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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가족이라 함은 생물학적인 혈족뿐만 아니라 아홉꼬리 보호소의 사람들을 의미하기도 했다. 어느 정도 나이가 차고 무심코 안기려 뛰어든 힘에 아버지의 뼈가 부러지던 시기, 솔직히 마리야는 어느 수용 시설에 들어가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가장 이상적인 조건은 어머니와의 계약이었지만 그에 대한 부모의 반론-"우리가 충분히 감싸줄 수 있는데 네 인생을 너무 일찍 결정짓지 말렴"-을 무시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 말을 준거 삼아 보니 남는 곳이 아홉꼬리 보호소라는 사정이었다.
그리고 막상 들어가 보니 자신을 환대해주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기우는 것 같았다- 는 사정이랄까.
여하튼 확실한 애정은 가족밖에 없다고 마리야는 얼핏 생각했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안되는 나날의 결과였다. 분명 남자친구를 대할 때는 가족들을 대할 때처럼 단맛을 느끼지는 못했는데 헤어지고 나니 이 선택은 아니었나 싶고. 이미 끝난 일인데 어째서 자꾸만 생각이 나고 혼자 있고 싶지 않은 것인지. 누구한테 뭐라고 말을 걸고 싶지만 이런 스스로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가족들이 오가는 것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여느때와 다름 없는 하루였다. 자신은 아이들을 돌보고 아이들은 자신을 따른다. 미호씨, 미호, 소장님, 아줌마, 엄마, 어머니. 전부 자신을 부르는 말들. 여러가지 이름을 가진 미호는 여러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뭐, 그렇다한들 자신이 품고있는 마음과 오래 되어서 익숙함을 넘어 자신의 일부라고마저 느껴지는 처음에 가졌던 그 초심만은 어떤 이름과 얼굴을 사용한들 똑같았겠지만. 이 아이들은 가족이었다. 언제까지고 제 가족일테고 어디서나 제 가족일 것이다. 언젠가 연락이 없던 시간이 찾아와 무거워진 귀를 잡고선 밖에서 날 기다리겠노라 하고 말하는 날이 올 때까지 내 가족일 것이다.
" 음? 무슨 일 있나요? "
마리야. 애칭은 마냐. 미호는 마냐라고 부르는 걸 더 선호했다. 그야 모두에게 친하고 공정한 소장님이니까. 하는 얼굴의 일환이기도 하겠지만은 아직 서름한 잔을 들어올려 마시고 있을 때에, 그 안개가 내려앉은 호수위에 안개를 지울 수 있는건 다른게 아니고 따스함이니까. 미호는 누구보다 그걸 잘 알고있노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가족은 가족이 가장 잘 알고 데미휴먼은 데미휴먼이 가장 잘 알고 있으니 그런 어린아이도 잘 아는 이치에 따라 행동하지만 그것만큼 정답에 가까운 것도 없었다. 저물어가는 머릿속에 서성이는 유령이 되어가고 있을 때 마주친 마냐는 왜인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면담이 불가능이었던 것을 보면 분명히 일, 또는 면담으로 한창 바쁠 미호의 소장실의 문을 누군가 쾅 소리가 날 정도로 활짝 열어젖힌다. 전에도 링크를 찾으러 왔기에(그 때는 유페미아와의 링크에 자원하는 데미휴먼이 없었기에 실패로 끝났었다), 어느 정도의 면식은 있는 사이. 유페미아다. 곁에 있는 데미휴먼 아이의 손을 부여잡고 소장실까지 뛰어온 것인지 거칠게 내쉬는 숨결, 자신이 떠올린 묘책이 옳으리라고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고 형형히 빛나는 눈은 얼핏 보기에도 정상적인 상태로는 안 보일 테다.
상황은 이랬다. 유페미아는 리코와 대화하던 중, 리코를 잘 해봐야 애완동물, 심하게는 장난감 취급하던 전 주인에게 학대받던 리코의 과거를 알게 되었고, 이에 너무나도 분개한 나머지, 다시는 리코가 그런 대우를 받지 못하게 하겠다고 결심, 그것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질 나쁜 다른 이니시에이터가 리코와 링크를 맺지 못하도록 유페미아가 먼저 링크를 맺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평상시엔 논리적인 유페미아가 이런 논리적 비약을 저지르는 건 분명히 아드레날린에 취해 이성이 마비된 탓이다. 유페미아가 원래 찾던 데미휴먼은 건장한 성인이라는 것이나, 그런 질 나쁜 이니시에이터가 온다면 미호가 쫓아내버릴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조차 기억해 내지 못하는 걸 보면, 아드레날린에 취한 것이 맞다.
바쁘다. 미칠듯이 바쁘다. 오늘 안으로 처리해야할 서류가 넘쳐났고 링크를 원한다는 애먼 이니시에이터 상대도 오늘만 네 명째다. 올려야하는 보고서만 세 장에 이 와중에 경매장 사건과 관련하여 코르포데이가 들락날락한게 오늘만 두 번째다. 원래는 커피보다 차, 그것도 전통차를 선호하는 느긋하고 자애로운 미호였지만 오늘만큼은 커피포트를 끼고선 진하디 진한 블랙커피를 계속해서 마시며 일처리중이었다. 눈 밑에 내려앉은 피곤함이 신경이 날카로워 졌음을 보이고 있었다. 쾅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예약되지 않은, 다시 말하자면 일정에 없던 것도 모자라 노크따위는 생략하고 들어와 소리부터 지르다니. 자신이 데리고 있는 데미휴먼에게는 언제나 자애롭고 따스한 미소를 보이던 미호였다. 미호는 아홉개의 꼬리에 난 털을 빳빳히 세우고 주변공기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싸늘한 눈빛으로 유페미아를 바라보았다.
" 이게 무슨 예의없는 짓이죠? "
생각같아선 책상을 쾅 차고 일어났겠지만 그랬다간 책상 위의 서류더미들이 온 사방으로 날아가서 개판이 되어버린다. 그걸 정리하는 건 또 누군가의 몫이고. 그래선 안돼지. 미호는 다시금 진하디 진한 블랙커피를 쭉 들이키곤 서류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유페미아를 노려보았다. 빳빳하게 펴진 꼬리의 털 때문에 2배는 풍성해보였다.
" 아실 만큼 아시는 분이 소장의 방문을 이렇게 시끄럽게 열어제끼고 들어오시나요? 게다가, 전 오늘 어떤 면담도 예약도 들은 적이 없고 더구나 오늘은 처리해야할 일이 산더미라 받지도 않겠다고 일러두었을 텐데. "
마지막 예의를 차려 말한 미호는 커피포트에 마지막 남은 한 잔을 따라마시곤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마냐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에 겨우 자신에게 대화를 걸고 있음을 깨달았다. 감정을 느끼는 데는 둔하지만 미호 씨의 패턴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신경 써주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받는 관심이 또 혀끝에 단맛을 돌게 했지만, 동시에 이렇게 관심을 받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본능적인 판단을 크게 불러왔다. 마냐는 으음, 소리를 내고 눈을 도록 굴렸다.
"남자친구랑 헤어져서요."
결국 나온 해법은 지극히 마리야다웠다. 정면 돌파적이라는 소리였다. 미호 씨에게 거짓을 말하기에는 본능적으로 걸리는 구석이 있고, 그렇다고 본인도 서투른 비이성적인 감정을 줄줄이 늘어놓기에는 미호 씨의 시간이 아까웠다. 그러니 진실이면서도 통상적으로 넘어갈 수 있는 대답을 제시해서 상황을 빠르게 무마하는 편이 상호 간에 이롭다는 판단이었다.
"신경써 주셔서 감사하지만 저 혼자 고민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문득 덧없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생각으로, 이것이 대화를 나누기 싫어서 하는 도피는 아닐까 하는 잡념이 들기는 했지만.