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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또 나왔다. 희미하게 뛰고있는 묻어버린 맥박의 소리. 남자친구랑 헤어져서요. 라는 대답에 미호의 머릿속은 다시 안개로 꾹 채워지고 있었다. 남자친구가 있었나 - 하고 미호는 속으로 혼잣말을 뱉었다. 보호소의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조언과 케어를 아끼지 않는 미호였기에 이번에도 뭔가 케어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한 미호는 그래? 하고 한 마디를 내놓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마냐. 마리야는 감정에 서툴렀다. 아마 이번에도 서툰 거짓말보다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정면돌파를 택했으리라. 감정을 모르는 게 아닌 서툴뿐이니,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아직까지도 조금은 서름한 감이 남아있는 자신의 선을 넘은 참견이지 않을까. 미호는 아홉개의 꼬리를 천천히 살랑이며 말했다.
" 그래. 혼자도 좋겠지. 차 한 잔 할까? "
전통차. 미호는 그것을 좋아했다. 이제는 갈 수 없는 고향과 과거의 잔재. 마음이 평안해지게 하는데는 그만한 게 없었다. 물론 취향을 타긴 하지만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차 한잔보다 좋은게 과연 얼마나 많을까. 마냐와의 대화는 일종의 테라피라고 미호는 생각했다. 서투른 감정을 가르치는 것. 그것도 소장의, 어머니의 일이니까.
"미호 소장! 리코 군에게 주인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나? 더군다나 보아하니, 그 주인이란 작자가 데리고 있던 데미휴먼들을 밥도 굶기고, 중화제도 제 때에 놓아주지 않은 모양이라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기가 찬다는 말로는 채 표현도 안된다네. 리코 군에게 직접 듣지 않고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들었으면, 끔찍한 도시괴담 치부했을 이야기라네! 미호 소장, 소장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나?"
미호가 주변 공기마저 싸늘하게 만드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지만, 유페미아에게는 유페미아 나름의 방어책이 있다. 그것은 바로, 태생적으로 눈치가 정말로 없다는 것. 어떤 의미에서, 눈치 없는 사람은 편하다. 상대방의 기분이 어찌 되든, 그걸 알아채질 못하니, 이런 상황에서도 수그러들지 않고 자신이 할 말을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유페미아가 대학 총장을 어떤 태도로 대했기에 면담 한번으로 3년 뒤 교수직에서 잘리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유페미아는 미호가 자신의 결례를 지적한 후에야, 자신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에티켓을 어겼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챈 모양이다.
"이런, 일 하는 중이었나보구만. 누군가 일을 방해하면 성가시지. 나도 교수실에 누가 함부로 들어오면 싫었다네."
"하!지!만! 이 세상에 무고한 아이의 행복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나! 리코군의 인생에 다시는 과거와 같은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네!"
//유페미아가 너무 눈치가 없어서 죄송합니다..... 미호마망 겨우 화 참으셨는데 이제 진짜 화내실 것 같아요8ㅁ8
사실대로 말하면 30분전에는 코피까지 났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건 해야하는 일과 정해진 기한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고. 자신이 처리해야 데리고 있는, 감히 보호하겠다 말한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이유들로 미호는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었다. 빨리해서 끝내놓고 늘어지게 쉬어야지. 라는 보상을 생각해 놓은 것 역시 움직이게 해주는 또 다른 원동력이었다.
" ...선넘네? "
선을 넘는다. 미호는 그렇게 표현했다. 리코에 대해 아느냐고 말하는 모습에서 미호는-신경이 굉장히 날카로워졌기에- '네가 리코에 대해 뭘 알아?'하고 말하는 것으로 들려왔다. 리코는 어린 나이에 수집품으로 길러졌다. 중화제를 제때 맞지 못해 침식이 진행되었고 같이 수집품으로 길러지던 한 아이가 크토니안화해 그 틈을 타 도망쳤다. 많이 먹지 못한 것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있어 식사는 항상 넉넉하게 챙겨주어야한다. 담벼락에서 햇볕을 쬐는 걸 좋아하고 나무를 탈 줄 알지만 가끔 내려오는 건 못한다. 미호는 그렇게 속사포로 정보를 쏟아내고는 쥐고있던 커피잔을 단순 완력으로 꾹 쥐어 깨트려버렸다. 손에 께진 파편으로 피가 났지만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이제는 귀까지 바짝 서 있었다.
" 더 이상 선 넘으면 그 입을 찢어버리던 꼬매버리던 할 거에요. 더 이상 신경긁는 일은 그만둬 주시겠어요? "
유페미아의 질문을 도발로 받아들인 미호가 리코에 대한 정보를 속사포로 늘어놓는다. 그런데 유페미아는...
"오호, 그렇구만, 그렇구만. 수집품이었구만... 크토니안화 된 친구만 중화제를 못 맞은 줄 알았는데 리코도 중화제를 못 맞아서 팔다리가 이렇게 된 거구만... 그런 사연이 있는 줄도 모르고 난 처음 만났을 때 척골이 길다고 감탄했었네. 이거, 리코 군에게 새삼 미안해지는구만. 먹지 못할 것에 트라우마가 있다라. 그럴 만도 하지. 햍볕을 쬐는 것을 좋아하고 나무를 오르는 걸 좋아한다는 건 전혀 모르고 있었네."
아이고야, 그걸 정말로 순수히 정보 전달의 의미로만 받아들인 모양이다.
"이런, 힘조절에 실패한 모양이구만. 여기, 이걸로 지혈이라도 하게."
미호의 손에 쥔 커피잔이 완력으로 꺠어지고, 미호의 손에서 피가 나는 것을 보고서는 단순 힘조절에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셔츠춤에서 손수건을 꺼내(지난번 CPA 테러사건 때 사용했던 손수건은 버려졌기에 이건 새로 산 손수건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손수건으로 피를 닦을 일이 참 많아진 것 같다, 라고 유페미아는 문득 생각한다.), 미호에게 건네려고 한다.
"...? 선을 넘어...? 내가 무슨 선을 넘었다는 말인가?"
"아, 바쁜 데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방해한 일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 일은 다시 사과하겠네. 미안하네. 하지만 이건 정말 급한 일이라 싶어서 그랬다네."
거절할 마음도 없는 이 남자. 물론 냉큼 대답한다. 키아라 로체스터라. 드문 이름이로군. 하긴, 내놓는 이름으로 치면 이쪽도 평범한건 아닌가.
"션디 쿠보타(Shandy 久保田)... 편할대로 부르라고."
팔짱을 끼며 말하는 쿠보타. 허리에 차인 칼이 절그럭 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그 와중 시선은 키아라를 아래에서부터 훑어올린다. 관찰당한다. 그것은 상호간에 썩 유쾌하지 않은 일이 틀림없지만. 알아채기도 어렵게 순식간에 끝마쳐진 일이었고, 또한 이 음침한 남자의 눈은 좀처럼 보기도 어렵다.
아 마냐 엄마는 좀 무심한 여왕님 타입이라서요!(넵 엄마 닮았습니다) 에피가 눈치없이 구는 건 좀 귀엽게? 가소롭게?(표현 죄송합니다...) 보았을 거 같아요! 부하가 그랬으면 얄짤없었겠지만 에피는 지켜야 할 존재에 따지고 보면 고용주에 가까우니까요. 크토니안에 대한 주제라면 자기도 경험상 많이 알기도 하구요. 물론 좀 귀찮을 때면 돌직구로 그만하라고 했을 거 같네요 ^-T(진짜 싫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표현해야 통할 거 같아서요!)
키아라는 상대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나 궁금해했다가도 금세 그 생각을 거둡니다. 크토니안에 대해 잘 알고 총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이니시에이터, 아니면 군인밖에 없으니까요. 또한 키아라의 나름대로 단련한 신체를 자세히 뜯어보면, 누가 봐도 결코 평범한 사람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겁니다.
쿠보타는 일부러 그런 식으로 말함으로써 그 질문에 긍정했다. 스스로도 자신이 제대로 된 이니시에이터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니시에이터에 대해 특별히 규정된 정의나 규범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총으로 사냥을 개시(Initiate)를 하듯, 남자 또한 날붙이로 그것을 한다. 단지 도구와 생각의 차이일 뿐. 다만 그녀는 쿠보타가 보기에도, 정말 '이니시에이터'그 자체의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쪽과는 자주 마주칠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
불어오는 바람에 쿠보타의 머리칼이 스치운다. 마냥 단순한 직감은 아니었다. 일이 우연히 겹친 것. 식사가 하나 저당 잡힌 것.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 무엇보다 바람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