이는 낯선 이를 향해 당황한듯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낯선 이'는 아니고, 저보다 연차가 꽤나 많은 선배였다. 부끄러움, 창피함, 죄송함…. 그 모든 감정들이 한 순간에 그녀를 현실로 집어끈다. 이곳은 과거의 라테라노가 아닌, 현재의 아르고라는 것을 말이다.
" 죄송해요... 아무도 없는 줄 알고... 그게... "
여자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갛게 달아오른 귀끝이 그녀가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냈다. 한 손으로는 커피잔을 든 채로, 그녀는 제 눈가를 어루어만지며 열감이 오른 얼굴를 차분히 식혔다. 지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갈까. 차마 눈 앞의 남자를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없어, 채 함부로 걸음을 옮기지도 못하는 꼴을 보아하니 제법 난처해진 모양이다.
" 그, 방해해서 죄송... 합니다, 정말... "
여자가 기어들어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황하는 눈길이 남자의 발끝을 바라보다, 힐금 남자의 눈을 바라보다, 다시 발끝을 향해 흘러내린다.
노래를 끝마치고서야 자신의 존재를 눈치챘던 눈 앞의 여성을 말 없이 바라보고있었다. 소심한 성격을 여과없이 드러내며 낯부끄러워하는 리타의 모습이 보기엔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새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보단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커피잔이 라샤의 시선을 향하게끔 만들었다.
"......"
라샤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지도 못한채 시선을 발끝으로 향하고선 금방이라도 자리를 뜰 것 같은 그녀의 곁에있던 커피머신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잘 부르던걸."
역시 그녀를 바라보지않은채 묵묵히 제 할일을 하며 커피를 타고있던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부끄러워하는 그녀를 조금이라도 복돋아주기 위해 내뱉은 가벼운 칭찬의 말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무척이나 무신경한 그 모습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에덴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어지간해서는 곧이곧대로 말해주는 타입이었다. 확실히 오늘 근무는 별일 없었다. 광석충 몇 마리 정도는 칩칩스런 날벌레 몇 마리나 다름없는 것이고, 그것들 외에는 오늘의 호위임무는 따분하리만치 평화로웠으니까. 적어도 에덴은 리아가 자신을 파고들겠다고 한다면 리아를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만큼이나 리아를 파고드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항상 그렇게 자기 몸 생각은 안 하고. 내가 언니 걱정하는 건 몰라줄 셈이죠."
결국에는 잔소리 한 마디를 톡 뱉어내고 만 에덴은, 리아의 손목에서 손을 뗐다. 그리곤 짐짓 심통이 난 것처럼 고개를 돌렸지만... 리아가 대체 어디서 배워온 건지 모를 무표정 애교를 시전하자 그녀는 더 이상 정색하는 표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그만 후후후, 하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에덴은 다시 고개를 돌려 리아와 눈을 맞춘 채로, 몸을 기울여 리아에게로 자기 얼굴을 가깝게 다가세우고는, 리아와 똑같은 각도로 머리를 살짝 기울인다. 그리고 눈웃음을 치며, 속삭이듯 질문했다.
"그런 귀여운 건 어디서 배웠어요?"
그러다 에덴은 얼굴에 빙긋이 미소를 띄면서 물러서서는, 튀김이 담긴 접시를 집어들었다.
"애초에 언니랑 먹으려고 가져온걸요. -언니랑 같이 먹기엔 양이 좀 적으려나?"
하고, 그녀는 다시 접시 위로 눈길을 돌렸다. 확실히 그 접시에 담겨 있는 튀김이며 닭꼬지는 2인분이 넉넉하게- 3인분이라고 해도 될 양이었지만, 리아의 식사량을 생각해보면 조금 모자랄지도 모르겠다고 에덴은 생각했다.
오니는 말문이 막힌 듯 심통이 난 것처럼 말하는 에덴을 바라보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늘 전투에 나서는 그녀는 사람이 바뀌어버려 에덴의 잔소리는 뒤로 한체 이판사판으로 적을 향해 달려들고, 다치곤 했으니까. 물론 에덴이 걱정하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때문에 에덴의 말에 무어라 반박을 할 수 없었던 오니는 그저 앵두빛이 감도는 입술을 달싹이다 말을 잇지 못하는 것이었다.
" 그, 아... 잡,잡지... "
다행히 책에서 읽은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심통이 났던 에덴이 웃는 것을 보며 안도하던 오니는 이내 얼굴을 가까이 하는 행동에 놀라선 아주 조금 커진 눈으로 바라본다. 파르르, 눈가가 떨려오는 것이 적잖이 에덴의 행동에 놀란 모양이었다. 여전히 오니를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무표정해보일지 모르지만, 분명 지금 가슴팍에 귀를 대보면 심장소리가 빨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에덴의 거리에서라면 약간의 홍조가 생겼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지도 몰랐다.
" 아냐, 괜찮아.. 같이 먹으면, 많이 배부르지 않아도.. 괜찮아. 에덴도, 먹어야 하니까. "
에덴의 물음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화끈거리는 얼굴을 가라앉히려는 듯 고개를 휙휙 저어보인 오니가 평소 보다 작아진 목소리로 말한다.
" 어, 그, 내가 준비.. "
아직 평정을 되찾지 못한 듯 벌떡 몸을 일으킨 오니는 휙 돌아서서 에덴에게 등을 보이더니 휘청거리는 걸음걸이로 튀김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 모습으로 봐선 누가 보아도 뭔가를 맡기면 일이 터질 것이라는 것이 뻔해보였지만 오니는 동요를 감추려는 듯 허겁지겁 움직이기 시작했다.
"걔는 돈보다 딸기케이크를 더 좋아하는 애야. 교사 역할은 이미 계약처의 돌팔이 의사가 하고있고. 가끔이지만 말이지."
계약처라고 하면, 아르고를 보호소로 굴러가도록 할 수 있는 의료기업이었다. 그곳의 닥터 [검열됨]가 아르고의 대원들 전반의 광석병 상태를 진찰하고 처방하고 있는 것은 아이다도 아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그 닥터는 믿음직한 사람은 아니었다. 실력은 좋디만 따지자면 매드 사이언티스트에 가까운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이 찰리의 가정교사를 한다고?
이런저런 임무에 호출을 받고 나가려면 건강을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러니 부상이라도 당하면 메딕에게 꼬박꼬박 얼굴을 비추는 것이었고. 하지만 상처를 치료하는 것과 건강검진은 아무래도 큰 차이를 보일 수 밖에는 없었고, 사샤는 검진을 받는 것은 시간 낭비라 여겼다.
"그러고보면 후배님은 요리를 잘했죠."
종종, 네가 하는 요리들을 집어먹은 기억이 있다. 사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말없이 담배만 뻑뻑 피워대다 아직 반쯤 남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서 껐다. 이 또한 자주 보이는 모습 중 하나였다. 말 없이 담배만을 태우는 모습. 사회성과는 또 별개로, 애초에 말 수 자체가 그리 많은 사람이 아니었으니 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난 오늘은 이만 가볼게요. 아직 오늘치 훈련을 다 못 끝내서."
사샤는 다소 느릿한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래, 저렇게 느긋해 보이는 사람이지만 일단 하루하루의 일이나 훈련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으니까 말이야. 사샤는 기지개를 쭉 한 번 켜고는 너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놀란 눈으로 라샤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곧, 다시 얼굴를 붉히며 고개를 푹 숙이고 마는 것이다. 언제부터였을진 모르겠다만, 그녀는 칭찬을 들으면 그것을 부정하는 버릇이 있었다. 아마도 라테라노를 떠난 이후부터였겠지. 검은 고리와 날개, 뿔을 당당히 보여줄 수 없었던 그 시절부터 말이다. 하지만 이는 좋은 버릇이 아니다. 부정의 말을 내뱉은 리타가 자동적으로 감사 인사를 덧붙였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라도 그 버릇을 고쳐먹는 것이 좋을테다.
리타의 시선이 라샤의 뒤를 쫓는다. 그는 커피 머신을 켰고, 이어 따뜻한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노래를 좋아한다는 한마디와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리타는, 그저 그를 묵묵히 바라보다 퍼득 제 손에 들린 커피의 존재를 알아채는 것이다. 리타가 어색히 주변을 살피며 입을 달싹였다. 이럴 때는, 뭐라고 말을 하는 게 좋지?
" 그, 저도... 노래 좋아해요. "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던 눈동자가 하얀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러자 리타는, 무언가를 들킨 듯 놀랜 기색으로, 눈길을 돌려 버리곤 그를 따라 커피를 한모금 넘겨냈다. 뜨거움와 따뜻함 그 사이로 적절히 식은 커피는 향기로웠고, 마음을 가라앉히기 충분했다.
" 알라스토르...씨 이시죠? 그, 임무 하면서 몇 번 뵌 적이 있어요. 저는 아직 일 년차라... 잘 모르실 수도 있지만... "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힌 뒤, 리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르고에서 6년을 보낸 그를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으리라. 리타가 커피잔을 쥔 손을 꼼질였다. 그러니까, 저는요...
" 저는, 판도라... 구요. 이름은 리타예요. 리타 무에르테. "
리타가 따뜻히 열이 오른 손으로 제 왼 뺨을 문질렀다. 생각해보니, 얼마 전 과자파티에서 했던 자기소개를 들었을지도 모르리라. 리타가 조심스레 라샤의 눈을 바라보았다. 지금, 제대로 말을 이어가고 있는 게 맞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