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문으로 향합니까? 그곳은 이미 폐허나 다름 없었습니다... 라고 하고 싶지만, 건물을 튼튼하게 지었는지 우리가 갔던 연구실 건물은 다행히 반 이상 남아 있습니다. 거기 갇혀 있던 실험체들이 탈출했으면 좋겠군요. 검은 문 프로젝트의 핵심인 '검은 문'도 그 장소에 그대로 있습니다.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건너갑니까?
검은 문을 넘어갑니다. 기묘한 느낌이 듭니다...... ...... 당신은 지금 검은 문 너머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고층건물이나 자동차 같은 것들이 굉장히 이숙합니다. 물론 그것들이 무너져 있거나 찌그러져 있거나 터져 있거나 하지 않았으면 더 익숙했겠지요. 하늘은 검고 공기는 뿌옇고 도시로 추측되는 곳은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계 자체가... 돌아다니기 좀 힘든 느낌입니다. 오래 있기는 힘들겠습니다. 무엇을 할까요?
이 회색 도시의 곁에 머물며 지켜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 찾으려고 노력은 할 수 있겠군요. 죄다 부서지고 터지고 망가지고 무너지고 폭삭 주저앉고 잿더미가 되고 오류나고 조각조각 따따다가 된 상황이지만 말입니다. 한 가지 다행인 건, 이 세계의 주민들인 그 검은 악귀들이 여러분의 세계로 건너가서 여기가 조금 안전해졌다는 겁니다.
익숙한 건물인가, 해서 보면 딱히 그건 아닙니다. 그냥 비슷하게 생긴 건물일 뿐입니다. 여기는 정말로 다른 세계입니다. 거인이라, 글쎄요? 어쩌면 이 세계에는 아틀라스 같은 거인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바람을 타고, 여러분의 근처로 전단지가 날아듭니다. 놀랍게도 읽을 수 있습니다. 찢어진 부분 말고, 읽을 수 있는 부분만 읽어보면...
[...세계를 버린(찢어짐)우리들은(찢어짐)새로운 세계를 차지해야(찢어짐)이것은 복수이기도 할 것입니다(찢어짐)]
...이렇네요. 뒷면에는 지도가 있습니다.
[설명회 장소]
무언가 설명회를 열었던 모양입니다. 어쩌면 뭔가 건질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다른 곳을 살펴봐도 될 것 같습니다.
여긴 분명 다른 세계인데 왜 우리와 같은 글을 쓰고 있는 걸까요? 참 알 수가 없네요. 지도와 주변 지형과 도로를 보니 장소는 여기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
설명회 장소는 그냥...... 평지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평지예요. 단상은 커녕 풀 한 포기도 없어요. 대신 바닥에 떨어진 많은 전단지를 볼 수 있는데, 여러분이 발견한 전단지와 같은...... 게 아니네요. 이번 전단지는 그나마 찢어진 부분이 적고 수가 많아서 이것저것 맞춰보며 읽어볼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쓴 글을 잘라서 인쇄한 것 같습니다.
[이 세계를 버리고 떠난 두 신을 저주한다! 어째서 이 세계가 이렇게 될 때까지 그냥 뒀지? 새로운 세계를 만들 힘이 있는데 왜 그 힘을 이 세계에 쓰지 않았지?(중략) 우리는 그들의 장자로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권리가 있다! 비록 세계를 건너는 기술이 대부분 소실되어 기묘한 검은 연기 같은 상태로만 넘어갈 수 있지만(중략) 긴 전쟁으로 세계는 멸망에 가까워졌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우리도 위험하다. 하루 빨리 이주를 마쳐야 한다!]
이번에도 뒷면에 무언가가 있습니다.
[우리 세계에는 없는 그 사악한 존재인 아니마들에게 사용할 독이 저장 시설 문제로 공기 중에 퍼진 상태입니다. 되도록 직접 호흡하지 마시고 마스크를 착용하십시오.]
......이 세계에 들어오고서부터 느낀 영 좋이 못한 것들이 독 때문이었군요. 하지만 여러분을 독으로 죽이려고 한 그들 또한 독으로 고통받았던 모양입니다.
글쎄요... 서점 정도면 어떨까요? 시내에 하나씩은 꼭 있고, 잘못돼도 책 몇 권 정도는 남아 있겠지요. 뭐, 그냥 화풀이로 이러는 걸지도 모릅니다. 신이 자기들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서 더 좋은 피조물을 만들었으니 화가 날 만도 하죠. 몸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숨 쉬기가 조금씩 불편해지는 건 잘 알겠습니다. 행동 기회는 앞으로 한 번에서 많아야 두 번정도 남았네요. 돌아가시겠습니까?
정말 빠른 기사님 택시! 애용하고 싶지만 시간이 없었지요. 한참 달려서야 '^!@#%서점'이라는 곳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앞 문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드네요. 다른 세계가 맞긴 한 모양입니다. 서점 안은 폭탄이라도 맞은 듯 처참했습니다. 책장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고운 하드커버가 두동강이 나서 저기서 발판 대신 쓰이고 있네요. 다행히 그런 책들 밑에는 멀쩡한 책이 있긴 했습니다.
[종교로 대동단결! 신을 불러내자!] [이렇게 된 이상 저쪽 세계로 간다] [4차 세계전쟁이 알려주는 교훈] [우리는 어떻게 해서 낙원을 지옥으로 만들었나?]
그다지 쓸모 있어 보이는 책은 없어보입니다. 여러분은 이 엉망진창인 서점 안에서, 저 목록 외에도 원하는 책 한 가지씩을 가지고 나갈 수 있습니다. 그 책은 무엇이고 내용은 어떤가요? 물론 책 말고 다른 걸 챙겨도 됩니다. 돈 없는 돈통이나 책장 뒤에 숨겨진 담배 같은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