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게 근처에 있었습니다. 저기 저 건물입니다. 지렁이가 건물을 휘감고 그걸 부수고 있군요. 하지만 날이 건조하고 헬기로 흡습제나 소금 같은 걸 뿌리고 있기 때문에 곧 말라 죽을 겁니다.
그걸 구경하느라 멈춘 사람들 중에 하얀 문도 있습니다. 어떻게 알아볼 수 있냐면... 옷 등짝에 '하얀 문'이라고 크게 쓰여 있기 때문이죠. 하기야 진행 요원 같은 사람들이니 알아보기 쉬운 쪽이 좋을 겁니다. 지금은 그들을 방해할 검은 문 조직도 거의 없거나 아예 없고 말입니다.
씰을 보여준다면 그 사람은 어딘가로 전화를 할 겁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 한 대가 여러분 근처로 다가옵니다. 뒷좌석에서 누군가가 창문을 내리고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얀 문의 보스군요!
사무소가 근처에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아니었음 차를 타고 갔어야 했겠지요. 어쨌든 사무소는 우리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 다음에도 무사합니다. 이 근방에서 이만큼 무사한 건물은 여기 말고 몇 없습니다. 그 중 하나가 경찰서입니다. 거기 갇혀 있는 세 녀석이 어떻게 되었나 모르겠네요.
"그쪽 세계와 이쪽 세계는, 창조주가 같다보니 아무래도 비슷한 진화 과정을 거친 걸로 보입니다. 그리고 언어가 완전히 같지는 않더군요. 그쪽에서 쓰는 언어 중 알아듣지 못할 언어가 좀 있었습니다."
어제 그 서점 간판도 그랬지요.
"신들이 그쪽 언어를 조금 고쳐서 우리에게 주었거나 한 모양입니다... 제가 신이라 장담은 할 수 없지만 말이지요. 많이 둘러보셨나요?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들어보고 싶군요."
그는 책을 보며 차를 조금 마십니다. 맛있네요! 그는 기사님을 보며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작은 스프레이를 꺼내어 책에 칙칙 뿌립니다. 이것도 일종의 중화제인 모양입니다. 하긴 이것도 거기서 가져왔으니까요. 잠시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립니다. 몇 장 훌어본 그는 책을 덮고 말합니다.
"이렇게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니, 꽤 놀랍군요. 저자가 살아 있다면 아마 저쪽 세계에 남아 있겠지요. 흠... 이 이야기를 꺼내기 좋은 때인 것 같네요."
그가 여러분을 보며 말합니다.
"'검은 문'을 부숴야 합니다. 닫는 건 안 됩니다. 부숴서, 아예 저쪽 세계와의 연결을 끊어야 합니다. 이론적으로는 문이 사라지는 순간 이 세계로 넘어온 저쪽 세계의 것들이 빨려들어가서, 결과적으로 세계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방법입니다."
그는 책을 톡, 톡, 두드립니다.
"그걸 없애기 위해서는 그쪽 세계에 없는 힘을 빌려야 합니다. 예, 아니마의 힘을 말하는 겁니다. 저걸 없앨 정도로 강한 아니마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굉장히 가까이에서 그것이 망가질 때까지 능력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폭발할 때 휘말려서 크게 다치거나 죽을 위험이 있습니다. 게다가 아니마 하나로는 안 됩니다. 최소한 셋은 필요하죠. 앰플을 사용하려 해도 앰플 효과가 안정인 동시에 위력이 낮아지는 루트를 타서 부수는 쪽에는 쓸모가 없습니다."
강한 힘을 가졌더라도 위험한 일에는 되도록 나서지 않는 것이 좋겠지요. 테러 집단 아니마들을 언급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확실히 곰 아니마의 능력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요. 그 세 명은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재는 임시 경찰서 소속으로서 치안 유지 관련 일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하얀 문에도 아니마 조직원은 있으니 그를 통해 부탁한다면 들어줄 수도 있겠군요. 정보 감사합니다."
잘 될까요? 잘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는 앰플들 중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놓습니다.
"혹시 모르니 앰플 하나는 놓고 가겠습니다. 무슨 효과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실험 결과 둘 중 하나인 걸로 판명되었습니다. 첫 번째로, 자신의 능력이 강화되는 효과입니다. 평범하지요. 두번째로는, 자신이 가졌을지도 모르는 능력이 추가로 발현되는 겁니다. 일시적으로 능력을 두 개 다룰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앰플을 쓸 일이 있었던가요? 지금까지 하나도 쓰지 않은 걸 보면 그럴 일은 아마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앰플에 대해서 설명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럼 저는 경찰서로 가보겠습니다. 일이 잘 풀린다면, 바로 내일 일을 실행할 겁니다. 검은 문이 있는 건물 주변으로는 되도록 오지 마십시오. 저희 쪽에서도 그쪽으로 사람이 가지 않도록 막을 겁니다. 그럼 가기 전에... 혹시 제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으십니까?"
"좋아요. 2가지라..." 강화되거나. 2가지. 아무리 2가지라고 해도 저 쪽에서 써먹는다거나, 혹은 임무에 참여하기는 애매할 것 같으므로 기사님에게 넘겨주려고 합니다.
"그러면 현재 검은 문에 관련된 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나요?" 예를 들자면 폭발에 휘말려 완전 망했다거나. 뭔가 방해할 만한 게 되는가? 혹은 아직도 암약하고 있는 것 같다라던가의 일 말이죠. 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검은 문을 원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건의 원인 되는 폭발이 판도라 본사에서 일어났다는 소식은 이미 전세계에 퍼졌습니다. 검은 문 프로젝트 연구원들도 거의 폭발에 휩쓸려 죽거나 크게 다쳤고, 남은 사람들은 뭉쳐봤자 별거 없는 사람들이니 아주 단단히 망했지요. 물론 혹시 모르니 저희 쪽에서 잡아들이고는 있습니다."
초국적기업이 망하고... 실업자가 생기고... 머리가 좀 아프지만 우리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흠, 질문이 없으신가요? 그렇다면 대신 이걸 드리겠습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냅니다. 초콜릿 6구가 든 작은 상자입니다. 트뤼플이네요! 맛있겠어요.
"확정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돌아갑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일 계획을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문자가 날아듭니다.
내일 검은 문이 부서집니다. 이 검은 연기 같은 것들은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갈 테고, 우리는 점차 평범한 일상을 되찾게 될 겁니다.
마침내 지긋지긋한 검은 문이 부서졌습니다.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났지요. 다만 그건 첫 번째 폭발로 빠져나온 것들을 다시 주워담는 역할을 했습니다. 청소기 비슷하다고 할까요? 두 번재 폭발은 이쪽 세계에 나온 검은 것들을 모조리 빨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검은 문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작은 파편이 여기저기로 튀긴 했지만... 아마 괜찮을 거예요! 그럼요.
그런 큰 사건이 있었으니 당연하겠지만, 세계가 원래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앞으로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부서진 것도 복구하고, 판도라 사도 어떻게 좀 하고, 이것저것 말이지요. 검은 문과 판도라에 대해서는... 흠, 검은 문은 사라졌지만 프로젝트 자료 정도는 좀 남은 것이 있었나봅니다. 앞으로 그들과 평생 만날 일은 없을 겁니다. 이번 일로 죗값을 치를 건 관계짜들 뿐으로, 그 외 평범한 회사원들은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하얀 문은 '검은 문을 막는다'라는 존재 이유가 사라지자 해체하려고 했으나... 조직에 애착을 가진 사람들이 원해서 결국 정식으로 연구소를 하나 차렸습니다. 이번에 치안에 도움을 준 이후로 하얀 문이라는 이름도 꽤 알려졌는지 연구 의뢰가 꽤 자주 들어온다고 합니다. 거기다 검은 문 파괴 사건 이후로 어떻게 뭘 잘 했는지, 아니마 우월주의자 단체도 이쪽에서 흡수했다고 합니다. 사실상 세 명만 들어간 거나 다름 없지만 보스들이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부하들도 이쪽으로 오는 법이죠.
세계는 천천히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소는...... 간판마저도 하나도 변하지 않은 그 모습 그대로, 여전히 서울 한쪽 구석에서 의뢰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