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가게의 주인분께서 정성껏 만들었으니 당연히 맛있을 겁니다. 자주 사먹던 곳이기도 했으니 맛은 보장되어, 괜히 점심시간이 기다려지는 겁니다. 나는 가방 안을 물끄러미 쳐다보듯 시선을 내립니다. 도시락 통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쩐지 그 안의 니쿠쟈가가 보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에, 어른스럽다니. 아니에요."
나는 작게 웃습니다.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하나미야 씨가 더 어른스럽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젓는 모습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고 고민하다 손을 토닥여줍니다. 약속의 확답을 듣자 어쩐지 기분이 좋아져서, 나는 보드라운 미소를 한번 짓고는 책상에 턱을 굅니다. 새끼 손가락을 걸거나, 아니면 그에 비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꼭 비밀 약속을 하는 느낌인 것입니다.
나는 수업이 시작하자 금방 눈이 흐려집니다. 개학식 연설도 듣기 싫었는데, 이젠 수업까지 해야합니다. 칠판의 하얀 것은 글씨고, 녹색은 배경이며, 선생님의 목소리는 자장가입니다. 재미없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앞으로 몇년이나 더 들어야 할지 가늠합니다. 정말 세계를 구한 사람 특별 전형은 없는 걸까요? 한참 흐린 눈으로 허공만 물끄러미 쳐다보던 나는 익숙한 앓는 소리에 소리없이 부스스 웃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손을 뻗어 하나미야 씨의 등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려 해봅니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움직여 등에 글씨를 쓰는 겁니다.
[저도요. 언제 끝날까요?]
이 짧은 시간 즐길 수 있는 작은 땡땡이.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일입니다. 나는 혹시 몰라 선생님 눈치를 한번 봅니다.
// 느긋느긋하게!😘 픽크루 너무너무 귀여워요! 깨알같은 I love you에 쿵 하고 심장이 내려앉았어요. 너무너무 귀여워!🥰 오늘 하루는 어떠셨을까요? 답레 날린 건 좀 괜찮으실까요..?
지금은 괜찮으시다니 참 다행이에요.😊 레이주도 오늘 하루 즐거운 빼빼로 데이 보내세요! 답레는 천천히 주세요. 한달이 걸려도 기다릴 수 있답니다.
시라유키에게 포키게임..으음, 아마 눈이 동그랗게 뜨여선 포키게임이 자기가 아는 막대를 오독오독 먹는 게임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적당히 끊으면 될 거야! 자신 있어! 같은 마인드로 좋다고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가까워지면 자신이 막대를 적당히 끊을 줄 모른다는 걸 깨닫고 볼이 빨개질 거예요.
나는 수업시간에 작은 땡땡이를 칩니다. 하나미야 씨의 등에 글씨를 쓰는 겁니다. 필담을 생활화 한 적이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어릴적부터 배웠기 때문인지 어떤 글자인지 느끼기 쉽도록 정자로 또박또박 적습니다. 그렇게 쓰는 건 하이쿠도, 와카도 아닌 겁니다.
나는 쪽지가 뒷자리로 오자 슬쩍 종이를 잡고 자연스레 책상 위에 올려둡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칠판에 집중하시고, 주변 학생은 지루해하거나 벌써부터 열심히 공부합니다. 쪽지를 펼친 나는 하교라는 단어에 한참이고 머무르다 펜을 들어 필기하는 척, 적어내립니다.
[그렇지만 벌써 20분 지났으니까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 활짝 웃는 물고기의 옆모습을 낙서하고, 말풍선을 그렸습니다.
[힘내자구요. >')))]
주변 눈치를 한번. 나는 칠판을 보듯 쭈욱 고개를 내뺀 뒤 자연스럽게 창가가 자리해 짧은 틈만이 남은 왼편을 향해 하나미야 씨에게 쪽지를 내밀어주려 했습니다.
// 벌써 11월도 중순이네요. 잘 지내고 계셨을까요? :) 슬슬 연말이 다가와 쌀쌀하고 바빠지겠지만 부디 따뜻하고 여유롭길 바랄게요. 여담이지만 아직 어장은 봄날이네요. 봄날이니 빨리 꽃놀이도 가보고 싶고..여름에는 같이 매미 소리를 들으면서 마루에 누워보고 싶고..가을엔 단풍을 보고, 겨울엔 따뜻한 코타츠에서 귤을 까먹으며 게임도 해보고 싶어요...앗, 망상만 가득하네요 ㅎㅎ..오늘도 파이팅이에요, 레이주!
나는 짧은 시간동안 칠판을 봅니다. 적어야 할 것이 보여 지금까지 장식으로 펼쳐둔 노트에 적어둡니다. 말을 할 수 없는 동안 필담을 습관화 했기 때문일까요, 어려움 없이 빠른 속도로 글을 적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일정한 간격으로 정자로 적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조금 흘려쓴 부분도 있습니다. 보고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정도면 타인도 알아보는 것엔 무리가 없습니다. 이제 하나미야 씨에게 이 필기를 보여줄 생각입니다. 놓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쪽지를 슬쩍 넘겨받습니다. 펼친 쪽지를 보며 턱을 괴며 살짝 창가로 시선을 돌리는 척 하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물고기가 귀엽다는 말도 귀엽지만, 물고기를 좋아하냔 질문이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지론은 늘 같습니다. 물고기는 관상용도로 두어도 아름답고, 박제도 예술에 영감을 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아해요!
..생사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먹는 것도 좋아해요.]
맛있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칠판을 보는 척 하며 시계를 보고 한 문장 더 덧붙이기로 했습니다.
[10분 남았어요!]
이제 쪽지를 전달할 차례입니다. 나는 작은 필담 덕분에 활짝 핀 미소를 모릅니다. 하나미야 씨와 대화하는 것이 즐거운 것도 아직 모르지만, 불현듯 드는 생각에 '기쁘다'는 감정이 있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아마 쪽지를 전할 때였을 겁니다. 나는 전달한 뒤 하나미야 씨의 등을 가만히 바라보며 턱을 굅니다.
// 전혀 늦지 않았으니 괜찮아요. :D 날씨가 많이 춥고 쌀쌀하답니다..😣 감기 들지 않게 조심하시고,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길 바랄게요. 답레는 천천히 주세요! 늘 고맙고 사랑해요. 히히..😍
쪽지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필기를 마쳤습니다. 잠시 기다리는 짧은 시간동안 벌써 여러가지가 떠오릅니다. 첫날에 왜 수업을 하는지에 대한 의문부터 시작해 이번 중간고사는 어떨지, 정말 세계를 구한 사람 전형은 없는지와 같은 것까지.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도 많지만 나와 같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아주 많습니다.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5분 남은 시점에서 칠판을 멍하니 바라보다 쪽지를 받고 펼칩니다. 이윽고 편지 하나를 더 받습니다.
'귀여우셔라.'
나는 내용 뒤에 그려진 여우를 보며 들키지 않을 정도로만 미소짓습니다. 여우, 이나리 신사의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조만간 공양을 드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나는 살짝 고개를 내렸습니다. 도시락이 들어있을 가방을 빤히 쳐다보다 책상 밑에 숨겨둔 핸드폰을 살짝 꺼내 시간을 봅니다. 앞으로 3분 남짓 남았습니다. 나는 손을 뻗습니다. 답장을 주기엔 애매한 시간인지라 다시금 하나미야 씨의 등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고, 등에 글씨를 썼습니다.
[좋아요.]
그리고 나는 턱을 굅니다. 시계에 고정 된 하나미야 씨의 고개를 따라 나도 눈을 굴립니다. 시계의 초침은 느린듯 빠르게, 쉴새없이 움직입니다. 3분 정도면 노래 하나가 끝나는 시간이니 속으로 노래를 외워봅니다. 그렇게 1분, 30초.. 종이 치자 나는 선생님의 '오늘은 숙제가 없지만 내일부터 열심히 하는 거야.' 라는 소리에 맞춰 주변 눈치를 보다 벌떡 일어납니다.
"하나미야 군!"
나는 활짝 웃습니다. 달콤한 자유 때문입니다.
// 친절하다니! 아니에요, 레이주가 더 따뜻한 걸요! 천천히 즐겁게, 저희도 언젠가 엔딩까지 열심히 달려보아요! 오늘은 아주 추워요...🥶 부디 감기 조심하세요!
나는 흠칫 놀라는 모습에 하나미야 씨는 겁이 많은 걸 새삼 다시 느낍니다. 마더 쉐도우와의 전투에서도 하나미야 씨는 꼭 한 번은 비명을 지르고는 했습니다. 당연히 마더 쉐도우는 무섭게 생겼으니 그럴만도 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도 이렇게 놀라는 걸 보니 어쩐지 장난기가 드는 겁니다. 나는 손가락을 꼬물대며 답장했고, 수업 중이라 하나미야 씨가 뒤를 돌아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는 내 표정을 볼 수 없어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좋아요, 자유를 만끽하러 나가요."
나는 주섬주섬, 작은 도시락통과 지갑을 꺼냅니다. 이제 보니 하나미야 씨의 지갑에는 흑백 한 쌍의 천호가 수놓아져 있습니다. 이걸 보니 이나리 신사의 사람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차분하게 미소 짓습니다. 그저 검은색 가죽 지갑인 나와는 천지 차이입니다. 나는 도시락 통을 품에 안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점심을 먹고 수업을 듣지 말자는 파격적인 제안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웅이니 듣지 않아도 될 지도 모릅니다.. 나의 양심은 어느새 천사와 악마로 나뉘어 학생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는 천사와, 그러지 말고 오늘만 쉬자는 악마의 속삭임으로 가득 찹니다.
"네..?"
나는 잠깐의 침묵 후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오늘은 악마가 이겼습니다. 오전 수업부터 피곤했으니, 점심 이후에 듣는 수업은 참지 못하고 잠들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잠들어 선생님의 속을 뒤집는 것보다 차라리 없는게 나을 겁니다. 아빠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핸드폰이 윙윙 울리며 멜포메네가 그러지 말라고 문자를 띄웠지만, 나는 핸드폰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좋..좋아요! 오늘만 놀아버려요!"
그렇지만 선생님의 잔소리는 피할 수 있을까요? 그건 나중의 일로 미루는 겁니다. 지금은 자유가 중요하니까요.
//많이 바쁘셨나봐요....오늘은 조금 괜찮으실까요?(뽀다담) 레이주께서 너무 부담 가지지 않고, 일주일이 걸려도 좋으니 천천히 현생에서 벗어난 뒤에 적어주셔도 좋답니다. :) 오늘 하루도 힘내길 바라구, 늘 좋은 일만 함께 하셨으면 좋겠어요..(꼬옥) 슬슬 크리스마스네요! 아직 레이와 시라유키의 시간은 개학 첫날이지만, 크리스마스가 되는 날까지 천천히 달려보면 좋겠어요! 늘 고맙구 많이 좋아한답니다.🤗
정말 땡땡이를 치려는 것 같습니다. 핸드폰이 다시금 거세게 윙윙 진동합니다. 분명 멜포메네의 잔소리겠지만 나는 계속 무시합니다. 아마 오늘 멜포메네는 단단히 토라져 게임 어플을 켜지 못하게 방해하겠지만, 그만큼의 방해를 각오할 정도로 달콤한 제안이었습니다. 나는 도시락 통을 품에 안고 하나미야 씨의 옆으로 쫄래쫄래 걸어갑니다.
"에?"
나는 눈을 크게 끔뻑입니다. 하루 정도는 수업을 안 들어도 된다는 말에 놀란 나는 뭐라고 말하려 했습니다. 그렇지만, 어쩐지..일리가 있습니다. 그야 하루 정도 수업을 듣지 않는다면, 쉬는 동안 머리가 잘 돌아갈 겁니다. 게임도 잠시 휴식기가 있듯 공부도 휴식기가 있고, 우리는 세계를 구했으니 그만큼의 노고를 치하해서 더 쉬어도 됩니다..나는 이렇게 새로운 진리를 깨달은 양 자기합리화를 하게 되는 겁니다.
"맞아요!! 하나미야 씨, 이런 대단한 생각을 하셨다니.."
나는 결론을 내리고는 회색 눈을 초롱초롱 빛냅니다. 교실 문을 열자 복도는 소란스럽고, 우리는 그 소란을 헤치고 지나갑니다. 나는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며 선호하는 자리를 떠올립니다. 펜스 밑도 좋고, 그 근처에 준비된 벤치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좋아하는 장소는 따로 있습니다. 아빠가 알려주신 장소입니다.
"물탱크 옆.."
옥상 문을 열고 벽을 따라 걸으면 사다리가 있습니다. 그 사다리 위를 올라가면 물탱크가 있고, 그 옆은 하늘이 탁 트여있습니다. 건물 중앙쯤에 위치했기 때문에 학교 밑으로 떨어질 일도 없습니다. 소위 질 낮은 애들이 선호하는 자리라고는 하지만, 그건 또 아닌 겁니다. 특히 점심을 먹는다면 말입니다.
// 답레를 살포시 이어둬요. 좋은 일은 계속되고 계실까요?😊 오늘은 날씨도 춥고, 미세먼지도 가득하답니다.. 마스크를 썼지만 역시 칼칼한 건 어쩔 수 없네요. 끄응..😥 기관지 건강을 특히 조심하시길 바라요.. 오늘 하루도 힘내시고, 나쁜 일이 있다면 술술 풀려버리길 바라고 있어요.☺ 항상 좋아하고, 많이 아낀답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에요. 오늘을 기점으로 기온이 뚝 떨어진다고 해요. 늦었지만 레이주께서 즐거운 이브 보내라고 해주신 덕분에 행복한 하루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답니다.😊 이곳은 아직 봄이지만 겨울이 되면 둘 다 어느정도 관계가 발전했을 거라 믿어요. 그런고로 적폐를 살짝..시라유키는 레이를 꼭 끌어안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따뜻하게 챙겨 입으시고, 즐거운 크리스마스 연휴 되시길 바랄게요. 항상 고맙고, 메리 크리스마스!🥰
대단한 생각이 내 덕분이라니, 놀라운 일입니다. 나는 좋아하는 장소에서 먹을 수 있게끔 배려해주는 하나미야 씨가 괜히 고마워 부스스 미소를 지었습니다. 탁 트인 장소에서 밥을 먹는 건 좋습니다. 적당한 염분을 주며 식감도 좋은 야채 절임을 먹고, 니쿠쟈가와 밥 한 젓가락. 그리고 불어오는 봄바람을 마주하면 그만큼 좋은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미야 씨의 반찬과 하나씩 바꿔먹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겁니다.
"없을 거예요! 선배들이 유키 선배도, 유우 선배도 학교를 위해 힘내주셨으니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있다면 비켜줄 거라고 믿었습니다. 낙천적인 생각이었지만 실행에 옮기면 과연 낙천이 될 지. 나는 이곳이 사립학교임을 떠올렸습니다. 당연히 학생을 더 위하는 곳이니 우리를 도와줄 겁니다. 나는 옥상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다 문득 옆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도시락을 한 손으로 엉거주춤 잡습니다. 장난스럽게 등을 톡톡 두들겨주려 했습니다.
"괜찮을 거예요."
그리고 나는 옥상의 문을 열었습니다. 봄바람이 때마침 몰아쳐 머리가 뒤로 훅 날렸지만 이세계로 전이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따뜻한 햇살, 봄 하늘, 적당히 쌀쌀한 바람. 이미 자리를 옹기종기 잡은 여러 학생이 있지만 물탱크가 있을 사다리 부근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나는 사다리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며 하나미야 씨를 쳐다봅니다.
"하나미야 씨, 없는 것 같아요!"
리젠트 머리의 양아치는 다행스럽게도 없는 것 같습니다.
// 즐겁지 않은 월요일이에요.. 월요일은 왜 존재하는 걸까요? 😂 오늘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 같아요. 따뜻하게 입고 나가신 거 맞죠..?😳 음, 저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잘 보냈답니다. 나름요! 레이주께서는 바쁘셨군요..😥 그렇지만 이번 년도는 부디 아무런 일 없이 바쁘지 않고 즐겁기만 한 나날이 되셨으면 해요. 늘 아끼고, 또 행복하기를 바란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레이주!
그리고 껴안고 뒹굴거리다 까르르 웃는다니, 이렇게 귀여워도 되는 걸까요? 시라유키가 레이의 품속에서 마주 웃을 거예요. 분명 시라유키가 키도 한참 작지만 팔을 뻗어서 머리를 쓰다듬을지도 모르겠어요. 이히히.😘
정말 겁이 많으신 분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작게 웃음을 삼키며 문을 열었습니다. 옥상까지 올라온 벚꽃잎이 흩날리고, 화사함이 만개해 봄 내음 가득한 바람은 기분 좋게 머리카락을 살랑입니다. 뒤로 훅 끼쳐드는 바람에 머리를 한쪽 귀 너머로 쓸어넘겼을 때, 나는 하나미야 씨를 잠시 마주 보듯 고개를 돌렸습니다.
"하나미야 씨도 참."
나는 수줍게 미소 짓습니다. 살짝 붉어진 얼굴과 봄의 신 같다는 말이 못내 쑥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칭찬은 늘 듣기 좋지만, 하나미야 씨에게 듣는 칭찬은 그것보다 조금 더 행복하곤 합니다. 나는 봄바람에 간지러운 마음을 가다듬고 사다리를 통통 올라갔습니다.
도시락을 내려놓고, 물탱크 옆에서 보는 전경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하늘은 쭉 뻗어있고, 일어선 상태로 보면 저 멀리 운동장에 피어있는 벚꽃이 분홍색 솜 더미처럼 모여있어 아름답습니다. 나는 뒤따라 올라온 하나미야 씨를 바라보다, 작게 웃었습니다.
"하나미야 씨, 다른 걸 걱정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나는 손을 천천히 뻗습니다. 흰 장갑을 낀 손이 하나미야 씨의 머리를 향하고, 나는 수줍은 봄바람을 타고 내려앉은 꽃잎을 집으려 했습니다. 저 멀리서 여기까지 날아온 걸까요? 나는 꽃잎을 고이 쥔 손을 내 뺨 근처에서 살랑였습니다.
"봄이 묻었어요."
// 요즘 많이 바쁘고 피곤해보이셔서 걱정이에요. 어서 완전히 쉬는 날이 오셔야 할 텐데, 늘 기도하고 있답니다. 레이야 말로 정말 봄의 정령이 아닐까요? 화사하고 사랑스러워서 참을 수 없어요. 곧 겨울이 가면 여기처럼 봄이 피어나겠죠! 그 안에 나쁜 일이 훌훌 풀리고 편안하게 봄을 맞이하셨으면 좋겠어요.😊
봄이 묻었습니다. 손가락 사이에 집어 든 꽃잎은 손을 까딱이자 그 흐름을 타고 여리게 흔들립니다. 그러다, 헤실헤실 웃는 하나미야 씨가 뱉은 말에 눈이 잠깐 커집니다. 회색 눈동자의 둥근 윤곽이 드러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느긋하고 부드럽게 반쯤 감깁니다. 그리고 수줍은 듯 내 뺨에도 봄이 어립니다. 봄의 신이라니!
"하나미야 씨도 참.."
나는 작게 웃습니다. 수줍음을 숨기지 못한 미소 뒤로 나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봄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도 살랑이나 봅니다. 하나미야 씨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그럴 겁니다. 나는 도시락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다시금 전경을 눈에 담습니다. 도시락 뚜껑을 열자 깨가 뿌려진 밥, 꽃 모양으로 잘린 당근, 오크라를 절인 야채절임과 니쿠쟈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두 개의 방울토마토도. 280엔 어치의 반찬과 옆집 아주머니께서 주신 과실 내지 채소로도 든든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음이 복잡하면 가끔 찾아오곤 했어요. 풍경이 정말 예뻐서 아무런 생각도 안 들었거든요."
나는 나무로 된 젓가락을 들고 멋쩍게 웃습니다. 한때 나도 방황했던 시절이 있습니다. 아빠가 참 밉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죄송했습니다. 그러다, 아빠가 말했던 장소를 싫으면서도 찾아가게 되는 겁니다. 나는 잠깐 저 멀리 솜 더미처럼 풍성하게 피어난 꽃무리를 보다 하나미야 씨를 쳐다봅니다. "저희, 앞으로도 자주 와요." 하고 활짝 웃고는 장난스럽게 젓가락을 벌렸다 닫습니다.
"그럼, 먹을까요?"
// 늦게 보고 말았어요.😥 그리고 레이.. 너무 귀여워요.. 말을 돌리는 것도 그렇고, 풋풋한 고등학생이라 늘 흐뭇하게 답레를 잇곤 한답니다..😊 어서 요비스테를 해, 시라유키!
어느덧 1월도 끝나가는 한 주가 되었답니다. 레이주는 바쁜 일이 풀리셨을까요? 연초라서 가능성은 낮지만 늘 여유로운 현생이 되시길 바라고 있어요.😢 오늘도, 어제도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답레는 늘 그렇듯이, 느긋하고 편할 때 이어주세요.😊
나는 젓가락을 집어들고 가볍게 합장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입을 벙긋거린 뒤 도시락 통을 손바닥 위로 안전히 얹습니다. 이윽고 안정적으로 들어 올렸을 때, 나는 하나미야 씨가 건네며 보여주는 도시락을 바라봅니다.
"아, 정말 예뻐요..!"
어쩜 계란말이 하나조차도 이렇게 예쁠 수가 있을까요? 나는 계란말이 하나를 집어올려 도시락 통 빈자리에 적당히 채워 넣고는, 마찬가지로 도시락 통을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하나미야 씨도 드셔보세요. 같이 나눠먹으면 더 맛있잖아요."
나는 멋쩍게 웃습니다.
"제가 만들지는 않았지만.. 반찬 가게의 주인아주머니도 누군가의 어머니고, 늘 믿을 수 있으니까요."
나는 핸드폰이 웅 진동하자 살짝 눈을 굴립니다. 아무래도 멜포메네가 화가 난 것이 분명합니다. 이번엔 휴대폰 어플을 삭제하지 않아야 할 텐데. 나는 시선을 굴리다 삐콘거리는 알림 소리에 결국 작게 웃었습니다. 이러나저러나 땡땡이는 페르소나도 싫어하나 봅니다.
// 새해 복 많이 받길 바라요.😊 저는 설을 즐겁게 보냈답니다. 레이주도 푹 쉬셨을까요? 부디 쉬었기를 바라요..😥 많이 걱정하고 있답니다. 답레는 느긋하게 주시고, 언제나 고마워요. 늘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더 여유로워지시길 기도하고 있어요.😊 날이 추우니 따뜻하게 계시기에요.😘
나는 하나미야 씨의 반응에 앞으로는 더 맛있는 반찬을 구해야겠다 생각합니다. 어쩐지 기뻐 보이는 저 모습을 보니, 더 맛있는 걸 드렸을 때는 얼마나 더 기뻐할지 기대하게 되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도시락통에서 반찬을 옮기면, 나는 이제 자연스럽게 젓가락으로 밥을 뜹니다. 약간의 소금과 후추, 깨로 간을 하고 가운데에 우메보시를 올린 밥은 반찬이 없어도 참 맛있습니다.
"저번에 갔던 백화점 근처 상가에 있어요. 감자 샐러드가 정말 맛있답니다."
서로의 핸드폰이 삐콘삐콘 윙윙 진동합니다. 결국 작게 웃어버린 나는 하나미야 씨의 질문에 절인 여주를 젓가락으로 집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정말이지, 말썽이네요.. 이번엔 라인을 지우지 않았으면 좋겠지만요."
땡땡이를 치겠다고 선언만 했을 뿐인데 라인을 지웠던 적이 있습니다. 나는 여주를 입에 넣습니다. 몇 번 씹고 삼킨 뒤 결심합니다.
"하나미야 씨, 저희.. 점심 다 먹으면 가방도 챙기고 가버릴까요?"
멜포메네가 뭐라고 외치듯 핸드폰이 크게 진동합니다. 나는 애써 무시합니다.
// 늦어도 괜찮답니다. 그것보다.. 사람의 몫이요..? 바쁘신 건 알고 있었지만 현생이 정말 너무하네요.. :( 레이주께서 조금이라도 편한 현생을 보내길 기도하고 있답니다. 곧 3월이에요, 3월에는 부디 널널해지길 바라요..🥺 일교차가 크니 감기 조심하시고요..!
야식이라면 역시 저번의 당고도 맛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하테 빵만큼 당고에 맛을 들려버렸습니다. 미타라시 당고의 짭조름한 맛을 도저히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미야 씨의 탄성에 아하하, 하고 작게 웃었습니다.
"라인도 지우고, 저번에는 갤러리에 있던 사진도 지워버렸어요."
멜포메네는 강경파입니다. 어플을 지우는 것은 고사하고 갤러리에 있던 중요한 사진도 지워버리기 일쑤입니다. 물론 휴지통에서 다시 가져오는 등 복구는 해주지만, 지워졌을 때 심장이 뚝 떨어지는 기분은 두 번은 겪고 싶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멜포메네는 그런 기분을 알기나 할까요? 나는 계란말이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습니다.
"바로 집에 갈까요.. 그렇지만 아쉬운 것 같아요."
나는 고민합니다. 오랜만에 오락실에 가는 건 어떨까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 오락실에 간다면, 대기 인원 없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인형 뽑기에 몰두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나는 중얼거립니다. "오락실에 갈까.. 생각 중이기도 해요.." 라고. 물론 SNH임은 들키지 않을 생각입니다. 부끄럽기 때문이요, 거듭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밥을 한 술 떴을 때, 나는 입안의 음식물을 모두 삼키고 다짐하듯 말합니다.
"그렇죠, 하루 정도는 괜찮을 거예요!"
생글생글 웃는 하나미야 씨가 어쩐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줘서, 반쯤 비운 도시락을 뒤로하며 나도 마주 웃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