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실에서 볼 얼굴은 아니라는 사샤의 지당한 딴죽에 엑스칼리버의 얼굴에 보기 좋은 나긋나긋한 미소가 지어졌다.
"뭐, 절 달갑게 여기는 곳이 많지는 않죠?"
하고 능청스레 웃으며, 그녀는 이중삼중의 보호장구가 채워진 왼팔을 들어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여보인다. 관자놀이에 돋아나 있는 검붉은 뿔과 종합해보면, 그녀의 인생이 남들과는 조금 다른 환경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얼굴에서 드러나는 앳된 모습보다도 조금 더 조숙할 수도 있는 것이겠지.
"오늘 하루는- 저한테 들어온 호출이 없었던 걸로 봐서 위험한 일 같은 건 없었던 것 같아보이긴 하는데. 좀 어떻게 보내셨나요?"
네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도나를 독려해주었다. 원래 많은 사람들 앞에 서면 무릇 긴장되기 마련이다. 당연한 증상이다. 그래도, 상처를 보여주는 것에 머뭇거리던 옛날의 그녀에 비하면 많이 성장한 것이라고 네로는 생각했다. 도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네로도 굽혔던 무릎을 폈다.
"천만에요."
네로가 싱긋 웃었다. 같은 회사 사람끼리는 돕고 사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는 그였다. 곧 네로는 제게 비스킷을 권유하는 도나를 보며 미소지었다. 그는 도나가 건넨 과자를 받아들고, 입에 머금었다. 입 안에서 비스킷이 부드럽게, 사르르 녹았다. 은은한 버터 향이 입 안을 맴돌았다. 비스킷을 목 뒤로 넘긴 후에도 그 맛은 사라지지 않았다.
"음, 맛있네요."
네로가 짧게 감탄을 내뱉었다. 어디 빵집인진 몰라도 참 잘 구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어두운 음악이 낮게 깔렸다. 마치 이곳만이 세상에서 격리되어 있는 것처럼 은은하게 비추는 오렌지색 조명이 대로를 향해 난 유리창에 반사되어 색을 난반사 시키고 있었다. 넓지는 않은 공간이었다. 테이블 뒤로 오래된 브랜드의 술들이 늘어서 있었고 그 앞에서는 조금 나이가 든 엘라피아족 바텐더가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그다지 좋은 가게는 아니라는 것쯤은 가게 안을 채우고 있는 무리와 높게 깔린 담배 연기로 알 수 있었고 노래소리 사이에서 울려오는 어쩐지 즐거워 보이는 목소리의 중심에는 온 몸을 녹색으로 치장한 용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손은 패를 옮기느라 보이지 않을 수준이었고 그 입에는 거의 다 꺼져가는 담배가 물려 있어 어디를 보더라도 글러먹은 성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야!!! 너 또 사기 쳤지!!! 분명히 패를 소매에 숨기고 있는거 아냐!! 내가 머저리로 보이냐!!!” “아니 이 아줌마가 미쳤어?! 내가 두번이나 같은 수를 쓸 것 같냐?! 이번에는 소매가 아니라 신발이다!!!”
바보 같은 대화가 지나가고 잠시 후에는 테이블에 둘러앉은 네 사람 모두가 가게가 떠나가라 웃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오래된 그림처럼 보이기도 했고 이미 끝나버린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아줌마, 오늘은 일 안 나가도 돼?” “아서라 잭. 저 양반 일 나가는게 더 드물 걸.” “뭐야, 네놈들처럼 일도 안하는 병신인줄 알아? 다 일이 있다 이거야. 이 머리속에서는 이미 플랜을 짜뒀다고. 곧 있으면 일행이 올걸?”
어차피 먹는 것은 좋아하고 누군가와 이야기 하는 것도 서툴긴 하지만 싫어하진 않는다. 게다가 후배가 그것으로 인해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이상으로 오니가 생각할 것은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오니가 디저트 가게에 갈 이유는 충분했으니까.
" ..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시간 정해주면.. 스케줄 비워둘게. "
고개를 숙이며 대꾸하는 리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오니는 손가락으로 톡하고 리타의 머리를 건드리려 하며 잔잔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런 부탁 같은 건 특별한 게 아닌데 저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괜히 공짜로 감사를 받는 느낌이 드는 오니였기에 디저트를 먹으러 가는 날, 좀 더 무언가를 해줘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이었다.
" 약속할 때는 새끼 손가락 거는거야. 책에서 봤어. "
오른손을 뻗어오는 리타의 새끼 손가락에, 희미한 흉터들이 남아있는 손을 뻗어 자신의 새끼 손가락을 엮으려 하며 오니는 조용히 읊조렸다. 그리고 조금 더 뚜렷하지만 옅안 미소를 지은 체 리타와 눈을 마주 했다.분명 신이 난 듯 보이는 리타를 흐뭇함 가득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 리타가, 행복해보여서 다행이야. 내가, 조금은 도움이 되는 것 같네. 웃는게 잘 어울려. 역시. "
사샤는 제 특유의 독특한 억양이 진득하니 묻어나오는 말투로 네게 말했다. 너의 모습이나, 방금의 말로 미루어 보아하건데 그다지 환영받지만은 못하는 삶을 살아왔을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표정변화가 원체 많지 않은지라, 네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나무라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평소보다 조금은 가벼운 목소리를 듣는다면 방금 것이 사샤 나름의 농담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마저도 티가 잘 나지 않는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말이다.
"나름 여유롭게 보냈어요. 나도 오늘은 별달리 호출 받은 일이 없었거든요."
사샤는 다시 한 번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잠시 조용히 연기를 들이 마쉬었다 내쉬기만을 반복하는 사샤의 꼬리가 가볍게 흔들린다.
"뭐, 저희 일은 호출이 없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르지만요."
사샤가 어깨를 으쓱였다. 호출이 있어야 일을 한다지만, 일이 많은 것이 과연 좋은 징조일지는.
그러나 사샤의 농담을 엑스칼리버는 용케도 알아들었는지, 얼굴에 걸려 있던 미소가 더 구부러지더니 후후후, 하고 키드득대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저랑 맞담배피는 게 그렇게 싫으신가 봐요?" 하고 눈을 가늘게 뜨며 웃어보이던 엑스칼리버는, 다시 아토마이저로 니코틴 증기를 빨아들이고 내뱉다가 호출이 없는 게 좋다는 사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죠. 사실 나라가 평화롭느니 하는 건 별로 알 바 아니지만, 미뤄뒀던 건강검진도 받을 수 있고."
그러고 보면 엑스칼리버는 병원을 갔다오는 길인 모양이다. 매캐한 담배 냄새에 가려 알아채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사샤의 후각이라면 조금 주의해서 코를 기울여보면 엑스칼리버가 입고 있는 외투에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서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뭐, 별 이상 없대요."
하고, 엑스칼리버는 사샤가 묻기 전에 선수쳐서 대답했다. "이런 건 확실히 별 소식이 없는 편이 더 좋죠. 그러고 보면 사샤 선배는 건강검진 받아보셨어요?"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자 테이블 끝에 앉아있던 그녀가 즐거워 보이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에게 달려들었다. 당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 하고는 가벼운 목소리로 가게 안을 바라보며 크게 소리쳤다.
“이거 봐!!! 이쪽은 내… 음… 리아, 미안한데 나랑 네 관계가 사적으로 어떤지 직접 말해줄래?”
당신의 불만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크게 웃은 그녀는 당신을 향해 슬쩍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한 손으로 마시고 있던 술병을 집어 들고는 그대로 자신의 입에 그대로 박아 넣었다.
“무단 결근이라니 품평 피해도 심각하네. 나는 무단으로 결근하지는 않아. 당당하게 말하고 다녔잖아!!! 출근은 나약한자들의 것이다!!! 아직 기억해?”
얼마나 취했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지마 그녀는 역시 자신이 그런 말을 할거라는 생각 하나에 의지해서 소리를 드높였다. 출근 도장을 찍자는 말에는 조금 싱거운 반응을 보이며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걱정 안해도 돼 리아. 나는 이래도 용문 근위대출신이야. 아마도 사무소의 누구보다 규율에 엄격하게 산다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지금 한창 이기고 있었거든. 사무소의 금고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도 일종의 노동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 …뭐!!! 늘어나는 건 금고가 아니라 내 지갑이겠지만!! 안 그러냐!!!”
가게 안을 돌아보며 크게 소리지른 그녀를 향해 즐거운 웃음과 함께 어차피 매일 지지 않냐며 놀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그 목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서 중지를 곧게 세워버리고는 싸구려 욕지거리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