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도 안 넘은 어린 후배님이랑 맞담배 하는 걸 두 손 들고 반길 사람은 별로 없을걸요."
사샤의 입꼬리가 미세하게나마 올라갔다. 호선을 그렸다고 하기에도 애매할 만큼 작은 차이였지만 그것이 사샤 나름의 미소였다. 너의 말에 사샤는 코를 킁킁거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흡연실 특유의 매캐한 담배 냄새와 네가 피우는 담배에서 나는 애플민트의 향에 가려졌었지만, 네 외투에는 톡 쏘는 듯한 병원의 소독약 냄새가 서려 있었다.
"그건 다행이네요. 건강검진 같은 건 확실히 무소식이 희소식이니까요."
네가 오기도 전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해서인지, 사샤의 담배는 어느덧 많이 짧아져 있었다. 사샤는 근처에 놓인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불을 끄고는 새로이 담배를 꺼내 들어 불을 붙였다. 이 여자, 상당한 골초다.
리타의 얼굴이 한결 밝다. 벌써부터 어떤 디저트들을 먹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할지 잔뜩 기대한 모양새였다. 누군가를 초대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리타에게 참 오랜만의 일이었다. 오래 전 느끼던 여유를 이제서야 되찾는다. 그것은 꼭, 리타에게 안정된 삶이 찾아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 아, 맞아요. 네... 약속했어요, 우리. "
두 사람의 손가락이 엮였다. 리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장난스레 웃음을 삼켰다. 갑작스레 열린 과자 파티와 리아와의 약속. 어쩜 모든 일이 이리도 순조롭게 흐를 수 있는건지.
" 조금이라뇨, 정말 큰 도움이 되어주셨는걸요. 예전에도 지금도... "
리타가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호의일지 몰라도, 이 모든 것은 리타에게 있어 정말 큰 도움이자 선물이었다.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보이는구나. 리타가 두 눈을 느릿히 깜빡였다. 웃는 게 잘 어울린다는 칭찬이 좋다. 행복해보인다는 말도 좋았고, 자신에게 건네져오는 모든 칭찬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 정말 감사해요, 리아씨. —아, 이제 슬슬 일어날까요? "
파티의 끝이 저물어가기 시작했다. 왁자지껄했던 사람들은 각자의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각자의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이 온 것이다. 리타가 주위를 살피며 입을 열였다. 하지만, 내가 이런 기분을 누려도 되는 것일까. 막연한 의문이 머릿 속 한 켠을 파고들었다. 단단히 박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의문이. 나는, 그녀는, 행복을 느껴도 되는 것일까.
어깨에 손을 얹은 체 소리를 치는 로우의 모습에, 오니는 고민을 하듯 눈을 잠시 내리깔더니 덤덤한 목소리로 무시해도 될법한 로우의 말에 답해준다. 그 말을 들은 주점 안의 사람들의 약간의 비웃음 섞긴 웃음소리가 들려왔지만 오니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그저 로우가 술을 더 많이 마시지 않기를 바라는 듯한 눈이었다.
" 출근은 제대로 한다고, 이야기 했던 것 같은데.. 나랑.. "
자신만만하게 소리를 치는 로우의 모습에도 그저 무덤덤한 얼굴로 말을 이어간 오니는 이내 주점사람들과 어울어져 웃고 떠드는 로우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로우가 돈을 매일 잃고 있다는 것 쯤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아주 작게, 들릴 듯 말 듯한 한숨를 내쉬는 오니였다.
" 그래서, 로우, 나랑 안 가겠다는거야...? 여기, 계속 있을거야? "
웃고 떠들기 시작하는 로우를 설득하려는 듯 잔잔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던 오니는 이내 갑작스레 옆에서 느껴지는 압력에 휘청거린다. 짙게 풍겨오는 술냄새, 아마도 술집에서 오랫동안 주체가 되지 않도록 술을 마시던 주정뱅이인 듯 했다. 주정뱅이가 로우가 얹은 팔 사이로 자신의 팔을 집어넣고는 오니를 끌어당기려 하며 외친다.
내가 있는 곳에서 고개를 돌려보면, 그것들은 친근한 부모님과, 평화로운 학교, 평온한 일상들로 보인다.
오리지늄.
모두가 그것을 선민류가 잡을 수 있는 마지막 동앗줄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동앗줄이 아니라 교수형 밧줄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모두가 그것을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찬양하고 있을 때 오리지늄은 조금씩 치명적인 전이와 감염 증세를 드러내며 살아있는 이들의 목줄을 조여왔다.
그러나 오리지늄은 이제 와서 막아내기엔 이미 선민류의 삶에 너무 깊이, 광범위하게 파고들어 있었고, 그것은 우리들의 삶을 살라먹으며 그렇지 않아도 갈갈이 찢어져 있던 이 세계의 전쟁을 부채질했다.
흔히 마족으로 일컬어지며 업신여김받는 살카즈로, 심지어 오리지늄 감염증에 걸린 채로, 심지어 그렇게 평화롭지 못한 세상에서 태어난 삶은 그렇게 유쾌하지 않았다. 나는 살카즈라는 이유만으로 꽤 많은 것을 손해봐야 했으며, 왼팔에 박힌 커다란 오리지늄 결정 때문에 또 많은 것을 제한당해야 했고, 평화롭지 못한 세상에서 원치 않은 상황으로 숱하게 내몰려야 했다.
그러나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환경에 태어날 수는 없다.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없다. 또한 모든 것은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 아무리 평화로운 삶을 바라더라도, 틀림없는 계획을 갖고 있더라도, 자신이 준비되었는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순식간에 생각지 못한 상황으로 굴러떨어져 버릴 수 있는 법이다. 어느 순간에는, 누구나 한 번씩 겪을 수 있는 일이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이 세상은... 내가 원하던 세상이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살아숨쉬는 세상이기도 하고.
아르고스.
광석병 중증 환자의 살카즈에게도, 동료와 친구가 되어주길 약속한 곳. 조각조각난 삶을 얼기설기 다시 꿰매어 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내 두 번째 집.
나는 내게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을 피하고, 내 왼팔에 짊어지워진 족쇄를 내려놓고, 다른 이들이 그러는 것처럼 행복하고 소박한 삶을 계획- 아니, 희망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으며, 또한 각오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그러기엔 이 세상이 너무 차갑고 거칠다는 것을. 내게 놓인 길이 험난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러니, 나는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내게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을 피하지 않을 것이다. 내 왼팔로부터 도망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이들의 삶을 흉내내려 애쓰지 않을 것이다. 고개를 당당하게 들고, 에덴 마이어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 들었냐!!! 이 귀여운 애가 내 선배다 이 말이야!!! 그리고 친구이기도 하지!!! 좋은데!!! ”
술 병을 드높이고서 크게 소리치는 그녀를 따라 가게 안의 이들이 잔을 기울였다. 비웃음은 딱히 신경쓰지 않는 다는 듯 농담이 섞인 듯한 말투로 리아를 비웃어도 되는 건 나나 사무소 녀석들 정도라고 말하고는 술에 정신을 쏟고 있었다.
“ 아… 그, 그건 그, 뭐라고 할까. 잠시 머리를 식히는 겸 해서 말이야!! 아니, 안 가겠다는 게 아니라 그야 가지 응, 물론이지!!! 내가 약속 안 지킨 적이 있던가? ”
아마도 그녀는 실시간으로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인지하지 않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출근은 제대로 한다고 했었지. 아마도 지금 이렇게 술독에 빠져있는 그녀로서는 그 약속을 몇번이나 하고 몇번이나 어겼는지 조차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가능 한 자유롭게 풀어 두라고 하는 것이 매뉴얼인 그녀니까, 아마도 그럴 것이 분명했다.
“ 응!!! ”
당신이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바보처럼 웃으면서 당신에게 팔을 걸친 녀석의 머리통에 들고있던 술병을 꽃아 넣었다. 시원스럽게 유리병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주정뱅이는 지면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녀는 최대한 눈을 무서워 보이게 뜬 뒤 슬며시 웃으면서 사장 쪽을 보고 말했다.
“ 이야, 미안해 사장!!! 오늘도 깼다!!! 그래도 오늘은 경고도 했다고!!! “
아마도 그 경고라는 것은 스치듯이 말한 비웃어도 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리라, 술에 취한 녀석들은 또 싸우는 거 아니냐며 벌써부터 배팅에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 음- 오늘은 안싸워!!! 그야 싸우는 데에도 돈이 들거든!!! 그, 위자료? 같은 거. 그리고 미인이 데이트 하자고 하는데!!! 이 내가 거절할 것 같으냐!!!! 리아!!! 그러니까 술값 좀 빌려줘!!! 월급 나오면 갚을게!!!”
하고 짓궂게 웃어보인 에덴은, 작정하고 담배연기를 스읍 빨아들인 다음 도넛 두어 개를 허공으로 뽕뽕뽕 날렸다. 리아가 봤으면 그렇게 좋은 소리를 듣지는 못할 만한 행동이었고, 여기에 정말로 리아라도 있어서 잔소리라도 하면 에덴은 네네, 하고 코대답을 하면서 전자담배를 다시 집어넣고 흡연실에서 나왔겠지만, 리아는 어디로 외출했는지 사무소에 없었다. 누가 두 손 들고 반겨주지 않아도 담배를 필 수 있듯이, 누군가가 제지하지 않는다면 딱히 그만둘 이유도 없지.
"담배 끊으라는 말 말고 다른 말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감안하면, 담배 끊으라는 잔소리는 한 귀로 흘릴 생각 하시고 가보시는 것도 나쁘진 않아요. 어찌되었건 '조기발견이 중요하다' 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니까요."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도나의 언행에 네로는 그만 짧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소심한 부끄럼쟁이 피티아에게 이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다. "하하, 미안해요..." 네로가 여전히 웃음기를 거두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그쵸? 저도 단 거, 정말 좋아해요."
네로도 혀 위로 퍼지는 달달한 맛들을 퍽이나 좋아했다. 단 것을 입 안으로 들이면 우울했던 기분도 사그라들곤 했다. 아마 그것은 도나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네로는 도나의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번지고 있음을 눈치챘다. 조금은 활기를 찾은 것 같아서, 내담자의 입장으론 내심 기뻤다.
"그래요? 그럼... 언제 한 번 같이 가볼래요?"
네로는 과감히 제안했다. 그도 이 지역에 정착한 지 벌써 2년째. 꿰고 있는 수준까지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주변 지리를 알고 있었다. 도나가 말하는 가게가 어디쯤에 있는지 살짝은 알 거 같기도 했고.
지금 거짓말 하고 있잖아, 라고 말하려던 오니는 이내 입술을 닫은 체 즐거워 보이는 로우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녀를 편하게 풀어두라는 메뉴얼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내심 자신과 약속한 것은 조금이나마 지켜주길 바랬던 모양이었다. 로우와 알고 지낸 것이 하루이틀은 아니었지만 조금이나마 바랜 모양이었다. 조금이나마.
주정뱅이를 술병으로 때려눕힌 것은 사실 오니가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고작해야 주정뱅이에게 휘둘린 오니가 아니었기도 했고, 로우의 이름을 부름으로서 듣고 싶었던 것은 자긴과 일단 술집부터 나서겠단 말을 듣고 싶은 걱 뿐이었으니까.
" .. 돈은 안 갚아도 돼. 로우. "
이런 술값 정도는 갚지 않아도 된다는 듯 주점의 주인에게 카드 한장을 품에서 건낸 오니는 바로 옆에서 주정뱅이가 병에 맞아 쓰러졌음에도 덤덤하게 말할 뿐이었다. 그리곤 다시금 로우의 옷소매를 살며시 손끝으로 잡으려 하며 속삭였다.
" 오늘, 출근 도장 안 찍으러가도 괜찮으니까. 술, 마실거면 나랑 마시자. 여기 말고, 다른 곳에서. "
술을 마시는 것을 말리는 것은 포기한 모양인지, 일단 도박판에서 로우를 벗어나게 하려는 듯 물끄러미 로우를 보며 말하는 오니였다. 계산을 마친 주인이 건내는 카드를 받는 것도 잊지는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