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별 것 아닌 일에도 감사와 사과의 인사를 덧붙이는 것은 몸 구석구석에 끈적히 달라붙은 그녀만의 가련한 습관이리라. 리타가 조심스레 옆자리의 의자를 끌어 앉았다. 가볍게 인사를 한 뒤 그녀가 천천히 테이블 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제가 좋아하는 감자칩이 있는 것을 발견하곤 심심한 미소를 지어올리다, 제 머리 위로 느껴진 손길에 느릿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해요. 저도 리아씨랑 함께 과자를 먹고 싶어서... "
그녀가 살며시 리아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어딘가 웃긴 대답이긴 했지만, 틀린 부분은 없으니 구태여 고칠 필요는 없어보였다. 같이 먹고 싶다는 리아의 말은 한껏 긴장해 빳빳해진 그녀의 자세를 풀어주기 충분했다. 조금은 부드러워진 어깨로, 잠시 입술을 달싹이던 리타가 감자칩 한 조각을 집어들며 입을 열었다.
" 사람들이 많네요... 처음 뵙는 분들도 꽤 있는 거 같아요. "
그러니까, 이른바 스몰톡을 시도한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발전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만 닿아도 제 고리와 날개를 보는 것은 아닐까, 불쾌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전긍긍하던 날들이 엊그제 같건만. 아직 갈길이 멀다 한들 그녀는 제 나름의 천리길을 걸어왔으니 스스로를 다독여주기 충분하리라. 그녀가 어색히 미소를 머금었다. —이거, 맛있어요. 리타가 리아 쪽으로 조심스레 감자칩 봉지를 밀어주며 덧붙였다. 정말요. 하는 확신과 함께.
자기 소개를 끝마친 테티는 꺼낸 망치를 다시 등에 매고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 착석했다. 신입의 긴장감은 온데간데 없고 단지 눈 앞에 있는 과자에만 정신이 팔린 테티의 크림색 귀가 쫑긋한 것은 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정확히는 '서포터'라는 자신과 같은 포지션에 흥미가 동한 것이다. 운이 좋게도 바로 옆자리에 그녀가 앉아있는 덕에 테티는 과자를 한 입 물고는 우물거리며 곁으로 바싹 다가갔다.
"오라클 씨. 오라클 씨." 조금 전 대원들 앞에 서서 긴장한 그녀의 모습은 개의치 않은 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속삭이듯 부르는 꼴이 참으로 해맑았다.
"제 이름 기억하시나요? 테티에요 테티, 정확히는 빅! 테티지만요. 이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고요, 아까 그랬죠? 서포트라고! 저 다 들었어요!"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전부 알 사실을 무슨 희대의 비밀을 캐낸 것 마냥 발언하며,
"서포트면 어느 쪽이에요? 치료? 버프? 아 혹시, 저랑 같은 디버프 계열일까요! 저랑 같은 포지션은 저와 어떻게 다르게 싸울 지 전부터 궁금했었거든요. 하지만 아직 한달 밖에 안 되어서 한번도 못 본 거 있죠!"
이름 부르는 것이 어려울까 싶은 오니였지만, 리타는 자신처럼 단순하지 않으니까 그럴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만다. 딱히 자신은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는 편이니까 신경을 쓰지 않지만 처음 왔을 때부터 리타는 꽤나 신경 쓰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오니만큼은 편하게 해주자고 나름대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으니까. 자신의 옆에 앉은 리타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도 피하지 않고 얌전히 있는 리타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곤 자신의 얼굴을 보며 말해오는 것을 보곤 천천히 붉은 기운을 띈 입술을 연다.
" 그랬구나. 잘했어. 나한테는 편하게 와도 괜찮아. 그, 리타랑 먹는 건 좋아하거든. "
긴장이 어느정도 풀린 듯한 리타를 보며 잔잔한 목소리로 걱정할 것 없다는 듯 말한 오니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서 테이블 위의 쿠키를 바라본다. 그리곤 리타의 머리위에 얹어져 조심스럽게 쓰다듬는 손이 아닌 비어있는 나머지 손을 움직여 쿠키를 집어선 입가로 가져가 오물거린다. 달콤함이 퍼져나가자 배고픔이 조금 가시는게 느껴진다. 본격적으로 배를 채웠다고 하기엔 이제야 시동이 걸리고 있는 참이었지만 달콤한 것이 들어오니 확실히 더욱 더 편안해지고 마는 오니였다.
" 신입 많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베테랑들도 많아. 리타 눈 좋아. 정확해. 그치만 어려울 것 없어. 다들 동료니까. "
감자칩을 집어들며 입을 연 리타의 말에 대견하다는 듯 얹고 있던 손으로 살며시 통통 두르려준 오니는 조금 더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답해준다. 생각해보면 처음엔 이렇게 말도 못 했던 것 같은데, 후배의 발전이 퍽이나 기쁜 모양이었다. 어색한 미소를 보니 자신이 웃어줄 수 있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다 감자칩 봉지를 밀어주며 덧붙이는 말에 물끄러미 바라보다 감자칩을 하나 집어 입에 넣는다.
" ... 맛있어. 리타 말이 맞아. 응, 기억해둘게. "
잔잔하게 말을 한 리아는 무언가 생각이 난 듯 감자칩 하나를 다시 집어들더니 머리에 얹고 있던 손을 내리곤 조심스럽게 리타의 입가 근처로 내민다.
" 이건 노력한 리타에게 칭찬해주는거야. 맛있는거. "
아마도 정면에서 오니의 얼굴을 봤다면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정면이 아닌 그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을테지만.
긴장하기는 했지만 전할 정보는 다 전한 고로 앉아서 한숨을 폭 쉽니다. 코드네임에. 병과정보까지. 잘 전해서 다행이야! 라고 안심하던 그 때. 빅 테티씨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걸 갉아먹혀버렷! 이라는 위기감을 느끼었겠죠. 그리고 나오는 말들에
"어. 네..네! 오라클입니다.." '빠...빨라?' 오라클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답하지만 테티우스의 말을 들으며 빠르게 몰아치는 정보의 향연에 우물거리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려 합니다.
"그러니까..." "디버프...하고요.. 버프...가 가능한데...요.." "신관이죠? 네. 신관이니까요" 그러고보면 같은 한 달 차라도 서포터가 겹치면 실제로 만날 일은 거의 없었을 테니. 처음 만난 것 마냥 우물거리지만 생각보다는 착실하게 대화를 나누려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빅테티씨도 서포터면.. 디버프인가요?" 이렇게 질문도 하긴 할 거란 말이니. 손에 과자를 집어서 냠. 하고 먹으려 하고는 맛있어? 라고 중얼거립니다. 맛있는 걸 많이 못 먹었던 걸까?
"용문의 펭귄택배? 거긴 굳이 그녀석 아니더라도 예쁜 애들 많다고. 근데 너가 그건 어떻게 알고있냐."
새는 낮 말을 듣지 밤 말은 못 들을텐데. 하지만 소장은 딱히 의아한 말투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녀의 경력도 경력일뿐더러 그것은 이미 유명한 소문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요나카의 말에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되묻는것이었다.
"그럴 시간이 어딨어. 우리가 주로 하는 업무는 보안설계, 목표제압이지 과자파티가 아니라고."
그런 주제에 소장은 항상 어디서 쓰레기줍기같은 시시껄렁하다 못해 평화로운 일감을 물어오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지출은 전부 밥값이나 전기세나 이런 과자값으로 나가는거고. 전혀 진전이 없는 수익구조였다.
"쏙독새를 가두는 사람이 어딨다고. 그냥 물어본거야. 그리고 그쪽 돌팔이 의사도 네가 입원하는건 원치 않을거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그 의사. 확실히 광석병 환자에게 장래가 기대된다면서 방치시켜도 되냐는 말을 했었다. 그러다 소장한테 한 대 얻어맞았지. 그건 테라의 의료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할 법한 말은 아니었다. 그것도 당사자 앞에서 공연히. 하지만 그 의사는 아주 태연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건 나름 심연이라 하는 수전을 해쳐온 요나카조차 처음 보았던 인종이 아니었을까. 소장의 헬멧에 빛이 일었다가 사라졌다. 소장에게 표정은 없었지만 이런 헬멧의 반응과 말투는 그가 어떤 심경인지 유추할 수 있게 해주는 단서였다. 그는 현재 복잡한 마음이었다.
"뭐 알았다. 수고했어. 가서 쉬다가 나중에 와라, 나머지 준비는 내가 할테니까."
어느새 과자들은 나열되어 있었다. 나머지는 화이트보드에 간판걸기랑, 당직자를 기다리는건가.
제멋대로 조잘대긴 했으나 동시에 놓치는 것 없이 전부 듣고 있다. 물론, 그 특유의 활달함이 '얘 듣고 있는 거 맞아?'라는 소리를 많이 듣도록 하긴 했지만, 여하튼.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듣다가 버프가 가능하다는 말에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 들어온 물음에 착실히 답했다.
리타가 느릿히 대답했다.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분위기가 묘하게 상기된 모습이었다. 그녀는 어찌 보면 참 단순한 사람이었다. 당신을 믿는다, 당신이 좋다는 말 몇 마디만 던져주어도 사람이 고팠던 속내를 여실히 드러내고 말았으니.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만큼, 리타는 '내 사람'에 대한 의존이 높았다. 인즉, 조금이라도 친분을 쌓은 사람들에게는 싫은 소리 한 번 내뱉질 못하고 온전히 뜻을 굽힌단 이야기였다. 리아는 확실히, '내 사람'의 경계선 그 근처에 근접한 인물이라 볼 수 있었다.
" 다들 동료죠... 좋은 동료. "
리타가 제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넘기며 대꾸했다. 그녀는 아르고의 사람들을 좋아했다. —당신의 출신이 어딘지 신경쓰지 않는다. 당신의 종족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는다. 당신의 광석병 감염여부는 신경쓰지 않는다. 우리는 당신이 가진 능력만을 본다. 우리는 함께 싸울 수 있는 사람을 본다.—라는 문구부터, 정말이지 자신의 겉모습과 과거 따위에는 의중을 두지 않는 이곳의 분위기가 좋았다. 아르고에서 리타는 '개인'이 아니었다. 이 곳에는 수 많은 '리타'가 있었고, 리타는 또 다른 '누군가'였다. 정말이지 이곳은—
" 아... 고,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
리타가 조심스레 두 손으로 감자칩을 받아들었다. 입으로 낼름 받아먹기에는, 자리도 자리인데다 엄연히 직장 동료의 관계이지 않던가. 리타가 감자칩을 물며 작게 미소를 지어올렸다. 그래, 아까보다야 훨 자연스러워진 미소가 아닐 수 없다. 리타가 힐금 리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방금, 웃으신 것 같기도 한데...
" 그으... "
리타가 차분히 말을 골랐다. 머릿 속으로 떠오르는 주제 중 가장 알맞은 것을 선별하고, 단어를 다듬고, 큼큼 목소리를 다듬는다. 그렇게 하여 튀어나온 말인 즉슨,
" 오늘은 파티가 열렸으니까... 모처럼 다들 푹 쉴 수 있겠네요. 오늘 밤에는... "
리타가 초콜렛이 묻은 과자 하나를 집어먹으며 그리 말했다. 적절한 주제였을지, 아닐지는 모르겠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