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비아의 섹터 09 이동도시, 그 한복판에 위치한 사무소. 인력대행사무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그 실상은 온갖 용병들로 들어찬 사설경비업체이다. 이 업체가 특이한 것은 시류의 상황을 따지지 않고 이익이 된다고 독자적으로 판단한 가치를 따른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아르고 에이전시는 당신이 누구던, 어디서 뭘했던간에 방주 밖에 남겨진 모두를 받아들인다.」
"부정은 못하지. 하지만 광석병 감염자들의 얼마 없는 피난처를 그리 표현하면 못 써. 이녀석."
알트 본인이 그 당사자이니까, 강한 어조로 부정하기도 뭐하다. 특이한 사람들이라. 그런 이들이 모였기에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남은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하하... 그래. 안좋은걸 배우는것도 배운다고 해 줘야지."
알트는 5년간 이곳에서 일하며 살아남았다. 물론 우리가 직원들의 목숨을 내던지는 블랙기업까지는 아니지만, 무력을 행사하는 곳이다. 그러한 곳에서 저만큼이나 살아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당연히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후배들이 그것을 받아들여 살아남을지 어떨지는 미지수이지만.
>>666 리아가 불려나갈 정도의 전투 임무였는데 자기한테는 기별 하나 없었다는 점에서 당황 + 리아언니는 힘들게 일하고 오는데 자긴 탱자탱자 놀고 있었다는 죄책감으로 감정선이 뒤흔들려버릴 것 같았거든요 yy 가벼운 전투임무였다면, 리아주가 원하면 그렇게 하기로 해요. 선레는 어떻게 할까요?
생각해보면 여기 남는 사람들은 왜 남는건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말하는 내가 눌러붙어서 5년이나 지내고 있다만 그런 사소한건 넘어가도록 하자.
"하지만 선배도 잘 알잖아요. 뭐 이곳의 상식이야 알려줄 수 있어도 전투부분에서 절 참고하긴 힘들다는거."
간단한 체술의 참고정도면 모를까. 같은 스페셜리스트 포지션이 아니고서야 내 전투방식이 차이가 나는건 내가 가장 잘 안다. 어쨌거나 이런 업종이기에. 결국 밖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전투기술을 가르치는게 제일 중요하고. 그렇다고 멘탈케어쪽으로 자신이 있는것도 아니었기에 지금 이렇게 둥가둥가 놀고 있는거지.
"뭐 그게 정공이지만, 글쎄요~ 선배가 앞에서 방패들고 전진하고 있는데 뒤를 신경 쓸 놈들이 있을까 싶네요~"
전투에 있어서 방심은 죽음이라지만, 조금 분위기가 무거워진 감이 있어 나는 가볍게 농담을 했다. 실제로도 그 위압감은 장난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무조건 나는 괜찮다고 말한건 아니라는듯 쓴 웃음을 짓는건 별개로..
문을 열어보면, 그 곳에는 조금 의외의 풍경이 있었다. 새하얀 머리카락의 단발머리 소녀가 잠들어있는 모습. 쿠션을 끌어안은 채로 앞으로 고꾸라진 건지 절을 하는 건지 고양이가 식빵 굽는 것 같은 자세로. 하얀 머리카락은 관자놀이에서 돋아난 검붉은 뿔 위로 흐트러져 있고, 그 아래의 속눈썹 긴 눈은 곱게 꾹 감긴 채로, 기묘한 자세로 잠들어있는 것 빼고는 별다른 잠꼬대도 하지 않고 그녀는 곱게 잠들어 있었다.
앉은뱅이 테이블 위에는 술안주로 가져왔음직한 닭꼬치와 튀김이 들어있는 스티로폼 접시가 놓여 있고, 그 옆에는 이미 비어 있는 맥주 캔이 하나 있었다. 십중팔구 냉장고를 열어보면 다른 맥주캔이며 술병이 들어있을 모양이다.
에덴 마이어. 작년 이맘때쯤 입사한 루키로, 리아에게 멘티로 붙여진 오퍼레이터였다. 함께 전장을 몇 차례인가 굴러다니며 몇 달을 보내자 그녀는 제법 혼자서도 1인분을 할 수 있는 오퍼레이터로 자라났지만, 멘토와 멘티 생활을 하면서 다져진 유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그녀는 종종 이렇게 리아의 집을 찾아오곤 했다.
리아가 들어오는 소리가 에덴의 귀에 들렸는지, 에덴은 앞으로 고꾸라진 채로 눈을 움찔했다. 숱 많은 속눈썹이 찬찬히 열리나 싶더니, 석류석을 보는 것 같은 새빨간 눈동자가 리아를 빤히 응시했다. 인사 대신 에덴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샤워하니까 살 것 같다. 오니가 샤워장을 나서면서 느끼는 단촐한 감상이었다. 언제나 임무에 나설 때면 날뛰고 마는 오니였기에, 치료를 받고 피냄새를 최소화 하는 것은 빼먹어서는 안될 작업이었다. 따스한 물에 먼지와 말라붙은 피를 씻어내고 나면 한결 쉬기 좋은 상태로 돌아오는 것은, 용병으로 활동하면서 배운 몇 안되는 좋은 것으로 어지간하면 샤워를 미루는 법이 없었다.
" ... 배고파 "
오늘은 다행히 팔부분만 다쳤기에 오른팔에 붕대를 감아두는 간단한 치료로 마무리 했기에, 기력 회복까지는 안 했기 때문에 배고프고 마는 오니였다. 집에 사다둔 것이 있었나 고민을 하면서도, 배고픔에 머리가 그리 잘 굴러가지 않는지 작게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집에 아무것도 없더라도 무언가 시켜먹던가 하면 될지도 모르니까.
차분한 걸음걸이로 사무소 근처의 방으로 걸음을 옮긴 오니는 언제나의 무덤덤한 표정으로 집 앞에 멈춰선다. 한순간 비밀번호 키로 손가락을 옮기던 오니는 무언가 냄새를 맡듯 코를 움찔거리더니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평소의 향과는 다른 무언가가 섞여있었다. 그렇지만 그리 낯선 향은 아니었다. 잘 알고 있는 익숙한 향. 그렇기에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여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문을 연다.
" .. 에덴? "
에덴의 붉은 눈동자가 오니의 눈동자와 마주치자 오니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잔잔하게 이름을 부른다. 자신의 집에 먼저 들어와있는 방문자를 보고도 그리 놀라지는 않은 듯 차분하게 전투화를 벗고 집으로 들어선 오니는 겉에 걸치고 있던 새하얀 코트를 옷걸이에 걸어두곤 천천히 누워있는 에덴에게 다가온다.
" 오늘, 쉬는날? "
천천히 붕대가 감겨있는 손을 내밀어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에덴의 머리에 손을 얹으려 하며 무덤덤한 표정으로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